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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last modified: 2015-04-15 20:47:07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세리그 / 퍼시픽리그(Pacific League)
Rakuten1.png
[PNG image (Unknown)]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S-Lions.PNG
[PNG image (Unknown)]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Buffaloes.PNG
[PNG image (Unknown)]
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C-Marines.png
[PNG image (Unknown)]
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H-Fighters.PNG
[PNG image (Unknown)]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S-hawks.png
[PNG image (Unknown)]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chibalogo.png
[PNG image (Unknown)]
엠블럼[1] 마스코트 마 군[2]
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
구단 법인명 ㈜치바 롯데 마린즈
(株式会社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
창단 1950년
연고지 치바치바
현재 연고지로 이동 1992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 도 (1950~1973)
미야기 현 (1974~1977)
카나가와 현 (1978~1991)
치바 현 (1992~)
구단명 변천 마이니치 오리온즈 (1950~1957)
다이마이 오리온즈 (1958~1963)
도쿄 오리온즈 (1964~1968)
롯데 오리온즈 (1969~1991)
치바 롯데 마린즈 (1992~)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50~1962)
도쿄 스타디움 (1962~1972)
미야기 구장 (1973~1977)
가와사키 구장 (1978~1991)
QVC 마린 필드 (1992~)
2군 구장 롯데 우라와 구장 (1989~)
모기업 롯데그룹
감독 이토 쓰토무 (伊東 勤)
일본시리즈 우승
(4회)
1950, 1974, 2005, 2010
퍼시픽리그 우승
(5회)
1950, 1960, 1970, 1974, 2005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3]
(1회)
2010
플레이오프 우승
(2회)[4]
1974, 2005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5
홈페이지
롯데그룹 산하 스포츠단
롯데 자이언츠
(야구/KBO)
치바 롯데 마린즈
(야구/NPB)
롯데하이마트 골프단 롯데마트 골프단

Contents

1. 개요
2. 홈구장 - QVC 마린필드
3. 구단 역사
4. 팀 특징
5. 시즌 성적 및 이야기거리
5.1. 2009년 시즌
5.2. 2010년 시즌
5.3. 2011년 시즌
5.4. 2012년 시즌
5.5. 2013년 시즌
5.5.1. 페넌트레이스
5.5.2. 포스트시즌
5.6. 2014 시즌
6. 유니폼 소개
7. 주요 선수
7.1. 현역
7.1.1. 투수
7.1.2. 포수
7.1.3. 내야수
7.1.4. 외야수
7.2. OB
7.2.1. 투수
7.2.2. 포수
7.2.3. 내야수
7.2.4. 외야수
7.2.5. 감독
7.3. 구단 출신 메이져리거

1. 개요

1992 ~ 2000시즌 까지 사용된 엠블럼.
떠돌아 다니는 자신들의 처지를 배로 승화시켰다.

33-4의 원흉[5]이자, 호랑이 잡는 갈매기.


한국의 프로야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와 한 형제로 구단주도 롯데 회장인 신격호로 같다. 하지만 구단주가 야구단만 챙길 수는 없으니 구단주 대행을 신격호의 차남 동빈씨가 맡고 있는데, 현재 신동빈은 일본 롯데도 아니고 한국 롯데를 이을 후계자가 된 상황이라서 부자가 쌍으로 구단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6][7] 이 때문에 하단에 "구단 내부도 더러운 권력싸움"으로 시작되는 내용이 있긴 있다.(...) 그래도 자이언츠보다는 잘한다는듯?

대한민국에서는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 때문에 바 롯데 마린즈 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팀의 지역명 표기를 숨기려는 잘 안하는 한국 언론[8]에서도 이 팀만은 지역명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혹시라도 롯데 자이언츠와 구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매년 비시즌 기간에 롯데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가 연습경기를 치렀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는데, 기사 표제에 롯데 자이언츠는 그냥 '롯데', 치바 롯데 마린즈는 '지바 롯데'라고 약칭을 표기하기도 한다(예1, 예2 등등).

중국어 표기는 롯데그룹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롯데그룹의 롯데는 樂天(乐天)으로 쓰고 있지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때문에(라쿠텐이 한자로 樂天[9]) 혼동을 피하고자 羅德(罗德)[10]로 표기한다. 참고로 중국어권에서는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도 지바 롯데처럼 羅德(罗德)으로 강제 개명하는 경우가 있다(...).[11]

물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기 전에는 치바 롯데 마린즈를 樂天(乐天)으로 표기했었고, 현재도 중국어권에서 종종 쓰이는 듯하다. 같은 이름(樂天)을 가진 프로야구단이 무려 세 개(한국에 1개, 일본에 2개)나 있다고 오해하기 딱 좋다.

