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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last modified: 2020-02-23 17:04:00 Contributors

Contents

1.
2. 親韓
2.1. 친한인 사람들을 추가 기입하기 전에
2.2. 대표적인 친한파
2.2.1.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2.2.2.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

친하다.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는 뜻의 형용사.

2. 親韓

말 그대로 한국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 한국과 친한.
전통적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 한국인 사이의 '(情)' 문화에 호감을 느끼고 친한파로 기운 쪽이 많다. 개화기,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고 이를 원조할 목적에서 친한파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나 아예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문화에 가까워지는 사람도 늘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한류의 영향력도 제법 큰데 합한족 같은 이들에 등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대부분 남한인이니 만큼 친북만 하는 사람은 대개 이쪽에 치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 지한파 혹은 한국통이 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에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물론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것과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같이 따라붙는 속성은 아니지만 대체로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친한파와 지한파는 다른 말이지만, 친일파란 단어의 이미지가 워낙 나빠서 한국에선 친한파도 지한파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강민성 강사 말대로 친일파가 아니라 민족반역자라고 했으면 친한파라는 말도 피해 볼 일이 없었겠지

여담이지만 일본 정부일본 우익, 넷 우익들은 친한파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인식하는데, 자국의 친한파의 경우 좌익, 매국노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하면 한국계로 규정해버린다.

2.1. 친한인 사람들을 추가 기입하기 전에

보통 한국인 친구 몇 명을 알고 있다거나, 단순히 한국 음식이나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친한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일본은 별로 관심없지만 일본 음식이나 문화에는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주로 공인된 방송에서 스스로 인증을 한 경우가 해당된다.

또한 중립적 시각으로 정말 이 인물을 친한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를 유심히 검토할 것을 권한다. 또한 특정인을 친한으로 소개하기 위한 근거가 객관적이고 타당한지 다시 한 번 살피는 것이 좋다.

2.2. 대표적인 친한파

다음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을 동경하거나 한국을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 위주로 적었다.
가나다순으로 추가할 것.

2.2.1.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 고교쿠 덴노
  • 김충선 - 본래 일본 이름으로는 사야카(沙也可)
  • 다우치 치즈코 - 목포에서 '공생원'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을 운영했다. 세상을 떠날 때 목포 시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무려 3만명이나 모여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 만력제 - 장장 30년간 황제로서 해야 할 업무를 파업으로 때우다가, 임진왜란이 터지자 명나라 조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출병을 결정했다. 그 덕에 명나라는 멸망
  • 무타구치 렌야
  • 석호필 - 본명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리그베다 위키에는 석호필 항목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계에 폭로한 캐나다인. 그 외에도 여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였다. 공로를 인정받아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외국인이 되었다. 이분이 자신의 신념을 담아서 만든 한국식 이름이 바로 석호필이다.
  • 다 가이치 - YMCA에서 일하면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일제의 만행을 비판하고 독립투사들의 석방에 온 힘을 쏟았다 인계받은 보육원에서 1,000명의 한국인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 후 1961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가 돌보았던 한국인 아이들과 마지막 여생을 지내고 양화진 묘원에 안장되었다.
  • 사카와 타쿠미 - 조선총독부 산림과 직원이었지만 공예를 비롯한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 전체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 조예의 수준도 매우 깊었다.[1] 그 외에도 한복을 즐겨입고 한식을 즐겨 먹는 등 한국의 문화, 특히 한국의 서민문화 전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졌다. 후일 병사한 뒤에도 일본 땅이 아닌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밑의 야나기 무네요시와는 막역지우였다고 한다.
  • 나기 무네요시[2]
  • 어니스트 베델 (1872 ~ 1909, 한국명 배설 裵說) - 대한제국 시대의 영국 출신 언론인.
  • 위안스카이 - 친한 성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임오군란 진압 목적으로 20대 초반에 처음 한국을 찾아 한국에 오래 머무르면서 중국의 정치가 중에서도 한국에 대해 잘 아는 한국통이었다. 고종을 대놓고 혼군(昏君)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조선 정부를 깔보았고 내정간섭을 일삼았지만 정황상 한국인과 한국문화 자체에 대한 편견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자를 대체할 문자 후보로 한글을 고려해보기도 했으며, 수많은 조선인 첩을 두었고 그 중 안동김씨가 낳은 차남 위안커원(원극문, 袁克文)은 화제국 황위계승자 1순위로 거론된 바 있다.[3] 이건 장남 위안커딩(袁克定, 원극정)이 멍청한 짓을 몇 번 저질렀던 터라.
  • 임진왜란 때 귀화한 수많은 항왜들 - 다만 이들 전부가 순수하게 조선에 대한 호감으로 귀화한 것은 아니고, 전시 상황의 굶주림이나 패전으로 인해 항복한 이들도 존재했다.
  • 자와할랄 네루 (1889 ~ 1964) -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저서《계사 편력》에서 3.1 운동 등 한국의 독립 운동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저술했다.
  • 장제스 (1887 ~ 1975) - 중국 (중화민국) 의 정치가이자 군인. 1930년대 이후 독립군에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에 막대한 지원을 하였다.[4] 1946년, 광복 이후 제작된 첫 한국 영화 「자유만세」를 보고 "自由萬歲 韓國萬歲 (자유만세 한국만세) "라는 휘호를 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제일 먼저 수교했으며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후퇴한 이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항하는 혈맹에 준하는 관계를 유지하였다.
  • 조지 루이스 쇼 - 아일랜드계 영국인[5]으로, 당시 자신의 조국인 아일랜드와 똑같이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을 동정하여 이륭양행이라는 무역선박회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역할도 겸하도록 허가해 독립군의 자금을 운송하는 것을 도왔다.
  • 지야요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로로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 호머 헐버트 - 헤이그 특사가 네덜란드 헤이그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하였고 한글 연구와 발전에 큰 공헌을 세웠다. 그는 유언으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다.
  • 후세 다쓰지 - 일본의 변호사. 재판에 기소된 독립운동가들을 수차례 변호했고, 조선의 독립 운동을 지지하였다. 8.15 해방 이후에는 주로 재일 한국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으며 한국을 위한 헌법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이다.
  • 지와라 세이카, 야시 라잔, 베노모리 호슈 등 일본의 성리학[6]

