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패자뿐인 싸움

last modified: 2015-03-22 10:27:28 Contributors

1. 정의

전쟁의 9할은 후대 사람이 보면 어이없는 이유로, 1할은 당대 사람이 봐도 어이없는 이유로 벌어진다. - 양 웬리[1]

이 항목은 그다지 뜻이 없던 싸움 가운데서도 그 크기가 매우 커 국가 단위에 이르고, 지휘관의 병크 등으로 모두 손해만 본 전쟁들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적 단위의 병림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싸움에서 이긴 측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이라고도 한다.이긴 쪽은 그나마 영광이라도 있지 진 쪽은… 대부분 어부지리로 제 3자나,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쪽에서 이 싸움의 결과물을 얻는다.

여기에 더 넣을 싸움은 국가간의 대결이 원칙이고, 영향력이나 규모에서 한 국가가 흔들리거나 다른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 단순한 해프닝이나 단기적 사건은 이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쟁은 모든 승자와 패자에게 피해를 주니 안 해야 좋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이 항목과 비슷하게 소모전이 있으나, 이것이 가리키는 단어의 뜻은 미묘하게 다르다. 비슷한 뜻으로 '승자 없는 싸움'도 있지만 큰 싸움없이 유야무야 끝나기도 하니 애매하다.

참고로 이 항목 등재에 관련해, 구글을 기준으로 승자없는 싸움이 패자뿐인 싸움보다도 검색 결과가 더 많이 나오지만 패자뿐인 싸움으로 등록했다.

2. 원인

가장 큰 것은 국가간의 케케묵은 감정이다. 그 밖에도 이익이나 상황의 판단착오와 자금적 이유가 있다. 어쨌거나 지도자의 판단 착오가 대부분 사건의 중심이고 가장 중요하다.

3. 대표적인 예

아래 예시는 시대순으로 정렬한다.

3.1. 실제 전쟁

3.1.1. 펠로폰네소스 전쟁

우선 아테네는 제국이라 불릴 만큼 강한 세력을 자랑했지만 연이은 개삽질로 나라가 망했다.[2] 그리고 나중에 마케도니아에게 무릎을 꿇는다. 스파르타는 전쟁을 이겼지만 애시당초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들어간 그리스 연합이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으러 만든 상황에서 적국인 페르시아를 끌어들인 탓에 대의명분과 지지를 잃고, 스파르타 자체도 제국을 이끌기에는 부적절한 정치체제라 오히려 부작용이 많았다. 페르시아도 이오니아를 되찾았지만 지속적인 내부 분열로 그다지 이득은 없었고 끝내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밀렸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승자는 어부지리로 덕을 본 마케도니아.

3.1.2. 피로스의 승리

고대 그리스 국가였던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로마군과의 전쟁에서 매번 이겼으나 얻었던 이득은 적었고, 너무 잦은 전투로 유능한 인재들을 계속 소모해 끝내 에페이로스는 피로스의 당대에 로마에게 멸망했으며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은 패자뿐인 싸움의 승리를 일컫는 대명사다.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3.1.3. 거록대전

일단 항우는 중국 전체의 지도자 급으로 부상했으나, 전후 일처리가 나빴고 이 승리가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련한 인물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살려고 항복한 20만 명의 진나라 병사들은 생매장을 겪고, 진나라는 얼마 뒤 멸망했을 뿐더러 항우가 진나라 수도 함양을 약탈해 궁궐도 불태운다. 항우는 이 악행으로 민심을 잃었고, 이는 먼 뒷날 초한전쟁에서 악영향을 받은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한편 항우 덕분에 살아난 장이는 자신을 구하지 않은 다툼+분봉문제로 경지교였던 진여와 관계가 파탄났다. 또, 항우에게 항복한 장한은 조국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아 민심을 잃었고, 역시 말로가 나빴다.

반대로 한고제는 함양에 입성하면서 장량의 조언을 받아 진나라 백성들을 건드리지 않아 오히려 민심을 샀고, 떠나기 전에 소하는 진나라의 온갖 문서들을 챙긴다. 얼마 뒤 파촉 변두리에 처박혔지만, 유방은 거록대전에 딱히 관련이 없으면서 장기적으로 이득을 가장 많이 얻어갔다.

3.1.4. 삼국지 이릉대전

이유와 상황이 어떻든 결과론적으로 패자뿐인 싸움이었다. 촉한은 이 전투로 많은 인력과 물자를 낭비하였고 오나라 또한 가까스로 이겼지만 국가적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전투였다.

은 전쟁이 나기 전부터 몇 년 사이에 1세대 명장이나 참모들을 잃어가다가 이들 뒤를 이을 2세대라 할 많은 인재들과 물자를 이 전쟁 하나에 대부분 잃었고, 그 탓에 유비도 병이 나 얼마 뒤에 죽는다. 그 뒤 제갈량은 수차례에 걸친 북벌로 반전을 꾀하지만 이릉대전의 후유증은 사실상 촉 멸망 때까지 영향을 남겼다.

