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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오급 중순양함

last modified: 2015-03-20 13:45:35 Contributors

Contents

1. 제원
2. 개요
3. 개발
4. 장점
4.1. 8인치급 주포 10문의 탑재
4.2. 대공화력의 증강
4.3. 당시 기준으로는 두꺼운 장갑
4.4. 어뢰 탑재
4.5. 거주성 향상
5. 문제점
5.1. 주포의 과다탑재
5.2. 2연장 주포탑 사용
5.3. 역행배치의 3번 주포탑
5.4. 종이장갑 주포탑을 비롯한 방어상의 약점
5.5. 줄어든 항속거리
6. 함생
7. 기타
8. 관련 링크


1. 제원

타카오급 중순양함 1번함 타카오의 제원
구분취역시(1930년)대개장시(1939년)최종사양(1944년, 마야)
기준배수량11,350t13,400t15,159t
전장203.76m유지유지
전폭19m20.73m유지
흘수선6.11m6.32m유지
보일러로호함본식 중유보일러 12기개량(명칭은 동일)유지
추진기함본식 기어드 증기터빈 4조 4축개량(명칭은 동일)유지
출력130,000shp132,830shp유지
연료중유 2,645t중유 2,318t유지
속도35.5knot(65.746km/h)34.6knot(64.0972km/h)유지
항속거리14knot(25.928km/h)에서 8,000해리(14,816km)18knot(33.336km/h)에서 5,000해리(9,260km)유지
승무원727명835명996명
주포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2연장 주포탑 5기
(총 10문)
유지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대공포10년식 12cm 45구경장
단장 대공포좌 4기
(총 4문)
89식 12.7cm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4기
(총 8문)
89식 12.7cm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
대공기관포비커스식(毘式) 40mm 62구경장
단장 기관포좌 2기
(총 2문)
96식 25mm
2연장 기관포좌 4기
(총 8문)
96식 25mm
3연장 기관포좌 13기
(총 39문)
96식 25mm
단장 기관포좌 9기
(총 9문)
대공기관총7.7mm 루이스 기관총 2정93식 13mm
2연장 기관총좌 2기
(총 4문)
93식 13mm
단장 기관총좌 36기
(총 36문)
어뢰61cm 2연장 수상어뢰발사관 4기
(총 8문)
90식 어뢰 16개 탑재
61cm 4연장 수상어뢰발사관 4기
(총 16문)
93식 산소어뢰 24개 탑재
유지
장갑측면주장갑 102mm (탄약고 부위는 127mm)
갑판장갑 34mm - 46mm
2연장 주포탑 전면 25mm, 측면 25mm,
후면 25mm, 천장 25mm
주포탑 바벳 갑판돌출상부 38mm, 갑판하부 25mm
탄약고 측면 38mm - 76mm, 천장 47mm
유지유지
함재기수상기 3기, 캐터펄트 2기수상기 4기, 캐터펄트 2기수상기 2기, 캐터펄트 2기
레이더없음없음2호 1형 1기
2호 2형 2기
1호 3형 1기

2. 개요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일본군 해군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따라서 건조한 10,000톤급 중순양함으로, 묘코급 중순양함을 개량 및 발전시킨 함선이다. 일본군의 서류상 가장 마지막으로 건조한 중순양함 (1등 순양함)이며, 이후의 중순양함인 모가미급 중순양함토네급 중순양함은 서류상에서는 경순양함 (2등 순양함)이다. 이는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헛점을 노려서 경순양함 쿼터로 중순양함을 만들기 위한 꼼수를 썼기 때문이다.

설계를 주로 담당할 인물은 원래 히라가 유즈루(平賀譲) 조선관(造船官)으로 결정했으나, 후술하는 사유로 인해 후지모토 키쿠오(藤本喜久雄)가 설계했다. 총 4척을 건조했으며, 타카오(高雄), 아타고(愛宕), 마야(摩耶), 초카이(鳥海)라는 이름을 붙인다.

3. 개발

원래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묘코급 중순양함의 개량형으로 1927년도 함정보충계획(昭和2年度艦艇補充計画)에 따라 건조할 계획이었으며, 설계를 담당할 사람도 히라가 유즈루였다.

그러나 히라가 유즈루는 함선을 설계할 때마다 일본군 해군의 군령부와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으며,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는 재주도 있어서 군령부 입장에서는 정말로 말을 안들어먹는 설계자였다. 그래서 묘코급 중순양함의 설계시 상관인 야마모토 카이조가 히라가 유즈루를 계획주임에서 해임한 후 선진국의 기술능력 습득등의 이유로 인해 잠시동안 유럽시찰을 나가게 하는 방식을 써서 히라가 유즈루를 일본에서 잠시 떠나게 한 후, 묘코급 중순양함의 설계를 후지모토 키쿠오에게 담당하게 하여 어뢰발사관을 추가하는 등 설계를 대폭 변경한 것이다. 이 때 후지모토 키쿠오는 기존 설계에서 화력, 방어력,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거주성이 바닥으로 떨어졌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어뢰발사관을 추가했으므로 군령부의 신임을 받았으며, 이런 이유로 인해 후지모토 키쿠오가 타카오급 중순양함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후지모토 키쿠오에게 주어진 목표는 묘코급 중순양함의 공격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거주성을 개선하고, 함대의 기함으로서의 지휘능력을 보유한 중순양함을 설계하는 것이었으며, 몇 가지 무리수가 들어갔지만 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4. 장점

4.1. 8인치급 주포 10문의 탑재

묘코급 중순양함의 화력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므로 2연장 포탑을 써서 8인치급 주포를 10문 탑재했다. 그래서 여전히 주포문수로는 중순양함중 1급을 달리게 된다.

