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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last modified: 2015-03-01 20:43:3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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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Tīmūr/Taymūr)
1336~1405
帖木兒, تيمور
서양에서는 'Tamerlane'이라 불린다.

Contents

1. 생애
2. 칭기즈 칸과의 차이
2.1. 우즈베키스탄에서
2.2. 그외
3. 대중문화에서의 티무르

1. 생애

인류 역사상 최후의 유목민 정복자
타고난 군사전략가이자 전 세계를 이슬람화 하려던 야심가

티무르 제국의 건국자. 풀네임은 '티무르 빈 타라게이 발라스'. 이름인 '티무르'는 몽골어로 ''이란 뜻이다. 정확한 몽골어 발음은 테무르. 티무르는 테무르의 이란어형. 중국에서는 鐵木兒(첩목아)라고 음차했다. 철은 현대 몽골어로는 트므르(төмөр)로 발음. 고려의 공민왕도 몽골 이름이 '바얀 테무르'고, 이지란의 개명 전 이름도 쿠룬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 칭기즈 칸의 아명인 '테무친'은 '철인'라는 의미다.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여러 인종이 섞인 튀르크-몽골계 혼혈이며, 모계 쪽이 몽골계 칭기즈 칸의 혈통이기도 하다. 티무르는 스스로 가문의 시조에 해당되는 카라샤르노반(kara-sharnoban)이라는 인물이 칭기즈 칸의 아들 차가타이 칸의 딸과 결혼했다는 전승을 근거로 자신을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칭일 뿐. 칭기즈 칸의 후손은 부계혈통만 인정되며, 모계의 경우에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한시적으로 인정한다. 칭기즈 칸의 딸들이 여러 곳에 시집갔기 때문에 발생한 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딴 나라의 국왕들이 현직 칸보다도 정통성이 높아지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다. 티무르는 이로 인한 정치적 명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공인된 몽골계 여인과 결혼했으며, 단 한 번도 칸을 자칭하지 않았다(대신 칭기즈 칸의 후예를 데려와서 허수아비 칸을 세웠다). 또한 그는 자신의 아들들, 손자들을 차례로 칭기즈 가문의 여인들과 결혼시켜 가문의 격을 높이려 애썼다.

이슬람, 몽골 양쪽 문화에 다 속해있었고 아랍 문명도 존재했었지만 그 어느 쪽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행적을 보면 실제로 칭기즈 칸과 매우 유사하다. 칭기즈 칸과 같이 그도 비교적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타라카이(Taraqai)는 소지주에 불과했다. 물론 칭기즈 칸과 같은 불운은 겪지 않았지만. 잭 웨더퍼드가 지은《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라는 책의 평중에는 "칭기즈 칸만큼의 불행을 극복하고 승리한 다른 예는 거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칭기즈 칸의 젊은 시절은 안습으로 가득하다. 항목 참조.

이미 젊었을 적부터 타고난 군사적 천재였는지 25세때 추적하는 1천 명의 적을 60명의 기병만으로 패퇴시켰다. 물론 이때 티무르 쪽도 피해가 커서 10명만 살아남았다지만...이후 적들에게 감금되기도 하며 칭기즈 칸 mk.2의 테크를 타게 된다.

젊어서 세력이 약했을 땐 항복했다가 뒤치기도 하고 남의 밑에 빌붙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했지만 한번 위치를 잡고 난 뒤부터는 무패기록을 달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요는 사서에서 뻥카날린거고, 사실 패배한 것으로 의심되는 전쟁은 꽤 존재한다. 발린 게 없어서 그렇지.

1360년경부터 군사 지도자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타이 칸국의 장수로서 원정을 지도했고 후에 권력을 얻으며 지도자들을 억누르고 실세가 되었다. 티무르의 매부이던 후세인과는 초기에는 동지였지만 후에 라이벌이 되었고 후세인은 결국 티무르에게 암살당했다. 의형제였던 자무카와 갈라선 칭기즈 칸과 비슷한 다른 부분.

칭기즈 칸의 후예임을 자처하였고 또 지하드를 선포하고 다녔다. 실제 그가 무너뜨린 세력들은 대부분 현지화된 옛 몽골 제국의 세력과 각지의 이슬람 국가들이었다. 킵차크 칸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고 일칸국에 성립한 여러 몽골계 왕조를 복속시켰다. 또 오스만 제국을 갈아버렸고 북인도의 술탄들을 털었다. 명목상으로는 지하드를 재결합하는 전쟁이었다.

