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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라인

last modified: 2015-03-29 18:12:3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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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는 2가 222+22+22+22+2+2+번 들어가 있다.

우승과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람 - 홍진호.#

Contents

1. 소개
2. 주요 종목별 콩라인
2.1. 축구
2.2. e-sports
2.2.1. 스타크래프트 1
2.2.2. 스타크래프트 2
2.2.3. 철권 시리즈
2.3. 야구
2.3.1. 메이저리그
2.3.2. 일본프로야구
2.3.3. 한국프로야구
2.3.4. 기타
2.4. 농구
2.5. WWE
2.6. 정치
2.7. 연예계
2.8. 국내 기업계
2.9. 외국 기업계
3. 콩라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람

1. 소개

평생 1등 한번도 못한 채 2등만 줄기차게 한 사람이 포함되는 라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 선수가 스타리그 공식 대회에서 준우승만 여러 번 했다 하여 그의 별명인 과 라인이 합성되어 콩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홍진호가 까이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 라인에 가입한 사람들&단체들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불쌍한 취급을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2인자라도 꾸준히 차지한다는 건 대단한 거다. 그러니까 콩까지마

오히려 1인자의 자리가 확고한 경우 2인자의 자리를 굳혀서 3인자와의 거리를 안드로메다로 늘리는 경우도 있고, 2인자이기도 하지만 은근슬쩍 1인자의 자리를 빼앗거나 그에 준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공식적인 대회의 준우승 혹은 어떤 단체나 서열, 순위에서 늘 2위일 경우 가입이 유력하다. 단 공식전이 아닌 이벤트 전에서는 우승을 해도 좋으며, 오히려 이벤트 전에서만 강력하면 콩라인의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다.

사족이지만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는 콩라인이 제일 불행하다고 한다. 1위야 설명이 필요없고 3위는 메달 순위권에는 들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지만 2등은 1위를 놓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올림픽 등에서도 동메달은 마지막에 3·4위전을 이기고 따는 거지만, 은메달은 결승전에서 지고 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3위권은 1, 2위 사이에서 줄서기에 더 피곤하다는 분석도 소수 의견 있다고.

미스코리아 선도 같은 맥락으로 제일 불행한 경우. 진선미 중 2등임에도 혼자 호명을 못 받는다. 3등부터 발표하기 때문에 미가 먼저 호명되고, 진과 선 둘이 남으면 진을 발표하기 때문.왜죠 과거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미스코리아 선 출신 염정아 씨가 이 슬픔을 토로한 적 있다.

모양으로 생긴 시상대의 오른쪽 자리(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왼쪽)만 지겹게 올라서서 가운데 자리 한 번 올라서 보는 게 소원이 되었다면 이미 콩라인에 등극한 것이다.

콩라인 가입자가 유난히 2와 관련이 많으면 칭송을 받게 된다.산소는 지구 공기중 2번째로 많은 22%다. 콩기

다만 뜻이 와전되어, 이미 확고한 1등이 있어서 충분히 대단한데도 불구하고 최고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콩라인이라고 부르곤 한다. 동의어로 춘라인이 있다……는 훼이크고 은근슬쩍 2인자 기믹을 춘라인으로 분리하려는 불순한 무리들이 있다 행위가 있다. 콩까기는 진리인 모양.

그리고 드디어 기사에 '콩라인'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

그리고 콩라인이라는 말도 콩라인이다. 베다위키에 등재된 순서로 강라인이 먼저 라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콩라인은 라인으로는 2번째로 결성된 라인이다(……). 태생부터 2등을 할 숙명이였다. X라인이 만들어진 순서는 스갤 기준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엄라인. 주로 엄재경이 포장해서 거품이 낀 선수를 일컫는다. 장육, 이영호 등이 있다[1]. 그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준라인. 김동준의 썩킹을 받은 선수로 이윤열, 최연성, 강민 등 이른바 본좌, 준본좌들이 있다. 강라인은 2007년에 한상봉 이후로 등장했고, 콩라인은 이후 송병구가 EVER 스타리그 2007에 준우승하며 등장한 말이다. 그러니까 스타판에서 ~라인 중에 콩라인이 생성된 것은 2*2네 번째.

여담으로 콩라인이라 불리는 선수 중 유독 저그가 많다.수장부터 저그라서 그런가?

2. 주요 종목별 콩라인

2.1. 축구

축구선수 미하엘 발락도 '콩락'이라는 별명으로 이 라인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2002년 당시 독일월드컵 준우승을 포함하여 그 당시 소속 팀이었던 레버쿠젠이 리그 준우승, 리그 컵 대회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등 쿼드러플 러너업이라는 한 시즌 4준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적이 있다.(콩드러플) 그 외에도 UEFA컵과 유로 등 굵직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콩라인. 이후 2008년에도 소속 팀 첼시의 리그 준우승, 리그 컵 대회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 독일의 유로 2008 준우승으로 또다시 준우승 쿼드러플을 달성했다.

엄밀히 말하면 애초부터 콩라인의 일원은 아니며[2] 그를 콩라인이라고 하게 된 계기는 월드컵과 챔스 유로를 못 우승했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2002년에 준우승 쿼드러플을 달성했고 개인 시상 마저도 올해의 선수 2위나 월드컵 미드필더 순위 2위 등등 개인 시상도 2등을 밥 먹듯 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그 당시 발락이 대단하긴 했지만 호나우지뉴라거나 호나우두 같은 선수 덕에 1등은 해보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버쿠젠에서 콩드러플을 한 이후 그는 디펜딩 챔피언팀 바이에른으로 이적하여 그 해 준우승을 했다(……). 뭐 어찌됐든 간에 첼시 FC에 와서 우승을 했으니 엄밀히 말해서 더 이상 콩라인이라 부르기 힘들긴 하지만 앞서 말했든 발락은 이미 FA 컵이나 리그 우승은 여러 차례 했다. 게다가 첼시에서도 아브람 그랜트 감독 때 준우승 트레블도 경험했다(……). 그는 아직 월드컵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은 없는 상황이고 발롱도르나 피파 올해의 선수에도 시상되지 못했다. 나이도 꽤나 있어서 아마 이대로 은퇴하여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콩락으로 남을 것이 유력하다.

