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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청천

last modified: 2015-08-16 18:17:02 Contributors


손모양이 묘하게 이거다.

Contents

1. 소개
2. 청백리
3. 법조인으로서의 포청천
4. 후대의 창작
4.1. 소설
4.2. 드라마
4.3. 만화

1. 소개

본명 포증(包拯).[1] 는 희인(希仁). 시호는 효숙(孝肅)이다.[2]
(999년-1062년)

청천(靑天)은 별명으로, 그의 공명정대한 판결과 인품을 칭송하는 의미로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다. 사실 어마어마한 별명인데, 동양에서 청천靑天즉, 맑은 하늘은 하늘을 닮아 맑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기준 다시말해 정의의 기준이다. 이에 추상같이 내려다보는 청천이야말로 옳고 그름을 가를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동양 그중에서도 중국에서 하늘의 뜻을 펴는 자는 오직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일 뿐이다. 즉, 중국인들은 포청천의 바른 처사를 감히 천자의 행사와 비겨 일컫은 것이다. 그래서, 포청천을 다룬 드라마나 소설 내에서는 포청천 본인도 이 별명으로 불릴 경우 과대평가라며 겸양을 표할 정도이다. 그 외에도 얼굴이 검다 하여 포흑(包黑)[3]이란 별명도 있었다 한다. 그가 검은 얼굴을 했기 때문인지 혹은 거꾸로 그가 청렴했기 때문에 검은 얼굴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르나, 검은색경극에서 공정과 강직함의 상징이다.

개봉 부윤으로 재임하며 남긴 고사들이 훗날 판관 포청천의 배경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포청천의 상징인 이마의 달은 후세 사람의 창작이다.

2. 청백리

가난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가엾이 여겼으며, 언제나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리고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아서 크게 존경받았다고 한다. 유난히 부패한 관리들이 많았던 송나라 때의 사람이라서 더욱 부각되는 듯 하다. 관료생활을 하는 동안 사적인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사심없이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정치를 펼쳐 백성들에게 인망이 높았다.
이에 기득권층에게 신변을 위협받기도 하였으나, 중국 각지의 무림의 고수들이 자원해서 그의 신변을 보호해주기도 하였다.[4]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귀족과 황족, 외척 등에 의한 횡포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억울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고, 강도와 마적떼를 소탕하였다. 판관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처벌하였으며, 사치를 하지 않고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되었다. 그가 죽자 민중들은 그를 그리워하였고, 이후 민담과 전승의 대상이 되었다. 고우영 화백의 역사만화 《만화 십팔사략》(두산동아)에 의하면, 포청천은 인권을 짓밞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판관이라고 해서 그의 직업을 법관으로 간주하면 오산이다.[5] 당시는 삼권분립 체제의 도입 이전이라 임금이 임명한 행정관료들이 수사와 재판, 처벌을 모두 담당했다. 포청천 역시 여러 곳에서 지방관을 역임하는 동안 고을 주민들의 재판도 함께 맡아 처리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오늘날의 서울시장에 해당되는 송의 개봉부윤을 지낸 것이 가장 유명하다. 그의 활약상을 보면 판사 + 검사 + 경찰의 콤비네이션. 포청천이 개봉부윤으로 활동한 기간은 가우 원년(1056년) 12월부터 가우 3년(1058년) 5월까지의 1년 6개월간으로 생각보다 짧은 편이지만, 개봉부윤에 취임하기 전에도 고관들을 탄핵하는 등의 활약도 하였다.

3. 법조인으로서의 포청천

포청천이 다른 지방관들과 달랐던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에게 관청 앞으로 직접 나와 북을 치도록 한 점. 얼핏 조선신문고 제도와 비슷하다. 포청천의 수사와 양형은 하도 엄격해 권문세족조차 그가 두려워 감히 을 어기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서민들 사이에선 "청탁이 통하지 않는 이는 염라대왕과 포청천 뿐."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하니 그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사후에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중국설화에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현실에 살다가 사후에서만은 공정한 판결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명판관을 염라대왕으로 추앙하는 신앙이 있으며,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사당도 존재한다고 한다.

