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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아

last modified: 2017-01-27 09:15:37 Contributors

Contents

1. 가수 태진아
1.1. 기본 정보
1.2. 상세 소개
1.3. 대한가수협회 회장
1.4. 진아기획 & YMC 엔터테인먼트
1.5. 억대 원정도박 의혹
1.6. 기타
2. 개그 콘서트의 전 코너 중 하나

1. 가수 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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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본 정보

1.2. 상세 소개

1953년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의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형편상 진학할 엄두 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3] 후 무작정 상경하여 중국집 배달원을 시작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에 작곡가 '서승일'씨에게 발탁이 되어 1972년에 '내 마음 급행열차'라는 곡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게 별로 관심을 얻지 못했다. 이대로 뜨지 못하고 끝나는가 했지만 1973년에 새로 낸 음반에 실린 '추억의 푸른언덕'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1974년에는 각종 신인상을 휩쓸 정도로 가요계의 유망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후 터진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저 불미스러운 사건이 뭔고 하니, 75년 1월에 당시 현대건설 사장 조성근[4]아직 살아있다면 90을 바라보고 있을 부인이었던 김보환과 간통을 한 혐의로 구속된 일이었다. 이혼을 통해 합의를 본 덕에 처벌은 면했으나 연예인으로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사건 후에 바로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미국으로 간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어쨌거나 이 사건이 계속 발목을 잡았으므로 시기상 동떨어져 있긴 해도 미국으로 간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맞다.
상대의 신분이 대단한지라 위력에 어쩔 수 없이 당한 게 아닐까 하는 동정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지만, 수차례에 걸쳐 거금을 화대로 받아서 활동비로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이 더 강한 편이다. 인터뷰를 할 때는 보통 이 사건에 관한 얘기는 아예 빼버리거나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서 넘어가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태진아와 관련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각종 기사와 사람들의 입에 되풀이 되어 오르내리고 있다. 당시의 연예계에서 간통사건은 툭하면 벌어지는 일이었고 대충 수습한 후에 멀쩡히 잘 활동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본인의 사건만 자꾸 부각되는 것에 억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희석될 일은 아니며 엄연히 자신이 저지른 과오이기 때문에 스스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때 MB가 조성근의 후임으로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던 사실을 들어, 이 사건 덕분에 사장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여 대통령까지 했으니 태진아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대통령을 만든 셈이라는 말이 넷 상에서 떠돈 적이 있는데, 사장 이취임은 사건이 발생한 후 2년이 지난 77년에서야 이루어졌으며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건 매우 일반적인 일이므로 그 사건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덕을 본 게 사실이라고 쳐도 결국 선거를 통해 뽑아준 것은 국민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태진아는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한동안 연예협회 가수분과에서 제명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사람이 수십 년 후에 대한가수협회의 회장이 됐으니 인생사 모를 일이다. 아무튼 가수로 살기 어려워지자 그는 낙향하였고, 집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이제 농사를 짓겠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가수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듯이 지냈다. 하지만 얼마 후부터 다시 가수 활동을 계속 하게 된다. 이 70년대 후반의 자숙기간 동안에 두어 장의 음반을 발표했는데, 반응이 영 좋지 않아서 조용히 묻혀 버렸다.
가수 활동과 별개로 1979년에 '이쁜이들'이라는 여성 듀엣의 음반에 기획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 음반에서 자신이 작곡한 '꽃가마'라는 곡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이 '꽃가마'는 나중에 가사만 바꿔서 '잘 살꺼야'라는 곡으로 새로 만들어 2005년에 발매한 자신의 리메이크 음반에 실었다.[5] 훗날 제작자로서도 성공을 거두는 데에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망의 1980년, 사건이 터진 후 만 5년이 지났을 즈음 태진아는 오랜만에 자신의 독집 음반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80년 9월부터 방송사들은 자체 정화작업의 일환으로 품행이 저급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전적이 있는 20여 명의 연예인들에 대해 출연을 금지시켰다. 이들 중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제가 되었지만 태진아는 해제되지 못한 3명에 속하고 말았다. 홍보 방법이 다양하지 못했던 당시에 방송 출연 금지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기지개를 켜려던 참에 이런 일이 생겨서 앞길이 막막해지자 태진아는 이젠 정말 가수로서 끝이라는 생각에 크게 낙심하여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이 무렵에 미국에서 살고 있던 왕년의 여배우 최모씨[6]와 결혼을 약속한 적이 있는데 결국 이뤄지진 않았다.
미국으로 간 태진아는 교포 사회의 밤무대 활동을 하며 지내던 중에 선배가수 남진의 소개로 '이옥형'씨와 결혼을 하고 득남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에는 가수 활동과 병행하여 아내와 함께 장사를 하기도 했다. 이 시절에 미국에서 힘들게 살던 이야기는 국내 복귀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태진아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로 지겹도록 울궈 먹었다. 하지만 현지의 밤무대에서 나름대로 인기몰이를 했다는 교민들의 증언이나 기사가 상당히 많고 틈이 생기면 국내 복귀를 타진하러 들락날락 하곤 했으니, 말처럼 심한 고생을 한 게 아니라 연예인들이 흔히 하듯이 동정심을 얻기 위해 다소 부풀린 얘기일 가능성이 있다.

