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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last modified: 2015-10-16 04:12:52 Contributors


지도 이미지 중 파란색 영역.
바다 말고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원주민과 독일 기사단의 정복
2.2. 프로이센 공국
2.3. 프로이센 왕국
2.4. 독일 제국
2.5. 바이마르 공화국
3. 프로이센 지역과 현재의 독일
4. 프로이센의 수반 일람
4.1. 프로이센 공국 시대(1525~1618) 공작
4.2.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선제후) 시대(1618~1701) 공작
4.3. 프로이센 왕국 시대(1701~1818) 국왕
4.4.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시대(1918~1945) 주총리
5. 행정구역 일람
5.1. 빈 회의-북독일연방 시대(1815~1871)
5.2. 독일 제국 시대(1871~1918)
5.3. 바이마르 공화국-나치(2차대전 발발 전)(1918~1939)
5.4. 나치(2차대전 발발 후)-종전 처리(1939~1947)
6. 현재 독일 행정구역과 프로이센 행정구역과의 관계

1. 개요

Preußen. 혹은 Preussen. 한자 음역으론 普魯斯(보로사). '보불 전쟁' 등의 용어에 나오는 '보(普)'가 '보로사'의 약자다. 국명의 유래는 러시아에 인접해있는 발트지역의 주민을 지칭하는 고대 프로이센어[1] '프루사(Prūsa)'에서 나왔다. 여기서 '루사(러시아)'가 중세 독일어로 러시아를 뜻하는 '로이센(Reußen)'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프러시아(Prussia)라고 쓰지만 러시아와는 혼동해서는 안된다.[2] 러시아와는 다르다! 러시아와는! 참고로, 프러시아로 검색해도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유럽 동북부와 중부(중앙유럽)에 있었던 지방 및 그 지방에 있었던 나라. 독일 제2제국 통합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흔히 (북부)독일의 전신이라고 말한다.

이 지방에 살았던 족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게르만 계통은 아니고 현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에 더 가까운 민족이었다고 한다. 프로이센 원주민은 보통 '고 프로이센 인', 그들의 언어는 '고 프로이센 어'라고 부른다. 본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프로이센 족은 튼 기사단에게 정복되어 정체성을 잃고 사라졌으며, 그들이 살았던 흔적으로 땅의 이름만이 남게 된 것이다. 본래 프로이센 족이 살던 땅은 프로이센 왕국의 동쪽 끄트머리인 '동 프로이센' 지역 뿐이다.

본래 프로이센 족의 땅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이센은 전통적인 '독일인이 사는 본토'가 아닌 '동부의 독일인 개척지'였다. 군사 조직이었던 튼 기사단이 주도하여 개척하였다가 튜튼 기사단이 세속화 되면서 성립되었으므로, 이러한 연유 때문에 왕국 초창기부터 군사적인 색체가 굉장히 짙었다. 괜히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사례'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왕국 설립 과정의 특이성은 사실 '독일'이라는 문화권 내에서 프로이센을 특이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심지어 '프로이센 왕'마저도 본래는 '독일 왕'과는 완전히 별개의 왕위로서 프로이센은 '독일 바깥'으로 여겨졌다.

프로이센을 지배했던 왕가에 대한 항목은 호엔촐레른 왕조로 따로 기재되어 있다.

2. 역사

2.1. 원주민과 독일 기사단의 정복


프로이센 원주민인 프로이센(프루시)오족은 언어적으로 특수한 발트어족의 하나이며, 11세기에 폴란드의 지배를 받게 되자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폴란드의 영주 마조비아 공은 1226년 튜튼기사단을 불러 십자군 전쟁끝에 이 지역을 정복하게 하고 이후 쿨름 등의 도시를 건설, 이곳에 이주시켜 독일화 시켜버렸다. 하지만 점차 기사단이 폴란드와 갈등을 벌이면서 쇠퇴하게 된다. 1410년의 탄넨베르크 전투가 결정타였다.

당시 북방 십자군에 가담한 나라들은 독일과 현 스웨덴, 덴마크였는데 사실 북유럽 국가들이 널리 쓰는 십자가 깃발도 이 당시에 저 깃발과 함께 십자군이란 의미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독일에서도 북유럽식 십가가 국기를 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참고로 후자는 본래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가담했던 요제프 비르머(Josef Wirmer)가 암살에 성공했을 경우 하켄크로이츠까지 없애버리고 대신 쓰려고 만든 깃발이기도 했다.

2.2. 프로이센 공국


1525년 기사단장 알브레히트 호엔촐레른이 신교로 개종하고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절연함으로써 이 영토는 세속화(世俗化)하여 프로이센 공국이 되었다. 이는 마르틴 루터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이 때문에 프로이센은 최초의 세속국가가 된다.

튜튼 기사단장은 1466년 포메렐리아와 단치히를 뺏긴 이래로 폴란드의 신하로 전락하였으므로 새로이 탄생한 프로이센 공국도 폴란드의 봉신국으로서 인정받았는데, 이때 프로이센 공국의 상속은 알브레히트의 후손만이 계승할 수 있도록 조약되었었다.


