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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



그런데 이제는 펩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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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ANG? 보아텡의 엉덩이가 찰지구나


치킨 사와서 좋아하는 동네형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조제프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1]
생년월일 1971년 1월 18일
국적 스페인
출신지 카탈루냐 산트페도르
신장 180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유스팀 FC 바르셀로나(1983-1990)
선수 경력 FC 바르셀로나 B(1990-1992)
FC 바르셀로나 (1990-2001)
브레시아 칼치오(2001-2002)
AS 로마(2002-2003)
브레시아 칼치오(2003)
아흘리 도하(2003-2005)
라도스 데 시날로아(2005-2006)
감독 경력 FC 바르셀로나 B(2007-2008)
FC 바르셀로나(2008-2012)
FC 바이에른 뮌헨 (2013~2016)
맨체스터 시티 FC (2016~)
국가대표 경력 47경기 5골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무리뉴
2위
비센테 델 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2011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주제 무리뉴
3위
알렉스 퍼거슨
2012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비센테 델 보스케
2위
주제 무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오르게 포페스쿠
(1996~1997)
펩 과르디올라
(1997~2001)
르지 바르주안
(2001~2002)

FC 바르셀로나 역대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
(2003~2008)
펩 과르디올라
(2008~2012)
토 빌라노바
(2012~2013)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감독
유프 하인케스
(2011~2013)
펩 과르디올라
(2013~ )

스페인 출신의 前 축구 선수이자 前 FC 바르셀로나 감독, 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그냥 줄여서 "펩"으로 부른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트레블을 넘은 6관왕을 달성한 남자.

현대 축구 전술사의 한 획을 그은 명 감독

현대 축구에서 가장 진보적인 전술 운용을 가져가면서 훌륭한 성적까지 내는 세계 최고의 감독

Contents

1. 선수 시절
1.1. 리그 경력
1.2. 국가대표 경력
2. 플레이 성향
3. 감독 생활
3.1. FC 바르셀로나
3.2. FC 바이에른 뮌헨
4. 전술 스타일
5. 기타, vs 주제 무리뉴
6. 기록
6.1. 선수 기록
6.2. 감독 기록
6.3. 수상 기록

1. 선수 시절

1.1. 리그 경력


말그대로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원 클럽맨은 아니지만 FC 바르셀로나 성골 중의 성골이다.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카탈루냐 출생으로 외국인과 바스크 선수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몇 안되는 카탈루냐 출신 선수였다. 당연하겠지만 FC 바르셀로나의 유스 팀에서 성장했고, 1990년 12월 16일날 리그 데뷔전을 치루었다. 요한 크루이프의 지휘 아래에서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팀에게 여섯 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 두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안겼다.

당연히 뼛속까지 카탈루냐인이기 때문에 FC 바르셀로나에서 인기는 엄청났다. 스페인 국대와 카탈루냐 대표를 동시에 뛰기도 했다.

그러나 펩의 선수 시절 말년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약물 복용 의혹과, 외지의 클럽 저니맨을 '좋은 말년'이라 하기는 힘들 것이다. 펩은 FC 바르셀로나에서 정신적 지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꼬박 11시즌[2]을 뛰고 이적한다. 이 때 펩의 나이는 고작 30세였고, 유리몸이라는 단점 때문에 일찍 노쇠했다는 평은 있었지만 퇴물, 흘러간 레전드 같은 수식어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에는 한참 젊은 나이였다.

그 이후의 행보가 특히 의혹 투성이인데 그가 카탈루냐를 떠나 선택한 클럽부터 다소 의외였다. 그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이적하려 하자, 뉴캐슬, 맨유, 웨스트햄, 토트넘, 리버풀, AC 밀란, 인테르에서 링크가 떴다. 30세로 나이는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빅 클럽에서 뛰기에는 무리가 없는 선수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전술을 배워 보고 싶다는 마음에 세리에 행을 선택한다. 이 때 그가 이적한 클럽이 브레시아 칼치오이다. 브레시아 칼치오는 그 전 시즌 승격해 로베르토 바조의 활약으로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세리에A 7위를 거뒀다. 펩이 브레시아에서 뛴 것은 01-02 한 시즌 뿐인데, 브레시아는 이 때 14위를 하게 된다. 망했어요 펩은 다시 세리에 내에서 AS 로마로 이적한다. 00-01 우승, 01-02 준우승을 했던 명문 로마는, 펩의 이적과 시기가 맞물려 02-03 8위로 추락한다.

사실 펩은 브레시아에서 실질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다. 그는 01-02 전반기를 마친 후, 2002년 1월 약물 복용으로 기소되어 4개월 간 출전 금지를 당한다. 이에 대해 펩은 바르셀로나 B팀 감독이 된 후 항소하지만, 항소에서도 그의 약물 복용 혐의가 인정되었다. 결국 그가 바르셀로나 A팀 감독이 된 후에야 의혹이 Cleared, 즉 무죄 처리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선수시절의 약물 복용 문제를 7년 6개월이 지나서 바르셀로나 감독이 되어서야 무혐의로 처리하는 것 때문에 많은 의혹이 있다.#

브레시아에서의 후반기에는 출장을 못한 채 로마로 이적을 한다. 그는 로마에서 02-03시즌을 뛰었는데, 오히려 리그는 전반기만 뛴 브레시아에서 보다 더 적은 단 4회 출장만 하게 된다. 로마 올드팬들은 최악의 영입에 펩을 꼽기도 하는 것이 그의 로마 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로마는 아예 펩을 포기했고, 결국 몇 달을 다시 브레시아에서 뛰게 된다. 브레시아는 10위로 리그를 마감한다.[3]

세리에에서 나온 펩이 향한 곳은 축구선수들의 은퇴지인 중동리그이다. 카타르의 알 아흘리로 이적한다. 이번에도 세리에를 떠났을 때 맨유의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카타르 리그에 있을 때 맨유, 맨시티, 첼시의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리그에 머무른다. 03-04, 04-05 두 시즌 카타르에서 뛰면서 그는 세리에에서와는 달리 주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때 팀의 성적은 03-04 때 10팀 중 4위, 04-05 때 10팀 중 8위이다. #

알 아흘리에 있을 때, 펩은 약물 복용 혐의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7개월 징역을 선고 받는다. 이는 위키피디아의 펩 항목에도 누락된 내용이다. 2005년 약물 복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보류되었고, 2007년 B팀 감독으로서 항소한 후에는 혐의만 남은 채 징역형은 말소된다. 그리고 2009년에서야 그의 약물 복용이 무혐의로 처리된다.