축구 선수로서 진정한 콩라인은 에르난 크레스포이다. 발락이야 콩라인을 벗어날 여지라도 있지만 크레스포는 빼도박도 못하는 콩라인 중의 콩라인이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다 2등이야? 그가 살아온 콩라인 인생은 다음과 같다.

  •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축구 종목 은메달리스트. 국가 대표 데뷔부터 콩…….
  • 1998년 월드컵 당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 밀려 2군.
    • 1998년 월드컵 16강에서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2번째 주자로 나와서 승부차기를 했으나 실축.
  • 2002년 월드컵에도 또다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 밀려서 2군 됐다.
  • 클럽에서조차도 첼시에 임대되었는데 디디에 드록바에 밀려 첼시로 이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경우는 크레스포가 축구 실력이 아닌 영어 실력에서 밀린 것. 참고로 드록바는 대학교 출신일 정도로 학구파인데 개나 소나 다 대학 출신인 한국과는 달리 외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 그 드록바와 2006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맞대결했는데 크레스포는 드록바를 실력으로 눌렀다. 하지만 크레스포는 득점에서 미로슬라브 클로제에 밀려 실버 슈를 수상했다.

한편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도 74, 78, 2010년 월드컵을 준우승함으로써 콩라인에 입단하였다. 2010년 월드컵은 전승 준우승(……).

유벤투스벤피카는 각각 리그 최다 우승팀이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 한정으로 최다 준우승 팀이다. FC 바이에른이 2012년에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동률이 되었지만 이 쪽은 우승 횟수가 5회로 더 많다.

2011-12 시즌 축구계 콩라인으로 급부상한 선수가 FC 바이에른 소속의 스페인계 독일 국가 대표 스트라이커 슈퍼 마리오, 마리오 고메즈인데...

  • 11-12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 2위[3]
  • 11-12 분데스리가 준우승
  • 11-12 챔피언스 리그 득점 순위 2위
  • 11-12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 11-12 DFB-포칼 2득점
  • 11-12 DFB-포칼 준우승
  • 유로 2012 득점 순위 2위

이쯤 되면 무서워진다...

현재 축구계의 콩라인의 대표는 경기당 1골을 기록하는 무서운 폼을 보여줌에도 그보다 더 많이 넣는(...) 리오넬 메시에게 밀려 슬픈 어느 한 남자가 있...지만 현역 1위인 메시 역시 축구 레전드급에서 따지면 펠레마라도나에 밀려 콩라인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과거의 마라도나를 연상시키는 하드캐리를 보여준 메시의 활약에 힘입어 결승에 진출했음에도 독일에 패해 우승에 실패하자 세계 언론의 대표적인 반응이 결국 마라도나를 넘지는 못했다이다. 이는 현역 세계 최고임에도 올타임 기준으로 콩라인인 특이한 케이스.[4]

12-13 시즌엔 포르투갈벤피카트레블을 달성했다. 심지어 리그에서도 마지막 포르투와의 경기를 앞두고 무패였는데 거기서 졌다. 그런데 포르투도 무패였다.

첼시와의 챔스 결승에서 패하면서 11/12 시즌에 리그, 포칼, 챔스 모두 2위를 기록한 FC 바이에른도 있다.

WK리그 팀 인천 현대 제철이 WK리그가 출범한 2009년부터 쭉 준우승 하다가 2013년에야 우승했다.

한편, 흑역사 급에도 콩라인이 존재하는데, 주인공은 바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브라질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겪었던 마라카낭의 비극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씻어내고자 절치부심해 왔으며, 결국 뭍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마라카낭의 비극을 뛰어넘는 새로운 흑역사로(...)

그리고 정말로 빼놓면 안되는 AS로마가 있다. 이쪽은 준우승 12번이라는 압도적인 횟수를 자랑한다.아니 숫자2라니! 콩콩라인 리그 준우승의 흑역사가 있다. 안습 그리고 빼놓을수 없는 로마의 왕자가 아닌 왕의 서자?프란체스코 토티가 있다.

K리그에선 로마보다도 더 대단한 팀이 있으니 바로 울산 현대다. 로마는 우승에 비해 준우승이 많을 뿐이지 리그에서 가장 준우승이 많진 않은데 울산은 31년이란 짧은 리그 역사에서 7번이나 준우승하며 당당하게 리그에서 가장 준우승이 많은 팀이 되었다.

2.2.1. 스타크래프트 1

기원이자 수장인 홍진호가 이 곳에 해당한다. 홍진호는 2남 중 둘째. 태어날때부터 콩라인의 숙명을 갖고 있었다. 우승은 없이 2회 이상 준우승을 한 선수는 콩라인으로 보며, 홍진호 외에도 준우승 그랜드슬램[5]의 위업(?)을 달성한 송병구도 이 라인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2008년 11월 1일자로 송병구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탈퇴했다. 5세트에서 송병구정명훈을 압도적인 물량으로 눌러버리자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서는 그 순간부터 콩라인의 수장 자리는 영원히 홍진호의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타났다. 하마터면 홍진호는 '콩라인 중의 콩라인'(콩라인에서조차 2등)이 될 뻔 했는데, 이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라 해야 할까, 콩라인의 차기 수장을 놓친 사실에 안타까워 해야 할까.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우승함으로써 콩라인에서 탈퇴한 송병구는 2008년 11월 9일 WCG 2008 결승에서 박찬수에게 완패를 당해서 은메달을 땄다. 이에 송병구가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정라덴 역시 콩라인이었기 때문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WCG가 이벤트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6]

