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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2

last modified: 2015-04-13 21:54:04 Contributors

제2차 세계대전기의 나치 독일군 기갑장비
장갑차 반궤도 장갑차 Sdkfz251 하노마크
장륜 장갑차 Sdkfz222, Sdkfz232, Sdkfz234 퓨마
전차 경전차 1호 전차, 2호 전차
중(中)전차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중(重)전차 6호 전차 티거, 6호 전차 B형 티거 2
돌격포 3호 돌격포, 4호 돌격포, 4호 돌격전차 브룸베어, 슈투름티거, 돌격보병전차 33B
구축전차 마르더, 헷처, 4호 구축전차, 나스호른, 5호 구축전차 야크트판터, 페르디난트/엘레판트, 6호 구축전차 야크트티거
자주포 1호 자주포, 베스페, 2호 자주포, 그릴레, 훔멜, 게쉬츠바겐 티거
노획전차와 개조품 35(t), 38(t), 소뮤아 S-35, 샤르 B1 bis(GW-B2), T-34, 호치키스 H35 (GW-39H), FCM 36 (GW-FCM36)
프로토타입 경 트랙터, 기갑 자주포 4호(Sd.Kfz. 165/1), 판터 2, 8호 전차 마우스, E-100
페이퍼플랜 3/4호 전차, VK 1602 레오파르트, 7호 전차 뢰베, 9호 전차, 10호 전차, E 시리즈, 라테, 몬스터
그 외 골리아트, 보르크바르트 4호, 600mm 자주박격포 칼, (독일 기갑 병기/기타)


King_Tiger.jpg
[JPG image (Unknown)]


야 신난다 가랑이사이에서 호랑이기운이 느껴진다! 크고 아름답다
사진의 전차는 포탑 전면의 장갑판이 수직으로 된 헨셸형 포탑을 장착한 후기생산형이다.

<6호전차 B형 티거 II 제원>
전체길이 10.26m
차체길이 7.26m
전체너비 3.75m
전체높이 3.09m
전비중량 69.7t
탑승인원 5명
엔진 마이바흐-HL230 P30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엔진출력 // 회전수 700Ps // 3000rpm
배기량 23.88L
연료적재량 860L
연료소비량 782L / 100Km (도로)
최고속력 38km/h(도로), 17km/h(야지)
항속거리 110km(도로), 85km(야지)
중량당 마력 10.1Ps/t
현가장치 토숀 바
변속기 01var401216B (전진8단 후진4단)
조향장치 // 구동륜 위치 메리트 마이바흐 // 전방
선회반경 4.8m
무한궤도 폭 // 매수 80cm // 좌,우 각 96매
접지길이 // 접지압력 4.13m // 1.07Kg/㎠
초호능력 2.50m
초월능력 85cm
등판능력 35도
잠수도하능력 1.60m
주포조준장치 TZF 9b
포탑회전방식 수동 및 유압겸용
무장 43식 71구경장 8.8cm 전차포×1 (84발)
7.92mm 기관총 MG34×2, MG42×1 (5,850발)
9mm 기관단총 MP40×1 (전차병 휴대용)
장갑 차체 전면 상부 150mm / 40도
차체 전면 하부 100mm / 40도
차체 측면 상부 80mm / 65도
차체 측면 하부 80mm / 90도
차체 후면 80mm / 60도
차체 상면 40mm / 0도
차체 바닥 25 ~ 40mm / 0도
포탑 방패 최대 80mm
포탑 전면 185mm / 80도
포탑 측면 80mm / 69도
포탑 후면 80mm / 70도
포탑 상면 44mm / 0도 ~ 10도

Contents

1. 개요
2. 개발사
3. 쾨니히스티거(킹타이거)?
3.1.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4. 상세한 이야기
4.1. 티거 2의 위용
4.2. 티거 2의 한계
4.2.1. 숫적 열세
4.2.2. Death from above
4.2.3. 심각한 불균형
4.2.4. 나는 연료와 재료가 적다
4.3. 개발, 생산한 이유
4.4. 맞수들?
4.5. 데뷔전 흑역사
4.6. 최후
5. 전쟁 이후
6. 매체 속의 티거 2


1. 개요

Panzerkampfwagen VI Ausf. B "Tiger II"
Königs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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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타이거는 2차 대전에 참가했던 마지막 독일 전차였다. 주포로는 더욱 강력한 71구경장 88mm포를 장착하여 거의 무적의 화력을 갖추었다. 킹 타이거는 약 500대 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사방에서 몰려드는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세를 뒤집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 후반에, 독일이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중전차를 만든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킹 타이거는 무게가 무거워서 교량을 건너는데도 애로사항이 많았고, 연료 소비량이 대단했는데 당시 독일은 연료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 크롬웰 프로덕션(한국에서는 EBS방영) '2차대전사' - 독일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볼러스도르프에서 스트라스부르크로 가는 길에서 11대 이상의 IS전차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장자리에 적 전차 120~150여대의 전차가 보급과 급유를 하고 있었다. 나는 포격을 지시하여 IS전차 전부를 격파하였으며 아군과 연합하여 마을에서 적을 격퇴하였다. 이번 전투에서 난 39대의 전차를 격파하였다.
카를 쾨르너 상사[1] , SS 503중전차대대, 1945년 4월 독일 동부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반에 등장한 독일군중(重)전차. 티거 2라는 본명 보다도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당시 등장했던 다른 전차들을 압도하는 뛰어난 성능과 수려한 외관 덕분에 인기가 높다.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중인 실물 쾨니히스티거. 사진의 전차(PzKpfw.Tiger Ausf.B(Fgst. Nr.V2))는 영국군이 전후에 하우스텐벡에 위치한 헨셀사의 테스트장에서 입수한 물건으로, 실전에는 참가하지 않고 테스트용으로만 쓰인 시험제작형이다. 자세히 보면 양안식 조준경을 탑재한 것을 볼 수 있다.[2]

참고로 저 티거 2는 전세계에 전시중인 모든 티거 2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포르셰 포탑 장착형 티거 2이다. 포르셰 포탑형 티거는 극초기생산분이기에 모두 예외없이 치메리트 코팅(후술)이 적용되었는데 저 전차는 테스트용 전차였기에 치메리트 코팅을 하지 않았다.


같은 박물관에 전시중인 실물 티거 2. '헨셸형 포탑'을 장착하고 치메리트 코팅을 한 익히 알고 있는 그 티거 2 이다.