군사적으로 탁월한 천재라고 불리기 충분했다. 군사전략과 전술은 기병을 활용한 기동전법과 현지의 무기와 전술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및 공포에 기반한 제압정책 등으로, 이 또한 칭기즈 칸의 그것과 유사하다. 또한 정벌을 나가기 1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그 동안 첩보와 정보공작으로 상대방의 사기를 깍아먹는 데도 능했다.

이 무렵, 전투 중 오른팔과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에 부정적인 기록에서는 양을 훔치다가 양치기의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반신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에는 신뢰성이 없다. 이 부상때문에 그의 적들은 티무르를 멸시할 때 "절름발이 티무르(Tīmūr-e Lang)"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영어에서 티무르를 부르는 말인 '태멀레인(Tamerlane)'은 이것이 변형된 것이다.

화약병기, 코끼리, 기병 등 자신의, 혹은 상대방의 전술적 요소들을 모조리 흡수하는 티무르의 탁월한 능력과 이렇듯 광대한 전선이 결합되었으니, 티무르 제국의 군대가 당대 중서부 아시아 최강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동유럽의 공포였던 오스만 제국조차도 한 방에 갈려버렸을 정도다. 그나마 이때 티무르는 전성기를 지난 노인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오스만이 제국으로 발흥하기 직전, 즉 막 그리스로 진출하여 흥기하려던 시점으로 아직 국력이 절정에 달하진 않은 때이기도 했다. 한미한 시작 이후로 제대로 된 세력을 갖추곤 난 뒤로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고, 오스만과 맘루크 제국이 복속하여 사실상 몽골 제국 옛 영토의 서쪽 절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 강대함은 당시 유럽 국가들은 전혀 상대가 안될 정도. .

하지만 그가 두들겨 팬 국가들은 다른 몽골계나 이슬람 계열 국가들이라서 이걸로 까는 사람들도 있다. 바예지드 1세에게 처음으로 보낸 친서에는 "넌 같은 이슬람 계열이라 지금까지 봐줬는데 왜 지금와서 개기니?"라는 내용으로 적혀있었다. 하지만 결국 싸움이 시작되고 나니 칭기즈 칸 mk.2답게 권력앞에선 동포나 같은 교인이고 뭐 없었다. 사실 티무르가 주장한 전쟁 명분의 대부분은 성전(지하드)이었다.

그의 목적은 몽골이슬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으로, 평생에 걸쳐 중서부 아시아를 돌며 정복사업을 계속했다. 그가 무너뜨리거나 박살낸 왕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터키, 즉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내로라하는 아시아계 군사세력들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을 쓰러뜨리고 난 다음엔 이집트를 통해 유럽 정벌을 하려 했지만 바이바르스가 이끌던 때와는 달라진 이집트는 잔뜩 쫄아 사정을 하자, 같은 이슬람 교도로서 쳐들어가기 거시기해져서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게 된다. 이때 마침 명나라가 들어서자, 티무르는 튀르크-몽골계 후손으로서의 복수심과 중국에 이슬람 국가를 만들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어 동정을 개시하게 된다.

당시 명의 황제는 명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성조 영락제, 때문에 이뤄지지 않은 드림 배틀로 티무르 vs 영락제를 꼽는 역덕후들이 적지 않은데, 아무래도 수비하는 입장인 데다 당시 한창 물이 올라있던 영락제가 좀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물론 티무르가 이룬 군사적 기적들도 대단한 수준이지만.

티무르가 말년에 명을 치려했지만 행군 도중에 사망했다. 한겨울에 무리한 원정을 한 것이 병의 원인이었다. 그것도 경솔하게 한 겨울에 얼음물을 마셔 열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난 뒤, 티무르 제국은 혼란기에 빠져들게 되지만, 그렇다 해도 백 년 이상을 지탱했다. 사실상 티무르 개인의 탁월한 재능 하나로 세워진 제국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존속기간도 사실 긴 편이다.

