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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last modified: 2019-05-21 16:18:21 Contributors




국기

국장
위치
공식명칭 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건국일 1143년 10월 5일
국가 포르투갈의 노래(A Portuguesa)
면적 922만 2,600 ㏊[1]
인구 1,025만 4,666 명[2]
수도 리스본
정치체제 공화제, 이원집정부제, 단원제
국가 원수 대통령 마루셀로 누누 두아르체 헤벨로 지 소우자
(Marcelo Nuno Duarte Rebelo de Sousa)
정부 수반 총리 안또니오 꼬스따(António Costa)
GDP[3]
(명목 기준)
전체: 2,379억 6,200만 달러
1인당: 2만 3,176 달러
GDP[4]
(구매력 기준)
전체: 3,314억 4,500만 달러
1인당: 3만 2,199 달러
공용어 포르투갈어
국교 없음
화폐단위 유로(EUR)
대한수교현황 ROK(1961년) / DPRK(1975년)
ccTLD .pt

Contents

1. 개요
2. 자연
3. 역사
4. 정치
5. 경제
6. 사회
6.1. 국민성
7. 문화
7.1. 언어
7.2. 스포츠
8. 대외 관계
8.1. 한국과의 관계
9. 상징물
9.1. 국기
10. 포르투갈 국적, 출신의 캐릭터


1. 개요

남유럽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국가. 음차로는 포도아(葡萄牙)라고 한다. 왕년에는 나는 새도 뚝 떨어치는 국가 중 하나였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국명은 중세 포르투갈 형성의 중심지였던 포르투의 라틴어 명칭인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되었다. 현지 발음은 푸르투갈에 가깝다. 이후 Portugalia(포르투갈리아)라고 표기되었으며, 로마시대에는 Lusitania(루시타니아, 1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배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라고 불렸다.

수도는 리스본(Lisbon). 리스본은 영어식 이름이며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그 밖에 포르투, 브라가(Braga), 코임브라(Coimbra), 파루(Faro)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다. 리스본은 즐기고,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라가는 기도하고, 포르투는 일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1천56만 명으로 세계 242개국의 국가 중 79위이다.[5] 비슷한 인구 규모의 국가로 벨기에(1천1백13만 명), 스웨덴(9백55만 명), 그리스(1천78만 명), 헝가리(9백95만 명), 체코(1천53만 명) 등이 있다. 면적은 대한민국과 약간 비슷한데, 인구는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 정도 되는 것이다.

한국에는 유럽 축구의 강호 중 하나로 알려져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루이스 피구 등이 포르투갈 출신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가 포르투갈 축구의 황금기 였기 때문이고 역대로 따져 보면 사실 좋은 성적을 낸적은 거의 없다.

축구 외에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웃나라인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투우도 인기이다. 단, 포르투갈 투우는 소를 죽이지 않는다. 주요 수출품에 포도주코르크 등이 있고 전통음악으로는 파두(Fado)가 유명. 여러모로 시끌벅적한 이미지의 이웃 스페인과는 달리 차분하고 소박한 맛이 있다.[6]

어찌보면 코에이 게임인 대항해시대 시리즈때문에 더 유명하다.

왠지 국내에서는 포르투로 많이 불리고 있다. 앞의 'ㅌ'가 유기음이라서 뒤의 'ㅋ'도 덩달아 유기음으로 바뀌는 것.

2. 자연

유럽의 중생대 지층들중에서 라기 지층이 광범위한 나라라서 그런지 알로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다켄트루루스 등 말기 쥐라기에 번성했던 공룡의 화석들이 발견또는 출토되기도 한다.

지중해에 접해 있진 않지만 대체로 지중해성 기후를 띄며 유럽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가진 곳 중 하나이다. 여태까지 포르투갈 전국에서 기록된 최저기온은 영하 16도였는데 이 기온도 해발 1,500m가 넘는 산지에서 기록된 기온이다. 수도 리스본은 1월 평균기온 11.6도, 8월 평균기온 23.5의 온화한 기후로 강수량 774mm는 겨울 쪽에 비교적 집중되어 있다. 여름엔 일교차가 크고 낮에는 더우며 특히 남부 내륙 지역은 50도 가까이 올라가기도 한다. 역대 최고 기온은 공식 기록상으로는 2003년 폭염 때 아마렐레자에서 기록된 47.4도이나 50도가 넘는 비공식 기록도 있다.

