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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왕

last modified: 2018-07-26 21:29:35 Contributors

천왕과 헷갈리지 말자

親王

황제와 가까운 황족에게 주어지는 작위.[1]

Contents

1. 개요
2. 사례
2.1. 중국
2.1.1. 청나라
2.2. 대한제국
2.3. 일본
3. 번역 관련 이슈
3.1. 친왕을 영어로 번역할 때
3.2. 영어 칭호를 친왕으로 번역할 때


1. 개요

중국에서는 황제의 아들에게 벼슬로서의 왕작(왕(王))을 주었는데, 이 중 황제와 항렬이 같은 왕을 다른 왕(王)과 구분하여 친왕이라 하였다. 즉, 황제의 아들은 분봉을 받을 수 있는 왕작이라 연왕 등 분봉왕의 지역명을 딴 왕작을 받고, 이들은 주로 국경지방에서 국경을 방위하는 소임이 주어졌다. 하지만 황태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순간 같은 항렬의 왕들은 이제까지 하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수도로 와 반(半)감금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황제와 항렬이 같은 왕들이 차후 후계를 위협하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친왕이라는 표현은 당나라에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는 예친왕 도르곤이나 공친왕 혁흔처럼 친왕이 관료가 되면서 오히려 왕실내부의 알력 다툼에서 승리해 권력을 휘두르는 권신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또한 이들은 오늘날 북경에 남아있는 남아있는 공친왕부, 순친왕부, 옹친왕부같은 대규모 저택인 왕부(王府)에서 생활하였다. 즉, 친왕 타이틀을 붙인 순간 황위와는 영원히 작별인 것이다. (참고 1 / 참고 2)

에서는 황제와 가까우며 많은 권력을 가진 세습 친왕가(親王家)가 몇 개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기록에서 '친왕'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는 친왕이 생긴 것은 대한제국. 이 때 대한제국이 황제국을 칭하면서 이웃 청나라의 왕공작법(王公爵法)을 본따 작위를 신설하였고 몇몇 왕자를 친왕으로 임명되었다. 고종이 광무 황제가 되면서 고종의 형이었던 이재면은 나중에 흥친왕의 위를 받았고, 고종의 아들 이척이 황제가 되면서(융희 황제) 그 형제들[2]이 각가가 친왕 호를 받았다.

현재 친왕 칭호를 쓰고 있는 나라가 일본 밖에 없다 보니 친왕 칭호를 일본식 표현이라고 오해해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영친왕[3]을 영왕이라 부르고 의친왕을 의왕이라 부르는 등) 이는 명백한 오류. 친왕제 자체가 청나라에서 온 것이다. 이에 대한 기사로는 '영왕 은을 황태자로 책봉하다' 기사에서 고종이 영왕 은을 '영왕'으로 부르고, 신하는 '영친왕'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칙을 내리기 전이므로 고종은 당연히 영왕이라 부르고, 고칙을 받은 신하들은 그 명에 따라 의친왕이라 부르는 것이다. 의친왕 이강을 육군 부장에 임명한 후, 육군 부장 의왕 이강에게 일본에 가서 열병식에 참가하라고 하기도 한다.[4] 또한 영친왕의 경우에는 영친왕 책봉 금책에서도 '영친왕'이란 칭호를 사용하고, 공적으로 사용하는 도장에서 '영친왕'이라고 쓰고, 본인도 '영친왕'이라고 서명하고 '영친왕'이라고 쓰인 도장을 찍었으므로 어느 쪽이 정식 호칭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흥친왕 책봉 금책에서도 흥친왕(興親王)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에서는 덴노의 직계자손[5]에게 친왕이라는 봉작을 내리고 있다. 남성은 친왕, 여성은 공주가 아니라 독특하게 내친왕[6]이라 한다.

2. 사례

2.1. 중국

중국에서는 '친왕'이라는 용어는 일찍부터 등장했으나 칭호의 일부로 포함되어 쓰인 경우는 청나라가 유일하다. 무슨 말이냐면,

  • 명나라 때까지의 친왕은 '○왕'[7][8] 식으로 불렸고, 사후에 시호를 받으면 '○●왕'(●은 시호) 식으로 불렸다. 예를 들어 주원장의 차남 주상(朱樉)은 진왕(秦王)에 책봉됐고, 사후에 시호로 '민(愍)'을 받아 '진 민왕(秦愍王)'이라고 불린다. 보다시피 칭호 자체에 '친왕'이라는 용어가 들어가지 않고 그냥 '왕'자를 붙였다. 3대황제인 영락제가 되는 주원장의 4남 주체 역시 연왕(燕王)으로 불렸다[9].
  • 청나라 때의 친왕은 이전과는 달라져서 제대로 '○친왕' 식의 칭호를 쓰고, 지역으로 분봉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넣은 친왕작호를 받는다. 그리고 사후에는 시호를 받아 '○●친왕'(●은 시호) 식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청태종 홍타이지의 장남인 후거(豪格)는 숙친왕(肅親王)에 책봉됐고, 사후에 '무(武)'라는 시호를 받아서 '숙무친왕(肅武親王)'이라고 불린다. 다른 예로 도르곤과 혁흔은 각각 예친왕과 공친왕에서 충을 넣은 예충친왕, 공충친왕으로 불렸다.

