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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폰 아둔야뎃

last modified: 2017-12-06 12:56:29 Contributors

역대 태국 국왕
라마 8세
(아난타 마히돈)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라마 10세
(마하 와치랄롱꼰)

왕호 라마 9세, 대왕 (Rama IX, the Great)
이름 푸미폰 아둔야뎃 (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생년월일 1927년 12월 5일 ~ 2016년 10월 13일 (88세)
출생지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재위기간 1946년 6월 9일 ~ 2016년 10월 13일 (70년)
대관식 1950년 5월 5일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Phra Bat Somdet Phra Poramintharamaha Bhumibol Adulyadej, Phra bat somdet phra poramintharamaha phumiphon-adunyadet).

푸미폰 아둔야뎃(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Bhumibol Adulyadej)은 태국의 현 국왕으로 짜끄리 왕조의 라마 9세이다.

일촉즉발의 정치적 위기의 순간마다 중재자 역할을 맡아 태국 국민으로부터 대왕 [1]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지금은 노쇠하여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 외아들인 마하 와찌랄롱꼰(มหาวชิราลงกรณ) 왕세자의 인기가 바닥을 쳐서 푸미폰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왕정이 폐지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Contents

1. 칭호
2. 어린 시절
3. 재위기간
3.1. 갑작스런 즉위와 결혼
3.2. 성군의 양면
3.3. 현존하는 세계 최장 집권 군주
3.4. 서거
4. 가족관계
5. 개인적인 면

1. 칭호

푸미폰 국왕의 공식적인 칭호는 다음과 같다.

태국어: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มหิตลาธิเบศรรามาธิบดี จักรีนฤบดินทร สยามินทราธิราช บรมนาถบพิตร

알파벳 음독: Phra Bat Somdet Phra Poramintharamaha Bhumibol Adulyadej Mahitalathibet Ramathibodi Chakkrinaruebodin Sayamminthrathirat Borommanatbophit

한글 음독: 프라 밧 솜뎃 프라 뽀라민타라마하 푸미폰 아둔야뎃 마히뜰라티벳 라마티보디 짜끄린리쁘딘톤 사야민트라티랏 보롬나트보핏 헥헥

2. 어린 시절

푸미폰은 미국 유학 중이던 아버지 마히돈 아둔야뎃 왕자와 어머니 시나가린드라의 차남으로 1927년 12월 5일 태어났다. 마히돈 왕자는 학업을 마치고 1928년에 태국에 돌아왔지만 다음해에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시나가린드라는 자녀들을 데리고 1933년 스위스로 이사했고 푸미폰은 로잔에서 학교를 다니며 1945년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3. 재위기간

3.1. 갑작스런 즉위와 결혼


친형인 아난타 왕자는 1938년에 라마 8세로 즉위했을 때 대관식을 위해 태국에 잠깐 들렀을 뿐 동생 푸미폰과 마찬가지로 학업을 마치기 위해 스위스로 돌아갔다. 라마 8세가 귀국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이었지만 귀국 1년만인 1946년 6월 9일 의문의 총기 사고로 사망하자 동생 푸미폰이 라마 9세로 즉위했다. 라마 8세의 의문사에 관해서 각종 음모론이 떠돌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새 국왕이 된 푸미폰은 학업을 마치기 위해 섭정을 임명하고는 다시 스위스로 날아가 대학 학위를 마친 뒤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는데, 여기에서 주프랑스 태국 대사의 딸이자 자신과 사촌인 시리낏을 만났다. 그는 1948년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는데[2] 자주 병문안 온 시리낏을 사랑하게 되어 1949년 약혼하고, 즉위식 일주일 전인 1950년 4월 28일 결혼식을 올렸다. 1956년에는 태국의 전통에 따라 불교도[3]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찰에 들어갔고, 그 기간 동안에는 시리낏 왕비가 섭정으로 공무를 대행하기도 했다.

3.2. 성군의 양면

1932년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로 라마 7세가 외국으로 망명하면서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지만 이후 태국은 60여 년간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상태였고 푸미폰은 권력 없는 허울뿐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현실 정치에서 조정자 역할을 통해 권력 대신 권위를 얻었고 60~70년대의 동남아시아 국가의 공산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 라마 7세 이후로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차근차근 회복해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려운 국면에 처했을 때 국왕은 국가의 상징으로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태국 헌법 6조 때문.

