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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

last modified: 2018-01-11 21:46:43 Contributors


포항 스틸러스
정식 명칭 포항 스틸러스 축구단
영문명칭 FC Pohang Steelers
법인명 ㈜포항스틸러스
구단 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포스코
소속 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 연도 1973년
팀명 변천사 포항제철 축구단(1973~1982)
포항제철 돌핀스(1983~1984)
포항제철 아톰즈(1985~1996)
포항 스틸러스(1997~현재)
연고지 경상북도 포항시
홈 구장 포항스틸야드 (18,960석/수용가능인원 : 25,000명)
역대 홈 구장 포항 종합 운동장(1987~1990년/2013년[1])
대구 시민 운동장(1987년)[2]
광양축구전용구장(1993~1994년)[3]
포항스틸야드 (1990년~)
상징색 검은색, 빨간색
용품 스폰서 험멜[4]
셔츠 프린팅 posco, 포스코켐텍[5]
유니폼 홈: 검은색, 빨간색 가로 줄무늬 상의[6]/검은색 하의
원정: 흰색 상의/검은색 하의
라이벌 울산 현대
대표 이사 김응규
단장 이재열
감독 최순호
주장 황지수
부주장 김태수
마스코트 포리, 토리
홈페이지 http://www.steel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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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 산하 스포츠단
포항 스틸러스
(축구)
전남 드래곤즈
(축구)
포스코건설 럭비단 포스코건설 체조단
스코에너지 탁구단 스코특수강 배드민턴단 포스코켐텍 바둑단

Contents

1. 개요
2. 유소년 시스템
3. 우승 기록
3.1. 상세 경력
4. 연혁
4.1. 2009년 이전
4.2. 영광의 2009년
4.3. 2010년, 다시 찾아온 암흑기
4.4. 2011년, 아쉬움이 컸던 황선홍호의 출항
4.5. 2012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스틸러스
4.6. 2013년, 황선 대원군과 K리그 30년 최초의 더블(리그 + FA컵)
4.7. 2014년. 쇄국 축구의 몰락
4.8. 2015년, 개항. 그리고 와신상담
5. 스틸타카와 스틸러스 웨이
6. 전통과 인기, 그리고 응원가 영일만 친구
7. 블레즈(BLEDS)
8. 라이벌과 주요 더비
8.1. 영남 더비울산 현대
8.2. 클래식 라이벌. 성남 FC
8.3. 원조 축구 수도 vs 신흥 축구 수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
8.4. 제철가 형제, 전남 드래곤즈
8.5. 서로 다른 검빨, 그리고 박주영. FC 서울
9. 스토리
9.1. 클럽하우스
9.2. 선수 육성과 FA의 악연
10. 레전드/선수명단
10.1. 유니폼
10.2. 과거 엠블럼
10.3. 비하인드

1. 개요

My way, Steelers way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된 프로 축구 클럽으로[7] 한국 축구의 레전드들의 산실. 40년의 역사와 함께 K리그 5회 우승(1986, 1988, 1992, 2007, 2013), 대한축구협회 FA컵 최다 우승(1995, 2008, 2012, 2013)과 AFC 챔피언스 리그(1997, 1998, 2009)에서도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의 강호이다. 지방 구단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명성과 성적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명문 구단이기도 하다.

외국 주주들 눈치를 안 보던(...) 1990년대에는 나름 갑부 구단이었으나, 포스코에 외국 주주들이 득실댄 이후로는 자금 지원을 빵빵하게 받는 수도권 구단에 비해 항상 부족한 예산에 시달리고 해마다 키워둔 선수들을 빼앗기는 등 조금 안습한 상황. 하지만 팬들에겐 짠돌이라고 욕먹는 모기업 포스코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지원을 하는 데다[8] 이미 1990년 중반부터 체계를 다진 포철동초서초는 축구부가 없다-포철중-포철공고/포철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클럽의 힘으로 꾸준히 선수들을 발굴. 해마다 선수들을 사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상위권 팀들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보여준다.[9]

유망주 위주의 선수단 구성도 그렇고, 화려한 패스 축구의 팀 컬러도 그렇고, 이유는 다르지만 돈을 못 써서 상위 팀들에게 키워 둔 선수들을 털리는 것도 똑같고 여러모로 K리그의 아스날. 심지어 한준희 축구 해설 위원은 이런 포항을 아스날에 빗대어 "포스날"이라 칭하기도 한다.바보 육성 밖에 모르는 바보 그리고 진짜로 구단에 돈이 없어 외부 영입은 못하고 유스에만 몰빵하면서 팀의 주축이 죄다 어린 선수들로 채워지고 있다. 황선홍 유치원 하지만 이러한 유스 몰빵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며 2014년에는 포항 U-18 팀이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시티 유스를 2:1로 잡아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경기 영상).