2. 개발사

프로토타입 VK 45.03(H)

독소전쟁 개전 이후, 동부전선에서 T-34를 비롯한 소련 전차와 조우한 독일군은 큰 충격을 받는다.(흔히 'T-34 쇼크'라고 칭해진다.) T-34는 경사장갑을 대폭적으로 채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경사장갑을 채용했기에 장갑판의 방어력이 실질적으로 직면 장갑에 비해 월등했고, 이는 기존의 독일군의 주력 전차였던 3호 전차4호 전차 단포신형으로는 상대하기 난감한 것이었다.

독일군에 있어서 이는 크나큰 충격이었고, 이에 독일은 주력인 4호 전차를 장포신으로 개량하고, 추가 장갑판을 덧붙이는가 하면, 돌격포3호 돌격포에 장포신포를 탑재해 대전차 전력으로 쓰는 등 기존의 전력 강화에 사력을 다했고, 이어서는 판터티거를 비롯한 강력한 후속 전차의 개발과 도입을 서둘렀다.

판터보다 더 먼저 개발되고 있던 티거[3]는 외형이나 설계사상이나 사실상 T-34의 영향을 그렇게 받지 않은, 기존 독일 전차의 강화형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판터는 경사장갑과 곡면(포방패)을 대폭 채용한 외형에서 볼 수 있듯이 T-34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은 전차였으며, 티거의 후속 전차인 티거 2 또한 경사장갑을 차용하는 등 외형상에 있어서 중(中)전차인 판터와 중(重)전차인 티거 2의 유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독일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전차 수리, 보급, 정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판터 2의 부품을 다수 공유/호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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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1802.gif
[GIF image (Unknown)]
VK 45.02(P) A형
(포르셰 타입 180)
VK 45.02(P) B형
(포르셰 타입 181)

티거 때와 동일하게, 개발은 포르셰 사와 헨셸 사의 경합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포르셰 사는 자신들의 설계안을 제시하지만, 티거 때와 동일한 이유로 퇴짜를 맞고 헨셸사의 안이었던 VK 45.03(H)가 채택되게 된다.[4]

VK 45.02(P)는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다른 전차들처럼 전기+연료 구동식 하이브리드 엔진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선례를 보면 알다시피 이때의 하이브리드 엔진이란게 워낙에 험지주행성이 모자란 결함품이었고 티거 2가 양산될 시기로 들어가면 전장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하이브리드 엔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전기 모터 제작에 필요한 구리 수급에 차질[5]을 겪게 되면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자연스럽게 퇴짜를 맞고 말았다.[6]

사실,티거 2의 선정 과정에는 좀더 복잡하고 장대한 삽질의 역사가 숨어있는데,
바로 포르셰와 헨셸 양쪽 모두 애초 지정된 개발 기간안에 시제차량 제작은 커녕 설계조차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는 바람에[7] 병기국의 담당 장교가 이럴바에야 티거 때 처럼 포르셰사가 제시한 시안의 포탑과 헨셸사의 차체를 결합해 신형 전차를 완성하는 안을 제시. 헨셸사 측은 별다른 불만 없이 이를 수용할 의사를 내비췄으나 포르셰사는 '헨셸이 번번히 우리가 애써 개발한 포탑을 날로 먹으러 든다'며 격렬히 반대했지만, 신형 전차의 개발에 총통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마당에 밥그릇 싸움이냐는 반협박에 가까운 설득 끝에 결국 개발 기간을 약간 연장해 주는 대신 기간내에 시제차량을 완성하지 못할 경우에 한하여 이미 완성 단계인 포르셰 설계안의 포탑과 헨셸사 설계안의 차체를 결합하여 신형 전차를 제작한다는데 합의했다.

물론 상술하 바와 같이 시대를 앞서나간 하이브리드 파워팩(...)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포르셰사는 차체의 완성에 실패. 헨셸사측도 신형 포탑의 개발에 실패[8] 하면서 결국엔 당초 병기국에서 제시했던 절충안을 따라 헨셸사의 차체를 약간 개수해 포르세 설계안의 크룹사제 포탑을 얹어 티거2의 시제 차량이 완성된다.

포르셰사 입장에선 티거에 이어 또다시 자신들이 개발한 포탑을 헨셸이 날로 먹는 꼴을 손가락만 빨며 지켜봐했던데다 더더욱 안습하게도 VK 45.02(P) 용으로 개발되어 티거 2 극초기형에 탑재되었던 크룹 사의 포르셰 차체용 포탑 마저도 포탑 전면 장갑이 곡면 설계를 감안하더라도 110mm밖에 되지 않았던데다, 과도한 곡면 설계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곡면 설계 탓에 내부 공간 활용에도 역시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포탑 전면의 곡면 하부에 포탄이 피격될 시 미끄러진 포탄이 차체 상면을 직격하는 샷 트랩(Shot trap) 현상이 발생하는 바람에 전차가 무력화 될수 있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기에 미리 생산해둔 분량을 50량에만 탑재하였고, 후속 양산형은 수직 장갑을 지닌 신형 포탑[9]으로 교체되었다.

초기형부터 중기형까지는 흡착지뢰를 차단하기 위해 자기장을 차단하는 특수한 시멘트를 떡칠하는 치메리트 코팅을 채용했으나, 희소자원을 소모하는데다 정작 연합군은 흡착지뢰를 쓰지 않았기에(…) 1944년 9월을 전후하여 폐지된다. 그래서 후기생산형은 치메리트 코팅이 되어있지 않다.

3. 쾨니히스티거(킹타이거)?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라는 이름은 사실 독일 전쟁성이 붙인 별칭. 애초에 독일 전쟁성은 병기를 명명할 권한 따위는 없었고, 그 권한은 육군 병기국에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식 명칭 티거 2가 아닌 쾨니히스티거로 더 유명하다. 이것은 연합군 정보부의 삽질. 전쟁성의 생산 보고서만 봤지 전쟁성에게 병기 명명권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연합군 정보부는 별 생각 없이 쾨니히스티거라는 이름이 티거 2의 정식 명칭인 것으로 착각한 것. 그리고 이후 연합군 정보부의 보고서가 널리 인용되면서 티거 2는 어느새 쾨니히스티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버렸다.

