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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토티

last modified: 2015-03-29 19:48:00 Contributors

AS 로마 No. 10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
생년월일 1976년 9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출신지 로마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 포워드
유소년 클럽 포르티투도(1984)
스미트 트라스테베레(1984~1986)
로디자니(1986~1989)
AS 로마(1989~1992)
소속 클럽 AS 로마(1992~)
국가대표 58경기 9골
별명 로마의 왕자, 황태자

AS 로마 영구결번
No.10[1]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로마가 사랑한, 로마를 사랑한... 로마의 혼(魂).[2]

그리고 로마를 뛰어넘어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축구 선수 중 한명
이탈리아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살아있는 전설
아직까지도 건재한 로마의 위대한 공격수, 미드필더



내 등 번호, 10번이 새겨진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과 페레스 회장의 친필 편지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유니폼을 보내 왔고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자니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로마를 위해 평생을 바쳤고 내가 없는 로마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로 갔더라면 나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내 라이벌은 오직 프란체스코 토티 밖에는 없다." - 지네딘 지단[3]

"로마에 있을 때 나는 항상 벤치에 있었고, 토티는 언제나 필드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 펩 과르디올라[4]



Contents

1. 선수생활
1.1. AS 로마의 터줏대감
2. 플레이스타일
3. 토티의 약점
4. 한국에서의 이미지
5. 기타
6. AS로마의 상징
7. 기록
7.1. 우승 기록
7.2. 준우승 기록
7.3. 득점 기록
7.4. 개인 수상

1. 선수생활

1.1. AS 로마의 터줏대감

당초 13세의 소년 토티에게 먼저 구애의 손길을 뻗친 건 다름 아닌 AC 밀란이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진성 로마빠였던 토티는 상콤하게 거절, 1988년 AS 로마 유스팀에 입단한다. 이듬해 1군 팀과 정식계약을 맺은 데 이어 16세에 세리에A 데뷔전을 가졌다. 1997년 AS 로마 역대 최연소 주장 기록인 21세에 클럽의 주장완장을 달고 지금까지 완장을 유지한 역대 최장 주장역임 기록까지 가진 현재까지도 AS 로마에서만 뛰고 있는 대표적인 클럽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이후 토티와 함께한 로마는 상승가도를 걸으며 본격적인 세리에 A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당시까지 세리에 A는 북부 3강(유벤투스와 밀란 둘)이 번갈아가며 우승하던 3강 고정 시대였는데, 흔히 말하는 7공주 시대를 거치며 슬슬 입질을 넣기 시작하더니만 2000/2001 시즌 드디어 스쿠데토를 차지하며, 북부 3강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던 세리에의 헤게모니를 부숴버리는 데 성공한다. 물론 이 때 로마의 스쿼드가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짱짱했다고는 하지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빈첸조 몬텔라, 카푸, 알다이르, 나카타 히데토시 등 그들을 한데 모으고 시너지효과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주장 토티였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듬해 비록 유벤투스에 승점 1점이 모자라 우승을 놓쳤으나 전년도에 이룬 18년만의 우승은 줄곧 중상위권 정도로만 평가되었던 로마가 노는 물을 달리하게 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안습하게도 로마 = 준우승이라는 콩의저주가 걸린 것인지 2000년대 들어 세리에 준우승만 5번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런 팀에서 토티는 지금까지도 뛰고 있다. 이쯤 되면 진성 로마빠. 클럽에 대한 충성심이란 측면에서 보면 그냥 언터처블.비슷한 예로는 이 분이있다

노쇠화가 진행되었다는 지금도 경기를 뒤집기에 충분한 저력과 한방을 지니고 있다. 36세를 맞이한 시즌 리그만 15골. 리그 7위에 해당한다.

2010 / 2011 시즌 종료된 시점 로마에서만 467경기 206골. AS 로마 역대 최다출장 및 최다골 기록이자, 세리에 A 역대 최다득점 5위 기록이다. 10골만 더 넣으면 3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 황태자를 경배하라.