는 전쟁에 이겼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르느라 쑥대밭인 영토, 너무 늘어난 전선, 이민족들과의 불화 등의 문제와 곧바로 위가 쳐들어와서 급히 촉과 동맹을 맺고 그 뒤 위에 시호를 받는 굴욕도 겪는다. 이릉에서 육손에게 패해 물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비는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 오를 존폐위기로 몰아넣었고, 그 와중에 유비에서 맞섰던 오의 명장들은 줄줄이 유비에게 패퇴했으니 촉만큼은 아니지만 오 역시 상당수의 차세대 인재손실이 있었다.

는 자국을 견제하러 동맹을 맺었던 세력들이 대판 싸우느라 1강 2중의 체계가 1강 2약의 체계로 바뀌면서 사실상 가장 큰 이득을 얻었지만 정작 오나라를 공격하다가 이득은 없었고(...) 촉, 오의 공격을 방어하는 손해만 봤으며(...) 사마의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1강 2약체제가 절호의 기회인데 왜 통일을 못하니

3.1.5. 비수대전

중국 3대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대규모의 전쟁이지만, 지휘 하달에서 부견이 병크를 터트리면서 끝내 전진은 멸망했고, 막장이던 동진은 어째저째 위기는 넘겼지만 덕분에 마음 놓고 더 막장짓을 벌여 혼란을 가중시켰다.

3.1.6. 비잔티움 제국 vs 사산 왕조 페르시아

양국은 3세기에 사산조 페르시아가 부흥한 뒤부터 7세기까지 거진 4백년의 싸움을 이었다. 워낙에 세력 균형이 맞아떨어져서 딱히 승자도 없었다. 이 싸움에 동로마 제국이 쏟아부은 국력은 휴전기에도 군사력의 1/3 정도를 늘 대기시켰다라 추정받는 데서도 드러난다. 심지어 동로마는 이쪽에 쏟아부은 국력이 너무 많아서 서로마가 망할 때도 방관만 할 정도였다.

이렇게 참으로 답이 없는 상황이 바뀐 건 7세기 초. 마우리키우스 황제를 쿠데타로 살해하고 포카스 황제가 602년 즉위한 것을 기회로 호스로 2세가 동로마를 대규모로 침공했다. 이 포카스란 황제는 동로마 제국 최악의 암군 순위에 들 황제라 제국의 멸망을 구경만 하고 숙청질에만 전념을 다하는 바람에 사산조 페르시아는 딱 8년 만에 시리아, 이집트, 소아시아를 싹 털고 콘스탄티노플 맞은편인 칼케돈에 진을 쳤다.

이렇게 황제 1명 잘못 들였다가 나라가 홀라당 망해가자 분노가 폭발한 카르타고 총독령에서 반란을 일으켜 총독의 아들인 헤라클리우스가 함대를 이끌고 수도로 와서 포카스 황제의 목을 따버리고는 황위에 등극했다. 그 뒤 12년간 힘을 비축했다가 622년 반격해, 엄청난 전쟁 지휘력을 보이면서 6년 만에 페르시아를 역관광시켰다.

여기까지면 그냥 평범하게 동로마의 승리로 끝났겠지만, 전쟁 끝나고 20년도 안 지나 이슬람 제국이 나타났으니 안습이다. 이슬람 제국이 나타나서 동로마 제국은 겨우겨우 되찾은 시리아와 이집트에 북아프리카까지 잃었고, 동로마 제국에게 완전히 털린 지 얼마 안 지나 상태가 더 나쁘던 페르시아는 그냥 망했다.

실제로 이 제국들이 서로 안 싸웠다면 이슬람은 이만큼 못 컸다는 의견이 절대우위고, 아예 나오지도 못했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애시당초 아라비아 반도의 발전 계기란 이 두 제국의 극한 대결로 기존의 통상로가 사실상 막히니 상인들이 아라비아 반도로 우회해서였다.

그 뒤에도 이런 답 안 나오는 막장 대결 상황은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세력의 무한 힘 대결로 이었다. 그나마 얼마 지나 서유럽/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등이 성장하고 이슬람 세력이 다축 구도로 바뀌면서 양상이 많이 바뀌며, 경제적이나 문화적인 교역의 흔적도 훨씬 많았다. 때문에 최소한 둘이서 밀고 밀리느라 나라 말아먹는 짓은 좀 줄었다.

3.1.7.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고려는 배를 만드는데 나무 다 털리고, 몽골은 싸워보지도 못한 채 태풍에 생으로 병사들 수장시키며, 일본은 1차 회전에서 캐발리면서 '무쿠리 고쿠리(몽골, 고려를 지칭)'가 후세에 길이 공포의 대상으로 남을 지경이었다. 이 전쟁은 양군간의 충돌이 몇 차례 없었다는 점에서 전쟁이라기는 뭐하고, 몽골의 총지휘관이 고려의 김방경 장군 말만 들었어도 일본은 털렸으리라는 설이 지배적.

끝내 태풍으로 전쟁은 가마쿠라 막부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이후 논공행상에서 이겼는 데도 나눠줄 봉지가 없는 상황을 맞자 가뜩이나 호조 가문의 토지 독점과 무사들의 수입 붕괴로 곤란했던 지방 세력 사이에 불만이 올라갔고, 이것이 당시 덴노의 계통 문제와 얽혀 끝내 막부의 교체를 불러왔다.