2. 홈구장 - QVC 마린필드

3. 구단 역사

1950년 마이니치 신문을 모기업으로 하는 마이니치 오리온즈로 창단했다.[12] 그리고 1958년 다이에이(大映) 영화사가 운영하던 다이에이 유니온즈를 흡수 합병해서 다이마이 오리온즈(다이에이+마이니치), 1964년 도쿄 오리온즈를 거쳐 1969년 롯데 오리온즈가 되었다가[13] 1992년 치바시로 연고지를 옮겨 지금의 팀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 퍼시픽리그의 맹주로 마이니치 오리온즈 시절인 1950년 초대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후 10년 단위(1960년, 1970년)로 퍼시픽리그 우승을 했다.[14] 저때까지는 나름 잘 나가던 시절. 가네다 마사이치가 감독으로 활약하던 197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본시리즈 10년 연속 우승을 저지한 센트럴리그의 주니치 드래곤즈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이후로 롯데 자이언츠 마냥 쭈욱~ 하위권을 맴돌았다가 명장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취임한 이후 1995년 퍼시픽리그 2위, 그리고 2차 집권기인 2005년 드디어 리그우승과 31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상대팀 한신 타이거즈 에겐 33-4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2010년, 전 해의 부진을 딛고 일본 야구계의 콩라인 주니치 드래곤즈를 4승 2패 1무로 꺾고 다시 한 번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정규 시즌 우승이 아니라 리그 3위를 차지한 뒤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거쳐 일본시리즈에 올라갔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우승이라고 인정할수 없다고 까이는 경우가 있다.

유독 흑역사가 많은 구단으로 유명하다. 첫째,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못지 않게 떠돌이 생활을 한 걸로 유명한데, 마이니치-도쿄 오리온즈-롯데 오리온즈 초기에 사용했던 도쿄구장이 철거된 후 떠돌이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다.[15] 1973년부터 1977년까지 홈구장을 미야기구장(現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의 홈구장)을 기반으로 고라쿠엔 구장, 메이지 진구 구장을 떠돌아 다녔다. 이 때가 그 유명한 집시 롯데 시절. 1978년에 신축된 요코하마 구장을 차지하기 위해 타이요 웨일즈병림픽을 벌였는데, 결국 밀리는 바람에 낡은 가와사키 구장[16]을 전전한 흑역사가 있었다. 구단에서는 "TV로는 볼 수 없는 가와사키 극장"이라고 하여 광고도 하고 그랬지만...결국 비인기 구단이라 TV중계가 안 된다는 거 아냐 그거와 상관 없이 롯데는 낡고 기묘한 가와사키 구장에서 뛰며 리그에서 가장 기묘한 구단으로 바뀌어 버렸다.

둘째, 1995년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팀을 리그 2위로 올려놓으니까 GM 로오카 타츠로가 이에 열폭했는지 몰라도 결국 두 사람간에 트러블이 생겨 결국 이듬해인 1996년에는 에지리 아키라 감독으로 바뀌었는데, 이분이 히로오카 타츠로의 와세다대학 후배. 결국 1996 시즌 5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둘은 동반 사임하게 된다. 그리고 콘도 아키히토 감독이 있었던 1998년에는 일본프로야구 팀 최다 연패기록인 18연패를 수립하였다.영상 이건 뭐 삼미 슈퍼스타즈도 아니고... 이 해에는 결국 18연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하위였는데, 충격과 공포인 건 이 해에 팀타율 1위, 팀 방어율 2위. 우승팀인 세이부 라이온즈와는 불과 9.5게임차 밖에 안 났었다.

4. 팀 특징

원래 팀 컬러는 근성있는 플레이가 특징인 팀. 특히 9월 이후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좋아서 가을의 롯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한국의 봄데와는 정반대 또 상대팀이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일 경우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는 끈끈한 야구를 구사하는 덕분에 퍼시픽리그의 대표적인 고춧가루 부대로 기억에 남았고, 승률 5할도 못 넘겨 쩔쩔매는 팀 치고는 상대적으로 컬트적인 인기가 있었다.[17] 대표적인 예가 1988년 10월 19일, 킨테츠 버팔로즈의 리그 우승을 저지한 시즌 마지막 더블헤더 경기나, 다음 해 세이부-오릭스-킨테츠의 퍼리그 우승 3파전에서 오릭스를 떨어트린 10월 13일 경기 등에서 고춧가루 부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성적은 4위가 제자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21세기 들어와서는 좀 강해진 편.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이 팀에서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도끼투구법(マサカリ投法)으로 유명한 '일요일의 남자' 무라타 쵸지, 일본프로야구의 선인(仙人) 노모토 키하치, 미스터 롯데 리토 미치요 등이 유명하다.

