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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 에브라

last modified: 2015-03-25 00:41:52 Contributors


유벤투스 No.33
파트리스 에브라 (Patrice Evra)
생년월일 1981년 5월 15일
국적 프랑스
출신지 세네갈 다카르
포지션 레프트백
프로입단 1998년 SC 마르살라 1912
소속팀 SC 마르살라 1912(1998~1999)
AC 몬차 브리안차(1999~2000)
OGC 니스(2000~2002)
AS 모나코(2002~200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6~2014)
유벤투스 FC(2014~ )
국가대표 61경기

2009 FIFPro World XI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페르난도 토레스
FW
리오넬 메시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챠비 에르난데스
MF
스티븐 제라드
DF
파트리스 에브라
DF
네마냐 비디치
DF
존 테리
DF
다니에우 아우베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Contents

1. 소개
2. 클럽
3. 국가대표

1. 소개

바보[1]
빛보다 빠르다고 하더라
겁나 피곤해
국민브라
프랑스의 축구선수. 현 소속팀은 유벤투스 FC.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 프랑스로 이민 왔고, 프랑스 국적으로 프랑스 축구대표팀에서도 뛰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기도 했지만, 축구를 시작하며 방황을 멈추고 빛나는 커리어를 쌓게 된다.

세네갈 대사 출신인 그의 부친은 4번 결혼하여 무려 24명의 자식을 얻은 능력자로 유명하다. 그다지 유복하지 못한 살림에 많은 자식들을 부담하므로 부모는 첫돌을 넘기기도 전에 고향을 떠난[2] 어린 에브라에게 관심을 쏟지 못했고 에브라는 어려서부터 홀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2. 클럽

파리 생제르망 유스팀에서 공격수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동네친구 티에리 앙리가 승승장구할 동안 에브라는 리저브 경기에나 몇번 출장하며 벤치만 데웠고 결국 프로계약에 실패했다.

계약에 실패하고 받아줄 팀이 없어 방황하던 순간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 스카우터의 소개로 시칠리아를 연고로 하는 SC 마르살라에 입단하게 된다. 이탈리아 지리를 전혀 몰랐던 에브라는 혼자 시칠리아로 가다가 길을 잃어 졸지에 노숙자로 전락했고 어느 맘씨 좋은 세네갈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시칠라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SC마르살라에서 주전 공격수로 자리잡은 에브라는 27경기 6골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검은 가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인기를 얻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세리에A팀들로 부터 오퍼를 받았지만 에이전트와의 불화로 모두 무산되고 1999년 세리에B 몬차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몬차에서는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해 출장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고[3] 1년후 프랑스 2부리그 니스로 이적하게 된다.

처음에는 본래 포지션인 센터포워드로 활동했으나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한 시합에서 왼발을 잘 쓴다는 이유 하나로 15분동안 레프트백으로 뛴 것이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게 된다. 에브라가 생각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자 니스의 산드로 살비오니 감독은 다음 경기에서도 에브라를 레프트백으로 출전시키는 모험을 감행했고 멋지게 성공했다.

그해 니스는 2부리그 잔류에 만족해야 했지만 에브라는 2부 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주목받으며 디디에 데샹 감독이 이끄는 AS 모나코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03-04 시즌 AS 모나코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중심에는 베르나르디, 지베, 로드리게즈와 함께 견고한 4백을 결성한 에브라가 있었다. 에브라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겨우 23살의 나이로 팀의 주장이 되었고 05-06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브리엘 에인세의 장기 부상으로 약해진 왼쪽 수비라인을 보강하기 위해 겨울 이적 시장에서 에브라를 영입한다.[4]

EPL 이적 초기에는 EPL의 빠른 템포와 압박에 적응하지 못해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오버래핑 후 수비복귀가 신속히 이루어지지 못해 뒷공간을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얻은 굴욕적인 별명이 "돌아오지 않는 윙백" 또 다른 측면 수비수인 미카엘 실베스트레의 부진과 중앙수비 겸업, 에인세의 장기부상 때문에 에브라를 계속 기용할 수 밖에 없었기에 팬들은 한마음으로 에인세의 복귀만을 바랐다.

그러나 06/07 시즌, 장기인 공격력에 안정된 수비력이 장착되며 에인세를 밀어내는데 성공했다.[5][6] 에인세는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도 에브라에 밀려 출장기회가 줄어들었고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요구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7] 에브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자리매김한다. 07-08 시즌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더블(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일익을 담당했다.

장신은 아니지만 뛰어난 체력과 준족을 활용한 탄탄한 수비력을 보여주며[8] 공격수 출신답게 공격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크로스와 패스 능력이 뛰어나며 본인이 직접 마무리 짓기도 한다.

한국 팬들에게는 박지성, 카를로스 테베즈의 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다. 박지성의 아버지에게는 대놓고 '파파(papa)라고 부른다니 그 친밀함을 짐작할 정도.[9] 일명 지테브라.

박지성 역시 QPR 이적 후 맨유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에브라가 가장 그립다고 답하며 아인트호벤을 거쳐 맨유에서 보낸 시절을 통틀어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이고, 한국인 친구들과 비교해도 흔하지않을 정도로 대단히 소중한 친구였다고 답하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친구라고...그야말로 국적을 초월한 우정인듯.