그리고 한국시간 2012년 1월 21일 체세나와의 홈경기에서 통산 211호 골을 기록, 세리에 A 단일팀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2013년 3월 5일엔 통산 225호 골을 기록하면서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세리에 A 통산 득점 공동 2위에 올랐으며 3월 20일, 226호 골을 기록하면서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이제 그의 앞에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하나로 추앙받는 실비오 피올라[5]가 보유한 274골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6]

2014년 세리에A 시즌이 끝난 현재, 로마에서만 561경기를 뛰었으며 235골을 기록중이다. 심지어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보낸 선수이다.

2013-14 시즌 팀의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끌며 팀의 4년만의 UEFA 챔피언스 리그 복귀에 기여하였으며, 2014년 9월 30일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특유의 칩샷으로 (로마의 챔스 조별예선 첫골을 터뜨리며, 조별리그 1차전에서 로마가 CSKA모스크바를 5:1로 이겼기때문에 해당골은 '로마'의 조별리그 첫골이 아니라 '토티'의 조별리그 첫골이다. 이후 토티는 조별리그 4차전 모스크바 원정에서 또 한골을 기록했다.)UEFA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고령 득점자[7]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이번 챔피언스 리그 골로 개인 통산 300골을 달성하게 되었다.

2. 플레이스타일

패스 스타일이 화려한 원터치 스타일. 눈이 화려한 플레이를 한다. 원터치 쓰루패스가 정말 환상적. 토티의 스페셜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가끔 나오는 롱패스도 뛰어나다. 힐패스도 굉장히 잘한다. 2015년이 된 현재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정리하자면 사비처럼 경악할 정확도의 패싱은 아니지만 다른 누구와 비교해도 화려한 패싱스킬에서만큼은 따라올 선수가 없다.

대포알같은 중거리슛이 일품. 12-13시즌 25라운드 유벤투스전에서 부폰도 어쩌지 못한 괴물같은 중거리슛을 넣어 팀의 1대0 승리에 공헌했다. 칩슛도 굉장히 잘찬다. 후술되어있듯 유로2000 4강 네덜란드전에서 반데사르를 상대로 파넨카킥을 차기도 했다.[8] 05-06시즌 인테르전에서 나온 칩슛은 단연 토티의 인생골.

나쁘지 않은 몸싸움 능력을 이용해 드리블 돌파도 꽤 훌륭했다. 그에 이어 탈압박도 뛰어난 수준. 특히 카테나치오 수비 후 역습[9]이라는 이탈리아 국대 전술에서 역습시에는 저 탈압박이나 키핑력이 훌륭한 역할을 했다.

스팔레티의 제로톱 전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메시가 펄스나인의 완전체라면 토티는 시초격인 선수. 2007년 당시 세리에 득점왕을 넘어 유럽 골든슈까지 수상할 정도의 득점력을 보여줬다.

뛰어난 득점력과 패싱, 드리블, 플레이 메이킹에 킥 능력도 뛰어나니 트레콰티스타를 대표하는 선수 아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데뷔 후 초창기에는 섀도우 스트라이커 위치에서 활동했으나, 당시 로마가 성적 관련해서 감독이 휙휙 바뀌다보니 토티의 포지션도 센터포워드로 갔다가 또 윙으로 빠지는 등 왔다리갔다리 하는 바람에 선수 본인조차 넋이 나가던 판국이었다. 그러다 로마 감독으로 부임해온 파비오 카펠로가 토티를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고정시키며 프리롤 + 플레이메이킹 임무를 부여, 지금의 토티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패싱 센스가 있던데다, 선수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다년간 행해졌던 전임 감독들의 삽질로 인해 골 결정력, 수비가담 능력 등을 더불어 갖추게 되었기에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프리롤 플레이어가 만들어졌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세리에A 우승 및 유로2000 준우승 당시 토티의 굇수스런 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시 온리원 우주괴수로 군림하던 지네딘 지단유일한 대항마로 평가받게 된다. [10]특히 2001년에 영입된 안토니오 카사노와 보여줬던 콤비플레이는 일단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우므로 찾아서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 본격 두 명이서 상대팀 관광 태우던 시즌

2006/2007 시즌 들어서 클럽 팀의 공격수들이 줄부상 및 닌자모드 ON으로 인해 공격수 자리에 들어갈 사람이 없어지자 루치아노 스팔레티 당시 로마 감독은 플레이메이커 토티를 원톱에 두는 초강수를 두는데... [11]

웬걸. 이 모 아니면 도의 초강수가 제대로 먹혀들어가며 팀은 막장가도를 달릴 것이란 여론따위 엿먹이며 세리에A 준우승을 차지하고, 토티 본인은 커리어 최초로 세리에A 득점왕을 넘어서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후 득점에 맛을 들였는지 원톱 자리와 플메 자리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로마를 먹여살리고 있다. 현재까지도.


