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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교황)

last modified: 2015-06-24 22:52:12 Contributors

<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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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1] 2014 - 에볼라 전사들

교황명 프란치스코 (Franciscus)
세속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Jorge Mario Bergoglio)[2]
출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생년월일 1936년 12월 17일 (선출 당시 78세)
재위기간 2013년 3월 13일 ~ (현재)
즉위미사 2013년 3월 19일
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그리스어 Πάπας Φραγκίσκος
스페인어 Papa Francisco
포르투갈어 Papa Francisco
프랑스어 Pape François
영어 Pope Francis
독일어 Papst Franziskus

역대 교황
265대 베네딕토 16세 266대 프란치스코 현직

교황 선출 직후 이탈리아어로 첫 강복을 하는 프란치스코.
다른 교황들과는 달리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모제타를 입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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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문장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3개의 줄이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예수회 문장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남편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Spikenard) 꽃이 새겨져 있다. 추기경 때 문장과 다른 건 하얀 별과 나르드가 금색으로 바뀐 것 뿐. 아래에 사목표어가 쓰여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Contents

1. 개요
2. 프란치스코란?
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
3.1. 출생과 성장
3.2. 흑역사?
3.3. 추기경 시절
3.4. 교황 선출
4. 성품
4.1. 개인적인 면
4.2. 공적인 성향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
4.2.2.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
5. 재위기간
6. 바티칸 개혁행보
7. 2014년 방한
8. 기타
8.1. 홀리 슈퍼게임

1. 개요


뭔가 문구가 전혀 달라보이는 것은 기분탓인거다.인상도[3]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으로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남반구·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시리아 출신인 제90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만의 비유럽권 국가 출신 교황이다.

사목표어는 성 베다의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한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

2. 프란치스코란?

2013년 3월 19일, 즉위미사 때 등장한 현수막 : "아시시가 당신을 기다립니다!(Assisi ti aspetta!)"

일찍이 교황 바오로 6세"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인이신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규칙을 깨고 오직 교리에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탄식했었다. 하지만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따른 것이다.

전임 교황의 이름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교황명으로 정한 것은 요한 바오로 1세 이후로 35년 만인데, 요한 바오로 1세도 요한(23번)과 바오로(6번)로 각각 나누어서 보면 이미 많이 사용되어 왔던 이름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사용된 적이 없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913년에 즉위한 제123대 교황 란도 이후로 딱 1100년만이다. 교황은 교황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밝혔는데, 콘클라베에서 3분의 2 득표를 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아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고 입맞춤하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선출 당일 한국 언론에서는 프란치스코 1세, 프란시스코 1세, 프란체스코 1세 등 중구난방으로 표기했으나, 바티칸과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입장에 따르면 올바른 한글 표기는 프란치스코, 정식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1세'가 아니라 그냥 '프란치스코' 이며, 훗날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쓰는 다른 교황이 나온다면 그 때 가서야 프란치스코 1세로 불리울 것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사실 원래 이게 맞는 건데 요한 바오로 1세 때가 이례적이었다 보면 된다[4].

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

3.1. 출생과 성장

1935년 12월 12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베르골료 부부의 결혼 직후. 엄마를 꼭 닮았네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마리오 호세 베르골료(Mario José Bergoglio)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Regina María Sivori) 사이에서 1936년 12월 17일에 태어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졸업하고 예수회에 입회해 32세에 수사신부가 되었다.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으로 한쪽 를 절제해 50년 넘게 한쪽 폐로 살고 있다. 한때 바운서로 일한 적도 있다 한다. 헐, 바운서를 할 정도라면 싸움 실력이 있다는 얘기인데…

사제가 되기로 한 계기가 조금 독특한데,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말리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관련기사).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신부된 김에 교황까지 이 아말리아 할머니는 60여 년이 흐른 2013년, 그가 교황이 되자 말 그대로 기절초풍했다. 그녀가 자랑스레 공개한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 다른 여자 친구가 없었는지는 미지수라고. 청소년탱고를 같이 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단순히 꼬마 시절 실패한 고백 때문에 사제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3.2. 흑역사?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전적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관련 건으로 인권단체에서 2010년도에 고발된 적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 2명이 독재정권에 납치되어 고문당한 사건에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이 아르헨티나 군부 유력자의 가족신부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독재자들에게 사적으로 선처를 호소하였고, 두 사제는 결국 풀려났다고 밝혀졌다.