미군이나 우리나라에선 독일어 원어를 직역한 킹 타이거(King Tiger)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영국에서는 로열 타이거(Royal Tiger)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듯. 다만 독일어의 쾨니히스티거가 가지는 실제 의미는 왕호랑이가 아닌 벵골 호랑이(Bengaltiger)다. 뭐 어쨌건 쾨니히스티거는 공식 명칭이 절대 아니다. 정식으로 부르려면 6호전차 B형 티거 2(Tiger zwei)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쾨니히스티거가 더 간지난다는 이유로 무시되고 있는 것 같다(…).[10] 현재도 티거 2가 정식으로 나오는 외국 게임에선 킹 타이거 아니면 쾨니히스티거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11]

3.1.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극초기형 포탑>
묘하게 T-34포탑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거 없다.

보통 초기형 포탑을 포르셰 포탑, 후기형 포탑을 헨셸 포탑이라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포탑의 생산회사는 모두 크룹이다. 애초에 두 포탑은 탑재하기로 예정된 차체가 각각 VK 45.02(P)와 VK 45.03(H)로 달랐다. 속칭 포르셰 포탑은 포르셰 설계안 티거 2용, 속칭 헨셸 포탑은 헨셸 설계안 티거 2 용의 포탑이다. 포르셰는 자신들이 계획한 포탑을 크룹사에 주문했으나 이 포탑들은 위에서 말한 포르셰형 프로토타입의 퇴짜와 구리나 니켈등의 금속문제로 선행 50대분만 생산후 생산이 중단되고 결국 헨셸사 안에 맞춰 크룹사가 디자인을 변경, 헨셸 포탑이라 불려지는 후기형 포탑이 등장했다. [12]

그러나 헨셸 차체용 포탑이 생산되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당시의 전황이 워낙 급박했으므로 마침 포르셰 설계안이나 헨셸 설계안이나 포탑링의 규격은 동일하였으므로 급한대로 마침 생산해둬서 재고도 있고, 그대로 놔두면 활용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포르셰 차체용 포탑을 그대로 탑재하여 출고하게 되었다. 일종의 선행양산형.

다시 말해 여태껏 헨셸 포탑, 포르셰 포탑이라 불리던 포탑들은 사실 모두 크룹사가 제작한 포탑이며 헨셸형이라 알려져있는 후기형 포탑은 디자인까지 크룹이 맡아 해왔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초기형 포탑" / "양산형 포탑"이라고 딱딱하게 말하는 것보다 "포르셰 포탑(Porsche-Turm)" / "헨셸 포탑(Henschel-Turm)"이라고 지칭하는 쪽이 더 직관적으로 와닿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불리고 있다. 물론 관련 서적에서는 양산형 포탑(Production Turret)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한다.

4. 상세한 이야기

4.1. 티거 2의 위용

2차 대전 지상전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티거 전차의 계보를 잇는 괴물 전차로서, 티거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전차 중에선 티거 다음이라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첫번째로 무식하게 긴 71구경 8.8cm전차포. 2차 대전 최강 전차포 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포로 단순 구경상으로는 40mm나 차이나는 스탈린 전차의 122mm포를 압도하는 관통력을 발휘했다. 대충 등장 당시의 모든 연합군 전차의 정면장갑을 1.8~2km 거리에서 관통 가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포구초속도가 1240m/s.였다. 그것도 평범한 철갑탄으로 달성한 것이다.

두번째로 우수한 방호력. 방호력은 당대 최고 수준. 차체정면 150mm, 하부장갑 100mm, 포탑정면 180mm으로 미군의 76mm은 차체 하부를 노려야만 500m에서 IS-2,ISU-122에도 탑재된 122mm는 차체 정면 하부를 노려 200m로 포탑정면은 각각 100m이내 에서만 가능했다.[13] 많은 서적 및 인터넷 사이트에서 티거 2는 정면관통이 불가능 하다고 되어있는데 사실 M36 잭슨,M26 퍼싱에 장착된 90mm나 심지어 76mm나 영국의 17파운더 일 경우 텅스텐 포탄을 쓸 경우 완전 불가능은 아니었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그야말로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수준이다. 아니, 실제로 셔먼 vs 티거 논쟁이 벌어지면 꼭 나오는 '적전도피 허가설'의 주인공일 정도다. 참고로 실제로 적전도피가 허가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군에 한해서, 그런 괴물과 마주칠 경우 전차는 전투를 기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애초에 미군 교리상 전차와 싸우는 임무는 대전차 자주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연합군 전차가 뭘 쏘던지 쏘면 다 튕겨내고 혼자서 그냥 아군 1개 대대(…)는 쌈싸먹는 압도적인 공포를 동, 서를 가릴 것 없이 연합군 전차병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는 중전차라는 IS-2도 마찬가지였다. 티거 2는 IS-2의 정면 상부를 2100m, 포방패는 1800m부터 관통이 가능했다.

4.2. 티거 2의 한계

tiger2_22.jpg
[JPG image (Unknown)]

많아보이지만...

위의 설명을 보면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티거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킹왕짱인 이놈을 운용했는데 독일군은 어찌 그리 발리고 전쟁에도 졌을까?

4.2.1. 숫적 열세

이토록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 이 잘난 전차는 1944년에 등장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겨우 492대 남짓 생산되는데 그쳤다. 이래서야 아무리 잘 싸워도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져나왔던 동서 연합군을 막을 도리가 없다.

현대의 시점으로 보면 최신형 전차를 490여 대나 만들다니 돈 많네요! 1개 사단은 무장시킬 수 있겠다. 만세!!!!겠지만, T-34 계열과 셔먼 계열만 합쳐서 10만 대를 훌쩍넘게 생산되었던 게 2차대전이었다. 티거랑 합쳐도 채 2,000대가 안되는 초라한 생산량은 정말 치명적인 문제였다.티거와 킹타이거 한대당 50대이상을 잡아내야... 잠깐 가능하잖아?![14] 예시로 든 저 전차들 이외에도 각종 전차들 또한 엄청난 물량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화력면에선 쾨니히스티거에 필적하던 소련IS-2 스탈린 전차만도 3,000대 이상이 나왔으니...

이 초라한 생산량은 미국과 소련에 비해서 규모가 심히 부족한 독일의 공업력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생산시점'이었다. 티거 2가 양산에 돌입할 때쯤엔 연합군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슈바인푸르트 대공습 등 독일 전역의 군사시설에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뭘 많이 만들고 싶어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부품 생산 등을 미루어 계산하면 2천 대 가량을 뽑을 준비가 완료되었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물량은 본문에 서술되어 있듯이 480여대 가량에 그쳤다. 공습으로 인한 주요부품의 생산 정지. 시설의 분산 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가 목을 조른 것이다.