후손들의 수준도 꽤 좋았다. 제국의 영토가 축소된건 그 많은 원정을 치루면서도 뒷갈망을 제대로 못한 티무르 탓이었고, 그나마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후손들의 능력 덕분이었다. 사마르칸트가 발전한 건 티무르가 보물들과 기술자들을 끌어 모은것도 있지만 후손들이 이들을 적절히 이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후손들의 시대에는 주변 상대국들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가능하지만, 티무르의 시대도 그건 그리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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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제국의 최대판도. 확실히 칭기즈 칸에 비하면 정복한 영토가 적다. 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시 등에선 영토가 과장되어 세계의 3분의 2를 차지했다고 허세를 친다(…). 이건 티무르가 정권을 잡으며 그 정권을 단단히 하기위해 일부러 과장을 한 것으로, 나중에 무굴 제국도 티무르의 후손이지만 그들의 정권을 단단히 하기위해 티무르를 뛰어넘었다고 블러핑을 했다.

2. 칭기즈 칸과의 차이

그러나 칭기즈 칸에 비하면 그 역량에 대한 평가가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한번 원정에 어느 한 곳을 확실히 끝내지 않고 돌아가 버리는 습관이 문제였다.

이에 대해선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티무르 제국의 중심부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론 정복한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에 둘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티무르가 원정의 행한 목적에 대해서 유의할 필요성을 환기하는 것이있다. 이에 따르면 티무르의 초기 원정은 외부 세력을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였다. 당시 트란스옥시아나 내부에는 티무르 외에도 여러 부족 세력들이 존재했다. 칭기즈 칸의 시대에 몽골 고원은 자무카 덕분에 적을 절멸시키는 것이 이미 등장했었다. 그나마도 몽골 비사등에 기록이 남을만큼 일반적이지 않았다. 반면 티무르의 시대에 트란스옥시아나에서 부족장을 죽이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짓이었다. 티무르는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이들 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부하들을 키우려고 했다. 그 결과 티무르는 치세 중반에 차가타이 한국의 대 부족 2개를 해산시켰고, 그의 사후에는 나머지 부족들도 힘을 못 썼다. 역사에 이름만 겨우 올릴 정도.

후기의 원정에 대해서는, 티무르가 애초에 정복할 의지가 없었던 땅과 정복하려 한 땅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티무르가 여러 차례 원정을 행했던 킵차크, 동부 이란은 여러 부족 연합체의 지배하에 있었다. 티무르는 초기 권력 장악 과정에서 부족 세력을 해체하거나 약화시키는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이 땅을 세력화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호라즘 왕조를 세 번 털었고, 일리에는 무려 여섯 내지 일곱 번 원정을 수행했다. 동부 페르시아엔 두 번, 서부 페르시아는 최소 세 번, 러시아에도 두 번의 원정을 수행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무너진 국가는 의외로 적다.

오스만 제국, 킵차크 칸국, 차카타이 칸국등 다른 칸국들, 인도 술탄국, 중앙아시아 일대의 여러 국가들은 전면전에서는 티무르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휩쓸고 지나가자마자 연거푸 다시 일어서곤 했다.

칭기즈 칸과는 대비되는 점으로, 이 때문에 티무르의 정치적 역량이 의심받기도 한다. 정복을 한 뒤 믿을 만한 대리인을 남기지 않았고, 이 때문에 반란이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자의 권력에는 손도 안 댄 적도 있었다. 그외에 수많은 정복사업들은 티무르의 귀엽고 모에한 사마르칸트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재력을 모으는 방도였을 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의 발전에 많은 힘을 쏟았다. 하지만 정작 사마르칸트에 계속해서 오래 머무른 적은 없었다고 한다. 가장 오래 머문 게 2년 정도고 나머지 기간은 정복사업에 집중그리고 사마르칸트를 커스터마이징할 아이템 수집에 열중. 또한 사마르칸트에 돌아오면 사마르칸트에 지어놓은 정원들에서 지냈는데 이는 유목민들인 몽골계의 풍습을 따랐기 때문이다. 즉 사마르칸트의 정원은 도시민인 이슬람계의 문화를 따름과 동시에 정원에서 막사치고 지냄으로서 유목민인 몽골계의 문화도 따른 것이다.