이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 선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몇 안되는 언더스로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하기도 한 이구치 타다히토 등이 있으며, 이승엽도 2004년~2005년에 선수생활을 했었다. 2010~2011 시즌에 김롯데김태균이 이팀에서 활약하게 된다.

구단주가 한국계인지라 한국인 혹은 한국계 선수와 인연이 각별한 구단이다. 장훈 옹의 선수생활 마지막 팀이자 일본프로야구 유일무이의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한 팀이었고, 백인천도 이 팀에서 몇년간 뛰었다. 카네다 마사이치는 이 팀 감독으로 1974년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롯데에서 18년 간 뛰며 1970년대 강타선을 이끌었던 '미스터 롯데' 리토 미치요(본명 김유세), 현역으로는 니시오카 츠요시 등이 이 구단을 빛낸 한국계 선수. 2005년의 경우 이승엽을 포함한 주전라인업 선수 중 4명이 한국노래를 응원가로 썼을정도. 직접 들어보자. 이마에, 후쿠우라, 이승엽, 사토자키의 응원에 주목할 것. 후쿠우라 응원가 전에 부르는 히트콜도 두산의 응원과 흡사하다. 노라조의 해피송도 자주 쓰이는 응원가 중 하나다. 2010년을 전후한 대부분 응원가들의 원곡이 정리되어 있는 페이지. 그리고 2014-15 오프시즌 때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던 이대은을 영입하여 한국선수와의 인연을 잇고 있다.

2010년 시즌, 동방프로젝트BGMU.N. 오웬은 그녀인가? 가 응원곡으로 등장했다. 충공깽 신주는 뭐하나요 빨리 로열티 안 받고. 하지만 이 응원가가 대타, 대수비 요원인 코베 타쿠미 선수의 응원가다보니 실제로 1년간 이 응원가를 부른 횟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이... 또한 2010년에는 아이돌 마스터キラメキラリ도 응원가로 썼다.# 이것으로 일본 갈매기 응원단 어딘가에 오덕군자가 계심을 알 수 있다. 아래에 나와있듯 생각보다 한국과 가까운 사람이다(...) 안타 쳤을 때 나오는 곡이라는듯.

롯데는 1992년에 이름과 연고지가 바뀌면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큰 변화를 맞게된다.(오리온즈, 마린즈로 나누기보다는 구장 이름으로 나누는게 일반적) 가와사키 시대에는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의 팀[18]이었지만, 마린 스타디움으로 넘어오면서부터 더러운 이미지로 가득찬 구단이 되어버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제기된 약물문제가 있다. 당시 롯데 선수들이 암페타민계열의 약물인 그리니(통칭:환경운동가)를 복용했다고 주간 아사히가 기사를 냈고, 구단은 반박은 했으나 끝내 고소는 하지 않아, 뒤가 구려서 그렇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로 2006년에 오릭스, 요미우리 출신의 노무라 타카히토가 약물소지로 걸리면서 증언한 덕분에 팬들도 거의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19] 이게 큰 스캔들로 번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터져나온 다이에의 사인 훔치기(그것도 팬까지 한패가 된...)덕분에 물타기되었고, 어차피 그 기간 동안 위에서 서술했듯 팀 성적은 개판이었기에 다른 팀 팬들도 크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약 먹어도 안되는 이런 구단이 다 있노?

약물 이외에도 12개 구단 중 가장 더티한 플레이로도 유명했다. 하야카와 다이스케의 배트던지기로 대변되는 악질적인 플레이는 많은 지탄을 받았다.[20] 이 외에도 볼 숨기기나 2006년에 이승엽의 홈런을 날려먹은 주루플레이 어필, 글러브 집어던지기[21], 스파이크 날 세우기, 상대팀 포수 메치기[22] 등 주옥같은 플레이가 많다.

가와사키 시대와 마린 스타디움 시대를 나누는 또 한가지 특징은 바로 팬들의 성향. 가와사키 시대는 팬들이 적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마린 스타디움으로 넘어오면서 열성팬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매너는 최악으로 변하게 된다. 롯데 팬은 그 수에 비해 결속력이 강하다는 인상이 있고, 2000년대 초반에는 구장에서 쓰레기를 솔선수범해 줍는 등 좋은 매너로 지역에서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반면 이러한 결속력은 (주로 상대 팀에 대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매너 나쁜 팬이라고 하면 역사와 전통의한신이나 주니치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신, 주니치는 보다 팬 수가 많아서 눈에 띄는 것이고 찌질함의 순도에 있어서는 롯데를 따라갈수가 없다고 한다. 바다건너 자매팀에게 전염된듯 싶다.