1992년에는 수찐다 크라쁘라윤을 위시한 군부가 '검은 5월 사건'을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자 방콕 시장인 잠롱 스리무앙의 주도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경찰 병력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총기를 발포해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결국 푸미폰이 친히 나서서 수찐다와 참롱을 왕궁으로 불렀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뉴스방송 화면.


어전에 들어와 왕실 예법대로 바짝 엎드려 기어서 알현한 두 사람 중 수찐다를 향한 푸미폰의 일성은 "부적절하다". 이 한 마디에 쿠데타의 정당성을 승인받지 못한 수찐다는 외국으로 망명했고 수찐다 내각은 무너졌으며 이후 실시된 총선거를 통해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사건으로 푸미폰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고 세계 언론들은 쿠데타의 주모자가 문자 그대로 설설 기게 만든 그의 카리스마에 놀라워했다. 이 분과 닮았다 말 한마디로 쿠데타를 진압한 패왕색 패기

또한 전국 곳곳을 순시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농촌 개발과 지방 경제 진흥책을 도모하는 등 태국인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아, 국왕 탄신일이 다가오면 태국 전체가 국왕의 상징색인 노란색으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곳곳에 초상화가 걸리는 등 그야말로 살아 있는 이나 다를바 없는 상황. 새로운 내각이 출범할 때 총리와 장관들은 푸미폰의 초상화에 엎드려 절을 올리는 것이 공식적인 의례이기도 하다. 왼쪽 사진은 2011년에 새 총리가 된 잉락 친나왓[4]

하지만 푸미폰이 왕권 강화를 위해 쿠데타를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있으며 심지어는 이를 방조했다는 의혹도 국외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이랬다간 코로 똠양꿍 마실지도 모른다. 2006년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친나왓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의회를 해산하고 총리는 해외로 망명했는데, 군부가 내세운 쿠데타 이유는 탁신의 부패 스캔들 때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왕실과 군부를 위시한 기득권 세력과 불편한 관계였던 탁신을 내쫓는 데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

2014년 5월에 일어난 쿠데타 또한 그의 승인이 떨어짐에 따라 다시금 민정이 힘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3.3. 현존하는 세계 최장 집권 군주


푸미폰 국왕은 2014년 기준으로 87세에 재위기간 68년째로, 현재 생존한 군주들 중 최장 집권을 자랑하고 있다. 즉위 60주년이 되는 2006년에는 이를 축하하는 성대한 행사가 국가적으로 거행되었다. 우선 태국 전역에서 노란색 티셔츠와 함께 '국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라는 문구가 적힌 손목띠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8,400여 명의 승려들이 푸미폰을 위해 기도했으며 탄신일 이틀 전에는 정당들이 일주일 간 정쟁을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의회도 6월 9일을 국경일로 지정해 분위기를 달궜으며, 이날에는 세계 각지의 24개 군주국에서 국왕, 왕비, 왕세자, 왕족들이 왕실 만찬에 참석해 역사상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했다.

워낙 고령이다보니 2007년2009년, 2011년에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국민들은 국왕의 쾌차를 바라며 성심껏 기원한다. 이는 푸미폰이 오랜 세월 범접하기 힘든 성군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던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왕세자의 즉위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아래 항목을 참조 바람. 하지만 워낙에 고령인데다 2014년 10월에는 복강경을 통한 담낭(쓸개) 제거술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되어 앞으로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라 국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3.4. 서거

2016년 1월에 휠체어에 탄 상태로 왕궁을 둘러보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투병하던 끝에 2016년 10월 13일 오후 3시 52분에 시리라즈 병원에서 서거하였다. 향년 88세.

왕실 사무국 측에서는 최초 발표 당시에는 국왕의 사망 원인과 애도 기간, 후계 구도 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그 후 쁘라윳 총리가 "정부는 왕위 승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왕께서 지난 1972년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NLA)에 통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앞으로 1년간 애도 기간을 두고, 서거일로부터 30일간은 축제를 열지 않기로 하였다. 이후 12월 1일, 왕세자 마하 와찌랄롱꼰이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4. 가족관계

1950년 4월 28일에 결혼한 시리낏 왕비와의 사이에서 우본라따나 공주(1951년 4월 5일생), 와찌랄롱꼰 왕세자(1952년 7월 28일생), 짜끄리 시린톤 공주(1955년 4월 2일생), 쭐라폰 왈라일락 공주(1957년 7월 4일생)의 1남 3녀를 두었다.