이러한 대전 후기의 상황상 쾨니히스 티거는 거의 일당백(…)을 강요당해야 했다. 압도적인 적 전차들의 물량을 생각해보면 쾨니히스 티거 한 대가 적 전차 200여 대(…) 가량을 격파해야만 교환비가 맞는 셈인데, 실제 전장에서는 끽 해야 겨우 몇십 대를 격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몇십 대가 고작이라니... 결국 다굴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대단하다 봐야하려나 게다가 연합군이 전차로만 싸운 것도 아니라 온갖 곳에서 자주포의 포화와 보병들의 대전차화기(바주카 등)와 공중에서의 폭격이 날라들었다.[15]

4.2.2. Death from above

결정적으로, 이 전차가 배치된 1944년에는, 미군의 무시무시한 공군!항공세력이 전유럽의 제공권을 장악해 버렸다. 물론 공격기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전차를 파괴하기는 힘들고[16] 행진하는 보병이나 차량 대열을 까부수고, 보급시설을 날려먹는게 그만이었다지만, 전차는 보급이 날아가면 그순간 X된거다. 덕분에 이동도, 보급도, 심지어 전장에서 안심하고 얼굴도 드러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일단 나타났다 하면 당장 하늘에 잠자리떼처럼 떠 있는 연합군 비행기들이 독일군을 있는 대로 박살냈고, 공군만 떴다 하면 도망다니느라 그나마 있던 연료도 다 까먹고 좋은 전투위치 다 잃고 불리한 여건에 몰리는 것이 1944년 가을 이후의 독일군이었다. 그것도 동부 서부 공통으로.(…) 덕분에 그 위용에 걸맞지 않게 실전배치 초기부터 종전 때까지 대체적으로 안습한 나날을 보냈다.

4.2.3. 심각한 불균형

티거보다 무려 12~13톤이나 더 나가는 괴물임에도 불구하고 엔진 출력은 티거 후기형(56톤, 약 700마력)과 똑같았다! 이해가 안 간다면 현재 미군의 주력전차인 M1 에이브럼스 계열과 동등하거나 더 무거운 중량에 엔진 출력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보면 딱이다. 티거엔 그나마 감당 가능한 수준의 출력이었으나, 티거 2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로 난감한 수준의 출력이었기에 반대급부로 연비와 기동성이 심각하게 떨어졌으며, 과부하로 인한 고장률의 심각한 상승을 초래했다.[17] 독일측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출력을 향상시킨 신형 엔진인 'HL234'를 개발하던 중이었으나 전쟁 중에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설령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대전 말의 상황상 양산체계를 구축할 상황이 도저히 되질 못했을 것이다.

4.2.4. 나는 연료와 재료가 적다

어마어마한 중량 때문에 건너갈만한 다리도 별로 없고, 연비가 나빠 연료 소비량이 무지막지한데 그 연료를 실어나르는 모든 도로와 철도가 연합군 공군한테 밤낮으로 두들겨맞고 있었는 데다가, 이 무렵의 독일군은 유전지대 대부분을 연합군에게 빼앗겼기에, 이미 독일의 연료 비축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적의 연료를 노획해서 사용한다는 발상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노획하는 과정 자체가 엘리트 인원을 데리고 엄청난 혈전을 치뤄야 가능하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라도 소련은 전차가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터라 전차연료를 빼앗아도 사용이 불가능하며, 미국같은 다른 연합군의 경우에도 독일이 연료없는 것은 잘 알기에 후퇴하기 전에 연료창고에 불을 지르고 튀었다. 그래서 아르덴 대공세때 망한 것이다. 결국 아무리 외계인을 고문했어도 천조국의 쇼미더머니와 시베리아의 기상을 당해낼 수는 없던 것이다.

덕분에 티거 2의 손실은 전투 손실보다 연료부족과 엔진, 궤도 등의 사소한 기관고장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훨씬 많았다. 이미 독일군의 연료보급은 꿈도 희망도 없었고, 고장난 티거 2를 견인, 회수해 수리할 여건이 되지 않아 독일군들 자신이 버리거나 자폭시킨 게 부지기수였다는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1944년 중반 이후에는 독일도 니켈이나 몰리브덴같은 특수강 만들 때 필요한 희귀금속이 크게 부족했다.[18] 물론 기술력이 있어서 일본처럼 연철을 쓰는 처참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원래 설계를 생각하면 장갑판이나 각종 중요 부속에 이런 희귀금속을 사용한 특수강을 써야 하는데, 대체품이나 그냥 강철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서 전차들의 실제 방어력이 설계시 방어력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문제는 티거 2는 이렇게 특수강을 사용하기 힘든 시절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련군에서 같은 종류의 독일군 전차를 상대로 할 때 이상하게도 최근 생산품으로 보이는 녀석이 낡은 녀석보다 빨리 격파되거나 고장나는 현상을 목격했을 정도다. 그래서 ISU-152같은 152mm 야포를 갖춘 녀석에게 근거리에서 포탄이 명중당할 경우, 예상과는 다르게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워낙 최후의 최후까지 중요한 길목에 몇 대씩 배치되어서 장판파 단 한두 대가 적 전차를 수십 대씩 격파하며 연합군의 기갑부대를 끈질기게 괴롭혔고, 그것이 명성에 일조를 한 것은 사실이다.토치카

4.3. 개발, 생산한 이유

위의 내용을 보면 걍 티거나 계속 만들지 왜 저런 무겁고 고장 잘나는 물건을 만들었나 싶지만, 나치 독일 입장에선 티거 후속작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티거나 티거 2를 만들지 않고, 그 자원으로 4호 전차나 판터를 만들 경우 몇 대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전장에 나가면 T-34 수십 대를 상대해야 한다. 해봤자 M4셔먼과 T-34와 동등한 수준인 4호 전차[19]로는 동등하게 싸우는 것이상을 요구하는 건 무리이며, 판터 역시 강하긴 하지만 같은 중전차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티거나 티거 2는 제대로 운용하면 T-34 수십 대를 상대할 수 있다. GD사단 소속의 티거 전차 2대를 앞뒤로 포위했던 T-34 수십 대가 패퇴한 적도 있는데, 하물며 티거 2라면 더 말이 필요없다.