알 아흘리에서 나온 펩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에서 지금은 2부 리그 팀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에 가게 되고, 이때의 성적은 6팀 중 4위#라는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이때, Axocopan에서 감독 일을 배우게 된다.

1.2. 국가대표 경력


과르디올라는 자국에서 개최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여기서 스페인은 2004년 올림픽과 2008년 올림픽때의 아르헨티나처럼 막강한 화력을 구사하며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 결승전에서 폴란드를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게 된다. 과르디올라의 스페인은 당시 기준으로 디펜딩 챙피언인 독일, 남미의 복병 볼리비아, 아시아의 대한민국과 같은 조가 되었다. 과르디올라는 볼리비아전에서 골을 넣어 천금같은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독일, 대한민국과 둘 다 비기는 바람에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도 스위스를 상대로 직접 골을 넣진 못했지만 승리를 거두는데에 일조했으나 8강전에서 이대회 준우승국인 이탈리아에게 덜미를 잡혔다. 올림픽 금메달의 저주

유로 1996에서는 조별리그에서는 잘했으나 8강에서 잉글랜드에게 승부차기로 덜미를 잡히고 탈락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가 현역 국대로 뛰던 시기의 스페인 국대는 구엘 앙헬 나달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 CF스티야 파벌과 펩 과르디올라로 대표되는 카탈루냐 파벌이 여전히 갈라져 있던 시기라 이름값에 비하면 팀웍이 좋지 않았으며, 과르디올라가 부상이 잦아서 국대에 꾸준히 출전을 못했기 때문에 그 시기 스페인 국대의 실력은 탑클래스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2. 플레이 성향


선수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 더 정확히는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어진 보란치중에서도 세계적인 선수이다. 한국 선수로는 조광래가 대표적이고 당대 선수들로는 브라질의 둥가, 네덜란드와 밀란의 프랑크 레이카르트,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아르헨티나와 옆동네 레알 마드리드의 레돈도 그리고 스페인과 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가 손꼽힌다. 수비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공을 잡으면 정확한 패스웍을 통해 경기를 정교하게 전개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바르셀로나식 보란치의 계보를 시작한 인물로, 챠비 에르난데스가 그 후계자이자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비 알론소 혹은 이탈리아의 피를로와 같은 후방형 플레이메이커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들같은 초일류 레지스타가 되기엔 피지컬이 딸렸고 부상이 잦아서 실력이나 카리스마에 비하면 빠르게 후계자들이 치고 올라와 잊혀진 편.

특히 그의 기량은 크루이프 지도하의 바르셀로나 드림팀 1기때 빛을 발했는데, 이때는 호마리우,스토이치코프, 베히리스타인 등의 공격진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주고 로날드 쿠만이 지휘하는 포백라인의 앞을 보호하는등 그야말로 현재의 챠비에 버금가는 활약을했다.

다만 안습한건 몇번이고 언급하듯 부상때문에 내구력은 약했고, 그때문에 선수 말년에 이곳저곳으로부터 시련에 빠지고, 본인도 슬럼프에 빠졌으며 그의 스타일 자체가 그 혼자 잘한다고 팀의 기량이 한순간에 올라가는게 아닌, 그와 함께 패스를 잘 받아먹을 공격수가 있어야 사는 스타일이라 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곳에서의 커리어가 모자람은 아쉬움이 있다. 펩 자신은 시대가 자신과 같은 유형의 선수를 더이상 원하지않았다고 했다. 펩이 서서히 사라져간 시기는 클로드 마켈렐레 유형의 선수가 빛을 발했던 시기이기도하다.

3. 감독 생활

3.1. FC 바르셀로나


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팀을 만들다

바르셀로나 레전드인지라 은퇴 직후 2007년 바르셀로나B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과르디올라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이를 눈여겨 보고 있던 바르셀로나 회장은 당시에 부진하여 경질을 앞두고 있던 레이카르트 감독 다음으로 과르디올라가 지휘봉을 잡을 거라고 밝혔다. 처음에 과르디올라는 감독보다는 바르셀로나 구단 프런트가 되길 원했고 A팀 감독 경력이 짧은 과르디올라가 팀을 잘 맡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지만, 시즌 초반 그는 간지넘치는 말로 팬들을 안정시켰으며[4] 시즌 후 결과는 우승 트로피로 나타났다.. 과르디올라는 팀을 리빌딩하기로 결정, 과감하게 호나우지뉴데쿠, 사무엘 에투 같은 선수들을 팀에서 내보냈다. 그후 바르셀로나에 극강의 점유율 패스 축구를 완성하면서,[5] 바르셀로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팀이 되었다.[6] 과르디올라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리오넬 메시를 발견한 것이었다. 워낙 실력이 출중한 선수라, 과르디올라 감독이 아니어도 메시는 언젠가 빛을 보게 될 케이스였으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메시의 능력을 효율적이게 활용하는 걸 보면 감독의 공로도 크다는 걸 알수 있다.[7]