3. 역사

대항해시대를 연 나라로 그 당시 매우 잘나갔던 것으로 유명하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중국의 마카오등도 포르투갈 식민지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국제 경쟁력에서 점차 도태되었고 주앙 6세 시절 왕세자였던 페드루가 브라질을 갖고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는 제대로 몰락했다.

이후 혁명과 군부 쿠데타, 살라자르와 카에타누 등 독재자들의 독재를 겪었고 남아있던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기니비사우와 앙골라, 모잠비크 등지에서 일어나는 식민지 독립운동을 무력 진압하고자 군대를 아프리카 식민지에 투입하여 식민지 독립운동 진압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앙골라, 모잠비크 등 식민지에서 일어나는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일으킨 식민지 전쟁도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 식민지내 독립운동 게릴라 반군들도 완강하게 저항하고 막대한 양의 돈과 인력들이 식민지 전쟁에 투입되면서 수렁으로 빠져들었다.결국 1974년 카네이션 혁명과 함께 민주화되었다. 1999년 마카오 반환을 끝으로 포르투갈은 모든 해외 영토를 포기하게 되었고 이는 포르투갈 영광의 항해 시대가 종료됨을 의미하였다.

4. 정치

포르투갈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63 점 2012년, 세계33위[7]
언론자유지수 16.75 2013년, 세계28위[8]

5. 경제

6. 사회

6.1. 국민성

사우다드(saudade)는 포르투갈인의 대표 정서로 꼽힌다. 한국어로 최대한 비슷하게 번역해보자면 '향수'에 가깝다. 그렇지만 딱 떨어지게 번역되지는 않는다.

사우다드는 나홀로를 뜻하는 라틴어 'solum'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울하기 짝이 없다(...). 대충 한국인의 대표 정서가 '정'과 '한'으로 밀어주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밀어주고 있는듯.

또한 이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애국심이 강한 편이고 애향심도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 자체가 엉망인 건 어쩔 수 없는지 결국 해외로 줄줄이 떠나는 중. 반면 라틴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국가들은 포르투갈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그야말로 황금 시대가 열렸다. 특히 브라질은 안 그래도 요새 한창 잘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온갖 지식인들과 기술자, 전문가들이 쏟아져 들어오니 그야말로 횡재. 요샌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자업자득

여담으로, 포르투갈인들은 유럽에서 평균 키가 가장 작다. 평균키가 남자 기준 172~173cm 여자 기준 162cm 정도로 한국인과 비슷하며 같은 라틴계인 스페인(175cm), 이탈리아(176cm)와 비교해도 현저히 작은 편. 정어리와 여자는 작으면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키가작은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의 영향인 듯도 싶다. 반대로 평균 키가 가장 큰 나라는 네덜란드.

보일듯 보이지 않게 순혈주의가 강한 유럽 내에서도 유색인종이나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나라 중 하나이다. 대항해시대부터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안/못 돌아와서 귀했다보니 혼기가 차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여자들이 남자 흑인 노예와 결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어왔고, 심지어 귀족 가문의 딸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밖으로 나간 남자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냥 아프리카, 동남아 현지 여자와 만나 눌러 앉아버리는 일은 부재기수였고. 그러다보니 농담으로 포르투갈엔 백인은 없고 혼혈만 산다고 얘기를 할 정도다 (...)

7. 문화

유럽 자유진영 국가들[9]중에서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가장 늦었던 나라이기도 하다(1980년 3월 7일) 한국보다 9개월정도 빨랐다(...)