아톰즈.jpg
[JPG image (Unknown)]


사진 좌측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레전드인 황선홍, 홍명보, 라데[10]

1973년 포항종합제철 소속 실업 축구단으로 창단. 1984년 슈퍼 리그가 출범하면서 돌핀즈로 이름을 바꾸며 프로로 전환. 다음 해인 1985년 아톰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경했다.[11] 이후 1995년 법인화를 거쳐 시민 구단 형태로 1997년 포항 스틸러스로 팀명을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관련 글). 서포터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네오 마린스 등 3개의 서포터즈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2012년 Ultras Levante(울트라스 레반테)로 통합되었다.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전국에 퍼져 있는 팬들도 상당히 많은 편. 수원 정도를 제외하면 K리그에서 이 정도로 전국구인 구단은 없다고 봐도 좋다. 때문에 원정 경기에서 전혀 응원전에서 밀리지 않으며 서울, 수원과의 빅 매치에선 원정 거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포항 팬들이 집결하여 원정석 1층을 점령하다시피 하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12][13] 성적 역시 1973년 창단 때부터 강호였으며 몇 차례 암흑기가 있기도 했으나 꼬박꼬박 6강에는 들어갔고, 정규 리그 우승 횟수는 5회로 7회인 성남 일화 천마에 이어 FC 서울과 함께 리그 2위. 그리고 한때 콩라인으로 불릴 정도로 준우승과 플옵 탈락의 고배도 많이 마신 편이다. 그래도 지역 라이벌인 울산보다 우승 횟수가 많고 준우승 횟수가 적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

그래서 포항의 최대 약점은 '포항이 지방 도시라 포스코 이외의 거대 스폰서가 붙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진 구단이다. 한국 최초의 클럽하우스를 가진 팀이기도 하고 가장 선진화된 유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국적인 인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 유소년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U-12 포항제철 동초등학교
(육성반)
포항제철 서초등학교
(보급반)
U-15 포항제철 중학교
U-18 포항제철 공업고등학교
(2004~2012)[14][15]
포항제철 고등학교
(2013~현재)

3.1. 상세 경력

우 승 기 록
우승 준우승
K리그 클래식
(5회)
1986, 1988, 1992, 2007, 2013[16] K리그 클래식
(4회)
1985, 1987, 1995, 2004
리그컵
(2회)
1993, 2009 리그컵
(0회)
-
FA컵
(4회. 최다 우승)
1995, 2008, 2012, 2013 FA컵
(3회)
2001, 2002, 2007
AFC 챔피언스 리그
(3회, 최다 우승)
1997, 1998, 2009[17] AFC 챔피언스 리그
(0회)
-
A3 닛산 챔피언스컵
(0회)
- A3 닛산 챔피언스컵
(1회)
2005
기타 기록
2009 FIFA 클럽 월드컵: 3위[18]
AFC 챔피언스 리그 K리그 최다 출전(9회)[19]
클럽 수상
2009 AFC 선정 올해의 아시아 최고 클럽
실업 축구 당시 우승기록 [20]
제22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1974)
제12회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 리그 우승(1975)
제14회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준우승(1977)
제3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現 대한축구협회 FA컵) 준우승(1977)
제18회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추계리그 우승(1981)
1982 코리안 리그(제19회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4. 연혁

4.1. 2009년 이전

1986, 1988, 1992년 우승 컵을 들어올리고 90년대 중반 한국 축구의 강호로서 축구계를 호령했으나 주축 멤버(황선홍, 홍명보, 라데, 문식, 박창현 등)들이 이적, 은퇴 등으로 떠나고 나서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는다. 매년 6강은 꼬박꼬박 들면서도 이때부터 이어진 FA 삽질기와 플레이오프에서 이어지는 불운(울산, 수원) 등으로 무려 15년 동안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FA컵 우승,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2연속 우승을 하는 등 리그에서만 암흑기라는 말이지 그 이외에는... 타 팀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뿐

이후 2004년 K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2005년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포항 스틸러스에 부임, 2007년에 리그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경남, 울산, 수원, 성남을 차례로 꺾으며 4번째 우승 컵을 들어올렸다. 포항으로서는 악연 많은 3인방(울산, 수원, 성남)을 모조리 꺾고 올라가서 15년 만에 우승 컵을 들어올리는 대감격을 누렸고 상대편 팀들은 "어떻게 리그 5위가 최종적으로 우승하냐! 이건 무효야!(...)"하면서 한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성남 팬들은 아직도 2007년만 생각하면 이를 간다. 당시 한 시즌 정규 리그 경기당 승점 최고 기록을 새로 달성하며[21] 리그 1위를 차지했는데...[22]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6강 PO를 처음 도입할 때 1주일마다 한 번씩 경기를 갖게 하여 휴식일을 너무 길게 정해 놓은 것이[23] 상위 팀들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5위였던 포항의 경기 감각만 올려준 셈이었다.

이후 2008년은 시즌 4위로 마치고 2007년 K리그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AFC 챔피언스 리그(이하 ACL)에서도 조별 예선 탈락하는 불운을 겪지만, FA컵 우승으로 2009년 ACL에 참가한다.

4.2. 영광의 2009년

ACL 16강전에서 호주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를 홈으로 불러 6:0으로 털어먹은 다음, ACL 8강 1차전에선 우즈베키스탄의 FC 분요드코르에 1:3으로 패배. 이후 홈에서 벌어진 8강 2차전에서 3:1로 정규 시간을 끝내고,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스테보의 결승골로 대역전극을 펄쳐서 4강에 오른다.[24] 이후 FC 서울을 꺾고 4강에 오른 움 살랄을 제치고 결승에 오른 뒤 결승에서 K리그 팀들을 매년 탈탈 털어먹던 강호 알 이티하드를 물리치고 11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AFC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