아무튼 칭호가 그냥 '왕'으로 끝나든, '친왕'으로 끝나든 앞에 오는 이름(위에서 ○로 표시한 것)은 한 글자로 썼다. 중국에서 1자왕은 2자왕[10]보다 격이 높았기 때문.

중국에서 친왕은 대개 황족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 황족이 아닌 친왕을 책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시대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후대에 친왕의 아들(친왕세자 제외)들은 군왕(郡王)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경우가 아닌 사람들도 간혹 군왕에 책봉될 수 있다.

중국에서 제후들은 처음에 세습이 많았지만[11] 점차 중앙집권이 강화되면서 세습 작위의 수는 제한됐다. 세습이 가능한 친왕 또는 군왕의 경우, 다음 대에 즉위할 아들(주로 적장자)을 세자(世子)에 봉하게 된다.

중국 역대 왕조와 대한제국에서 황태자, 황태손 등은 친왕으로 불리지 않는다. 또, 마찬가지로 왕세자도 친왕이나 군왕으로 불리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적장자 계승 원칙에 따라 계승에서 제외된 황제와 같은 항렬의 황자가 친왕호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일본은 특이하게 황태자도 친왕이라고 부르니 주의.[12]

2.1.1. 청나라

청나라 때에는 최고 등급의 작위를 화석친왕(和碩親王, 만주어: hošo-i cin wang 호쇼이 친왕)이라고 했고, 그 다음의 작위를 다라군왕(多羅郡王, 만주어: doroi giyūn wang 도로이 기윤왕)이라고 했고, 각 작위는 화석○친왕, 다라○○군왕 식으로 표기했는데, 화석과 다라는 생략하기도 했다. 청나라의 친왕과 군왕은 상징적인 글자들을 왕작에 붙였다는 점이 다르지만, 친왕은 한 글자, 군왕은 두 글자를 썼다. 예외로 친왕에 두 글자를 쓴 경우가 있긴 하다.[13]

당시 작위는 일반적으로 해당 작위를 받은 사람의 후계자는 이전 대보다 한 등급 낮은 작위를 받게 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일부 친왕과 군왕 작위는 대수(代數) 제한도 없고 강등도 없게 하여 세습하도록 하는 특권이 부여됐는데, 이것을 세습망체(世襲罔替)[14]라고 한다. 세습망체의 혜택을 받은 친왕과 군왕들을 속칭 철모자왕(鐵帽子王)[15]이라고 했다.

역사상 유명한 친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표시가 있는 작위는 세습망체이다.

  • 예충친왕(睿忠親王, 제1대 예친왕★) 도르곤.
  • 공충친왕(恭忠親王, 제1대 공친왕★) 혁흔(奕訢): 함풍제의 이복동생. 함풍제보다 훨씬 더 총명하여 황위를 물려 받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함풍제의 눈물작전으로 밀려나 공친왕이 되었다. 동치제 시절 종친을 대표하여 청나라의 개혁을 주도하였다.
  • 순친왕(醇親王)★: 항목 참조.

2.2. 대한제국

대한제국은 청나라와 비슷한 친왕 제도를 도입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주어인 '화석'이니 '다라'니 하는 말은 당연히 추가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에서 왕으로 봉하거나 왕으로 추존한 인물에 의왕[16], 영왕[17], 흥선헌의대원왕[18], 완왕[19], 흥왕[20] 등이 있다.

2.3. 일본

현대의 일본은 친왕이 청나라나 대한제국과 달리 한자 1글자로 쓰지 않고 2글자 이상을 쓴다. 그리고 군왕(郡王)이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 중국 역대 왕조나 대한제국의 방식과 달리 일본은 황태자·황태손 등도 친왕으로 불린다.

그리고 황녀나 황손녀는 내친왕(內親王)[21]이 되는데, 결혼하면 칭호가 사라진다(…). 중국과 한국의 역대 왕조에서 공주가 결혼하고서도 공주의 존호를 유지하는 것보다 심한 성차별인 셈.

