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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last modified: 2017-06-23 20:55:16 Contributors

POSCO(POhang Iron & Steel COmpany) 포스트 디스코의 줄임말이 아니다 문화어로 하면 포항무쇠집단


그룹 시가총액 36조 9,402억원(2013년 9월 11일)[1]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연혁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
2.2. 광양제철소 건설
2.3. 이후 현재까지
3. 계열사
3.1. 철강
3.2. 철강산업지원
3.3. 엔지니어링 & 건설
3.4. 에너지
3.5. IT
3.6. 기타
3.7. 비영리재단
3.8. 계열사는 아니지만 관계가 있는 법인
4. 특징 및 이야기거리
4.1. 기업 문화
4.2. 연봉
4.3. 초대 회장
4.4. 비판
4.5. 교육
4.6. 직원 복지
4.7. 무노조
4.8. 광고
4.9. 기타

1. 개요


2011년 현재 한국에서 순위 8위[2]의 기업 집단이자 그 모태가 되는 기업의 명칭. 자산규모 69조 8천억 원. 전신은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이며, 2002년 공식 회사 명칭을 포스코로 변경하였다.[3] IMF 이후 민영화 과정을 거쳐 2000년에 완전 민영화가 되었으며, 몇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포스코와 그 계열사가 공식적으로 기업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거대 기업집단치고 오너가 없는 기업이며,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 연혁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

60년대 우리나라의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었다. 세계은행은 생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외국의 많은 기관이나 회사들도 한국의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상황이었지만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입장에서 철강의 자체생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철소 건설을 성사시켜야 했었다고 한다. 박태준 초대 회장은 한일기본조약을 전용하는 생각을 통해 간신히 제철소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68년 4월 1일 회사를 설립하고 70년부터 건설에 들어간다.[4]

이후 포항제철소의 건설은 83년 4기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총 13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첫 쇳물은 73년에 쏟아졌다. "선조들의 핏값이니[5] 성공하지 못하면 영일만에 빠져죽자"는 정신이 이룬 성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동해니까...) 포스코 전체에서 아직도 유효한 이념이다. #1 #2

2.2. 광양제철소 건설

현대와의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6],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만으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인 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태안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호남에 있다는 점에서 지역 균형 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의 건설은 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2.3. 이후 현재까지

이후 포스코는 1992년 김영삼 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을 겪을 뻔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97년경 재보선으로 복귀했고 DJT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룩,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은 다시 안정되었다. 뉴욕런던 증시에 상장되는 등 기업가치를 높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는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함으로써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7]

2007년에는 차세대 제선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준공하여 운영 중이며, 인도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그룹 회장이 온 경우는 단 한 번, 김영삼 정부 시절 박태준 사단을 퇴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 뿐이다.[8] 이외에는 모두 포스코 내부 인사가 임명되었는데, 특히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 공채 1기이다. 하지만 공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니만큼, 여전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태준 사단은 대거 복귀하였는데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기 회장이었던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6대 이구택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대 정준양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회장 교체 과정에서 모두 정치권의 개입이 있었다는 잡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고 후임으로 권오준 회장이 취임했다. 포스코 회장 임기는 대략 5년이다.

2015년 3월 현재 포스코건설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이어 포스코 P&S와 포스코플랜텍 등 여타 계열사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할 조짐을 보이자 포스코 직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회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수사 대상이 됐던 전례가 되풀이될까 우려하면서 수사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준양 전 회장이 출국금지가 되는 등 포스코도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3. 계열사

3.1. 철강

  • 포스코
  • 포스코특수강 : 구 삼미특수강 강봉 및 강관부문→창원특수강, 봉강 및 강관
  • 포스코강판 : 구 포항도금강판, 도금 및 도장강판
  • 포스코P&S : 구 포스틸, 철강판매/가공조립판매 등
  • 포스코AST : 스테인레스 냉연제품
  • 포스코TMC : 구 한국코아, 전력계통 기계부품
  • 포스코NST : 스테인레스 냉연/열연제품

3.2. 철강산업지원

  • 포스코켐텍 : 구 포철로재→포스렉, 내화물
  • 스코터미날 : 대량화물유통(CTS)[9]
  • 포스하이메탈 : 페로망간(Fe-Mn)
  • 포스화인 : 슬래그파우더
  • 포스코엠텍 : 구 삼정P&A, 금속소재가공/철강포장
  • SNNC : 비금속광물제품
  • PNR : 철강부산물재활용

3.3. 엔지니어링 & 건설

  • 포스코건설 : 구 포스코개발, 종합건설
  • 포스코플랜텍 : 구 포철산기 + 포철기연, 플랜트설비
  • 포스코A&C : 설계/감리/시공관리
  • 포스코엔지니어링 : 구 대우엔지니어링, 인프라산업 엔지니어링
  • 성진지오텍 : 에너지설비