2.2.2.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 거스 히딩크
  • 귀화인 대부분 (대표적으로 이참, 하일 등)
  • 기욤 뮈소
  • 나이토 야스히로 - 만화가동방신기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의 열렬한 팬이다.
  • 니이가키 리사 -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아이돌. 다소 어설프지만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다.
  • 다르빗슈 유 - 일본인과 중동계의 혼혈이라서 일본인치고 사상이 자유로운 편이다.
  • 다카하시 아이
  • 라이언 사도스키 - 前 롯데 자이언츠의 용병 투수. 한국어 수준도 높으며 트위터를 보면 상당한 수준이다.
  • 쿠텐 호시노
  • 마도노 미츠아키
  • 마릴린 맨슨 - 한국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을 입기도 했고 한국 영화를 즐겨본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한국에 지인들이 조금 있다고 한다.[7]
  • 마에다 아츠코
  • 마이클 잭슨 -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고 한국에서 매스컴이 그렇게 잘 해준것도 아니였는데[8] 남북이 통일되면 한국에서 다시 콘서트를 하겠다고 했었지만...
  • 마크 리퍼트 - 現 주한미국대사
  • 미야자키 아오이
  • 미야자키 미호
  • 미카
  • 우터 하멜
  • 베르나르 베르베르 - 한때, 개미가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던 시절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왕창 팔렸기 때문에 자신의 문학을 가장 먼저 이해해준 나라라는 의미지, 단순히 책 잘 사줘서 고맙다는 정도의 감정은 아니다. 아무튼 그덕분인지 작품을 낼때마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꼭 들어가고있다.
  • 보리스 베레좁스키 - 1번 항목. 2002년 이후로 거의 매년 한국에 공연하러 오는 피아니스트. 한국계 아내 사이에서 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꼭 가르치겠다고 한 바 있다.
  • 브루스 커밍스 - 6.25전쟁 부분에서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역사학자이다. 한국인의 시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침 유도설을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구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해제한 기밀문서에서 김일성이 침략준비와 허가를 48회나 요청했다는 게 밝혀져서 흑역사가 되긴 했지만 부르스 커밍스의 주장 자체는 상당히 근거가 있는 내용이고, 학문은 어디까지나 학문의 분야이다. 그리고 현재 이 남침 유도설은 연세대학교의 박명림 교수에 의해 완벽하게 극복된 상황이다. 실제로 6.25 전쟁의 참전용사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있되 잘못된 것은 비판할 줄 아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와이 요시오 - 무적코털 보보보의 작가.
  • 사잔 올 스타즈
  • 사토 나츠키
  • 샘 해밍턴[9]
  • 성룡
  • 세키 토모카즈
  • 스눕 독
  • 오엔
  • 섀도스 폴
  • 위에 - 클론의 <꿍따리샤바라>를 중국어로 번안하였다. 한국 관광대사로 일하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양녀 관계를 맺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자신의 블로그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
  • 아키히토일본 텐노 - 현 일본 우익들과는 정반대의 온건한 스탠스가 돋보인다. "간무 천황에게는 백제인의 피가 섞여있습니다."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외교적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어서 좀 애매하다.
  • 아오이 소라 -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에 호감을 나타내는 글들을 자주 올리는 편. 한국 데뷔도 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하정우의 열렬한 팬이기도.
  • 야노 시호
  • 야마모토 타로
  • 아~쨩 - Perfume의 멤버. K pop을 좋아하며 라디오에서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싶어!"라고 말한적도 있다.
  • 어셔
  • 앤드루 가필드
  • 에미넴
  • 영국남자 - 영국인 유투버
  • 오로르 - 프랑스 만화가.
