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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츠 푸스카스

last modified: 2015-02-06 15:53:06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소개
3. 매직 마자르(Magical Magyar)
4. 저승사자 군단
5. 기타


1. 개요

이름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ás)[1]
생몰년 1927년 4월 1일~2006년 11월 17일
국적 헝가리(Hungary)
출신지 부다페스트(Budapest)
포지션 왼쪽 측면 공격수
신체 조건 172cm, 75kg
등 번호 10번
소속 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FC(1943~1956)
레알 마드리드 CF(1958~1966)
국가 대표 89경기/84골

2. 소개

전 헝가리 축구 선수이자 감독. 1950년대의 '매직 마자르(Magical Magyar)' 시대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 중 한 명이다. 본명은 푸르첼드 페렌츠(Purczeld Ferenc). 별명은 악마의 왼발. 지금은 이 계보를 또 다른 먼치킨 괴물이 이어받았다 헝가리 역대 A매치 골 1위(89경기 84골)와 전 세계 역대 A매치 골 2위[2]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역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을 논할 때, 아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 중 하나로서 일반적으로 펠레마라도나, 크루이프베켄바워 등이 함께 묶여서 언급될 때 디 스테파노와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는 저 넷에 비해 역대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는 순위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은데 그도 그럴 것이 시기상으로 보면 저들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했고 그 당시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준으로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디 스테파노의 경우 불운으로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던 것도 한몫한다). 그렇다고 해도 축구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선수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디 스테파노와 비교하자면 헝가리 축구의 맥이 끊긴 데다가 레알 마드리드 시절 축구를 2년이나 쉰 데다가 나이도 디 스테파노보다 좀 많아서 밀렸는데 이 때문에 한 수 아래로 평가되어 저평가되는 원인이 되었다.

역대 최초의 월드 스타라고 할만한 선수로서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중반까지 헝가리 국대와 부다페스트 혼베드 소속으로서 세계를 제패, 그러다가 헝가리 혁명으로 인해 국가 대표 팀이 공중분해되자 스페인으로 이주. 이에 따라 망명으로 인한 출장 정지 2년을 받고 31세가 된 1958년에야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뛰게 되는데, 이때부터 디 스테파노와 더불어 3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예컨대 무려 20년 가까이 세계 축구계의 정점에 있던 선수로, 요즘으로 치면 92-93 시즌 즈음에 데뷔해서 지금까지도 메날두와 동급의 활약을 보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

3. 매직 마자르(Magical Magyar)

코치시 샨도르(Kocsis Sándor),[3] 부더이 라슬로(Budai László), 히데그쿠티 난도르(Hidegkuti Nándor) 등과 함께 50년대 헝가리 축구를 이끌었다. 당시 골든 팀, 혹은 마자르 매직'''이라 불렸던[4] 헝가리 축구 국가 대표 팀은 무려 4년 동안 A매치 무패 행진을 하게 된다. 루저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왼발만 사용하면서 폭발적인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였으며, 슛도 굉장히 강한 선수였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소속 팀이 우리나라로 치면 상주 상무와 비슷한 '혼베드(Honvéd FC)'였기 때문에[5] '질주하는 소령'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이때의 혼베드는 대표팀의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헝가리의 국가 대표 선수들 대부분을 데리고 있었다).

마자르 매직이 절정에 달하던 1954년 푸스카스가 소속된 헝가리 대표팀은 스위스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한국 대표 팀을 떡실신시키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골키퍼였던 故 홍덕영 옹께서는 '왼발 슈팅이 골대에 맞으면 딩 하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렸다'고 회상하였다.

이후 브라질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올랐지만, 정작 푸스카스는 서독과 조별 리그전을 치르다가 얻은 부상으로 이후 경기들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다. 결승에서 다시 서독과 경기를 하게 되자 부상에도 불구하고 출전했으나, 3-2로 패하며 4년간에 걸친 마자르 매직의 무패 행진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막을 내리고 월드컵 준우승에 머무르게 된다.[6]