비겁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쿠바가톨릭 사제들도 택하고 있는 나름의 실용적 전략이다. 당장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직접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타협과 조정을 통해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게다가 교황이 군사독재에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며, 군부의 살인부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자신의 여권을 주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개인적인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다.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성직자들이 '애국주의' 선언을 통해 군사독재와 결탁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지만, 이건 상황에 따른 것이다. 독재와 인권탄압 수준에서 당시 아르헨티나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전두환이 그냥 커피라면 라틴 아메리카의 군사독재는 TOP이기 때문에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 정부를 비판하면 코렁탕 정도가 아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자루에 넣어져 대서양에 수장되거나 생매장으로 끔살당한다. 즉, 적극적으로 전면저항에 나설 경우 프란치스코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례로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당시에는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지던 당일 그 시각에, 그 경기가 치러진 경기장 바로 옆건물에서 호르헤 비델라 정권 반대인사를 고문하고 있었다. 물론 이보다 더한 건 역사적으로 따지면 아돌프 히틀러나 옛 조상 나라의 선배뻘인 스페인프랑코 정도이고, 동시대로 따져봐도 칠레의 독재정권이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을 압도하긴 했지만, 당시의 아르헨티나살인적인 군부독재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국가에서 추기경이 공개적으로 정권에 대한 반대를 조직한다면 교황청과 타 가톨릭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미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에 언급된 자신의 여권으로 독재에 탄압받는 정치범을 국외로 탈출시켜주는 행위도 들켰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한 정치범 생존자는 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너무나 침착하게 선뜻 도와서 "자기가 어떤 곤경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정말 알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비슷한 예로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에서는 1970년대에 독재에 저항하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미사 중에 대중의 눈 앞에서 사살당했는데도 범인들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엉뚱한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다.[5] 요한 바오로 2세가 맞서 싸웠던 공산당이나 김수환 추기경과 대립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 통하기라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였던 교황은 "(군부에게) 믿음을 심어줘서 누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2014년 즉위 1주년을 앞두고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뒤에서는 은신처를 제공하고 해외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최소 20~30명, 최대 100명까지 반정부 인사들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3만 명이나 희생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참상에서 수십 명 구했다는 것이 침묵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분명히 나은 행동이며, 위쪽 문단에서도 설명했듯이 은신처는 물론 해외도피까지 실제로 도왔다는 점에서 자신의 위험도 기꺼이 무릅썼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특히나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를 생각할 때 이 정도면 꽤 선방한 것이다. 일개 하급 성직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상대로 큰 무언가를 뽑아내길 바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욕심이다. 대한민국 식으로 따지자면 시골 본당의 주임신부 하나가 대통령을 상대로 벌이는 행동인데 그 상황에서 일개 시골 성당의 주임신부가 일국의 대통령을 상대로 맞짱이 가능할 리 없다. 그걸 시도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자루에 담겨져서 대서양 한복판에 버려졌겠지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교황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비판은 비판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아무튼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일.

3.3. 추기경 시절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르골리오 추기경, 2001년 2월 21일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 추기경, 2007년 1월 13일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주교에 임명되었고, 2001년 2월 2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품되었다.

추기경 재임 시 아르헨티나 동성결혼 법안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인권단체의 비판이 많았다. 반대운동 때 동성결혼과 피임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에게 중세적 마인드를 가진데다가 이단심문관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덕분에 서로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추기경 시절인 2012년 성명을 통해 대통령을 독재를 노리는 선동꾼이라고 비난하였다. 페르난데스는 전직 페론주의자로 실제로 후안 페론 = 사벨 페론 부부에 이어 아르헨티나 2번째의 부부 대통령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동성결혼 합법화 및 입양조건 동등화는 상하원 모두에서 통과되었다.