칭기즈 칸은 기반이 잡히고 난 다음에는 진두에서 지휘하기보단 부하들에게 맡긴 편이었지만(호라즘 정벌때 부하가 고생하자 직접 가서 부하를 도와준 적은 있다) 티무르는 평생 진두에서 싸웠다. 한번은 포위전 중 적이 "우리 둘 때문에 백성들이 고생하니 슬프다. 우리 둘의 결투로 끝장을 내도록 하자"고 말하자 진짜로 결투를 하러갔다. 이때 부하들이 말렸지만 뿌리치고 적병들이 활로 쏴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문앞에서 적에게 성에서 나오라고 요구했고, 적은 겁에 질려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티무르는 "자기 말도 못 지키는 놈은 살 가치가 없다"며 적과 그의 성을 갈아버렸다.

그외의 그와 칭기즈 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시에 대한 태도.

칭기즈칸은 살아 생전, 도시는 몇 번 본적도 없고 방해되는 도시는 초토화시킨 유목민 생활에 익숙했다. 부하라가 그가 발을 들여논 유일한 도시라고도 한다. 이에 반해 티무르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사마르칸트는 아니고, 케슈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어떤 기록에서는 케슈 인근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케슈 인근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티무르의 가문이 아주 쇠락하여 케슈와 같은 도시에도 거주하지 못 했던 근거로 보는 학자도 있다. 티무르도 사마르칸트 안에서 지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전쟁 중이 아니라도 사마르칸드와 케슈를 오가며 지냈다. 어쨌거나 티무르는 도시의 생활에 익숙했던 도시인이었다.

또 칭기즈 칸은 일부 페르시아 측 사서에 보면 항복한 튀르크군을 칭기즈 칸이 죽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대체로 항복하거나 투항하는 적은 살려준 반면 티무르는 항복자도 모조리 학살했다.하지만 칭기즈 칸을 따라 공예인이나 학자등은 살려주었다.

티무르의 원정 또한 이슬람 문화로의 도시 건설을 제외하면 약탈과 파괴에 집중되어 있었다. 티무르의 군대는 월급이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수입은 약탈에 의존해야 했다. 칭기즈 칸의 후예(혹은 그렇게 자처하는)답게 그 또한 엄청나게 잔인한 학살과 약탈의 명수였다. 칭기즈 칸처럼, 해골로 탑을 쌓고 어린아이들을 말로 밟아죽였다.

정통성이 부족한 티무르는 학살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다. 칭기즈 칸을 연상시키는 학살을 통해 몽골족 부하들의 신임을 얻으려 한것이다. 사마르칸트의 건설은 그에 비해 페르시아와 무슬림 부하들의 신임을 얻기위한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수도 사마르칸트의 역사도 칭기즈 칸은 파괴하고 티무르는 건설했다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
티무르에 대한 책을 쓴 저널리스트 저스틴 마로치(Justin Marozzi)는 저서 티무르, 이슬랑의 칼이자 세계의 정복자(Tamerlane: Sword of Islam, Conqueror of the World)에서 사마르칸트를 티무르의 애인처럼 묘사했다(…). 무슨 보물을 가져다줘도 만족하지 못하는 여인으로(…). 지나치게 큰 피규어에 집착한 남자

티무르는 체스를 즐기는(체스를 통해 군사학을 연마했다고도 한다) 온화한 인물로서 문화 진흥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집권과 함께 그가 자신의 제국의 중심으로 정한 사마르칸트는 당대 최대 규모의 대도시로 성장하고, 문화 또한 발전한다. 말로우의 희곡 템버레인에서는 ‘내 고향 사마르칸트는 대륙의 가장 먼 곳까지 유명해지리라. 그곳에 나의 왕궁이 세워질 터인데, 그 빛나는 탑으로 인해 하늘이 무색해지고 트로이의 탑이 떨치는 명성도 지옥으로 떨어지리라.’라고 말한다.

상당한 체스덕후로 새로 점령한 마을을 왕과 룩을 동시에 공격해서 체스 한판 이기고 샤루키아(왕:Shah+룩)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막내아들이름은 아예 샤루흐(룩). 오죽하면 기존의 체스는 재미없다고 자신이 고안한 말 몇 가지를 더 추가하고 승급의 방식을 바꾼 테머레인 체스라는걸 만들었다. 학자에 따라선 당시 이미 유행하던 형식이라고도 한다.