주포는 건조시부터 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2연장 함포를 사용한다.### 주포의 구경은 203mm로 정확하게 8인치를 맞추었다. 주포의 성능은 125.85kg의 철갑탄을 포구초속 840m/s로 발사하며, E형 포탑을 사용하기 때문에 앙각을 70도까지 잡을 수 있지만 마야는 E1형 포탑을 사용하므로 앙각이 55도로 제한되므로 대공사격에는 불리점이 있다. 해당 주포는 45도의 각도에서 29,400m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으며, 관통력은 10,000m에서 측면장갑 190mm를 관통하며, 29,400m의 거리에서 측면장갑 74mm를 뚫는다.

주포탑은 2연장으로 E형 포탑을 사용한다. 해당 포탑은 -5도에서 +70도까지 포신을 1초당 12도의 속도로 상하조절할 수 있으며 포탑 선회속도는 초당 4도다. 장전은 +5도에서 포신을 고정하고 장전하며 발사속도는 분당 3발 정도지만 숙련된 승조원이 조작할 경우에는 단시간에 한해서 분당 5발을 발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공용 포탄을 위해서 전용 양탄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포탑 내부에 탑재한 포탄양은 120 ~ 126발이며 포신 수명은 320 ~ 400발 정도다. 포탑의 중량은 1기당 160톤이다.

마야가 채택한 E1형 포탑은 기존의 E형과 대부분 비슷하지만, 앙각이 -5도에서 +55도로 낮아지고, 발사속도도 분당 3발로 약간 줄어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고고도의 표적을 목표로 한 대공사격면에서 기존의 E형 포탑은 재장전시마다 포신을 +5도로 내려야 하므로 발사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등 썩 좋은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며, 실전에서는 중순양함의 주포가 대공사격을 할 때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 수면 가까이로 낮게 비행하는 뇌격기를 격추하려고 포신의 각도를 낮춰서 사격하는 경우가 많아서 +55도 이상의 고각이 사실상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신의 부앙시 E형 포탑에서 채용한 방식인 랙 피니언 방식이 구조의 특성에 의한 흔들거림이 많아서 명중 정밀도에 악영향이 있으므로 E1형 포탑에서는 유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이 포탑들은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포탑이지만, 배치된 위치로 인해 함수방향을 기준으로 할 경우 1,2번 포탑은 좌우로 150도까지 선회가 가능하며, 역행배치된 3번 포탑은 좌우로 160도까지 선회가 가능하지만 함미방향을 기준으로 좌우로 0도에서 20도 위치에서는 발사버튼을 눌러도 함포가 발사하지 않는 사각(死角)이다. 그 이유는 해당 각도에서 포탄을 발사할 경우 함교같은 선체구조물에 포탄이 명중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본의아닌 자폭을 막기 위해서다.

4.2. 대공화력의 증강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묘코급 중순양함처럼 건조 당시부터 10년식 12cm 45구경장 대공포좌를 탑재한다. 건조 당시에는 4문을 탑재했지만 근대화 개장 당시 89식 12.7cm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 4기로 교체해서 대공화력을 강화한다.

대공기관총의 경우에는 건조 당시에는 폼폼 포의 조상인 비커스식(毘式) 40mm 62구경장 단장 기관포좌를 2기 탑재했지만, 근대화 개장시 96식 25mm 2연장 기관포좌 4기와 93식 13mm 2연장 기관총좌 2기로 늘어난다.

태평양 전쟁 기간중에는 각각의 함선마다 대공화기를 기회가 생길때마다 증설했기에 동형함마다 대공화기의 종류와 수량이 달라진다. 이중 마야(摩耶)는 1943년 11월 5일에 손상을 수리하면서 동시에 대공화기의 증설을 통해 비공식적이지만 대공방어함이 될 수준으로 대공무장을 강화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번 주포탑을 제거하고 기존 대공포를 철거하면서 89식 12.7cm 40구경장 대공포좌 6기로 (총 12문) 교체하여 대공포를 증강했다. 대공기관포의 경우에도 96식 25mm 3연장 대공포좌 13기, (총 39문)과 96식 25mm 단장 대공포좌 9기 (총 9문)을 장착했으며, 대공기관총도 93식 13mm 단장 기관총좌 36기 (총 36문)를 보유했다. 여기에 더해서 레이더도 2호 1형 1기, 2호 2형 2기, 1호 3형 1기를 달았다. 또한 주포문수 축소에 따른 화력감소를 막기 위해 어뢰무장을 기존의 61cm 2연장 어뢰발사관 4기 (총 8문)을 61cm 4연장 어뢰발사관 4기 (총 16문)과 93식 산소어뢰를 24개 탑재해서 어뢰발사관의 수와 탑재어뢰수량을 더 늘여서 메꿨다.
이에 따라 배수량이 15,159톤으로 늘어나자 벌지를 추가해서 함체 복원력을 이전 수준으로 맞추었다. 또한 대공화력의 증설을 기회가 날 때마다 지속해서 침몰 직전에는 편성은 불명확하지만 25mm 기관포를 총 66문을 갖추었으며, 대공화기를 다룰 인원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승조원도 1,000명을 넘기게 된다.