그런데 몽골도 손해가 없었다는 설도 있었다. 보낸 병사들은 대부분 처리하기 곤란한 남송의 잔병들인 탓에 가서 정복하면 좋고, 운 나쁘게 쓸려도 몽골로서는 나쁠 게 없다는 뜻이다.

한편 고려는 이 일에 만든 정동행성이, 몽골색을 깊게 깐 정치의 대표적 출구로 바뀌었다. 다만 이전까지 무신들에게 정권을 거의 내주었던 고려 국왕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렇게라도 왕권이 높아지는 상황이 나았다는 설도 있다.

한편 간접적 영향이라 볼 만하지만, 전쟁 뒤 일본은 신이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신국(神國) 사상이 자리잡아 이 태풍을 카미카제(神風)로 불렀다. 이게 먼 미래의 인류사에 무슨 재앙을 불러왔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1.8. 임진왜란

한중일 3국에 모두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동양 전체의 판도를 뒤엎었다.

  • 조선 : 국토와 왕조를 보존하고 이겼지만, 전 국토가 전쟁으로 초토화해 전국의 경작지 약 66%가 못쓰게 됐으며, 엄청난 인구감소와 이에 따른 재정축소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더군다나 궁궐까지 잃어서 월산대군개인 저택을 임시 궁궐로 삼아야만 했다.
  • 중국 : 임진왜란 당시 엄청난 국고와 병력들을 쏟아부으며 조선을 지원했던 중국의 명나라는 전쟁이 끝나고 군사력 및 사회 기반이 흔들거려 각종 농민봉기가 일어나 국가의 붕괴가 가속화했고, 끝내 이자성의 난 등 농민 반란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중원 침입으로 멸망한다.[3]
  • 일본 : 전쟁을 일으킨 당시 일본의 실권자였던 히데요시와 측근 다이묘들은 원정으로 세력이 약화했다. 끝내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벌어진 내전으로 이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로운 쇼군에 올라 에도 막부를 연다.

끝내 이 전쟁의 수혜자는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너무나 많이 꼴아박는 바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실상 일본을 날로 먹다시피 점령했다.

3.1.9. 미영전쟁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간단하게 이 전쟁은 미국과 영국이 서로 엄청난 피해를 보거나 이미 입은 상태라 전쟁이 점점 더 길어지자, 그냥 전쟁 나기 이전의 원래 상태로 돌아가자는 내용의 겐트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란 설명으로 충분하다.

3.1.10. 6.25 전쟁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 때문에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불바다였으며, 국가발전을 위한 모든 산업시설이 박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고통을 받았다. 또한 남북이 나뉘면서 난 엄청난 이재민과, 현재까지도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겼다.

더욱이 이 전쟁에서 한반도의 두 국가는 아무런 이득도 없었고[4], 바로 일본중국중화민국이 이득을 챙겼다. 일본은 전쟁 내내 미국의 병참기지로서 패전 이후 국가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얻었고, 중국은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지키면서 미국을 상대로 패배하지 않은 모습을 과시해 국제적인 위상을 크게 높였다.[5] 굳이 말하자면 중국은 이득과 손해를 함께 봤다. 중화민국을 쳐야 하는데 김일성의 이 병크로 타이완 앞바다에 미군 제7함대가 출동하고, 중국은 사실상 영원히 중화민국을 못 건드린다.

그나마 전쟁특수를 누린 일본은 좋았다. 일본이 미국, 중국에 이어 제3의 경제대국으로 지금까지 떵떵거릴 만한 까닭의 반은 이 전쟁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 전쟁은 공식적으로 잠시 쉴 뿐 끝나지 않았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1953년 7월 27일에 유엔군과 중국군, 북한군은 휴전협정을 맺었다. 아니, 애초에 휴전선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자.

3.1.11. 엘살바도르 VS 온두라스 - 축구전쟁

중남미의 양국에 쌓여있던 감정이 1969년 월드컵 예선전을 거쳐 승화한 전쟁. 일명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한다.

당시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보다 땅덩이는 5배 정도 큰데 비해 인구는 엘살바도르가 2배 정도 많았다. 그래서 많은 엘살바도르 농부들이 땅을 찾아 온두라스로 이주해 약 35만 명의 엘살바도르인들이 온두라스에 살았다. 보다 못한 온두라스 농경업 종사자 및 회사가 정치계에 압력을 넣어 엘살바도르인들을 몰아내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도 났다. 끝내 양국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고, 전쟁까지 일어났다.

전쟁은 엘살바도르군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났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제대로인 공군도 없어서 여객기를 폭격기 대용으로 썼다고... 처음엔 엘살바도르군이 승승장구했는데 온두라스 공군이 엘살바도르의 유전시설을 다 부숴서 8km 정도 진격하자 기름이 떨어졌다.(...)

참고로 100시간에 걸쳐 하던 이 괴랄한 전쟁이 딱 1번 임시휴전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끝나고 바로 재전투.

참고로 전쟁을 불러온 월드컵 예선전은 엘살바도르가 2승 1패로 승리했다.