정확히 말하자면 메시는 과르디올라 부임 전부터 떠오르는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레이카르트 감독 말기, 즉 호나우지뉴가 막장화된 07/08 시즌에는 빼도박도 못할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이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있었으므로 메시의 발견을 과르디올라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그 때 메시에게는 여러 약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약점은 '도자기 스타'로 불릴정도로 유리몸이었다는 것. 그러나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후 체계적인 식이요법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메시는 호날두에 버금가는 금강불괴가 되었다. 또한 측면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던 메시에게 측면 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주문했으며 결국 제로톱의 중심에 메시를 놓으면서 메시의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극대화했으며 메시는 뛰어난 경기력과 가공할만한 스탯을 동시에 거머쥐며 호날두를 제치고 단숨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물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 같은 잘못도 있었지만,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돈을 날리는 일도 적은 편...이나 선수를 영입할때의 보는눈은 아직 개선할 여지가 보인다. 예를들어 앞서 말했던 즐라탄도 있고, 25M을 허공에 흩뿌린 영입과 같았던 치그린스키 라든가[8],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건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워낙 튼튼한 이유도 있다. 또한 영입 자체도 위의 두개가 워낙 커서 그렇지 나머지는 꽤 준수한 영입이었다. 특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영입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돈낭비라고 까였으나 마쉐를 센터백으로 전업시키는 신의 한수를 두었다. 마스체라노가 없었다면 얇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으로는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타 맥스웰, 아드리아누,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도 돈 값 이상은 했다는 평. 비야세스크 같은 경우는 본인 의사만으로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아펠라이는 챔피언스 리그 4강 엘 클라시코에서의 크로스 한방으로 3m 값어치는 다했다

과르디올라가 팀 운영에 있어서 가장 크게 욕을 먹는건, 유독 자기 스타일과 플랜에 안맞는 선수를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것.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과르디올라가 자신을 무시했다며 언론에 밝혔을 때 [9]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0] [11] [12] [* 당연히 즐라탄 자서전은 그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므로 그 안에서의 펩은 천하의 나쁜 놈일 것, 2009/2010시즌 바르셀로나 경기를 봤으면 알겠지만 즐라탄은 후반기에 급격히 경기력이 저하되었고 활동량과 골결정력 마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메시를 중앙에 세우는 포메이션으로 아예 바꾸게 되었고, 즐라탄은 서툰 측면에서 더더욱 안좋은 모습을 보이며 즐라탄 대신 보얀을 투입하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보얀이 나왔을때 바르셀로나 경기력이 오히려 더 좋기도... 그리고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즐라탄을 중앙에 세우면 20~30골을 넣는 반면, 메시는 50골 이상의 득점과 동시에 측면 페드로의 득점력까지 살려주는데 팀을 이끄는 감독의 입장에서 메시를 가운데에 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리하자면 메시 제로톱으로 즐라탄이 못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즐라탄 원톱이 부진하기 시작하면서 메시를 제로톱으로 둔 것이 사실이다. 펩 과르디올라가 비난받아야 할 부분은 선수와의 소통혹은 맘에 안드는 놈은 철저히 숙청에 대한 부분이지 포메이션 변경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13]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좋게 나온 맨체스터 시티의 미드필더 야야 투레도 바르셀로나에서 과르디올라가 자신을 무시했다며 섭섭한 감정을 인터뷰로 내비쳤다. 야야 투레의 말에 의하면 거의 반년동안 말도 걸지 않고, 말을 걸어도 쌩~하고 지나갔다는 듯.# [14]
사무엘 에투 역시 과르디올라와의 불화로 인해 바르셀로나에서 떠나게 된 과정을 방송에서 털어놓았는데, 마찬가지로 무시와 존중에 대한 문제였다.# FM 게임의 달인이어도 현실에서 감독을 할 수 없는건 감독이 단순히 경기장에서 선수들 지휘하는 역할만 하는게 아니기 때문인데, 과르디올라는 축구 행정가를 꿈꿨다는 사람 치고 심하게 대인관계가 사무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란게 문제점인 것.

뮌헨시절에도 이러한 성향은 이어져 마리오 만주키치역시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고 판명 된 이후 조금씩 배제하기 시작했고, 2013/14시즌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뮌헨이 레반도프스키와 계약하고 자신의 9번을 줬다는 사실에 분노하고[15] 과르디올라에게 항명하자 이후 철저히 무시하고 시즌 후 방출했다.#

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선수들 각각 움직일 수 있는 경로나 포지션 같은 걸 따로 연구하며, 온갖 컨디셔닝은 물론 선수단 식단 메뉴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는 극도로 완벽주의적 매니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완벽주의적 성향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매일 밤 12시에 아무 선수에게나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다. 선수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일 없이 넘어가지만 클럽에서 노는 등 집 밖에 있다가 전화를 안 받으면 즉각 불이익이 돌아갔다. 젊은 선수은 잘 따랐지만 앙리나 아비달 같은 고참 선수들은 매우 불편해 했다고. 또한 일에 매달려서인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도 쉬고 싶은지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머지 않아 그만두고, 휴식 후 다른 팀의 감독을 맡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진이 워낙 좋아서 선수빨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그래서 이러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팀의 감독을 함으로써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바르셀로나 선수단과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 것이 과르디올라의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식으로 그의 능력을 폄하하기엔 그 이전까지의 바르셀로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의 밥상을 그가 직접 차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16] 또한 세르히오 부스케츠페드로 로드리게스, 헤라르드 피케 등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로 성장시킨 것에도 그의 공이 아주 크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여준 감독 능력은 결코 선수빨로 폄하하기 힘들만큼 명감독의 자질이 보인다.

부임 이후 2008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프리메라리그는 모두 바르셀로나가 차지했으며,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슈퍼컵과 클럽 월드컵 역시 각각 두번씩 우승을 차지했다. 코파 델 레이도 한번 우승했다. 어쨌든 과르디올라가 부임 이후 바르셀로나가 차지한 트로피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괜히 불과 4년에 불과한 1군 감독 경력에도 불구하고 퍼거슨, 무리뉴와 함께 본좌급 감독으로 꼽히는게 아니다. 적어도 전술적인 역량에 있어서는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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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하자마자 08-09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과르디올라

하지만 이번시즌 바르셀로나가 무관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곳저곳으로부터 링크설이 뜨고 바르셀로나 사임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11-12 시즌을 끝으로 사임을 표명했다. 과르디올라의 평전을 작성한 스카이 스포츠의 기옘 발라게에 의하면 펩은 승리를 거둘수록 높아져만 가는 기대치와 요구와 강행군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였으며 오래 전부터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한 상태였다고 한다. 세시간에 이르는 회장과의 면담에서 그는 무제한 선수 영입을 보장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1년간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하였다.#1년의 휴식후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그런데 벌써 첼시, AC밀란, 인테르와 같은 유수의 클럽으로부터 링크가 나고있다. 12-13시즌이 끝난후 여름에는 돌풍의 핵이 될듯. 사실 이전부터 건강에 대한 얘기도 많았고, 감독을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었으며, 계약 자체도 매년 1년 단위 계약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 결국 4시즌동안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바르샤를 우주최강팀으로 만든 과르디올라는 갑작스레 떠났다.