물론 대공화기로 떡칠하고 제대로 된 레이더와 레이더 연동식 사격관제장치를 장비한 미국의 중순양함을 생각해본다면 타카오급 중순양함의 대공무장은 전쟁시기의 기준으로는 강화했으나 아직 부족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건조 당시부터 대공화력을 생각하고 도입했으며 지속적으로 증강한 점은 인정할만 하다.

4.3. 당시 기준으로는 두꺼운 장갑

공격력뿐 아니라 방어력 측면에서도 준비를 했다. 측면장갑은 묘코급 중순양함처럼 102mm 두께의 장갑을 12도 각도로 경사장갑형태로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으며, 탄악고 부위의 측면장갑은 127mm로 강화했다. 타카오급 중순양함이 등장하던 시기의 열강의 동급 중순양함들의 측면장갑은 주석깡통함으로 유명한 영국의 25mm, 프랑스의 30mm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장갑을 중시했던 미국의 64mm나 군축조약 위반을 각오하고 몰래 방어력 강화를 한 이탈리아의 70mm와 비교해도 두꺼운 장갑이었다. 물론 이후에 등장한 열강의 중순양함들은 방어력도 강화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나름대로 장갑이 두꺼웠다는 이야기다.

수중방어 측면에서도 수선하부의 장갑을 안쪽으로 구부리는 방법을 써서 함저까지 연결했으며, 기관부는 2중격벽을 채용함과 동시에 수밀 격벽용으로 58mm 두께의 장갑판을 추가하는 등 배수량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방어력을 증대했다. 그러나 원래 설계상으로도 현측장갑 주요부의 높이가 기관부는 수면에서 3.5m, 탄약고는 2m의 높이를 유지해야 하는데, 중량 증대에 의한 흘수의 증가로 인해 준공 후 시험항해시에 흘수가 1.3m 올라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장갑이 두꺼운 부분이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는 의미인데, 어뢰방어같은 수중방어에는 좋게 작용하지만, 포격전시의 방어력은 하락하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4.4. 어뢰 탑재

비록 개발시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일본이 생각하는 수뢰전에 참가하는 함선들은 어뢰발사능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고, 나중에는 산소어뢰를 탑재함에 따라서 공격력면에서는 어뢰의 유효사정거리까지 근접할 경우 중순양함이 더 큰 순양전함이나 전함을 이론상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그리고 묘코급 중순양함은 설계 중간의 변경으로 인해 현측 상부구조물 중앙에 어뢰발사관을 매립하는 바람에 피탄등으로 유폭이 발생할 경우 함체에 큰 타격을 입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선회식 어뢰발사관을 약간 함체 후방으로 이동한 후 상갑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어뢰무장은 건조 당시에는 61cm 2연장 수상어뢰발사관 4기 (총 8문)과 90식 어뢰 16개를 탑재했는데 묘코급 중순양함의 어뢰편현동시발사능력 6발에서 2발이 줄어든 편현 4발만 발사가 가능했으나, 차탄장전장치를 갖추었으므로 실질적인 어뢰발사능력은 오히려 늘었다. 또한 예비용 어뢰를 보관하는 곳에 장갑판을 붙였다. 이후 타카오와 아타고는 1939년의 개장공사에서 61cm 4연장 어뢰발사관 4기 (총 16문)과 93식 산소어뢰를 24개 탑재해서 어뢰발사관의 수와 탑재어뢰수량을 더 늘였으며, 마야는 1944년에 동일한 개조를 했지만 초카이는 끝까지 어뢰분야는 개조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존의 어뢰무장만으로도 묘코급 중순양함 이상이라서 어뢰공격력에 문제는 없었다.

4.5. 거주성 향상

묘코급 중순양함이 무장 탑재와 어뢰발사관 추가등으로 인해 거주성이 최악으로 떨어진 것을 반영해서 함교를 대형화하고 상부구조물을 확대해서 거주공간을 늘리고 동시에 함대 지휘를 할 때 불편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했다. 물론 일본군의 순양함들이 전반적으로 거주성이 최악이었기 때문에 타카오급 중순양함도 여기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었으나, 적어도 묘코급 중순양함보다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으므로 거주성이 향상된 것은 맞다.

5. 문제점

5.1. 주포의 과다탑재

8인치급 주포 10문의 탑재 자체는 화력면에서는 좋으나, 그걸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규정하는 순양함 기준배수량 한계인 10,000톤 안에서 해결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수를 수반한다. 무장의 과다탑재로 인해 흘수선이 올라가는 과적상태가 발생하고, 후술하는 방어력 하락이나 거주성 악화의 상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탑재한 주포가 다른 열강들의 동급 주포를 능가하거나 동등하지 않고 약간 열세하다는 것도 문제로 작용한다. 이래서는 무리수를 둬서 10문을 탑재해봤자 상대방의 8-9문의 주포와 대등한 싸움을 하는 어이없는 사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구식 중순양함의 주포를 봐도 8인치 55구경장 Mark 9인데 ### 118kg의 중량을 가지는 철갑탄을 포구초속 853m/s로 최대앙각 41도에서 29,131m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으며, 관통력도 11,340m에서 현측장갑 203mm를 관통하고 27,070m에서 현측장갑 76mm를 관통한다. 발사속도도 분당 3-4발이며 포탄탑재량도 150발이고 포신수명도 715발이므로 근소한 차이로 일본의 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주포를 능가한다.