맨유의 아시아 투어 때 서울에 와서는 박지성에게 나이트에 데려가 달라고 졸라서 박지성이 007작전을 펼치게 만들었으며, 자신도 티에리 앙리처럼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한도전의 저주따위는 두렵지 않은 것입니까 결국 무한도전 출연은 무산되었지만 2013년 박지성과 함께 런닝맨에 출연하게 되면서 어느정도 소원을 이룬 셈. 무도든 런닝맨이든 유느님이 다 있으니깐
이런 한국과 박지성에 대한 우호적인 모습으로 한국 내에서의 이미지는 선역, 큐티 캐릭터. 다만 유럽내에서는 라이벌팀에 대한 지나친 비하발언과 아래 후술할 남아공 월드컵 당시의 팀내 불화조장, 이후 드러난 불륜등으로 인해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국내에서도 일부팬들은 루이스 수아레즈의 인종차별 사건 당시 에브라가 먼저 수아레즈의 가족을 욕했다고 주장하며 '에구라'라고 까기도 한다. 사실 박지성과의 친분으로 인해 과한 칭송, 쉴드를 받고 있다고도 볼 수 있기는 하다.

여담이지만 싸움은 잘하지 못하는거 같다는 말이 많다. 첼시와의 원정경기전 첼시 홈구장에서 첼시 구장관리인과 싸움이 붙은일이 있었는데 에브라가 오히려 구장관리인에게 죽방을 맞았다. 물론 그 관리인이 상당한 거구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2013년 불륜 사실이 드러나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그리고 2013-14시즌이 끝나고 프리로 유벤투스에 이적하러 하였다. 그러나 맨유의 신임감독 반 할이 에브라를 신임하였기에 에브라는 잔류하였으나, 맨유가 루크 쇼를 데려와 마음이 바뀐 듯 다시 방출 요청을 하였다.[10] 그리하여 에브라는 유벤투스와 2년 계약을 맺었고, 브라지성이 형만 빼고 다 유베에 왔다. 지성이형 유벤투스 스타디움와서 인증샷 ㄱㄱ

유벤투스 이적 이후 2014-15 시즌에는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주전급의 적절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3. 국가대표

2004년 8월 18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선수로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10년 2010 FIFA 월드컵에서는 제대로 체면을 구겨버렸다. 프랑스 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지만, 당시 팀 내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양새였다. 훈련 거부의 주범(;;)이라고 하며, 마지막 경기에서는 출장 거부를 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절친 박지성이 한국 대표팀의 주장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던 것과는 많이 대조된 모습. 박지성이 왜 이런 놈이랑 친구지 자세한 내막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프랑스 참조.

여담이지만 유로 2008때에도 네덜란드의 판 니스텔로이와 비에이라가 서로 설전을 펼쳤고, 에브라는 전 동료였던 판 니스텔로이를 옹호하였다. 이에 비에이라를 지지하는[11][12] 아스날 FC 측 프랑스 선수들과 에브라를 지지하는 프랑스 선수들과 서로 갈등이 일어났다...카더라 식의 이야기는 있지만 이번에는 크게 상관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카림 벤제마의 건도 그렇고 그러한 갈등들이 나아지진 않고 되려 골이 깊어져 갔으니 이런 일이 터졌는 듯 하다.이게 다 도메네크 잘못이다

주장의 신분으로 내분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다가 성적까지 형편없었던 만큼 그 어떤 프랑스 선수와 비교해도 까임의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으며, 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프랑스의 전설적인 수비수 중 한명인 릴리앙 튀랑은 에브라를 가리켜 "다시는 대표팀에서 보지 못하게 쫓아내야 한다"라고 말하며 에브라를 비판하였다. 지못미. 본인은 "튀랑이 아무것도 모르고 발언하고 있다"며 맞대응했지만, 솔직히 대표팀에서 그를 다시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였는데 얼마전에 리베리와 에브라가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프랑스와 일본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팀 동료인 카가와 신지에게 "카가와, 행운이다. 프랑스에게 간단한 경기가 될 거야."라고 도발을 했다. 결과는 카가와 신지의 결승골로 프랑스의 1-0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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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2] 고향에는 에브라 집성촌이 조성되어 있어 여기도 에브라 저기도 에브라라고 한다.
  • [3] 이때 에브라의 형은 동생을 보러왔다가 애인을 만들어 결혼했다. 에브라는 이 시절 좋았던 기억은 이거 하나 뿐이라고 말했다.
  • [4] 이 때 같이 영입된 선수가 네마냐 비디치.
  • [5] 본인이 직접 인터뷰한 바에 의하면 06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 탈락이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웨이트를 하며 몸을 만드는 등 프리시즌에 죽어라고 훈련했다고.
  • [6] 근데 에인세는 막판 수비진의 줄부상으로 센터백으로도 몇 번 나온 적이 있긴 하다만 막상 그 시즌 출전수를 비교해보면 오히려 에인세가 더 많이 출전했다. 그래서 이적을 요청한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맨유 팬들이 많았다.
  • [7] 이 때 에인세는 원래 리버풀로 이적하려 하였다. 하지만 리그의 라이벌 팀에 선수를 이적시킬 수는 없다며 퍼거슨 감독과 맨유 구단 운영진은 이적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적한 곳이 레알 마드리드. 09-10시즌 에인세는 프랑스 리그의 올림피크 마르세유로 이적했다.
  • [8] 본래 공격수 출신인지라 수비 스킬만 따지면 최고 수준은 아니다. 대신 왕성한 활동량과 타고난 스피드로 이를 보완한다.
  • [9] 친한 친구라서 그런지 박지성은 왼쪽 윙으로 출전해 에브라와 호흡을 맞출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인다. 오른쪽에서의 게리 네빌 또는 하파엘과는 그다지...
  • [10] 다만 내부소식통들의 언급이나 정보를보면 에브라는 로테가 되는것은 수락했다. 다만 아내가 영국을 떠나고 싶어했다고..
  • [11] 비에이라는 앙리만만찮은 아스날의 전설적인 선수다.
  • [12] 아스날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할 뿐더러 프랑스에서도 지단과 함께 전성기의 중추에 있던 선수다. 그런데 '말대가리를 옹호해?'라는 반응이 안 나올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