이 용어는 원래 홍진호송병구를 기리기 위해 등장한 용어임에도 송병구의 탈퇴 이후로 프로게이머 중에는 콩수장님 외에 콩라인이 없었다. 그러나 2009년 로스트사가 MSL 결승전에서 허영무박찬수에게 패배, 2009년 바투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정명훈이 4월 4일 준우승 하면서 3명으로 늘어났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2월 2일은 홍진호를 기리는 성월성일(황일)이다. 그런데 4는 2의 2배이자 2의 2승에 해당하는 숫자…….흠좀무.

여담일지도 모르겠지만 양대 리그 콩라인 결정전이라고 불렸던 로스트사가 MSL바투 스타리그에서 동시에 콩라인 가입을 공식 인정 받은 허영무정명훈은 모두 송병구와 관련이 있는 게이머들이다. 허영무는 송병구의 팀 동료로 로스트사가 MSL 4강전에서 송병구를 3 대 0으로 꺾었다. 정명훈은 송병구에게 우승을 안겨주고 자신은 옐로로더로 등극했었다. 어쩌면 콩라인은 남에게 떠넘겨주면 탈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패러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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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은근 슬쩍 변형태도 콩라인 가입 조건을 착착 맞춰가고 있었다. 아발론 MSL에서 준우승하면 그도 콩라인이었는데 4강에서 역스윕당하면서 콩라인도 락라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2011년을 시작하면서 홍진호, 송병구, 정명훈이 모여 콩라인 특집 인터뷰가 나갔다. 허영무는 성적이 부진한 탓에 이런 자리에 부르면 악영향을 끼칠까봐 부르지 않았다고. 그런데 박카스 스타리그 2010 결승전에서 정명훈이 송병구를 3 : 0으로 꺾으면서 탈퇴하는가 했는데 본인이 "우승 한두 번 더해야 탈퇴."라고 인터뷰에서 밝혀서 아직은 잔류.[7]

또한 홍진호"한 번 정도의 일탈정도로 콩라인의 연을 끊지는 않는다."며 여전히 송병구정명훈을 자신의 라인으로 인정하고 있다.일탈도 2번 해야 인정해주는 진정한 2인자 물론 그러면서 나도 이벤트 리그지만 우승은 해본 적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하긴 블리자드 공인 100회 우승자…….

사실 정명훈송병구를 완벽한 콩라인 탈퇴라 보기도 뭐한 게 결승전에서 서로 만나서 서로에게 우승 시켜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콩라인 빠져나가려 부커질. 다른 상대를 결승전에서 꺾어서 우승시키지 않는 한 콩라인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힘들 듯.
결국 진에어 스타리그에서 정명훈과 허영무가 결승에서 맞붙게 됨으로 인해 허영무가 우승할 경우 콩라인 3인이 전부 서로를 꺾고 우승한 모양새가 되어, 자칫하면 3인의 콩라인 탈퇴가 모두 무효가 될 상황이 만들어졌다. 홍진호:나도 좀 끼워주면 안될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그리고 마지막 스타리그티빙 스타리그 결승전이 허영무:정명훈으로 결정되면서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되고 만다. 누가 우승하든 우승자는 前 콩라인의 멤버만 두 번 이기고 우승 2회를 찍게 되었다. 참고로 스타리그에서는 22명의 우승자와 22명의 준우승자가 배출되었고 이 역사는 영원히 남았다. 그리고 '스타는 으로 시작해서 콩(라인)으로 마무리되었다'는 평도 있었다.

사실 '콩라인'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강도경기욤 패트리변길섭에게, 또 양대리그에서 이윤열에게 2번 내리졌던 조용호가 콩라인 멤버라고 할 수 있었으나 강도경은 일찌감치 코치로 전향, 조용호는 마레기를 응징하면서 우승했기 때문에 잊혀졌다.

2.2.2. 스타크래프트 2

제목부터 2.2.2 스타크래프트 2...패기넘친다

황신의 포스를 넘보는 이 시대 진정한 콩라인의 수장 어윤수
정작 콩라인에서도 황신에게 인지도가 밀리는 이시대 진정한 콩라인
하늘이 황신이 황신으로 완전해지게 하기 위해...
2013년 말의 시작으로 정확히 1년을 걸쳐 2014년 말이 됐을 때 콩라인, 그리고 황신 그 자체를 넘어선 주인공이 나타났으니 바로 어윤수이다. 2013년 조군샵 GSL 준우승, 2014 HOT6 GSL Season 1에 준우승을 하면서 콩라인에 가입하고, 덤으로 로얄로더 메이커의 업적도 획득 2014 HOT6 GSL Season 2에서도 준우승하고 마침내 2014 HOT6 GSL Season 3 역시 믿어 의심치 않은 준우승을 하여 사상 초유의 단일리그 4연준,2연속 팀킬 결승은 덤 2014 DreamHack Open: Stockholm에서 전승준까지 기록하며 5연준을 기록했다. 게다가 소속팀인 SKT T1이 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에서 KT 롤스터에게 패해 준우승했으니 단일리그 4연속 준우승, 해외대회 1회, 팀대회 1회 준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셈.