게다가 미국의 신형 중순양함의 주포인 8인치 55구경장 Mark 12부터는 ### 포신수명과 포탄탑재량을 그대로 유지한 채 152kg의 중량을 자랑하는 8인치 초중량탄인 Mark 21을 포구초속 762m/s로 최대앙각 41도에서 27,480m까지 날릴 수 있으며, 관통력도 9,880m에서 현측장갑 254mm를 관통하고, 26,150m에서 현측장갑 102mm를 관통하는데다가 갑판장갑 타격력도 25,240m에서 갑판장갑 102mm를 뚫어버리므로 이미 위력면에서 일본의 8인치 주포를 능가한다. 설상가상으로 1943년에 설계가 완료된 후 디모인급 중순양함에 사용한 주포인 8인치 55구경장 Mark 16의 경우에는 ### Mark 12의 함포 위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발사속도를 8인치 속사포 소리를 들을 수준인 분당 10발로 늘리고, 포신수명을 780발로 늘리면서 포탄탑재량을 150발로 유지했으므로 일본의 동급 주포와의 격차를 압도적으로 늘렸다.

추축국 함선들만 놓고 봐도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에 사용한 SK C/34 20.3cm 60구경장 함포가 있다. ### 60구경장이라는 포신은 미국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55구경장과 일본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구경장인 50구경장을 훨씬 뛰어넘는 장(長)포신이다. 그래서 장포신에 걸맞게 포구초속 925m/s의 속도로 122kg이라는 중량급 포탄을 +37°에서 33,500m까지 날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다. 사정거리만 따지자면 2차대전 시기의 최신예 전함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의 주포 사정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포탄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다. 관통력의 경우에도 9,500m에서 240mm의 현측장갑이나 50mm의 갑판장갑을 관통해버리므로 일본만 초라해진다.

그리고 3년식 2호 20cm 50구경장 주포의 경우에는 교체후 사격시 8인치 포탄의 살포계가 너무 넓어졌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건 2기 이상의 인접한 대포를 동시에 사격할 경우 날아가는 포탄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조준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멋대로 흩어진다는 현상 때문이다. 이 문제는 98식 지연발포장치의 도입으로 포신중 하나를 0.3초 정도 지연발사하는 능력을 추가하면서 해결했지만, 이미 러일전쟁에서 전함의 2연장 주포탑을 운용해본 일본 해군이 더 큰 대포도 아니고 보조함의 소형 주포에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지연발포장치의 효과도 100% 문제점을 해결한 것은 아니라서 기존에 장착했던 주포와 비교해본다면 8인치 포탄의 살포계가 아직 넓었다.

5.2. 2연장 주포탑 사용

함포의 성능이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문제인데, 2연장 주포탑을 사용하는 바람에 주포탑을 5기나 배치해야 하므로 장갑판으로 방어할 면적이 늘어나고 함내 공간을 많이 차지하며, 배수량도 증가하는 삼중고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2연장 주포탑을 고집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원래 일본은 주포탑의 장갑에 사용될 배수량을 덜어내서 선체의 장갑에 덧붙이는 식으로 조약에서 할당된 배수량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조약형 중순양함들은 동시의 타국의 순양함보다 상대적으로 두꺼운 선체 장갑을 보유하지만 반대급부로 주포탑 장갑이 종잇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름대로 공수면에서 밸런스를 맞춰보려고 했던 셈으로 선체의 강화을 위해 주포탑을 희생한 것이다. 덕분에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포탑이 종이장갑급 장갑만 보유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종잇장 장갑이 된 주포탑은 파괴되기가 매우 쉬웠고, 이렇게 파괴되기 쉬운 주포탑을 3연장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3연장 주포탑 하나가 파괴되면 주포 3문이 동시에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해군의 포격 방식은 일제소사가 아닌 교차사격을 애용했다. 함포 사격시 2연장 주포탑의 포신중 하나만을 발사한 뒤, 그 사격의 결과를 반영해서 곧바로 나머지 포신이 발사. 그리고 재장전을 마친 다른 한쪽의 포신이 재발사. 이런식으로 사격간의 간격을 줄이고 명중률을 높히는 방식이다. 해당 방식에서는 주포탑 하나에 포신이 3개 달려있다고해서 그 포신 3개를 일제히 동시에 발사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화력면에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 내내 포격전에서 치고받는 단순한 화력 싸움만을 생각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있어 최대한의 타협점은 어디까지나 2연장 포탑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2연장 포탑을 채용한 이유는 8인치 3연장포의 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일본은 8인치 3연장포의 개발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정답이다. 일본군 해군 함선의 대표적인 3연장 포탑으로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15.5cm 3연장 주포와 야마토급 전함의 46cm 3연장 주포가 있긴하지만, 사실 이것들도 전자는 조약하의 배수량 한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포신을 달기 위해 나온 결과물이고, 후자는 단순히 경량화가 목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연장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셈이다.