3.4. 에너지

  • 포스코에너지 : 구 경인에너지→포스코파워, 발전산업
  • 포스코E&E : 폐기물에너지화

3.5. IT

  • 포스코 ICT : 구 포스데이타 + 포스콘, 정보통신/EIC엔지니어링

3.6. 기타

  • 포스코대우 : 무역, 백화점, 자원개발, 프로젝트 오거나이징
  • 포스코경영연구소 : 경영컨설팅
  • 포스메이트 : 구 동우사, 주택/시설물유지관리
  • 포스텍기술투자 : 기술금융
  • 포스코휴먼스 : 스틸하우스 부분인 에코하우징과 장애인표준사업장 포스위드 합병
  • 포레카 : 브랜드관리
  • 엔투비 : 기업간 전자상거래
  • 승광 : 골프장
  • 우이트랜스 :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

3.7. 비영리재단

  • 포스코교육재단 : 산하에 4개 고등학교,[10] 2개 중학교, 5개 초등학교가 있다.
  • 포스코청암재단 : 장학재단

3.8. 계열사는 아니지만 관계가 있는 법인

4. 특징 및 이야기거리

4.1. 기업 문화

포스코는 상당히 남성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이다. 일단 박태준 명예회장을 위시한 창립멤버 대부분이 군인 출신이고, 제조업 중에서도 건설업과 더불어 현장이 가장 위험한 철강산업이기 때문에 남성적이고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문화가 강한 편이다. 한마디로 군대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분위기 덕인지 이런 일도 발생했다.

4.2. 연봉

포스코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3000만원대 중~후반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다른 계열사도 비슷하나 포스코건설의 경우 이보다 더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포스코의 생산직 사원의 경우 교대근무자[11]는 초봉 3000만원대 초반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노동 강도가 빡세고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현장의 특성상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 크게 증가한다. 또 구조조정이 끝난 현재로써는 현장노동자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한번 입사할 경우 정년퇴직을 노려볼 만한 정도이다.

2010년 기준으로 30년 근속한 생산직원의 연봉이 9000만원에 육박한다. [12]

4.3. 초대 회장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은 경제에 관해 생판 모르는 군인이었음에도 적자투성이인 한중석[13]을 맡아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세웠으며, 이후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으로 임명된다. 포스코의 성장에 있어 박태준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여 제철소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이후 정치계에 진입하는 대신 포스코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두환으로부터 받아내기도 하였으며, 92년 포스코 양대 제철소의 완공 이후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면서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박태준의 역할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업인으로서 박태준은 큰 업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역시 군 출신에 사업가이자 일본 정치의 막후에 있었던 허풍쟁이세지마 류조도 자기보다 수완이 뛰어나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4.4. 비판

선조들의 피로 얼룩진 회사라고 밝혔듯 포스코 자체가 한일협정으로 일본 정부에게서 받은 배상금 중 상당부분에 해당되는 거액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회사인데, 당연히 일제시절 피해자들 입장에선 개인 배상금을 정부가 마음대로 횡령(?)한 격이니 강제징용자와 안부 할머니 등 일제시절 피해자들이 포스코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포스코는 여전히 '정부가 나서면 돕겠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있다. 여기에 거론된 수많은 사원복지를 생각하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더더욱 아쉬운 부분. 참고.

4.5. 교육

포스코의 교육 지원은 포스코교육재단을 중심으로 한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포항공과대학교·포항산업과학연구원 (RIST)·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고등교육·연구로 나뉠 수 있으며, 이 역시 상당히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포스코교육재단은 산하에 4개 고등학교, 2개 중학교, 5개 초등학교와 몇 개의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설립했다는 특징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특별활동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 왔으며 많은 분야의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으며, 중학교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운영되고 있다. 포항제철고와 광양제철고는 자립형사립고로 운영되며[14] 포항제철공업고는 전문계 고등학교 중에는 매우 잘나가는 학교이다. 지금은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되었다.여기 졸업하면 어떻게든 포스코 관련된 회사는 보내준다고 보면 된다 근데 원체 잘나가서 별 차이는 없다는듯 학생들의 소질을 최대한 계발해 주자는 것이 이 교육재단의 목표였는데, 7~80년대에 이런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포항제철고나 포철공고 모두 경북권에서는 알아주는 일반계/전문계 고등학교이고, 광양제철고 역시 90년대 초반부터 매년 서울대 진학생을 5명 안팎으로 배출하는 학교였다.[15] 문제는 포항이나 광양이나 학구열을 비롯한 치맛바람이 쎄다는 것(...) 따라서 과외[16]를 비롯한 각종 선행학습이 지나친 편이다. 이는 부모들간의 경쟁의식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각 학교가 위치한 직원주택단지는 부모간의 학력이나 소득, 지위의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부모들의 자존심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는 박태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구상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2010년 영국 THE 선정 세계 28위 대학[17]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90년대에 국내 최초로 지어진 가속기 시설이며, 국내 과학 기술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포항공대와 가속기의 건설에 관한 박태준과 김호길 포항공대 초대 총장의 일화를 찾아보면 상당한 대인배스러움에 흠좀무..할 것이다. 또한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포스코, 포스텍과의 산학연 협동을 위해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한 민간연구기관이다.