토티의 인생골이라 부를수있는 06-07시즌 삼프도리아전 발리골이다 저기서 정확이 구석으로 넣는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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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키워드 중 두 개, 힐킥과 칩샷. 특히 저 칩샷은 거리, 선수의 속도, 만들어가는 과정 등으로 봐도 역대 최고의 칩샷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유로 2000 4강전에서 네덜란드와의 승부차기에서도 칩샷으로 승부차기를 성공하였다. 토티의 배짱과 능력 모두를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축구팬은 찾아보길 바란다.

3. 토티의 약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토티 하면 떠오르던 단어는 지랄 같은 성격. 실력 자체는 더할 나위가 없지만 불같은 지랄맞은 성격으로 인해 플레이가 잘 안 풀린다거나 상대 수비가 지랄 맞불을 놓는다 하면 폭발하기 일쑤였다. 한때 별명이 카드캡쳐 토티였고, 어쩔 때는 토티가 퇴장당함으로 인해 게임 자체가 붕괴되는 일도 잦았다. 단적인 예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대한민국 VS 이탈리아전으로, 이때 그는 한국인들에게 밉상으로 찍혔다.

또한 거기다 유로 2004 덴마크전에서 크리스티안 폴센에게 침을 뱉는 바람에 경고누적으로 퇴장 및 3게임 출장 불가. 유로2000 준우승팀이었던 이탈리아는 결국 조별예선에서 아웃당했고 "히드라"라는 욕까지 먹었다.

하지만 선수 본인도 자신의 거친 성품에 대한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고, 결혼 및 2세 출산을 거치며 서서히 불같던 성격도 사그러들기 시작해, 나이 서른이 넘어서자 어지간한 상황에선 눈 하나 깜짝 않는 대인배가 되었다. 과연 결혼의 힘은 위대하다.누가 생각난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세간의 드립 및 태클들을 "토티에 관한 모든 농담(Tutte le barzellette su Totti)"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우리나라에서는 토티는 못말려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다)에 한데 모아 출간해 주기까지. 자서전의 수익금은 유니세프 아동기금과 로마 내 구호소 설치에 기부하는 등, 이쯤 되면 오오... 대인배다.

4. 한국에서의 이미지

다른 거 다 필요없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한민국 VS 이탈리아전에서 보여준 다이빙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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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한창 해외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때 토티가 대한민국 팬들에게 비호감으로 찍히게 된 건 한국이 사상 첫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여 이탈리아와 첫 토너먼트 전을 이틀 앞둔 2002년 6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한 훈련캠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강하지만,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거만한 발언을 꺼냈기 때문이다.동영상

사실 이건 기자 병크가 크다. 토티는 분명 한국은 빠르고 좋은 팀이며 팀의 1:0 신승을 예상해본다는 인터뷰를 했지만, 언론 보도에는 위와 같은 거만한 내용으로 나와버린 것. 당시 인터넷이 막 활성화되던 시절이라 해축커뮤니티 및 정보를 찾기가 힘든지라 국내 언론에 의해 꽤나 날조되거나 내용이 바뀐 인터뷰나 선수들이 꽤나 많다. 당장에 동유럽의 검은 호나우두?? 나이지리아 국적이며 귀화한 폴란드의 스트라이커 마뉴엘 올리사데베는 그냥저냥 밥값하는 선수였는데 국내언론에 의해 세계제일의 골게터가 되었다.미 국방부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경계하는 외국인에도 포함되었다. 헨릭 라르손은 중원의 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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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그리고 이틀 뒤인 6월 18일에 치뤄진 본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들을 팔꿈치치기로 마구 팸으로서 어그로를 왕창 끌다가 첫번째 경고를 받았고, 연장전에서는 한국 골대의 페널티 구역 내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페널티 킥을 유도하려다 론 모레노 주심에게 딱 걸리는 바람에 두 번째 경고를 받아서 경고 2회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토티의 퇴장 직후 이탈리아는 급격히 무너졌고, 결국 연장 후반 안정환의 한 방에 이탈리아의 빗장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 당시 시뮬레이션 판정에 대해서는 시뮬레이션이 판정이 정당했다는 의견, 수비수에 걸려 넘어진 것이 맞고 오히려 페널티킥을 줬어야 했다는 의견, 시뮬레이션은 아니었지만 페널티 상황도 아니었다는 의견이 모두 나왔다.