  • 다 하루키 - 도쿄대 명예교수. 진보적 친한파로 위안부 문제나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다.[10] 그리고 본인의 저서인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한국이 실효지배하는 독도 = 다케시마에 대한 주권 주장은 일본이 단념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주장을 실어 개념이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이란 걸 인증했다.[11]
  • 오타니 료헤이
  • 리 콤판 - 만화 이순신을 그린 미국 만화가. 더군다나 이 사람은 아산시의 이순신 축제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는 것.[12]
  • 우스이 요시토 - 짱구는 못말려 원작자.
  • 유우키 히로
  • IKKO - 여러 권의 한국 여행기나 미용관련 서적을 펴내면서 한국인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한국을 빨았다.
  • 이이다 리호 - 같은 뮤즈 멤버 성우인 Pile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한국 수험생에게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세월호 사건때는 위로의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게재도 했다. 그것도 한국어로. 심지어는 허니버터칩을 먹고 싶다고 올린 페북 페이지가 화제가 되어 한 한국팬이 한 박스를 보내주자 고맙게 먹고 있다며 감사글까지 올렸다. 심지어는 한국팬들에게 선물 보낼 주소까지 공개까지 했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사실 친한까지로 보기엔 조금 어려운듯하나 태권도에 매우 애정을 가지고 있고 실제 한국인에게 태권도를 배웠다고 한다. 2010년 바르셀로나 방한 당시 선수단 중에서 바르셀로나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한국팬들에게 친절하게 팬서비스를 해주었고 기자들에게도 웃으면서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래서 한국을 꽤 좋게 생각하고 있는 듯
  • 스 랭글
  • 카고 아이 - 모닝구 무스메의 멤버였던 아이돌 가수.
  • 카노 유이
  • 카리야 테츠 - 맛의 달인의 작가. 항목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대표적인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 서린 헤이글 - 한국인 입양딸이 있고 페이스북에 한국어로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한국 팬들이 김서린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고.
  • 캐슬린 스티븐스 (심은경) - 주한 미국 대사. 한미수교 후 첫 여성 미국 대사로 예전에 한국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 코지마 히데오
  • 쿠라시나 카나
  • 쿠사나기 츠요시 (초난강) - 친한파의 끝판대장. (...)
  • 로다 후쿠미 - 일본의 중견 탤런트, 배구선수 강만수 선수의 팬이 된 것을 계기로 소속 사무소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유학까지 한다.[13] '유리화'를 비롯한 국내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한국관련 서적도 다수 발간했다. 88올림픽, 한일 월드컵 대회의 후지TV 리포터로 한국 취재원을 맡았고, 포항시 홍보대사, 한류산업 문화교류 분야 대상도 받았다.[14] 방송에서 과거 한국에서 당한 강간미수 사건을 들어서 종군위안부들은 그 이상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가 우익들에게 까였고 다케시마를 끝까지 독도라고 발언했다가 또 까였다.[15] 결국 2011년, 한국으로부터 수교훈장(2등급)을 받았다.메데타시 메데타시 일본에서는 '한국과 결혼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 쿠와타 케이스케 - 사잔 올 스타즈의 보컬이자 리더. 한국에서 쿠사나기 츠요시에 비해 덜 알려졌을 뿐이지 만만치 않은 친한파 연예인이다.게다가 짬밥 37년이다.
  • 크리스틴 러브 - 한국 역사와 문화에 통달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을 주제로 만든 Hate Story라는 수작을 만들어 낸다.
  • 타카야 츠쿠다
  • 타카하시 류키
  • 타케이 에미 - 최근 급부상한 친한파 일본 연예인. 동방신기의 팬이다. 고향이 나고야인데, 도쿄로 상경 (上京) 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동방신기를 보며 많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2013년 일본 방송에서 그녀의 3일간 한국 방문기를 다큐형식으로 방영했고 이 프로가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 케이 토카 - 라이트 노벨 그녀의 플래그가 꺾이면, 10세의 보건체육, 쿄황제 호죠 렌카 작가. 한국 여행 중에 한국의 음식이 맛있었다고 전했다. http://blog.naver.com/kwon7749/30152798276
