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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last modified: 2015-02-09 17:36:3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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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환경
4. 기타

القاهرة
al-Qāhirah
Cairo

1. 개요

이집트의 수도. 별명은 지구아랍 세계수도. 인구는 6,758,581명, 카이로 도시권(대한민국수도권같은 것)인구는 17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이다. 실제로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다. 즉 아랍의 수도라는 별명이 틀린 별명이 아니라는 것. 이집트 동북부 나일 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중심지로 이미 옛날부터 북아프리카의 중심지로 활약했으며,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집트의 수도란 점에서 이미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역사

고대 이집트 왕조들의 수도 역할을 했던 멤피스가 카이로 근교에 있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건설된 알렉산드리아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새 수도가 되면서 멤피스 지역은 점차 쇠퇴했다. 그 후 수백 년 간 알렉산드리아와 나일 델타 지역이 이집트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아랍 이슬람 세력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빼앗은 7세기 이후 상황이 반전되었다. 칼리파 우마르는 이집트의 안정적 통치를 위해 642년에 새 군사도시 푸스타트를 세워 새 수도로 삼았고, 점차 푸스타트가 이집트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왕조가 바뀌면서 아스카르(압바스 왕조), 까타이(툴룬 왕조) 등이 새 수도로 조영되기도 했으나 인구나 규모면에서는 여전히 푸스타트가 중심지였다.

이후 969년 이집트를 정복한 파티마 왕조튀니지를 버리고 이집트를 새 중심지로 삼으면서 푸스타트 남쪽에 신도시를 조영했는데, 그 이름을 "승리자", 혹은 "정복자"를 의미하는 까히라로 정하니 이것이 곧 우리가 말하는 카이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알 아즈하르가 들어선 것도 이 때다. 십자군 전쟁예루살렘 왕국의 공격 위협에 노출되어 푸스타트 구 시가지를 불태우는 등 위기도 겪였지만, 살라흐 앗 딘 집권 이후 카이로는 명실상부한 강대국의 수도가 되어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시대를 거치며 번영하였다. 당시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는 쇠퇴일로에 잇었으므로 이미 중세부터 아랍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중세 말부터 카이로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우선 흑사병이 14~15세기에 걸쳐 수십 차례나 유행하여 카이로 인구를 작살냈다. 당시 맘루크 왕조에서 맘루크를 사오는 주 거래처(...)가 흑해 지역의 킵착계 튀르크 족속들이었는데, 이곳은 유럽 페스트 유행의 근원지였다. 따라서 흑사병이 진정되지 않고 계속 유행한 요인이 그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거기다가 중세 말 유럽 국가들이 지리상의 발견, 신항로 개척 등을 시작하면서 인도양을 통한 중개 무역을 주로 하던 이집트의 상업이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맘루크들의 내분과 정치 불안 등 이런저런 요인으로 골골대던 카이로는 결국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정복 이후 강대국의 수도에서 지방 도청소재지 정도로 격이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오스만 제국의 속령으로 지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 이후 무함마드 알리 왕조가 이집트를 통째 들고 독립하면서 이집트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카이로는 이집트의 중심으로써 계속 성장, 발전하면서 무함마드 왕조의 친 서구화 및 근대화 정책, 영국 식민지 지배, 민족주의 발흥 등 이집트 근현대사의 주 무대가 되어 현대에 이른다.

3. 환경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답게 환경오염이 심각해서, 카이로의 유물들에 직접적인 손상을 끼치는 수준까지 와 버렸으니 흠좀무.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경제개발기 때와 흡사하다. 수천년을 버텨 온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거석상이 환경오염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05년 카이로 밖으로 밀려난 게 대표적인 케이스.

게다가 곳곳에 짓다가 만 건물들이 가득한데 다 지으면 세금을 때리기에 대충 몇몇 부분은 남겨둬서 '공사중입니다.'이러면 건물세가 보류되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좋을지 몰라도 이런 건물이 꽤 많아서 도시 미관에 나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는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지는 도시로 여러모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로 지하철을 놓을 때 땅 한번 파니까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나와서 여러모로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카이로 관광 갈 때에는 섣불리 땅 파지 말자. 특히 대로 주변에서 손으로 장난삼아 땅 파봤다가 유물나오면 책임 못 진다.

4. 기타

1997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어떤 영국 출신 흡혈귀친구천국을 구현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가 미국 상원의원을 드라이버 삼아 인도를 폭주한 후 상원의원을 집어던진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