어쨌든 기레기들의 농간과 이 사건으로 토티는 비호감 선수로 낙인찍히고 이탈리아 축구는 끝없는 저평가를 받은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이 여파는 생각보다 엄청나 토티가 현역으로 뛴다는 것 자체를 리그자체가 퇴물이 되었으니 퇴물이 날라댕긴다(...)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현재까지도 영향력이 크다.

5. 기타

'토티에 관한 모든 농담'은 우리나라의 최불암 시리즈와 유사하게, 이탈리아에서 퍼진 토티를 주인공으로 한 농담들이다. 토티가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얌체같은 이미지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에 기술된 것처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성격이어서 농담의 소재로 이용된 듯. 당연히 이탈리아 국대나 로마, 세리에 A의 선수들과 주변인물들이 인용되므로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축구팬들이라면 웃음지을 수 있다. 이곳을 참고. 이 시리즈를 모은 책이 한국에서 출시되었는데, 제목은 토티는 못말려이다.

또한 어떤 선수보다 비교가 많이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10년 이상 세계 최고를 유지해 왔으니 그럴 법도... 지네딘 지단, 카카, 폴 스콜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등과 자주 비교가 되곤 하는데, 이 네 선수를 직접 비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성기나 포지션 등이 달라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 오직 토티만이 이 선수들과 일대일로 비교할 데이터를 만들어낸 선수라고 할 수 있다.알고보니 전투력 측정기?

특히 유벤투스 FC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는 비슷한 축구 인생을 걷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지션도 그렇고, 팀에 대한 충성심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밀란의 파올로 말디니도 있었지만 말디니 옹은 수비수이고 나이가 토티와 델 피에로보다 많다. 토티와 델 피에로 이 둘은 실제로도 상대방을 존경한다고 알려져 있다.


2012-2013 시즌 세리에 A 29라운드 파르마전에서 38살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선보이며 말그대로 로마와 파르마 선수들을 레슨시켜주는 맹활약을 하였다.[12]

이탈리아 로마 여행시 흰색 페라리가 보인다면 한번쯤 자세히 보도록 하자. 토티의 애마 중 가장 자주 애용하는 것이 흰색 페라리 차량. 좀 웃긴 사실은 로마시민들 자체가 흰색 페라리 구입을 꺼려하며 흰색 페라리를 구입하면 심하게 깐다고 한다. 토티에 대한 존경의 의미라고 하는데 현지 가이드가 해준말이니 믿거나 말거나.


이젠 경기 도중에 트위터도 한다!! 이런 트인낭

사실은 로마 더비에서 2-1로 밀리는 도중에 동점골을 넣고는 세리머니를 한 뒤, 관계자에게 휴대폰을 빌려 셀카를 찍은 것.


셀카의 결과물인데 이로 인해 셀카고자 별명을 획득했다.

나이키에서 토티를 기념하기 위한 티엠포 축구화를 내놓았다. 텅이 긴 축구화를 선호하는 토티답게 텅이 길다. 하지만 노장인 클로제 피사로 드록바 같은 선수들도 텅 짧은 축구화를 잘만 신는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6. AS로마의 상징

이 모든 칭호는 라치오팬들에겐 예외일지도. 라치오팬들이 토티를 어떻게 생각하는진 SS 라치오문서 들어가보면 안다(...).


소년은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 했고, 교황은 그 소년을 위해 기도를 해준다.
그리고 청년이 된 그는 훌륭한 선수가 되어 다시 교황을 만나게 된다.

로마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두 인물 = 교황, 토티.

로마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두 인물 = 교황, 토티.

AS 로마 홈경기를 가면 선수 입장할 때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됨.

선수 입장하면 홈팬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프란체스코~" 그다음 일제히 앉으면서 "토티!"