84년 1월에 드디어 방송 출연 금지가 해제되었다. 태진아는 귀국하여 '경아의 사랑'이란 곡을 발표하고 다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때는 잘 풀리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가서 또 몇년을 지내야 했다. 그리고 88년에 또 귀국하여 '다시 한번 울었네'를 발표했는데 이 곡도 별로 히트하지 못했다. 그런데 직후에 발표한 '옥경이'가 그야말로 대박이라 할 만한 인기를 끌게 된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가 지내던 태진아는 고국의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다시 들어와 이번에는 아예 영구 정착을 했다. 88년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특별하다. 당시에 태진아는 재미교포 대표 자격으로 올림픽 성화봉송에 참여했다. 그런데 레코드사 관계자가 방송에 나온 그를 알아보고 찾아와 음반을 내자 했다고 한다. 성화봉송 시기와 음반 발매시기를 따져 보면 약간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본인이 여러 번 언급한 얘기니까 믿어보자.

여하간에 태진아는 <옥경이>를 시작으로 이듬해의 <거울도 안보는 여자>, <미안 미안해>까지 연거푸 히트시키며 현철, 송대관,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이라 불리게 된다. 나중에는 그의 히트곡 중 하나인 <사랑은 아무나 하나>로 뮤직뱅크에도 출연하였는데, 뮤직뱅크의 주시청 연령층을 생각한다면 이 노래가 전연령층의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태진아가 중년 트로트 가수로서 뮤직뱅크에 출연했던 최초의 가수는 아니다. 송대관 역시 <네박자>로 뮤직뱅크에 출연했었다.
그런데 부인의 이름이 '이옥형'인데 왜 노래의 제목은 '옥경이'일까? 태진아는 아내의 이름을 '이옥경'으로 실제로 잘못 알고 있었으며, 혼인 신고할 때 제대로 된 이름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부부 사이가 틀어지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부인인 이옥형씨도 마찬가지로 태진아에게 '조방헌'이란 본명이 따로 있는 것을 혼인신고 때 알았다고 한다(…). 역시 괜히 부부가 아닌가 보다...

방송에서는 송대관과 라이벌이자 장난스럽게 서로 티격태격하는 앙숙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라는 것도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원수지간은 아니고 티격태격하는 친구 사이로 나온다. 악우 관계 정도? 두 사람은 미국에서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국내로 복귀해서, 송대관은 <정 때문에>로 태진아는 <옥경이>로 재기에 성공한 시기도 비슷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7] 둘이서 함께 찍은 광고도 많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겼다. 여담으로 송대관의 고향에서 이런 식으로 개그를 하다가 관객들이 진심으로 화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고.

