E,AHRSS

피델 카스트로

last modified: 2016-11-26 19:38:54 Contributors



유명한 국가평의회장 시절.



2013년. 세월은 흐른다...

"너희들이 현재 온갖 더러운 모함으로 나를 더럽혀도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며,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Contents

1. 소개
2. 생애
2.1. 서거
3. 평가
3.1. 긍정적
3.2. 부정적
4. 여담
5. 대중문화 속의 카스트로
6. 관련항목

1. 소개

Fidel Alejandro Castro Ruz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
1926.08.13 ~2016.11.26 (90세)

쿠바의 정치인으로 쿠바 역사상 최고 인기의 슈퍼스타. 우리에게는 독재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쿠바인들에게 피델 카스트로는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가장 인기있는 스타이기도 하다. 2위는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그래서 미국은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선결조건으로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가 출마하지 않는 선거'를 주장했다. 아무리 미국이 감시하는 선거를 치른다 해도 쿠바 최고의 슈퍼스타이기 때문에 어차피 피델 카스트로, 피델이 선거에 못 나오면 라울이 당선될 것이 뻔했기 때문.

2. 생애

1953년, 쿠바의 군사독재정권이자 미국의 어용 정권이었던 바티스타 정권을 습격하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면서 이름을 알린 혁명가이다. 비록 습격작전은 실패하였으나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다.(La historia me absolverá)"[2]라는 간지폭풍명언을 하면서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한 부분은 그의 이름을 오히려 드높였다. 2년 후,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가 특별사면을 행하자 멕시코로 망명해 유명한 혁명가 중 한 사람인 체 게바라 같은 중남미 해방운동 세력을 흡수하여 쿠바에 재상륙하여 많은 고난을 딛고 6년 만인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해 쿠바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1961년, 혁명이 남미 전부로 번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남미와 쿠바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자 친소련 정책을 펼치면서 공산주의로 선회한다.[3] 그 후 쿠바 미사일 위기 등 여러 냉전 사태의 최전방에 있었다.

2008년까지 쿠바의 공식 지도자였으나, 2008년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지도자 자리를 물려주고 민간인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2010년 9월에 그는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기자가 "쿠바의 경제모델을 다른 나라한테 퍼트리고 싶나?"라고 질문하자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실패했는데"라고 했는데 이것만 보고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정했다고 보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물론 이 한 문장만을 두고 보면 카스트로가 공산주의의 성공을 회의한다고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본문 내에서는 이 말이 쿠바 혁명과 공산주의의 총체적 실패를 인정한다기보다는 당내 정통 공산주의자들과 관료들의 반발로부터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개혁을 행할 공간을 주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냐시오 라모네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나는 사회주의자이고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레닌주의자입니다. 나는 그런 자세를 포기하지 않았고,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하여튼 "The Cuban model doesn't even work for us anymore."이라는 말이 담긴 전문은 여기에서. 기사

그런데 CNN의 보도에 따르면 카스트로가 말하길, 자신이 쿠바에서 공산주의 모델이 실패했다고 한 것은 기자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어째 분명 그렇게 말해놓고 어쭙잖게 말을 바꾸는 감이 있다(...).

90세 생일이었던 2016년 8월 13일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1. 서거

2016년 11월 25일, 피델의 동생이자 현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인 라울 카스트로가 26일 0시가 좀 지난 시각에 "25일 밤 10시 29분에 피델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고 쿠바 국영 TV를 통해 발표했다. 라울 의장은 26일 피델의 유골이 유언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했다.

3. 평가

3.1. 긍정적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라는 말을 하면서 간지폭풍을 뽐내던 혁명가 시절의 정신이 아직 남아있는지, 공산권에서 지원받은 싼 컬러 TV를 베네수엘라에서 문맹퇴치운동을 한다고 하니 그 일원으로 몽땅 지원해 주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형광등을 무료 지원해 주기도 하는 등 주로 공산권, 특히 남미 쪽에 인도적인 지원이 많은 편이다.