정리하면 고작 1년동안 해외대회, 국내대회, 팀대회 모두 준우승을 경험하며, 단일리그 4연속 준우승에 전승준우승 그리고 테란, 프로토스, 저그 세 종족을 상대로 모두 준우승을 하는 위업을 달성해냈다. 이제는 어윤수에게 콩라인이라 부를 수도 없는게 그는 이미 콩라인을 넘어선 존재이다. 내 앞에서 황신은 명함도 못 내밀지
이제는 콩라인이 수라인, 춤라인으로 개칭된다 카더라 하지만 라인이 생기기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그냥 준우승 많이 하는것도 아니고 연준이라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이정훈이 공식전 3회, 비공식전 1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초기에는 콩라인의 수장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어윤수의 활약으로 그만... 이정훈은 MLG 윈터 아레나, 챔피언쉽 우승을 했으며 GSTL에서 자신의 손으로 팀의 첫 팀단위 리그 우승을 일궈내서 애매한 편. 단지 코드 A, S, GSTL 준우승이라는 콩랜드슬램을 달성했기 때문에 거의 명예직이나 다름없다.[8] 그러나 한번콩은 영원한 콩인지 2014 HOT6 CUP: Last Big Match에서 오랜만에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한때 스타크래프트 2에서 콩라인의 수장은 박현우였으며 GSL, GSTL, IPL, WCS라는 이제 MLG만 남았네 순도 높은 준우승을 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었지만 어윤수의 활약으로 잊혀져 가는 중.

그 외에도 양준식이 2012년 해외 대회에서만 3연준을 기록하며 수입콩 내지는 수출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스타2 한정으로 장재호도 수출콩소리를 들으나, 양준식의 임팩트와 워3시절 장재호의 임팩트가 너무 컸기 때문에 묻혔다(...). 이 외 강동현도 MLG 2012 Spring Arena, Iron Squid, 2013 Hot6 GSL Season 1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콩라인 가입 조건을 척척 맞춰가고 있다.

2013년 이스포츠연맹으로 새로 들어온 팀인 Azubu/스타크래프트22013 GSTL Pre Season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당시 팀원들 중 GSL 준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만 해도 정민수(프로게이머), 송준혁이 있었으며 이후 강동현2013 HOT6 GSL Season 1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바가 있다.[9]

그리고 2013년 8월, 이제동2013 WCS Season 2 Finals까지 준우승해버리면서 DreamHack Open Summer 2013, DreamHack Open Valencia, 2013 WCS America Season 2를 포함해 4연속 준우승이라는 후덜덜한 기록을 수립하면서 스타2 한정 콩라인의 조건을 갖췄다. 그리고 귀국후에 스스로 인정했다.(...) 그리고 2013 WCS Global Finals에서마저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그랜드준램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2013년 12월 8일에 아수스 로그 토너먼트에서 스타 2로는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드디어 콩라인 탈퇴라고는 하지만, 다만 이제동 본인은 이벤트전이라 여기는 듯 하다. 그렇게 주목받는 대회도 아니였고, 이벤트전에서는 우승하는게 콩라인임을 기억하자(...).

2014 KeSPA Cup에서 또 한명의 콩라인이 탄생했는데, 2014년에 단 2번 있었던 1티어 리그 2개를 모조리 준우승한 김준호다. 김준호는 1억빵과 케스파컵 준우승에 이어, 두달도 안 돼서 또 WECG 2014 한국국가대표선발전에서 대뷔 7년만에 개인리그 결승에 오른 김대엽에 패해 다시 한번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다만 이쪽은 IEM 2연속 우승을 하긴 했다. 1티어 2준우승 2티어 2우승. 그에게 있어 2티어는 이벤트전

2.2.3. 철권 시리즈

통발러브는 대표적인 콩라인이자 그의 주캐인 데빌진도 콩라인이었으나 4회 대회에서 우승해서 탈퇴. 그 후에 한 번 더 했다.
잡다캐릭 심지어 3연속 콩라인. 시즌4에서는 4위 시즌5에서는 3위 시즌6에서는 2위로 결국 끝까지 1위를 못했다. ㅋㄲㅈㅁ 으헝헝.
헬프미 철권 버스터즈시즌1에서 올스타전2위, 팀전서도 2위. 거기다 둘다 무릎에게 졌다.

2.3.1. 메이저리그

투수 마이크 무시나가 대표적이다. 볼티모어에서 양키스까지 20여년의 세월동안 반지 하나 못 껴봤으며[10], 통산 270승의 승수에도 불구하고 사이영 상을 탄 적은 한 번도 없다.[11] 그나마 골드글러브[12]를 7번 받은게 위안이라면 위안. 그리고 은퇴한 그 다음 시즌에는 양키즈가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버린다. 이쯤되면 성골 콩라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 역시 사이영상에서 2위를 3번함으로 콩라인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첫번째 2위는 2009년인데, 그 때 사이영상의 유력한 후보 중에 같은 팀인 투수크리스 카펜터와 표를 나눠 먹는 바람에 팀 린스컴에게 사이영상을 내줬고 2010년에는 AL 동부에서 날아온로이 할러데이에게 상을 내줬다. 그리고 2013년에는 클레이튼 커쇼에게 겨우 만장일치를 저지하고 상을 내주며 2위를 했다. 그리고 자기가 토미 존 수술로 빠진 2011년, 카디널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고, 수술에서 돌아온 2012년에는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패했으며, 2013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줌으로 역시 2위가 되었다. 여러가지로 마이크 무시나와 비슷한 투수다. 만년 2위라는 것과 주력 변화구가 커브라는 것도 그렇고, 2013년 골드 글러브 수상도 그렇고. 2014 시즌 5월 25일 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 호투를 하고도 같은 날 노히터를 기록한 조시 베켓 때문에 평점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 새로운 괴물로서 AL 신인왕을 만장일치로 차지한 마이크 트라웃은 리그 MVP 후보까지 거론되어 투표를 받았지만 하필이면 각성한 미겔 카브레라로 인해 MVP 2위를 기록. 2013년에도 초반의 부진을 딛고 맹활약하며 2년 연속 MVP 후보가 되나 또 미겔 카브레라에게 MVP 1위를 내주며 이번에도 2위. 한번 더 MVP 2위를 하면 완벽한 콩라인이 됐지만 2014 시즌에는 리그 MVP를 획득하며 콩라인에서 탈출했다.