티무르는 파괴자인 동시에 부하들에겐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티무르는 문맹이었지만 페르시아어와 튀르크어를 둘 다 유창하게 말하고, 학자들과 역사와 과학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길 정도의 학식에 이슬람 교도로서의 신심도 훌륭했다. 물론 자기에게 개기면 형제교인이고 뭐고 없었지만.

어머니 쪽이 몽골계통. 부계쪽은 튀르크쪽이며 무슬림이기도한 티무르가 튀르크인이냐 몽골인이냐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애국주의 전쟁이 항상 벌어지는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양 역사 서적들을 봐도 몽골, 튀르크, 몽골-튀르크계라는 식으로 그의 인종이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한 책에선 투르크라고 하고 다른 책에선 몽골이라고 하는 식. . 단 투르크와 몽골 둘 다 바이칼-내몽골의 생활권을 공유한 같은 알타이인이었기에 구분은 언어밖에는 무의미하고 더군다나 티무르는 몽골어는 당연히 할줄 몰랐고 페르시아어가 모어였다. 더군다나 사마르칸트는 워낙 페르시아인이 많기도 하여 이란계와 몽골-튀르크계가 섞였다고 보면 편할지도 모른다.
티무르의 생애에 대한 전설들을 다룬 책인 케임브리지 출간 론 셀라(Ron Sela) 저의 티무르의 생애에 대한 전설들을 모아 주석을 단 책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티무르의 외모를 "아랍인과 같이 생겼다"고 묘사한다. 그의 유골을 조사한 소련의 학자들도 아리까리한다. 전술한 대로 페르시아계 코카서스인종+ 몽골-투르크계 알타이인종이면 충분히 아랍인과 같은 얼굴이 나올만하다. 현재 우즈벡이나 위구르 사람들을 생각하면 편하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거의 국가 영웅 취급이라 마르크스 상이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근데 우즈벡인들은 중앙아시아에 정착할 당시 티무르의 후손을 몰아내고 자리잡았다. 뭐지?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참조. 하지만 중동이나 인도에서는 갈아먹을 놈 취급을 받는다.

유럽에서도 인기가 있었는데, 당시 유럽의 적이던 오스만 제국을 발라버렸기 때문이었다. 소련의 검시결과에 따르면 인종적으로는 튀르크계 몽골로이드와 페르시아계 코카소이드 반반에 속했으며, 키는 173cm로 당시로선 큰 키였다. 또 엉덩이쪽의 부상으로 그가 절름발이였음을 확인했다. 칭기즈 칸의 원정때 처음 온 튀르크계+몽골계 부족의 후손이지만 오랜 시간 사마르칸트에 살다가 페르시아화 되어있었다고 한다.


유물과 유골을 토대로 만들어진 티무르의 두상.

그도 칭기즈 칸 못지않게 잔인한 동시에 정보전을 잘 이용했다. 칭기즈 칸이 몽골인들의 잔인성을 과장했던 것처럼 티무르도 출전하기 전에 그의 군대의 잔학함을 과장해서 소문을 퍼뜨려 상대의 사기를 꺾었다. 그의 군대를 아끼긴 했지만 봉급을 안줘서(…) 군인들의 수입은 약탈 뿐이었기 때문에 그의 군이 잔인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악명 중 하나는 오스만 제국황제바예지드 1세를 잡은 뒤 그의 앞에서 그의 아내와 딸들을 벌거벗기고 접대를 하게 했으며 그가 보는 앞에서 겁탈했다는 것이다. 이건세르비아 쪽의 얘기고 이슬람 쪽에선 잘 접대했다고 한다.이런 악명높은 이미지가 나중엔 그의 조상인 칭기즈 칸에까지 번져서 칭기즈 칸의 악인화에 한 몫하였다는게 잭 웨더퍼드의 주장. 다른 주장으로는 바예지드 1세의 아내와 딸을 면사포를 씌우지 않은 채 하녀들과 함께 있게 해서 바예지드 1세가 열이 뻗쳤다는 설도 있다.


티무르에게 패한 뒤 감금된 바예지드 1세를 그린 회화. 지팡이를 짚은 수염 난 남자가 티무르고, 앉아 있는 노인이 바예지드 1세다. 이 당시 실제로는 티무르가 고령의 노인이었고 바예지드가 중년이어서 연령이 잘못 묘사된 그림이다.