3. 번역 관련 이슈

3.1. 친왕을 영어로 번역할 때

영어로 옮길 때 실제 통치를 행하는 '왕'의 경우 king으로 번역하지만,[22] 황족이라든가 기타 공신들에게 부여하는 왕작의 경우 prince로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23][24] 왜냐면 유럽에서는 king의 칭호를 황족한테 부여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25][26]

3.2. 영어 칭호를 친왕으로 번역할 때

뜻이 다양한 영어 prince[27](독일어 Prinz[28] 또는 Fürst[29])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일괄적으로 친왕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prince의 뜻에 따라서 왕자/황자(의미상 독일어 Prinz에 해당) 또는 대공[30]/공작[31][32]/후작[33](의미상 독일어 Fürst에 해당) 등으로 따져서 번역하는데 중국에서는 그렇게 따지는 게 번거롭다고 여겼는지 묻지도 따지지지도 않고 모조리 친왕이라고 옮긴다. 그래서 유럽 군주국 왕족들을 중국어로 표기한 것을 보면 좀 황당한 경우도 빚어진다. 아버지의 칭호도 왕(국왕),[34][35] 아들의 칭호도 왕(친왕)인 셈. 영어로는 king과 prince가 형태상 아무 공통점 없이 확실히 구분되는데, 중국어로는 부자(父子)가 모두 '왕'인 셈이다(...).