1618년에 프로이센계 호엔촐레른의 대가 끊기게 되면서 본래는 이 영토를 폴란드가 회수했어야 했다. 그러나, 스웨덴을 놓고 구교도 폴란드 왕 지그문트 3세와 신교도 쇠데르만란트공 칼 (이후 칼 9세) 사이의 계승 전쟁인 북방전쟁이 터지고, 이 와중에 러시아차르 자리를 놓고 발발한 내전에도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등 깊게 간섭하게 되면서 힘에 부치게 되자 브란덴부르크계 호엔촐레른 선제후(選諸侯)가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는 대신 프로이센 공작으로서 폴란드의 봉신으로 남는다는 조건으로 허용해주었다.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가의 통치 하에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이 되었다.

2.3. 프로이센 왕국


메롱
1701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즉위하면서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브란덴부르크가 아닌 프로이센 공국이 격상된 것은 브란덴부르크가 신성 로마 제국의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보헤미아 왕과 독일 왕을 겸임하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위에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은 본래 프로이센 족의 땅으로 '전통적인 독일의 영역'이 아닌 개척지였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 공은 '독일 바깥의 왕위'를 획득하여 왕을 칭하게 된 셈이다.

프로이센 왕국은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 클레베-마르크 등 여러 곳으로 떨어져 있는 영토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은 개별적인 법률과 신분제 의회를 갖고 있었으나, 그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시대에는 절대주의 국가체제가 확립되었다.


거대한 상비군과 세수 중심의 관료기관을 바탕으로 하여 막강한 중앙집권을 이룬 프로이센은 이 때부터 북부 유럽의 "깡패"로 돌변하여 프리드리히 2세 때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슐레지엔을 먹고, 러시아 등과 함께 폴란드를 나눠먹으면서 프로이센과 브란덴부르크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는데 이때 튜튼 기사단이 상실했던 포메렐리아 등지를 되찾아 그 땅을 서(西)프로이센으로 불렀다. 이후 두세번 더(…) 폴확찢폴란드를 분할해 먹으면서 바르샤바를 차지하는 등 북부 독일의 강자로 등극하였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국력은 아직 강대국이라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의 성과에 안주하면서 자랑하던 군사정책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노후화 하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캐발리고 탈탈 털리면서 틸지트 조약(1807)으로 사실상 속국으로 몰락하게 되기도 하였으나, 와신상담을 하며 맹렬한 군사개혁을 거쳐서 나폴레옹 역관광의 주역이 되면서 빈 회의에서 베스트팔렌·라인란트 등의 새 영토를 얻었다. 영국: 네? 님아 뭐라구요? 러시아: 지금 뭔 *소리야

산업 혁명에 따라 북독일 관세 동맹이 체결되고 슐레지엔의 탄전이 개발되고 라인란트의 금속 공업이 발전하는 등 산업 혁명이 급속도로 진전되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뒤쳐진 점이 많았다.

1848년 3월 자유주의/민족주의 혁명이 일어나 의회가 설치되는 등의 진전이 있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귀족이 아닌 민족, 다시 말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던 자유주의는 프로이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지배 계층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비교적 자유주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독일황제(입헌군주제) 추대를 거부하였다(1849).

재상으로 오른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의회를 정치력으로 무력화시키고서는 아예 수족으로 부려가면서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1866), 과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에서 승리하여 끝내 일 통일을 성립시키고 1871년 연방 형식의 독일 제국이 성립되었다.

2.4.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은 통일 과정 중에 있었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하노버 왕국 등을 병합하는 등 영토를 대대적으로 늘렸으므로 통일 이후에도 제국 전체의 2/3을 차지하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영토는 프로이센보다 훨씬 작으니, 독일 제국은 프로이센과 그 외 떨거지들(…)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으며 프로이센 왕국의 주도권은 굳건하였다. 프로이센 놈들이 죄다 해처먹는(…) 상황에 나머지 지방들, 특히 제2의 국력을 가진 그러나 프로이센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바이에른은 불만이 컷다.

2.5. 바이마르 공화국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제국이 패망한 뒤에도, 이와 같은 독일·프로이센의 이중 구조는 바이마르 공화국에도 존속하였다. 이는 사실 국가운영적으로 상당히 모순이 컷는데,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 전국의 2/3를 차지하는 거대한 '프로이센 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제국을 지배하는 '프로이센 왕국'이라면 이 거대한 영토에 합리성이 았지만, 민주주의와 연방제 지방자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지나치게 거대한 프로이센 주를 쪼개놓지 않고 방치한 것은 결과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국 운영에 악영향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프로이센 주의회와 주지사는 독일 사민당(SPD)이 장악하고 있어 프로이센은 독일 사민당의 요새나 다름없었다.그리고 바이에른은 프로이센 빨갱이 놈들이라고 싫어했다. 다만 사민당의 지지율도 조금씩 악화되고는 있었다.

이 상황을 싫어하던 우익 정치인 린츠 파펜은 자신을 임의로 프로이센 주의 총독으로 임명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이를 '로이센 쿠데타'라고 부르며 독일 사민당은 치명타를 입었다. 독일의 2/3가 단번에 우익 세력으로 넘어가버렸기 때문. 그 뒤에는 나치당이 연립 내각을 구성하면서 헤르만 괴링이 프로이센 총독이 된다. 이 때 독일은 지방자치단체가 경찰을 운용하는 자치경찰제도를 쓰고 있었는데, 광대한 프로이센 주의 경찰력이 한 방에 나치당의 손에 떨어지고 만다.


