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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파

last modified: 2015-07-12 23:40:01 Contributors

Contents

1.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겸하는 보편 군주
1.1. 칼리프의 계승(수니파)
1.1.1. 정통 칼리프
1.1.2. 우마이야 - 압바스 칼리프
1.1.3. 카이로 압바스 칼리프
1.1.4. 오스만 칼리프
1.2. 병행 칼리프
1.2.1. 파티마 칼리프
1.2.2. 코르도바 칼리프
1.2.3. 무와히드 왕조
1.3. 현대의 칼리프
1.4. 칼리프 국
2. 겁스 무한세계에 등장하는 평행계
3. 원피스의 등장인물
4. 영화 및 음악 제목

1. 이슬람 세계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겸하는 보편 군주

아랍어로 할리파(خليفة, Khalīfah), 터키어로는 할리페(Halife), 영어권에서는 칼리프(Caliph)로 통칭된다. 예전에는 회교황제, 회교교황, 회황(回皇), 사이비삘나는 교주(...)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표현은 칼리프이다. 'ㅋ' 부분은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인 무성 구개수 마찰음으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ㅎ'로 표기하기 때문에 한글 표기는 '할리파'가 맞다. 그러나 역사 용어로는 '칼리파'라는 표기가 굳어졌기 때문에 할리파라는 표기는 "부르즈 할리파"나 "셰이흐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카타르아미르)처럼 현대 이름에서나 쓰인다.

본래는 대리자 또는 계승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 풀어서 쓰면 할리파트 라술 알라(خليفة رسول الله), 신의 사도의 계승자를 말한다. 아미르 알 무미닌(أمير المؤمنين, 신자들의 사령관), 이맘 알 움마(إمام الامة‎) 등등의 별칭도 자주 쓰였다.

물론 맘루크 왕조와 같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시절도 있었지만, 전근대 기독교교황과 마찬가지로 종교뿐 아니라 정치까지 맡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1]. 그런데 사실 세계사에서 제정일치의 군주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 일본덴노가 그러했고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단군, 궁예 등 제정일치 시절이 있었다.

현대 이슬람주의자들의 목표 중 하나는 칼리파를 새로이 뽑는 것이다. 그들의 주 목표는 이슬람 세계의 단결이기 때문에 단결의 상징으로써 칼리파를 세우고 그 아래 단결하자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강고한 국민국가, 민족주의 체제 하에서는 거의 가망이 없는 소리다.[2]

1.1. 칼리프의 계승(수니파)

1.1.1. 정통 칼리프

처음에는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움마를 통치할 지도자를 지명하기 위해 '선출'되었다. (정통 칼리파 참조) 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가 암살되었다.

1.1.2. 우마이야 - 압바스 칼리프

아위야가 칼리파 자리를 차지한 뒤, 세운 우마이야 왕조부터는 직위가 세습되기 시작했지만 선출의 관례는 계속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한 압바스 왕조 때부터 수니파는 무하마드의 일족 쿠라이쉬가에서 칼리프를 세습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었다. 시아파알리의 자손에게 칼리파의 계승권이 있다고 여겨졌고 하와지리파는 사도의 혈통에 구애되지 않고 정통 칼리프 시대처럼 신앙의 독실함에 따라 선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다 중반부, 9세기 말 이후부터는 정치적 권력을 상실하고 명목화된다. 술탄이나 , 아미르들이 땅 차지하고 나면 확인 도장 찍어주는 역할. 이 때부터는 일본막부 시절 덴노와 마찬가지로 꼭두각시 신세. 셀주크 왕조가 붕괴한 뒤 잠시나마 권력을 되찾는 듯 보였으나 곧 몽골의 침입으로 압바스 왕조는 일단 멸망했다.(...)

1.1.3. 카이로 압바스 칼리프

이집트맘루크 왕조가 압바스조의 혈통 중에 어리버리한 놈 하나를 데려다가 칼리파랍시고 카이로에 모셔 놓는다. 노예 왕조에서 정통성이 취약해 서로 죽고 죽이는 군벌간의 다툼이 많았던지라 정통성 강화 차원에서 얼굴마담이 하나 필요 했던것. 결국 그렇게 꼭두각시가 되서 조종 받고 살다가 오스만 제국셀림 1세가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후 오스만 술탄에게 칼리파 직위가 넘어갔다.