가장 기부를 많이하는 선수, 오로지 AS 로마만을 위해서 뛰는선수.

전성기 시절 지단이 유일한 라이벌로 인정했던 선수, 전성기 시절 지뉴 라이벌 토티.

2006 독일 월드컵전에서 토티가 부상을 당하자, 이탈리아 국무총리가 병문안을 가서 월드컵을 참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2007년도 로마가 토티를 원톱으로 가동하는 전술을 사용해 봤는데 결과는 토티 유럽 리그 통합득점 1위.

유스부터 오로지 AS 로마에서만 뛴 선수.

레알 마드리드같은 초대형 클럽으로 이적해 엄청난 주급 그리고 트로피와 상을 모을 수 있었지만, 점차 로망이 사라지는 축구판에서 돈과 명예보다 의리를 택한 로맨티스트. 그래도 아주리의 10번 에이스로 활약해서 월드컵 우승했으니 그깟 리그, 챔스우승따위

지하묘지의 부족으로 총리가 사망해도 그 묘지를 사용할 수 없지만 토티의 자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할 정도이다.[13] 라치오 팬: 널 위한 무덤은 이미 준비해놨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자신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 약속했던 한 소년은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2015년 현재 이탈리아의 대통령인 르조 나폴리타노가 건강악화로 사임하자 이탈리아 의회는 급히 차기 대선후보 지명을 위한 투표를 했는데 토티가 5표나 받은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대선후보가 되기위해서는 50세이상이여야 해서 토티 표는 무효됨 # 토티가 로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까지 상징한다는걸 보여준다


7. 기록

7.1. 우승 기록


  • AS 로마 (1992/93 - )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European Under-21 Championship: 1996
    • Mediterranean Games (Under-23): 1997
    • FIFA World Cup: 2006

7.2. 준우승 기록


  • AS 로마 (1992/93 - )
    • Serie A (7) : 2001/02, 2003/04, 2005/06, 2006/07, 2007/08, 2009/10, 2013/14
    • Coppa Italia (5): 200203, 2004/05, 2005/06, 2009/10, 2012/13
    • Supercoppa Italiana (3) : 2006, 2008, 2010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European Under-18 Championship: 1995
    • UEFA European Championship: 2000

7.3. 득점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
1992/93 AS 로마 세리에 A 2 0 0 - - - - - -
1993/94 AS 로마 세리에 A 8 0 0 2 0 0 - - -
1994/95 AS 로마 세리에 A 21 4 4 4 3 1 - - -
1995/96 AS 로마 세리에 A 28 2 4 1 0 0 7 3 2
1996/97 AS 로마 세리에 A 26 5 4 1 0 0 3 0 0
1997/98 AS 로마 세리에 A 30 13 7 6 1 1 - - -
1998/99 AS 로마 세리에 A 31 12 14 3 1 0 8 3 4
1999/00 AS 로마 세리에 A 27 7 10 2 0 0 5 1 0
2000/01 AS 로마 세리에 A 30 13 3 2 1 1 3 2 0
2001/02 AS 로마 세리에 A 24 8 4 0 0 0 11 3 1
2002/03 AS 로마 세리에 A 24 14 4 5 3 3 6 3 2
2003/04 AS 로마 세리에 A 31 20 7 0 0 0 1 0 2
2004/05 AS 로마 세리에 A 29 12 9 7 3 2 4 1 1
2005/06 AS 로마 세리에 A 24 15 9 2 0 1 3 2 0
2006/07 AS 로마 세리에 A 35 26 9 5 2 3 9 4 2
2007/08 AS 로마 세리에 A 25 14 5 3 3 0 6 1 1
2008/09 AS 로마 세리에 A 24 13 4 0 0 0 7 2 1
2009/10 AS 로마 세리에 A 23 14 6 2 0 0 6 11 2
2010/11 AS 로마 세리에 A 32 15 10 0 0 0 7 2 1
2011/12 AS 로마 세리에 A 27 8 7 2 0 2 2 0 1
2012/13 AS 로마 세리에 A 34 12 12 3 0 0 - - -
2013/14 AS 로마 세리에 A 26 8 10 3 0 1 - - -
2014/15 AS 로마 세리에 A 21 5 5 2 0 0 7 2 1