단, 영어 principality[36]는 '친왕국'이라고 부르면 어색해서 잘 안 쓰고 공국(公國)이나 후국(侯國)이라고 쓰되, 군주의 칭호를 '친왕'이라고 번역한다. 그래서 모나코 공국(Principality of Monaco)는 摩納哥公國이나 摩納哥侯國이라고 번역하고, 모나코 공(Prince of Monaco)은 摩納哥親王이라고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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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상황에 따라서는 황족이 아닌 사람에게 주어질 수도 있다.
  • [2] 완친왕 이선, 의친왕 이강, 영친왕 이은.
  • [3] 다만 '영친왕'이라는 호칭은 다른 이유로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영친왕의 경우 태자로 책봉되기 전에 황제의 동생인 왕이었기에 붙여진 칭호이고, '의민태자'라는 호칭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조선이 멸망한 뒤 바쳐진 사적인 시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황태자가 된 후에는 그냥 '태자 전하'로 불렸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부여받은 호칭을 제외한다면 공적으로 받은 마지막 호칭은 영친왕이 된다. 사시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공적인 호칭을 사용할 것인지가 문제.
  • [4] 이 경우에는 단순히 고종이 '의친왕'을 줄여 말한 것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도 '친왕'이란 칭호를 줄여서 '왕'이라고 쓰는 사례가 있다.
  • [5] 1947년 이후로는 덴노의 손자까지. 그보다 먼 자손의 봉작은 왕(王)이다.
  • [6] 內親王, 또는 신자체로 内親王. '내명부의 친왕'이라는 뜻.
  • [7] 아니면 드물게 '○국왕'이라고 쓰기도 한다.
  • [8] ○ 부분은 주로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나라의 이름을 쓴다. 명목상의 임지도 해당 나라가 있던 땅이 된다.
  • [9] 물론 친왕호가 없는 것은 주체가 친왕이 아니라 이미 연나라 지역에 왕으로 책봉된 '분왕'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하면 주체는 영왕작을 내놓고 연경으로 돌아가서 그럴싸한 친왕 칭호를 들으며 갇혀 살아야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황태자가 요절하고 황세손 주윤문이 황위를 물려받은(건문제) 일로 인해 그럴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 [10] 이것을 군왕(郡王)이라고 한다.
  • [11] 원래 제후 제도 자체가 중앙집권이 불가능한 주나라에서 지역별로 작은 군주를 두는 시스템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 [12] 이 경우 현 천왕의 동생인 숙부와 아들인 황태자가 같은 친왕의 작호를 쓰는 콩가루 집안 스토리가 쓰여지곤 한다.
  • [13] 승택친왕(承澤親王)이 그 예인데, 이후 한 글자인 장친왕(莊親王)으로 고쳐졌다.
  • [14] 문자 그대로 대대로(世) 이어 받으며(襲) (작위의) 교체(替)도 없다(罔)는 뜻이다.
  • [15] 농담이 아니고 정말 로 된 모자를 쓰는 왕이라는 뜻이다.
  • [16] 조선왕조실록 고종 40권, 37년(1900 경자 / 대한 광무(光武) 4년) 8월 17일(양력) 1번째기사 중화전에 나아가 황자를 책봉하다
  • [17] 조선왕조실록 고종 40권, 37년(1900 경자 / 대한 광무(光武) 4년) 8월 17일(양력) 1번째기사 중화전에 나아가 황자를 책봉하다
  • [18] 조선왕조실록 순종 1권, 즉위년(1907 정미 / 대한 융희(隆熙) 1년) 10월 1일(양력) 1번째기사 흥선 대원군을 대원왕으로 추후하여 봉하다
  • [19] 조선왕조실록 순종 1권, 즉위년(1907 정미 / 대한 융희(隆熙) 1년) 10월 1일(양력) 2번째기사 완화군 이선을 완왕으로 추후하여 봉하다
  • [20] 조선왕조실록 순종 4권, 3년(1910 경술 / 대한 융희(隆熙) 4년) 8월 15일(양력) 1번째기사 이재면을 흥왕으로 책봉하다
  • [21]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s-2(女王)'이라고 부른다. 단 현행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전인 1947년 이전에는, 고손녀까지를 내친왕이라 하고 5대손부터 여왕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자의 경우 친왕/왕.
  • [22] 황제라는 칭호가 생기기 이전에 천자의 칭호로 간주됐던 '왕'이든, 황제가 책봉해준 제후로서의 왕이든 모두 해당됭단.
  • [23] 단, 양자의 구분이 명확하진 않다.
  • [24] prince는 왕자라는 뜻도 있지만 king보다 등급이 낮은 군주(제후)의 칭호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왕자가 아닌 제후왕을 prince로 번역해도 오역은 아니다. 상세한 내용은 프린스 문서 참고.
  • [25] 예외적인 케이스가 조금 있긴 한데, 나폴레옹 1세 시절의 프랑스는 '로마왕(King of Rome)'을 황태자의 칭호로 썼다.그 외 신성로마제국의 황태자도 독일왕으로 불렸다.
  • [26] 중화사상이 지배하는 동아시아서는 이렇듯 왕이라는 칭호가 일개 제후에 불과하게 여겨져 불안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청나라와의 군신 관계를 완벽하게 청산하기 위해 기존의 왕 대신 대군주라는 새로운 칭호를 고안해 내서 서양의 king의 필적하는 권위를 부여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 [27] 이 문단을 이해하려면 먼저 프린스의 뜻이 여러 개가 있다는 걸 미리 숙지하고 읽어야 한다.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니 반드시 프린스 문서를 먼저 읽어보기 바란다.
  • [28] 남성 왕족 또는 황족의 통칭으로서 쓰이는 prince를 독일어에서는 Prinz(프린츠)라고 한다.
  • [29] 군주(제후 포함)의 칭호로서 쓰이는 prince를 독일어에서는 Fürst(퓌르스트)라고 한다.
  • [30] 프랑스어권 국가의 경우. 프랑스에서는 군주(제후) 칭호로 쓰이는 prince가 공작(duke)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취급돼 grand duke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 [31] 영어권 국가의 경우. 영국에서는 군주(제후) 칭호로 쓰이는 prince가 공작(duke)과 동등하다고 취급된다.
  • [32] 참고로, 군주(제후) 칭호로서의 prince가 해당 언어권에서 어떤 위계에 놓이는지를 따지기 어렵거나 일부러 따지지 않을 때도 묻지도 따지지지도 않고 공작으로 번역한다.
  • [33] 독일어권 국가의 경우. 독일어권에서는 군주(제후) 칭호로 쓰이는 prince(Fürst)가 후작(marquis)과 동등하다고 취급된다.
  • [34] 단, 중국어에서 국왕과 관련된 다른 용어들은 황제를 뜻하는 皇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국왕의 칭호는 국왕이라고 쓰지만 그가 속한 왕실은 황가(皇家)라고 표기하는 게 그 예이다. 이것은 서양의 king이 중국인들이 왕(제후로 여겨짐)보다는 황제에 더 가깝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표기상의 비일관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에서는 아예 영국 국왕/여왕을 국황(國皇)/여황(女皇)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홍콩의 실질적인 표준어인 광동어로는 어차피 王과 皇의 발음이 같은데, 이 점도 皇을 애용하는 경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 [35] 중국이 국왕을 황제로 변역하는 경향은 역사에서 찾아야 하는데 중국은 2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황제가 지배자고 왕은 그저 황제의 부하내지 가족이란 관념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을 알수 있는 사례가 있는데 서양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중국에서 대장금을 방영할때 조선왕을 조선황제라 번역하였다.
  • [36] Prince(의미상 독일어 Fürst에 해당)가 다스리는 나라 또는 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