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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론 우즈

last modified: 2015-04-11 17:29:11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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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타이론 윌리엄 우즈
(Tyrone William Woods)
생년월일 1969년 8월 19일
출신지 미국 플로리다 주 브룩스빌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1988~1994)
볼티모어 오리올스(1995)
보스턴 레드삭스(1996)
OB 베어스/두산 베어스(1998~200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2003~2004)
주니치 드래곤즈(2005~2008)

1998년 한국프로야구 MVP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타이론 우즈(OB 베어스)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2001년 한국시리즈 MVP
톰 퀸란(현대 유니콘스) 타이론 우즈(두산 베어스) 마해영(삼성 라이온즈)
1998년 한국프로야구 홈런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타이론 우즈(OB 베어스)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2001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송지만(한화 이글스) 타이론 우즈(두산 베어스)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댄 로마이어(한화 이글스) 타이론 우즈(두산 베어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등번호 33번 (1998~2002)
김광현(1996~1997) 타이론 우즈 (1998~2002) 마이크 쿨바 (2003)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미국에서의 무명 생활
2.2. 한국프로야구 시절
2.3. 일본프로야구 시절
3. 연도별 주요 기록
4. 이모저모


1. 소개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 외국인 선수. 본명은 타이론 윌리엄 우즈(Tyrone William Woods)로 '흑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베어스 팬들에겐 잊지 못할 외국인 선수이며 펠릭스 호세와 더불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외국인 타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98년도에 OB 베어스를 통해 드래프트에서 뽑혀서 국내땅을 밟았다.

2. 선수 시절

2.1. 미국에서의 무명 생활

1996년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더블A팀 트랜턴 선더에서 99경기 25홈런 OPS. 982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트리블A팀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29경기 9홈런 OPS 1.064를 기록한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장타력 만큼은 인정을 받았으나, 문제는 수비와 주루 때문에 1루 외에는 볼 수 있는 포지션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보스턴의 1루에는 1995시즌 아메리칸리그 MVP 모 본이 있었고, 지명타자 자리에는 레지 제퍼슨이 1996시즌에 타율 .347를 때리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었던 터라 우즈는 콜업을 받지 못한다.

2.2. 한국프로야구 시절

제가 (1999) 시즌 후에 목표를 잡았는데 팀 1위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홈런왕도 아니었습니다. 타점왕도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타이론 우즈를 이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이승엽출처

결국 20대 후반까지도 메이저에서 부름이 없자 야구를 그만 두고 소방수가 될 생각을 했으나 1998년 당시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 공개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면서 한국 무대를 노크.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1998년 한국무대 데뷔 중반까지도 당시 한국야구의 좌우폭이 넓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고[1] 선풍기질만 하면서 퇴출까지 거론되었으나 김인식감독이 주구장창 3번 타순에 고정시키고 인내심을 갖고 밀어주자 7월부터 포텐셜 폭발. 한때 8개 차까지 벌어졌던 홈런 1위 이승엽을 추월하고 장종훈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41HR)을 깨는 42홈런을 터뜨리며 MVP로 선정되었다.[2] 각주에 서술된 골든글러브 이야기 말고도 MVP 선정 과정 또한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기자들이 18승으로 다승왕을 따낸 LG 김용수를 밀어주면서 2차 투표까지 간 접전 끝에 MVP 수상에 성공한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우동수(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를 이루어 두산 베어스의 강타선을 구축했으며[3] 심정수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2001년에는 심재학의 가세로 우동학(우즈-김동주-심재학)트리오를 형성,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무너뜨리고 두산의 세 번째 우승에 공헌하면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98년의 페넌트레이스 MVP에 이어 2001년 올스타전 MVP[4]와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외국인선수로는 유일하게 MVP 트리플크라운 기록[5]을 보유한 선수.

2001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친 홈런은 김동주 이후 두 번째로 기록된 잠실구장 장외 홈런. 포스트시즌에서 기록한 12개의 홈런은 지금까지도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홈런 기록이다.

1998~2001년까지 42-34-39-34홈런을 기록하면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나 2002년에는 25홈런 타율 .256으로 부진에 빠졌는데, 당시 외국인선수에 대한 차별의식과 두산구단의 섭섭한 대우에 불만이 쌓여서 태업을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한국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이 좌우로 지나치게 넓은 것에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프로야구 영상을 보면 2010년대보다 좌우로 공 두 개 정도는 넓게 존을 잡아주는 것을 알 수 있다.[6] 심판들이 편파적이라서 우즈에게는 스트라이크존이 더 넓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우즈존이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5년간의 두산 생활을 접고 2003년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한다.

그리고 우즈가 떠난 이후 두산은 2014년 호르헤 칸투[7]가 성공하기 전까지 용병 타자 영입은 실패를 거듭했다. 마이크 쿨바-이지 알칸트라- 왓슨의 실패로 한동안 두산은 외국인 타자 영입을 꺼렸다.

