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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시나트라

last modified: 2015-03-29 10:19:19 Contributors

Contents

1. 생애
2. 정치관
3. 트리비아



Frank Sinatra.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1915년 12월 12일 ~ 1998년 5월 14일

40~50년대 스탠더드 팝의 중흥기를 이끈 가수이자 연기,예능까지 섭렵했던 최고의 엔터테이너

최초의 '아이돌'

1. 생애


1915년 미국 뉴저지주 호보켄에서 탄생한 그는 데마레스트 고교를 졸업한 뒤 가수를 꿈을 품고 해리 제임스 악단,토미 도시 악단 등을 거치며 나이트클럽과 라디오 등에서 활약하다 1942년 독립하였다. 이때 그는 존경받는 솔로아티스트로 모든 미국인들의 우상이였다. 이후 가수로써 활동하던 그는 연기로도 발을 넓혀 뮤지컬 영화를 시작으로 1953년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다. 그 후로도 오션스 일레븐,상류사회 등 여러작품에 출연하고 1961년 리플리스레코드 회사를 설립하며 배우와 가수로써 활약하다 1971년 은퇴한다.

혼인 빙자 간통죄를 저지르고(유부녀를 결혼하겠다는 거짓약속으로 유혹해서 성관계를 맺은 후 튀었다고한다)찍힌 머그샷(범죄기록사진) 1938년 11월26일에 체포 되었고 27일날 찍힌 사진. 키 5'8 피트, 몸무게 125 파운드[1]라는 정보도 있다.

1983년 공연예술 평생 공로상을, 1994년에 그래미 레전드상을 받는 등 실력자체는 인정받는 인물이였지만 가수나 배우가 아닌 시나트라 개인으로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당시 시나트라는 마피아들과 깊은 관계에 있었으며 그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2] 또한 여배우들과의 트러블 또한 적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반항하거나 말을 무시하는 여배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가하고(강간죄가 있다는 주장도 몇개 있다.) 용기있는 기자가 마피아와의 연관을 질문하면 주먹으로 두들겨패는 등(다른 스타가 그랬다면 매장됐겠지만 이 이야기는 그냥 묻혔다)[3] 인물의 됨됨이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정도도 아니고 아예 뒷골목 양아치만도 못한 썩은 인간이었다.

참고로 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시나트라가 마피아랑 아무런 관련도 없었으나 사람들이 매도한걸로 나온다(...)

대부 1편에서 생일 노래 한곡 부른 다음에 대부에게 매달려서 찔찔 짜면서 어떻게 해달라고 징징징대는 이탈리아인 가수가 프랭크 시나트라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영화 개봉후 대부의 원저자인 마리오 푸조는 시나트라를 식당에서 만났는데 "포주새끼"라고 대놓고 욕을 했다고 한다.) 기타사항으로 그의 딸 낸시 시나트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설립한 리플리스레코드에 데뷔하여 007의 주제가를 부르는 등 아버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유언(다만 사망 직전은 혼수상태였고 죽기 며칠전에)은 "다 끝났어..모든 건 허무하지..."

2. 정치관

시나트라의 정치관은 젊을 때와 나이들어서가 180도 다르다 (...) 젊었을 때 그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지지자로, 대통령 부부와 함께 식사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민주당 홍보 이벤트에 참석했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영화에 출연한 것도 이 시기. 해리 S. 트루먼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존 F. 케네디와는 각별했다. 당대 최고 스타들을 모아 케네디의 후원 파티를 주체할 정도. 단 케네디와는 정치관 때문이 아니라 케네디와 "데이트"할 여성들을 모아서 바치는 채홍사였기때문에 친했다는 점도있다 카더라 이 시기에는 무신론적인 발언도 몇 번 했고, 모든 면에서 전형적인 진보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시나트라는 그러나 그 후 로널드 레이건을 적극 지지하고, 가톨릭 가치들을 포용하는 등 1970년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로 탈바꿈했다. 그는 레이건에게 4백만 달러를 투자했고, 평생 열렬한 레이건 지지자로 남았다.

3. 트리비아

시나트라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중후한 목소리는 실은 담배로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실제로 아이돌 취급을 받았던 20대 때의 목소리와 익히 알려진 My Way 때의 목소리를 비교하면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차이가 확연하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는 미성에 가깝다. 중후한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담배는 절대 피지 말자.

시나트라의 아들인 프랭크 시나트라 주니어[4]는 어릴 때 몸값을 목적으로 유괴당한 일이 있다. 다행히 몸값을 지불 후 무사히 풀려났고, 유괴범들은 잡혀서 처벌을 받았다. 단지 시나트라가 유괴범들과 교섭할 당시 공중전화를 쓰도록 명령받았는데, 통화 도중 동전이 떨어지는 바람에 낭패를 본 일이 있다고. 그 후로 그는 평생동안 10센트짜리 50개 묶음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도 10센트 50개 묶음을 주며 혹시나 또 납치 사건이 일어날까 불안해 하며 살았다.

존 웨인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웨인이 라스베가스에서 촬영 중 머문 호텔 객실의 바로 아랫방에서 시나트라가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던 웨인이 몇 차례 전화로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어 직접 내려가서 시나트라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그 때 웨인만한 덩치의 보디가드가 "누구도 시나트라씨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위협하자, 웨인이 의자로 보디가드를 가격해서 쓰러뜨렸고, 그 후 호텔은 조용해졌다고.....

사인을 더럽게 안 해 주기로 유명했다. 항상 덩치 큰 보디가드를 옆에 두고 사인해 달라는 팬들을 떨어뜨곤 했다고.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프로토스 영웅 아르타니스(Artanis)는 시나트라(Sinatra)를 뒤집어서 지은 이름이다. 일종의 아나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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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73cm, 57kg
  • [2] 그에 대해 적은 평전인 his way에선 시나트라가 여럿 마피아 보스들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나와있다.
  • [3] 그는 생전에 결혼을 네 번씩이나 했는데 그의 이런 행동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 [4] 가수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