교황이 수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 교황이 비난했던 것은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통치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어휘가 강했을지는 몰라도 타당한 비판이다. 행정법을 공부하면 약간이나마 언급되는 부분인데, 원래 행정명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우회하여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단골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법을 통한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당장 조지 W. 부시가 행정명령을 애용했다.

2008년 12월 12일 루얀에서.
추기경 주제에 VS 5년 뒤에 두고보자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좀 도와줘요 VS ㄲㄲㄲ[6][7]

그런데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이 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그에게 포클랜드 섬에 대해 영국의 군사적 증강을 막고 자신과 대화 창구를 놓아달라는 개입 요청을 하였다. 교황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지만, 영국은 교황은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주권 국가 사이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탓에 가만 있다가 불똥이 튄 격인데, 이래저래 악연인 듯.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통해 가톨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2015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3.4. 교황 선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에 치러진 콘클라베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청이 부패 스캔들섹스 스캔들로 홍역을 치른만큼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듯. 그동안 거론되던 주요 교황 후보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아예 없던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비유럽파 추기경들은 개혁적인 교황을 원했으나 적절한 후보를 내지못한 상태에서 콘클라베에 돌입했다고 한다. 투표 전에 모든 추기경들이 소신을 피력하는 개인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회가 본연의 영적인 임무에 돌아가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의 이런 피력을 계기로 개혁파 추기경들이 그에게 주목했고 뒤이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투표가 진행돼서 개혁파 추기경을 중심으로 의견이 정리되고 미국의 추기경인 우얼 대주교가 미국 표를 끌어모으고 일부 유럽표가 그에 가담하면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수월하게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가디언 지의 추측으로는 전 교황 선출 때도 이미 득표 수가 2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8]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례적으로 빠른 콘클라베의 결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에 퇴위했음에도 고령인 프란치스코가 선출된 것을 놓고 추기경단이 '몇 년 간의 시간벌기'를 선택했다는 관측이 있다. 한편 그의 선출에 베네딕토 16세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음모론도 나왔다.

그의 교황 취임을 두고 흑인 교황을 기대했던 아프리카에선 섭섭해하는 분위기이다. 이탈리아 교황을 바랐던 이탈리아에선 아쉬워하면서도 이탈리아계 이민자 교황이라서 좀 낫다는 분위기. 물론 남미에선 역사상 첫 남미계 교황이라고 기뻐하는 분위기이다.

4. 성품

4.1. 개인적인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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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지하철에 탑승한, 추기경 시절의 교황.
영국배우 조나단 프라이스와 똑같다며 외국에서도 난리.
교황의 산 로렌소 회원카드

개인적인 성품은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을 정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동은 거의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 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해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취미는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자국 리그의 팀인 CA 산 로렌소의 열성적인 팬이며 회원이기도 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교황을 위해 오직 교황 한 사람만을 위한 A매치를 치르기로 했다. 2013년 8월 14일에 교황을 위해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가톨릭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평가전을 치르기로 양 국가의 축구협회에서 합의를 봤다. 이 경기는 교황 프란치스코 본인은 물론 바티칸 시국 교황청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직접 관전했다.

그런데 경기 당일 양팀의 주포인 리오넬 메시마리오 발로텔리 둘 다 부상으로 결장했고, 리오넬 메시 대신 에릭 라멜라가 들어갔다. 경기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2-1 승리. 전반전에 일찌감치 이과인이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에 바네가가 추가골을 넣었다. 이탈리아에서는 2골을 먹은 이후 인시녜가 만회골을 넣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4.2. 공적인 성향

우리는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가는 그 사회가 가장 궁핍한 이들을,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어찌 대하는지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