7.1. 언어

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의 문해율은 30%대에 불과했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로도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7.2. 스포츠

국가대표팀이 2000년대 들어 강팀이자 우승후보로 부상하였다. 자세한 것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스타이자 리오넬 메시와 항상 라이벌 구도를 주축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포르투갈 출생이며, 축구가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이다. 덕분에 인구가 1000만 수준이지만 축구경기장 규모는 3~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10] 자국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리그에서도 꽤 상위리그(2011년 UEFA리그 랭킹 6위까지 차지했다)로서 벤피카FC 포르투는 챔피언스리그도 우승했으며 2010~11 시즌에는 모처럼 유로파리그에 4강에 3팀이나 진출했고 덕분에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팀끼리 맞붙게 되었다.(그동안 듣보잡이던 SC 브라가와 포르투의 결승전으로 FC 포르투가 우승했다. 그리고 감독 보아스는 첼시의 지휘봉을 잡기도했었으나 반 시즌만에 경질되고 시즌 종료 후 토튼햄 핫스퍼의 지휘봉을 잡는다.) 2011~12 시즌에는 벤피카가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 맨유를 제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 8강까지, 스포르팅 CP가 유로파리그 4강까지 진출했으며 2012~13 시즌에는 FC 포르투가 챔피언스리그 16강, 벤피카가 유로파리그에서 준우승하며 여전히 무시못할 위력을 보여줬다.

8. 대외 관계

이웃한 스페인과는 라이벌, 앙숙 관계.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지배와 간섭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스페인과 식민지 경쟁을 벌인적도 있었으나 결과는 북중미 대다수와 남미 대부분의 지역들을 스페인이 차지하였고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집어먹었다. 대신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스페인은 필리핀과 그 일대만 먹고 나머지 인도, 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해안의 무역 거점들은 죄다 포르투갈이 먹었다. 고아, 마카우 등지에 아직도 짙은 포르투갈 문화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은 주로 한 대륙을 먹고 그 주변으로 지배지를 확장하는 전형적인 팽창형 제국주의적 정책을 펼친 반면, 포르투갈은 자국과 그 활동 무대의 여건 때문에 [11] 핵심적인 무역 거점을 중심으로 띄엄 띄엄 제국을 건설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축구 경기만 하면 양국 응원단끼리 충돌도 벌어진다. 거기다 이웃한 국경 도시인 올리벤사를 두고 영유권 분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포르투갈이라고 당하고 산 것만 아니고,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 등 스페인,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스티야가 휘청 거릴 때 역습을 넣곤 했다. 게다가 두 나라의 국경은 워낙 역사가 오래 됬고, 레콘키스타 당시 부터 필요하면 종종 협력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워낙 문화적,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많기 때문에 서로 으르르 물어 뜯을 것 같은 악감정만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스페인 내의 카탈루냐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카스티야의 그늘에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기 때문에 뭔가 동질감과 동정이 섞인 미묘한 친밀감을 느끼고는 한다. 문화적, 언어적으로 포르투갈의 발상지이자 아직도 많은 뿌리를 공유하는 바로 윗동네 갈리시아와는 말 할것도 없고. 주로 스페인은 사실 중심부 카스티야에서 보면 포르투갈은 걍 수 많은 이베리아 반도를 공유하는 이웃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포르투갈? 그거 대구 (도시 말고 물고기) 많이 잡아 먹는 호날두 고향 아니여?" 정도의 의식에 그치는 반면 (...) 육로로 나머지 유럽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스페인을 통과 해야 하는 입장인 포르투갈 쪽에서 더 신경을 쓰고 감정이 많은 편이다.

브라질과의 관계는 매우 친한 사이인데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언어, 문화, 생활양식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개척시대부터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정복지 정도로 인식한 것에 비해 브라질은 자국 영토의 확장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에 더욱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다. 브라질 입국 심사때 내국인 줄이랑 외국인 줄 중 어디에 서야 하냐고 물을 정도로. 최근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브라질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 형국.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있어서도 스페인 마드리드가 아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일설도 있었다.