어느 북쪽 나라처럼 "인권?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식의 드립은 치지 않고 자국민의 안정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태도도 보이고 있으며,[4] 가난한 나라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곤국 지원국가이기도 하고 그 중심엔 피델 카스트로가 있었다.

한국에서 생각하기에는 사회주의 국가 하면 일단 윗동네처럼 '사회주의 국가는 지도자 동지의 사진에 절을 하고 세뇌 교육을 받아서 '수령님, 수령님' 하는 말을 입에서 떼지도 못하는 동네'라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 윗동네가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도 최악의 비정상적인 국가로 통한다. 당장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에 관해서 왜 언론들이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유례가 없는 세습독재'라고 표현하겠는가?

쿠바 전역을 뒤져봐도 체 게바라나 다른 혁명 인사들을 기념하는 동상이나 초상화 같은 기념물은 꽤 있지만, 피델 카스트로 본인이나 그의 동생인 라울의 것은 없다. 쿠바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비록 친미적인 언론보도나 정부 전복에 대한 논의는 금기시되어 있고 실제로 했다간 군부에 의해 잡혀갈 각오를 해야 하지만, 쿠바에서는 성조기 비키니(!!)를 입은 처자를 해안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서구 문물이 정식 수입되지는 않지만 암시장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거의 7, 80년대에 남대문시장에서 수입품 사던 것, 세운상가에서 빨간 거 사던 것을 생각해 보면 되는 수준이라 한다. 쉽게 말해 70년대 한국식 군사독재를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뭐야, 평범한 군사독재자네 미친놈아 군사독재 자체가 문제잖아 하지만 그래도 윗동네보다는 낫다 쿠바 여행책자나 블로그를 봐도 현지인들이 쿠바의 경제나 정치를 욕하긴 해도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비난이나 욕을 하는 건 그리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미국의 노골적인 경제봉쇄를 탓하는 이들도 많다고... 적어도 굶어죽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사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언론에 많은 집중사격을 받은 탓도 있다. '오오 간지 혁명가 오오' 같은 모습은 전부 동료인 체 게바라가 갖고 가버려 어쩌다 보니 악역을 맡게 된 케이스.

막장 오브 막장의 포스를 뽐내던 바티스타의 정권은 만주국 정도의 어용정권이었다고 하지만, 사실 카리브해 연안의 국가 치고 친미 탈피해 본 국가가 있었을까 싶다. 되레 쿠데타로 집권해 경제발전에 나섰던 게 바티스타 정권. 하지만 빈부격차 크리가 터지면서 민심이 급격히 나빠졌다. 여하간 그런 바티스타 정권을 뒤엎고 미국의 착취에서 벗어나 대부분의 사업을 국유화했으니 뒤가 근질거려 공산권을 택했다는 쪽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킹왕짱 천조국의 바로 눈 앞에서 쿠바가 살아남으려면 이념이고 자시고 일단 미국을 견제할 세력(소련)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하지만 히틀러 싫다고 스탈린 선택한 인간들은 모두 콧수염 지옥에...

피델의 혁명 세력들은 쿠바인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사상적으로는 남미 민족주의적인 해방운동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의 사상은 공산주의라기보다는 반미·민족주의에 가까웠다. 카스트로는 애초에 쿠바 공산당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민족주의 정당인 정통주의당의 당원이었다.[5] 멕시코 혁명과 같은 반미 민족주의적인 혁명의 성격을 친사회주의로 돌려놓은 것은 미국의 공로가 크다. 비슷한 경우로 베트남의 혁명가 호치민이 있는데, 마오쩌둥이오시프 스탈린은 호찌민이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 자라고 싫어했다. 물론 셋 다 미국이란 적을 두고 서로 손잡으며 사진에서 웃으며 미소지었지만... 실제로 호치민은 프랑스를,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고자 미국의 힘을 빌리려고 하기까지 했다..피델 카스트로와 마찬가지로 호치민과 북베트남이 반미 공산 국가로 방향을 튼 것에는 미국의 공로가 매우 큰 편. 카스트로 정권이 단순한 공산독재정권이라면 수많은 쿠바와 남미인들이 그에 대해서 애정을 담아 까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김일성 같은 애들이랑은 비교를 거부한다.