더욱이 티거 2가 나오는 시점에선 연합군 전차들의 공격력과 장갑이 강화되었기에, 티거와 판터가 그 이전만큼 활약하기 힘들어졌다. 티거가 나올 때 당시(1943년)에는 미군은 57mm 포도 아직 다 보급하지 못한 상황[20]인지라 M3 37mm 대전차포 따위를 대량으로 굴리는 상황이었으며, M4 셔먼의 75mm 주포는 3,4호는 상대할 수 있지만 티거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소련군에 경우도 마찬가지. KV-1이나 T-34 76의 76mm 주포로는 티거와 정면 상대하기 힘들었다. 이렇듯 티거 자체의 카탈로그 스펙이 강력한데다 적들 수준도 떨어지다보니 티거와 판터가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44년 중 후반에 이르러선, 연합군이든 소련군이든 대전차 능력이 서서히 강화된지라 티거의 능력만으론 더 이상 무쌍을 찍기 힘들어졌다. 그 원거리 명중률 낮은 17파운더만 해도 제대로 맞으면 티거가 터지는데, 영국은 그걸 중전차 주포로 달고 다녔다. 미군 역시 한동안 삽질을 하긴 했지만 셔먼의 주포를 1944년부터 76mm M1A1 대전차포로 교체하고 76mm 포용 고속철갑탄을 1945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보급하는 한편 티거를 맞상대할 목적으로 M26 퍼싱의 배치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소련군은 개개의 성능은 티거보단 딸리지만 약점을 제외한 전면에서 8,8cm 포를 튕겨낼 수 있고 숫자가 많은 IS 시리즈를 투입한데다, SU-100, SU-152같은 대구경 대전차자주포들을 대량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형전차인 T-34도 주포가 85mm로 강화된지라, 티거보다 더 강한 전차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중전차는 본래 공세지향적인 병기다. 수세에 몰린 독일군으로서는 다른 쪽에 무게를 싣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주 생산공장인 헨셸 공장은 티거 패밀리만 생산했으므로 생산을 중단한다고 해서 다른 전차의 생산량이 늘어날 일이 없었다. 억지로 생산을 줄이고 다른 전차를 생산하려 해도 공통되는 부품이 로드휠은 판터중 일부 기종과 호환가능일 정도로 거의 없는데다가 애초에 요구되는 기술적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장을 다른 전차를 생산하는 목적으로 재배치하는 동안 연합군의 물량에 남아있는 전차들이 전멸할 판국이었다. 연합군 공군의 폭격을 생각하지 않은 이상적인 상황에서 이런 지경이다. 만약 생산을 안 했으면 오히려 독일은 공장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남은 전차가 없어서 더 빨리 패배를 맞았을 것이다.

서부전선에서 정면관통샷으로 파괴된 티거 2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대부분이 승무원이 유기하거나 자폭한 경우이다. 이전의 티거가 일부 전면이 관통되어 격파된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괴물은 괴물이었다. 동부전선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하며 2차대전 중 가장 강력한 전차로 알려지게 된다.

4.4. 맞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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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미군은 이 괴물에 괴물로 맞섰다 근데 저걸 어떻게 노획했대? "비전투 손실" 분량 획득 셔먼 항목에 있는 백린탄 낚시에 당한 놈이 저놈 아니야?

이렇듯 여러가지로 초강력한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사실 완전 무적은 아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 보유한 전차중 이놈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M26 퍼싱 정도.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소련의 경우 SU-152나 IS-2가 티거2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녀석이랑 같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다.

티거와 더불어 화려한 전과를 자랑하는데 이중 몇 가지를 적어보면...

  • 티거2 에이스인 카를 쾨르너 SS원사는 200m 거리에서 스탈린 전차 2대를 격파하고, 연료보충을 위해 집결해있던 소련 전차부대를 급습하여 11대의 스탈린과 39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4월 29일까지 쾨르너의 티거 2는 10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와 돌격포, 26문의 대전차포와 다량의 화포를 격파하여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 친위대 토텐코프 사단 소속의 카를 브롬만은 1945년 1월 27일부터 종전때까지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며 2월 17일과 18일 사이 하루동안 65대의 전차와 44대의 자주포,15대의 장갑차량을 격파하여 기사 철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 친위대 소속 티거 2 3대가 T-34와 셔먼[22]을 각각 15대, 12대를 격파하고 탈출했다.
  • 헝가리의 한 마을에선 두 대의 티거 2가 T-34와 IS, SU-152를 포함, 소련군 전차 40여 대를 잡아냈다.
  • 동프로이센에서 친위대의 티거 2 1개 중대[23]가 4대까지 남을 동안 적전차 78대를 격파한 전적이 있다.
  • 베를린 공방전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두 대의 티거 2는 각각 30여 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렸고 이후 자폭했다. 이중 한 대는 밑에선 언급할 게오르그 준위이고 다른 한 대는 위에서 언급한 카를 쾨르너이다.
  • 벌지 전투의 국방군의 티거 2 1대는 적 셔먼과 울버린의 포탄 각각 18발과 5발을 얻어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적전차 7대를 격파하고 기지로 무사귀한 했다.
  • 베를린 근교에서 티거와 티거 2 각각 한 대씩 남아있는 상황에서 소련군과 조우하여 장갑척탄병들의 호위 아래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약 3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와 대전차포 10문을 아작냈다.
  • 제 509중전차대대는 봄의 새싹 작전 당시 약 20일 동안 손해 10량에 대해서 전차와 돌격포 203량,화포 145문,항공기 5기를 격추했다.
  • 헝가리에서 2대의 티거2가 소련군의 대전차 포망을 뚫고 고지를 점령하여 76mm, 152mm포대와 IS중전차와 ISU-152 다수를 격파했다.

티거가 처음 등장한 1942년 말엽에는 서방 연합군의 75mm, 소련군의 76mm 전차포로는 500미터거리에서도 티거의 전면장갑을 관통시키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티거 2가 등장한 1944년 중반 이후에는 이미 주도권을 연합군이 장악했으며 양 군의 주력전차들 역시도 화력이 개선되어[24] 측후면을 노리면 관통 가능할 정도로 기본 화력도 대폭 상승했기에 빵빵한 지원화력과 수적우세를 활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오로지 전차끼리의 대결이 아니므로 대입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당시의 셔먼과 T-34는 중형전차이다. 티거2는 작정하고 만든 重전차인데 중형전차가 중전차를 정상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애시당초 전차전은 일기토가 아닐 뿐더러 전차와 전차간 교전에서 공중지원을 당할 수준이었다는 건 당시 대전말 독일의 상황이 얼마나 시궁창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산 증거일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투입되거나 개발중이었던 신예 전차(M26 퍼싱, IS-2, 센추리온 등) 또한 티거 2의 맞수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양 국의 교리 특성상 만날 기회 자체가 별로없었다. 소련의 IS-2는 대전차전보다는 철저히 적 방어선에 돌파구를 내는 용도에 투입되었고 탄약 적재량이 부족하여 초기 돌파 이후 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또한 이 122mm 주포는 구경은 컸지만 야포 특성 상 관통력이 상당히 부족했던 물건이었다. 발사속도는 덤.