그리고 2009 피스컵 코리아(컵 대회) 결승 2차전에선 당시 황선홍 감독이 팀을 맡고 있던 부산 아이파크를 5:1로 꺾고 우승했다. 참고로 결승 경기가 벌어진 9월 16일 이전, 9월 13일 경기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정규 리그 경기에서 8:1로 승리했다.[25] 3일 간격으로 16골을 몰아 넣으며 제대로 깡패짓을 했다. 그리고 서로 감독이 바뀐 2010년엔 제주에게 제대로 복수를 당한다.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고 2009 피스컵 코리아(리그컵 대회) 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2개의 우승 컵을 들어올린 후 2위 자리에서 준플레이오프 승자를 기다렸지만, 2007년 악몽을 안겼던 성남 일화에게 플레이오프에서 0:1로 패배하면서 ACL 우승을 포함한 더블에는 실패했다. 이날 경기로 시즌 홈 무패 기록이 깨지는 동시에 시즌 내내 성남에 이기지 못하면서 울산과 악연을 맺고 있던 포항은 성남과도 확실한 라이벌, 악연 관계를 형성했다.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인해 벌어들인 수입이 짭짤하다. 상금 150만 달러에 챔피언스 리그 스폰서인 도요타로부터 축하금 2만 달러, 게다가 페어 플레이 상까지 받으며 2만 달러를 챙겨 결승전 하루에만 154만 달러를 챙겼다. 게다가 조별 리그와 토너먼트에서 약 50만 달러를 받았고 12월에 치뤄진 FIFA 클럽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며 250만 달러를 가져가 2009년 상금으로만 450만 달러(약 52억 원) 넘게 벌어들였다.

2009년 UAE에서 열린 클럽 월드컵 8강전에서도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특유의 공격 축구와 끈끈한 수비를 앞세워 아프리카 콩고의 마젬베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올렸다. 4강에서 에스투디안테스와 대결했지만 카드가 난무하는 심판 성향과 상대의 빠른 축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긴 거친 플레이로 인해 골키퍼 신화용을 포함 세 명이 퇴장당하며 1:2로 패배했다.[26] 아틀란테 FC와의 3, 4위전에서는 전반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펼쳤으나 1:1로 경기 종료, 결국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이기고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상금은 250만 달러(약 30억 원). 데닐손은 4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4골은 역대 FIFA 클럽 월드컵 최고 기록이다.

4.3. 2010년, 다시 찾아온 암흑기

4.4. 2011년, 아쉬움이 컸던 황선홍호의 출항

4.5. 2012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스틸러스

4.6. 2013년, 황선 대원군과 K리그 30년 최초의 더블(리그 + FA컵)

4.7. 2014년. 쇄국 축구의 몰락

4.8. 2015년, 개항. 그리고 와신상담

5. 스틸타카와 스틸러스 웨이

포항 고유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미드필더의 세밀한 패스에 이은 호쾌한 공격 축구다. 야구 팬들과 해외 축구 팬들에게 K리그는 뻥 축구에 시간끌고 수비 축구라는 고정관념을 한 방에 날려버렸으며, 심지어는 야구 중계 안 해준다고 생떼질하러 왔다가 포항 축구를 보고 K리그도 재미있네? 하고 K리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남들이 뻥축 시전하고 있을 때 포항은 유스 시절부터 패스 축구를 가르쳐 왔고 2000년대 중반 이후 패스 축구가 팀 스타일이 됐다.

보통 K리그 팀들의 악폐습이 1골 넣으면 바로 잠그고 쓸데없이 심판 잡고 늘어지거나 경기 템포를 늦추는 것이었지만, 포항은 그런 짓 하면 이겨도 구단에서 수당을 안 준다. 이것이 09 시즌부터 도입된 그 유명한 Steelers-Way로 ▲실제 경기시간(Playing Time)을 5분 이상 늘리고 ▲경기 매너를 지키며 ▲심판의 권위를 존중하고 판정을 겸허히 수용하는 동시에 ▲포항 선수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포항의 경기를 보면 1골 넣어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2005년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부임하고 가장 먼저 선수들에게 지시한 것이 백 패스 금지였고, 당시 뻥 축구와 고리타분한 전술(예: 원정은 무승부가 목표. 앞서고 있는 경기는 후반에 무조건 수비수 교체하고 잠그기)로 정체되어 있던 K리그에 새 바람을 몰고 오며 "파리아스 매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다. 파리아스 감독은 이러한 공격 축구로 2007년 K리그 우승, 2008년 FA컵 우승,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리그컵 우승을 일구어 내며 언론의 찬사를 받는데 이 시절 포항의 경기는 성적도 잘 나오고 결정적으로 경기가 재미있었다. 이기든 지든 기본 3골부터 시작하는 경기가 많고, 2009년 9월 13일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09 K리그 22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8-1로 꺾어 한국 프로 축구 역대 한 경기 최다 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아스 재임 시절에는 이러한 공격 성향이 너무 강해서 후반 막판 어이없는 실점으로 무를 캐는 경기도 많았는데, 2011년 후임으로 황선홍 감독 취임 이후 2011년, 2012년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미드필더와 수비를 정비하면서 "2014년 현재 K리그 최강의 패스 게임"을 구사하는 팀으로 거듭났다. 특히 2012 시즌 중반, 당시 유로 2012에서 화제가 되던 스페인 국가 대표 팀의 제로 톱(4-6-0) 전술을 장착하는가 하면, 황선홍 감독은 상황에 따라서 원 톱, 투 톱까지 자유롭게 용병술을 구사하며 상대 팀들을 농락하고 있다. 이러한 패스 플레이에 감탄한 축구 팬과 언론들이 붙인 별명이 FC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에서 따온 스틸타카다.