꼴리건롯데의 악질적인 팬의 특징은 대부분이 마린 스타디움 시대와 함께한 2, 30대라는 데 있다. 한신의 경우 대부분이 술 취한 아저씨라는 이미지이지만, 롯데의 경우는 잘 결집된 유럽축구나 J리그의 훌리건에 가깝다. 그 이유는 롯데의 독특한 응원문화에서 찾을수 있는데, 대개 다른 팀의 응원은 트럼펫, 플라스틱 메가폰/배트 등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일본 야구의 응원이지만, 마린즈 팬들의 응원은 축구, 그 중에서도 일본 J리그 서포터들에게 깊게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울트라스'식의 응원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플라스틱 메가폰/배트 대신에 박수를 이용하고, 응원가 자체도 일본 야구 특유의 '4소절의 응원가 - 2소절의 응원 구호'로 이어지는 응원가가 아닌 축구의 응원가에 가까운 4소절 내지 8소절의 응원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다른 구단에서 '시야 방해' 라는 명목으로 터부시되는 개인 깃발과 게이트기(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정사각형의 깃발) 등이 종종 이용되며[23] 반데이라(남미 축구 문화에서 파생된, 관중석을 세로로 길게 덮는 천)가 이용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타 구단과는 응원 문화가 크게 다른 편.[24]

다만 2009년을 전후하면서, 아래 서술할 구단 내부 권력 싸움(...)의 여파로 막장이 된 분위기에서 기존의 응원을 주도하던 외야 응원단[25][26]강도높은 프론트 디스를 벌임과 함께, 타팀 팬들과 충돌을 빚는 등 폭주하는 일들이 벌어지며 결국 시즌 종료 뒤 해산하게 된다.[27] 그 뒤 응원단이 전면적으로 물갈이[28]되었고, 기존의 응원가들이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등의 홍역을 치루었다. 2010년에 롯데가 극적으로 우승한 뒤로는 매너 문제는 상대적으로 잦아든 듯. 오히려 그 해 일본프로야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을 뽑는 쇼리키 마츠타로 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결국 같은 팀의 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수상했지만, 좋은 지도력을 보인 감독이나 팀 리더급 선수가 주로 받는 상이니만큼 팬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어쨌든 일본 야구계에서도 열성적인 응원을 하는 것으로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유명하다.

구단 내부의 권력싸움 역시 유명하다. 구단의 보스인 신동빈이 사실상 손을 놓고있는지라 사장인 세토야마를 중심으로 한 수뇌파와,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을 중심으로 한 현장파의 대립이 심하였다. 상술됐듯 발렌타인 1차 취임기(1995) 때 단장인 로오카 타츠로와 파워게임을 벌이고 모양새 안 좋게 떠난 바 있는데, 이후 2차 취임기(2004~2009) 후반기 즈음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야 말았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발렌타인이 쵸노 히사요시를 강행지명 한 것[29]을 계기로 그동안 쌓여있던 수뇌파의 불만이 폭발, 주간지에 발렌타인의 비리를 죄다 까발리면서 발렌타인이 2009년까지만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사태는 끝을 맺었다.[30] 그리고 이 사실을 메이저리그 팬덤에서도 알고 있는지 2012 시즌을 앞두고 봑빠들이 발렌타인이 건수 하나 터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31]

덜 심각한 여담으로는 '도시락의 저주'가 있다(...). 팀에서 선수들의 이름을 딴 도시락을 만들면 해당 선수의 선수생명이 꼬인다는 저주이다. 최신판으로는 김태균 김치버거가 있을듯 출처

2013년, 가까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사이타마 vs 치바 라이벌 시리즈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두 팀은 원래 서로 발목 잡는 구단으로 라이벌 역사가 깊은 편이다. 고춧가루 부대 때가 딱 세이부 황금기다 보니 아무리 세이부가 최강자라 해도 '롯데를 죽여야 결승 간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황금기가 끝나도, 6강 클라이맥스 시리즈엔 사이타마 세이부와 치바 롯데가 세트로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고 있다. 오죽하면 치바 롯데 응원가 중에 세이부를 이기자고 하는 응원가가 있을 정도다.

센트럴리그와의 교류전을 맞이해서 구단에서 기념 광고를 냈는데, 센트럴리그 6개 구단에 대한 디스의 수준이 대단하다.참고.

그리고 FA 보상선수로 야쿠르트의 마스코트를 지명했다!