이러한 일본군의 생각은 군축조약이 붕괴되면서 바로 한계점을 맞이하게 되지만 일본군은 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이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조약의 붕괴로 배수량의 제한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함선들을 제대로 고치지 않고 조약시의 한계점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한 새로운 함선을 건조하지도 않고 토네급 중순양함처럼 아직 건조중이라 수정이 가능한 함선들도 조약시의 한계점을 그대로 끌고 갔다.

덕분에 미국 해군만 유리해졌다. 원래 미국 해군의 중순양함은 조약이 파기되기 전부터 주포탑 장갑에도 신경을 쓴 데다가 조약이 깨진 이후에 등장한 15,000톤급의 볼티모어급 중순양함부터는 주포탑도 튼튼하고 선체장갑도 일본군 중순양함을 능가하는 상황이었으며 조약형 순양함의 문제점을 해결한 함선들을 막 찍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해군은 왜 타국에서는 주포의 다연장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는지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

  • 주포탑에 포탄이 명중해서 주포탑 파손이 일어날 경우에는 함포가 망가져서 사용가능한 함포문수가 줄어든다는 생각만 했지 주포탑 유폭으로 함선이 개박살나는 것은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원래 군함의 주포탑은 포탄 및 장약을 항상 적재하고 있으며, 주포탄이므로 1발당 내부의 작약양도 많고, 발사용 장약의 양도 많다. 이 때문에 주포탑이 단 1기만 유폭하더라도 피해가 엄청나므로 대응방어를 완전히 포기한 상황이 아니라면 주포탑과 주포탑 바벳같은 곳은 측면장갑 수준이나 그 이상의 장갑을 붙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포탑의 방어를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적에게 공격받을 때 위험부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쓸데없이 주포탑을 늘리는 것은 부적당하다. 1기만 터져도 치명상을 입는 물건이 숫자가 많아지고 함체 곳곳에 널리 퍼진 상태라면 피격시 주포탑이 명중당할 확률도 늘어나고, 주포탑이 터질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건 주포탑 방어를 제대로 하는 경우에도 적용되는데다가, 주포탑 방어를 위한 장갑을 붙이는 데 많은 배수량이 필요하므로 1발의 피격이 너무 많은 주포를 못 쓰게 만드는 단점을 감안해서 주포탑 숫자를 3-4기로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덕분에 측면장갑을 강화해서 얻는 방어력 상승을 주포탑 장갑 약화 및 수량 증대에 따른 유폭 위험증대로 상쇄해버리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것이다.

  • 다연장화시 포탑 숫자당 주포를 더 많이 탑재하므로 한정된 공간에서 주포를 더 많이 탑재한다는 점을 무시했다. 3연장 주포탑으로 주포를 배치하면 3기의 주포탑만 사용해도 주포문수가 9문으로 기존보다 1문이 줄어들긴 하지만 전투력 면에서는 별 문제가 없으며, 조금 무리수를 둬서 3연장 주포탑 4기를 설치한다면 주포문수가 12문으로 증가하므로 주포문수에서 타국의 중순양함을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인데, 2연장 주포탑만 사용이 가능하므로 그런 꿈은 물건너갔다.

  • 다연장화시 중량 및 공간 경감 및 방어력 증대를 무시했다. 3연장 주포탑은 엄청나게 설계를 잘못하지 않는 한 2연장 주포탑 2기보다 가볍고 공간을 덜 차지한다. 그래서 주포의 문수가 늘어날수록 배수량 대비 효율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동일한 배수량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3연장 주포탑은 2연장 주포탑보다 장갑을 두껍게 하고 부수장비도 충실하게 설치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의 문수에 비해 주포탑의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방어를 해야 할 면적도 줄어들게 되므로 함 전체의 방어력 증강에도 도움을 준다.

  • 너무 많은 주포탑은 배치에 애를 먹는다는 점을 무시했다. 주포탑 5기부터는 주포탑을 배치할 때 적어도 1기 이상의 주포탑이 다른 주포탑이나 상부 구조물등의 방해를 받아서 사계가 제한되고 사격에 방해를 받는 등 비효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데, 3연장 주포탑은 보통 3-4기만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다.

5.3. 역행배치의 3번 주포탑

주포탑을 5기 배치하더라도 앞서 설명했던 모가미급 중순양함처럼 주포탑을 배치하면 2번 주포탑이 1번 주포탑 때문에 함수 방향으로 저각도 사격을 하지 못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사격각도의 방해를 받지 않는 등 나름대로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묘코급 중순양함을 따라서 일본군 중순양함의 기본적 주포배치인 3번 주포탑 역행배치를 한다. 그리고 이건 최악의 수였다.

  • 3번 주포탑은 역행배치를 한데다가 포구 앞에 함교등 중요한 함선시설이 밀집해있다. 따라서 실수로라도 발포가 이루어질 경우 자신의 주포로 자신을 쏴서 치명상을 입는 자폭이 발생한다. 덕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서 설명한 특정 각도로 포구가 진입하면 발사버튼을 눌러도 발포하지 않는 장치를 특별하게 제조해서 달아야 했다.