그리고 김일성과 달리 피델 카스트로는 자신에게도 자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권력을 세습시키지 않았다. 동생인 라울에게 권력을 넘기긴 했다지만 그도 나이가 80이고 라울 역시 피델 다음가는 쿠바 혁명의 주체이다. 도리어 피델과 라울 형제가 대학생일 때는 동생인 라울이 사회주의 운동에 몰두하느라 학업을 게을리하자 우수한 법대생이었던 피델이 한소리 했다고 한다. 이 사람도 쿠바 혁명 때 전투보다는 주로 참모역으로 활동하고 이후 승계 이전까지 평의회 부의장으로 쿠바 권력순위 2~3 순위에 위치한 인물이였다. 비슷한 예로 조선 건국 당시의 태조 이성계정도전 내지는 중국의 마오쩌둥저우언라이 정도의 권력 관계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 세습과는 전혀 다르다. 곧 혁명 이후의 세대에게 권력이 이양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리고 라울의 성향을 피델과 비교해보면 북쪽의 세습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꽤나 센세이셔널한 일일 따름.

흔히 쿠바 혁명이라고 하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워낙 체의 명성이 높아서 생긴 오해다.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과 함께 쿠바 혁명 계획을 시작할 때부터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오히려 체는 그란마호 상륙 작전 당시 공산 게릴라군에 의사가 오직 체 밖에 없어서 군의관으로 탑승한 것이며, 후에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대민지원을 하며 거점을 세울 때 체의 의료 대민봉사지원이 눈부신 성과를 나타내어 주도적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가 유독 많이 알려진 이유는 체가 인간적인 매력과 성품, 교양을 바탕으로 서구 지식인들에게 크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체의 모습이 당시 서양의 좌파 지식인들이 꿈꾸던 사회주의 혁명가의 모습에 부합했기 때문에 체가 크게 알려진 것. 그리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잘생겼잖은가.(...) 한번 보면 뇌리에 박히는 미모라서 지금까지도 사회주의 혁명의 아이콘으로 남은 면도 없잖다. 게다가 요절했다. 즉 청춘스타.

피델의 6남 2녀 중 큰아들을 제외하면 정계나 공직으로 뛰어든 사람이 없고, 그 큰아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공직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딸인 앨리나 페르난데스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열심히 카스트로를 까댔다. 그녀는 현재 CNN논평가가 됨.

3.2. 부정적

사실상 쿠바를 공산독재정권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쿠바에는 언론·통신·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서방권 국가들, 주로 미국이 비판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칠레의 주간지 <케 파사(Que Pasa)>는 중남미 좌파들이 단 한 번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비판해 본 적이 없다고 보도하였다.

공산 혁명 이후 그의 명령으로 반대파에 대한 즉결처형이 벌어졌으며 군중심리에 의한 인민재판도 자주 행해졌다는 주장이 있다.[6] 또한 쿠바에 최초로 강제노동수용소[7]를 건설하기도 하였으며, 사실상 비민주주의적인 정책, 보장되지 않는 종교의 자유[8]와 있으나 마나한 대통령과 법원, 비밀경찰의 존재도 문제가 된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빡센 독재자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 들어 동구 공산권에서 개혁, 개방 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는 혁명정신 이런 거 다 갖다 버리고 독재정권을 유지하려고 온갖 정적을 숙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9] 숙청 과정에서 혁명영웅 이런 거 없었다. 이 때의 숙청포스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김일성 정도의 포스.[10]
경제적으로도 무리한 유화를 실시해 미국의 봉쇄와 더불어 경제위기를 악화했다. 이미 쿠바 혁명으로 중산층이 타국으로 도피한 상황에서, 공장이나 사무실의 가동률은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그러나 국유화를 실시하면서 그 자리에는 실무자가 아닌 타인이 임명되면서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다.