본명이 상당히 오래된 사람의 느낌이 나기에 유머 요소로 쓰인다. 그나마 79년생 발라드 가수 추헌곤 씨보다는 낫다. 동생인 조방원 씨가 인간극장에 출연해서 화제를 불러왔다. 동생은 머리가 벗겨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동생 쪽이 더 나이들어 보인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이 흔히 그렇듯이 금전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는 편이다. 금전관계로 인해 주변에 인심을 잃은 일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면에 형제들에게 집과 가게를 마련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 조카들의 뒷바라지까지 할 정도로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아낌 없이 퍼주는 면모도 있다. 금전적인 면을 떠나더라도 가족애 대한 애정은 절절한 편.

1.3. 대한가수협회 회장

2010년에는 송대관 후임으로 제3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취임. 초대 회장은 남진, 2대 회장은 송대관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활동기간이 긴 트로트 가수 출신들이 계속 회장을 맡고 있다. 전대 회장들의 사모임 동호회장과 같은 활동과는 달리 카라 전속계약해지 통보사태가 터진 후 카라 멤버 3인과 DSP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중재를 하였고, 그의 중재안에 양측 모두 동의하여 사태를 일단락시키는 데에 공헌해서 카덕들 사이에선 일명 태느님으로 불리게 된다. 그와 이루의 앨범을 구매한 카덕도 많은 모양.

이후로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협회는 항상 가수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 열심히 돕겠다고 밝혔다.(태진아 "'제2 카라사태'는 없다. 미연에 방지할것") 여담으로 태진아 항목은 위의 카라사태 중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리그베다 위키 내의 카덕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

이루 협박 사건 때도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대인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러모로 태보살. 이루 항목 참조.

1.4. 진아기획 & YMC 엔터테인먼트

본인의 예명을 딴 '진아기획'이라는 음반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태진아의 양자 조유명 씨가 설립한 자회사 YMC 엔터테인먼트[8]라는 매니지먼트 회사 존재하며, 양쪽 소속 가수가 동일하므로 사실상 같은 기업으로 취급하는 듯 하다.

진아기획에 직접 소속되어 있는 가수들만 보면 태진아 본인과 그의 아들 이루, 그리고 가수 성진우와 가수는 아닌 것 같지만 음반도 낸 배우 견미리. YMC 엔터테인먼트에는 마이티 마우스, 휘성, 마야, 에일리, 배치기 등 꽤 영향력이 큰 가수들이 소속되어 있다. 2012년 들어서는 신보라같은 개그맨도 영입해서 다방면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가수들의 음악색깔에 전혀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태진아가 가진 방송계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지원 덕분에 가수들에게 꽤 큰 도움이 되는 듯. 특히 YG에서 독립하고 몇 년간 슬럼프였던 휘성은 슬럼프를 극복하고 방송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등, 태진아의 지원을 많이 받은 케이스. 덕분에 YMC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이후 휘성의 음반에서는 'Executive supervisor 태진아'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2013년에는 배치기가 첫 1위를 하고, 에일리가 탑 가수로 올라서고, 휘성이 히든싱어로 재조명받는 등 소속 가수들이 상승세를 탔다.



1.5. 억대 원정도박 의혹

3월 17일 한 매체에 관련 의혹이 제기된 후 태진아 측은 3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재미삼아 도박을 한 것은 인정했으나 억대의 원정도박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관련 기자회견 영상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도박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질 못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한편, 문제의 카지노 지배인은 '(해당 의혹은)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 관련기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LA의 한 한인매체 시사저널USA가 돈을 빌미로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며 열변하다 눈물을 보이는 상황. #