5. 시즌 성적 및 이야기거리



이즈미 코나타: 선생님, 롯데가 우승하면 과자값이 좀 싸질까요? (ㅠㅠ)
쿠로이 나나코: 니 머라카노? 내 선생되고 30년동안 못하고 있다 아이가.[32]

러키☆스타에 나타난, 30년간 우승 못한 팀의 비애가 드러난 짤. 컵스팬 : 뭐?! 리버풀 FC는 이 짤의 영국판 정작 이 짤이 나오고 다음 해 리그 우승+일본 시리즈 우승[33], 5년 뒤에는 사상 최대의 하극상을 일으키는 이변을 보여주며 일본시리즈에 우승하게 된다. 이 만화가 자극제가 되었나?? 그럼 한신과 한국 롯데도 그렇게 그린다면?? 특히 2005년에는 한신을 호구로 삼는 이승엽과 이마에 등, 투타의 기막힌 조화로, 한신 타이거스를 시리즈 4전 전승, 총합 스코어 33:4로 발라버리며 '33-4'라는 한신 놀리기용 관용어를 만들어 버렸고, 제1회 코나미컵에도 결승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34][35] 물론 마무리가 희극이라도 작가질한 건 논외
그러나 과자값이 싸지는 일은 없었다. [36]

5.1. 2009년 시즌

어이없게도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미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해임이 결정 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팀 상태는 막장 of 막장. 팬들의 분위기도 흉흉하여 외야 응원단이 프론트 비난을 자제할 것을 팬들에게 촉구한 니시오카 츠요시를 디스하는 현수막을 거는 등의 해프닝들이 있었다. 결국 의욕없는 감독 및 코치진과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이 사이에 새우등 터져 갈팡질팡하던 선수들의 방황이 시너지 효과를 이루어 오릭스 버팔로즈와 함께 퍼시픽리그 꼴찌 경쟁을 하다가 62승 77패 5무로 오릭스 버팔로즈를 제치고 5위를 기록, 다행이 꼴찌만은 면했다. 휴우...

오프시즌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타파해 보고자 하여 신 감독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을 내정하였으며 한신 출신 스타급 선수인 마오카 마코토를 비롯해, 타팀에서 방출되었지만 충분히 써먹을수 있어보이는 선수들을 위주로 대규모 전력보강을 하여 다음 시즌을 대비하였다. 또한 김태균이 FA풀리자마자 그날로 구단주가 달려가 계약서에 도장 받아오는 등, 다른해에 비해 발빠르고 정력적으로 움직였다. 진작에 그랬으면 우승했겠다

5.2. 2010년 시즌

2010년 시즌 시작 전, 하위권을 예상한 반응이 많았으나 한국의 모 자매팀처럼 무시무시한 타력을 앞세워서 상위권 싸움을 벌였다. 투수진은 고만고만하지만 홈런-도루 만능 테이블세터 니시오카 츠요시와 무시무시한 도루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신인 오기노, 쩔어주는 출루율에 2루타 머신인 이구치와 타점 우걱우걱 씹어먹는 김태균, 한방이 있는 오마츠까지의 1-5번 라인은 가히 리그 최강. 심지어 요미우리 타선하고 비교하고 기록상으로는 밀리지 않는다. 허나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힘이 딸리는지 3위권으로 추락하고, 여기에 김태균이 체력저하로 후반기에 19타점밖에 못 올리면서 일조를 했다. 혹자는 석류버스에게 정기를 너무 빨려서 그렇다고 하기도. 결국 막판 뒷심을 발휘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끌고가는 접전끝에 0.5게임차로 간신히 3위에 안착.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 진출하여 2위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격돌한다. 재밌는 점은 닛폰햄과 0.5게임차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놓고 싸운것은 2년전 시즌인 08년에도 있었다. 그 때는 0.5게임차로 닛폰햄이 승리. 역사는 돌고 도는듯(...).

CS 1차전에서는 시즌 막판 역전당해 우승 놓치고 헤롱헤롱한 세이부를 상대로 선발싸움에서는 밀렸지만 릴리프진들을 집중 공략하여, 2경기 모두 9회에 동점으로 따라붙는 뒷심을 발휘하면서 연속경기 연장 승리. 2연승으로 세이부를 제끼고 CS 2차전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CS 2차전은 정규시즌 우승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어드밴테이지 1패를 먼저 안고 시작하며 전경기 어웨이라는 악조건에 한때 1승 3패로 수세에 몰렸었으나, 시즌중 신나게 쳐맞던 막장 투수진이 갑자기 분발한 덕에그보다 소뱅 타선 캐삽질, 벼랑끝에서 3연승으로 기사회생. 우승팀을 제치고 퍼시픽 리그 대표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였다. 정규시즌 3위팀으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한것은 클라이맥스 제도가 실시된 이후 이번이 처음.[37]