웸블리에서 다시한번 빅이어를 들어올린 과르디올라


바이에른 뮌헨, 첼시, 맨유 등의 빅클럽과 꾸준히 링크가 나던 끝에 마침내 2013-2014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이 확정되었다. 뮌헨이 부인기사 낸지 불과 12시간도 안되어서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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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공홈에 뜬 오피셜

근데 12-13시즌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뮌헨이 무려 트레블을 달성했기 때문에 펩의 입장에서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엄청나게 될 듯 하다.매년 트레블은 기본에 가끔씩 무패 or 전승우승과 6관왕도 찍어주셔야 잘 했다는 소리 들을 듯.

3.2. FC 바이에른 뮌헨

결국 12-13시즌 우주 최강 바이에른 뮌헨의 사령탑에 부임했다. 뮌헨을 택한 이유는 수많은 레전드와 전통, 유스시스템 등 본인의 축구철학과 가장 잘 맞는 팀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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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은 부임후 콤팩트한 패스축구를 뮌헨에 재현하기 위해 적합한 선수들을 속속 영입해온다. 4월에 이적을 확정한 마리오 괴체역시 펩이 원했고, 선수 본인도 과르디올라 아래서 성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 그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이 유력했던 옛 제자 티아고 알칸타라 역시 옛 스승을 찾아 뮌헨으로 이적했고, 그외에 기존 선수들중에 부진하던 하피냐디에고 콘텐토를 재발견하는 한편, 성향상 방출이 예상된 아르연 로번의 활용과 필립 람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또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핵심 선수들의 이탈도 만만치않다.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는 브라질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더 많은 출전기회를 위해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루이즈 구스타보또한 월드컵을 염두해두고 많은 출전을 위해 VfL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펩은 부임당시 모든 선수들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을거라 밝혔고, 실제로 현재까지도 디에고 콘텐토, 클라우디오 피사로, 하피냐, 다니엘 반 바이텐등 많은 서브자원들에게 프리시즌/정규시즌을 가리지 않고 출전기회를 부여해줬다.[17] 하지만 월드컵을 눈앞에둔 시점이다보니 바쁜 주전경쟁속에 있는 구스타보와 고메즈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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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부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모습이 포착된 펩

부임 후 울리회네스컵, 텔레콤컵, 리가토탈컵, 아우디컵 등 많은 프리시즌 대회들에서 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7월 28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부임 후 첫 데어 클라시커에서 주전들의 부상으로 인해 티아고 알칸타라를 볼란치로 내리는 변형적인 포메이션으로 도박수를 던졌다가 2대4로 패하며 첫 공식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바이에른뮌헨처럼 시원시원한 공격력이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점유율만 높지 득점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아랑곳않고 리가, 컵, 챔스 가리지않고 무패행진을 달리고있으며,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행진또한 이어가고있다.
UEFA 슈퍼컵에서 수많은 엘 클라시코에서 맞붙었던 적장 조세 무리뉴가 이끄는 첼시를 만났다. 경기는 바이에른이 드라마틱한 PK승을 거두며[18] 펩은 바이에른 감독 취임 후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개막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3대1로 시원하게 꺾으며 좋은 정규리그 스타트를 끊었다. 챔스에서도 CSKA 모스크바맨체스터 시티, 토리아 플젠압도적으로 털었다. 게다가 맨시티전 3-1승리는 자그마치 맨시티 원정에서 승리한것.[19] 현재 5승0패 15골 2실점으로 조1위를 확정한 상태다. 흠좀무. 하지만 2013년 12월 11일 알리안츠에서 벌어진 對맨시티 전에서는 전반 10분 전후로 뮐러와 괴체가 각각 한 골씩 두 골을 넣으며 쉽게 승리를 챙기는 듯 하였으나 실바의 골, 콜라로프의 pk와 보아텡의 삽질로 인한 제임스 밀너의 골로 3:2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토마스 뮐러와 21명의 바보들'이라는 짤이 등장하였다.

분데스리가 12라운드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3대0 승리를 거두며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다 무패기록인 36경기 무패를 경신했다
13-14 리가 우승의 패권을 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치른 데어 클라시커에서 마리오 괴체티아고 알칸타라를 연이어 투입시키는 후반 승부수를 통해 3대0으로 도르트문트를 원정에서 털었다. 무패행진은 38경기로 늘었으며 현재 11승2무 승점35점으로 리가 단독선두를 이어가는중.

그리고 3일 뒤 CSKA 모스크바 원정에서 폭설 속에서도 쿨래스 차이를 보여주며 3대1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지난시즌8강 유벤투스전 승리 이후 챔스 10연승을 달성했고, 02-03시즌 FC 바르셀로나가 가지고있던 기록을 깨뜨렸다. 근데 바로 다음 맨시티와의 홈경기에서 뜬금없이 발려서 깨졌다. 음? 이게 아닌데...

이후 52경기 무패 행진, 리그 1경기당 2골 이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3월 26일, 유럽 5대 리그 사상 최단 기간 우승기록을 세웠다.FM에서도 이짓거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2014 3월 우승확정 이후 선수들의 미칠듯한 동기저하가 찾아왔고 최근 10경기에서 4승만을 거두었다. 또한 가장 최근 챔스에서 레알과의 준결승전에서 작년 챔스에서 바르샤를 찢던 포스는 사라지고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에 털려 1차전에서는 1:0 2차전에서는 4:0으로 통합스코어 5:0이라는 대참사를 겪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볼 소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정신 못 차리고말했다. #

그리고 티키타카는 노답타카, 문어타카라는 별명을 얻고 말았다

이후 작년 12월부터 급격한 바르셀로나화를 불만족스러하고 팀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며 펩과 티키타카를 디스했던 프란츠 베켄바워 명예회장의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처음 깠을때는 노망난 노친네 지금은 역시 카이저 그리고 레알에게 참패를 당한 후 인터뷰에서 뮌헨선수들의 멘탈을 디스하면서 동시에 펩의 전술을 다시금 디스하였다.