시사저널USA 기자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며 녹취록을 공개한 후 더 이상 절대로 카지노에 가지 않겠다며 물의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사죄했다. 이에 대해 시사저널USA에서는 해당 녹취록이 조작되었다며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태진아의 아들인 이루트위터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언론때문에 어의(...)가 없다며 기자답게 기사를 쓰라며 시사저널USA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확한 결론은 나와봐야 알겠지만 3월 25일 기준으로 아직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관련기사

사실 금액의 액수가 과장됐느냐 안됐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도박을 했다는 그 자체가 더 문제이다. 국외에서 했다고 해서 도박이 죄가 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도박카지노 문서를 참조해도 좋다. 한마디로 태진아는 자신이 거금을 들여 도박을 했노라고 기자회견까지 연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태진아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다량의 연예인들이 상습도박으로 처벌받았을 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도박은 건 돈에 비례해서 처벌수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루의 혐의도 벗겨야 했을테고 말이다. 거기다 만약 태진아가 이 난리판에서 승자가 된다면 어느정도 동정의 여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태진아가 처신을 잘한 것도 아닌게 너무 감정적인 면으로 논리적 결점을 메우려던 것이 여론에 오히려 악영향을 가져다주고 있다. 차라리 갑작스런 상황에 횡설수설했다고 인정하면 될 것을 말이다. 하지만 태진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오히려 진심어린 눈물이었다며 동정받을 여지가 있다. 연예인 복귀에 동정받는 것은 중요하니 말이다.

녹취록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시사저널USA는 국내 주간지 시사저널과 무관한 업체이다. 그런데 태진아 주장에 의하면 여기 대표가 한국 시사저녹과 잘 안다며 기사로 내지 않을려면 돈 내놓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사저널 측도 이 시사저널 USA가 멋대로 이름을 사칭했다며 국내 시사저널과 무관하다며 고소하겠다고 분노하고 있다.

3월 26일 태진아는 서울중앙지검에 시사저널USA를 공갈 미수혐의로 고소했다. 관련기사

그리고 시사저널은 주간지 보도로 시사저널 USA의 실체를 밝혔는데 직원이라고는 고작5명 정도 뿐이며, 대표라는 심언이라는 인물도 정체조차 파악되지 않으며 이렇게 협박질로 돈벌어먹는 사기업체라고 분노어리게 보도했다. 시사저널도 더불어 태진아 씨와 같이 본사도 피해자라며 저 사기꾼들 때문에 본사까지 태진아 협박패거리로 욕먹는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런 논란 속에 결국 심언이라는 대표라는 자가 채널A에게 시사저널과 상관없다고 밝혔고 채널A에서 왜 그럼 시사저널 상호를 그대로 쓰고 있느냐라는 전화통화에 말문이 막히면서 이 업체가 공갈협박이나 저지르고 상호 도용까지 주저없이 벌였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사저널이 여기에 전화하여 대표 좀 바꾸라고 하자 직원들은 외출하고 없다며 회피하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3월 31일 시사저널USA 발행인이 사퇴했다. 관련기사

1.6. 기타

고향인 충청북도 보은군의 보은 대추 CF 모델로 출연하였으며 청원군의 청원생명쌀 브랜드 CF에도 출연하는 등 충청북도와 인연이 깊은 편이기도 하다. 또한 보은군 탄부면에 있는 탄부농협에서는 태진아를 모델로 한 탄부쌀을 출시하기도 하였다.

성진우의 노래 "포기하지마"에서 짧게 피처링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더 사랑하는 너를♪(굵게 표시한 부분이다.) 녹음 당시에 가수 본인이 불렀을땐 이 부분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아서라고. 실제로 신경 쓰고 들으면 저 부분만 목소리가 다르다.
가끔 쇼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성진우의 '포기하지마'나 이루의 '까만 안경'을 한 소절씩 부르곤 하는데, 둘 다 기본 태진아에게서 기본적인 보컬 지도를 받아서 그런지 태진아가 불러도 위화감이 없다. 심지어 원곡 가수보다 잘 부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동방신기를 고대하던 소녀팬들을 동반자로 낚아올린 동영상으로도 유명하다.

