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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3세

last modified: 2014-11-07 13:44:24 Contributors


역대 러시아 제국 차르
엘리자베타 여제 표트르 3세 예카테리나 2세

One of the most peculiar cases of the right man at the right time was Peter III of Russia. An ardent admirer of Prussian miloiterism and Fredrick the Great, he became tsar just in time to take Russia out of the coalition against Frederick at the moment when the latter was facing catastrophe. Peter III, soon thereafter killed, was on the throne just long enough to save Prussian militarism. A nincompoop himself, a man who certainly had no conception of the importance of his act, he nevertheless indirectly played an important part in the molding of modern Europe. - by. Carl G. Gustavson


역사를 바꿨다고 볼 만한 사람들 중 가장 기묘한 케이스는 러시아의 표트르 3세입니다. 프로이센 군국주의와 프리드리히 대왕의 열성적인 팬으로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7년전쟁에서 재앙을 맞이하는 도중 딱 맞는 시간대에 즉위해서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교전을 중단시켰습니다. 표트르 3세는 곧 죽임을 당했지만 프로이센 군국주의를 구할만큼 적절한 기간 동안 즉위해 있었습니다. 멍청이답게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고, 본의 아니게 현대 유럽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 <역사의 서문> 칼 G. 구스타브슨
[1]



본명은 카를 페터 울리히(Karl Peter Ulrich). 러시아식 이름은 표트르 표도로비치(Пётр Фёдорович).
생몰 1728. 2. 21 ~ 1762. 7. 17
재위 1762. 1. 5 ~ 1762. 7. 9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7대 차르. 재위기간은 극히 짧고 업적이랄 것도 없으며 오히려 본국에선 오명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2]

Contents

1. 러시아의 황제
1.1. 유년기
1.2. 싹수가 노랗다
1.3. 즉위와 동시에 병크
1.4. 폐위와 의문사
1.5. 번외: 차르 스체판
2. 슈발리에의 등장인물

1. 러시아의 황제

1.1. 유년기

홀슈타인-고토로프(Holstein-Gottorp) 가문의 독일-스웨덴계 귀족으로, 본명은 카를 울리히이다. 10살을 갓 넘겼을 때 부친을 잃고 작위를 이어받아 홀슈타인 공작이 되었다. 어머니는 표트르 1세예카테리나 1세의 장녀 안나 페트로브나(Анна Петровна).

이모인 엘리자베타 여제가 독신이었던 관계로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러시아의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독일계인 작센-안할트의 조피 프레데리케와 결혼했다. 이 둘은 같은 독일인이라 서로 죽이 잘 맞을 거 같았지만…

1.2. 싹수가 노랗다

결혼한지 얼마 후 아내가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 정교로 개종하는 한편 이름도 러시아식으로 바꾸는 등 스스로를 러시아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그는 태어나고 자란 독일의 향수를 잊지 못하여 독일의 문화를 사랑하고 러시아어를 배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 러시아 궁정 귀족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사실 이 정도면 그러려니 하는데… 표트르 3세는 7년 전쟁 중 자기 입으로 적국인 프로이센에게 군사기밀을 넘기겠다는 등의 실언을 여러 차례 하면서 민심까지 잃어버렸다. 그래도 그냥 고향이 독일이니까 안타까워 하는 말 정도로 치부했지만… 아직 황제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러시아에 적응하고 있었던 아내와 크게 충돌하여 부부관계도 소원해졌다. 표트르 3세 사후, 사실 그는 고자였다!부터 시작해서 지적장애나 반미치광이 등등 온갖 유언비어가 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그 개인도 바람을 피는 등 부부생활은 막장을 향해 치달았다. 그러나 어쨌든 일단 둘 사이엔 자식이 셋 있었다. 서로 바람피웠다는 식으로 친아버지가 표트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있지만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사실 아들인 파벨 1세를 보면 표트르 3세와 붕어빵이기 때문에[3] 친아버지가 맞다는 의견이 주류.

1.3. 즉위와 동시에 병크

여하간 1761년 12월 25일, 옐리자베타 여제가 사망하자 표트르 3세가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 즉위했다. 그의 즉위로 러시아의 왕조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로프-로마노프 왕조로 교체된다. 즉위하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추진한 정책은 바로….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그만둔다!

7년 전쟁 항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이 시점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프랑스-스웨덴으로 연결되는 4국 동맹은 전쟁에서 다 이긴 상황이었다. 프로이센의 최대 요새인 콜베르크가 러시아군에게 함락되었고, 수도 베를린은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군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프리드리히 2세는 재킷 속에 을 숨겨놓고 다니며 언제든지 자살할 준비를 하고 있던 판국이었으니….

그래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활용하여 영토 할양이나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냐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무조건적인 평화를 제의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얼쑤 하고 이 제의를 받아들인 건 당연지사. 그걸로 부족해서 동맹국인 스웨덴을 구워삶아 스웨덴마저 전쟁에서 이탈시켰다.