4.6. 직원 복지

직원 복지 면에서 포스코의 투자는 상당한 편이다.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복지 정책이 주택 정책인데, 회사가 주택을 공급하여 분양함으로써 직원들이 주택 걱정을 하지 않도록 힘쓴 바 있다. 포항제철 건립 초창기인 1960년대 직원주택과 학교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쓸데없는데 돈쓴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으나, 지금 와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몇 안되는 성공적인 드주의의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포항과 광양 양쪽 모두에 주택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주변 주민들이 질투할 정도로 괜찮은 주거단지를 마련하였다. 포항이나 광양의 주택단지를 보면 동시기에 지어진 다른 주택단지들에 비해 엄청난 녹지비율과 체육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포항 효곡동 주택단지의 경우 경상북도 지곡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포항 시가지와는 차원이 다른 주거환경을 보여준다. 심지어 포항에는 미관상 안좋다고 (...) 전선을 모두 매립해서 전봇대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렇게 모여사는 탓인지, 기묘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단지 내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보다 준법의식이 높고, 아이들은 밖과는 달리 비행청소년이 적다...라는 것 등등.[18] [19] 광양의 경우 건물의 노후화, 구조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단지가 공장지역 바로 옆에 있는데다가 저 바다건너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여수화학단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공기가 매우 나쁘다. 자녀 교육 문제만 아니라면 웬만하면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는데, 자녀들을 포스코교육재단 산하 학교에 보내려면 주거 단지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20]

그리고 생활비가 상당히 싸게 먹히는 편인데, 제철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온수를 이용하여 온돌식 난방을 하기 때문에 한겨울에 펑펑 난방을 하고 온수를 사용해도 월 3만원이 안나올 정도로 난방비가 적게 들고, 단지 내에서의 전화는 회사 내선처럼 연결되어 있어 무료이기 때문에 전화비도 적게 든다. 심지어 포항지역 주택단지와 광양지역 주택단지간의 전화도 내선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식비는...

4.7. 무노조

회사 차원에서 노조 설립을 막기도 했고 살기 편한 직원들이 노조에 관심이 없기도 해서 포스코에는 사실상 노조의 기능이 없었다. 그러나 2011년 6월 수노조제가 통과됨으로써 포스코에도 추가적인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후는 두고 볼 일이다.

4.8. 광고

포스코는 주력 업종이 'B2B(기업간 거래)'성격을 가진 기업으로서, 일반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일이 거의 없다. 때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고 있는데, 좀처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광고를 여러차례 선보인 바 있다.
참조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광판 광고



4.9. 기타

  • 한국의 10대 기업집단 중에서 현대중공업(울산)과 함께 단 둘뿐인 본사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 도시(포항)에 위치한 기업이기도 하다. 덕분에 포항시의 세수에 혁혁한 공을 세워오고 있는 중이다. 포항의 본사 아래에 포스코 서울 지사가 있는 형태인데, 강남구 테헤란로포스코 빌딩에 서울지사가 위치해 있다.

    그렇지만 사실 포스코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사 서울 이전을 수차례 추진했으나 번번이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반발여론에 부딪혀 무산되자 김만제 회장 시절 서울에 포스코센터를 지어 자금, 마케팅 등 핵심기능은 서울로 옮기고 법인등기부상의 본사 소재지는 포항에 두는 이중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2002년 포스코가 완전 민영화되고 외국인 지분이 60∼70%로 늘면서 정기주주총회도 서울에서 개최하는 등 포항은 형식상의 본사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현재 포스코 자회사 29개 사 중 포항에 본사를 둔 자회사는 8개가 있는데, 포스코건설은 본사를 인천 송도로 옮기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으며,[21] 2013년 3월에 사장이 바뀐 포스코 ICT도 신임 사장 취임식을 포항이 아닌 경기도 판교 사무소에서 열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포스코 포항 본사와 포스코 자회사들 중에서 포항에 있는 본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며 사실상 본사 기능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가 있다고 말이 많다.

  • 정준양 회장 시절부터 강제적인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다이어트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회사 안팎으로 회장을 비난하는 말들이 많다. 물론 금연자들은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고, 다이어트의 경우에도 회사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긴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밀어붙이면 좋은 반응만은 나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 특이점으로 입사시 "인성"부분을 상당히 중요시 본다. 기본적으로 토익 900이상 학점 4.0근처의 고스펙이어야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입사 난이도가 높은 것도 있지만 여기에서 덤으로 "사회봉사경력"역시 필요.

