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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다 야스미츠

last modified: 2017-11-23 15:35:29 Contributors


豊田 泰光(1935~2016)
일본프로야구 선수, 해설가, 평론가.

선수 시절

이바라키 현 태생이며, 미토 상고를 졸업 후 1953년 니시테츠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포지션은 유격수 였지만, 입단 첫해 경기 때마다 번번히 실책을 저질렀고 그것도 대부분 적시 에러였는지라 팬들의 원성이 높았던 것은 물론, 구단 고위층에서도 "쟤를 왜 쓰느냐? 당장 빼라!!" 면서 대놓고 씹을 정도였지만 감독이던 미하라 오사무는 들은 채도 않은 채 묵묵히 토요다를 계속 기용했다. 게다가 신인답지 않게 성격이 옹골차다 못해 뻔뻔했던 토요다는 "타격으로 만회하면 될거 아니냐"고 되받아치며 그의 진가를 타격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입단 첫해인 1953년 시즌동안 무려 45개의 실책을 기록하였지만, 타율 0.281 27홈런 59타점 25도루 라는 신인답지 않은 성적은 토요다의 말 그대로 터무니 없는 실책수를 커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더구나 시즌 27홈런은 고졸 신인사상 최다였고, 1986년 세이부 라이온즈의 신인 키요하라 카즈히로가 31홈런으로 경신할 때 까지 33년간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고비 때마다 정신줄 반납한 듯한 실책은 계속되는 등 유격수로서의 수비는 거칠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파이팅으로 커버해 나갔고,[1] 타선에서는 역대 최강의 2번 타자로 나카니시 후토시, 오시타 히로시와 함께 이른바 유선형 타선(수소폭탄 타선이라고도 불렸다)을 구축하며 1950년대 중반 니시테츠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니시테츠가 1956~1958년 3년 연속으로 일본시리즈를 제패할 때 당연히 토요다는 핵심 선수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 크게 한몫 했으며, 1956년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1959년 시즌 종료 후, 감독이자 스승으로 존경하던 미하라 오사무가 팀을 떠나고 중심타자 이던 오시타 히로시는 은퇴, 나카니시 후토시는 부상으로 타격이 쇠퇴하는 악재가 겹쳤지만 토요다는 변함없이 안정적이고 폭발력 있는 타격으로 팀의 타선을 지탱했다. 1962년 나카니시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하자 토요다는 그를 도와 선수 겸 조감독으로 힘을 보탰지만, 시즌 종료 후 1963년 고쿠데츠 스왈로즈(야쿠르트 스왈로즈 전신)로 트레이드 되었다. 고쿠데츠에선 자신의 포지션이던 유격수 대신 주로 1루수로 뛰었고, 7시즌 후인 1969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17년간 1814경기 출장, 1699안타 263홈런 888타점 215도루 타율 0.277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은퇴 이후


토요다의 최근 모습

현역에서 물러난 후 산케이 아톰즈(고쿠데츠 스왈로즈 후신, 후일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변경)에서 2년,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1년간 코치를 역임했지만, 특유의 직설적이고 격한 성격 탓인지 이후 코치나 감독직과는 연이 없었다... 어째 장훈옹이랑 오버랩 된다 대신 후지TV, 분카방송, 닛폰스포츠 등에서 바른말과 쓴소리에 능한 해설가와 평론가로 명성을 높였다.[2] 한편으로 현역 시절이던 1958년 초에 "남자가 있는 거리" 라는 곡을 발표하여 한때 가수로도 활동한 적이 있는 듯 하다...

야구팬 중에선 그 거침없는 독설과 직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조금 자뻑이 심한 편이다. 특히 니시테츠 라이온즈전성기의 주력 중 한명이라 그 시절 자신의 팀이 이룬 업적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감이 있다. 툭하면 "그 시절의 니시테츠는..." 하는 식으로 얘기를 꺼내면서 근성론, 정신론을 설파하고, 자신이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의 니시테츠를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모든 평가의 기준을 1950년대의 니시테츠 라이온즈에 놓고 있는 감이 있다. 아무리 봐도 기량이나 프로의식이나 그시절 선수들보다 현재의 선수들이 우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시절의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가장 완벽했던 팀인 양 현재 활약하고 있는 현역들을 까내리고 "요새 현역들은 환경빨, 장비빨이고, 비록 돈은 요새처럼 많이 못 받았지만 정신력은 내 현역시절 니시테츠가 우위", "그 시절에는 원정경기 도중 전날 숙소 이탈해서 실컷 술 퍼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도 끄떡없이 다음 날 경기를 치렀는데 요새 애들은 돈은 많이 받지만 그 탓인지 너무 정신적으로 나약하다" 라는 식으로 정신승리를 시전하기도 한다. 또 자기 현역시절 감독이던 미하라 오사무의 야구는 마치 경전이라도 되는 양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3]

이런 경향 때문에 성질 뭐같기로 유명한 조지마 겐지와는 나름의 악연을 갖고 있다. 토요다가 신문 논평에서 조지마를 대놓고 까자,[4] 이에 앙심을 품은 조지마는 대 선배고 뭐고 없다는듯 자기 방을 토요다의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저주를 퍼부었고, 어느 날은 토요다와 마주치자 무엄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왜 악평을 썼느냐고 강하게 몰아붙이자 그 기세등등한 토요다가 잔뜩 쫄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물러섰고 이후 토요다는 조지마에 대한 악평을 삼갔다고(...).

한편으로 니시테츠 시절 팀메이트이자 라이벌이던 나카니시 후토시 와는 얼핏 서로 경원시 하는 사이로 보였지만 사실은 상당히 친밀했다고. 경기 중 상대 투수의 구질에 대해서 조언과 토론을 나누며 서로의 타격에 도움을 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니시테츠 팀 동료인 전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故 오기 아키라와 함께 지금까지도 퍼시픽리그 최고의 키스톤 콤비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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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3루수이던 나카니시 후토시와 함께 금강불괴 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허슬 플레이를 펼쳤다.
  • [2] 단, 후지TV는 토요다 자신이 진행하던 야구프로에 여성 아나운서나 개그맨 등 야구와는 동떨어진 인물들을 출연시키고, 급기야 공중파 방송에서 자신의 방송을 종료시키자 이에 항의하여 "다시는 후지TV에서 해설 안하겠다" 라며 2001년 절연 선언을 하기도 했다.
  • [3] 한국에서 일본식 야구라면서 비판받는 이미지의 일본야구를 정착시킨 인물이 미즈하라 시게루미하라 오사무 이다. 특히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몇몇 감독들이 시전했다가 비판을 받곤 했던 등판 예정이 없는 투수를 타순에 넣고 선발투수가 누구냐에 따라 대타로 그에 맞는 선수를 기용하는 이른바 위장 오더 작전 등의 원조는 토요다가 영원한 사부로 생각하는 미하라가 원조이다. 문제는 토요다가 이런 행태를 마치 '치열한 두뇌싸움'인 것처럼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 [4] 사실 토요다와 조지마는 정줄놓은 수비와 악동 기질에 대해선 서로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 차이가 있다면 조지마는 그 악명높던 수비를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