당시 온두라스 몇몇 대대는 아예 실체가 없었던 유령대대였다고 한다. 유지비는 부패한 장교의 주머니로 쏙... 또한 당시 양국 공군에서 썼던 전투기도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에서나 쓰던 P-51 무스탕, F4U 콜세어가 대다수... 본격 2차대전 재연

끝내 양국은 큰 큐모의 사상자만 내며 전투를 끝냈다. 주요전장이던 온두라스는 쑥대밭이었고,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에서 돌아온 대규모의 이민자 탓에 경제가 막장으로 바뀌었다. 이 전쟁에서는 양군 총합 2천여 명의 전사자가 났다.

그 뒤 이 전쟁은 10년 내내 전투없이 끌다가, 1980년 겨우 양국이 평화조약에 서명해 끝났다.

참 알면 알아갈수록 대단한병맛 전쟁이다.

3.1.12.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자 레오폴드 갈티에리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1982년에 포클랜드 제도로 침공을 개시했다. 갈티에리의 입장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자기네 나라에서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6] 그 바위섬을 빼앗기 위해 영국이 병력을 이끌며 안 오리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은 이런 예상을 깨고 전세계를 돌며 자신에게 협력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영국을 옹호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르헨티나를 악의 축으로 선포했고, 포클랜드가 아르헨티나의 영토임을 배 아파했던 칠레는 자국의 영공을 영국에게 허락했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다. 군사력 자체는 아르헨티나가 월등했고 더군다나 영국은 본토와 전장이 엄청나게 멀어서 군수지원에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그러나 영국군이 포클랜드 제도의 제공권을 확보하였고[7] 갈티에리 이 위인은 자신의 정권 유지가 목적이라 성의없이 전투를 치렀다. 끝내, 갈티에리는 아르헨티나 본토에 영국의 전투기가 날아다니자 항복을 선언했다.

그렇다고 영국이 무조건적으로 이겼냐면, 아니었다. 영국은 자국이 자랑하는 해군력 중의 하나였던 셰필드 호를 이 전쟁에서 잃었고, 전투기는 영국보다 아르헨티나가 많이 떨어졌으나 반면 군함은 오히려 영국이 넘사벽으로 많이 침몰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안 그래도 군부독재로 악화한 국가경제가 계속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해서 끝내 2001년에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영국 역시 해군력에 치명상을 입고 이 전쟁으로 쏟아버린 군비로 국가 경제력이 많이 약해졌다.

이 전쟁으로 온 아르헨티나의 민주화만 이득일 뿐이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과 조금 다르다. 이전의 군부체제보다는 나았지만, 전쟁 뒤 아르헨티나의 민주 내각은 외국과 한 전쟁의 패배로 온 결과물 중 하나였다. 당연히 어떠한 준비나 투자 같은 것 없이 급작스러웠으니 허점 투성이었다. 전쟁 패배로 온 국민들의 불만과 좆망한 내부경제는 덤. 때문에 이후 아르헨티나의 정치는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로, 한때 세계 경제의 열 손가락 안에 들었던 나라였고 지금도 G20안에 들어가는 국가 위상과는 달리 정치는 국가 청렴도 100위 아래로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졌다. 거기다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러 한 즉흥성 민주정이라, 겉만 그럴 듯했을 뿐 속은 예전과 비슷했다. 어쨌든 이긴 영국이나 진 아르헨티나 모두 치명적인 손해를 입었다.

3.1.13. 유고슬라비아 내전

1989년 냉전 체제 붕괴 뒤, 유고 연방 소속이던 국가들끼리의 갈등이 내전으로 폭발했다. 1980년 유고 연방내 여러 지역들을 통합적으로 다스리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이 죽으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연방내 공화국들의 갈등이 있어도 공산당이라는 구심점 아래에 뭉쳤지만, 1989년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집권 공산당마저 힘을 잃어 지역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운 다당제 정당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유고 연방내 공화국들의 갈등은 심해졌다. 특히 연방의 권력을 쥐던 세르비아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다른 연방내 공화국들의 갈등이 격화했으며 연방에서 잘 살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1991년 분리 독립을 선포하였고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등 나머지 다른 공화국들도 연달아 유고 연방에서 이탈하여 독립을 선언했다.

한편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등의 분리 독립에 반발한 세르비아가 이들 나라들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났다. 그나마 지리적으로 유고 연방 공화국들에서 유일하게 세르비아와 멀던 슬로베니아는 열흘 만에 독립하였고,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등지에서는 유고 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두 나라들 내부에서 세르비아계의 무력 저항으로 학살, 탄압, 무차별적 보복 공격 등이 나면서 전쟁을 잔악하게 전개했다.

한편 전쟁이 학살, 강간 등 끔찍한 양상으로 치닫자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국가들은 전쟁중인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계 반군 집단들에게 무기와 자금 등을 주는 세르비아에 경제 제재 등을 펴고 세르비아를 국제연합 회원국의 자격을 박탈하며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 대회에 출전도 금지하여 국제적인 왕따로 만들었다.