나치 시대에 이르러 연방제는 폐지되었으나 프로이센 정부는 존속하였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유명무실해져서 의미는 없었다.그리고 바이에른은 프로이센 나치 놈들이라고 싫어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로이센은 해체되고 오데르강·나이세강 동쪽은 폴란드령이 되었고, 동프로이센은 절반으로 갈려 북쪽은 소련령이 되고 남쪽은 폴란드령이 되었다.

3. 프로이센 지역과 현재의 독일

앞에서 말했듯 독일은 1차 대전 직후 포젠과 베스트프로이센(Westpreußen/서프로이센)을, 2차 대전 직후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동프로이센), 슐레지엔(아주아주 조금 남아서 작센 주에 흡수되긴 했다), 브란덴부르크 동부와 폼메른 절반을 잃어버렸다. 본래 '프로이센 족의 땅'이었던 동 프로이센도, '프로이센 왕국'의 본래 영역이었던 서 프로이센도 거의 다 날아갔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프로이센 땅'은 이젠 독일 영토가 아니다라고 봐도 좋다.

비록 현대에 이르러서 옛 프로이센의 대부분이 폴란드나 러시아에 예속되었다곤 해도, 프로이센이 독일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할 나위 없이 크다. 30년전쟁 이후 수백개의 영방국으로 나뉘어지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태반이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국만 4개(프로이센,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작센)가 존재했던 독일이 지금의 통일된 독일로 있게 만든 나라인데다가 독일에 대한 대외 이미지 등 프로이센이 현대 독일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심지어는 앞서 말한 대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 색상이 흑적황 삼색이 아닌 흑백으로 되어있는 것도 프로이센의 영향 때문이 짙다고.

독일 극우파들의 염원이 이 과거 프로이센의 영토 수복인데[3], 현재 독일의 방침 자체가 상실한 영토의 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한다라서 가능성은 제로. 그렇다고 해도 프로이센 지역 실향민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고, 이들 역시 고향을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나치 잔재를 과도하다 싶을 만큼 지워버리려는 독일 정부에 의해 도매금으로 이들의 보상 요구조차 처절할 만큼 묵살당하고 있지만...

근데 폴란드 입장에서는 이게 당연한 거다. 과거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략하여 폴란드 전체 인구의 무려 16%를 학살했다. 이 막심한 손해를 폴란드 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여기에 공산 폴란드가 들어선 후 독일로 강제이주된 이들 중에는 바로 이 나치 독일이 유대인과 폴란드 인들을 학살하고 해당 도시에 대거 독일인들을 이민시킨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폴란드 공업도시 우치(Lodz)의 경우, 전전의 시민 중 독일계는 9%에 불과했지만 독일이 점령한 이후 25만에 이르는 유대인과 15만에 이르는 폴란드 인들이 쫓겨났고, 이들 대부분은 학살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15만에 이르는 독일인들이 차지했다. 단순히 우치뿐만 아니라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 서북부 영토에서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의 자리를 차지한 독일인들 중 일부는 독일군을 따라 독일 영토로 도망쳤고, 나머지 독일인들은 전후 폴란드 공산정권에서 독일로 강제이주시켰다. 이 경우는 단순한 압제자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인구뿐만이 아니다. 폴란드는 독일의 침공으로 전체 재산의 40%를 잃어버렸다. 바르샤바, 그단스크, 디니아, 즈난 등 유수의 폴란드 도시들이 폐허가 되거나 반파되었다. 특히 바르샤바의 경우는 독일에 의해 계획적으로 매우 철저히 파괴되었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폴란드 동부 지역을 점령했고 그 보상으로 독일 동부 지역을 내주었다. 당시 소련 지도자가 스탈린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오히려 당시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는 전전의 국경을 원했다. 독일 동부를 폴란드에 내준 것은 스탈린이다. 따질 거면 이미 지옥에 가 있는 스탈린이나 애초에 이런 상황을 초래한 히틀러에게나 따져라.

폴란드는 전후 독일에게 피해보상을 청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45년 당시 폴란드 인들이 이 국경을 원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위에도 써놨지만 스탈린이 친히 그렇게 명령했다.강철의 대원쑤가 까라면 까야지 별꺼 있어? 그리고 폴란드는 독일 동부를 얻은 댓가로 자국의 동부 영토를 소련에게 빼앗겼다. 즉 폴란드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보상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4], 남은 것은 독일이 남기고 간 폐허밖에 없다. 그리고 폴란드 인들은 이 폐허 위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재건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이 폴란드에게 영토를 내놓으라 한다면(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나치 독일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가 폴란드와 소련인데, 그 역사적 과정을 그냥 무시하고 내놓으란 법이 있는가?

