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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슨 브리또

last modified: 2015-04-05 04:45:17 Contributors


SK시절의 틸슨 브리또

이름 틸손 마누엘 브리토 히미네스(Tilson Manuel Brito Jiménez)
생년월일 1972년 3월 28일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지 산토도밍고
포지션 유격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1996 ~ 199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97)
SK 와이번스(2000 ~ 2001, 2004)
삼성 라이온즈(2002 ~ 2003)
한화 이글스(2005)
퉁이 라이온즈 (2006~ 2008)

2002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진만(현대 유니콘스) 틸슨 브리또(삼성 라이온즈) 홍세완(KIA 타이거즈)

Contents

1. 개요
2. 메이저리그 시절
3. 한국프로야구 시절
4. 대만 프로야구 시절
5. 은퇴 후
6. 한국에서의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야구선수.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대형 유격수 용병.

2. 메이저리그 시절

드래프트되지 못하고 자유계약선수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했다가 97시즌 도중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옮긴 후 시즌 종료 후 방출.

그후로는 마이너 리그를 전전했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에서 뛰던 시절 이만수 코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시즌 초 타격 슬럼프에 빠진 브리또는 타격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자 당시 타격코치 게리 워드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으나 퇴짜를 맞고 당시 1루 코치인 이만수한테 타격 부진 해법을 찾으려고 찾아왔다. 이 때 이만수가 브리또의 문제점을 잘 찾아내 조언했고 브리또도 성실히 연습에 임했다. 그 결과 브리또는 타격감을 되찾아 1999년 타율 .318에 11홈런 58타점이라는 좋은 기록으로 시즌을 마쳤고 이후 이만수 코치의 소개를 통해 한국 프로 야구를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브리또는 이만수 코치를 아버지로 여길 만큼 잘 따랐다고 한다.

3. 한국프로야구 시절

2000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마이너에서 뛰다가 쌍방울 레이더스가 싼 맛에 뽑았던 슬리 뮬렌(現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타격코치, 2013 WBC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와 혼즈의 대체 용병으로[1]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다. SK에 합류하자마자 주전 유격수로 뛰며 암울하기 짝이 없던 창단 초기의 SK 와이번스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실상 브리또가 SK 공격력의 2/3을 책임졌을 정도. 최종 성적은 103게임에 출장, .338 15홈런 70타점을 기록했다.

이 때 시즌 막판까지 현대 유니콘스박종호와 타격왕 경쟁을 벌였는데, 10월 12일 현대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현대 김재박 감독은 타격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박종호를 출장시키지 않았고 현대 투수들은 노골적으로 브리또와의 승부를 피했다.명불허전 김재박 그리고 더블헤더 2차전, 브리또가 안타를 때려낸 다음 타석에서 현대 투수 박장희는 고의성 짙은 볼을 던져 브리또의 다리를 맞추기에 이른다. 이에 분노가 폭발한 브리또는 "더러워서 타격왕 안해먹고 만다"라면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지 않은 채 그대로 도미니카로 출국해버렸다.[2] 그리고 9년 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는데...

이 사건으로 SK팬들은 브리또가 한국야구에 회의를 느껴 재계약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재계약에는 성공해 2001년에도 SK에서 뛰었고 .320 22홈런 80타점의 좋은 성적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2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6:2 트레이드로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통산 2번째 우승과 한국시리즈 첫 우승[3]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해 골든 글러브도 받았다. 2003년에도 유격수 자리를 지키며 활약했지만, 무릎 부상을 당하며 일찌감치 귀국했다.

2004 시즌엔 SK와 다시 계약하며 3루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 시즌에 사상 초유의 상대팀 덕아웃 습격사건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2004년 8월 5일 문학 삼성전. 7회 삼성의 세번째 투수로 등판했던 케빈 호지스가 볼카운트 0-3에서 등 뒤로 날아가는 위협성 볼을 던지며 볼넷을 내줘 분위기가 험악한데다, 당시 선동열 삼성 수석코치와 호지스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본 브리또는 8회초 삼성 공격 도중 빠따를 들고 삼성 덕아웃을 습격하며 몸싸움을 벌였다.[4] 빠따 들고 자신만만해서 쳐들어갔다가 환갑 넘은 늙은 코끼리 감독에게 역관광당하고 패대기쳐진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5] 이 사건으로 인해 브리또는 퇴장과 함께 20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고, 싸움에 가담했던 이호준, 세 카브레라, 배영수, 박정환은 각각 퇴장당했다.[6] 결국 브리또의 이탈로 인해 4위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던 SK는 5위로 시즌을 종료하며 4강 진입 실패.(...) 결국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게 된다.

2005시즌 도중 내야갸 좆망한 부실했던 한화 이글스에 합류, 다시 유격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무릎 부상 후유증 탓인지 수비 범위가 심하게 좁아져 예전같지 않은 글러브급 수비력을 보여 주며(78경기 21실책) 한화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7] 결국 SK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결정적인 악송구를 하며 팀 패배의 원흉이 되며 김인식 감독의 뒷목까지 잡고 말았다. 그나마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은 했으니 망정이지... 그래도 타격 성적은 .286 17홈런 43타점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제 몫을 해줬다. 2005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한국 무대를 떠났다.

4. 대만 프로야구 시절

2006 시즌 도중 퉁이 라이온스에 합류해 3루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하였다. 2007, 2008시즌엔 대만리그를 정ㅋ벅ㅋ하는 포스를 보이며 2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하는 등 대만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2007시즌엔 99경기에서 .313 33홈런 107타점, 2008시즌엔 96경기에서 .330 24홈런 102타점을 기록.

2008시즌 종료 후 열린 코나미컵에서 친정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4타수 2안타를 때려냈다. 경기는 퉁이 라이온스가 홈런 4방을 몰아치며 개털었다 SK 와이번스에 10:4로 승리. 이 경기 결과로 인해 SK팬들은 한동안 고개를 못 들고 다녔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여담이지만 대만 마구마구에서 07년도 카드가 엘리트다!
능력치는 다음과 같다.


2008시즌 종료 후 퉁이 라이온스와 계약을 해지.

5. 은퇴 후

이후 은퇴해서 미국에서 유소년 야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6. 한국에서의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와이번스 103 405 .338
(3위)
137 26 4 15 70 65 3 42 .533 .399
2001 122 422 .320 135 27 0 22 80 59 7 81 .540 .425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삼성 라이온즈 128 481 .283 136 29
(3위)
0 25 90 89 1 56 .499 .355
2003 102 380 .255 97 17 2 20 58 59 2 41 .463 .32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SK 와이번스 102 368 .261 96 18 0 13 50 41 0 49 .416 .345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이글스 78 287 .286 82 14 0 17 43 34 0 19 .512 .328
통산(6시즌) 635 2343 .292 683 131 5 112 391 347 13 288 .495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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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쌍방울 시절 뽑았던 탓에 계약금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SK에서 몇 경기 뛰지 못하고 퇴출.
  • [2] 물론 구단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출국한 것은 아니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강병철 감독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 [3] 첫 우승은 85년이지만, 이때는 삼성이 전, 후기리그에서 모두 1위를 달성하며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것 자체를 무산시켰다.
  • [4] 한때 자신이 뛰었던 팀이었으니 브리또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
  • [5] 한편 이 사건 때 세 카브레라 또한 김응룡 감독에게 헤드락을 당했다.
  • [6] 더 안습한 건 SK 구단도 선수 통솔 실패 명목으로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것.
  • [7] 그도 그럴 것이, 한화가 전통적으로 약했던 쪽 중 하나가 키스톤 콤비였다. 당시 한화 내야진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