농업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집단농장화로 급격히 생산량이 감소했다. 공업처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농민들은 집단 태업이나 무장봉기를 했다. 오랜 시간동안 플렌테이션이나 자영농에 익숙해진 쿠바 농민들은 집단농장화를 이해하지 못 했다. 그들은 피델의 제안을 강경히 거부했다. 피델도 준 군사조직을 창설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농민 게릴라와 전투를 벌였다.

2014년 5월, 피델이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왕이나 다름없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80년대에는 미국에 코카인을 밀매하는 마약사업도 했었다는 전직 경호원의 폭로가 나왔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이 겉으로는 검소한 척 굴어도 대개는 호화판 생활을 누린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단순 무고로만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마약 밀매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델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줄 것으로 보인다.

4. 여담

어린 시절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워낙 영어가 서툴러서 문법도 엉망이었다. 편지 내용은 대략 이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나의 좋은 친구, 루스벨트 씨. 나는 영어 잘 몰라도 당신에게 편지 쓸 정도로 영어 알아요. 난 라디오 듣는 게 좋아요. 라디오에서 당신이 새로운 시대에 대통령이 될 거란 소식 듣고 매우 기분 좋았어요.

난 열두 살이에요. 나는 소년이지만 생각을 많이 해요. 하지만 내가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 쓰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괜찮다면 답장에 10달러짜리 미국 지폐도 보내줘요. 10달러 미국 돈 한 번도 못 봤어요. 갖고 싶어요...(중략)...난 영어 잘 모르지만 스페인어는 잘 해요. 당신은 스페인어 잘 못해도 영어는 잘 하겠죠. 당신은 미국 사람이고 난 미국 사람이 아니니까요...(하략)

그리고 연설 덕후로도 유명하다. 1960년 9월, 유엔 총회에서 행한 4시간 29분짜리 '간단한' 연설은 지금도 (정상급 인사의 연설 중) 유엔 역사상 최장시간 연설로 기록되어 있다. 비(非)정상급 인사로는 1957년 크리슈나 메논(Menon) 주(駐)유엔 인도 대사가 9시간 논스톱 연설을 했다. 피그스만 침공사건 이후에도 분노+희열에 가득차서 라디오로 몇시간이고 연설했다. 주내용은 다시는 쿠바를 무시하지 마라였다.


1969년 유엔 대회의장에서,

본인 스스로 연설을 하다 보면 기가 충전되는 느낌이라고 하는 등, 연설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라 주제만 생기면 뭐든지 연설 주제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야구 선수 출신이다. 대학생 시절에 대학팀 대표로 미국에 와서 메이저 리그의 문을 두들겼다. 이때 뉴욕 양키스와 워싱턴 세너터스(현재 미네소타 트윈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나 입단에는 실패. 그때 메이저에서 받아주었으면 지금쯤 미국의 국가적인 골칫거리 하나를 덜었을 텐데

쿠바인답게 시가를 좋아한다. 한때는 미국이 시가에 폭탄을 넣어서 암살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소련은 자발적 공산혁명이 일어난 얼마 안 된 나라[11]였던 쿠바를 매우 좋아해서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해주었는데 그 일환으로 피델에게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수훈했으며 쿠바에 대해 대규모의 경제 원조를 실시했다.

asgrht.jpg
[JPG image (Unknown)]