와찌랄롱꼰 왕세자가 푸미폰의 외아들인 만큼 아버지보다 먼저 죽지만 않는다면 그가 차기 국왕이 될 것은 확실하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사생활에 추문이 잇따라 시리낏 왕비 한 사람과 60년간 해로한 푸미폰과 대비되어 평판이 매우 좋지 못하다. 일부에서는 왕세자의 여동생 짜끄리 시린톤 공주의 여왕 즉위를 바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5][6] 물론 이는 국외에서 오가는 내용이며 국내에서는 쉬쉬하고 있다.

게다가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따르면, 푸미폰은 파킨슨병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왕위계승자인 와찌랄롱꼰 왕세자는 에이즈C형 간염 등의 혈액 관련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왕세자의 누이들이 왕위계승권을 노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태국 왕가 대 끊길 판 이런 와중에 친정 식구가 연루된 대형 부패 스캔들로 인해 2014년 12월 13일 스리라스미 왕세자빈이 왕세자와 이혼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왕세손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기사

5. 개인적인 면

푸미폰은 1천여 건이 넘는 농업관련 기획을 주도하고 토지개혁을 위해 왕실 소유지를 제공하는 등 태국의 농업 진흥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인공강우와 관련하여 구름씨 뿌리기 국제기술특허를 가지고 있어서 가뭄이 극심할 때 인공강우를 성공시켜 친히 비를 내리게 만들기도 했다. 성은이 망극

한편 스위스에서 유학할 때부터 재즈 음악을 좋아해 색소폰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하며 음악적 재능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태국어를 포함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산스크리트어 등 5개 언어에 능통해 손수 영어 서적을 태국어로 번역했으며, 정기적인 사진 전람회를 여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요트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ㅎㄷㄷ

미국의 경제지 브스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재산이 350억 달러로 세계의 군주들 가운데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칼리파 국왕(230억 달러), 3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210억 달러), 4위는 브루나이의 하사날 볼키아 국왕(200억 달러), 5위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무하마드 국왕(180억 달러), 6위는 리히텐슈타인의 한스 아담 2세(50억 달러), 9위는 모나코의 알베르 2세(14억 달러), 14위는 영국엘리자베스 2세(6억 5천만 달러) 순이었다.웬만한 기름국 군주들보다 재산이 많다 그나저나 김씨왕조는 집계되지 않았다. 아니면 집계도 못할 만큼 돈이 없거나 푸미폰의 재산이 급등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태국 왕실이 방콕 등지에 소유하거나 명목상의 부동산이 공개되어 새로 집계된 결과 전년도 추정액보다 7배 가량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7].
또한 국왕이 소유하고 있는 은행이나 시멘트 회사의 물건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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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짜끄리 왕조에서 대왕 칭호를 받은 왕은 두 명이다. 태국의 독립을 유지한 라마5세 쭐랄롱꼰 대왕과 라마9세. 게다가 라마9세는 살아있을때 대왕의 칭호를 받았다.
  • [2] 이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푸미폰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 눈이 어딘가 어색하게 보이는 것이 이 때문.
  • [3] 태국 헌법에서는 불교신자만 국왕으로 인정한다.
  • [4] 참고로 2006년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전 총리의 막내 동생이다.2014년 5월 쿠데타로 실각했다.
  • [5] 그러나 왕세자에게 자녀들이 있고 또 합법적 계승자인 아들이 1명 있므로 계승권은 뒤로 밀린다. 원래 왕세자에게 아들은 5명이나 있는데 둘째 부인에게서 얻은 4명은 영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계승권이 없다. 현 계승권자는 셋째 부인의 아들.
  • [6] 자세히 말하면 와찌랄롱꼰 왕세자는 결혼을 3번 했는데(2번 이혼), 첫 번째 부인에게서 딸 하나, 두 번째 부인에게서 4남 1녀, 현재의 왕세자빈에게는 아들 하나를 얻었다. 참고로 두 번째 부인의 자녀들은 두번째 부인과 같이 영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태국으로 돌아온 딸 1명(이쪽은 할아버지인 푸미폰이 왕위 계승권을 정식으로 부여해주었다.)만 빼고는 왕위계승권이 박탈되었다.
  • [7] 물론 실질적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왕이 넘사벽으로 1위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영회사이지만 사실상 왕족의 사유회사로 취급하는 아람코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태국의 국왕은 명함도 못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