그리고 가끔씩 해당 지역을 폴란드가 뜯어가고 이 지역에서 폴란드인들이 독일인들을 독일 본토로 강제이주시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또한 개소리로, 만일 이렇게 되면 독일은 1939년~1945년 당시 폴란드에 벌어졌던 침략행위에 대해서도 보상해야 한다. 앞에서도 썼지만 폴란드는 전후 독일에게 피해보상을 청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걸 갖고 폴란드에게서 돈 몇 푼 뜯어보겠다고 하면 그 즉시 폴란드는 독일에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입은 그 엄청난 피해를 계산하여 독일에게 청구할 것이다. 참고로 2004년 독일인 강제이주민에 대한 보상이나 재산반환에 대한 논란이 폴란드와 독일에서 불거졌을 당시 폴란드 의회에서 이걸 조사했는데 대략 계산한 것만 6,340억 달러가 나왔다.[5]

더구나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 현대 폴란드 영토의 3분의 2 정도가 옛 프로이센(독일제국 기준) 땅이다. 폴란드가 이 영토를 가지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스탈린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 침공에 가담하여 집어삼켰던 영토를 내놓지 않으려고 폴란드에게 일련의 보상으로서 대규모 탄전 지대이자 공업 지대였던 슐레지엔, 발트해 요충지인 폼메른, 근대 독일의 발상지인 프로이센 및 브란덴부르크 동부 등의 독일 영토를 대신 할양한 것인데, 이 때문에 본래 폴란드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던 수도 바르샤바가 상당히 동쪽에 쏠리게 되는 등 국토가 서쪽으로 많이 밀려나게 되었다.

현대에도 이 지역은 폴란드의 알토란과 같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의 상실 영토 수복 발언이나 운동은 폴란드를 집어삼키겠다가 되어 버린다. 이건 폴란드 보고 존재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을 구서독 지역과 균형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독일경제에 크게 무리를 줬고, 현재까지 그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것도 모자라 구동독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낙후된 구 프로이센 영토까지 덜컥 떠맡게 된다면...? 1989년 동독의 1인당 GDP는 9,679$였는데, 폴란드는 당시 1,768$에 불과했다. 거의 슬라브인으로 구성된 인구만 1,000만 명이 넘는 데다가 서독의 10분의 1 수준의 안습한 경제력[6]을 자랑했던 이 지역을 떠맡는다면 훨씬 문제가 심각해졌을 것이다.

거기다가 전쟁중 있었던 대규모 학살이나 전후의 강제 이주로 인해 현재(21세기)는 슐레지엔이나 프로이센 지방에 독일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체코에 있는 주데텐란트 지방도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 시절처럼 현지의 독일인들의 민족 심리를 자극하여 민족 자결주의를 운운하며 영토를 병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다만 북부 오스트프로이센, 즉 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에서는 2001~2004년경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발적인 독일로의 병합 운동 및 쾨니히스베르크 명칭 복귀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
소련 붕괴 이전 소련 영토였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칼리닌그라드 주가 EU 안의 섬이 되어버렸기 때문. 같은 러시아 영토인데도 불구하고 칼리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 등 러시아 본토에 육로로 이동하려면 비자가 필요한 해괴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7] 안 그래도 주변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있던 차에 차별 아닌 차별까지 받게 되자 소외감이 극에 이른 주민들이 이 참에 아예 칼리닌그라드 주를 독일로 환수하거나, 적어도 자치권을 받기 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역사나 민족성도 죄다 씹어버리는 경제문제 돈은 피보다 진하다
하지만 러시아로서도 이 지역이 전략상 요충지고[8] 핀란드일본과의 영토분쟁에 불리해질 선례를 남길 수도 없는 처지인데다[9] 현재 러시아의 실권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푸짜르... 거기에다 독일에서도 종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한번 칼리닌그라드 주는 엄연한 러시아땅이라고 천명하며 독일 환수운동에 스스로 헤드샷을 날렸다. 러시아가 나서서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독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다만 현재도 칼리닌그라드에 독일인들이 문화, 사회, 경제면으로 칼리닌그라드 내 지분을 착실히 늘려가고 있고, 프로이센 시대 문화유산 유지보수에 신경쓰는 것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처럼 당장 무리수는 두지 않고 차근차근 순리적으로 병합할 걸 노리는건 아닌가 하는 소리도 간간히는 나온다. #

사실 이제 유럽같은 안정된 사회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자폭행위이거니와, 이미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치른 독일이 다시 영토수복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주변국들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기 때문에 독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10]

참고로 독일 국가독일인의 노래 1절에는 '마스(뮤즈강)에서 메멜(네만강)까지, 에치(아디제 강)에서 벨트해[11]까지'라며 독일 민족의 영토를 규정하는 구절이 있는데 지금 이 경계들은 벨트해를 빼고는 주변국 땅이다. 특히 네만강은 동프로이센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메멜까지'는 현재 폴란드의 전체 영토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본래 비더마이어 시대(1815-1848)에 지어진 시로서, 독일 제국 때부터 부른 노래이긴 하지만 현재는 그 1절이 2절과 함께 금지되어 있고 3절만 부른다. (같은 이유로 네오 나치들은 1절만 부른다) 그런데 2006 독일 월드컵 때 너무 즐겁던 나머지(…) 나치도 아닌 일부 국민들이 생각 없이 불러 재꼈다가 욕을 좀 먹은 적이 있었다.[12]

1990년대 한때 브란덴부르크 주를 베를린과 합쳐 프로이센 주로 개명하려는 운동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사실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으로 엮이기는 했지만 브란덴부르크는 일단 프로이센과는 별개의 지방이었다. 그러니 프로이센이 날아갔다고 브란덴부르크를 프로이센을 바꾼다는건 주민들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가는 주장일 것이다.