칭기즈 칸이 자신의 적들의 몰락을 그들의 단점으로 돌린 것처럼, 티무르도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다. 알레포의 카디(이슬람 법관)에게 티무르가 했다는 말로써 "과인은 결코 잔학한 자가 아니오. 알라께서 과인이 치른 모든 전쟁에 대해 알고 계시오. 과인은 학살자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과인의 적들이 겪는 고난은 결국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것을 알라 앞에 맹세하오."로 요약 가능하다.

그 시대만 해도 존재하던 풍습에 근거(도시=악의 상징)한 징벌의 의미가 강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복자형 역사인물들이 평가가 엇갈리기 쉽다지만 티무르는 그 평가가 좀 다른 의미로 엇갈린다. 한편에선 "그냥 인간백정일 뿐"으로 치부하지만 한편으론 "역사를 바꾼 인물인데 다른 인간들이 철저히 묻어버렸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위에서 언급된 은 반쯤 판타지에 가깝지만 원래 이런 저서들은 그 인물이 어떻게 평가받았는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이용한다. 이 열전에 따르면 흥미로운 얘기가 몇가지 있다. 열전에서 티무르는 자신이 정통성이 없다는걸 알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는걸 꺼리는걸로 보여지며 그의 신체적 장애에 대해선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절름발이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하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름발이 증세를 고칠수 있는데도 알라의 뜻이라며 치료를 거부한다.

2.1.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벡인들은 주치의 후손으로 티무르 제국을 몰아내고 그들의 국가를 세웠지만 현재 우즈베키스탄인들은 티무르를 국부 취급하고 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우즈벡인들은 원래 유목민족이었는데 소련이 정권을 잡고 우즈베키스탄을 장악하면서 공산주의에 바탕을 둔 국가관을 내세웠는데, 이에 따르면 유목민족은 취급이 매우 안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족인 본인들의 조상보다 자신들이 정복한 땅의 조상인 티무르를 우대하게 된것이다.

또한 티무르 제국은 그 문화적 역량이 극에 달했을 때 멸망해서 나라는 멸망해도 예술인이나 학자들은 그대로였고 이 문화적 자원들은 그대로 우즈베키스탄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론 티무르 제국을 이은 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무르보다 유명한 사람이 없다(...).

소련 붕괴 후에 우즈베키스탄은 자신들을 홍보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대받기 위해 국가홍보에 힘을 기울였는데, 티무르만큼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티무르는 몽골-튀르크/무슬림이자 유목민과 도시민의 적절한 혼합과 문화 발전에 힘을 기울인 동시에 대단한 정복자라 정치적으로 쓰기에 매우 좋은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티무르의 후손들을 몰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은 티무르를 국보 취급하는 것이다. 근데 이때 홍보하면서 티무르가 몽골로부터 중앙 아시아를 해방시키려 했다고 얘기했다(...). 물론 나중엔 몽골 제국을 부활시키려 했다고 은근슬쩍 바꿨지만.

그런지라 현대의 사마르칸트에는 소련 치하의 마르크스 동상이 있던 곳에 티무르의 동상이 있다.

2.2. 그외

그와 관련된 괴담이 있는데 그의 무덤에는

'누구든지 감히 내 무덤을 건드리면 전쟁의 악마가 그 나라에 닥칠 것이다'
(whoever would dare disturb the tomb would bring demons of war onto his land)

...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1941년 6월 22일 소련에서 조사차 그의 무덤을 열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날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었고, 이에 쫄은 소련이 1942년에 관뚜껑을 납으로 봉합했고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이겼다...라는 괴담이 있다.

3. 대중문화에서의 티무르


아틸라처럼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 및 러시아 동유럽에서 사람 인명(...)으로 쓰인다. 파생어인 타메를랑(Tamerlan)으로도 쓰이지만 원어로도 쓰이는 편.

