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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last modified: 2019-11-10 16:48:46 Contributors

Contents

1.
2. 親韓
2.1. 친한인 사람들을 추가 기입하기 전에
2.2. 대표적인 친한파
2.2.1.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2.2.2.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

친하다.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는 뜻의 형용사.

2. 親韓

말 그대로 한국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 한국과 친한.
전통적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 한국인 사이의 '(情)' 문화에 호감을 느끼고 친한파로 기운 쪽이 많다. 개화기,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고 이를 원조할 목적에서 친한파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나 아예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문화에 가까워지는 사람도 늘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한류의 영향력도 제법 큰데 합한족 같은 이들에 등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대부분 남한인이니 만큼 친북만 하는 사람은 대개 이쪽에 치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 지한파 혹은 한국통이 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에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물론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것과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같이 따라붙는 속성은 아니지만 대체로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친한파와 지한파는 다른 말이지만, 친일파란 단어의 이미지가 워낙 나빠서 한국에선 친한파도 지한파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강민성 강사 말대로 친일파가 아니라 민족반역자라고 했으면 친한파라는 말도 피해 볼 일이 없었겠지

여담이지만 일본 정부일본 우익, 넷 우익들은 친한파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인식하는데, 자국의 친한파의 경우 좌익, 매국노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하면 한국계로 규정해버린다.

2.1. 친한인 사람들을 추가 기입하기 전에

보통 한국인 친구 몇 명을 알고 있다거나, 단순히 한국 음식이나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친한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일본은 별로 관심없지만 일본 음식이나 문화에는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주로 공인된 방송에서 스스로 인증을 한 경우가 해당된다.

또한 중립적 시각으로 정말 이 인물을 친한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를 유심히 검토할 것을 권한다. 또한 특정인을 친한으로 소개하기 위한 근거가 객관적이고 타당한지 다시 한 번 살피는 것이 좋다.

2.2. 대표적인 친한파

다음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을 동경하거나 한국을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 위주로 적었다.
가나다순으로 추가할 것.

2.2.1.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 고교쿠 덴노
  • 노 부스노스케(1878 ~ 1956)
  • 게이샤 스기타니 오타마
  • 가네코 후미코
  • 토쿠 슈스이
  • 김충선 - 본래 일본 이름으로는 사야카(沙也可)
  • 시모토 모리마사
  • 니시자카 유타카 - 대한제국의 을사늑약으로 합병당하자 일본의 평화 주장과 동양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권고하고 한중일의 순치관계를 강조했다. 이후 일본제국의 고위급인 이토 히로부미와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의 전횡을 보고했고, 그들이 듣지 않자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밝히기 위해 다락에서 떨어졌으나 죽지 않았다. 후에 많은 군중 앞에서 연설 후에 자결하였다.
  • 다우치 치즈코 - 목포에서 '공생원'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을 운영했다. 세상을 떠날 때 목포 시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무려 3만명이나 모여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 케조에 신이치로
  •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히데타다
  • 도로(1412~????)
  • 등구랑[1]
  • 타흐신 야즈즈
  • 비오 12세
  • 사카이 나카 - 우장춘 박사의 처.
  • 석호필 - 본명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리그베다 위키에는 석호필 항목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계에 폭로한 캐나다인. 그 외에도 여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였다. 공로를 인정받아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외국인이 되었다. 이분이 자신의 신념을 담아서 만든 한국식 이름이 바로 석호필이다.
  • 다 가이치 - YMCA에서 일하면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일제의 만행을 비판하고 독립투사들의 석방에 온 힘을 쏟았다 인계받은 보육원에서 1,000명의 한국인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 후 1961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가 돌보았던 한국인 아이들과 마지막 여생을 지내고 양화진 묘원에 안장되었다.
  • 다케유키
  • 사카와 타쿠미 - 조선총독부 산림과 직원이었지만 공예를 비롯한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 전체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 조예의 수준도 매우 깊었다.[2] 그 외에도 한복을 즐겨입고 한식을 즐겨 먹는 등 한국의 문화, 특히 한국의 서민문화 전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졌다. 후일 병사한 뒤에도 일본 땅이 아닌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밑의 야나기 무네요시와는 막역지우였다고 한다.
  • 나기 무네요시[3]
  • 어니스트 베델 (1872 ~ 1909, 한국명 배설 裵說) - 대한제국 시대의 영국 출신 언론인.
  • 사히 겐즈 (1898 ~ 1988)
  • 토 분키치
  • 이방자
  • 조지 쇼 - 아일랜드계 영국인[4]으로, 당시 자신의 조국인 아일랜드와 똑같이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을 동정하여 이륭양행이라는 무역선박회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역할도 겸하도록 허가해 독립군의 자금을 운송하는 것을 도왔다.
  • 호머 헐버트 - 헤이그 특사가 네덜란드 헤이그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하였고 한글 연구와 발전에 큰 공헌을 세웠다. 그는 유언으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다.
  • 후세 다쓰지 - 일본의 변호사. 재판에 기소된 독립운동가들을 수차례 변호했고, 조선의 독립 운동을 지지하였다. 8.15 해방 이후에는 주로 재일 한국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으며 한국을 위한 헌법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이다.
  • 지와라 세이카, 야시 라잔, 베노모리 호슈 등 일본의 성리학[5]
  • 아스카시대의 친(親) 백제파 정치인들(소가노 이루카 가노 우마코 소가노 에미시 쇼토쿠 태자)
  • 엔노 오즈누
  • 마루오까
  • 히미코

2.2.2.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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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선 세종 시기에 귀화한 일본인으로, 대마도 정벌 준비 및 전쟁에서 활약했다.
  • [2] 실제로 그의 저서들의 연구 수준은 오늘날의 한국 학자들의 연구 수준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깊었다.
  • [3] 다만 제국주의적인 관점을 벗지 못한 채 한국인에 대한 '동정' 선에서 그쳤다는 비판도 있다.
  • [4] 이 당시에는 아일랜드가 독립하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영국 국적이다.
  • [5] 일본의 성리학은 조선의 유학자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을 시조로 하고 있다. 정약용오규 소라이를 읽어보고 일본에 성리학이 이렇게 발전했으니 앞으로는 조선을 탐내지 않을 것이라고 설레발을 친 바 있다.
  • [6] 2008 ETPfest 관련 내한 때 나온 내용.
  • [7] 딱 미국 타블로이드지 수준으로 대우했다.
  • [8] 특히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정부에게 "독도가 일본땅이면, 일본 전체가 한국땅이다"라고 일침을 놓은 것이 유명하다.
  • [9] 다만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때문인지 보수세력에선 그를 일절 무시하곤 한다.
  • [1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166455
  • [11] 참고로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한국에 호의를 가진 것.
  • [12] 일제강점기때 일제의 강제 징용에 의해 카미카제로 산화한 조선인 탁경현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자비를 털어 경남 사천시에 위령비를 세우려고 했다가 친일파라는 이유에 의한 한국측의 거부로 무산된 흑역사가 있다.
  • [13] 참고로 일본방송에서의 일이다.
  • [14] 한국어 제목으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15] 참고로 말하지만 이건 한국인 작품이 아닌 일본인 작가가 지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