불후의 명곡에서 손호영이 자신의 노래인 사모곡을 불렀을 때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때 사모곡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미국으로 이민간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를 그리면서 쓴 곡이라고. 후에 히든싱어에 나와서 사모곡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태진아의 어머니는 태진아가 미국으로 떠난지 4개월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허나 태진아는 돈이 없어 가는 비행기표만 끊고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으로 올 수 없었고, 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지 못 했다고 한다. 4년 후 귀국해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가는 길에서 본 지역 신문에 사모곡의 가사가 되는 이덕상 시인의 '사모곡'이라는 시가 투고되어 있었고, 시를 읽자마자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 났고,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 같음을 느꼈던 태진아는 시인을 직접 찾아가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요청했고, 승낙을 받아서 가사로 썼다고 한다. 본인은 이 노래를 수천번을 불렀지만, 부를 때 마다 눈물이 난다고...

2013년 겨울에 새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타이틀곡인 '하얀눈'은 본인의 곡인 '아줌마'를 개사한 것이다. 우려먹기? 잘 살꺼야도 꽃가마 우려먹은 건데 뭘 새삼스럽게

2014년 1월, 어느 네티즌이 의 'La Song'과 태진아의 '동반자'를 매시업해 만든 일명 #'비진아'를 인터넷에 업로드해서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이걸 태진아와 비 두 사람이 모두 보았고...진짜로 #같은 무대에 선다고 기사가 떴다.(...) 그리고 1월 24일 방송된 뮤직뱅크에서 의 LA SONG 무대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 듀엣 무대가 성립되었다. 네티즌이 편집한 매시업과 달리 La Song 원곡의 "라~라라라라~" 하는 후렴구 부분만 태진아가 불렀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9] 어째 회식 3차 같이 간 부장님과 신입사원 같다(...)

이어서 1월 25일 방송된 쇼! 음악중심과 26일 SBS 인기가요에도 출연했다. #해당 동영상

비진아 노래의 리메이크작을 자신의 정규앨범에 추가한다고 한다.

2. 개그 콘서트의 전 코너 중 하나

전체 명칭은 이리스[10]. KBS의 전 드라마 아이리스패러디했으며, 출연진은 윤호, 김지민, 선일, 김재욱, 이상민, 오나미, 이문재 등이다. 2012년 1월 1일 한번만 방영됐으며, 내용은 테러를 진압하기는 커녕 태러진압아이리스 소속 멤버들이 하나같이 비정상이라 삽질을 해대서 실패하는 이야기를 다룬 코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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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방'자 돌림이다. 이 '조방헌'으로 검색해도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 [2] 알다시피 본관의 한자가 趙(조나라 조)가 아니라 曺(무리 조)이다.
  • [3] 나중에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지만 이 과정은 최종학력 덮기용이나 인맥 쌓기용으로 활용되고 있으므로 학력으로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어려서는 영특한 편이었다고 하며, 못 배운 게 본인의 잘못은 아니므로 우습게 여길 일은 아니다.
  • [4] 예비역 준장이며 건설부 장관까지 지낸 한창 잘 나가던 인물
  • [5] '꽃가마'의 작사는 태진아의 형인 '조방수'씨가, '잘 살꺼야'의 작사는 아들인 이루가 했다. 가족끼리 다 해먹기
  • [6] 이 사람의 인생도 꽤나 파란만장 하다. 태진아와 비슷한 시기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동병상련?
  • [7] 하지만 미국으로 간 이유는 다르다. 송대관은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먹고살기 위해 이민을 택했다.
  • [8] 사명 YMC은 사장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에서 보이나, SM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다른 단어로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9] 애초에 인터넷에 올라온 패러디영상 자체가 이 후렴부분이 태진아의 창법과 비슷한 데 착안해서 엮은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 [10] 맞춤법상으로는 태러가 아니라 테러이지만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