평생을 강직한 공직자로 살아왔던 인물인만큼 죽을 때 그의 유언은 이랬다.

"내 자손들이 벼슬을 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그들이 죽은 이후에도 우리 포씨 집안의 선산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하라!"

자기가 죽고 향을 피울 때 목향을 사용하면 후에 자신이 돌아올거라고 했지만, 후손 및 일가친척들이 전부 이런 위대하신 분의 장례를 그런 싸구려 향으로 할 수는 없다면서 고급향을 사용한 결과 환생하지 못하고 저승에서 염라대왕으로 취직하게 됐다는 설화도 있다.[6]

현재 포청천의 후손은 제 34대인 포정정(包庭政; 1991.01.18~). 대만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대만 청소년 골프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4. 후대의 창작

4.1. 소설

포청천의 재판 이야기는 남송나라 시대에 이미 야담가들을 중심으로 하여 단편적인 창작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원나라, 명나라 시대에 연극 등의 형태로 '포공안'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명말청초에 이 같은 포청천 이야기를 한데 묶어서 '용도공안'(포공안)이라는 단편집성집이 나오게 된다. 청나라 시기에는 포공안을 기초로 하여 개작하면서, 포청천을 돕는 정령과 신수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무술을 쓰는 협객으로 바꾸고 협객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삼협오의가 만들어진다. 다만 삼협오의까지 가면 포청천은 약간 뒷전(…)이고 협객들이 중심이 된다.

수호지의 서장에도 등장하는데, 당시 송의 태자(후일 인종)가 태어난 후 울음을 절대 그치려고 하지 않았다 한다. 그 울음을 며칠 이상이나 그치지 않자 선인이 한 명 나타나 태자의 귀에 대고 "문곡성文曲星[7]과 무곡성武曲星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는가" 라고 하자 울음을 그쳤다고 전해진다. 이 중 문곡성이 바로 이 포청천을 의미한다. 다른 한명인 무곡성은 서하국을 정벌한 을 말한다.

평요전에도 등장한다. 다만 이 소설에 나오는 요괴들이 워낙 신출귀몰한 말썽쟁이라서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4.2. 드라마

판관 포청천 항목 참조

4.3. 만화

프랑스에서 포청천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만들었다. 그림 스타일이 독특하게 여겨지는듯.
삼협오의를 일본에서 순정만화로 만든 북송풍운전이라는 작품에 등장한다. 국내에도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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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포증으로 검색하여도 이 항목으로 리다이렉트 된다.
  • [2] 고전소설 《삼협오의》에서 포증의 자는 문정(文正)이라 되어있으나 위에서 말했듯이 포증의 자는 희인이며, 문정은 잘못 전해진 것이다. 포증 사후 문중에서 정리해 펴낸 유고의 제목인 <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증에게 주어진 시호는 처음부터 효숙이었다.
  • [3] 별명이 아니라 아명(兒名) 이었다는 설도 있다.
  • [4] 그래서 금초군 드라마의 오프닝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 [5] 그리고 당시의 판관은 별도의 직책이었다.
  • [6] 중국민간설화는 불교도교가 뒤섞여 있다. 불교에선 명부에 진광왕, 송제왕, 평등왕, 도시왕, 태산왕, 평등왕, 염마왕, 변성왕 등등 이른바 시왕(十王)이 있다고 간주한다. 그중에 염마왕이 염라대왕으로, 염마왕 개인을 가리킬 때도 있고 시왕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일 때도 있다. 또한 도교의 세계관은 중국 관료제도를 모방했는데, 염라대왕은 특정인물이 아닌 관직명으로 본다. 따라서 염라대왕 임무를 맡은 이는 세월 따라서 바뀐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다.
  • [7] 고려의 명신이자 명장인 강감찬 도 이 별의 화신처럼 여겨진 것으로 유명하다. 포증의 나라인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와서 강감찬에게 "문곡성이 안 보인지 오래였는데 여기서 뵙습니다."라고 인사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강감찬(948~1031)과 포증의 생존기간은 약 32년 정도 겹쳐서 문곡성의 화신이 둘이 존재한 셈이 되어버린다. 그 때문에 문곡성이 '이중성'이 아니냐는 농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