교리나 문화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지만 가톨릭 교회 전반적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심히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해방신학에 부정적이라는 등 지나치게 개별 이슈로 보수성을 몰아가는 측면도 크다. 되려 아래에 제시된 사례처럼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콘돔 사용을 반대해서 홍역을 치룬 베네딕토 16세와는 달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다고 하여 아주 꽉 막힌 사고의 소유자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재임 중 해방신학의 창시자를 초청하여[9], 교황청 기관지 <옵서바토르 로마노>에서 해방신학이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콘클라베 시기 가디언지에서 정한 기준에서도 "Moderate"(온건한)에 속하는데, 진보-온건-보수에서 중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Moderate(온건)-Conservative(보수)-Ultra Conservative(슈퍼울트라강경보수)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진보적인 것이다. 참고로 'Papabile'라고 표기된 교황 가능성이 있는 인물 가운데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제외하고 moderate는 거의 없다. 교황청 개혁에 적극적이면서 스캔들에도 해당 안 되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베르골료 추기경은 두드러진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작가는 "그는 해방신학자는 아니지만, IMF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한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여 아르헨티나의 빈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외국의 반응들도 전반적으로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외신마다 평가가 갈리는 편인데, 이에 대해 미국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지적이 있다. 꼬리표를 뭐라고 붙이든 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적이며 공동체의 가치와 평화를 중시하는 성향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11월 27일 펴낸 교황 권고에서는 자본가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비난하면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가난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교황명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청빈을 강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 보인다.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사생아에게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례를 줬다. 가톨릭에서 사생아를 사람 대우하지 않는 것이 중세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격. 또한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길 거부하는 신부들을 비판했다.

결혼의 신성함 속에서 잉태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성직자들이 우리 교구에 있습니다.
이런 성직자들은 현대의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은 권력으로 교회를 오염시키는 자들이며,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사생아들을 아이를 주신 분돌려보내지 않고 이 세계에 낳을 용기를 가진 불쌍한 소녀들은 이런 성직자들 때문에 세례를 받으려고 여러 교구들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재혼자들을 비정상적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촉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기사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커플의 입양 허용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 개개인들을 탄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동성결혼 법안에 반대운동을 주도할 당시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동성커플은 인정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이라는 타협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2013년,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추기경을 교황청 '주교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에서 해임, 다른 추기경으로 교체 하기도 했다.
교회가 교리에 얽매여 신자들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교리와 실제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조화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가톨릭 교회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태도가 주목된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14년 시노드에서 동성애자와 이혼, 피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문 초안을 발표했다.[10] [11] 하지만 교황 본인은 시노드 의장으로서 중립을 견지하며 중재할 뿐이였고, 이 중간 선언문은 소수의 주교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작성되었다고 대다수 대의원 주교들이 반발했다. 결국 최종 결정문은 일체 변화가 없다는 내용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11월 17일 그리스도교 교파 대표들이 모인 콜로퀴움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간의 결합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위의 행보들과 모순되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가톨릭은 '동성애 성향'과 '동성결혼'은 엄격히 구분한다. 동성결혼(나아가서 동성간의 성교)은 안타깝지만 가톨릭 윤리학에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허용되는 것은 어렵다. 문제는 '그러면 동성애 성향은 죄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부분의 경우에 교황은 '동성애 성향 자체가 죄는 아니다'는 입장이며,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성향 자체는 죄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동성애 성향'과 '동성결혼'은 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로리콤아동 성범죄 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폭력적인 성격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을 때리지 않고 산다면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톨릭 내부의 윤리관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가톨릭의 윤리관을 비판한다면 몰라도, 교황 한 사람을 공격한다면 교황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한 일이다. 교황은 전제군주가 아니다.

4.2.2.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

무신론자로 밝힌 레푸블리카의 공동 설립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할지'를 물었고,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서 답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칼파리 본인이 먼저 전화해온 교황과 약속을 잡아 직접 산타 마르타 관館에서 인터뷰하고 주로 이탈리아 지성인들의 의견을 포함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원제: Dialogo tra credenti e non credenti)"로 편집,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바다출판사 발행, 번역은 최수철과 윤병언.

일찍이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2001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에 출연하여 정하상 바오로 성인[12]의 예를 들며 이러한 견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13][14]

이런 논조는 종교가 아예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천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정체성이자 핵심 교리이기 때문.