거기다 러시아 정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들에게 자신이 믿는 개신교의 목사들처럼 하고 다닐 것을 강요하는 등 교회마저 적으로 돌려버렸으니 실각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러시아의 군부와 상식있는 궁정 귀족들은 이 멍청한 암군의 병크에 기가 막혀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을 외치며 차르를 갈아치우고자 했으며, 이에 부부관계가 파탄지경이었으나 대신 완벽히 러시아화하여 러시아 전통 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던 황후가 전면에 나섰다. 이 시기 즈음 표트르도 사이가 나쁜데다 러시아에서 인기가 좋은 예카테리나를 제거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말이 있다.

1.4. 폐위와 의문사

1762년 6월, 표트르 3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난 틈을 타 황후 예카테리나가 그레고리 오돌로프라는 친위대 장교 등 황실 근위대[4]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궁정 쿠데타를 감행했다. 여기에 귀족 및 교회 세력이 일제히 지지를 천명했고, 수도 바깥의 군 세력도 모조리 예카테리나를 지지하자 표트르 3세는 결국 못 버티고 GG쳤다.

실각한 표트르 3세는 성에 유폐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했는데, 암살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증거는 없다. 사인은 심한 복통으로 인한 출혈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졌는데, 국왕이 자살을 진지하게 고심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 붕괴 직전인 프로이센을 구원하고, 스웨덴을 전쟁에서 이탈시키고, 다 이긴 전쟁을 말아먹게 만듬으로서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대국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게 빅엿을 먹이고, 마누라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고 거기다 귀족,근위대 + 군대,종교단체 등등이 죄다 마누라를 지지할 정도로 병신 인증을 하는데 고작 6개월 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짦은 시간에 역사를 움직였으니 병신짓도 참으로 짦고 굵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암군이라고 욕먹어도 싼 팔푼이.

1.5. 번외: 차르 스체판

1766년 크리스마스날, 표트르 3세라고 자칭하는 남자가 몬테네그로에 나타났다. 후에 '작은 스체판'(Scepan Mali)라고 불리게 될 그가 진짜 표트르 3세라고 믿었던 몬테네그로인들은 스체판을 차르로 추대하였다. 당시 몬테네그로의 통치자였던 블라디카(주교공) 사바는 그가 사기꾼임을 사람들에게 알렸으나 오히려 역관광당하고 구금당하였다. 몬테네그로의 이웃 국가인 오스만 제국베네치아는 이 가짜 차르를 토벌하기 위해 각각 1768년과 1770년에 군대를 보냈으나 전부 실패하였다.

가짜 드미트리라는 선례가 있던 러시아는 이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예카테리나 대제는 스체판을 제거하기 위해 게오르기 돌고루코프 공을 특사로 보냈다. 돌고루코프 공은 스체판의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했지만 몬테네그로인들은 그에 개의치 않고 스체판을 여전히 차르로 모셨다. 결국 돌고루코프 공은 스체판을 제거하는 것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진짜 표트르 3세와는 달리 스체판은 유능한 통치자였다. 스체판의 제위 기간 6년 동안 몬테네그로의 부족들 사이에 만연했던 분쟁이 사라졌고, 1771년에는 유력 부족장들로 구성된 상설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그의 명으로 도로망이 건설되었고 러시아군을 본떠서 편성된 상비군이 만들어졌으며 처음으로 전국적인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

스체판은 1772년 예카테리나 대제로부터 러시아군 중장 계급과 성 블라디미르 훈장 2급을 받았으나, 1773년에 오스만의 사주를 받은 이발사에게 암살당하였다.

2. 슈발리에의 등장인물

모티브는 1이다. 원판이 찌질한 위인이었던지라 애니에서도 인간 쓰레기로 묘사되었다. 툭하면 술 마시고 아내를 상습적으로 구타하며 이모 엘리자베타 여제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그걸 아내에게 덮어씌우려 하는 등(...). 결국 이모가 시해되자 이젠 내가 황제라며 희희락락하지만, 여제의 유지를 이어받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반격에 나선 아내 예카테리나 2세가 그의 음모를 공표하고 귀족들의 동의하에 황제가 되면서 졸지에 폐위당하고 궁전의 정원에서 교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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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해당 글귀는 구스타브슨 교수의 역사 입문서 <역사의 서문>에 있는, 영웅론에 대한 반박 중 일부분이다. 참고로 함께 언급되는 인물들은 윈스턴 처칠, 나폴레옹, 표트르 1세, 프리드리히 2세같은 당대의 쟁쟁한 영웅들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은 모두 하나씩 이유를 붙여서 어떻게 이들의 재능 하나가 역사를 뒤바꾼게 아니라는 점을 피력하는데 표트르 3세는 케이스가 하도 황당해서 그런지 의도가 없었다라는 식으로 그냥 퉁치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찝찝하다
  • [2] 사실 철종마냥 어디서 데려온 듣보잡 왕족의 이미지도 있는데 실제로는 표트르 대제의 외손자다. 아래의 가족관계 설명 참조. 같은 이름으로 외조부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 [3] 외모와 성격 모두 아버지와 너무나도 닮아서 어머니 예카테리나 2세와 극도로 사이가 나빴다.
  • [4] 황제를 지켜야 하는 황실 근위대가 쿠데타에 가담했으니 표트르 3세가 얼마나 신망을 잃었는지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