    하지만 계열사이긴 해도 이런 사건이 터지는 걸 보면 결국 앞에 서술된 회사 내 군대조직문화의 문제점이 상당한 듯. 들어올 땐 인성을 봤지만 들어와선 군대란다

  • 2013년 4월 15일, 포스코의 계열사인 포스코에너지의 한 상무가 LA로 가는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승무원에게 진상을 부리다 기장이 착륙 허가를 받고 미국 당국에 신고, FBI가 출동해 결국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라면 때문인데, 최대한 친절하게 대접한 여 승무원 눈두덩을 책을 말아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자세한 사건의 전개는 이 항목으로

  • 여담으로 야구팀을 잠깐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한국실업야구팀인 포스틸 야구단으로 1978년에 창단해 2002년에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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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www.ajunews.com/kor/view.jsp?newsId=20130912000600#
  • [2]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와 한국전력을 제외하면 민간 기업으로는 재계 6위.
  • [3]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항제철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포스코'라는 사명 자체가 '포항제철'을 영문화시켜서 먼둔 것이기 때문.
  • [4] 미국을 비롯한 해외 국가들이 제철소 건설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용할 만한 자금은 기본조약 배상금외엔 딱히 없는 상황이었다.
  • [5] 대일 청구권 자금은 1965년에 한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해 받았던 일종의 배상금이었다. 이 부분을 은폐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 드립이 나오게 되었다.
  • [6] 현대는 이후 인천제철과 보철강을 인수한 뒤 현대제철을 출범시킴으로써 일관제철소를 갖게 된다.
  • [7] 지분율만 따지고 보면 포스코는 이미 외국계 기업이다.
  • [8] 1994~1997년 재임. 전두환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 [9] 원래 미쓰비시에서 설립해 준 거양해운이라는 해운회사가 있었으나, 김만제 회장 때 한진에 매각되었다. 이후 비슷한 업종의 회사를 다시 설립.
  • [10] 원래 3개 고등학교였으나 2015년 3월에 인천포스코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 [11] 용광로는 가동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24시간 직원이 근무하여야 한다. 포스코의 경우 4조로 나누어 3교대로 근무하는 형태이며, 현재 점차적으로 4조 2교대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 [12] 이게 교대근무자가 아닌 일반근무자 이야기이다! 거기에 자녀 두명의 대학 등록금이 전액 지원되기 때문에 실질소득은 이보다 높다!! 많이 뽑진 않으나 머리 좀 돌아가는 고졸이나 전문대졸이라면 포스코 생산직 지원을 노려봐도 될 정도. 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생산직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나 만도정도 밖에 없다.
  • [13] 지금의 대구텍
  • [14] 이 두 학교가 자립형사립고를 신청한 이유 중 하나는 직원 자녀들을 확실하게 받아주기 위해서이다.포항은 60%를, 광양은 70%를 포스코 및 계열사 자녀로 뽑는 전형이 따로 있다.
  • [15] 당시 광양의 경우 워낙 촌이었기 때문에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모두 순천고·순천여고로 유학가는 형편이었다.
  • [16] 포항의 경우 포항제철고를 비롯한 지곡 단지가 포항공과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여 과외 교사 공급이 매우 용이하다. 아예 포스텍 수학과 졸업하고 눌러앉아 학원교사하는 경우도 있다
  • [17] 영국 타임'지'가 아닌 The Times Higher Education 이라는 영국의 고등교육전문지이다.
  • [18] 사실 일부 고위 임원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생산직 직원들 역시 일반 시민들과 다를 바 없는 성장배경과 학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연봉이 도시 서비스 산업의 기반이 되는 탓에 이러한 우월의식이 존재한다. 여튼 이 때문에 지역의 일반 주민들은 단지 주민들을 질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질투가 아니다.
  • [19] 아이들이 비행청소년이 적다는 21c에 이르기 전 까진 반 즈음 맞는 말이었다. 외부와 단절 되어있고 사립 학교에서 부모 환경이 사실상 같다시피한 아이들만 모여있다보니 문제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건 너도 갖고 있다'보니 성격 차이를 제외하곤 갈등 요소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땐 제철소 단지 밖에 나가도 학생들이 갈 곳이 없었으니...)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 및 단지 외 광양 지역과의 교류가 쉬워면서 지금은 다 똑같다.
  • [20] 광양지역의 경우 원래 현재와 같이 공장 바로 옆에 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현 광양읍 근처에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그놈의 보상 문제 때문에...
  • [21] 무산되었다고 해도 실질적인 본사는 인천 송도로 가 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포스코건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