그런데 위에서 말한 스칼파리 씨가 교황의 발언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대화 당시 스칼파리 본인은 별 다른 기록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기억력만으로 이 내용을 전했는데, 그의 기억력이 고령으로 인해 부정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근데 언론에서 하도 퍼트려대가지고 사람들은 진짠줄 안다. 정정 보도도 없다. 하여간 찌라시가 문제

하지만 교황이 비신자나 무신론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건 사실이다. 교황 선출 후 진행된 첫 일반 알현에서 알현 마지막에 참석자들을 향해 축복기도의 성호를 긋지 않은 대신 다음과 같이 스페인어로 말한 적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어떤 분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계신 양심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여러분 각자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5. 재위기간

교황 선출 직후 첫 강복(우르비 에트 오르비)을 통해 전대사를 선포했다. 인터넷 영상을 통해서도 전대사를 받을 수 있으니 위 영상을 보고 교인이라면 꼭 받도록 하자.

6. 바티칸 개혁행보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의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직접적 원인이 바티리크스 사건이었다면 더욱 근본적 원인으로는 바티칸 내 최고행정기구인 교황청의 관료제적 폐해와 부패라는 분석이 있었다. 국무원장과 궁무처장을 겸임한 반개혁파 타르치시오 베르토네가 이탈리아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혀 사실상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출신-교황청 관료-반개혁 세력이 온갖 부패와 전횡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사실상 고립되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려고 했으나, 바티칸 은행을 관할하는 타르치시오 국무원장의 음해와 방해로 실패했다고 한다. 교황청의 2인자 비가노 대주교 역시 교황을 보필하여 교황청 개혁 작업에 나섰으나, 이후 타르치시오 국무원장에 의해 상대적으로 한직인 미국 주재 교황 대사로 유배발령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교황과 비밀편지를 주고받던 비가노 대주교와 교황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조직적으로 비밀편지를 유출한 것이 바티리크스라는 분석이다. 이는 바티리크스의 배후로 알려진 파올로 가브리엘레 집사가 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8년의 징역형까지 가능했으나 18개월의 징역형만을 선고 받았고 그나마 2개월 후 교황에 의해 사면됐다는 정황으로도 방증됐다. 요컨대 부패척결을 위해 신임했던 개혁파 비가노 대주교와 가브리엘레 집사가 교황청에 의해 무력화되자 자진사임했다는 것.[15] 이후에도 바티리크스의 처리과정에서도 타르치시오 베르토네가 도청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차기 교황은 바티칸을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교황 유력후보였던 밀라노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과 안젤로 소다노 수석추기경으로 대표되는 교황청의 반발에 의해 이탈리아 추기경 표가 갈려 밀려났다고 한다. 이상의 연합뉴스 링크에 의하면 바티칸 내부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이전투구가 쿠리아 세력의 '질투와 경쟁심' 때문이었다고 하니 내부분열은 상당했던 모양. 결국 비유럽파와 개혁파의 응집에 의해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정황이 제기되었고, 따라서 이들의 지지를 업은 프란치스코에게 교황청의 개혁과 부패 말소는 숙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신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에서도 부패척결과 관료주의 타파를 새 교황의 대표적인 직면과제로 꼽았다.

이와 관련한 프란치스코의 개혁 행보에 관해서는 프란치스코(교황)/개혁 항목 참고.

8. 기타

성 말라키의 예언에 따르면 예언에 명시된 마지막 교황. 그런데 예언 내용인 '로마인 베드로'가 어떻게 꿰어맞춰도 맞는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다들 잊은 듯.교황청이 말라카이의 예언이 가톨릭 교회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예언 내용 자체가 찝찝해서 일부러 입에 담지 않는 느낌도 든다. 마지막 교황은 흑인 교황이라던 출처 미상의 떡밥[16]도 분쇄되었고 결국 '교황이 그래도 이탈리아인이지 않냐는!'이란 식의 우기기만 남았다고 한다.