챔스에서 워낙 처참하게 탈락해서 망한 시즌처럼 보이지만 뮌헨에서의 첫 시즌, 마이스터샬레, 포칼, 슈퍼컵, 클럽월드컵을 따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사무엘 에투, 야야 투레 그리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자신의 전술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홀대를 하면서 불화를 겪다가 떠내보냈듯이 이번엔 마리오 만주키치가 불화를 겪다가 떠나게 되었다. 시즌초반에 출장을 못 하면서 불화설이 돌다가 골을 자주 넣자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하고 불화설도 사그라들었으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영입으로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고, 포칼 컵 결승에서는 아예 선발에서 제외해버리고 "다음 클럽에서 행운을 빈다"라는 말까지 하여 만주키치를 제대로 빡치게 했다. 결국 만주키치는 라커룸에 짐 다 싸들고 대표팀으로 갔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리고 마리오 괴체,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로도 모자랐는지 마르코 로이스를 원한다는 루머가 생겼다.링크 그러나 그 루머를 반박하듯이 영입은 이번 여름엔 더이상 없다고 인터뷰를 했다.

전통적으로 바이에른은 월드컵 종료후 바로 다음 시즌에 아주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았는데[20][21], 레전드들과 팀의 높으신 분들도 많은 우려를 하고 있으나 펩은 "이 난관은 이미 헤쳐봤다."라고 이 우려를 종식시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로 펩은 남아공월드컵을 우승하면서 7경기를 모조리 뛰고 돌아온 스페인 국대의 주전들을 이끌고도 바로 다음 시즌인 10-11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뮌헨에서도 그의 마법이 통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14-15시즌을 앞두고 브라질 월드컵 우승멤버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들이 휴가중이어서 리베리, 알라바, 레반도프스키를 빼고는 거의 2군들로 시즌을 준비중인데도 텔레콤컵 등 프리시즌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22] 그리고 뮌헨 팬들이 희망에 젖을 발언을 자서전 발간을 위한 밀착취재도중 직접 했는데, 드디어 자신이 완성시키고 성공가도를 이끈 티키타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새로운 전술을 모색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13-14 DFB-포칼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썼던 변형3백을 이용한 빠른 템포의 공격을 사용할 수도 있고, 유프 하인케스의 피지컬과 페이스로 찍어누르는 깡패스러운 닥공축구가 재현되기를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다. 그리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사비 알론소, 메흐디 베나티아등의 보강을 통해 유럽 최정상급의 스쿼드를 구성했기에 구단과 팬들의 요구수준역시 매우 높아졌다. 적어도 리가 우승,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 정도는 해야 불만이 없을 시즌이기에 펩이 어떻게 시즌을 지휘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중. 그런데 역대급 부상신이 강림한게 함정


2014년 바이에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옥토버페스트에 뮌헨선수단과 함께 참여하였다그리고 머리숱은 더 줄었다

14-15시즌, 그가 말한대로 월드컵 징크스따윈 눈씻고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슈퍼컵에서 도르트문트에게 무기력하게 패했으나 이건 월드컵과 휴가로 독일 국대의 주축들이 복귀한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터라 조직력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크게 문제가되진 않았다. 그리고 정규리그경기에서 승리하며 복수하는데도 성공했다.
현재 리가에서 무패행진을 기록중인데다 포칼도 가볍게 8강 진출, 12라운드까지 단 3실점만 허용했을 정도로 승승장구중이고, 챔스에서도 4연승으로 가장 먼저 조별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5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2대3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른시간 메흐디 베나티아가 퇴장당해 무려 70분동안 10명이서 싸웠으나 머릿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팀의 클래스를 여실없이 보여주며 선전한 경기였다. 막판 수비들의 어이없는 연속된 실수가 화를 불러왔을 뿐 오히려 경기력은 칭찬해줘야하는 점이다. 유럽 최정상의 스쿼드 뎁스라는 평이 무색할정도로 부상신이 강림하여 스쿼드가 반토막이 났지만 펩의 적절한 용병술로 계속해서 승리를 챙기고 있다.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만난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은 무재배였으나 홈경기에서 7:0으로 처바르며 가볍게 8강에 진출시켰다.

뮌헨에서의 2년차 시즌 절반쯤 지난 현재, 이번 시즌도 VfL 볼프스부르크전 충격패를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다 아르연 로번 활용의 극대화, 마누엘 노이어의 스위핑을 겸비한 높은 라인배치로 점유율을 확보하고 수비까지 겸하며 유럽리그 최소실점을 이어가며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비드 알라바필립 람도 매우 잘 다루는데, 두 선수에게 중앙지향적인 임무를 부여해 점유율 확보와 공-수 양면에서 고루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단점도 적잖게 보이는데, 우선 토마스 뮐러의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게 아쉬운데 뮐러도 스탯을 평타 정도는 쌓고있지만 침투와 공간 확보에 강점이 있는 뮐러가 그냥 2선에서 물러나 볼만 돌리고 있는건 좋은 장면이 아니어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세레머니 실력도 안늘어나는건 덤
그리고 큰 기대를 모았던 슈바인슈타이거 - 사비 알론소 조합도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만으로 평가하자면 실망스러움 그 자체인데, 플랫 3백이나 4-1-4-1을 즐겨쓰는 펩의 성향상 둘을 함께 기용하기엔 전술 자체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물론 알론소나 슈슈 중 한 명만 선발로 세울 경우에는 경기력이 확연히 좋아진다. 후반기 샬케전 무재배 이후 4경기 동안 무려 20골을 때려박으며 연승행진중인 것에서 증명된다.

4. 전술 스타일


티키타카의 트레이드마크, 펩 과르디올라시절 FC 바르셀로나의 플레이

숏패스, 점유율, 압박

5. 기타, vs 주제 무리뉴

흔히들 부르는 '펩(Pep)'라는 이름은 애칭이다. 본래의 이름은 카탈루냐식으로 조제프(Josep)이다.