  • 3번 주포탑의 사계는 기본적으로는 좌우 160도에 이르지만, 실제로는 앞서 설명한 자폭을 막기 위해 함미방향 기준으로 좌우 20도는 사격이 금지되므로 사실상 사격각도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좌측 140도, 우측 140도이며 그나마 함수방향에 있는 2번 주포탑 때문에 함수방향 사격은 불가능하므로 사실상 양 측면으로만 쏘는 포탑으로 전락한다.

  • 함수 방향으로 적이 나타났고, 양 함선이 서로 마주보는 일반적인 조우전에서는 3번 주포탑은 포격전에 참가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적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의 중순양함은 3연장 주포탑 2기를 함수방향에 장착하기 때문에 함수 방향으로 6문의 주포를 사용할 수 있는 반면,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함수에 달아놓은 주포는 6문으로 동일하지만 3번 주포탑이 함수 방향으로 사격할 수 없기에 함수 방향으로는 4문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엽기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
    물론 이 문제는 함수를 약간 돌려서 3번 주포탑의 사격각도에 적 함선을 집어넣으면 해결가능하겠지만, 그러려면 적이 계속 타카오급 중순양함과 함수를 서로 마주보도록 항로를 변경해서 계속 화력의 우위를 유지하는 등의 아무런 대응 없이 일본의 행동을 묵인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는데다가, 적 함선도 함수를 약간 돌리면 함미쪽 주포탑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그 다음부터는 서로 100% 화력을 동원하는 정면승부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일본의 입장에서는 함선의 숫자가 미국보다 부족하므로 이런 식으로 서로 난타전을 벌이지 말고 빨리 속전속결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므로 전략전술적으로 불리점을 가지게 된다.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패망하는 그 순간까지 해당 포탑배치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고 자화자찬하면서 3번 주포탑의 역행배치를 지속했다. 덕분에 모가미급 중순양함에서 함포 배치를 바꿀 때까지 3번 주포탑의 역행배치는 지속되었으며, 정찰용 수상기 운용을 위해 함수에 주포를 밀집한 토네급 중순양함은 3번 및 4번 주포탑을 역행배치하는 개악을 하게 된다. 결국 이 문제는 마야를 수리하면서 대공무장을 증설하기 위해 3번 주포탑을 일본군 스스로 제거하면서 그제서야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5.4. 종이장갑 주포탑을 비롯한 방어상의 약점

상기되었듯 측면장갑을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두껍게 가져가는 등 방어력에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배수량에서 주포를 10문이나 배치하고 2연장 주포탑을 5기나 장착하는 바람에 주포탑의 장갑은 그야말로 종이장갑 수준이었다.

일단 주포탑 자체는 전면,측면,후면,상면을 가리지 않고 고작 25mm의 장갑이라서 깡통전차로 유명한 치하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주포탑 바벳의 경우에도 갑판위로 돌출한 부분만 38mm이므로 오히려 묘코급 중순양함보다 약해졌으며, 갑판 아래에 있는 부분은 25mm로 역시 치하와 동일하다. 따라서 이런 장갑으로는 적 중순양함의 주포탄을 막는 것은 절대 무리이며, 이 점은 일본도 해당 장갑이 포탄 파편을 막는 수준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동급 중순양함의 주포탄을 못 막는 것도 문제인데 여기에 더해서 경순양함이나 구축함이 쏘는 포탄에도 주포탑이 관통당한다. 경순양함의 경우에는 굳이 미국 경순양함의 6인치 주포를 따지지 않더라도 일본군 해군의 3년식 15.5cm 60구경장 3연장 함포가 20,000m에서 현측장갑 100mm를 관통하는 것만 생각해봐도 이미 게임이 끝난다.###

그리고 미국의 구축함이 사용하는 5인치 함포를 생각해보자. 해당 5인치 함포는 양용포인데다가 대공능력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했으므로 38구경장이라는 중(中)포신을 가지기 때문에 대수상능력은 일본 구축함의 5인치 함포보다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인치 양용포의 포탄은 10,060m에서 현측장갑 51mm를 관통하고, 12,620m에서 갑판장갑 25mm를 관통하기 때문에 ### 미국 구축함이 근접하지 않고 중거리 이상에서 발포하더라도 충분히 타카오급 중순양함의 주포탑을 박살낼 수 있다.

더 참담한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 함재기가 발사하는 M2 중기관총에게 주포탑이 관통당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M2 중기관총은 경전차장갑차같이 장갑을 가진 물건을 상대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용했으며 대량보급된 50구경 철갑탄M2 철갑탄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탄환을 사용할 경우 500m에서 19mm를 관통하고 1,200m에서 10mm를 관통한다. 따라서 함재기같이 고속으로 비행하는 물건이 타카오급 중순양함에 근접해서 기총소사를 할 경우에는 원래 탄환의 관통력 + 함재기의 속도가 합쳐지는 바람에 지상에 거치해놓고 쏘는 중기관총보다 관통력이 더 높아지므로 25mm 정도의 장갑은 관통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당장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라도 목적상 대응방어를 무시하는 구축함도 미국 구축함은 앞서 언급한 5인치 양용포탑의 장갑을 전,측,후,상면 모두 50mm를 확보해서 중기관총이나 대공용 기관포에 관통당하지 않게 한다.