그러나 스틸타카란 용어는 문외한에 가까운 기자들이 패스축구 = 티키타카라는 인식 때문에 붙인 별명이기 때문에 실제로 포항이 바르셀로나 식의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건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티키타카 항목을 읽고 티키타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알겠지만, 간단히 말해 티키타카에서 패스는 공을 오래 가지고 있기 위한 수단이지만 포항의 전술에서 패스는 그저 상대방 문전에 빨리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애초에 패스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 필요하다면 장신 타겟맨 전방에 박아놓고 길게 연결하는 뻥축구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27]

오히려 포항과 유사한 팀 컬러를 가진 해외의 유명팀을 꼽으라면 아스날 FC가 적당할 것이다. 아스날도 아스날 축구를 안 본느 사람들에게는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와 비슷한 스타일의 경기를 한다는 오해를 사는 것 역시 비슷하다. (...)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포항과 아스날의 전술이 똑같을 리 없다.

사실 공격 축구와 패스 축구는 포항의 아이덴티티로 창단 당시부터 공격을 중시하던 팀이었고 90년대에 황선홍-라데 시절부터 유명했다. 수비 위주로 축구한 시간이 적고 포항팬들에게 그 시절은 그리 유쾌한 기억도 아니다. 박성화 감독과[28] 최순호 감독 시절인데 이중 최순호 감독 재임기는 리그 꼴찌까지 떨어져 본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에[29] 준우승으로 거뒀음에도 포항 팬들에게는 엄청난 흑역사이다.


여담으로 2010 시즌에는 스틸러스 웨이를 계승한 "아름다운 축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적이 있다.??:어서 와서 한잔 해 이제 포항 선수들 입에 장미꽃 하나씩만 물려주면 완벽 다른 구단들도 2010 시즌 개막 전에 스틸러스 웨이를 참고하여 K리그 5분 더(5 minutes more, 이하 5mm) 캠페인을 벌이기로 합의하여 포항의 스틸러스 웨이를 다른 팀들에게서도 볼 수 있게 되었으나... 파리아스 감독의 후임으로 데려온 모 감독전혀 아름답지 않은 축구를 펼치는 바람에 11 시즌부터는 다시 스틸러스 웨이라고 부르고 있다.

6. 전통과 인기, 그리고 응원가 영일만 친구





승전시 부르는 응원가는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30] 4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인구 50만의 경상북도 1970년대부터 포항시민과 갖은 애환을 같이 나눈 구단이기도 하다.

영국의 오래된 축구 팀들이 그러하듯이,[31] 공업 도시인 포항의 포항 스틸러스 역시 포항 제철소와 그와 관련된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축구 팀인 데다[32] 80년대와 90년대에는 포항시에서 유일한 유흥거리라고는 매주 열리는 축구 경기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인기가 정말로 대단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구 30만이던 시절부터 평균 관중 1만 이상을 찍고 있었으니 그저 할 말이 없을 정도. 1989년 개막전에서는 지방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개막전 관중 4만을 찍기도 했다.[33] 다만 90년대 후반 암흑기가 도래하면서 팬들이 떨어져 나가는가 싶었... 는데 세르지오 파리아스라는 걸출한 명장 덕에 예전의 인기를 다시 회복했다. 정작 그 주인공은 배신해서 이미 떠나고 없지만. 심지어 2005년까지는 코레일에서 통근열차괴동역 너머에 있는 제철역(포스코 내에 있는 포스코 전용역)까지 가서 근처 포항 스틸러스 홈 구장으로 가는 관중들을 수송하기도 했었다.[34] 대한민국 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구단 응원 열차였던 셈이다.

2008년 기준으로 관중 점유율과 연고지 인구 대비 관중 수가 상당히 높은데, 전자는 형제 구단인 전남에 이어서 리그 내 2위고 후자는 리그 내 3위다. 포항 인구가 50만이라는 걸 감안하면 포항의 평균 관중 1만은 수도권 팀들이 평균 관중 2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ㅎㄷㄷ.

항간에는 포항 스틸야드 관중 절반은 포항 해병대라고 하는 소문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며 주말에 100~200명 정도의 사병이 위문차 포항의 경기를 보러 나온다. 게다가 공짜입장도 아니고 할인도 어느 정도 들어가지만 다 자비로 입장료를 내고 입장한다.[35] 동원이니 뭐니 하는 건 전부 헛소리.[36] 2만 구장에 평일, 휴일 안 가리고 평균 1만명은 꾸준히 들어온다.