슈퍼 퍼싱의 경우 유일한 교전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이 있긴 한데, 사실이라고 쳐도 그 승리란 것이 티거 2를 잡기위해 특수제작된 T15E1 주포를 탑재하고, 적국의 보일러 철판과 격파된 판터의 장갑까지 뜯어다가 억지로 떡장갑을 단 상황이라서 일반론으로 삼을 수는 없다. 게다가 슈퍼 퍼싱 자체가 제퇴기가 포탑 위에 돌출되는 등 불완전한 프로토타입에 불과하여 실전에 써먹기에는 문제가 많은 녀석이다.

그런데 전차를 개조했던 정비장교 벨튼 쿠퍼 중위가 쓴 책에는 이 전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오로지 그 슈퍼 퍼싱의 포수였던 어윈 상병의 회고록에만 그 내용이 나올 뿐인데, 정작 이 사람이 첫 자대배치를 받은 게 1945년 초이다. 그래서 서방의 전사 연구가 잘로가(Steven Zaloga)는 2008년에 쓴 Armored Thunderbolt의 290쪽에서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퍼싱을 티거의 맞수로 내놓았지만 미군 내에서도 체급의 차이와 그에 따른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등한 70톤급 체급의 T29가 1944년부터 개발에 들어갔으며, T30을 거쳐 T34로 개량되었고 연구가 완료되었으나 전쟁의 종결로 생산되지 못했다. 퍼싱은 결국 체급의 한계 때문에 중전차 타이틀을 내주고 중형전차로 강판되었다.

다만 탄약 적재량이 우월하다는 떡밥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서 지나치게 대구경 주포를 장착한 IS-2를 제외하고는 탄약 적재량은 다들 거기서 거기였다. 더군다나 티거 2가 T-34/85의 매복 공격을 당했을 때 포탑 측면이 관통당하며 내부의 탄약이 유폭하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포탑내 탄약 적재가 금지되었기에 오히려 탄 숫자가 줄었다.

소련의 경우 제련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 특히 APCR같은 특수탄약은 85mm 이상 포에서는 종전 때까지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크고 단단한 텅스텐 탄자를 성형할 기술이 없었던 탓. 이것은 사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고, 독일도 88mm 이상에서는 하기 어려웠다.

4.5. 데뷔전 흑역사

이런 상당한 능력을 가진 重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안습한 데뷔전을 가지고 있다. 동부전선에서 이루어졌던 데뷔전이 거의 흑역사급 전과를 자랑했던 것. 티거 2 3대가 매복한 T-34/85 한 대에 격파당했던 것이다. 1944년 8월 11일. 501 重전차대대가 티거 2를 처음 수령받고 투입하던 중에 저런 참사가 일어났다. 격파의 원인이 아직 해당 전차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탑 측면과 포탑링을 근거리에서 강타당한 탓에 내부포탄 유폭으로 격파당한 것이라 그 이후로 티거 2의 포탑 측면의 예비탄 보관소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휴행탄수가 68발로 줄어들었다. 알렉산더 오스킨 소위 후보생이 이와같은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다만 이것은 티거 2의 약한 측면 방호력의 영향력도 있는데, 티거와 비교일 경우 전면장갑은 대폭상승 하였으나 측면은 80mm그대로 였다는 것. 살짝 경사를 주기는 했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셔먼에게 격파 당하기도 했다.

물론 티거 2 말고도 티거와 판터도 데뷔전이 안습하기로 유명했다. 차후에 미친듯이 활약해서 오명을 덮었단 점도 동일. 다만 티거 2는 등장 시기가 너무나도 늦었기에 상대적으로 활약할 기회가 형제들에 비해 적었다는 점이 문제.

4.6. 최후

4월 30일, 314호 티거 2 전차의 게오르그 디어스 준위와 그의 부하들은 제국의사당 근처에 방어 진지를 잡도록 명령받았다. 314호 전차의 승무원은 전차장 게오르그 디어스, 포수 볼프-디에터 코테, 장전수 알렉스 소머와 무전수 보도 함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SS 503 중전차 대대에 속하는, 베를린에 남은 단 두 대의 티거 2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티거 2는 홀로 30대 가량의 T-34를 격파했고, 그 다음날엔 제국의사당 정 반대편에 위치해있는 크롤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성공적인 반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투는 피할 수 없는 종말을 단지 잠시동안 미룬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무렵엔 방어 진지를 포기하고 베를린으로부터의 탈출을 준비하도록 명령받았다.

게오르그 디어스가 직접 쓴 회고록에 의하면, SS 503 중전차 대대의 티거 2 6대는 4월 말에 제11 무장 SS 기갑척탄병 사단에 배속되었고, 4월 30일에 이르러서는 단지 두 대의 쾨니히스티거만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게오르그 디어스 본인의 차량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100대가 넘는 소련 전차와 29대 이상의 기타 기갑 차량을 격파한 카를 쾨르너의 차량이었다. 게오르그 디어스는 5월 1일에 성공적인 반격을 가하여 크롤 오페라하우스를 일시적으로 재점령했으나 당일 저녁 7시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게오르그 디어스는 최소 39대의 소련 전차 격파 전과를 공인받았으며, 베를린 방어전 최후의 날 며칠 동안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적을 격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안 그는 제국의사당 내에 다수의 소련 보병과 전차가 침입하여 전투를 벌이는 것을 목격하였다. 결국 게오르그 디어스와 승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티거 2를 슈온하우제 거리 (Schonhause Alley) 근처에서 지뢰를 이용하여 자폭시켰다. 게오르그 디어스는 그의 전과에 대해 보상받지 못했다.[25]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5. 전쟁 이후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 시험제작형 2호차
국립 방위 아카데미 104호차
프랑스 Musée des Blindés 233호차
벨기에 La Gleize 213호차
러시아 쿠빈카 전차 박물관 002호차, 502호차
독일 Deutsches Panzermuseum 121호차
미국 패튼 박물관 포트 베닝으로 이동 332호차

전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재미난 건, 생산수는 미미했지만 멀쩡하게 기관 고장으로 방기된 차량이 많았던 만큼 기본적으로 버리고 간 독일군이 폭파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 각국의 전쟁박물관 등지에 의외로 한 대씩은 있는 모양.

