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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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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영화를 만드는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설레지 않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1932~1984. 프랑스의 영화 감독영화 평론가(카예 뒤 시네마).

그는 앙드레 바쟁의 후원을 받았고, 나중에 커서 장피에르 레오(400번의 구타 주인공)를 후원했다. (소년원에 들락거렸을때,그를 동정한 상담원이 바쟁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는 방탕한 파리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고 스스로 회상했다. (그런데 계부를 아버지로 생각했다.) 친부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지만, 알고 있었다.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알아냈는데, 유태인이었다고... 몰래 뒤를 밟아 그의 집까지 가보기는 했지만 결국 마음을 돌리고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의 금광 시대를 구석에서 봤다고 한다.
그의 아내말에 의하면 계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만나지 않았다고...
트뤼포는 십대에 영화클럽을 조직하고 운영한 돈을...계부의 타자기를 훔쳐서 벌었다. 십대에는 양아치같은 삶을 보냈는데, 상담원이 앙드레 바쟁을 소개시켜줬고 인연은 시작되었다. 나중에 군대에 가서 사이공(현 호치민)에 갔지만, 나중에 탈영해서 영창갔다. 이 경험 때문에 프랑스군대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고 알제리 전투(La batalla de Argel. 1965)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대상인 금사자상을 받을 당시, 프랑스영화인으로 유일하게 남아서 손뼉까지 치며 축하해준 적이 있다. 당시 고다르를 비롯한 다른 프랑스 영화인은 프랑스군이 악랄하게 나오던 이 가짜 다큐멘터리 영화가 수상하자, 말없이 퇴장하던 거와 대조적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요청으로 미지와의 조우에 주연 중 한명으로 출연했다.

여성편력이 굉장해서 공식적인 결혼생활은 6년에 불과했다.

장 뤽 고다르와 사이가 안좋아서, 서로를 헐뜯었다. 나중에 고다르의 자서전 제목을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라고 추천해줬다.
고다르는 나중에 트뤼포가 뇌종양으로 죽어가자, "그렇게 나쁜책을 많이 읽으니 안그래."라고 깠다. 고다르는 로만 폴란스키가 고다르를 누르고 각색권을 차지한적이 있는데, 나중에 찰스 맨슨 사건이 일어나자 "세상에... 거봐...나한테서 각색권을 빼앗아가더니만..."이라고 패드립을 한적이 있다.

트뤼포가 죽자, 레오는 절망에 빠져 방황했는데 고다르가 이렇게 타일렀다고 한다. "너는 로버트 미첨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 도달할수 있는 배우야. 너는 유령이 아닌 새로운 아버지,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날까지 앞으로 나가야해." 물론 고다르가 착하다는건 아니다.

작품들


  • 400번의 구타.
피에르 레오가 나온 영화. 나중에 레오는 트뤼포 영화의 페르소나가 된다. 장 피에르 레오 3부작의 시작이며, 자서전같은 성격이 강한 영화.


  • 아델 H의 이야기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빅토르 위고의 딸 아델 위고가 벌인 막장얀데레 일기다. 나중에 로저 코먼이 미국에 배급해서 대박냈다.


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감독직을 포기하고 선택한 영화이다.[1]
이 영화를 준비하는데 5년 정도가 걸렸다.
책에다 불을 싸지르는 소방관들을 다룬 디스토피아영화.
주연이었던 스카 베르너와는 사이가 엄청 안 좋았다고 한다.
원작자 레이 브레드버리는 그는 줄리 크리스티가 1인 2역을 맡은 것을 빼고는 영화 각색을 좋아했고,
직접 편지를 적어 프랑수아 트뤼포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내의 평은 별로 좋지 않았다.


  • 상복 입은 신부
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각색한 건 맞는데, 마지막의 반전을 짜르고 영화화했다.


  • 이웃 집 여인(La Femme d’à côté)
매우 통속적인 치정극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대단히 냉정하고 섬세한 연출덕분인지 깊은 감정이입과 충격적인 감흥을 얻게 된다.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아기자기한 대사들의 연결도 뛰어나고, 특히 라르 드파르디외니 아르당의 표정연기가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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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그는 랜 비티가 주연을 맡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