더스틴 페드로이아도 작은 거인으로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2루를 책임지는 훌륭한 2루수이지만 같은 포지션이자 현존 2루수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로빈슨 카노에게 밀려 콩라인 이미지가 있다. 2014 시즌을 맞아 전문가들이 뽑은 현 2루수 TOP 10 랭킹에서도 모두 카노에 밀려 2위만 주구장창 기록했다.

팀으로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제격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강팀의 지위를 확립한 텍사스 레인저스는 2010년 2011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고, 연속으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스코어 1:4로 패배한 2010년은 그렇다고 하여도, 6차전에서 승리까지 1아웃만 남았던 상황에서 역전 홈런 맞고 패배하고 이어서 7차전마저 내준 것은 단연 백미였다. 이후 2년 동안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못하면서 준우승 기록을 늘릴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1961년 창단 이후로 단 한번의 우승도 없고, 준우승도 2년 연속으로 한 2번이 끝이라는 것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탁월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정규시즌에서도 콩의기적을 발휘해 2012, 2013 모두 시즌 초 잘나가면서 시즌 말까지 리드를 지키다가 막판에 오클랜드에게 1위를 헌납내주면서 고배를 마셨다.

2.3.2. 일본프로야구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이 대표적인 예. 1960년 다이마이 오리온즈 감독으로 일본 시리즈 준우승에 머문 것을 시작으로, 1963년 당시 듣보잡이었던 한큐 브레이브스 감독을 맡아 1967, 1968, 1969, 1971, 1972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시리즈 상대가 하필 1965년부터 1973년까지 V9(9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리즈시절을 구가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였고 결과는 당연히 5전 전패였다(……). 그리고 1974년부터는 한큐보다도 전력이 더욱 막장이던 킨테츠 버팔로즈 감독에 취임하여 1979년, 1980년 퍼시픽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두 해 모두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밀려 준우승했다.[13]

호시노 센이치도 감독 시절에는 콩라인이었으나 2013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으로서 팀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창단 후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여 탈출하였다.

2.3.3. 한국프로야구

한희민이 선수 시절에 빙그레 이글스에서만 4번이나 준우승만 했다[14] 게다가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팀을 옮겼더니 삼성 역시 1993년에 또 해태에게 밀려 준우승. 이 정도의 기록이면 야구계의 홍진호라 손색이 없다. 또한 성준은 역시 선수 시절 4회 준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최창호가 3회 준우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재훈도 준우승만 4회를 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한국시리즈로만 한정해서 본다면 2002년 최초 우승할 때 까지 총 7번의 준우승을 했다[15]. 김경문 감독도 콩경문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콩라인 취급을 받았는데 정규전인 한국 시리즈에서는 준우승 3번에 머물렀지만 이벤트전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쿠바를 상대로 우승하였기 때문.

김성근 감독 역시 대표적인 콩라인이었다. SK에서 우승할때까지 감독 커리어에서 우승은 0회 였다. 게다가 감독 통산 승리, 출장 기록 등도 김응룡에 밀려서 항상 2위. 전년도 준우승팀을 받아서 우승은 커녕 4위, 3위로 가을만 턱걸이로[16] 나간 흑역사인 삼성감독 시절을 제외하고는[17] 역대 맡은 팀들 중 가장 전력이 좋은 SK 와이번스를 맡자마자 왕조라 불리는 3회 우승 1회 준우승[18]을 만들어내며 콩라인 탈출. 그렇지만 통산기록은 아직 콩라인이다.

단 가입조건이라면 해당선수나 인물이 팀에서 준우승은 2번 이상 해야 한다. 김경문은 선수시절과 코치시절에 우승을 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위와 같은 이유이기 때문에 감독 한정이다.

다만 이 콩라인도 선수들의 개인 타이틀 측면에서 접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이러한 기준에서 대표적인 콩라인으로 뽑히는 선수는 심정수양준혁. 둘다 이승엽 때문에 각각 홈런왕과 MVP를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었다. 그나마 이승엽의 해외 진출 이 후 심정수는 은퇴 직전 해였던 07년 홈런왕과 타점왕을 수상하며 콩라인에서 탈출했지만 양준혁은 끝까지 탈출 못했다(...).이승엽이 잘못했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것은 둘다 어디까지나 홈런과 MVP 한정으로만 콩라인이었다. 심정수는 당연히 팀내에선 No.1 타자였던데다 2003년에는 56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을 제치고 장타율 타이틀을 가져왔으며, 양준혁은 이미 비율 스탯에서는 여러번 무쌍을 찍으며 리그를 초토화 시켰었다. 게다가 통산 기록도 무려 6개 부문에서 1위.

KBO사상 대표 콩라인 구단은 삼성 라이온즈-빙그레 이글스-두산 베어스가 손꼽힌다.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삼성은 2002년 오랜 숙원인 한국 시리즈 우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1985년 전 후기 통합 우승으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고 두산의 경우는 전신인 OB시절 2번과 두산 시절 1번씩 우승을 경험한 팀으로 사실 우승 한 번 못 해보고 준우승만 하다 사라진 빙그레 이글스만이 콩라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빙그레 역시도 후신인 한화까지 함께 놓고 보면 1999년 우승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콩라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빙그레는 한화로 팀이 바뀐 이후에도 99년만이 유일한 우승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삼성의 경우에는 구단 고위층들이 한국시리즈 우승만을 제대로 된 1위로 쳐주는 바람에 김응용이 숙원을 이루기 전까지 걸핏하면 선수단과 감독들 물갈이 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으며, 두산의 경우에는 2001년 우승하기는 했으나 200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이래로 하필이면 김성근에게 맨투맨을 당해버리는 바람에 00년대 대표 콩라인 이미지가 굳어졌다.