미국의 골칫덩어리였기 때문에 수 없이 암살 기도가 있었고, 그의 인생을 통틀어서 638건의 암살기도가 있었다. 암살 방법도 시가에 독 바르기, 을 하는 연단 아래에 폭탄 설치하기, 취미 중 하나였던 스쿠버 다이빙 수트에 세균 집어 넣기, 미인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그래서 별명#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이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암살이 시도된 인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이중 미인계가 실패한 이유가 가관인데, CIA에서 암살자로 보낸 여자가 피델한테 진짜로 반해서 실패했다. 여자는 피델 카스트로와 내연관계를 유지하다가 적당할 때 암살할 계획이었다는데, 해당 요원이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피델이 자기가 암살자인 것을 눈치채서 한 동안 대피했다가 다시 피델에게 돌아갔는데, 권총을 겨누자 그가 한다는 말이 "날 쏠 수 없을걸. 넌 나를 사랑하니까"라며 되레 자기 가슴을 권총 앞에 들이미는데 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오 카스트로 오오 폭풍간지 마성의 남자

심지어는 2002년 독재 종결자 지미 카터와의 세기의 불사신/사신 매치에서도 비록 내상을 입긴 했지만 살아남았고, 2011년 3월의 리턴 매치에서도 승리, 불사신의 위엄을 온 세계에 떨쳤다. 카터를 만나고도 죽지 않은 유일한 독재자. 만나지도 않은 카터의 땅밟기에도 죽어버린 김정일과 비교해 보면 피델 카스트로의 위대함이 더욱 돋보인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로도 지목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가 친(親)쿠바 성향의 인물이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증거가 굉장히 희박하다. 애초에 오즈월드란 인물 자체가 지극히 모순적이었고, 쿠바 성향 유인물 배포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차라리 위에도 나오는 피그만 침공 시기에 미국 대통령이 케네디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케네디가 아무리 봐도 라기 보다는 둘기파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훗날을 가늠할 수 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수없이 많은 케네디 암살자 후보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순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추리닝을 즐겨입는다. 그것도 아디다스 추리닝만 입는다. 퓨마 추리닝도 종종 입는듯하다. 미국 브랜드라서 안 입을듯 하지만 나이키도 아주 가끔 입는다. 하여간 뭘 입건 북쪽의 어떤 돼지들보단 잘 입는 듯. 패완얼 아니고?

때문인지 묘하게 배우 리엄 니슨을 닮았다..

2013년 현재에는 워낙 고령이라서 눈치채기 어렵지만 상당한 거구이고 장신이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키가 191cm. 젊었을 적 찍힌 사진이나 영상들을 보면 키가 큰 편이다. 1972년 동독을 방문했을 당시 영상을 보면 당시 동독 서기장에리히 호네커와 비교해도 확연히 키가 차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1986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의 영상을 봐도 알 수 있는데, 그와 만난 김일성의 체구도 아주 작은 편은 아니지만 피델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5. 대중문화 속의 카스트로

미국 코 앞에 있는 공산국가의 독재자라는 이미지 덕분인지 미국 대중문화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보통 선악의 구분을 떠나서 대단히 카리스마 있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편이다. 물론 아래의 경우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처음부터 개그로 나가는 경우이다.

게임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첫 번째 미션에서는 암살해야 할 목표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알렉스 메이슨은 그의 별장에 잠입해 같이 있던 정부(情婦)를 방패로 삼고 저항하는 피델 카스트로를 권총으로 저격해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메이슨이 죽인 자는 이미 피그만 침공 계획을 다 알고 있던 피델의 대역이었다. 이때 머리를 맞추면 성스러운이상한 브금과 함께 V.A.T.S.로 크리티컬 뜬 마냥 슬로모션으로 총알→피델의 머리를 클로즈업해준다. 진짜 피델 카스트로는 미션 후반에 포획한 메이슨을 소련군 장교니키타 드라고비치에게 선물이라면서 넘겨버린다. 게임에서도 안 죽는 불사신의 위엄게임 플레이 영상. 8:30 쯤에 피델의 대역이 등장하고 14:30부터 진짜 피델이 나온다.

같은 게임의 나치 좀비 미션에서는 엉뚱하게도 적대국가의 대통령들국방장관과 태그를 짜서 펜타곤좀비들을 격퇴한다. 한술 더 떠서 <데드 옵스 아케이드>라는 미니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하며 1UP 아이템은 카스트로 황금상이다(…).