2009 시즌 파리아스 감독으로 부활한 이후 2010 시즌 암흑기를 보내면서 팬들이 떨어져 나가나 싶었지만 2011 시즌 현역 시절 포항의 레전드 황선홍 감독의 귀환과 함께 꾸준히 리그 3위권의 성적을 찍어주면서 다시 폭발적으로 팬이 증가. 매주 포항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홈구장인 포항 스틸야드 주변은 밀려드는 차량과 사람에 발 디딜 곳이 없다. 더욱이 대부분 구단 서포터스만이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는 타 구단에 비해 포항은 서포터, 일반 시민 가리지 않고 응원 열기가 대단하다. 그리고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스틸야드 주변의 포항 제철소 정문과 본사 주변은 헬게이트가 열린다

90년대에는 하프 타임마다 해병대 의장대가 사열 시범을 보였고 꼬마 팬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포항 팬들로선 아쉬운 부분 중 하나. 대신 이후 해병대 응원대가 스틸야드 한 편에 자리잡게 되면서 해병대 응원이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

7. 블레즈(BLEDS)

지방 구단인지라 얼마 없는 TV 중계도 잘 안 되는데 이 처사에 열받은 한 서포터가 스틸러스 TV라는 인터넷 중계 방송국을 개국했다. 이제는 구단에서도 은근히 공식 중계 팀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링크). 빅 매치일 때는 방송 채널을 4개 이상 돌리는데도 언제나 꽉 찬 방이다. 흠좀무.

여러모로 공중파 중계에서 야구에 밀리는 K리그 팬으로서는 포항과 붙은 자신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이 방송을 찾아오기도 하지만, "원래 취지는 어디까지나 포항 스틸러스를 위한 방송국"이므로 편파 해설은 당연히 각오해야 한다. 타 팀 팬이 중계를 듣고 있으면 노골적인 편파 해설로 인해 정신이 멍해질 것이다.

그나마 2009 시즌 후반부터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선전과 포항 스틸러스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케이블 스포츠 채널을 중심으로 중계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2010 시즌부터는 구단 자체 중계 명칭을 스틸러스 TV로 정하면서 자연스레 개명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결국 2010년 4월 BLEDS로 개명했다. 그렇게 근근히 중계를 해 오다가 2012 시즌부터 골 많이 나고 재미있는 포항 경기를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중계를 하자 블레즈에서 중계를 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SPOTV나 중계가 없을 때는 블레즈에서 자체 편성하여 중계를 하고 있으며, 중계시에는 경고 누적이나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선수 or 유망주들을 객원 해설로 초대하여 중계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8. 라이벌과 주요 더비

공식 라이벌은 울산 현대 축구단. 그리고 그 외 라이벌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성남 일화 천마, FC 서울 등이 있다. 혹자들은 감바 오사카세레소 오사카도 라이벌이라 카더라.

8.1. 영남 더비울산 현대

FIFA에서 공인한 K리그 클래식 2대 더비 중 하나인 영남 더비의 라이벌. 같은 영남권의 팀이기도 하고 포항과 울산의 묘한 지역감정[37]서로 제발 좀 그만 만나게 해달라고지긋지긋한 악연 팬들이 사정사정할 정도로 악연이 깊은 라이벌이기도 하다.

늘 중요한 경기마다 만나서 서로의 발목을 잡았으며 대표적인 것이 98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울산소속이던 김병지에게 헤딩골을 허용. 1승1패로 동률에서 승부차기 패배로 통한의 준우승을 한 경기. 이 경기는 K리그를 말할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경기중 하나다.[38] 두 팀모두 리그 3~6위권의 고만고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보니 PO만 했다하면 마주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포항 팬도 울산 팬도 정규시즌이라면 모를까 PO에서는 제발 좀 안 만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 해의 서로의 전력이 어떻게 차이가 나든 포항 - 울산 전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결과를 불러오는 지라..

덤으로 포항이 애지중지 키운 오범석이 FIFA 제소 직전까지 가는 다툼 끝에 러시아로 떠나고선 하필 울산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최근들어 사이는 더 안 좋아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복귀전 상대가 포항이었고 그날 포항은 종료직전에 동점골을 먹는 바람에 리그 최다 연승 기록도 깨졌으니...그걸로 모자라 2011 시즌 직전에는 포항에 있던 설기현이 울산으로 이적했다. 포항과 울산의 질긴 악연은 현재진행형.

재미있는 것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팬들과 달리 구단끼리는 서로 친분(?)이 있는지 시즌이 끝나면 선수 스와핑이적이 꽤 활발한 편. 포항은 호시탐탐 울산의 주전선수를 노리고 있고, 울산은 역으로 포항의 유망주나 포항에서 버린 선수를 잘 줏어가는 편이다. 구단 스태프나 고위층에선 크게 신경 안 쓰는 듯 하지만 팬들은 예외. 대표적인 예가 포항에서 울산으로 떠난 오범석설기현(...). 그리고 울산에서 포항으로 완전이적할 뻔한 이진호 등이 있다. 팬들 사이가 얼마나 나쁘냐면 경기가 끝나면 서포터들끼리의 충돌이 100% 일어난다. 서로에게 쓰레기통을 던지거나(…) 시비가 붙어서 주먹다짐을 하거나(…)

그리고 2013 시즌, 세계 최초로 단일 리그에서 1, 2위 팀이 최종전에서 만나서 이긴 팀이 모두 가져가는 희대의 매치업이 성사됐고 후반 추가시간에 김원일이 버저 비터를 넣으면서 포항 팬들은 환호를, 울산 팬들은 절망을 맛보았다. 심지어 경기 장소가 울산의 홈인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 이걸 보고 마라카낭의 비극이 떠오른다면 그건 기분 탓이다 그리고 2013-2014 시즌 라 리가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결과는 반대