일본시리즈는 3년만에 진출한 주니치 드래곤즈와 대결. 그런데 롯데나 주니치나 자기 지역에서만 인기 있고 다른데서의 인기는 시망인 팀들이라 일본시리즈 1,2,5차전을 공중파에서 중계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3,4,6,7차전은 중계예정이고 문제는 5차전이 불방이라 5차전에 우승팀이 정해지면 일본시리즈 우승순간을 공중파로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질뻔했다. 단 양팀 전적이 두팀모두 2승씩은 건진 덕에, 5차전에 끝날일이 없어져서 일본시리즈 우승순간 공중파 불방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인기 카드의 일본시리즈가 얼마나 초라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

그러나 일본시리즈 내용 자체는 대단한 명경기였으며, 특히 6차전은 일본시리즈 최장시간 경기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결국 이런 치고박는 명승부 끝에 7차전도 연장 12회까지 가는 혈전을 승리로 장식한 롯데가 2010년 우승을 차지하였다. 구단 역사상 4회째 우승.

이번 우승은 일본야구 사상 처음으로 3위팀으로 일본 시리즈 제패라는 사상 최초의 대기록이며,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사상 최대의 하극상 이라는 표현으로 이를 기렸다.

5.3. 2011년 시즌

그야말로 선발 부재, 타선 실종중. 전해부터 예견되었지만 투수 공백이 심해서 에이스급인 나루세와 카라카와의 1,2선발로 근근히 먹고 사는정도로 나머지는 처참한 수준. 전반기는 신선놀음 하는 2강 밑에서 12.5게임차로 간신히 3위로 통과했으나 시즌 뒤로 갈수록 전해 우승팀의 포스를 잃어가며 결국 최하위까지 굴러 떨어졌다. 전해에 3위 우승의 진기록을 세웠으니 이젠 우승팀에서 최하위까지 1년만에 돌파하는 새로운 기록을 써주실듯[38]

타선 역시 니시오카 츠요시의 공백과 거포 부재로 팀 전체 홈런이 홈런 1위 1선수보다도 못할정도로 물방망이 과시중. 그리고 그 와중에 김태균마저 부상으로 퇴단하는 바람에 물배트화가 가속중.

5.4. 2012년 시즌

2012년 4월 기준으로 20경기에 11승 8패 1무로 2위를 마크하고 있다. 뻘영입이라고 까이기까지 했던 세스 그레이싱어의 뜻밖의 회춘투가 크게 작용한듯 하다. 하지만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팀 전체에 힘이 떨어져가면서 점점 내려가기 시작하여 결국 시즌 5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꼴찌까지는 안 한 이유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뭏든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있는 자매팀의 체질이 이쪽으로 옮겨온 듯. 결국 니시무라 감독은 시즌 끝나고 재계약을 맺지 않는 방향으로 해임되었고 후임 감독으로는 두산 베어스에서 수석코치를 지내던 이토 쓰토무가 부임하게 되었다.

5.5.1. 페넌트레이스

작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전력에도 이토 쓰토무 감독의 용병술이 잘 맞아떨어졌는지 분전하면서 전반기에는 퍼시픽리그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중반부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리그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설상가상으로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에서 리그 막바지에 무섭게 치고 올라온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패하여 괜히 발목 라이벌이 아니다 3위로 내려갔다. 어쨌거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는 진출하였다.

5.5.2. 포스트시즌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승 1패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꺾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맞붙게 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0월 17일 1차전에서는 0:2로 패하였으나, 10월 18일 2차전에서는 4:2로 승리하였다. 10월 19일 3차전에서는 0:2로 패배, 10월 21일 4차전에서는 5:8로 패하여 부전패 포함 1승 4패로 일본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

5.6. 2014 시즌

스토브리그에서 FA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전 에이스이자 이토 쓰토무 감독의 애제자였던 쿠이 히데아키를 영입하여 선발진을 보강하였고 외국인 선수로 드 허프먼이스 크루즈를 영입했다. 개막전부터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3연패를 하는 등 초반 5연패로 고전을 하였다. 다만 선발진의 부진이 매우 심각하여 선발진 중 유일하게 10승과 3점대 방어율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한 시카와 아유무를 제외하고 와쿠이와 기존에 에이스 노릇을 하였던 루세 요시히사 그 외 선발 자원인 후지오카, 후루야, 카라카와 등이 죄다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타선에서는 루이스 크루즈가 16홈런을 치며 팀 내 홈런 1위로 분전하였고 쿠바 출신의 특급 용병 알프레도 데스파이네가 도중에 합류하여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그 외에는 부진했다. 최종적으로 팀은 퍼시픽리그 4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시즌 이후에는 FA 신분이 된 에이스 나루세가 팀 개혁을 조건으로 협상을 했지만 팀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여 FA 권리를 행사, 야쿠르트로 이적했다. 이후로는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 소속이던 한국인 투수 이대은을 영입하며 선발진을 보강했다.

