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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last modified: 2015-03-31 17:37:2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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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경제기반을 오일머니에 의존하는 국가.
미래의 나우루 공화국[1]

면적 17,820km²
인구 2,818,042명(2012 추정)
수도 쿠웨이트
국가원수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자비르 알 사바 국왕
정부수반 자비르 알 무바라크 알 하마드 알 사바 총리
1인당 GDP 명목 45,824$(2012), PPP 58,080$(2011)
통화 쿠웨이트 디나르
시간대 UTC +3
인터넷 도메인 .kw

중동에 위치한 아랍의 소국. 정식국명은 '쿠웨이트국(دولة الكويت, Dawlat al-Kuwayt)'이다. 영어발음인 쿠웨이트(Kuwait)로 알려져 있지만 아랍어로는 الكويت(알-쿠와이트)인데, 이는 근처에 세워진 요새라는 의미이다. 수도는 쿠웨이트(Kuwait City, مدينة الكويت)로 싱가포르, 과테말라 등 몇몇 나라와 더불어 수도와 국명이 일치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국토면적은 18,000㎢, 인구는 약 290만 명이다. 사실상 에미르가 통치하는 전제군주제이지만 일단 입헌군주제의 형태는 취하고 있다.

Contents

1. 소개
2. 경제
3. 역사
4. 국제관계
4.1.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관계
4.2. 쿠웨이트와 영국과의 관계
5. 스포츠
6. 기타

1. 소개


작은 크기와 달리 세계적 석유 부국이며[2], 걸프전과 월드컵 축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라크 전쟁 이후로 막대한 군비를 여기서도 부담하면서 수백억 달러를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백억 달러를 부담해도 경제적으로 아무런 타격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부자 나라다. 인구 백만의 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삼백만에 이르고, 대부분의 성인 남성은 별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많이 받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물론 모든 교육도 공짜다! 그런데 이런 상황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데?

20세기 초 영국이 이 땅을 점유하면서 운명이 엇갈리게 되었다. 영국이 강제로 침탈한 땅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보호해달라며 부족들이 자진하여 영국 휘하에 든 것이다. 1961년에 독립하였으며, 막대한 오일 머니로 엄청난 국부를 획득하였다.

1990년, 이라크이란-이라크 전쟁의 실패로 막대한 국가 부채가 쌓여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갖춘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병합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걸프 전쟁을 일으킨다. 소국인 쿠웨이트는 그 간의 전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하게 쌓인 이라크 군에 순식간에 점령되어 이라크에 강점되어 "쿠웨이트주"로 편입되었으며, 당시 국왕이었던 자베르 3세와 쿠웨이트 왕가는 사우디로 도피하였다. 선조도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지는 않았는데 이건 완전 선조만도 못한 왕이네.[3]

이듬해 미국이 주도한 UN 다국적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 이후 미국의 對이라크 전진기지로 사랑받았다.

옆나라인 이라크, 바다 건너 있지만 꽤 가까운 이란 등 주변국들이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어 그 여파로 은근히 언론보도에서는 묻혀버린 나라. 과거 한국 공군 소속 제58항공수송단 일명 '다이만' 부대가 이 국가에 자리한 미국, 영국 그리고 쿠웨이트가 합동으로 사용하던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미 철군한 상태.

3. 역사

쿠웨이트가 과거에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은 건 맞긴 하지만, 8세기에서 13세기까지에 불과하고 이후 몽골,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된다. 하지만 당시 역사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정식으로 이라크의 영토라고 할 수는 없고, 느슨한 종속관계 정도였던 듯하다. 어차피 이 당시 쿠웨이트에 살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착민이 아니라 사막의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쿠웨이트 민족은 17세기 이후에 이주해온 아니자족(عنزة, `Anizzah)이 중심으로 이 당시 쿠웨이트 지방은 소수의 유목민들이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던 지역이라, 주인없는 땅에 정착한 것과 같다(당시 이 지방의 지배자였던 오스만 제국이 이들의 정착을 인정했다). 지금의 정착된 쿠웨이트 지방은 이 아니자족이 발전시킨 것으로 그 전까지는 떠돌이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던 지역에 불과했다. 때문에 이라크와는 민족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이 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애당초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어차피 이라크도 이 때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였으니까. 그래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인과는 전혀 민족적, 문화적 동질감을 갖지 않는다. 현재 쿠웨이트의 사바흐 왕조(آل صباح)는 이 아니자족의 지도자 가문출신이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게 되자,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6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다음해, 쿠웨이트의 독립은 아랍연맹과 UN의 허가를 받아 국제법적으로도 합법적으로 독립했다. 한편, 쿠웨이트가 독립하자 이라크에서는 쿠웨이트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군대를 보내려 했다. 이에 쿠웨이트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해 영국이 항공모함까지 보내자 결국 이라크도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걸프전이 발생하게 된다.