주제 무리뉴와는 기이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96년,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에서 코치 겸 통역사로 일하던 시절 둘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같은 팀에서 일하는 사이인 그때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후에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거론되었을 때, 무리뉴는 자신의 수석코치로 과르디올라를 원했다. 그러나 감독은 과르디올라가 되었고, 무리뉴는 다른 팀에 가게 된다.

2010년 둘의 악연이 시작되는데, 무리뉴는 인터 밀란 감독직으로 재직하면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끝끝내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이룬다. 이때 준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꺾게 되는데, 그라운드에서 세레머니를 하던 무리뉴를 바르셀로나 골키퍼인 발데스가 억지로 잡아끄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여러 논란이 일었다.

이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직하면서 역시나 바르셀로나와 과르디올라를 향한 특유의 언플을 시전하고[23] 둘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지고 말았다.[24] 오죽했으면 그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의 언론 플레이에 빡쳐서 인터뷰 도중 욕지거리를 했을 정도였다.[25][26]

인터뷰할때는 정확한 사실만을 전하고 그다지 립서비스를 하지 않는것에 대해[27] 스페인 언론들은 그를 위선자라 부르기도 한다. 너무 냉소적이고 침착하게말하니까.옆동네의 모 감독을 보고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무슨생각을 할까. 하지만 2011/12 시즌 챔스 8강 후 자서전에서 과르디올라를 잘근잘근 씹었던 즐라탄이 무리뉴가 했던 말을 언급하며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자 드디어 빡쳤는지 이런 인터뷰를 했다. 그 외에도, 리그 우승이 멀어지면서 비꼬는 어조의 인터뷰를 많이 보여주어 신사적인 이미지에 상당히 타격을 입었다. 감독 등 축구계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존재들이라고 인터뷰한 무리뉴에게 대고 "당신이랑 내가 비슷하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고 무리뉴가 우승이 확정되기 직전 인터뷰에서 과르디올라의 사임 결정에 그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란다며 예의를 지킨 인사를 했는데도 "레알의 우승을 축하한다. 우리(바르셀로나)의 침묵으로 가려진 많은 것들로 뒷받침된 승리지만..."라며 뒤끝을 보여주는 인터뷰를 해서 빈축을 샀다. 그러나 무리뉴는 평소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와 자신을 잘근잘근 씹어왔으니 서로 감정이 좋을리 없고 사실상 뒤끝 인터뷰와 음모론 드립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의 승리시 자주 시전하는 스킬이었으므로 이 건수 역시 무리뉴와 원투펀치 주고 받았다고 보는게 맞다. 한마디로 자기 기술에 자기가 당한것 물론 무리뉴의 저 인사만큼은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과르디올라에게 감독 대 감독으로서 동업자에 대한 격려가 담긴 것이라고 보는게 맞고. 어쨌든 피치 밖의 신사로도 불렸던 과르디올라가 무리뉴 부임 2시즌만에 불만을 주고 받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시기를 봐선 2010년 UEFA 코치 컨퍼런스때였던거같다



과르디올라 바르샤 마지막시즌 때 경기 전 악수는 나누었지만 둘의 표정으로 봐선 사이가 확실히 안좋아졌다

무리뉴와의 앙숙관계는 계속되어 2014년 유럽 빅클럽 감독모임에서 펩이 무리뉴에게 "무리뉴는 우아한 축구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축구만 좋아한다"라고 비판하였고 무리뉴는 이에 "펩이 대머리가 된거는 축구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펩의 신체적 약점을 들어 비꼬아 파문이 되었다.

사실 이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무리뉴의 바르셀로나 코치시절.


96/97 시즌 바르셀로나가 라리가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패한 이후 경기 내내 계속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에 흥분해있던 무리뉴가 빌바오 감독 이스 페르난데스에게 자식관련 패드립을 해가며 욕설을 했고 분개한 페르난데스가 무리뉴에게 다가갔는데. 팀의 주장인 펩이 막아서서 무리뉴 대신 싸워줄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 원래 무리뉴는 펩을 수석코치로 데리고 싶어 할 정도였다. 바르셀로나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는 무리뉴가 바르셀로나가 자신이 아닌 펩을 감독으로 선택하면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상대팀 감독으로 맞딱뜨리고, 차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하고 서로 감정적으로 치고박고 싸우기 시작하면서 앙숙이 된듯.


그리고 수트가 잘어울리는 대표적인 감독. 보통 '수트 입었을때 간지나는 감독 이미지'를 생각했을때 떠오르는 감독이다. 180이라는 우월한 기럭지를 가지고있어 사실 어느옷을 입어도 대부분 잘 어울린다. 대신 머리는좀... 그런데 요즘은 배나온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있다.


사실 감독 부임 초기만해도 머리숱이 남아있었으나 계속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가 모두 빠져버려 매끄러운 탈모인이 돼버렸다.[28] 혹자는 이를 머리와 성적의 등가교환이라 표현하기도.그리고 펩꼬야끼라는 별명이 추가


수트 입는 센스도 훌륭하다. 점점 줄어드는 머리숱은 무시하자


무리뉴와는 여러모로 얽힐 수 밖에 없는데, 수트 잘 입기로 유명한 두 감독의 스타일을 남성 패션지 GQ에서 다루기도 했다. 두 감독의 패션은 클래식 vs 모던이다. 왠지 수비축구 vs 티키타카라는 팀의 스타일하고도 비슷한듯? 무리뉴는 주로 무채색의 포멀한 스타일의 수트에 컬러타이, 혹은 노타이로 포인트를 준다. 그리고 겨울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아르마니 회색 오버코트에 머플러를 코디한 모습은 중년 남성 패션의 교본과도 같다. 펩은 보다 활동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중시한다. 타이트한 핏의 수트를 즐겨 입고 언제나 셔츠에 다양한 색상의 풀오버를 매칭시켜 포인트를 준다. 때로는 자켓 없이 셔츠 소매를 롤업하기도 하고, 슬랙스나 슬림핏 데님을 입어 캐주얼한 느낌을 살리는 편이다. 펩의 스타일은 보다 캐주얼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남성에게 좋은 모범이다. 남성들에게 좋은 패션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두 미중년 감독이다. 미노년의 패션의 본보기는 아르센 벵거, 그러나 벵거를 따라하기엔 일반인은 기럭지 때문에 안될거야 아마 패션 테러리스트 호날두 보고있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013-14시즌 슈퍼컵 경기 중 자기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직접 데려온 티아고 알칸타라에게 수정펀치를 가해서 유럽축구 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29] 아비달에게도 수정펀치를 날렸다가 다음 훈련세션 때 수정당할 뻔 한적도 있고...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K-리그팬들에겐 K리그 올스타전 사건으로 인해 아주 나쁜 놈 취급받고 있다. 항목 참조.