뱀발로 해방후 한국에서 대다수의 신사와 일본식 절들이 죄다 박살났듯 폴란드에서도 루터교회들이 독일 문화와 동일시되어 대거 박살나거나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공산정권과 가톨릭 사이에서 등터진 새우신세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현재 폴란드 내 신교도 수는 약 6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4. 프로이센의 수반 일람

4.1. 프로이센 공국 시대(1525~1618) 공작

순번 이름 재위기간
01 알브레히트 Albrecht[13] 1525~1568
02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Albrecht Friedrich 1568~1618

4.2.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선제후) 시대(1618~1701) 공작

순번 이름 재위기간
01 요한 지기스문트 Johann Sigismund[14] 1618~1619
02 게오르크 빌헬름 Georg Wilhelm 1619~1640
03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대大선제후 1640~1688

4.3. 프로이센 왕국 시대(1701~1818) 국왕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통일(1871) 이후 독일 제국의 구성국이 되고 독일 황제는 프로이센 국왕을 겸하게 된다.

순번 이름 재위기간
01 프리드리히 1세 Friedrich I 1688~1701(프로이센 공)
1701~1713(프로이센 왕)
02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Friedrich Wilhelm I 1713~1740
03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II[15]
= 프리드리히 대왕 Friedrich der Große
1740~1786
04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iedrich Wilhelm II 1786~1797
05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iedrich Wilhelm III 1797~1840
06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Friedrich Wilhelm IV 1840~1861
07 빌헬름 1세 Wilhelm I 1861~1888[16]
08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III 1888
09 빌헬름 2세 Wilhelm II 1888~1918

4.4.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시대[17](1918~1945) 주총리

Ministerpräsident는 주지사로도 번역되지만 주 총리가 좀 더 정확하다. 사실 왕국 시대에도 동일한 Ministerpräsident가 있었는데 이건 국가원수급이 아닌 정부수반급이었다.[18] 하지만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멸망 이후에는 왕이 사라지므로 아래에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대의 주총리를 대신 정리한다.

순번 이름 재임기간
01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Friedrich Ebert 1918
02 파울 히르슈 Paul Hirsch 1918~1920
03 오토 브라운 Otto Braun 1920~1921
04 아담 슈테게어발트 Adam Stegerwald 1921
05 오토 브라운 Otto Braun 1921~1925
06 빌헬름 마르크스 Wilhelm Marx 1925
07 오토 브라운 Otto Braun 1925~1932
- 공석[19] 1932~1933
08 프란츠 폰 파펜 Franz von Papen[20] 1933
09 헤르만 괴링 Hermann Göring 1933~1945

참고로 1933년 나치 독일은 Ministerpräsident와 별도로 진짜 '주지사'와 유사한 Reichsstatthalter[21]란 직책을 만들었는데[22] 1933~35년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프로이센의 이 Reichsstatthalter를 맡았지만 1935년부터 1945년까지는 헤르만 괴링이 대행했다.

5.1. 빈 회의-북독일연방 시대(1815~1871)

1815년 빈 회의 이후 회복지와 점령지를 합치며 체계적인 행정구획으로 재정비되었다.


순번 주(Provinz) 주도 비고
01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1824년 스트-스트프로이센 주 합병.[23]
現 칼리닌그라드(러)
02 브란덴부르크 포츠담 1827~1843 주도는 베를린[24]
03 메른 슈테틴 現 슈체친(폴)[25]
04 레지엔 브레슬라우 現 브로츠와프(폴)[26]
05 1848년 설치. 포젠 대공국 형태변환.
現 포즈난(폴)[27]
06 작센[28] 그데부르크 1816년 설치[29]
07 하노버 하노버 1868년 설치.[30]
08 센-나사우 1868년 설치[31]
09 스트팔렌 스터 1815년 설치[32]
10 인란트 블렌츠 1822년 설치(행정구역 조정)[33]
1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868년 설치[34]
12 엔촐레른 그마링겐 1850년 설치[35]

(러) = 러시아령, (폴) = 폴란드령

5.2. 독일 제국 시대(1871~1918)


베를린이 포함되지 않은 지도. 지도의 빨간색은 브란덴부르크 주.

이른바 "프로이센 12주(Provinz)"이다. 베를린과 남부에 따로 떨어진 호엔촐레른은 제외되었다. 2~7번은 동부주, 8~13은 서부주이다.

순번 주(Provinz) 주도 비고
01 베를린 베를린 1881년 독립
02 스트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1878년 프로이센 주에서 분리
03 스트프로이센 단치히 1878년 프로이센 주에서 분리
現 그단스크(폴)
04 브란덴부르크 포츠담
05 메른 슈테틴
06 레지엔 브레슬라우
07
08 작센 그데부르크
09 하노버 하노버
10 센-나사우
11 스트팔렌 스터
12 인란트 블렌츠
13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레스비히 1879년 이전 주도는 킬
14 엔촐레른 그마링겐

(폴) = 폴란드령

5.3. 바이마르 공화국-나치(2차대전 발발 전)(1918~1939)


순번 주(Provinz) 주도 비고
01 베를린 베를린
02 오스트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03 브란덴부르크 베를린[36]
04 폼메른 슈테틴
05 니더슐레지엔 브레슬라우 1938년 오버슐레지엔과 통합.
06 오버슐레지엔 오펠른 1938년 니더슐레지엔과 통합.
現 오폴레(폴)
07 포젠-베스트프로이센[37] 슈나이더뮐 1922~1938 존속. 現 피와(폴)
08 작센 마그데부르크
09 하노버 하노버
10 헤센-나사우 카셀
11 베스트팔렌 뮌스터
12 라인란트 코블렌츠
13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4 호엔촐레른 지그마링겐 이후 뷔르템베르크에 흡수되어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구성원.