4. 국제관계

4.1.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관계

쿠웨이트의 독립이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한 분쟁이라는 것은 쿠웨이트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4]왜냐하면 위에서 보다시피 쿠웨이트인 스스로가 이라크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로 예를 들면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라크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 내의 소수민족이 되기 때문에 민족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5] 이 같은 사실은 이웃 중동국가들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식민지배에 우호적인 시각을 지니지 않은 아랍연맹조차 쿠웨이트의 독립을 공인해 주었다.

때문에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라는 주장은 국제법이고 민족적, 역사적 동질성이고 상관없이 800년 전에 우리땅이었으니, 무조건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그나마 이스라엘은 '벨푸어 선언'이라도 있었지, 이건 완전히 생떼와 같다. 이런 논리라면 몽골터키도 쿠웨이트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이들도 이 땅을 지배한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시오니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환빠들도 쿠웨이트도 우리땅 드립을 친다...

당연히 쿠웨이트 사람에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 때문에 쿠웨이트인의 이라크에 대한 국민 감정은 대단히 좋지 못하며 침략자로 보고 있다. 오죽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게 당한게 심했으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시리아,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사우디, 튀니지 등 다른 아랍국가들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할때 쿠웨이트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지지했을 정도.

미국을 지지하는 친미 아랍어 방송인 알 후드가 미국과 합작으로 세워진 곳도 바로 쿠웨이트였다. 알 자지라와 맞서기위하여 만들어졌지만 뭐 아랍권에선 알 자지라는 커녕 아랍 각 방송국 상대도 되지못하고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결국 문닫았다. 쿠웨이트에서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니 말 다했다.

뿐만 아니라 걸프전으로 인한 배상금을 더 내놓으라고 이라크를 압박하는 한편, 2013년에도 쿠웨이트 국경에서 이라크와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거의 원수로 보는 수준.[6]#하기야 나라가 침략당했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지만

하지만 이런 것과 다르게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면서 적어도 외교적으로 예전과 달리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미 2004년에 이라크와 수교했으며 침공 당시 사죄 및 피해 보상금도 두둑히 받았다. 2014년 1월까지 450억 달러가 넘는 피해 보상금을 이라크에서 내줬으며 총보상금은 525억 달러로 매해 석유를 팔면서 그 수익을 이자와 같이 이라크에서 내주고 있다. 사실 쿠에이트와 이라크가 사이가 나빠진 계기인 걸프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명백한 잘못이고, 현 이라크 정권은 아무튼 후세인 정권을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 시절의 앙금은 털어버리고 쿠웨이트와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4.2. 쿠웨이트와 영국과의 관계

대단히 좋다. 쿠웨이트가 영국의 보호국-사실상 식민지-였다는것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을만큼 좋다.[7]

쿠웨이트 신문인 쿠웨이트 타임즈는 2012년 이후 영국과의 관계가 더욱더 좋아졌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이 기사에서는 1899년 이후 영국은 여러 방면에서 쿠웨이트를 도와주었고 특히 이라크의 위협에서 보호해준 점을 강조하는등 매우 우호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아랍 타임즈에서도 영국과 쿠웨이트는 정치적 친구, 가치있는 동맹, 믿을맏한 파트너이자 뿌리깊은 사이라고 기사를 낸 바 있다.#

이같은 이유는 우선 영국이 쿠웨이트를 점령해 식민지로 삼은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자 쿠웨이트가 스스로 영국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점. 영국은 쿠웨이트를 독립시켜주었다는 점. 1960년대이후 이라크의 위협으로부터 쿠웨이트를 보호해 주었다는 점.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에 참여해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는 점등이 이유다.