14-15시즌 묀헨글라드바흐를 상대로 한 원정경기에서 경기 중 여자대기심에게 스킨쉽을 했으며, 그 대기심이 불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영상

감독 부임후 6관왕등 워낙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는 중이라 토탈사커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와 압박축구의 창시자 아리고 사키와 동급으로 놓는 경향의 해축팬들이 있지만 현대축구의 전술의 토대를 마련하고 전 세계의 일류,듣보잡 감독들의 전술이 20년 넘게 이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르디올라의 소위 티키타카는 FC 바르셀로나만의 전술로 자리잡혀 다른 팀은 모방은 커녕 따라하지도 못했고 현재 감독 수행중인 뮌헨에서조차 티키타카를 입히지 못했다.[30] 아무리 결과가 중요하다는 축구판이지만 과르디올라의 영향력은 아직 이들에 비교하면 따위라 불릴정도로 미미한편. 물론 사키나 미헬스보다 더 세밀한 전술을 짜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독은 과르디올라를 포함하여, 조세 무리뉴, 알렉스 퍼거슨등을 비롯하여 많지만 이들은 전술의 페러다임을 이끌며 현대축구의 기반을 만든 자들로 온갖 매체에서 역대 최고의 감독을 뽑는 투표에서 항상 1, 2위를 차지한다.

6. 기록

6.1. 선수 기록

6.2. 감독 기록


  • 바르셀로나 B (2007/08)
    • Tercera División : 2007–08
  • 바르셀로나 (2008/09 - 2011/12)
    • La Liga (3) : 2008/09, 2009/10, 2010/11
    • Copa del Ray (2) : 2008/09, 2011/12
    • Supercopa de España (3) : 2009, 2010, 2011
    • UEFA Champions League (2) : 2008/09, 2010/11
    • UEFA Super Cup (2) : 2009, 2011
    • FIFA Club World Cup (2) : 2009, 2011
  • 바이에른 뮌헨 (2013/14 - )
    • Bundesliga (1) : 2013/14
    • DFB-Pokal (1) : 2013/14
    • UEFA Super Cup (1) : 2013
    • FIFA Club World Cup (1) : 2013

6.3. 수상 기록

  • 바르셀로나 (2008/09 - 2011/12)
    • IFFHS World's Best Club Coach (2): 2009, 2011
    • Don Balon Award for Best Coach of the Year (2): 2009, 2010
    • Onze d'Or Coach of the Year (3): 2009, 2011, 2012
    • Miguel Muñoz Trophy (2): 2008–09, 2009–10
    • World Soccer Magazine World Manager of the Year (2): 2009, 2011
    • UEFA Team of the Year Best Coach (2): 2008–09, 2010–11
    • La Liga Coach of the Year (4): 2009, 2010, 2011, 2012
    • Catalan of the Year Award (1): 2009
    • FIFA World Coach of the Year (1): 2011