또 두 차례나 독립에 도움을 주었고[12] 공식적인 관계로 성립한 것만 생각해도 700년이 넘어가는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도 전통적으로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오고 있다. 이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리즈시절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도 씹고 영국과 무역을 지속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대가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본토가 침공당하고 왕가가 브라질로 피신해야 했지만, 이 피신 과정에서 영국 해군이 왕가의 피난을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포르투갈 영토를 되찾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양국의 왕가 사이 교류도 활발해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에 차를 전해주기도 했고, 포르투갈의 도로 통행방향도 1920년대까지 유럽 본토 국가중 유일하게 영국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을 했을 정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 즉, NATO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나토 국가들과도 군사적, 외교적인 협력도 한다.

더불어 영연방보단 못하지만 포르투갈어 상호교류를 하면서 옛 식민지 나라들인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동티모르와 축구대회를 가지기도 한다.

8.1. 한국과의 관계

18세기~19세기 천주교 선교와 함께 알려진게 최초다. 중국어 독음 가차를 빌려 "박이도갈이아(博爾都噶爾雅; 보얼더우가얼야)"와 로대니아(路大尼亞; 루다니아. 위의 루시타니아의 오기.)라고 알려졌다. 그 이전 스페데스라는 예수회 신부임진왜란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동행한 바 있으나 일본군내에서만 전도했다.

1961년한국과 수교하였으며 1975년북한과도 수교하였다.

9. 상징물

9.1. 국기


붉은색과 녹색으로 된 홍록기.

포르투갈의 국기는 2:3으로 분할된 초록과 빨강의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배열되었고 분할선 중앙에 포르투갈 문장이 들어 있다. 초록은 희망을, 빨강은 1910년의 10월 혁명의 피를 나타내며, 혼천의는 대항해 시대의 천체관측 기구이자 항해 도구로, 포르투갈 선인들의 측량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항로의 발견으로 이룩한 포르투갈의 위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현 포르투갈 국기는 혁명으로 공화국이 된 이후의 색으로, 왕정시절에는 바탕이 흰색과 파란색이었다.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의 기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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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5년 UN 식량농업기구 기준
  • [2] 2019년 UN 세계 인구전망 기준
  • [3] 2018년 국제통화기금 기준
  • [4] 2018년 4월 세계은행 기준
  • [5]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
  • [6] 스페인의 음악과 춤이 굉장히 흥겨운 반면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이나 파두는 굉장히 우울하다. 대부분의 주제가 바다로 나간 남편이나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노래이다.
  • [7] http://cpi.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 [8]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 [9] 공산권에서는 루마니아. 1983년이다. 어? 남한보다 늦네?
  • [10] 단 이것은 유로 2004를 단독개최하면서 (잉글랜드, 프랑스 등도 하지 않은) 10개 경기장을 신축 및 증축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으로, 실제로는 국내 빅3인 벤피카, 스포르팅, 포르투가 경기당 3만명이 넘는 대관중을 불러모으는 반면 다른 클럽은 경기장 대충 채우기도 어려워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나마 김동현이 있던 브라가나 정재권이 진출했던 비토리아 세투발 정도는 나은 편이다. 실제로 인구 수준이 비슷한 스코틀랜드나 그리스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으며, 보아비스타와 같이 유로 2004 당시 경기장 지출 때문에 잘나가던 클럽이 파탄난 사례도 있다.
  • [11] 중남미의 원주민들이야 사실 이 당시 부터 콩키스타도르 몇명으로 무쌍을 찍을 말큼 이미 기술력에서 격차가 있었지만, 포르투갈이 주로 활동한 인도양과 동아시아 일대는 그 당시 군사력으로나, 기술력으로나 유럽에 비교해 큰 격차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포르투갈은 소규모 파병 병력으로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는 작은 지역 토후국들을 중심으로 공략 했던 것
  • [12] 처음은 12세기 레콩키스타 시절, 두번째로는 1640년까지의 왕정복고전쟁 기간 중
  • [13] 스페인측 주인공이지만 본래는 포르투갈 출신이다.
  • [14] 이 인물은 스페인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