끝내 세르비아는 해외 수출 길이 죄다 막히고 국제 외교에서 학살 폭력 국가로 비난을 받는 등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세르비아가 주변 다른 발칸반도의 국가들과 밀수·밀거래를 하면서 서방의 경제 제재는 무용지물로 전락했고, 국제연합 밑 서방 강대국들도 전쟁을 종식시키러 평화 협상도 중재했으나 이러한 노력과는 무색하게 전쟁은 더욱 더 잔악해졌다. 끝내 전쟁이 끝없는 생지옥의 양상을 보이자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전쟁에 개입하여 세르비아를 공습하면서 전쟁은 세르비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세르비아와의 싸움에서 이겨 유고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등 다른 국가들도 전쟁에서 입은 피해가 크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전쟁 중에 입은 산업, 도로, 시설 등의 파괴는 컸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온 국토가 폐허로 바뀌었다.

이 전쟁에서 전쟁 당시 인도주의를 앞세워 전쟁 말기에 군사 개입한 북대서양 조약기구 소속 서방국가들과 미국 등이 이익을 봤다. 어찌보면 진정한 승자는 대충 빨리 전쟁을 마무리 짓고 가장 먼저 빠져나와, 빠르게 서중유럽 경제권에 들어가 경제선진국에 당당히 진입한 슬로베니아일지도.

유고 연방내 다른 공화국들을 못 제어하고 일으킨 전쟁에서 진 세르비아나, 전쟁 중 학살 등 피비린내나는 싸움 끝에 전쟁에서 이겨 독립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등 다른 유고 연방 공화국들은 모두 큰 피해와 손실을 입었다.

3.1.14.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딕 체니스탠드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개시하면서 전 세계 규모의 군사적인 개입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 중이던 탈레반을 한 달도 안 지나 축출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듯했으나...

국내외의 반대에도 유엔의 입장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라크 전쟁을 벌여서, 그야말로 쪽박을 찼다. 당장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침공 결정 이전에 이미 CIA나 사찰단 등이 가서 살펴보고 "이라크는 그런 거 없었다."그러니까 그딴 거 없다고 짜식아!!라고 보고를 올렸음에도 다 씹고 들어갔으니,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알 카에다가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를 일으켜 스페인이 전쟁에서 빠지는 등 전통적 동맹인 유럽도 이 때부터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더 커졌다.

그렇다고 미국이 세간의 이야기처럼 군수사업과 석유사업으로 돈 벌었냐면, 아니다. 군수산업은 전쟁 비용을 못 대서 대부분의 사업을 축소나 취소시켰고, 정유업체들은 현지 치안이 개판이라 제대로도 못 캤다고. 여기에 감세 정책까지 겹쳐 전비는 느는데 예산은 모자라니 미국 재정은 파탄 일보직전으로 몰렸다.참 대단하다. 남의 집이 다 탔으니, 우리집이 탈 차례다.

끝내, 미국이 이렇게 막장이자 중국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세력이 커졌고 남오세티아 전쟁이 일어날 때도 미국은 손가락이나 빨고 구경만 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권과의 교역으로 먹고 사는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이 전쟁과 경제정책 실패로 경제가 흔들리자, 똑같이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정말 가관이다. 본격 분식회계

한편, 전쟁의 원인이던 알 카에다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주요 조직들이 미국의 집요한 공격에 분쇄하면서 영향력이 약해졌고 오사마 빈 라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안와르 알 올라키, 파흐드 알 쿠소, 아티야 압둘 알 라만등 지도자급 인물들이 계속 죽어나가면서 조직력이 점점 와해했다. 여기에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나오듯 정치적으로 이슬람권의 지지를 얻는데도 실패했다.그러나 예멘, 시리아 등 치안이 개판이거나 내전중인 중동 몆몆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2011년에 전쟁의 목표였던 오사마 빈 라덴미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의 최정예 대테러부대 데브그루 대원들이 사살하는데 성공해 사실상 원래의 목적을 이뤘지만, 빈 라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잡았고 이 사이 미국이 치른 대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 애국자법 논란과 같은 연방정부의 인권 침해 문제.
  • 막대한 전쟁비용과 경제정책 실패로 온 경제 악화와 재정 위기.
  • 전통적 우방인 유럽과의 관계가 악화했고 중동·아시아·남미 등지에서는 반미주의가 더욱 거세지면서 외교적으로 고립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눈 뜨고 보기만 함.
  • 미국 경제가 악화하면서 전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가 옴.
  •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치안 유지 실패로 테러 조직은 여전히 기승을 부림. 이라크는 어느 정도나마 안정을 찾은 데다 2011년에 미군 부대가 완전히 철군이라도 했지, 아프가니스탄은 안정할 기미가 여전히 없으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빼기도 힘들다. 그나마 그 안정적으로 여긴 이라크조차 2014년 이라크 내전이 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애물단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위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해악이 베트남 전쟁을 이미 능가했다.

3.1.15. 핵전쟁

다행히 아직은 없을 수도 있는 전쟁.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피해의 규모는 확실히 승리와 패배를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3.2. 가상 매체

내용 누설 주의! HELP!

이 부분 아래에는 내용 누설(반전 및 결말) 가능성이 있는 서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여기를 눌러 문서를 닫을 수 있습니다.


3.2.1. 브락스 공성전

Warhammer 40,000에서도 손꼽히는 병림픽.

알파 리전 소속의 컬티스트 마몬에게 낚인 추기경 자판이 타락시킨 브락스 행성을 되찾으러 데스 코어 오브 크리크를 넣었는데... 지휘를 맡은 사령관 쥘케의 삽질로 대규모 병력을 잃었다.