1.1.4. 오스만 칼리프

오스만 제국은 칼리파 칭호를 정식으로 얻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사실 정식으로 양도받기 전에도 이미 자칭하고 있었다.) 그저 술탄의 수많은 칭호 중 하나 정도로 취급되었다. 다만 18세기 말부터 러시아프랑스가 오스만 제국내 정교회 신자와 가톨릭 신자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에 대항해 자국내 무슬림 밀레트의 대표자로써 칼리파라는 호칭을 재부각시켰고, 이를테면 러시아와 맺은 '퀴췩카이나르자(Küçük Kaynarca)조약'에서도 오스만측 국가원수를 '칼리파'로 칭하고있다. 이후 오스만 제국에서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고 있는 이슬람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의 칼리파를 그들의 대표자, 혹은 정신적 지주로 여기도록 외교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에서 보낸 밀사들은 인도, 중국같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이슬람지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때 밀사로 파견된 사람중에서 크림 출신의 압둘라흐만 이브라힘은 중국에 거주하는 위구르를 비롯한 무슬림들에게 파견되는 와중에 조선일본을 들러 이 지역의 상황을 터키에 보고하기도 했다. 또한 칼리파를 오스만 제국이 계승하면서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도 한동안은 무슬림들이 메카를 순례할때, 고향을 떠나서 제일 먼저 칼리파가 살고 있는 이스탄불을 순례한 다음에 메카로 떠나는 풍습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자 칼리파)이였던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이 1922년 케말 파샤에 의해 퇴위당하면서 술탄제는 폐지되었지만, 칼리파 직위만은 사촌 압뒬메지트 2세가 이어받았다. 그러나 불과 1년 4개월 뒤인 1924년 봄 완전 폐지되어, 칼리파 직위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한때 메카 태수 후세인 빈 알리[3]가 칼리파를 칭하기도 했다)

1.2. 병행 칼리프

1.2.1. 파티마 칼리프

909~1171

시아파 이스마일 파에 속한다.

1.2.2. 코르도바 칼리프

후우마이야 왕조는 당초 안달루스 지방의 에미르를 자칭했으나, 서기 900년대 초에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가 나타나서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확장해오자 이에 대항하여 자신들도 칼리프를 자칭하게 된다.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 다음으로 번영한 코르도바를 다스리고 초기 칼리프 우마이야 왕조의 후손인 자신들이, 갑툭튀한 파티마 왕조 따위도 칼리프 하는데 칼리프 못할게 뭐냐는 생각이었을지도. 아무튼 칼리프 칭호는 우마이야 왕조의 권위를 크게 높여주었다.

1.2.3. 무와히드 왕조

1147–1269

얘들도 칼리프 칭호를 자칭했다.

1.3. 현대의 칼리프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에서 90여 년 만에 마침내 결국 칼리파를 부활시켰다. 다만 이슬람 국가의 칼리파는 여러곳에서 제대로 공인된 칼리파가 아니다.게다가 하는 짓도 그야말로 좋았던 옛날로 무작정 되돌리려다 망한 왕망급 이걸 보고 부러웠는지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뛰는 격이라고 나이지리아의 과격 이슬람 테러단체 보코 하람도 스스로를 칼리파국가로 선언했다. 보코 하람의 칼리프 선언은 (이미 자신들을 IS의 산하 단체로 선언했으므로) IS 지도자 바그다디를 칼리프로 찬양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속단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 이란 역시 이슬람 국가지만 시아파인지라 이미 아바스 왕조 때부터 수니파의 칼리파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외에 아마디야 무슬림들 또한 지도자의 명칭을 칼리프로 내세우고 있다.[4]

1.4. 칼리프 국

칼리파를 지도자로 삼았던 이슬람 국가(Caliphate, الخلفاء)들은 다음과 같다.[5]

왕조 명칭 연대 비고
정통 칼리파 시대 632~660 선출 칼리파
우마이야 왕조 660~750 최초의 세습 칼리파
아바스 왕조 750~1258 동서 이슬람 분열
후우마이야 왕조 756~1031 스페인에 위치. 929년부터 칼리파를 칭함
파티마 왕조 909~1171 스마일파 왕조
카이로 아바스 왕조 1261~1517 오스만 제국 황제에게 선양.
오스만 제국 1517~1924 터키공화국 종교부로 역할이 넘어감. 칼리파제 폐지.
이슬람 국가 2014~ 2014년 이라크 내전 중 초대 칼리파 선출
보코 하람 2014~ 2014년 8월 칼리파 국가 선언

2. 겁스 무한세계에 등장하는 평행계

3. 원피스의 등장인물

칼리파(원피스) 항목 참조.

4. 영화 및 음악 제목

La Califfa. 1970년 이탈리아 영화.

과부가 된 젊은 미망인 칼리파가 죽은 남편이 일하던 공장에 일하면서 거기 사장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영화보다도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은 음악이 더 유명하며 세라 브라이트먼노래로 불러서 국내 TV 광고배경음악으로도 나와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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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교황도 근현대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황령 내에서는 국가원수였다. 게다가 잘 나갔을 무렵의 교황령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 대부분을 영유하는 이탈리아 도시국가 기준으로 대국이었다.
  • [2]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서방 국가들의 개입 능력 감소. 경제난과 독재의 결합으로 인해 폭발한 민심에 따른 중동 지역의 국가 막장 테크 진입. 여기에 본질적으로 세속주의보다는 종교주의에 가까운 이슬람 사회 특성상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 [3] 하심 가의 당주로, 요르단의 압둘라 1세와 이라크의 파이살 1세의 아버지
  • [4] 인도및 파키스탄에 주로 분포하는 신흥 이슬람 종파라고 보면 된다. 자신들을 원리주의자라고는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와 비교하면 매우 개념있는 편에 속한다. 항목 참조.
  • [5] 빗금선 친 것은 역사에서 인정되지 않은 야매집단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