  • 탕웨이
  • 토니 페르난데스
  • 파비앙
  • 하마사키 아유미 - 동방신기의 팬이라고 본인이 밝혔으며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보는 편이라고 한다. 예전에 트위터에 한국어로 트윗을 하면서 한국팬들을 놀라게 했었다.
  • 야마 토루 - 라이트노벨 9S의 작가. 쉬리를 감명깊게 보았고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새로 후기를 쓰는 등 개념찬 모습을 보여준다.
  • 이타니 겐지로 - 토끼의 눈[16]으로 일제감정기 치하의 한국인이 얼마나 핍박당했는지 가르쳐주었다.[17] 그래서 혐한초딩들에게 협박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사카 유지 -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독도 지킴이 및 독도 전문가
  • 호시 소이치로 - 일본의 성우.
  • 후지이 미나
  • 후지타 사유리
  • 지우라 메구 - AV배우. 한국어도 꽤 능숙하게 사용한다.
  • 휴 잭맨
  • 히로하시 료 - 일본의 성우.
  • DJ OZMA - 한국의 곡들을 전문적으로 리메이크해 가는 가수. 하지만 DJ DOC와는 사이가 안 좋다. DJ DOC 항목 참고.
  • eat your kimchi - 캐나다 출신 유투버
  • GACKT
  • SPYAIR - 일본의 록밴드. 3번째 싱글 PV를 서현역에서 찍은 것으로 유명하며,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도 참여하고 내한도 여러 번 할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이다. 보컬이 한국 먹거리를 들고 인증샷을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
  • U1-ASAMi - BEMANI 아티스트들 중 특이하게 한국 관련이나 한국인과 친해지고 싶다는 트윗을 자주 하는 편이며, 세월호 참사때는 위로하는 트윗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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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그의 저서들의 연구 수준은 오늘날의 한국 학자들의 연구 수준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깊었다.
  • [2] 다만 제국주의적인 관점을 벗지 못한 채 한국인에 대한 '동정' 선에서 그쳤다는 비판도 있다.
  • [3] 정작 위안커원 본인은 칭제건원을 반대했다.
  • [4] 장제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한국을 중화민국의 위성국으로 삼을 목적으로 한국 독립운동세력을 지원하고, 또한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명시하는 특별조항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에게 개발리고 타이완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본인이 생각한 미래는 오지도 못했다. 어쨌든 한국인에게 확실히 지원을 한 건 맞으므로 여기에 포함시킨다.
  • [5] 이 당시에는 아일랜드가 독립하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영국 국적이다.
  • [6] 일본의 성리학은 조선의 유학자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을 시조로 하고 있다. 정약용오규 소라이를 읽어보고 일본에 성리학이 이렇게 발전했으니 앞으로는 조선을 탐내지 않을 것이라고 설레발을 친 바 있다.
  • [7] 2008 ETPfest 관련 내한 때 나온 내용.
  • [8] 딱 미국 타블로이드지 수준으로 대우했다.
  • [9] 특히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정부에게 "독도가 일본땅이면, 일본 전체가 한국땅이다"라고 일침을 놓은 것이 유명하다.
  • [10] 다만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연구 때문인지 보수세력에선 그를 일절 무시하곤 한다.
  • [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166455
  • [12] 최근에는 방한하여 영화 명량을 관람했다는 것.
  • [13] 참고로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한국에 호의를 가진 것.
  • [14] 일제강점기때 일제의 강제 징용에 의해 카미카제로 산화한 조선인 탁경현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자비를 털어 경남 사천시에 위령비를 세우려고 했다가 친일파라는 이유에 의한 한국측의 거부로 무산된 흑역사가 있다.
  • [15] 참고로 일본방송에서의 일이다.
  • [16] 한국어 제목으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17] 참고로 말하지만 이건 한국인 작품이 아닌 일본인 작가가 지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