덕분에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정상적인 중순양함의 경우라면 다 튕겨내고 끝날 소구경 함포나 대공용 기관포에게 주포탑을 관통당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포격능력을 상실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주포탑 관통은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포탑 내부의 탄약을 유폭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재수가 없다면 사소한 피탄으로 주포탑 유폭이 발생해서 격침당하는 망신살을 겪게 된다. 이런 설계는 대응방어를 중시하는 기존의 설계개념은 물론, 그 뒤에 나온 함선의 방어력은 해당 함선의 전투력을 유지가능할 수준까지 확보한다라는 법칙에도 위배된다. 중순양함쯤 되는 물건은 적어도 동급 중순양함의 주포탄을 몇 발 맞아도 전투력을 어느 정도 수준은 유지가능해야 하는데, 구축함 함포나 대공용 기관포같은 것에 맞고 순식간에 전투력을 상실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앞서 설명한 주포탑 과다적재 + 2연장 주포탑만 사용가능 + 한정된 배수량이 안좋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주포탑을 강화하고 싶어도 충분한 장갑을 붙이면 배수량 폭증은 물론이거니와 중량물이 너무 수면 위로 올라와서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전복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일본이 일부러 인식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3년식 15.5cm 3연장 주포탑도 역시 25mm였고, 군축조약이 붕괴된 시점에서도 토네급 중순양함까지 주포탑은 25mm였으며, 심지어 태평양 전쟁중에 등장하기 시작한 아가노급 경순양함도 주포탑 장갑이 25mm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급의 8인치 포탄이라면 비록 100mm 이상의 장갑이라도 유효사정거리인 20km 내에서 관통당한다는 이유였는데, 한마디로 오로지 동급함종간의 전투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비행기가 날아오거나 구축함 같은 소형 함선이 포격을 하는 등의 문제는 전혀 신경쓰지 않던 셈이었다. 덕분에 주포탑의 종이장갑 문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어뢰발사관의 경우에도 묘코급 중순양함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위험천만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현측에 노출된 어뢰발사관은 유폭시 함체에 미치는 파괴력은 줄어들지만 반대급부로 재수없으면 기관총탄에도 관통당해서 유폭당할 수 있기 때문에 폭발가능성은 오히려 늘어난다. 설상가상으로 완전노출식도 아니라 일부 노출식이라서 유폭시 파괴력이 공기중으로 바로 분산하지 못하고 선체를 대규모로 타격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지도 못했다. 그리고 어뢰저장량의 증대 및 산소어뢰의 사용으로 인해 어뢰저장고는 말 그대로 피탄시 대규모 폭발을 부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게다가 어뢰저장고에 장갑판을 둘러쳤다고 하지만 그 장갑이란 것이 함선의 기준에서는 장갑이라고 부르지도 않는 최대 12.7mm급 장갑판이라서 역시 기관총탄에도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어뢰발사관이건 어뢰저장고건 다 갑판장갑 위에 위치하므로 함체장갑의 보호를 못받는다. 이런 문제는 어뢰발사관과 어뢰저장고에 장갑을 충분하게 주면 해결가능하지만, 주포탑도 종이장갑을 유지하는 판국에 어뢰발사관에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

함재기 관련 시설의 경우에도 위치가 제3연돌과 후방 주포탑 사이라서 문제가 있었다. 해당 공간에 처음에는 캐터펄트 2기와 수상기 3기, 나중의 개수에서는 캐터펄트 2기와 수상기 4기를 설치한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후방 주포탑 중 4번 주포탑과 너무 인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기에 더해서 격납고가 없기 때문에 모든 함재기를 다 노천계류해야 하므로 손상에 더 취약하다. 실제로 타카오가 미국 구축함을 포격할 때 노천에 계류해놓은 수상기들을 4번 주포탑의 사격시 후폭풍으로 박살냈다. 이렇게 될 경우 수상기를 날려먹는 것도 문제지만,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인접한 함재기용 물품창고에 항공기용 연료와 함재기 탑재용 소형 폭탄이 적재된 상태이므로 재수없으면 유폭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했다.

거주성 및 함대 지휘를 위해 함교를 대형화했는데 적정선 이상으로 커졌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작용했다. 이는 방어력 증강을 위해 방어구획을 단축하면서 함교를 연로(煙路) 위에 올려놓은 탓이 크다. 그래서 함체 복원성에 문제가 발생했고, 4함대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함교를 포함한 상부구조물을 축소하는 공사를 실시해서 무게중심을 약간 아래로 낮추었지만 그렇게 해도 복원성이 다른 중순양함보다는 안좋았다.