SNK에서 1988년에 개발한 이카리 스타일의 게임 릴라 워(오락실, 패미컴 용) (일본판 제목 게바라)에서는 체와 함께 플레이어 2p로 나온다. 미국판에서는 제목도 <게릴라 워>로 바꾸고, 체 게바라에 바치는 헌사[12]도 변경하였다. 오락실 게임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유일한 국가원수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인 세계대전Z에서는 간접적인 언급으로 등장한다. 좀비 사태에 훌륭하게 대처한 뒤 피난민들을 통해 외국의 자유로운 사상들이 퍼지자 권력자의 자리에서 물러나 자유 선거를 주도해 민주주의 쿠바를 이룩한다. 이로 인해 그의 동상까지 세워진다. 혁명을 일으키고, 쿠바를 수호하고, 쿠바의 경제 발전과 자유까지 선물한 대영웅이 된 셈. 실제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쿠바에는 공공 장소에서 피델을 기리는 동상 같은 기념물은 없다.

----
  • [1] 실제로, 리암 니슨이 출연한 작품과 엮어 합성하는 경우도 있다.
  • [2] 영어로 번역하면 History Will Absolve Me.
  • [3] 이전까지 카스트로의 성향은 공산주의라기보다는 단순한 반미주의에 가까웠다. 자세한 설명은 밑의 글에 자세히 나와 있다.
  • [4] 식량·경제 제재가 이어지자 농산물의 고급화와 친환경적인 도심 복합 농장을 건설한 것은 서방에서도 인정하는 건이기도 하다.
  • [5] 그러나 동생 라울과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자였다.
  • [6] 이에 대하여 피델 본인은 인터뷰와 회고록 등을 통해 강력히 부인하였으며 쿠바 정부의 공식 입장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혁명 직후 초기의 공개재판들에 대한 과오는 인정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자이자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이냐시오 라모네와의 인터뷰 참조.
  • [7] 라카바나 노동수용소를 이른다. 그런데 쿠바 정부와 체 게바라에 옹호적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자료들을 교차해보면 체 게바라가 공직자들의 태업을 체벌하기 위해 건립한 라카바나의 노동 수용소가 반대파들의 주장에 의해 정치범 수용소로 왜곡되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노동 수용소의 경우 본인이 공직자 자격을 사퇴하면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방식.
  • [8] 종교의 자유는 나중에 다시 허용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정부의 허가 아래 종교집회도 가능하다.
  • [9] 다만 피델 카스트로의 대표적인 정적 숙청 사건으로 일컫어지는 오초아 사건의 경우 단순히 마약 밀매에 대한 응징이었다는 것이 피델과 쿠바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세계 독재국가를 다 통틀어서 "우리 지도자에게 밉보여서 숙청했다."고 대놓고 밝히면서 숙청하는 꼴이 있는지를 보면... 북한만 해도 장성택 등을 숙청할 때 오만가지 죄를 다 갖다붙여 죽였다.
  • [10] 그를 그리도 미워하던 미국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그를 죽이려 한 점 때문에 그가 그리도 불안해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소련의 막대한 지원 덕에 일단 내부 경제는 안정되었던 6~70년대(이 시절의 북한도 사정은 비슷했다. 탈북자들조차 그 시절 비판에는 머뭇거릴 때가 많다.)가 지나서 모든 지원이 끊기고 미국의 경제봉쇄로 불만세력이 늘어가며 독살까지 당할 뻔했으니 불안감에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
  • [11] 그것도 플로리다에서 몇십킬로 떨어지지 않은 미국 앞마당!
  • [12] 일본판에는 타이틀 화면에 체의 흑백그림과 함께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에 바친다(キューバ革命の英雄、チェーゲバラに捧げる)"라고 헌사가 나온다. 영문판에는 "혁명의 영웅을 찬양하라(hail the hero of the revolution)"로 바뀌고, 체나 카스트로를 연상케 하는 내용은 모두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