2014년 1월 28일, 바티칸 옆 골목에 등장한 '슈퍼 교황' 그래피티. 슈퍼 히어로의 자세를 취한 교황이 든 가방에 적힌 단어는 '가치(VALORES)'이다.

국내의 진보성향 잡지 시사in에서는 지도자의 격은 집단 전체를 달리 보게 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사in의 진보적인 성향과 교황의 행보를 연결시키면 저런 평가가 나올 만하다는 중론.

어렸을 적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로 유명한, 미국 HBO의 유명한 토크쇼 호스트 빌 마허(Bill Maher)는 프란치스코가 교황에 취임된 이후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행보를 할 때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교황은 무신론자일 거야 ㅋㅋㅋ"나 "지금 바티칸에선 독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17]같은 농담을 하면서 그의 행보를 칭찬해주었다. 다른 가톨릭계 토크쇼 호스트인 스티븐 콜베어[18] 역시 빌 마허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매번 보여주었다.

교황이 일반 사제 복장을 갖추고 몰래 바티칸을 빠져나와 노숙인들을 만나는 등 잠행을 한다는 설이 돌았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교황이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고, 추기경 시절 실제로 밤에 몰래 나와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함께 나눠먹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하지만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면 으레 하게 되어있는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미국의 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교황을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소박하고 검소한 백색 수단에 수수한 검은 구두를 신은 차림새가 교회 개혁을 위한 행보에 부합하며 교황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호평했다. 2015년에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스포츠 스타들의 피규어를 전문 생산하는 블리처 크리처가 제작한 피규어가 등장했다. 스포츠 스타는 아니지만 블리처 크리처가 피규어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라는 게 블리처 크리처의 창업주 매튜 호프먼의 설명.

씀씀이가 매우 소탈하고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50달러도 안 하는 저렴한 스와치 시계를 사용하며, 이동 간에 사용하는 차량으로 평범한 소형차를 이용한다. 으레 교황용 의전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특수개조 SUV차량을 이용해온 것이 관례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고급차를 마다하고 16,000달러도 안 하는 구형 포드 포커스 차량[19]을 이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터뷰에서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고가의 최신 차량을 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업무 목적으로 자동차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고가의 비싼 차를 구입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이 굶어죽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라며 성직자들의 사치 자제를 몸소 주문하였다. 2013년 남미 방문 때에도 소형 피아트를 의전차로 사용했으며, 2014년 여름 내한 때에도 한국산 소형차를 의전차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기아 쏘울을 의전차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에 벤틀리 타시는 먹사님이라든지, 에쿠스만 고집하는 국K-1님들도 좀 배워야 해 그런데 정작 쏘울도 국내에서는 제일 작은 차가 아니라는 것교황 풍채를 생각해 보면 너무 작은 차를 사용해도 곤란...이미 교황 풍채로 보면 쏘울도 소형차[20]

뿐만 아니라 방탄차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저격 사건 이후로는 경호를 위해 방탄차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에는 "정어리 깡통 안에서는 소통이 안 됩니다."는 말을 하며 의전 때는 앞서 말했다시피 소형차를, 퍼레이드 때는 사방이 뚫린 무개차를 즐겨 탄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 방문 때도!! 물론 근위대들은 심히 죽을 맛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은 경호 문제에 대해 "내 나이쯤되면 잃을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 쿨가이 프란치스코 하지만 바티칸과 교황님 근위대는 아닐텐데...

이런저런 면이 합쳐져서 상당히 인기가 많은 교황이다. 당장 리그베다 위키에도 하위문서가 있는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일하다. 하지만 개혁적이고 동성애자 및 무신론자들에게 관용적인 면 등으로 인해 극렬 안티가 많고, 심지어는 적그리스도 소리까지 듣는 교황이기도 하다. 물론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환영하며 많은 비종교인들은 그에게 매우 큰 감동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퇴위와 연관시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의 재임기간을 종신제에서 임기제로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한 바 없지만, 만약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자처럼 선종이 아닌 생전 퇴위를 선택한다면 가톨릭 내에서 교황 임기제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추기경 曰: 교황은 로마워싱턴에 있는 선출직 공무원 따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2014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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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성하께서 성전을 원하신다! 검... 아니 총을 들어라!!!(…)