함체 내부에서도 문제점이 있었다. 기관부 중앙 세로 격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격벽은 함체 자체의 강도 강화 및 포격전시 주포 포격에 따른 흔들림 및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넣은 것이지만, 한쪽 측면만 침수가 발생하게 되면 무게 균형을 깨뜨리고 심하면 배를 전복시킬 위험성이 높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격벽중 일부를 철거하는 선으로 잠정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이며, 이후의 일본군 순양함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덕분에 일본군의 순양함들은 한쪽 측면에 침수가 시작되면 즉시 반대편에 역침수를 가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당장 토네급 중순양함인 치쿠마가 지근탄에 의해 침수가 시작되었을 때 침수량을 900톤으로 제어하며 신속한 조치로 침몰을 막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침수로도 14,000여톤의 함선이 일시적으로 경사각이 30도에 달하는 바람에 전복의 위험성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타카오급 중순양함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는데, 레이테 만 해전에서 동형함중 3척 (타카오, 아타고, 마야)가 미국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아서 아타고와 마야는 그 자리에서 침몰했으며 타카오도 대파당해서 간신히 귀환한 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부유포대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침몰속도가 매우 빠르고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속도도 너무 빨라서 승조원들이 함체 균형회복은 커녕 탈출할 시간도 부족하게 만드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

5.5. 줄어든 항속거리

속도 면에서는 매우 양호한 편으로, 배수량의 증가로 느려진 시점에서도 중순양함 속도의 기본은 맞추었다.

하지만 항속거리는 많이 짧아졌다. 원래는 14knot로 8,000해리를 항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런 항속거리는 당시 일본군 해군의 기준에는 적합했다. 그러나 이후에 개장공사를 하면서 동력기관을 좀 더 발전된 물건으로 교체하면서 출력을 약간 늘리고 효율성을 높였지만, 연료탑재량을 기존의 중유 2,645톤에서 2,318톤으로 줄여버리면서 항속거리는 18노트로 5,000해리를 달성하는 바람에 순항속도는 늘어났지만 항속거리가 크게 감소했다. 주 전장인 태평양에서는 빠른 순항속도도 중요하지만 항속거리도 엄청나게 필요한데, 연료탑재량을 줄여서 일본군의 기준에서도 항속거리를 짧게 만드는 모순적인 행위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6. 함생

자세한 정보는 타카오, 아타고, 마야, 초카이 참조.

건조 후 1939년에 대규모 개장을 했지만 태평양 전쟁 기준으로는 구식함에 속했다. 그나마 개장공사는 전쟁이 임박해서 더 이상 대규모 개장공사가 어렵다는 판단하에 타카오와 아타고에 국한되었으며, 마야는 실전 투입 후 1943년에 손상을 수리하면서 대공화기를 크게 증설했으나 초카이는 끝까지 제대로 된 개장을 받지 못했다.

타카오는 1944년 10월 23일에 레이테 만 해전의 초전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잠수함 다터 (USS Darter, SS-227)의 어뢰 2발을 맞고 대파당했다. 간신히 침몰을 막고 추적해오는 다터를 피해서 브루나이로 이동했다가 싱가포르에 도착한다. 이후 수리가 이루어졌지만 싱가포르를 방어할 필요성 및 이동능력 복구가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결국 함미를 절단하고 응급방수조치를 시행하여 이동능력을 상실하고 대공포대 신세가 되었다. 이후 1945년 7월 31일에 영국 특수잠수정 XE3의 잠입 및 잠수부를 통한 기뢰 부착공격으로 인해 함체에 손상을 입었으나 결국 싱가포르에 정박한 채 전후까지 살아남았다. 전후인 1946년 10월 29일에 로열 네이비는 말라카 해협에서 타카오를 표적함으로 삼아서 침몰시켜 버렸다. 이때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도 사이좋게 침몰했다.

아타고는 1944년 10월 23일에 레이테 만 해전의 초전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잠수함 다터 (USS Darter, SS-227)의 어뢰 4발을 맞고 격침당했다. 이 때 좌승한 함대 사령관인 구리타가 물에 빠질 뻔 했고 기관장 이하 360명이 전사했으며 생존자는 야마토로 옮겨탔다.

마야는 1944년 10월 23일에 레이테 만 해전의 초전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잠수함 데이스 (USS Dace, SS-247)의 어뢰공격을 4발 받고 침몰했다. 이 때 함장 이하 336명이 전사했고, 전사자 중에는 도고 헤이하치로의 손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생존자들이 옮겨 탄 전함 무사시도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공습을 집중적으로 받고 격침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마야의 생존자들도 전투에 참여하는 바람에 부장과 군의관(軍醫官)을 포함해서 117명이 추가로 전사했으며 장교 4명과 병사 41명은 무사시의 응급복구작업을 위해 무사시에 남았다가 침몰하는 배와 같이 물에 빠져죽었다. 무사시에 접근한 시마카제로 607명이 옮겨탔지만 이중 5명은 역시 날아온 공습에 대항해서 싸우다가 전사해서 총 470명이 전사했다.

초카이는 1944년 10월 25일에 레이테 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에서 소구경 포탄에 의해 탑재한 어뢰가 유폭해서 전열을 이탈한 후, 항공모함 함재기의 공격으로 기관실 전방에 500파운드 폭탄을 맞고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면서 대파에 이동불가상태가 된다. 이후 일본군 구축함의 어뢰로 뇌격처분되었고 생존자는 구축함으로 옮겨탔으나, 해당 구축함도 전장을 빠져나가다가 역시 미국 항공기의 공습으로 격침되는 바람에 생존자가 1명도 없었다.

7. 기타

함대 컬렉션에 자매함까지 총 4척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