2.3. 일본프로야구 시절

2003~2004시즌에는 약체 요코하마의 중심타선으로 활약하는데, 애초 싼 맛에 데려왔을 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요코하마 구단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파워스윙을 선보이면서 일본 진출 첫해부터 2년 연속 홈런왕[8]을 차지하고 주니치 드래곤즈와 거액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일본에서 홈런을 치기 어렵기로 소문난 나고야돔에서도 변함없이 파워를 발휘해서 2005시즌에 38홈런을 때려냈고, 2006시즌에는 요미우리의 이승엽과 홈런왕 경쟁을 벌이며 47개의 홈런으로 3번째 홈런왕과 144타점으로 타점 1위를 차지한다. 2007시즌에는 무라타 슈이치에게 1개 차로 뒤진 35개로 홈런 공동 2위였지만, 위압감은 대단해서 121개의 볼넷과 19개의 고의사구를 얻어낸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8시즌에도 홈런 35개를 쳐냈으나, OPS .904로 커리어로우를 찍었고 그해 말 주니치 드래곤즈와 연봉협상에 난항을 겪어서 재계약에 실패. 사실 연봉을 높게 부르고 깎지 않았던 우즈의 태도도 있었지만,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센트럴리그에서 나이 많고 수비가 불안한 우즈를 비싼 돈에 가지고 있을만한 이유가 없었던 주니치는 그냥 깔끔하게 우즈를 포기하게 된다. 거기에 대신해서 데려온 용병인 토니 블랑코가 생각보다 우즈의 공백을 잘 메꾸어주어서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홈런왕에 오른 선수는 우즈가 유일하며 이대호, 이승엽, 김태균도 달성하지 못했다. 우즈의 성공을 계기로 일본프로야구 팀들은 KBO의 특급용병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2006년 KIA의 에이스였던 세스 그레이싱어.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는 엄청 잘 나갔지만[9] 성격이 아예 망나니가 되어있었다. 대표적 예시로 2005년 5월 5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경기 중 5회말 타석 때 후지이 슈고의 몸쪽 위협구에 분노, 그의 오른쪽 뺨을 구타하여 1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만 엔의 중징계를 받았을 정도.

주니치 시절 우즈의 참교육(...) 움짤. 헤이, 슈고! 돈 두댓!

다만 이것에는 우즈도 할말이 있는데 후지이 슈고는 등판중에 혀를 낼름 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필이면 우즈에게 몸쪽공을 던지고 난뒤 자신을 노려보는 우즈를 향해 버릇대로 혀를 내밀었고 이걸 자신을 조롱하는걸로 받아들인 우즈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폭력을 행사하는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후지이 슈고는 멘탈이나 소행면에서 썩 좋지 않은 투수로 평가받아왔었기 때문에 우즈를 옹호하는 팬들도 꽤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선수치고는 무난한 인성으로 인기가 좋아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도 게스트로 출연할 정도로 이미지가 좋았지만, 일본에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고. 일본에서의 별명은 "우데스".


주니치의 레전드인 타츠나미 카즈요시가 뽑은 파워히터 순위.

그래도 일본에서 재적 당시 뛰었던 팀들의 팬들, 특히 주니치 팬들은 우즈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주니치의 역대 타자용병들중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찍어줬던 것도 있고 특히 당대의 라이벌인 요미우리 상대로 상당히 강해서 인상적인 활약을 많이 펼쳤기 때문이다. 이는 요미우리팬들도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일본웹상에 간간히 우즈가 너무 무서웠다고 추억하는 글들을 올리는 요미우리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2010년에는 본인 입으로 말하길 모 퍼시픽 리그 구단 중 한곳에서 영입요청이 들어왔지만 센트럴리그에서만 뛰고 싶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로는 고향인 플로리다주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햄버거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3. 연도별 주요 기록

한국프로야구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998 126 138 42 103 0.305 0.393 0.619 1.013
1999 124 135 34 101 0.297 0.406 0.556 0.972
2000 127 151 39 111 0.315 0.414 0.605 1.020
2001 118 127 34 113 0.291 0.402 0.571 0.973
2002 119 104 25 82 0.256 0.339 0.499 0.838
통산 614 655 174 510 0.294 0.393 0 .574 0.967

홈런왕 1회, 타점왕 2회, MVP 1회, 골든글러브 1회 수상. 태업이 의심되는 2002년을 제외한다면 리그 최고의 우타자이자 파울라인은 넓었으나 정수근존과 유지현존이 존재했던 잠실을 지배한 거포라고 할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 기록
연도 경기 안타 홈런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136 131 40 87 0.273 0.361 0.559 0.921
2004 130 142 45 103 0.298 0.394 0.613 1.007
2005 135 155 38 103 0.306 0.392 0.571 0.963
2006 144 162 47 144 0.310 0.402 0.635 1.037
2007 139 126 35 102 0.270 0.418 0.530 0.948
2008 140 135 35 77 0.276 0.377 0.527 0.904
통산 824 851 240 616 0.289 0.391 0.573 0.964

홈런왕 3회, 타점왕 1회, 베스트나인 3회 수상. 6시즌 동안 4시즌을 홈구장으로 나고야돔을 쓰면서도 연평균 홈런 40개를 쳐냈으며, 통산 OPS 0.964는 3000타석을 기준으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6위다.다만 득점권 타율이 낮아서 좀 까였다

4. 이모저모

youtube(wBompBOlwrA)

밀어치는 우월홈런이 상당히 많았는데, 밀어쳐서 도쿄돔 광고판을 때릴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국내에서 강렬한 포스를 남겼지만 아무래도 02년까지만 뛰었기 때문에 2006년 WBC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늘어난 여성팬들은 타이론 우즈를 몰라 이에 대한 일화가 생기기도 하였는데, 한 두산팬이 2010년 신인포수 양의지의 스윙폼을 보고 우즈 닮았네라고 하자 여성이 "저 선수 불륜 안했거든요?!"라고 말해버려 타이론 우즈도 모르는 보슬아치라고 야갤에서 신나게 까였다.