번역기 하나가 교황성하를 폭군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르바노 2세의 재림 사실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2번 강조한 것 뿐이다. 이것때문인지 방한 이후 교황의 인기가 급격히 올라간 한국 인터넷 상에서 교황의 말씀마다 교황님께서 (OO와의) 전쟁을 원하신다!!결코 다시 전쟁! 결코 다시 전쟁!!, 성전이다 우매한 이단들아!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장난스러운 드립이 생겼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호의가 섞인 농담이지, 부정적으로 비꼬는 의미가 아니니 가톨릭 위키니트들은 안심하자. 심지어 네이버 검색어에도 서로서로 연관검색어로 나온다. 그렇게 신자(?)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교황마저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협력 하에 군사적으로 토벌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들은 그 만한 비난을 들을만한 슈퍼 천하의 개쌍놈들인 것 맞다. 천하의 개쌍놈들인 북한에게조차도 평화를 내세우신 분이 저런 말씀까지 하실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지는 해당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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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젊었을 적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 다행히도 이 사진은 합성이다. 하지만 필리핀 방문 당시의 사진을 보면 헤비 메탈이랑 인연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필리핀 수화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의미다

2014년 5월 5일/1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기사를 쓴 사람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
2015년 올해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관련기사
기아자동차에 한해 이분의 가호무슨 약으로 작용한다 카더라 기아 쏘울 항목 참조(…)