8.2. 클래식 라이벌. 성남 FC

공식 라이벌은 아니지만 인연 질긴 팀을 꼽으라면 우선 성남 FC가 있다. 역시 K리그 명승부 중 하나인 1995년 챔피언 결정전, 11월 11일 포항전용구장에서 벌어진 2차전은 양 팀이 선제골(포항)-추가 골(포항)-추격 골(일화)-동점 골(일화)-역전 골(일화)-재역전 골(포항)으로 이어졌고 당시 득점은 황선홍, 신태용(각 2골). 라데, 고정운(1골)으로 K리그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명경기다. 최종전에서는 포항이 3차전 연장 골든골을 이상윤에게 허용하며 성남이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2007년에는 포항이 복수(포항 우승). 이후 2009년까지 포항이 성남을 탈탈 털어먹다가[39] 2009년에는 다시 성남이 복수를(성남이 결승 진출)하며 클래식 더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2009,2010년에는 성남이 포항을 털어먹더니 그 뒤로는 2011년 FA컵에서 1회, 2014년 리그 1회를 제외하면 포항이 성남을 쉴새없이 털고 있다.

두 팀의 관계를 클래식 라이벌, 클래식 매치라고 일컫는 건 2012년 현재 1990년대 K리그를 호령했던 두 팀 중 여전히 구단의 정체성과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건 포항성남뿐이기 때문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대우 로얄즈는 부산 아이파크 시절 이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부천 유공안양 LG는 팬심을 저버린 연고지 이전 + 구단의 병크로 역사 자체가 애매모호해진 상태. 울산 현대 역시 2005년 우승 이후에는 별다른 성적을 못 내고 있고 이쪽은 지역 라이벌의 색깔이 짙은지라. 특히 90년대 한국프로축구를를 기억하는 올드팬이라면 당시 K리그를 주름잡던 포항과 성남의 레전드들과 두 팀의 명승부에 대한 향수에 젖을 수 밖에 없는 지라 특별히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이쪽은 울산과 다르게 라이벌 의식만 있지 프런트와 팬들 모두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8.3. 원조 축구 수도 vs 신흥 축구 수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에 대한 감정도 별로 안 좋은데, 울산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 악연도 많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팀이라는 자부심에 사는 포항 팬들은 "축구 수도 수원"이라는 말 자체를 아주 싫어한다(이건 포항 외에 서울이나 다른 축구 팬들도 마찬가지). 그래서인지 포항은 홈에서 수원과 경기할 때는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주는데 2004년 이후 포항에서 치러진 수원전에서 포항은 단 1패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홈에서 내준 실점조차도 10년 동안 단 5실점뿐이다(…). 이 정도의 학살은 다른 라이벌 관계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
였다가 2014년에 4전 3패했다. 원정에서 4대1로 지는가 하면 다음 원정때는 한점차 리드를 84분 88분에 골은 먹으면서 패배하고...마지막 라운드에는 10년 된 홈 징크스마저 깨지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잃었다.

8.4. 제철가 형제, 전남 드래곤즈

전남과도 라이벌리가 있는데, 이는 포항과 전남이 같은 계열사(전남은 포스코 광양 제철소)라서 시즌이 끝나면 서로의 선수와 스태프를 스왑(?)함으로써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어떻게든 제철가 더비, 형제 더비로 이름을 붙이려 하지만 양 팀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 오히려 서로 맞붙지 않는 경기에서는 형제(?) 팀을 서로 응원해주기도 한다. 다만, 일단 라이벌 의식은 있는 데다가 전남의 축구 스타일이 포항에게는 쥐약인 스타일이라 난타전이 나오거나 전남의 깡축구토나오는 전방 압박으로 인한 한 골 싸움이 나오거나 하는 양상이 펼쳐진다.

8.5. 서로 다른 검빨, 그리고 박주영. FC 서울

FC 서울와 유니폼 색깔이 같고 줄무늬 방향만 다른데(포항-가로/서울-세로)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검빨 동맹이라고 부르지만 포항팬들은 이 소리를 아주 싫어한다. 박주영 하이재킹 건으로 사이도 안 좋을뿐더러, 한 연고지에서 40년 동안 터를 잡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구단이라는 자존심을 가진 포항 팬들이 연고 이전을 하고 유달리 자뻑기질이 심한 서울을 좋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애초에 검빨 동맹이란 단어 자체가 FC 서울 쪽에서 어떻게든 포항과 엮여 보려고 만든 단어이다. 상대전적은 포항은 상암에서 유독 약한 편이고 서울은 스틸야드에서 약한 편이다. 즉, 서로 싸대기를 때린다 이 말이다.. 포항은 2006년 8월 이후 상암에서 승리가 없었으나 2014년 4월 9라운드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면서 지긋지긋한 상암 징크스를 털어냈다. 그러나 14년 7월에는 FA컵, 8월에는 아챔에서 서울과 상암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여 고배를 마시면서 악연 자체는 계속되고있다.

9. 스토리

9.1.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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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라 클럽하우스
준공 연도 2001년
위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하송리 85-14번지
건설 비용 약 120억 원(2001년 기준)
시설 연면적 1,232평(지하 1층, 지상 3층/객실 53실)
천연 잔디 구장 2개소
인조 잔디 구장 2개소
기타 선수 편의 시설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한국프로축구 최초의 클럽하우스.

1, 2군의 모든 선수들에게 1인 1실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야간 조명이 달린 천연 잔디, 인조 잔디 구장이 2개소씩 있다. K리그 팀 중 가장 오래된 클럽하우스지만 지금봐도 꿀리지 않는 최고급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9.2. 선수 육성과 FA의 악연

서술했듯이 유소년 육성에 관해서는 한국 최고의 클럽이나 유난히 FA 및 외부 영입 쪽은 결과가 상당히 좋지 않다. 자세한 것은 포항 스틸러스/선수 육성과 FA의 악연 참고.