징기스칸 4 파워업키트에서는 시나리오 4 서역을 출발한 늑대에서 주인공급으로 등장. 시나리오 2에서도 등장은 한다. 좀 시간이 걸려야되지만. 시나리오 설명부터가 티무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원래부터 능력치가 더럽게 높다. 칭기즈 칸과 능력치 차이가 1 정도 뿐. 아무래도 자칭 후손임을 인식한 듯. 이벤트를 몇번 보면 모든 능력치가 90 이상에 내정과 전투는 100을 찍는다. 인간이 아니다. 정확히는 정치 90 전투 100 지모 100. 작중 인물들 중 사실상 가장 강하다. 혼자서 세계를 쓸어버릴 수 있다(…). 거기다가 처음부터 모든 전투 특기를 가지고 있고 병과적성이 보병S 궁병A 기병S다(…). 수군은 적당한 도시를 항해의 도시로 만들거나 약한 놈들 몇놈 물위에서 박살내면 올라간다. 이벤트 다 찍은 티무르는 여포의 무력과 제갈량의 지력을 갖춘 존재.

그렇지만 명나라가 국력은 훨씬 더 강력하다(…). 거기다가 칭기즈 칸과 비교하면 부하들이 너무 부실하기 때문에 재빨리 사마르칸트를 전술의 도시로 만든 다음에 등용으로 좋은 인재들을 뽑는 것이 좋다. 근처의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고 운이 좋게 바예지드 1세가 등용되거나 킵차크 칸국에서 토크타미쉬를 물리치고 부하로 등용하면 좀 쉬울지도. 하지만 배신한 토크타미쉬를 죽여야 티무르의 능력치가 더 오른다는 문제가 있지만...안 그래도 이미 강한 인물인데(…). 부하들이 부실한 나머지 티무르에게 능력치를 몰빵한 모양.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부하들 없어도 충분히 혼자서 세계를 쓸어버릴 수 있긴 하다. 또한 티무르가 생존했던 시기 중앙아시아 지역은 적지 않은 군소국가가 난립하여 티무르에게 저항하거나 위기에도 몰아넣었던 세력이 적지 않았지만, 게임에서는 이 국가들이 전부 구현되지 않아서 의외로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미디블2: 토탈 워에서의 티무르 제국의 군대는 이벤트성이긴 하지만 탱크에 해당되는 코끼리 포병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최강의 군대. 덕분에 몽골과 더불어 튀르크 팩션의 난이도를 극악적으로 올려주시는 원인중 하나다자연재해. Game FAQs의 공략 중에는 몽골은 두번째로 끔찍한 악몽이라고 해놓고 티무르 제국을 묘사할때 최악의 악몽이라고 써놨다.

에드거 앨런 포가 Tamerlane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시를 썼다. 그 외에 리스토퍼 말로가 템버레인이라는 제목의 희곡을 쓰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스키타이인으로 나온다. 사실 유럽인들은 스키타이인과 튀르크인을 잘 구분 못했다는 설도 있다. 페르시아 제국부터 시작해서 터키와 아프리카까지 정복하고 마침내는 자신이 신보다 위대하다며 쿠란을 불태우지만 결국 그것이 저주가 되어 사망한다는 내용이다. 쓰일 당시 영국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고 티무르는 거기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이 작품은 특유의 무신론적인 요소(티무르는 자신이 전쟁의 신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얘기한다. 크레토스? 거기다가 아내가 죽자 신을 저주한다.)와 잔인성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바예지드 1세의 아내의 손가락을 자른다.

그외에 타메를라노(Tamerlano)라는 제목의 오페라도 있다. 하지만 극중 위치는 악역(…). 바예지드 1세를 물리치고 바예지드 1세의 딸과 결혼하려 하자 그 딸과 샤바샤바하던 그리스 왕자와 원래 티무르와 결혼하기로 되어있던 이레네라는 여인이 끼어들어 방해하게 된다는 얘기.

그의 이름을 딴 테머레인 체스라는 변종 체스도 존재한다. 기존의 체스에 낙타, 공성병기, 기린 등의 새로운 말이 있다.

아래는 티무르를 소재로 한 은행광고(…). 지금은 사라진 은행이지만 역사를 소재로 많은 광고를 찍었고 아래의 동영상도 그중 하나.


14세기의 티무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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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의 명령으로 그의 전사들은 전장에 나갈때 길에 돌을 쌓아두어야 했다. 언덕은 점점 커져갔다.
불과 승리가 있었다. 그후에 전사들은 돌아오며 그들의 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남겨진 돌들이 있었다.
티무르는 마지막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무거운 돌들을 들고 오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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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세계의 역사. 임피리얼 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