벨기에의 경우 아르덴 대공세당시 무장친위대 제 6 기갑군의 주요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501 SS 중전차대대의 상당수 티거 2들이 유기되거나 자폭처리 되었다. 스타벨롯과 라 글레즈(La Gleize)가 주요 격전지였던데다가 위의 213호차 차량도 라 글레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포신이 부러진 걸 복원시킨 것이다.[26]


프랑스의 경우 전선의 급격한 붕괴로 멀쩡한 티거 2를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버려진 경우가 제일 많았던 탓에, 엉뚱하게도 국내 마을들을 뒤지다가 가동 가능한 티거 2를 찾아낸 사례도 있다. 현재는 프랑스의 Musée des Blindés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33호차. 전후에 남은 티거 2 중 유일하게 기동 가능한 차량이다.


전후 스웨덴이 이 티거 2에 관심을 가져 프랑스에 특별히 요청해, 멀쩡한 티거2가 발견되면 보내달라는 요구를 하였고, 프랑스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앞서 스웨덴은 프랑스로부터 판터를 가져가기도 했다.

이후 결국 1947년 8월, 프랑스의 작은 마을 기엥에서 거의 온전하게 유지된 316 원격조종전차중대의 티거 2가 발견되었다. 해당 중대는 무인전차를 사용하는 중대로, 공병폭파작업용 무인전차의 조종은 중전차가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연합군은 공병전차를 유인으로 조종할 때 독일은 공병전차를 무인으로 조종하네 일단 발견된 것은 1대로 중대의 12호차(다크엘로우 바탕에 포탑측면에 붉은색으로 12자가 크게 써 있다.)가 발견되었다. 극초기형(포르셰 포탑을 장착했다)이자 노르망디 상륙직후 버려진 이 티거는 곧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1947년 11월 27일 스톡홀롬에 도착한 티거 2는 수리와 함께 테스트가 진행되었는데, 이 티거를 시험 사격장으로 옮겨 놓는데만 해도 셔먼 1대, 견인용 M26 트랙터 1대, 수리용 트럭 1대, 연료트럭 1대, 승용차 2대에 오토바이 4대라는 총길이 60m에 이르는 대행렬을 준비해야 했다. 역시 티거2

그러나 시험과 시험을 거듭하면서 거기에 걸었던 기대감은 차츰 실망감으로 변해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너무나도 잦은 잔고장이었다. 야지에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니 없던 고장도 속출할 지경이었던 거다. 게다가 이 거대한 행렬은 움직이는 데만도 너무나도 많은 예산을 잡아먹었기에, 결국 전차는 해체 처분되었고 안돼! 포신만 각종 테스트용으로 사용한 후 박물관에 들어갔다.

6. 매체 속의 티거 2

  • 벌지 대전투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는 자주 M47 패튼 전차가 외형 개조 없이 철십자 마크를 달고 등장하였다.

  •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흑기사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인 바우어 대위의 최후를 함께하는 전차로 등장한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독일군의 유닛으로 나오며,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도 서부집단군의 유닛으로 나온다. 둘 다 속도가 느리지만 강력한 장갑과 화력을 지니고 있다.

  • GIRLS und PANZER에서는 쿠로모리미네 여학원 소속으로 등장한다.

  •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설트에서도 티거II를 몰아볼 수 있다. 미션 중 독일군의 비밀병기 전차를 포획하는 미션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직접 몰아서 다른 독일군 전차들(판터/티거)을 관광시키며 티거무쌍을 찍는다. 역시 OSS요원이 다르기는 다르다 #

  •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독일 헨셸 트리의 8티어 중전차로 등장한다. 탈락된 VK 45.02(P)의 A형, B형은 포르셰 트리의 8티어, 9티어 중전차로 나온다. 다만 이 게임에선 동생 티거처럼 실전에서의 명성만을 생각하고 탔다가는 티거 때 처럼 고생하기 쉽다. 티거 2가 실전에서 상대했던 M4 셔먼 시리즈나 T-34/85, IS-2 등은 5~7티어에 분포해 있는데, 게임중에 마주치는 전차들은 티거 2와 동급의 전차들, 혹은 아래 티어라 해도 1~2티어 높은 포를 장착하면서 슈퍼퍼싱에 달렸던 T15E1 포를 "관통력 약한 포"로 만들어버리는 괴물들이니… 물론 티거 역시 주포가 페이퍼 플랜 10,5cm 주포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월드 오브 탱크/독일 테크 트리/중전차에서의 티거 2 참고.

  • 프랑스가 벌지 대전투에 자극받아 만든 전쟁영화 <불과 얼음>에선 위 항목에서 언급된 프랑스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진품이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독일군 전차는 다 이것밖에 없는 양 티거 2만 나왔다. 판터A형 한 대가 달려가는 것도 나왔지만, 싸우는 장면은 오로지 티거 2만 보여줬다.

  • 영화 인트 앤 솔저에서는 초기형 포탑을 장착한 티거 2가 등장한다.

  • 2014년에 개봉예정이었던 판저 88이란 영화에서도 등장 예정이라고 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4호전차의 쉬르첸을 달고 나온다고 한다. 근데 이거 대체 언제 할거야

  • Angry Video Game Nerd: The Movie에서 아주 잠깐 파괴당하는 전차로 등장한다. 이 영화 특성상 미니어처인데다 왜 미군들만 나오는 영화에 티거 2가 나오냐는건 묻지 말자(…)