7.4.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상 : 1999
  • 세리에 A 득점왕 : 2006-07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 1999-2000, 2002-03
  • ESM 올해의 팀 : 2000-01, 2003-04, 2006-07
  • 유러피언 골든슈 : 2008
  • FIFA 100 : 2004
  • USSI 실버볼 : 2007-08
  • 골든풋 : 2010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 2006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올스타 팀 : 2000
  • UEFA 유로 2000 맨 오브 더 매치 : vs. 벨기에 (조별리그)
  • 올해의 이탈리아 축구선수 : 2000, 2001, 2003, 20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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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로마 구단주가 은퇴 즉시 영구결번으로 지정 예정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
  • [2] 예의 상 라치오팬들을 배려해서 라치오는 빼자...
  • [3] 축구 역사상 지단에 비견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몇 없고 지단 본인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인 마라도나와 크루이프랑 비교되는 수준이니 이는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 중 하나.
  • [4] 펩은 02/03시즌 브레시아 칼초에서 AS 로마로 이적했다. 당시 31세에 불과했으나 폼이 엄청 떨어진 상태였고, 에메르손과 톰마시에 밀려 불과 4경기만 출전했고 반년만에 팀을 떠난다
  • [5] 흥미롭게도 실비오 피올라는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낸 선수다!
  • [6] 2014년 1월 말 기준 232골로 42골이 남은 상태다. 못 넘을거야 아마. 3경기당 한골을 넣는 현재 감각을 유지한다고 쳐도 120경기를 더 뛰어야 하는데, 최소 4시즌이 더 필요하다는 소리다. 참고로 올해 나이 39...
  • [7] 만 38세 3일, 종전기록은 라이언 긱스의 만 37세 289일
  • [8] 다른 경기에서 파넨카킥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기도 하다. 실패한 후 창피했는지 애꿎은 골키퍼한테 화내는게 볼거리
  • [9] 빠른 역습까진 아니다. 기본적으로 수비에 충실한 것이 이탈리아 전술
  • [10] 토티의 진정한 전성기는 유로 2000 이후부터 유로 2004 직전까지의 시기다. 당시 세리에에서 토티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01/02시즌부터 05/06시즌까지 앙리가 epl에서 보여준 것에 무엇 하나 꿇릴 게 없었다. 그야말로 세리에의 왕 노릇을 제대로 한 선수로, 이후 세리에 킹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즐라탄조차 세리에에서 토티만한 존재감을 과시한 시즌은 08/09, 11/12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를 감안할때, 국대에서 활약이야 지단한테 밀릴지언정, 유베 시절 클럽에선 국대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던 지단이므로 토티가 그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던 건 단순한 호사가들의 입방정만은 아니었다. 네드베드는 02/03 한시즌은 분명 대단했지만 그 한시즌 제외하면 토티만큼 리그를 씹어먹었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전 라치오 시절엔 베론과 팀내 비중에 있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유베 이적 첫시즌인 01/02시즌엔 델피에로나 트레제게보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02/03시즌은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긴 했지만 03/04시즌엔 유벤투스 자체가 카모라네시와 부폰을 제외하면 전부 나락으로 빠졌던 시즌이며, 04/05시즌부터 네드베드는 준수한 사이드 레귤러 자원이었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토티가 말아먹은 유로 04때는 네드베드가 토티보다 잘하긴 했다. 이외에 언급된 세도르프나 루이코스타는 전성기 시절엔 토티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둘다 토티만큼의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했을뿐이다. 이 중 세도르프는 전성기라 일컫는 밀란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주로 출전하였다. 중미로써의 세도르프와의 비교는 포지션이 달라 딱히 꼽기도 어렵다. 밀란의 막장화도 피를로보다는 세도르프의 노쇠화가 더욱 더 큰 원인이 되어 결국 피를로를 포기하는것으로 발전했으니까.
  • [11] 거의 최초의 제로톱이라고 보면 된다. 스팔레티가 전 클럽에서도 제로톱을 사용했는데 폭삭 망했지만 토티에게는 대성공.
  • [12] 아나운서는 계속 No Totti No Party를 계속 언급한다. 이 표현은 사실 외국 중계진들이 토티가 환상적인 활약을 할때마다 자주쓰는 표현.
  • [13]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며 일종의 팬 투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