프로야구 매니저 에서는 빙그레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를 듀얼팀컬러 2월 22일로 묶어서 기념하고 있다. 두산은 앞서 말한 07~08 2년 연속 준우승으로 콩라인 취급하는 듯하다. 콩까지마

2.3.4. 기타

  • 2010년 대학 야구에서는 성균관대가 5번의 정규 대회 중 4번이나 준우승을 하면서 콩라인에 등극했다. 그리고 2011년 춘계 리그에서 또 다시 준우승 추가.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야구부는 1983년에 전국체전, 청룡기, 봉황대기 대회를 3연속 준우승 한적 있다.
  • 일본의 고등학교 하치노헤학원 코세이 고교가 2011 여름 고시엔 2012 봄 고시엔 2012 여름 고시엔 세번 연속 준우승을 했다.[19]

2.4. 농구

NBA의 슈퍼 스타였던 등번호 22번엘진 베일러는 그의 소속팀인 LA 레이커스를 무려 8번 결승에 올려놓지만 매번 준우승에 머물렀다. 게다가 그가 은퇴하자마자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20]

올타임 득점랭킹 2위, MVP를 2번이나 수상했던 전성기의 칼 말론은 마이클 조던의 불스에 가로막혀 준우승2년 연속했다. 이대로 무관의 제왕인채 유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가 했지만 은퇴를 앞둔 시점, 최후의 도전으로 돈과 명예까지 포기[21]하며 LA 레이커스[22]로 이적하는 강수를 두었는데 이적한 그해 2번째 팀에서도 준우승을 하게되며 끝내 우승이 좌절된채 은퇴하게되었다.(...)[23] 후엔 포지션 랭킹에서 정상의 자리까지 후배 팀 던컨에게 양보하게 되며 명실공히 NBA를 대표하는 콩라인으로 자리매김. 덤으로 2004년 espn이 꼽은 스포츠 사상 최악의 더티플레이어 2위에도 오른적이 있다.(...)

베일러처럼 전설의 경지에 오른 건 아니지만 마이클 조던의 대학선배이자 외곽슛이 뛰어난 준수한 센터겸 파워포워드였던 샘 퍼킨스는 준우승만 세번, 각기 다른 팀에서 했다. 첫번째는 91년 레이커스, 두번째는 96년 시애틀 슈퍼소닉스, 세번째는 2000년 페이서스 소속인데 그 중 처음 두번은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상대였다. 이건 후배가 아니라 왠수... 참고로 60년대에 8연속 우승을 달성했던 보스턴왕조를 제외하면 3년연속 우승이 달성된건 91-93불스, 96-98불스, 00-02레이커스 뿐인데, 이 세팀 모두 우승 첫해에 퍼킨스의 소속팀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르브론이 3연패에 실패한건 우승첫해에 퍼킨스를 밟아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3연패는 보스턴 이후 27년간이나 명맥이 끊길 정도로 희귀한 성과인데 고작 십수년에 불과한 퍼킨스의 커리어동안에만 세번이나 달성된 셈. 재밌게도 퍼킨스 은퇴 이후 3연패 팀이 나오지 않고 있다.

11-12 시즌 이후의 KBL은 콩라인을 위한 리그인데 1-2위 팀이 계속해서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고 있지만 결국 우승을 2위팀이 하기 때문이다.

2.5. WWE

대회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없기에 이 쪽은 단체 내의 #2 챔피언 벨트(인터콘티넨털 챔피언 or US 챔피언) 등은 가진 적이 있으나, No.1이라 볼 수 있는 월드 챔피언 벨트(WWE 챔피언, 월드 헤비급 챔피언)를 한 번도 못 먹어본 선수들이 속한다.

WWE 내에서 부활해 잠시 존재했던 ECW 챔피언을 월드 챔피언으로 쳐줘야하나 말아야하나 논란이 좀 있는데, 일단 기록상으론 맞으나 WWE 내에서도 실질적으로는 인정을 안 하므로 좀 곤란하다. 이걸 인정을 안 할 경우 여기 가입하는 선수는 대폭 늘어난다. 그런데 저 조건을 유지한다해도 WWE 챔피언을 딱 하루동안 그리고 1회 역임한 바 있는 케인배는 못 올라온다. 이런 곳에서도 대인정신을 발휘하는 케인배 그러나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월드 헤비급 챔피언을 먹어 완전 탈퇴.

이 쪽 수장은 이미 영구 확정되었는데, 밀리언 달러맨 테드 디비아시가 여기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인지도의 악역 메인 이벤터로서 활동했고 여러 벨트를 획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1 챔피언 벨트인 WWF(WWE) 챔피언을 획득한 적이 없다.

한이 맺힌 본인이 아예 밀리언 달러맨 챔피언 벨트라는 벨트를 돈 주고 만들어 가지고 다녔으니 말 할 것 없는 수장. 그런 그도 이벤트성 대회인 1988년 킹 오브 더 링에서는 우승한 경험이 있으니 말 다 했다.[24]

하지만 이에 맞먹는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라우디' 로디 파이퍼. 수많은 단체를 왔다갔다하며(NWA, WWE, WCW 등등.) 훌륭한 악역으로서 많은 인기를 얻고 계약시에 챔피언 벨트 조건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이 되지 못 하였다고 한다…….(사정은 알 수 없지만 물론 타이틀 벨트 계약은 불이행.) 하지만 로디 파이퍼는 이벤트성 대회(로얄 럼블이나 킹 오브 더 링 등.) 우승 경험은 없으니 테드 디비아시에 비하면 2% 포스가 부족하달까.