선수/감독 생활 합쳐서 라 리가 9회, 코파 델 레이 4회, 수페르코파 델 에스파냐 7회, 챔피언스 리그 3회, UEFA 수퍼컵 4회, 올림픽 금메달 1회, 기타 3회 등 수집한 트로피가 서른 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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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명은 조제프 "펩(페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Josep "Pep" Guardiola i Sala)이다. #
  • [2] B팀에서 2시즌(1990-1992), A팀에서 9시즌(1992-2001)
  • [3] 펩과 AS로마에 관한 재미있는 인터뷰를 첨부하자면, 2014/2015 챔피언스리그에서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바이에른뮌헨이 AS로마와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AS로마와의 조별 예선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과르디올라는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를 언급하며, "나와 현역 시절을 함께 했던 토티가 여전히 경기를 뛴다는 것은 엄청난 사실이다. 내일 경기에서 그는 그라운드에, 나는 벤치에 있을 것이다. 내가 AS로마의 선수였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지."라는 나름의 자학성 멘트를 남겼다.
  • [4] 1992666649 링크를 참고하자.
  • [5]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 때부터 꾸준히 시도되고 있었다. 그걸 제대로 완성한 사람이 오늘날의 펩.
  • [6]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2012년 현재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축구팀이라고 해도 무방할듯
  • [7] 메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제대로 활용할 여건도 되지 못하긴 하지만...
  • [8] 치그린스키의 수비 기량 자체는 좋았으나, 문제는 바르셀로나의 팀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 [9] 이러한 부분은 즐라탄의 자서전(우스개 소리로 펩을 디스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그 자서전)에 잘 나와있다. #
  • [10] 즐라탄은 전 소속팀을 디스 잘하기로 유명하다.
  • [11] 하지만 즐라탄이 자서전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과르디올라가 메시 중심으로만 팀을 운영하느라 즐라탄을 제쳐두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사실이다. 물론 감독이 선수를 무시하는 태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나, 즐라탄이 당시 기대만큼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메시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12] 헛소리다 당시 전반기 라리가 MVP였으나 후반기 메시를 중앙으로 즐라탄을 사이드로 포지션 을 변경하며 즐라탄의 능력을 사이드로 한정시켰으며 이는 즐라탄 자서전에서도 밝힐정도로 잘 나와있는 내용이다 모르면 쓰지마라 인간들아.
  • [13] 누구 말대로 정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즐라탄이 부진해서 포지션을 변경한게 아니라, 메시의 요청으로 중앙에서 뛰고싶다는 의견을 펩에게 전달했고, 그 후 메시 중앙, 즐라탄 사이드로 포지션이 변경된거다. 그래서 부진이 시작된거지 부진해서 변경한게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예 라고 말한것이 즐라탄 중앙20~30골 메시 50골이상이라는 말은 정말 헛소리다. 말 그대로 글쓴이의 예상일 뿐이다 한번도 바르셀로나에서 풀타임 중앙으로 뛰었던 적이 없다 단순히 당신의 "예상" 일 뿐이다.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일을 "예상"으로 적으면서 극단적인 예 라고 표시라는건 정말 멍청 하다. "예상"을 "예시"로 적다니...메시보다 적은 골을 기록할 가능성이 많을순 있지만, 단순히 예상일 뿐이며 그걸 사실 인 척 적은 것이다.
  • [14] 하지만 2014/2015시즌 챔피언스리그 뮌헨과 맨시티의 조별리그 1차전 경기를 보면 경기가 끝나자마자 야야 투레가 과르디올라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론과 팬들이 인지하는 만큼의 불화는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 [15] 레반도프스키와 만주키치 9번 사건의 과르디올라 이전에 2012/13시즌부터 구단 보드진에 의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과르디올라와 만주키치가 틀어진 건 라커룸에서의 다툼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16] 사실 과르디올라는 물론이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잘하는 것은 항상 'xx빨'이라며 까이는 경우가 있다. 메시가 잘하는 것은 사비, 이니에스타빨이며 사비가 잘하는 것은 메시 혹은 팀빨, 과르디올라는 선수빨.. 그냥 당시 바르셀로나 자체를 서로가 서로빨인 것으로 보는게 맘 편할 듯
  • [17] 단, 구스타보는 단 한경기도 쓰지 않았는데 이미 구스타보가 스콜라리 감독의 조언에 따라 팀을 떠날 마음을 굳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18] 전반 7분만에 토레기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먹혔다가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시작하자마자 에당 아자르에게 실점했으나 경기 종료 10초전연장후반121분하비 마르티네즈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원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에서는 마누엘 노이어가 첼시의 마지막 키커 로멜루 루카쿠의 슛을 선방하며 뮌헨이 우승했다.
  • [19] 참고로 맨시티는 2013-14시즌 11월까지 뮌헨전을 빼면 단 한 경기도 홈에서 지지 않았다.원정 성적은 그말싫
  • [20]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독일 우승 직후 뮌헨은 다음 시즌에서 챔스는 우승했지만 리그는 10위까지 쳐지는 등 유례없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고, 여타 월드컵 직후 시즌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직후에도 06/07시즌은 펠릭스 마가트가 그야말로 똥을 뿌직뿌직싸며 팀을 11위까지 곤두박질 치게 만들어 경질되어 UEFA컵에 나가게 됬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바로 다음 10/11시즌도 월드컵때문에 부상당한 아르연 로번이 전반기를 통째로 쉬어야했고, 루이스 반 할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유망주 기용과 토털풋볼을 고집하다가 챔스티켓도 잃을뻔하고 결국 무관에 그치고 반할도 경질됬다. 그나마 02/03시즌은 월드컵 직후시즌임에도 더블을 했는데, 당시 독일 베스트11에 뮌헨선수라고는 올리버 칸과 카르스텐 얀커 정도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01-02 레버쿠젠의 콩트레블 멤버거나 유망주 클로제, 프링스 등으로 채워졌다.
  • [21]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들 대부분이 자국 국대로 뛰는데다, 특히 독일은 메이저대회만 나가면 기본 8강은 찍으니 체력소모도 많고 부상위험도 크다.
  • [22] 대표적인 포지션 변환으로 피에르-에밀 호이베르그의 풀백 기용, 알라바의 중앙미드필더 기용 등으로 포지션 변화를 주고 있다.
  • [23] 특히 무리뉴가 레알에 온 이후 엘크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언플을 시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
  • [24] 단 즐라탄의 자서전에 따르면 무리뉴가 인테르감독이던 시절에도 과르디올라는 물론 바르셀로나 유스출신 선수들이 반감을 갖고 있던것으로 보인다. 아마 무리뉴가 첼시 감독이던 시절 챔스에서 맞붙으면서 했던 언플과 디스때문으로 추정된다.
  • [25] 무리뉴에게 "El puto amo"라는 말을했는데, 이는 한국말로 옮기자면 씨발새끼 정도의 뜻이다.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수있는 대목. 다만 el puto가 무리뉴를 지칭하는 욕설이 아니라 한국어로는 "존나"쯤 되는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그 양반 존나 말 험하게 하네" 였다고. 정확한 워딩은 "Mourinho es el puto jefe, el puto amo(Mourinho is fucking boss, fucking darling in the press room)", 번역하면 "무리뉴 씨발새끼는 언론플레이의 천재다. 언론에서 예뻐하는 씨발새끼다" 정도의 뜻. 이날 과르디올라는 무리뉴에게 친히 '프레스 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이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내용상으로도 맞는다.
  • [26] 당시 무리뉴는 과르디올라가 정당한 심판 판정을 비난한 것에 어이없다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 말을 험하게 한 사실은 없다. 이날 말을 험하게 한 것은 과르디올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리뉴도 잘한 것은 없다. 과르디올라는 상당히 신사적인 성격이라 인터뷰등도 꽤나 신중한 편이지만 무리뉴는 평소 바르사는 챔스 협회의 가호를 받는다며 얼토당토 않은 음모론을 시전하다 다른 감독들에게 융단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레알이 진 경기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돌출발언을 일삼으며 그의 심기를 건드려왔으므로 둘이 원투펀치 주고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리뉴는 평소 신사적인 성격도 아니고 경기 외적으로도 '당한 것은 갚아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감독인 반면 과르디올라는 첫 시즌 때만 해도 매너있는 신사라고 추앙받았으니.. 둘이 같은 급이 됐다는 것은 결국 과르디올라가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듯.
  • [27] 물론 소속팀 선수 제외.
  • [28] 사실 펩의 가족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아버지와 남동생 모두 탈모인이다. 괜히 펩빡이가 아닌 것...
  • [29] 기사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news&mod=read&office_id=436&article_id=0000002278
  • [30] 정확히는 티키타카를 입히긴 하였으나, 작년의 팀 스타일인 미칠듯이 숨막히는 게겐프레싱이 실종되어버렸다. 이 점은 베켄바워까지 나서서 디스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