참고로 이때 서독은 하프 타임 당시 암페타민 계열 약물인 퍼비틴, 즉 히로뽕을 맞았다. 나중에 서독 선수들은 비타민 C인 줄 알았다고 인터뷰했지만 면피용 발언이고 선수들도 약물인 줄 알았다는 게 중론. 다만 금지 약물 제도가 도입된 게 1963년이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대표 팀은 이후 여전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18경기 연속 무패를 다시 기록했지만, 1956년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공 봉기가 소련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마침 친선 경기 때문에 스페인에 나가 있던 푸스카스는 스페인 정부에 망명을 신청했다. 스페인 정부는 푸스카스의 망명을 허용했지만 2년 동안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후 국가 대표 경기는 뛸 수 없게 되었다. 이 혁명의 여파로 '매직 마자르'로 불리던 헝가리 대표 팀은 공중분해되었고, 헝가리는 지금까지도 그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4. 저승사자 군단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된 1958년, 푸스카스의 나이는 무려 31살이었다. 그럼에도 이때에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고, 디 스테파노와 투 톱을 이루어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다. 역대 남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디 스테파노와 역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푸스카스, 역대 최고의 윙어 '프란시스코 헨토'가 뭉친 이 팀은 저승사자 군단이라고 불리우며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하는 헤게모니를 구축했다. 이 시기에 레알 왕조는 모두 익히 아는 유러피언 컵(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 5연패와 2번의 준우승을 비롯하여 53/54 시즌부터 64/65 시즌까지[7] 11시즌 동안 리그 8회 우승(평균 승점 83), 기타 컵 1회 우승이라는 대위업을 구축한다.

그리고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면서 은퇴하기까지 유럽에서 기록한 리그 통산 기록은 537경기 511골. 그 중에는 치치, 즉 리그 득점왕 4번이라는 위업까지 포함되어 있는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였다.


이처럼 푸스카스의 이름이 전 유럽에 각인되고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선수 생활 황혼기에 그래도 조국을 위해 뛰어보려고 일시적으로 귀국한 적이 있었지만, 헝가리 정부에서는 푸스카스를 정치범으로 취급하며 축구는커녕 소시지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시키는 등 온갖 굴욕을 안겨주었다. 결국 푸스카스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파나티나이코스를 챔스 결승까지 올려 놓기도 했다. 2006년 11월 17일 작고.

5. 기타

드로우 백 개인기를 처음 선보인 선수이기도 하다.


위 동영상골대 옆에서 담배피는 형님들은 신경쓰지 말고...에서 골을 넣기 전의 플레이가 바로 드로우 백. 경기 이후 그는 연습한 적이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기술이라고 인터뷰했지만 그건 구라고 실제로 심혈을 기울여 수련했다고 한다. 동료들은 실전에서 쓰지도 못할 걸 뭐하러 연습하냐고 비웃었지만...[8]


2009년에 피파는 올해의 골 상(FIFA Goal of the Year award)을 FIFA 푸스카스상(FIFA Puskás Award)으로 바꾸었으며, FIFA 발롱도르 시상식을 할 때 같이 수상된다.



푸스카스 상으로 이름이 개편된 이후로 이 상을 수상한 선수들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09), 하밋 알틴톱(2010), 네이마르(2011), 미로슬라프 스토프(201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2013) 하메스 로드리게즈(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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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헝가리에서는 성씨가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오는 식이다. 헝가리어 표기법에 따르면 '푸슈카시 페렌츠(/ˈpuʃkaːʃ ˈfɛrɛnt͡s/)'로 표기해야 한다. 헝가리어에서는 's'가 영어의 'sh' 발음이고 'sz'가 영어의 's' 발음에 해당한다.
  • [2] 1위는 109골을 기록한 이란의 알리 다에이이다.
  • [3] 국내에서는 산도르 코츠시스, 산도르 코치스라는 표기가 더 잘 알려져 있다.
  • [4] 마자르는 헝가리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
  • [5] 혼베드는 '일등병'이라는 뜻이다.
  • [6] 이 결승전은 민주주의 진영 대 공산주의 진영이라는 정치적 대리전 양상도 띄고 있었고, 여기서 이긴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짓밟힌 자존심을 스포츠로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소위 '베른의 기적(Wunder von Bern)'이라고 부르는 게 이때의 우승.
  • [7] 55/56 시즌부터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연패(連霸)의 시작이니 푸스카스는 중간에 승차.
  • [8] 저 쉬운 걸 저때까지 안 썼단 말야? 하고 놀랄 수도 있지만 본격 과학 축구화는 푸스카스가 전성기 때에 개발된 물건이고 그 전에 축구할 때 쓰던 신발은 묵직했기 때문에 저런 거 하려다간 볼 컨트롤도 제대로 못하고 빼았기게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