현재 활동 선수 중에선 윌리엄 리걸이 여기 포함된다. 역시 2008년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으며, 인터콘티넨털 챔피언을 비롯해 여러 벨트를 획득해 10여년이 넘게 WWE에서 활동 중이나, 이런 그도 월드 챔피언과는 인연이 없다…….

2.6. 정치

정치인 이회창 : 이 곳에 포함된다. 지지율은 높은 편이지만 항상 근소한 차이로 2등을 하며 탈락했기 때문에 역시 훌륭한 콩라인 멤버.[25] 자발적인 콩라인으로는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있을 수 있겠다. 사실 콩라인이라는 말이 뜨기 전엔 김종필의 이니셜인 JP가 2인자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니 이쪽이 원조 격. 홍진호를 까는 별명 중 하나가 콩종필이다.

지방선거에서는 2008년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 고성군수 자리에 출마했다가(무소속) 1표 차이로 탈락, 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나라당에 입당까지 하면서) 고성군수 자리에 출마했으나 또 고배를 마신 윤승근이 유명하다. 이 외에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로 경기 안양 만안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참전했다가 이종걸에게 3회 연속으로 낙선한 정용대도 유명한 편.

해외 쪽으로 나간다면 일본 사회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이 이 곳에 포함됐었다. 지금은 해체된고로 포함되지 않지만.

회장 선거에서 1표 차이로 부회장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카더라

2.7. 연예계

2.8. 국내 기업계

기업에서는 삼성 그룹이 한 때 대표적이었다. 197~80년대 국내 최대의 재벌가인 현대 그룹이 왕자의 난으로 쪼개진 이후에야 겨우 삼성 그룹이 1위에 올라왔을 정도이지만 여전히 현대 자동차 그룹과 현대 중공업 그룹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국산차 내에서는 기아자동차가,[27] 수입차 업계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대표적인데, 각각 현대자동차BMW 코리아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28]

무선 이동통신 업계에서도 KT가 굳게 콩라인을 고수하고 있다(……).그분의 前 소속팀 1위는 말 안 해도 아는 또다른 그분의 소속팀 그 회사. LG전자삼성전자의 관계라든가……. 다만, 유선통신에서는 SK가 콩라인이며, 시외전화 서비스 및 국제전화는 LG U+가 콩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라이벌 대한항공넘지 못해 여전히 콩라인을 고수중.

포털사이트 쪽으로 가면 네이버압도적으로 밀리는 다음이 있다.

도시형 버스 차량의 경우,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였으나, 현재는 자일대우버스[29]가 콩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10년 8월에 발생한 천연가스버스 폭발 사고 때문이다.

대한민국산 콜라의 경우는 롯데칠성음료펩시, 사이다코카-콜라가 만드는 킨사이다가 있다. 우유함유 탄산음료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밀키스였으나, 지금은 바사가 해당된다.

라면 업계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농심, 현재는 삼양식품이 차지하고 있으며, 대형마트의 경우, 홈플러스가 계속 이어가고 있고, 편의점의 경우, GS25이나, 가맹점-점주 간의 갑을 구도로 인한 문제가 더 불거질 경우, CU가 콩라인으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류업계의 경우 소주는 롯데칠성음료처음처럼, 맥주는 하이트진로와 OB맥주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가 현재는 하이트진로. 과실주는 국순당(부라보 스파클링[30], 진진포도주 등...)이 해당된다.

2.9. 외국 기업계

펩시 :경쟁 회사인 코카콜라에 밀려서 2위다.

애플 : 컴퓨터 OS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많이 뒤쳐지서 2위다. 그리고 모바일 OS에서도 안드로이드(운영체제)보다 많이 뒤쳐져서 2위다.