예상 전쟁기간 12년에 사상자를 수백만 명으로 잡았지만 연장 크리. 끝내 뛰어난 사령관인 카고리를 대신 보냈지만 이번엔 임페리얼 네이비의 삽질로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들이 대거 난입하며 난장판이니, 이들을 막으러 스페이스 마린들이 왔다. 이 때 월드 이터 계열 워밴드를 이끌던 쥬폴이 쿠테타를 일으켜 추기경 자판을 몰아낸 다음 카오스 데몬들을 대거 소환한다. 이 때 앙그라스나 스카베이아쓰락스, 우라카 아즈바라마엘 같은 네임드 고위 악마들이 왔다. 끝내 이거 막는다고 그레이 나이트까지 들어왔다.

간신히 인류제국이 이겼는데, 처음 전쟁에 관여한 집단들 모두 엄청난 피를 봤다. 데스 코어 오브 크리크만 사망자가 1400만여 명이고, 브락스 민병대는 800만여 명. 브락스의 타락에 기여한 알파 리전은 개발살나고 기함마저 격침을 겪었으며, 지휘관인 아르코스는 다크 엔젤에게 포로로 잡혔다. 만악의 근원인 추기경 자판은 카오스 스폰으로 바뀌었고 그레이 나이트가 죽였다.

자판이 감금시켜 고문하던 6명의 시스터 오브 배틀 소속 수녀들은 모두 카오스에 심각하게 오염받았다는 판정에 화형을 받았고, 애당초 공성전의 원인이던 브락스의 무기고는 전쟁기간 사이 완전 소진 또는 파괴되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소환한 고위 악마들은 주인공 보정인 헥터 렉스와 아르반 스턴에게 포탈로 쫓겨나는 굴욕을 겪었으나, 그나마도 그레이 나이트의 피해가 처참했다. 앙그라스 상대로 탈탈 털리다가 헥터 렉스가 겨우 잡았다.

그나마 코른에게 바칠 해골과 피를 잔뜩 얻었다고 정신승리하고 워프로 튄 쥬폴과, 데몬 프린스로 바뀐 마몬, 그리고 피해를 입었지만 어쨌든 원래 목표인 아르코스를 잡은 다크 엔젤만 이득을 얻었다.

3.2.2. 이슈발 섬멸전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책판과 강철의 연금술사 FULLMETAL ALCHEMIST에 나오는 주요 사건.

1901년, 아메스트리스의 군인이 실수로 이슈발인 소녀를 쏘아 나타났다고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호문쿨루스엔비가 군인으로 변장하여 일부러 이슈발인 소녀를 쐈다.

이 날 뒤 이슈발인들은 아메스트리스 군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부수면서, 아메스트리스 군의 심기를 자극했다. 이 내란은 동부 전역으로 커졌고, 이후 이슈발이 남방의 적대국인 아에르고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08년, 대총통인 킹 브래드레이는 대총통령 제 3066호에 서명해 이슈발 섬멸전의 개전을 알렸다. 이후 아메스트리스 군부는 국가 연금술사들을 동원하여, 7년의 학살극을 시작한다.

그러나 애당초 사막과 모래 뿐인 이슈발 지역에서 아메스트리스가 얻을 것은 전혀라 말할 만큼 없었고, 로이 머스탱매스 휴즈는 여기에 의문을 품기도 하였다.

그 실상은 아메스트리스를 뒤에서 조종하던 세력인 호문쿨루스국토연성진을 만들어내러 피의 자국을 새기는데, 우연히도 그 자리에 이슈발이 있어 이런 참극이 났을 뿐이다. 즉, 이 전쟁의 목적은 이슈발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여 그 자리에 피의 자국을 새기는 것 뿐이고, 이 사건의 최종적인 결말은 아메스트리스의 멸망이었다.

끝내 이 사건으로 호문쿨루스가 이득을 봤다.

3.2.3. 인류-코버넌트 전쟁

헤일로 시리즈의 중심 사건. 코버넌트와 인류는 처음 조우한 뒤 사제는 인간이 계승자라는 진실이 드러나면 코버넌트가 붕괴할 수 있다라 생각, 인간을 불경한 종족으로 낙인찍고 전쟁을 했는데 화력에선 코버넌트가 우세했으나 인류가 코버넌트 기술을 활용하고 헤일로사건으로 플러드가 유출하고 코버넌트 내전이 나 끝내 UNSC에 패배했으나 인류도 겨우 2억만 남았다.

3.2.4. 정상결전

원피스의 57~59권에서 나온 흰 수염 해적단 연합과 해군 본부 간의 대해적 시대 최대의 전쟁. 결과적으로 흰 수염 해적단은 그 세력이 눈에 띄게 줄었고, 해군 본부도 수많은 장교들을 잃으면서 모두 크나큰 피해를 봤다.[8] 칠무해의 손실 또한 막대하다. 그리고 이 전쟁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제 3세력인 검은 수염 해적단버기 해적단, 그리고 이른바 초신성이라 불리던 2부 기준 '최악의 세대' 해적들이다. 전쟁 양상은 항목 참조.

