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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공성사

last modified: 2015-04-07 04:05:25 Contributors


가톨릭7성사 중 하나인 고해성사를 매년 12월 25일 성탄절 이전의 대림시기 및 부활절 이전의 사순시기에 자신의 죄를 모아서 한꺼번에 고해하고 참회하는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연례성사.[1] 판공성사의 유래는 '판공'이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원래 사제가 정기적으로 공소를 방문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 교회법에는 고해와 성체성사를 1년에 최소 1번만 하면 되지만, 박해가 심했던 조선 시대에는 사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항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1년에 1~2번 정도 사제가 신자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여 각 교우들의 신앙 생활 상태를 면담을 통해 알아본 후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주었다. 이 전통이 정착된 것이 판공성사이며, 1년에 꼭 1번은 하도록 한국 교회법에 규정되어 있다. 원래는 1년에 2번이었는데, 2015년부터 1년에 1번으로 바뀌었다.

가톨릭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교적에 따라 가족단위로 판공성사표가 성당의 성당사무실에서 발급되어 이에 따라 판공성사를 할 때 사제의 한편에 놓여있는 바구니에 넣고나서 고해 후 참회를 하고, 이에 따른 벌칙이라 할 수 있는 기도(보속)가 주어진다. 보속의 내용은 고해성사와 비슷하다.

판공성사는 비밀유지제를 지켜야 하지만, 시설이 부족한 경우[2] 사제와 고해하는 신자가 서로 얼굴 대면하고 성사를 치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른 신자가 고백하는 사이 판공성사를 위해 마련된 고해실에 들어와 앞서 들어간 신자가 무엇을 고해하는지는 알 수 없게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원칙적인 비밀유지는 성립된다[3]. 따라서 어떻게든 사제에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으면서 고해성사를 하고 싶지 않다면 평소에 미사 직전의 고해성사 시간을 노려서 기존의 차폐된 고해실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좋다.

어떤 신자 수가 많은 성당에서는 노인 먼저 경로우대(?)를 발동해서, 나이 많은 분 먼저 판공성사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고생하실 나이드신 분들을 생각하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고해성사를 나이 순대로 준다는 것도 좀(…).

서울 등의 신자수가 특히 많은 몇몇 대도시 성당에서는, 성탄/부활축일을 앞두고 여러 차례 판공성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정으로 이를 챙기지 못 한 신자들이 많을 수 있다. 이 경우 따로 날을 잡아 1~2회 정도의 합동판공성사를 드릴 수도 있다. 판공성사를 드리길 희망하는 신자들을 성전에 모아 참회의 기도예식을 거친 후, 하느님 앞으로 '죄를 고백하는 편지'를 각자 적는 시간을 가진다. 이런 건 절대 컨닝하지 마세요 그리고 십자가의 길이나 묵주기도 등으로 합동보속을 갖고, 신자들이 이름/세례명을 적은 봉투에 편지를 넣어 제출하면 신부가 (편지를 개봉하지 않은 채) 해당 신자가 판공성사를 드린 것으로 전산처리한 후 조용한 곳에서 한꺼번에 불태우는 식이다. 합동판공성사에는 그 밖에도 다른 형식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미국인 신부님은 한국의 판공성사에 대해 듣고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어요?? 고해성사를 강제로 하게 하다니요?!" 당신들 피는 무슨 색이요 라고 반응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교리상으로의 판공성사는 권장되는 관례일 뿐, 고해성사 이상으로 어떤 의미가 부여된 성사는 아니다. 다만 이 판공성사를 제때 보았으냐 아니냐의 여부로 신자의 교적을 살려놓느냐 죽이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3년 동안 한 번도 판공성사를 보지 않았다면 냉담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 통계는 천주교신자 통계와 같이 공개된다. 즉 허수로 잡히는 신자를 제하고 한국천주교회의 신자가 몇명인지 알 수 있다. 누가 어디서 미사를 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자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방법이 판공성사 외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판공성사가 냉담자를 파악하고 교적 관리를 편하게 하며, 신자 입장에서도 부담없이 고해성사를 볼 수 있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신자들 대부분이 서로서로 아는 사이인 시골 성당이라면 어떨까 웬만하면 쌓이지 않게끔, 그리고 시간/순서에 쫓김없이 최대한 진실한 고해성사를 드릴 수 있게끔 평소에 자주 (특히 판공성사의 경우 사순/대림시기 초반에) 여유 있을 때 미리미리 성사를 드려 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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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에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판공성사를 보았다고는 한다. 예전에는 8월 9일이었는데, 이 때문에 1945년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성당에 모인 천주교 신자들이 도심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몰살을 당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어이쿠
  • [2] 보통 고해소는 성당마다 많아야 하나나 두 곳밖에 없다. 하지만 판공성사를 보는 인원은 많고 담당 사제는 많아봤자 두셋 정도이기 때문에 성당 한 곳으로 교구 사제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단체로 집합, 하룻동안 판공성사를 집행한다. 당연히 고해소는 주임 사제(혹은 짬밥 많은 사제)의 차지.
  • [3] 애초에 성직자든 신자든 고해 내용을 누설했을 경우엔 자동파문의 처벌을 받게 된다(...) 또한 판공성사는 결국 정기적으로 하는 고해성사이며, 고해성사 역시 비밀 유지를 기본적으로 지키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