(폴) = 폴란드령

5.4. 나치(2차대전 발발 후)-종전 처리(1939~1947)

(소), (미), (영), (프)는 각각 점령되었던 국가를 말한다. (구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순번 주 이름 주도 비고 및 종전 후 처분
01 베를린 베를린 4개 연합국이 분할점령.[38]
02 오스트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소). 이후 분할 됨.[39]
03 단치히-베스트프로이센 단치히 (소). 폴란드에 할양.
04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베를린[40] (소). 동부는 폴란드에 할양.[41]
05 폼메른 슈테틴 (소). 중부 및 동부는 폴란드에 할양[42]
06 니더슐레지엔 브레슬라우 1941년 슐레지엔에서 재분리.
(소). 폴란드에 할양.[43]
07 오버슐레지엔 카토비츠 1941년 슐레지엔에서 재분리.
(소). 폴란드에 할양. 現 카토비체(폴)
08 바르텔란트[44] 포젠 (소). 폴란드에 할양.
09 마그데부르크-안할트 데사우 (소). 작센 북부+안할트.[45]
10 할레-메르제부르크 할레 (소). 작센 남부.[46]
11 쥐드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 하노버 하노버 남부+브라운슈바이크.
(영). 서독 니더작센주로 통합.
12 오스트하노버 뤼네부르크 하노버 북동부.
(영). 서독 니더작센주로 통합.
13 베저-엠스 올덴부르크 하노버 북서부+브레멘+올덴부르크.
(영) + (미).[47]
14 쿠르헤센 카셀 헤센-나사우 북부.
(미). 서독 헤센주로 통합.
15 헤센-나사우 프랑크푸르트 헤센-나사우 남부.
(미). 서독 헤센주로 통합.
16 베스트팔렌-노르트 뮌스터 베스트팔렌 북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17 베스트팔렌-쥐트 보훔 베스트팔렌 남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18 에센 에센 라인란트 극북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19 뒤셀도르프 뒤셀도르프 라인란트 북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20 쾰른-아헨 쾰른 라인란트 북중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21 모젤란트 코블렌츠 라인란트 중남부+룩셈부르크. (프).[48]
22 베스트마르크 자르브뤼켄 라인란트 극남부+바이에른령 팔츠
+프랑스령 로트링겐 / (프).[49]
23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영). 서독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로 잔류.
(24) (호엔촐레른) (지그마링겐) [50]

6. 현재 독일 행정구역과 프로이센 행정구역과의 관계

프로이센 발원지를 포함한 영토 상당부분을 현재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에 내어준 상태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연방공화국에서도 프로이센 통치지역과 연관이 없는 곳은 바이에른, 브레멘의 두개 주 뿐이다. 그나마도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프로이센의 입김이 강하고 그저 주권만 독자적으로 유지한 자유였던 것을 보면, 또한 러시아와 폴란드에 넘어간 땅의 실향민들이(물론 전부 프로이센계) 주로 정착한 곳이 브레멘, 함부르크, 니더작센[51],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52],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인 것을 보면 현재의 독일에서도 프로이센과 연관 없는 곳은 바이에른 뿐이라고 봐도 될 정도. 괜히 독일연방공화국과 바이에른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양차대전을 거치며 상실한 지역은 오로지 프로이센의 지역만으로, 바이에른작센을 비롯한 기타 지역은 현재의 독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잠시 눈물 좀 닦고...

2차대전 이후 연합국이 무리할 만큼 프로이센 본령을 할양시켜버리고 흔적을 지워버리려 한 것도 독일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려 한 것과 관련이 있다.

○ : 순수 구 프로이센 지역 (5개주)
□ : 구 프로이센 지역에서 다른 독일계 지역 흡수 (4개주)
△ : 다른 독일계 지역에서 구 프로이센 지역 흡수 (5개주)
× : 프로이센 통치 지역 불포함 (2개주)