3. 콩라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람

항목이 길어져 분할하였으니 콩라인/일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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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이영호는 거품이라 볼 수 없지만 엄라인이 등장한 시기가 이영호의 데뷔 초이고 첫 진출한 게 온게임넷 스타리그라 엄재경의 포장을 받는다 하여 이 라인에 들어갔다.
  • [2] 리그 우승이나 컵 대회 우승으로 따지면 분데스리가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바이에른에 있었던 만큼 당연히 우승 경력이 있다. 첼시에서도 트로피는 많이 들어올렸고.
  • [3] 득점왕 후보 1순위였으나 갑툭튀클라스 얀 훈텔라르에게 밀렸다.
  • [4] 참고로 과거의 비슷한 케이스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있다.
  • [5] 전 종족 상대 준우승, 3가지 전적으로 준우승(0:3, 1:3, 2:3), 양대리그 준우승 등의 업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면 홍진호보다 대단할 지경.
  • [6] 참고로 이벤트전 준우승은 콩라인으로써의 평가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분류되며, 이는 스갤에서 허영무보다 정명훈을 정통 콩라인의 후계자로 보는 2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단, WCG가 양대 리그 급의 위상을 차지하던 2002~2003은 제외한다.
  • [7] 물론 이런 논리라면 송병구도 콩라인을 탈퇴한 적이 없다. 하지만 원래부터 송병구는 2인자 이미지가 강했고, 본인도 자주 "아직도 2와 많이 관련된다."라고 언급한 적도 있는데다가 2011년 신년 콩라인 모임에도 참석했기 때문에. 더욱이 정명훈의 우승으로 준우승 회수만을 따지면 송병구가 더 우세, 일종의 활동중지 가처분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 [8] 거기다 2012년에 들어서 코드 A의 결승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정훈만이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콩의 수장이라 하는 것이지 사실상 명예 회장수준.
  • [9] 윗 내용과 겹치지만 팀적으로 접근했을때 강동현도 Azubu/스타크래프트2를 대표 콩라인 팀으로 만든데 기여했기에 한번더 언급한다.
  • [10] 90년대에는 팀이 포스트시즌을 간것이 96년과 97년 뿐이며, 게다가 올라갔어도 AL 우승을 해본 적도 없었다. 양키스로 FA 갔을 때는 양키스가 3연패를 한 직후였는데 무시나가 간 이후 8년동안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2001년에는 리베라의 통한의 블론 세이브로 눈앞에서 디백스에게 우승을 내주었고, 2002년에는 애너하임 에인절스에게 ALDS에서 패했다. 2003년에는 베켓의 역투에 양키스 타선이 떡실신당했고, 2004년에는 ALCS에서 레드삭스에게 역스윕 당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화이트삭스-디트로이트-클리블랜드에게 ALDS에서 무너졌으며, 은퇴 시즌이었던 2008년에는 템파베이와 보스턴에 밀려 가을 야구를 해보지도 못했다.
  • [11] 1992년에는 18-5 ERA 2.54에도 불구하고 51세이브의 에커슬리에게 밀렸고, 1995년에는 19-9 ERA 3.29를 찍었지만 시애틀의 18-2 ERA 2.48의 성적을 거둔 랜디 존슨에게 밀렸다. 2001년에는 팀 동료 약켓로저 클레멘스에게 밀렸으며, 은퇴 시즌에는 20승을 찍고 ERA 3.37을 찍었지만 그 해에는 클리프 리(22승 3패, ERA 2.54)가 있었다.
  • [12] 한국의 베스트 10 성격을 띄는 골든글러브와는 다르다. 수비만 보는 상. 지명 타자에게 골든글러브를 주는 것을 미국에선 이해를 못하는 이유.
  • [13] 다만 선수시절까지 확대한다면 니시모토는 순수한 콩라인은 아니다. 사회인 야구를 거쳐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1950년 마이니치 오리온즈에 입단했는데, 그 해 쇼치쿠 로빈스를 꺾고 양대 리그 분리 후 첫번째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 [14] 빙그레 시절인 1988년~1992년.
  • [15] 1985년은 삼성이 너무 잘해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못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역대 최고의 승률로 전기와 후기를 싹쓸이 해버린 까닭에 한국 시리즈가 열리려면 삼성VS삼성이 되어야 했기 때문(……).
  • [16] 원년팀이면서 4강 탈락이 총 4번밖에 없고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절반을 출전한 이 팀에서 4, 3위의 성적에 포스트시즌 광탈은 556을 찍으며 상황이 안좋던 시기에서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97백인천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다른팀의 가을야구 실패와 같은 수준의 완벽하게 실패한 년도로 취급된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는 다른팀에선 꼴찌한 격이고
  • [17] 김성근 본인은 이 시기에 대해 프런트와 코치, 선수들이 잘못했다고 탓한다. 물론 그 선수들과 삼성팬들은 반대로 여긴다.
  • [18] 김광현, 박경완 등등이 부상으로 다 빠진 상태에서 만들어낸 준우승이다!
  • [19] 고시엔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
  • [20] 여담으로 그런 엘진 베일러를 위해 LA 레이커스는 특별제작한 반지를 헌정했다.
  • [21] 연간 1900만달러를 받던 사람이 150만 달러에 계약했다. 말론이 얼마나 우승에 한이 맺혔는지 알수있는 대목.
  • [22] 이때의 레이커스는 무려 2×2=4연패에 도전하는 굉장한 팀이었으니 우승에 목이마른 말론이 갈만도 했다. 게리 페이튼도 함께 이적했었는데 이 선수도 당대의 슈퍼스타였지만 조던에 밀린 비운의 은메달리스트였다. 조던시대 이런 선수들이 어디 한둘이랴 이렇게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게리 페이튼, 칼 말론이라는 호화로운 멤버의 반지원정대 결성은 당시로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 이른바 전당포 레이커스, 판타스틱4라고 불릴 정도였다.
  • [23] 이때 팀의 에이스였던 샤킬 오닐이 함께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해서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고 제안했지만 말론은 거절. 그리고 또다른 멤버였던 게리 페이튼이 나중에 마이애미 히트로 오게되는데 히트는 그후 우승한다.
  • [24] 하지만 이 선수는 인터컨티넨탈 챔피언도 딴 적이 없다.
  • [25] 그리고 이회창의 콩까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항상 그의 옆에는 불사조 이인제가 있었다.
  • [26] 그래도 결국 활동 막바지에 인기가요에서 1위를 차지하긴 했다.
  • [27] 다만 현재 기아는 현대 자동차 그룹의 산하회사로 고급형 대형버스의 경우에도 이에 해당되나 콩라인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은 양사가 독립적인 관계였던 1980년대 이후이다.
  • [28] 사실 벤츠 코리아는 1995년 이전에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잘 나갔는데 1995년을 넘어가면서 BMW에게 계속 밀리고 있다.
  • [29] 고급형 버스 쪽에서는 아예 콩라인에서 더 밀려났다.
  • [30] 부라보 스파클링은 처음부터 이 회사가 맡은 것이 아니다. 처음엔 천양주조라는 듣도보도못한 업체가 만들었는데,(부라보라는 이름을 쓰기 전엔 천양삼페인이었다.) 천양주조가 부도나면서 부라보라는 이름을 해태산업이 가져다 썼다가, 해태그룹이 해체되면서 해태산업이 해태앤컴퍼니로 변경된 지 얼마 안돼 국순당에 인수되어 국순당L&B로 바뀌었다가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