10. 레전드/선수명단

10.2. 과거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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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1984년 사용 1985~1996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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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998년 사용 1999~2003년 사용

10.3. 비하인드

  • 2009년 파리아스 감독이 있을 때 워낙 깡패짓을 많이 해서 부산, 제주, 광주, 경남, 강원까지 포항에게 복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쯤되면 자타공인 K리그 공공의 적. 끝판대장님은 이미 사우디로 떠나고 없는데! 결국 2010 시즌에는 감독 하나 잘못 바꾼 죄로 부산, 제주, 경남에게 제대로 털렸다. 특히 제주에겐 홈에서 2:5로 대패하면서 결국 이 경기 이후 시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올리베이라 감독이 경질되기도.

  • 2012 시즌에 들어선 위의 악연 관계는 거의 청산되었고 現 포항 감독인 황선홍의 이전 감독 팀이었던 부산 아이파크와의 악연만 남은 상태. 사실 이것도 2011 시즌 초기 부산에 부임한 안익수 감독이 일종의 부산 선수들 군기 잡는 용도로 일부러 전임 감독인 황선홍 감독과 부산 선수들 사이의 악연을 부추긴 거라 2012 시즌에 들어선 많이 시들해진 상태다.

  • 2007 시즌부터 6시즌 동안 유니폼 제조 스폰서를 맡은 이탈리아 카파(Kappa)와 계약을 끝내고 2013 시즌부터는 국내 브랜드 아테미(Atemi)와 유니폼 계약을 맺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 대표 팀 감독인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상당히 많이 존경하는 팀이다. 2009년에 클럽 월드컵에서 사베야는 에스투디안테스를 이끌고 포항 스틸러스와 맞붙게 되었는데 경기 직전 인터뷰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대한 온갖 칭찬으로 인터뷰를 도배했다. 물론 립 서비스성 발언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치부하기에는 엄청난 극찬이었다. #