3.2.5.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드래곤들과 노마들의 싸움


마나들은 노마들에게 준 핍박도 모자라 드래곤들과 싸움을 시킨다. 또 그 싸움에서 노마들의 핏값으로 얻은 거대 드래곤의 사체에서 심장을 뽑아 에너지원으로 삼으니, 그 사이 드래곤이나 노마나 놀아난 셈. 이 모든 잘못은 위선자이자 만악의 근원엠브리오에게 있다.

3.2.6. 폴아웃 시리즈미중전쟁

때는 바야흐로 2066년, 중국은 전세계의 자원이 바닥나자 위기에 빠진다. 중국은 살기 위해 그나마 자원이 조금 남았던 미국에게 자원 요청을 했지만 미국은 거절하고, 이어서 미국은 중국이 개발하던 마지막 유전을 빼앗아 자국의 자원으로 쓴다. 이것을 계기로 끝내 2066년 경에 중국과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다.

중국은 인해전술로 알래스카를 점령하려 들었지만, 미군은 T-51b 파워 아머를 앞세워 점령한 중국군을 앵커리지에서 몰아내고 중국 본토로 진군한다. 항복할 의사가 없었던 중국군은 생화학 무기를 본토에 쏴서 미군과 싸운다. 이 전쟁은 그 뒤 별 진전이 없다가 끝내 핵전쟁으로 바뀌었고, 2077년 10월 23일의 2시간만에 서로를 핵으로 멸망시킨다. 전쟁이 끝났다고 선포할 사람들이 몰살했으니, 공식적으로 전쟁을 200년이 지난 뒤에도 아직 하는 셈. 자세한 사항은 미중전쟁항목 참조.

3.2.7. 1년전쟁


인류가 스페이스 콜로니를 써 우주에 나가 산 뒤 우주에서 태어나 자란 '스페이스노이드'는 독립을 바라고, 지구연방정부는 본격적으로 지구연방군우주군을 강화시켜 이를 군사력으로 압박한다.

이에 지온 즘 다이쿤은 '엘레즘' 사상을 통해 '인류가 모두 우주로 나와 살며 인류의 혁신'을 주장하였지만 그가 죽은 뒤 후계자를 자처한 데긴 소도 자비의 아들 기렌 자비는 그 목적을 스페이스 노이드의 독립, 인류의 혁신에서 사이드 3의 단독 독립으로 축소시키는 한편 군사력으로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우주세기 0079년 1월 1일에 지온공국군이 시작한 이 전쟁의 초반 1주일은[10] 무참한 대량학살로 시작했다. 애당초 국력과 물량 모두가 지구연방군에 미치지 못했던 지온공국군은 단기간에 전쟁을 승리로 끝내기를 바랬고, 이를 위해 자신들의 편에 가담하기를 주저하던 다른 스페이스 콜로니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일부 스페이스 콜로니의 주민들을 독가스로 학살한 뒤 스페이스 콜로니를 지구에 떨어뜨려 우주와 지구, 양쪽의 수십억 인류를 말살해 지구연방군을 굴복시키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모빌슈트라는 인간형 기계병기를 실전에 대량 넣어서 루움 전투에서 지구연방군의 거함거포주의의 우주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총사령관 요한 이브라힘 레빌을 포로로 잡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온공국군이 절대로 장기전을 할 능력이 없음을 알던 레빌은 탈출 뒤 결사항전을 부추키는 연설을 하였다.[11]

전쟁은 소강상태에 이르다가 지구연방군이 전력을 회복하고 모빌슈트를 뒤늦게 개발한 뒤 오데사 전투를 시작으로 한 반격전에서 승리하여 지구의 3분의 1을 점령하던 지온공국군의 세력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 뒤 아프리카에 갇힌 지온공국군을 소탕하는 한편 지온공국군의 우주 요새인 솔로몬아 바오아 쿠를 엄청난 희생 끝에 함락시키고 우주세기 0080년 1월 1일에 전쟁은 끝났다.

비록 전쟁은 지구연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말 그대로 상처 뿐인 승리였다. 소위 '1주일 전쟁'으로 스페이스 콜로니의 지구 낙하는 수십억의 인명 피해와 막대한 생태계 파괴를 남겼다. 이후 오데사 전투로 시작한 지구와 우주의 반격전에서도 소강상태로 간신히 재건한 지구연방군의 전력을 상당 부분 잃었고[12] 요한 이브라힘 레빌볼프강 왓케인 등 뛰어난 인재들이 전사하였다.

게다가 전후복구가 시급했던 지구연방군은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그라나다 조약에서 지구연방정부의 일부로서 민주공화제를 조건으로 한 지온공화국의 형식적인 독립을 인정하고 전쟁 책임을 자비 일가로 한정하는 한편 최소한도의 군비 보유를 인정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야 했다.

한편 지구연방정부는 이 전쟁 뒤 더욱 심각하던 스페이스노이드들과 지구 거주인들의 갈등을 못 풀었고, 우주세기 0083년에 벌어진 데라즈 플리트테러로 시작해 그리프스 전역, 제1차 네오지온 항쟁, 제2차 네오지온 항쟁으로 이어지는 패자뿐인 싸움을 부르고 말았다.