  • 워스토리에서 독일군 중전차로 등장하며 독일군 시작하자 마자 캐시 모아두었다가 30레벨때 이것부터 지르는 것이 좋다. 포지션은 연합군의 M26 퍼싱과 동일한 위치인데 IS-2한테 처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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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20년 4월 19일 생으로 무장 친위대 출신, 티거2 에이스로 100여대 가량의 전차를 격파하였으며 베를린 공방전에서 게오르그 디어스와 함께 최후의 티거2를 타고 격전을 치룬 사람이다. 이 전투외에도 SU-76 2대를 포탄 한발로 격파시키는 등, 마지막 괴수,종전후 회고록등을 집필하면서 1997년 8월 8일에 운명했다.
  • [2] 프로토타입은 양안식 조준경을 채용했으나 양산형은 대부분 단안식 조준기를 채택했다. 물론 포르셰 포탑에 한정한 이야기인데다 50기밖에 생산되지 않았기에 별 의미는 없고, 사실상 포르셰 포탑을 탑재한 전부가 극초기형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 [3] 독일은 전쟁 초기부터 30톤급 돌진/돌파용 중전차인 'VK 30.01'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 중반을 지나면서 30톤급으로는 수뇌부가 바라는 충분한 중장갑과 고화력 실현이 불가능했고, 이를 개량하여 'VK 36.01'이란 이름의 36톤급 전차를 계획하나, 88mm 주포의 설치가 불가능하여 다시 중량을 45톤으로 끌어올리고 88mm급 주포를 설치할 수 있는 'VK 45.01' 계획을 발주, 이후 티거로 이어졌다. 서술하였듯 티거는 대전 초기의 설계안들로부터 이어진 계획이었으며 T-34 쇼크 이후 기존의 설계안을 좀 더 강화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 [4] 그에 앞서 VK 45.02(H)를 티거 2로서 제시했지만 티거 1을 약간 개량만 한 수준의 차량이었기 때문에 탈락(사실 말이 좋아 개량이지 실제론 티거의 주포만 71구경장 88mm포로 교환한 형식이였다...)되었고 헨셸이 티거3로서 간직해두고 있던 VK 45.03(H)를 다시 제시하여 선정되었다.
  • [5] 얼마나 독일의 상황이 안습했는가 하면 4호 전차의 최후기형인 J형은 포탑 구동용 모터를 없애버려 포탑을 일일히 손으로 돌려야 했다.
  • [6] 그러나 포르셰 티거 2를 위해 개발된 현가장치는 야크트티거의 초기형으로 이어져서 기이어 사고를 치고 만다.
  • [7] 포르셰사는 크룹사에 의뢰한 포탑의 설계는 완성되어 있었지만 차체는 겨우 목업 제작단계에서 지지부진 하고 있었고, 헨셸사는 차체의 설계는 완성해 제작 단계에 들어갔으나 포탑은 설계조차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 [8] 포르셰의 차체 개발 실패와는 다르게 헨셸의 포탑 개발 실패는 중재안이 제시된 이후 헨셸이 의도적으로 태업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굳이 머리 싸매고 설계안 뽑아내느라 진땀 빼지 않아도 포르셰사가 차체 개발에 실패해 주기만 하면 포탑만 가져와서 얹어버리면 되니까...
  • [9] 흔히 헨셸 포탑으로 불리는 그것. 당연한 얘기지만 이 포탑 또한 크룹 사 설계/제조.
  • [10] 간지 때문인지 유명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일의 밀덕들조차 쾨니히스티거라고 부르는 경우가 티거 2라고 부르는 경우보다 더 흔하다. 독일의 정식 밀리터리 잡지에서조차 쾨니히스티거라고 쓰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
  • [11]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제식 명칭인 티거 II로 등장한다.
  • [12] 참고자료 http://www.fprado.com/armorsite/tiger2.htm
  • [13] 쿠빙카 실험에서는 1000~1500m에서 122mm 철갑탄이 포탑 정면을 관통했다... 지만 신빙성은 별로인 게, 소련에서는 티거 2를 많이 노획하지 못한 때에 진행한 테스트라서 티거 2 혼자서 더럽게 많은 포탄을 얻어맞아야 했고, 그 때문에 심각하게 방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포탑을 두들겨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 [14] 물론 농담. 티거무쌍의 원조격인 부대도 50:1까지 교환비가 치솟진 않았다.
  • [15] 차라리 전투에서 연합군 전차를 왕창 잡고 격파당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티거 시리즈의 고질적인 잔고장과 비전투 손실, 연료 부족등으로 주저 앉는데. 아시다시피 대전 말은 어제는 우리땅, 오늘은 전장, 내일은 연합군 땅이 반복돼서 견인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폭파되는 경우가 많다.
  • [16] 당시 미군의 공격기가 가지고 있던 무장은 탱크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위력이 약하거나, 아니면 명중률이 낮았다.http://blog.naver.com/96jacob/220195447795 참조
  • [17] 하지만 나름 독일 전차랍시고, 무지막지한 중량에 비해선 그럭저럭 쓸만한 기동성을 지니긴 했었다. 비교대상으로 삼을 만한 소련의 IS-2는 무게도 더 가벼운 주제에 연비나 기동성이나 티거 2에 비해 엄청나게 후달렸다.(…)
  • [18] 알베르트 슈페어는 회고록에서 1944년 2월에 히틀러에게 현재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면 크로뮴이 고작 6달치, 텅스텐니켈은 10달치, 몰리브덴실리콘은 각각 8달, 6달치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고 회상한다. 크로뮴과 니켈이 없으면 항공기에 필요한 구조 재료를 생산할 수 없게 되고, 니켈이나 몰리브덴이 없으면 정상적인 균질압연장갑의 생산은 끝장난다. 히틀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다른 부하와 신형 전차 얘기를 하러 갔다고 한다.
  • [19] 그나마 최 후반기 생산품인 J형은 이전버전의 개악품이었으니, 이 쯤되면 1대 1 싸움도 힘들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 [20] 완전히 주력 대전차포가 된 것은 1944년 중반.
  • [21] 다만 포탑 전면이 관통당한 티거2의 사진이 웹상에 떠돌긴 하지만, 자세한 관련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아 진위여부가 다소 애매하다.
  • [22] 소련에게 공여된 M4A3
  • [23] 당시에는 8대로 보통 1개 전차 중대는 기본 10대, 많으면 13대다.
  • [24] 셔먼의 경우는 대전차전 용도의 76mm 장착형, T-34의 경우는 85mm 장착형이 대거 등장한 이후였다.이들주력전차의 화력 상승으로 인해 티거는 대전 말기로 갈수록 힘들어 졌고 티거 2가 빛을 발하게 된다
  • [25] 원문 : http://www.militaryphotos.net/forums/showthread.php?165551-Pics-from-the-Reichstag-in-1945/page9
  • [26] 부러진 포신은 판터의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추가로 패튼 박물관의 332호 차량도 스타벨롯 인근에서 유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