  • 리그베다 위키 한정으로 이용자 중에 포항 팬이 많은지 국내 프로/아마 모든 축구 팀을 통틀어 위키 작성 항목이 제일 많다. 거의 프로야구 팀들에 못지않으며 경기 결과 역시 그 날 바로바로 업데이트될 정도로 팬들이 돌아가며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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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스틸야드 잔디 보수공사로 스플릿 기간에 사용
  • [2] 출장 경기 형식으로 사용
  • [3] 전남 드래곤즈 창단 이전에 출장 경기 형식으로 사용
  • [4] 2015년부터 아테미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험멜과 새롭게 계약을 맻었다..
  • [5] 포스코의 내화물 및 화학소재 전문 계열사
  • [6] 일명 검빨 유니폼. 참고로 FC 서울은 세로 줄무늬이다. 원조 검빨은 엄연히 포항 스틸러스로, 창단됐던 1973년부터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FC 서울 유니폼을 볼 때마다 가짜 검빨, 짝퉁 검빨이라면서 신나게 깐다. 1996~99년에 홈 하늘색, 원정 흰색의 단색 유니폼(스폰서는 신세기통신)으로 바꾼 적이 있지만, 다시 검빨로 돌아왔다.
  • [7] 실업 축구까지 포함한다면 대전 코레일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
  • [8] 지원이라는 게 딱 외국인 용병 1~2명 사 와서 1년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의 지원이다. 그나마 파리아스 시절에는 이것도 없어서 직접 ACL에 나가서 우승하고 벌어온 상금으로 선수들 연봉을 올려주고 그랬다(...).
  • [9] 그리고 이렇게 자라서 팀의 주축이 된 포항 유스들은 수원, 서울과 같은 수도권 팀과 전북 현대, 중동 클럽, J2리그 클럽들이 매의 눈으로 노려보다 계약 끝날 즈음에 털어 간다(...).
  • [10] 1995년 시즌 때 사진으로, 구단 법인화 기념으로 제작한 한 시즌 특별 유니폼이다. 동해의 일출을 상징한 유니폼. 포항 스틸러스의 아이덴티티인 검빨 가로줄무늬 유니폼과 신세기통신이 유니폼 스폰서를 한 시즌 그 사이에 잠깐 입은, 상당히 희소한 유니폼이다.
  • [11] 당시 굳이 일본 캐릭터를 사용해야 하느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더구나 저작권을 따지 않은 채 무단으로 아톰 캐릭터를 사용하는 바람에(...) 97년에 다시 팀명을 변경해야 했다. 다만 예전 설명에는 흑역사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저작권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그다지 없었던 터라 올드 팬들은 아톰즈라는 이름을 딱히 흑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12] 수원 팬 수에 필적한다는 서울은 연고 이전이라는 원죄도 있고 해서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전국적으로 욕을 먹는 편. 서울 인구가 1000만이니 상관 없으려나?
  • [13] 야구로 따진다면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 [14] 공식적으로는 2004년부터 유스 팀으로서의 체계가 완비됐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포항의 유스 팀 기능을 해 왔으며 실질적인 시작은 1980년대로 올라간다.
  • [15] 2011년에 포철공고가 마이스터고로 지정되면서 2012년 말까지 모든 운동부를 폐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2012년을 끝으로 포항공고 야구부와 더불어 포항 유스 팀 기능은 포항제철 고등학교로 모두 이관되었다.
  • [16] 이 해 FA컵 우승을 포함하여 K리그 최초의 "리그 우승 + FA컵 우승" 더블을 달성했다. 더욱이 외국인 용병 없이 국내 선수로만 달성한 진기록이기도 하다.
  • [17] 1997, 1998년 우승은 AFC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이다. AFC에선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또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공식 기록에도 2014년 현재 포항이 최다 우승팀으로 기록되어 있다.
  • [18] 2011년 3위를 차지한 알 사드와 더불어 아시아 클럽 중에서 최고 기록.
  • [19] 1996/1997, 1997/1998, 1998/1999, 2008, 2009, 2010, 2012, 2013, 2014
  • [20] 1983년 프로 전환 이후에도 포항이 우승한 기록은 있으나 그것은 프로인 스틸러스가 아니라 별개로 존재했던 실업 축구 팀의 기록이다.
  • [21] 26경기 55점, 경기당 2.12점으로 현재 최고 기록은 2012년 FC 서울이 가지고 있다. 44경기 96점, 경기당 2.18점.
  • [22] 다만 성남도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리그 4위로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간 경력이 있다.
  • [23] 2008년부터는 휴식일을 짧게 바꿨다.
  • [24] 참고로 이 당시 분요드코르는 우즈베키스탄 국대급 수준의 멤버에 히바우두라는 거물 용병이 더해졌고, 여기에 감독에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임명하는 등 아시아판 갈락티코를 추진하고 있던 강팀이었다.
  • [25] 이는 K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
  • [26] 비록 패배했지만 에스투디안테스는 결승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경기 내내 몰아붙여 쩔쩔매게 할 정도로 강한 팀이었으므로 포항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존심을 세웠다고 할 만하다.
  • [27] 황선홍 감독 본인부터 부산 시절 정성훈, 포항와선 배천석, 박성호 등 매시즌 장신 타겟 스트라이커를 한명 이상은 기용했다. 유일하게 장신 스트라이커를 기용하지 않은 2011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피를 봤다.
  • [28]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아시아권에서는 뻥 축구가 매우 효율적으로 먹혔기에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現 AFC 챔피언스 리그) 2연패를 일궈내기도 했다.
  • [29] 이때는 전후기 리그 제도라 성적을 따로 계산했기에 전체 꼴찌는 아니었다. 2004년 후기 리그만 꼴찌였는데 전기리그에 벌어놓은게 있어 플레이오프에 나갈수 있었고 수원과 승부차기까지간 끝에 준우승했다. 포항의 추락이 워낙 커서 그렇지 전기리그에 잘한 팀이 후기리그에 퍼진다는 문제점은 전후기리그 시행되는 내내 지적되던 문제점이다.
  • [30]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갈매기', KIA 타이거즈의 '목포의 눈물'요즘 좀 잊혀지긴 했지만... SK 와이번스의 '연안부두'와 비슷한 포지션의 노래다.
  • [31] 아스날, 맨유 등등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에 창설된 대부분의 축구 팀은 그 지역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거나 노동자들을 위한 축구 클럽에서 시작되었다.
  • [32] 이 때문에 포스코에서는 자사의 협력 업체들한테까지 포항 스틸러스의 티켓을 많이 뿌리는 편이다. 야빠와 안티 국축 팬들은 이를 공짜 표라며 헐뜯지만 기업의 지역 사회 환원 취지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봐야 할 부분. 그리고 이렇게 자사와 계열사에 표를 뿌리는 건, 야구나 기타 스포츠 모두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제철소 노동자들에게는 아예 복지 카드에서 차감하는 형식으로 제공한다.
  • [33] 이때는 포항 공설 운동장을 홈으로 쓰고 있었다.
  • [34] 포항역-양학동역(이 운행 계통이 없어지면서 같이 폐역되었다)-효자역(방향 변경)-괴동역 통과-제철역 순으로 운행했다. 원래 포스코 직원용이었으나 포항 스틸러스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었다. 그러나 2005년 이후 폐지되었다.
  • [35] 드물게 공군에서도 30명정도의 인원이 구경을 오는 때가 있는데 사회문화체험 행사로 병사 복지비용이 집행되어 부대에서 입장료를 지불한다. 해병대 사병들도 부대에 처박혀서 있느니 밖에 나와서 즐기다 가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고. 김원일도 축구를 포기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이런식으로 축구계에 복귀한 케이스.
  • [36] 그런데 스틸러스 공식 홈페이지나, 포항 팬 페이지(댓글참조)에는 무료라는 말도 있고 반강제적인 성격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 때문에 포항 팬들 사이에서도 안 좋은 말이 나올때가 종종 있다.
  • [37] 두 도시 모두 영남을 대표하는 공업 도시인데다, 포항 포스코에서 생산된 철강제품은 울산의 현대자동차 및 중공업에 쓰이는데, 현대가 당진에 제철소를 마련하기 전에는 포스코에서 부르는데로 원자재인 강판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
  • [38] 이 경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기록한 김병지는 이후 포항으로 소속을 옮겨 2004년 결승전에 포항 소속으로 출전했지만 승부차기를 실축함으로서 한 번 더 포항에 준우승을 남겼다. 지못미
  • [39] 심지어는 2군 내보내고도 포항이 이긴 경기가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