순번 주 이름 주도 상관 관계 과거 지역
01 바덴-뷔르템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바덴+호엔촐레른주.[53]
02 바이에른 뮌헨 ×
03 베를린 베를린
04 브란덴부르크 포츠담
05 브레멘 브레멘 ×
06 함부르크 함부르크 구 함부르크+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부 일부[54]
07 헤센 비스바덴 헤센-나사우 주+헤센 주.
08 니더작센 하노버 하노버+올덴부르크+브라운슈바이크.[55]
09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 슈베린 메클렌부르크+폼메른주 서부.
1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뒤셀도르프 라인란트주 북부+베스트팔렌주.
11 라인란트-팔츠 마인츠 라인란트주 남부+바이에른령 팔츠.
12 자를란트 자르브뤼켄 라인란트주 남서부.
13 작센 드레스덴 작센+슐레지엔주 극서부.
14 작센-안할트 마그데부르크 작센주+안할트.
15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6 튀링엔 에어푸르트 튀링엔 군소 공국 지역군+작센주 역외지역.[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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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는 사멸한 서발트어파 계통의 언어이다.
  • [2] 러시아가 주로 프로이센을 통하여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을 뿐.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 [3] 웃긴 것은 바로 그 프로이센의 출발점이었던 동프로이센 지방의 원주민들은 오늘날의 라트비아인이나 리투아니아인에 가까운 발트계 민족이었다.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한테 이 지역 넘겨줄까? 독일계가 이 지역에 정착한 것은 폴란드 영주들의 요청을 받은 기사나 상인, 농민들이 해당 지역에 이주한 것이 시작이다.
  • [4] 물론 독일 동부 지역은 폴란드 동부 지역보다 경제적 가치가 더 높긴 했지만.
  • [5] 물론 폴란드도 현재 독일에 대한 청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매우 잘 알고 있기에 이 액수를 보상하라고 하진 않는다. 그냥 일부 독일 정치계나 사회에서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반격용 카드로 슬쩍슬쩍 꺼내들고 말지.
  • [6] 현재는 독일의 4분의 1 수준.
  • [7] 칼리닌그라드주의 특수상황을 감안해달라는 러시아와 난색을 보이는 EU의 협상 끝에 현재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로 육로이동할 때는 간이통행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비자나 간이통행증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 [8] 발트해 연안의 요충지로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중부 유럽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 해군의 발트 함대의 모항인 이유가 이때문이다. 또한 부동항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 [9] 핀란드와는 카렐리아를, 일본과는 북방 4개 도서(하보마이, 쿠나시리, 에토로후, 시코탄)를 놓고 영토분쟁 중이다. 현재 두 지역 다 러시아 영토임.
  • [10] 영국, 프랑스나 폴란드 등 주변국의 독일 영토수복에 대한 경계심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때에도 영국은 아예 통일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고, 프랑스와 폴란드는 더 이상의 영토수복이 없다는 걸 명시하라고 수차례나 압박하고 맹세를 강요했으니...
  • [11] 발트(Balt)해가 아닌 벨트(Belt), 즉 덴마크에 있는 소 벨트 해협(Little Belt)이다
  • [12] 공식적으로 안 부른다면서 가사는 어떻게들 알고 있었던 걸까....
  • [13] 1510년 튜튼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됨.
  • [14] 요아힘 프리드리히 브란덴부르크 공의 아들이자 알브리히트 프리드리히 공의 맏 사위였다. 브란덴부르크 공으로는 1608년에 이미 즉위.
  • [15] 1772년 폴란드 분할 직후 프로이센 왕 King 'in' Preußen과 형식적이던 브란덴부르크 공과 기타 직위들을 모두 합쳐서 대 프로이센 왕국을 확립하고 칭호를 프로이센 대왕King 'of' Preußen으로 바꾼다.
  • [16] 독일 황제로서는 1871~1888.
  • [17] 독일 제국 해체 후에도 프로이센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프로이센 자유주로 남게 된다(정부수반의 명칭은 주총리 Ministerpräsidenten). 제국 내 여타 왕국이나 공국들도 군주제만 폐지되고 각 지역의 자유주로 변환. 단 튀링겐 지역의 군소국가들은 튀링겐 자유주로 묶인다.
  • [18]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프로이센 왕국의 Ministerpräsident였다.
  • [19] 제국 총리 프란츠 폰 파펜이 중앙정부 직속으로 프로이센 주 총리를 겸임했다. 후임 총리 슐라이허도 프로이센 주지사겸 프로이센 주 경찰청장 까지 겸임함.
  • [20] 히틀러 내각 때 부총리 겸 프로이센 주 총리를 지내다가 곧 해임된다.
  • [21] 영어로 "Reich Lieutenant" 또는 "Reich Governor" 등으로 번역된다.
  • [22] 본래 이 직위명 자체는 독일 제국 시절에 있었다가 바이마르 공화국 때 없어졌다. 그러다 나치 시기에 부활시킨 것.
  • [23] 1224년 건국된 튜튼 기사단국이 전신이다. 프로이센의 발원지이며 베스트프로이센 지역의 리엔부르크를 수도로 삼고 한때 에스토니아까지 세력을 뻗쳤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베스트프로이센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오스트프로이센 만으로 영토가 축소된다(1466년 2차 토른 평화조약). 이 와중에 수도를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기고 숨죽여 지내다 1525년 기사단장 알브레히트의 개신교 전향 및 공국 선언과 함께 오스트프로이센 지역은 프로이센 공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1466년 2차 토른 평화조약으로 상실했던 베스트프로이센은 1772년 1차 폴란드 분할로 수복했다.