8.1. 홀리 슈퍼게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7경기가 말 그대로 바티칸 동족상잔 매치[21]였던지라 바티칸 트위터에서 이런 이미지를 유머로 올릴 정도였고 이런 이미지가 올라와서 진짜 따로 본…줄 알았는데, 해당 글의 리플에 달린 링크를 보면 저 사진은 2013년 5월 4일에 보도된, 전혀 다른 일의 사진이다. 홀로 외로이 앉으신 교황님 귀요미 그래서 메시에게 버프를 걸어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치트가 다 있나(…)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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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독일의 대결이 성사됨으로 인해, 전/현직 교황이 선출된 국가간의 홀리한 슈퍼매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젠 경비병과의 대결이 아니라 전직 교황과의 파이널 스테이지!!! 전직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독일 출신의 요셉 라칭어 추기경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히 스케일이 커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교황청은 "교황께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이 경기를 관전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며교황의 버프가 사라지자 메시도 힘을 잃었다 베네딕토 16세의 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도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결승전을 직접 보지 않고 먼저 주무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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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다. 뭐? 기사
  • [2] '베르골리오'라는 표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지침에는 이탈리아어식으로 '베르골료(/berˈɡɔʎʎo/)', 에스파냐어식으로는 '베르고글리오(/βerˈɣoɣljo/)'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다. 가톨릭 굿뉴스에서는 '베르골료'로 표기하고 있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비록 이탈리아계더라도 에스파냐어를 쓰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을 들어 에스파냐어식인 '베르고글리오'로 표기를 심의하였다.
  • [3] 개드립으로는 안경 교황설(...)
  • [4] 해당 항목에 자세히 나오지만 전임 교황들인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를 본받겠다는 이유로 두 개의 이름을 나란히 붙인 이름을 처음으로 썼고, 거기에다 스스로 '1세' 를 덧붙인 것은 처음.
  • [5] 로메로 대주교 암살범들은 후에 미국에서 대주교의 유족들의 고발로 재판을 받아 유죄판결이 나기는 한다.
  • [6]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표정변화에 주목해보자.
  • [7] 두 사람 뒤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베네딕토 16세 때 교황청의 2인자로 군림하던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이다. 얼마 뒤 베르토네 추기경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때 잘리게 된다.
  • [8] 일반적으로 콘클라베의 구체적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2005년 콘클라베 당시는 어느정도 바티칸 취재기자들에게 퍼져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력후보는 보수성향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과 개혁파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이었으나 마르티니 추기경은 파킨슨병때문에 교황후보를 포기했고 개혁파가 대타로 찾은 후보가 바로 베르골료 추기경이었다고 한다. 초반 투표에서 라칭거 추기경이 1위였으나 베르골료 추기경도 40표 이상을 확보해 다시 투표를 해야 했는데 베르골료 추기경이 자신을 지지한 추기경들에게 라칭거 추기경을 지지할것을 부탁하면서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었다고 한다. 베르골료 추기경이 중도사퇴한 이유는 바티칸에 그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과 결탁했다는 소문이 퍼진 탓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9] 신앙교리성성 장관 뮐러 추기경의 출간기념회에 연사로 나왔으며 교황이 직접 초대했는지의 언급은 없다.
  • [10] 동성결혼은 인정하지 않지만, 동성애자를 교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한다는 방향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당초 방침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 [11] 하지만 말이 그렇지 사실상 교리를 뒤엎어버리겠다는걸 적절한 언어유희로 말을 숨겨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일부 주교들의 트릭이라며 반발도 만만찮다. 애초에 그 몇몇 주교들 중 한명인 독일의 한 추기경도 이혼후 재혼한 신자들(교회법에 따르면 조당으로 영성체가 거부된다.)에게 따로 재판절차 없이 영성체를 허용하겠다고 20년 전부터 주장해오다 당시 동료 추기경이였던 베네딕토 16세에게 호되게 까인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걸 올해 시노드에서도 주장하다 또 까이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12] 다산 정약용의 조카.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 때 어머니 유소사 체칠리아, 여동생 정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 시복되었다.
  • [13]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수환 추기경의 주장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논의된 내용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 버전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 이야기했던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논의된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긴 하지만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에게도 배워야 할 점은 있으며 그들이 구원에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라는 식의 논의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물론 김수환 추기경이 주장하고자 했던 큰 틀 자체는 공의회의 논의점들과 크게 다른 건 아니고 그 스스로도 '그리스도교 신앙 없이 착하게만 살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말했던 것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청중들의 이해를 위해 구원 문제를 단순화해서 설명하였기 때문에 저 주장에 대해 무수히 많은 개신교 신도들이 행위구원론을 주장했다는 오해를 바탕으로 비난을 하였고 실제로 저런 식으로 오해할 여지도 다분한 설명이었다.
  • [14]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자들은 본인의 양심에 따라 살아라' 한 것도 신앙이 필요없이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무의미함과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강조하는 언급일 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김수환 추기경 등의 언급은 종교다원주의로 볼 수는 없다. 사실 구원의 길이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은 종교다원주의와는 상반되는 교회의 입장이며 오로지 예수천국 불신지옥같은 극단적인 배타주의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인 것 뿐이다.
  • [15] 프레시안동아일보의 보도 참조.
  • [16] 좋게 말해서 떡밥이지, 흑인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인종차별적 모욕이다.
  • [17] 개혁적인 행보를 보이다가 교황 재위 33일만에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론과 관계가 있는 농담인 듯하다.
  • [18] 아일랜드 출신의 후손답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스스로를 '세계 최강의 가톨릭'이라고 부른다. 교황도 제쳤다는 뜻. 가톨릭 사제나 신자와 교리 및 성경 지식에 관한 논쟁에서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자기가 국가 수반으로 있는 콜베어네이션(Colbertnation)의 전임 사제도 예수회 출신이다.
  • [19] 국내 수입 판매가격 기준으로도 그랜저보다 훨씬 저렴한 차
  • [20] 여담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 당시 국산 경차 및 소형차로 택한다는 소식에 국내 중-소형차 4사 관계자들이 긴장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 의전차로 선정될 시의 홍보효과를 노릴수 있기 때문. 특히 경차를 만드는 한국GM기아자동차가 큰 관심을 보얐는데 최종적으로는 경비 문제 등으로 기아 쏘울이 의전차로 선정되었다.
  • [21]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하필 바티칸 경비는 스위스 용병들이 맡아가지고… 거기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명한 축구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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