다만 당연히 모를만도 한 게, 2회 WBC 이전에 아예 은퇴를 해버린 데다가 '우즈'하면 과거부터 야구를 봐왔거나 일본 프로야구를 어느 정도 아는 팬들을 제외하고는 대개 불륜한 이분을 떠올리기 때문. 그리고 불륜하면 이 분도 떠오르기 마련이라 이름도 아주 비슷하다... 이를테면 일종의 시대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의 완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이용해서 상대방이 성격이 만만해 보이거나 어리숙할 경우 언론을 통해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거나 경기중 상대팀의 견제가 들어올 경우 먼저 나서서 시비를 트는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 우즈의 경우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영악한 구석이 있어서, 일본선수들이 겁이 많고 싸움을 싫어한다는 걸 금세 파악하고는 약간이라도 트집잡힐 만하면 상대선수를 매번 피떡이 되도록 팼는데 그 후 어느팀도 우즈에게 몸쪽공을 던지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이건 다 의도된 행동이었다. 한국 시절에 자신과 라이벌 소리 들었던 이승엽이 성격이 순하고 멘탈이 강하지 못하다는것도 파악하고[10] 일본시절에 끝없이 이승엽을 도발했고 실제로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전혀 관계도 없는데 이승엽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영향을 미쳐서 이승엽의 부진에 한몫한것도 사실이고...정말 주먹다짐으로 번져도 때려눕힐 자신이 있고 이승엽의 약한 멘탈을 이용한거라고 봐도 될 듯. 나중에 우즈 자신도 의도된 도발이었다고 반쯤 인정했다. 재미있는건 우즈가 이러는 걸 보고 따라하는 외국인선수들이 일본프로야구에 많이 늘었다는 것.

한편 일본에서의 공격적인 성향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럭저럭 무난한 인성으로 평가받은 이유도, 당시 한국 야구계에 남아있던 빡센 군기를 접하고(...)[11]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 외에도 2002년에 이태원에서 손혁에게 시비걸었다가 죽도록 얻어맞고 순해졌다고 한다. 참고로 이것 때문에 두산에서 태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말이 있다.

당시 두산 베어스 팬들은 우즈가 타석 등장곡인 경기병 서곡이 울려퍼질때 타석에 들어서면 전부 일어나 북소리에 맞춰 흰 막대풍선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면서 우~ ~ ~즈!! 우~ ~ ~즈!!를 반복해서 외치곤 했다. 뭔가 주술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이 단순한 응원가는 상대팀 투수는 물론이고 상대팀 팬들조차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위압감을 풍겼다. 게다가 득점권에 주자가, 아니 베이스에 주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상황에서 우즈가 타석에 들어서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일본프로야구시절 임창용이 우즈킬러흑곰잡이로 유명했는데 특히 인터뷰에서 우즈를 까내리던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얻어맞은 것에 대한 분풀이라 카더라.

국내에서 활동하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카메오로 나온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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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때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 정말 심해서 스트라이크존을 공하나 정도 더 넓게 잡아주곤 했다.
  • [2] 근데 정작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MVP인 우즈를 제치고 이승엽이 차지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우즈가 이후 이승엽에 대해 눈에 띄게 라이벌의식을 드러낸 것도 이때 생긴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 [3]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무려 99홈런 308타점을 합작했다. 잠실구장에서 이만한 위력의 클린업 트리오를 다시 볼 수 있을지...
  • [4]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최다 홈런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었다.(2000년의 9개) 그러나 2010년 홈런레이스에서 김현수가 10개를 기록하며 이 기록은 깨졌다.
  • [5] 국내선수중에는 이종범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기록.
  • [6] 당시 1999~2001시즌까지 타고투저가 지속되어 KBO에서는 2002시즌 스트라익존을 넓히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많은 타자들이 볼넷-삼진 비율에서 손해를 봤으며 타고투저 시즌에 비해 득점력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 [7] 근데 이 호르헤 칸투 역시 후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결국 두산을 떠났다
  • [8] 03시즌에는 40홈런으로 알렉스 라미레스, 04시즌은 45홈런으로 터피 로즈와 함께 홈런왕이 되었다.
  • [9] LG의 차명석 코치에 의하면 전지훈련 도중에 우즈를 만났는데 우즈가 아예 귀족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 [10]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승엽 본인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사실.
  • [11] 당시 코치였던 양승호가 우즈를 순한 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즈가 신경질을 내자 냅다 의자를 집어던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