6. 유니폼 소개


한국 프로야구의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모 기업이 똑같아서 오리온즈 시절에는 1992년까지는 완전히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었다. 다른 점이라면 자이언츠는 롯데의 L과 자이언츠의 G를 겹쳐쓴 로고[39]인데 오리온즈는 롯데의 L과 오리온즈의 O를 겹쳐쓴 로고를 사용했다. 롯데 자이언츠, 정확히는 실업야구 팀인 롯데 자이언트 시절부터) 2001년까지 오리온즈-마린즈의 유니폼을 공유했다.


다만 이 기간 중 예외인 기간이 치바로 연고지를 옮긴 초창기인 1992~1994 시즌. 이 시기에는 야구팀 유니폼과는 다소 안 어울리게 핑크색이 강조색으로 들어간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1995년부터 착용하는 유니폼은 단추형에 원정은 회색, 홈은 흰 바탕에 검은 핀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2000 유니폼은 원정만 검정색으로 바뀌었으며, 홈 유니폼은 아직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과도 비슷한 디자인.


유니폼 하난 엄청 많다. 야구게임 올드 유니폼 용량 우걱우걱.
이후 밋밋한 디자인에서 벗어나고자 2005년부터 얼트유니폼을 도입했다. 검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디자인으로, 이승엽과 2005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유명하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2010~2013 원정, 2010~2012 보조, 1995~현재 홈.

2010년 유니폼의 경우 원정 유니폼이 검정색으로 주로 이루어져 간지나는 유니폼이 되시겠다. 이 유니폼은 김태균과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유명하다. 서드 유니폼 역시 변화했다만, 홈 유니폼에 팔부분만 검정으로 칠한 느낌이 적잖다.


이외에 2012년, 치바 현으로의 구단 이전 20주년을 맞아 입기 시작한 'CHIBA' 유니폼을 2013년 정식으로 서드 유니폼으로 채용해 간간히 입고 있다. 부산 갈매기는 BUSAN 유니폼 안 나오나 사이타마와의 라이벌 시리즈 6경기엔 홈/원정 상관 없이 이 유니폼을 입었다.


2014~ 원정 유니폼


2015 마린 페스타 유니폼

7. 주요 선수

7.1. 현역

7.1.1. 투수

  • 12. 시카와 아유무
  • 16. 쿠이 히데아키
  • 18. 지오카 타카히로
  • 19. 라카와 유키
  • 21. 치 타츠야
  • 27. 루야 타쿠야
  • 28. 츠나가 타카히로
  • 29. 시노 유지
  • 38. 이대은
  • 52. 스다 나오야

7.1.2. 포수

  • 24. 시다 유타

7.1.3. 내야수

7.1.4. 외야수

  • 1. 요타 이쿠히로
  • 3. 오무라 사부로(등록명 사부로)
  • 4. 기노 타카시
  • 54. 프레도 데스파이네
  • 61. 쿠나카 카츠야
  • 66. 카다 요시후미

7.2.1. 투수

  • 나리타 후미오 (1965 - 1979)
    롯데 재적 14년동안 통산 169승을 올린 70년대의 에이스. 1974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공헌자였다.
  • 무라타 쵸지 (1968 - 1990)
    도끼투구법(マサカリ投法)으로 유명한 '일요일의 남자'로 오리온스 시절을 대표하던 에이스.
  • 네다 도메히로 (1974 - 1978)
    한국명 김말홍. 카네다 마사이치의 동생. 74년 다승왕을 차지하면서 리그 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 라모치 아키라 (1972 -1976, 1979 - 1982)
    AKB48 멤버 쿠라모치 아스카의 아버지
  • 시지마 카즈히코 (1987 - 1993)
  • 라부 히데키 (1988 - 1996)
    마크 크룬 이전 일본프로야구 최고속 공인기록(156km/h) 보유자. 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 미야마 사토루 (1990 - 1999)
    일명 고글맨. 빼어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유명했다.
  • 카와모토 요시유키
    좌완투수로 아래의 우완 나리모토와 더블 스토퍼로 활약했다.
  • 나리모토 도시히데
    고바야시 마사히데가 마무리를 맡기 전까지 활약한 마무리 투수.
  • 노 신고 (1994 - 2013)
  • 로키 토모히토 (1995 - 2007)
    일명 조니 쿠로키. 코미야마와 함께 90년대 롯데의 암흑기를 이끈 강속구 투수.
  • 부타 야스히코 (1996 - 2007, 2010 - 2013)
  • 지타 소이치 (1998~2007)
  • 바야시 마사히데 (1999 -2007)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임과 동시에, 팬들의 똥줄을 타게 만드는 장작쌓기와 방화로도 유명했다. 바카모노 고바야시! 그래서 붙은 별명이 '코바마사 극장'. 이렇게만 소개하면 불쇼만 저지른 형편없는 투수로만 생각되겠지만 롯데에 재적한 8년연속 20세이브 포함 9년동안 통산 227세이브를 올린 마무리 투수였다.
  • 바야시 히로유키 (1997~2010)
  • 와타나베 슌스케 (2001 - 2013)
  • 루세 요시히사 (2004 - 2014)
    2014 시즌후 팀과의 불화로 FA를 선언하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 브라이언 코리 (2010)
  • 세스 그레이싱어 (2012 - 2014)