  • [24] 프로이센 본가의 대가 끊기자 프로이센과 혼인으로 프로이센을 사실상 흡수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1157년 건국)이 전신이다. 주도권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 쥐고 있었고 사실 통합명칭도 브란덴부르크가 되는 것이 순리였으나 신성 로마 제국에 소속되어있었던 브란덴부르크와 영외 지역이었던 프로이센의 특성상, 신성 로마 제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폴란드의 봉신국이었던 프로이센의 폴란드에 대한 의무까지 감수하며(!) 오히려 프로이센을 대외 명칭으로 채택한다. 다만 브란덴부르크도 프로이센도 전부 엔촐레른 가문이었고 상기한 정치적 문제도 겹쳐 프로이센은 단순한 세력확장 발판이 아닌 국가 핵심지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 [25] 30년전쟁 후 1648년 스트팔렌 평화조약 및 1653년 슈테틴 조약에 의해 대가 끊긴 폼메른 공국을 서부는 스웨덴, 동부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이 각각 분리점령한다. 이후 스웨덴과의 전쟁을 거치며 1722년 스웨덴령 서부 폼메른을 일부 점령하고, 1815년 빈 회의에서 남아있던 부분까지 양도받게 된다. 하지만 정작 현재 독일에 남아있는 폼메른은 이 1815년에 얻은 서부 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 [26] 1742년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점령, 이후 1756–1763년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사수하며 프로이센 영토로 확정.
  • [27] 1793년 2차 폴란드 분할에서 프로이센이 획득했던 쥐드프로이센을 나폴레옹전쟁에서 상실했다 종전 후 1815년 빈 회의에서 회복. 다만 포젠 대공국이라는 괴뢰국 형태로 운영하다 1848년에 정식 주로 변경한다.
  • [28] 작센 왕국과는 별개인 프로이센의 작센
  • [29]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승리 및 빈 회의 협상으로 마그데부르크 공국,알트마르크 지역,마인츠 대주교령,작센 왕국령 점령지 흡수합병.
  • [30]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승리로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던 하노버 왕국 점령 및 흡수.
  • [31]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승리로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던 헤센-카셀 영주국, 나사우 공국, 프랑크푸르트 자유시를 점령 및 흡수합병.
  • [32]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로이센이 소유하던 서부지역 영토. 나폴레옹에게 빼앗겼다 빈 회의 이후 회복.
  • [33]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로이센이 소유하던 서부지역 영토. 나폴레옹에게 빼앗겼다 빈 회의 이후 회복. 이때 비텔스바흐가의 윌리히 주가 윌리히, 베르크로 분리되었다. 그 당시 (1815) 3개주로 통합 설치했던 윌리히-클레베-베르크(Jülich-Kleve-Berg) 주, 괴뢰국 니더라인 대공국을 합병하며 라인란트 주가 된다.
  • [34] 1864년 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으로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에서의 덴마크의 지배권을 빼앗은 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오스트리아까지 도태시키며 프로이센 영토로 확정.
  • [35]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백국, 호엔촐레른-헤힝겐 백국 흡수합병. 프로이센 왕실인 호엔촐레른 가문의 선산으로 이미 프로이센과는 밀접한 관계였다.
  • [36] 베를린 내 샤를로텐부르크
  • [37] 1938년 브란덴부르크, 폼메른, 슐레지엔으로 분리흡수
  • [38] 이후 미영프 3개국 점령지역을 합친 서독령 서베를린과 구소련 점령지역인 동독 수도 동베를린으로 분할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통합
  • [39] 북동부는 리투아니아에, 북부는 러시아에, 남부는 폴란드에 각각 할양
  • [40] 베를린 내 샤를로텐부르크을 말한다.
  • [41] 서부 및 중부는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브란덴부르크주로 부활.
  • [42] 서부는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메클렌부르크 지역과 합쳐지며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주로 부활.
  • [43] 극서부만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작센주에 흡수.
  • [44] 초기에 포젠이었다 개명
  • [45]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작센-안할트주로 부활.
  • [46]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작센-안할트주로 부활.
  • [47] 미국 점령지역인 브레멘은 재분리시키고 나머지 영국 점령지역은 서독 니더작센주로 통합.
  • [48] 룩셈부르크 재분리독립 후 서독 라인란트-팔츠주로 통합.
  • [49] 로트링겐은 알자스-로렌으로 프랑스에 재복속, 팔츠는 라인란트-팔츠주로 통합, 라인란트 극남부는 프랑스 보호지구 형태로 분리되었다 1956년 서독으로 복귀하며 자를란트주 구성.
  • [50] (프). 뷔르템베르크에 흡수되어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구성원으로 존재하다 종전 후 이름만 같은 프랑스 점령지역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에 소속. 이후 1952년 미국 점령지역 뷔르템베르크-바덴과 합쳐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소속되며 명의 상실.
  • [51] 뤼네부르크에 오스트프로이센 민속박물관이 있다. 민속박물관은 자연히 해당 지역 유민이 많이 이주해 있거나, 연관이 있는 곳에 세워진다.
  • [52] 뮌스터에 베스트프로이센, 뒤셀도르프 인접 라팅엔에 오버슐레지엔 민속박물관이 있다. 여담으로 폼메른과 니더슐레지엔의 민속박물관은 독일이 재통일되며 쪼가리라도 남아있는 지역-각각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 주의 그라이프스발트(구 폼메른), 작센 주의 괴를리츠(구 니더슐레지엔)-에 있다.
  • [53] 2차 대전 직후에도 호엔촐레른-뷔르템베르크 식으로 명의는 남아있었으나 이후 바덴과도 합쳐지며 사라짐.
  • [54] 함부르크 시가 대확장을 거치며 인근 프로이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을 대거 흡수했다.
  • [55] 그냥 하노버주가 이름만 바꾸며 중간중간에 있던 지역까지 흡수했다고 봐도 될 정도.
  • [56] 현재 주도인 에어푸르트는 구 작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