물론 영국이 천사들이라 쿠웨이트를 도와준 건 당연히 아니고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속셈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쿠웨이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독립된 국가를 안겨주었으며,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국가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에 쿠웨이트 인으로서는 영국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국도 쿠웨이트를 엄청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

5. 스포츠

2010년 쿠웨이트의 올림픽 위원회가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2010년 이후 하계 올림픽, 동계 올림픽 등 IOC에서 주최하는 모든 경기의 출전권이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도 개인 자격으로만 출전했으며 이 징계 조치가 계속된다면 당장 2012 런던 올림픽도 개인 자격으로밖에 출전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기사보기 그런데 아시안 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쿠웨이트에 있다는 것....

다른 중동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다. 실력도 상당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아랍에서도 국대 축구가 몰락했듯이 리그도 아랍권에서 약체로 몰락하여 리그 우승팀도 AFC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AFC컵에나 나가는 수준이다. 그렇긴 해도 오일 달러로 밀어붙여서인지 AFC컵에선 제법 선전한다. 석유와 거리 먼 요르단과 더불어 3회 우승 타이

핸드볼에 관심이 있긴 한데, 아시아 핸드볼 연맹회장인 자국 왕자 덕에 아시아 최강 대한민국을 아주 비열하게 이기곤 한다. 뭐 세계 대회 나가면 그 힘도 못 미치는 지라, 강호들에게 줄줄이 동네북이 되면서 대한민국 핸드볼과 하늘과 땅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돈은 많아서인지 사막성 기후임에도 빙판 경기장 시설을 만들기도 한 탓에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에도 나온 바 있다. 물론 약체라서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에선 대한민국에게 2-14로 완패했다.

6. 기타

쿠웨이트의 놀이공원에는 롯데월드에서 팔려 온 놀이기구들이 있다! 로마전차, 고공전투기, 어린이특급 3가지 놀이기구가 그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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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정도로 국가 자체도 나우루가 뿌리던 만큼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지출이 많은것으로 유명하고(대표적으로 심심하면 국민에게 보너스 뿌려주기), 쿠웨이트의 경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산유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석유 의존도가 높다.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나 사우디아라비아도 그렇지만 쿠웨이트는 이들 나라보다 더 작고 의존도가 훨씬 높은데다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경우 석유가 바닥나면 엄청나게 넓은 땅과 사막으로 태양에너지라는 또다른 에너지원 부국으로 가능성이 있지만 쿠웨이트는 그런 거 없다.
  • [2] 아이러니하지만, 작기 때문에 부국이다. 벌어들이는 1인당 오일달러의 이익는 거의 개발된 유전넓이와 정비례한데 인구는 이 값을 반비례로 만들어주니 말이다.
  • [3] 이건 그냥 깔 일이 아니다. 만약 국가원수인 국왕이 항복하고 합병을 인하게 된다면 동맹국이 지원해줄 의미가 사라지게 되니 말그래도 나라가 망했어요. 국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면 굴욕을 감내하고서라도 일단 후퇴해 향후를 도모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그 후퇴과정이 어땠느냐가 문제긴 하다 게다가 왕실이 전쟁 터지자마자 무작정 도망간 것도 아니다. 이라크군이 수도 코앞까지 닥칠 때까지 궁전을 지키고 있었고 사우디 아라비아로 망명할 때도 국왕의 동생인 셰이크 파우드 알 아마드 알 사바가 남은 수비병력을 이끌고 시간을 벌다 전사까지 했다.
  • [4] 사실 영국은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국경선을 잘못 그린것 밖에 없다..덕분에 두 나라 국경 지역중 이라크만 해안선이 협소하다.
  • [5] 이를테면 베트남 전쟁의 경우, 남베트남 사람들은 같은 북베트남인과 동질감을 느꼈고, 그 결과 북베트남군의 침공을 환영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침공을 환영하기는 커녕 침략자로 보았다.
  • [6] 이제는 쿠웨이트인들이 이라크 민족을 거지라고 멸시하기까지 한다.
  • [7] 홍콩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은 이게 같은 나라가 취한 정책이 맞나 궁금해질 정도로 각 피지배국마다 다르게 대우하는 경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