3.2.8. 12.5사건

병맛으로 떡칠한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세계관에서도 탑을 달리는 병크. 진행 자체는 군내 사조직이 실용적 노선의 친미정부를 "일본이 무조건 최고다. 친미는 매국이다."라는 정신나간 헛소리를 하며 뒤통수를 후려버렸지만 사실상 이 사건을 진압하러 미국의 국가 단위 병력이 들어와 가뜩이나 BETA 막기 급급한 상황에서 세력들의 갈등이 미일전쟁으로 바뀌어 대규모 병력손실까지 냈다. 그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또라이 1명이 사람 여럿 엿먹인 사건의 최고봉.

3.2.9. 1984의 세계 그 자체

말 그대로 <1984>의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만든, 가상 전쟁 가운데서도 뜻없기로 순위권일 전쟁. 유라시아 - 동아시아 - 오세아니아의 전쟁은 작중 설명에서 모든 인간성을 말살시켜 최악의 독재 체제를 세웠고, 앞으로도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거기다가 작품 중후반부의 내용을 보면 애초에 그 3국간의 전쟁 자체가 주작이다.(로켓으로 자국 노동자 거주지를 폭격하는 장면, 현재 치르는 전쟁의 포스터를 주작해서 적국의 이름을 싹 바꾸는 장면 등등 + 절정부 오브라이언의 실토)

사실 1984에서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유라시아의 3국 체제를 유지하는 상황 그 자체가 패자뿐인 싸움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미 출판한 기록과 인민들의 머리 속 사상까지 주작하고, 성욕 같은 본능적인 감정까지 말살시킨다. 그렇게 주작하면서 끝없는 대치상태를 꾸며내, 있지도 않은 전쟁에 국력을 소진시켜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전지구가 그리 돌아가면서 문자 그대로 하나도 얻는 게 없다.

4. 관련 항목

----
  • [1] 은하영웅전설 6권의 내용으로 양 웬리 본인이 쓴 문장이다. 근데 이 문장을 쓴 직후 양은 체포된다. 비록 그 문장을 쓴 탓은 아니었지만... 자세한 것은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항목을 참조.
  • [2] 나중에 나름대로 부활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 [3] 그런데 명나라가 단지 임진왜란으로 망했다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비약적인 면이 많다. 당시 명나라는 임진왜란 이외에도 만력3정으로 불리는 대규모 해외원정을 지속적으로 해 이미 국비의 지출이 심각했고, 이외에도 연이은 내정의 실패와 높은 수준의 부패로 농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즉 임진왜란이 아니라도 명나라는 내외적으로 위기에 봉착했으며 임진왜란으로 온 국비의 지출은 명나라가 멸망한 수십, 수백가지의 요인중에 하나에 불과하다는 말. 애초에 명나라 입장에서 일본 하나 상대했다고 나라가 고꾸라질 정도면 일본보다 훨씬 강력했던 몽골이나 오이라트, 임란 이후의 만주족을 상대로 계속 싸움을 못한다. 시기를 봐도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정권이 2년 만에 망한 일본과 달리 명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근 50년이 지나서야 이자성의 농민반란으로 멸망하였다. 자세한 건 임진왜란 항목을 참고.
  • [4] 그나마 토지에 기반을 둔 사회체제가 완전히 박살나 신분제를 철폐시킨 점은 있다.
  • [5] 마오쩌둥한반도의 전쟁에 참가하면 '영광과 이익'을 모두 얻으리라고 말했다. '영광'은 공산주의 진영의 투쟁에 참가해 얻는 국제적인 맹주 지위이고, '이익'은 한반도의 전쟁에 끼어 오히려 뒷날 중국 본토의 전쟁 방지이다.
  • [6] 거리상으로 다른 곳을 비교하자면 영국과 포클랜드 제도와의 거리는 대한민국 서울이탈리아 밀라노의 거리와 맞먹는다.
  • [7] 전투기의 성능 자체는 아르헨티나의 미라쥬 전투기가 영국의 해리어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포클랜드 섬의 활주로는 제트 전투기를 이착륙시키기에는 너무 짧았고, 아르헨티나 본토에서 출격한 미라쥬 전투기들은 포클랜드 인근 상공에서 극심한 연료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 미국은 전방위에서 적 항공기를 조준할 만한 AIM-9L 공대공 미사일을 영국에 주었다.
  • [8] 워낙 많은 장교들이 썰려나가는 바람에 고작 대령급 전투력밖에 안되는 스모커를 중장에 앉혀야만 했으며 일개 부사관에 불과했던 코비에게 대령을 달아줘야 했다.
  • [9] 지온공국이 군사독재체제였던 점과 1주일 전쟁의 여파로 지구연방 정부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고 지구연방군이 전쟁의 주역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위의 호칭을 주로 쓰기로 한다.
  • [10] 뒷날 '1주일 전쟁'이라 부른다.
  • [11] 지온에는 병사가 없다!
  • [12] 지구연방군이 뒤늦게 모빌슈트를 개발했지만 RX-78 계열을 빼면 그 성능이 지온공국군의 모빌슈트들에게 열세였으며, 이를 , 61식 전차 등의 재래식 병기와 함께 넣어 인해전술로 이겨내려고 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