7.2.2. 포수

  • 토자키 도모야 (1999 - 2014)
    2000년대 두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끈 프랜차이즈 포수

7.2.3. 내야수

  • 니시모토 유키오 (1950 - 1955, 감독재적 1954 - 1960)
    일본을 대표하는 콩라인 감독. 자세한 건 항목 참조.
  • 노모토 키하치 (1955 - 1971)
  • 마자키 히로유키 (1965 - 1978)
  • 리토 미치요 (1969 - 1986)
    한국명 김유세. 일명 미스터 롯데. 1970~80년대 롯데의 간판 3루수로 통산 2,000안타를 쳐냈던 강타자다. 오리온스 시절의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 은퇴 후 1987년부터 3년간 감독으로 재임했는데, 2년 연속 꼴찌라는 흑역사를 쓰면서 해임되었다.
  • 론 리 (1977 - 1987)
    롯데를 대표하는 외국인 강타자. 통산타율 .320로 현재까지 일본프로야구 통산타율 1위에 랭크되어있다.[40]
  • 온 리 (1978 - 1982)
    레론 리의 동생으로 메이저리그 경력이 8년이나 되는 형과는 달리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으나 형제가 같은 팀에서 활약하면서 둘 다 빼어난 활약을 했다. 롯데에서만 11년을 뛰면서 프랜차이즈급 외국인 선수로 활약한 형과는 달리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야쿠르트 스왈로즈등 팀을 옮겨다녔지만 일본에서 활동한 10년 동안 통산 타율 .308, 229홈런, 884타점으로 형 못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미국으로 귀국해서는 시카고 컵스의 아시아지역 스카우트 담당 등으로 활동했으며 최희섭을 스카우트 한 것과 릭 리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롯데 시절에는 이니셜이 형과 똑같기 때문에 형을 성인 「리」를, 본인은 이름인 「레온」을 등록명으로 사용하였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 (1979 - 1986)
  • 니시무라 노리후미 (1982 - 1997)
    스위치 히터로, 1986년부터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가와사키 시절 부동의 1번 타자.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
  • 리 코이치 (1988 - 2010)
  • 하쓰시바 기요시 (1989 - 2005)
  • 훌리오 프랑코 (1995, 1998)
    일본야구 최초의 외국인 주장.
  • 코사카 마코토 (1997 - 2005)
  • 니시오카 츠요시 (2003 - 2010)
  • 이승엽 (2004 - 2005)
  • 김태균 (2010 - 2011)

7.2.4. 외야수

7.2.5. 감독

  • 카네다 마사이치 (1973 - 1978, 1990 - 1991)
    한국명 김경홍. 선수로서는 뛰지 않았으나 감독으로서 장기 집권을 했다. 1974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
  • 이나오 카즈히사 (1984 - 1986)
    역시 감독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 바비 발렌타인 (1995, 2004 - 2009)
    33-4 당시 감독.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우승감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7.3. 구단 출신 메이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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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롯데 자이언츠도 예전에 사용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 [2] 대표 마스코트, 한국에 있는 아우 갈매기보다는 좀 더 매스미디어에 자주 출현하는 녀석이다. 다른 갈매기들의 이름은 린 짱, 즈 짱(얘는 작은 갈매기)
  • [3] 정규시즌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통과하여 진출, 우승까지 달성했다. 1992년의 자매팀이 연상된다.
  • [4] 2005년 정규리그 1위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지만, 2004년에서 2006년까지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팀을 리그 우승팀으로 간주했다.
  • [5]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할 당시 치바 롯데-한신 타이거스의 양 팀 득점 수. 물론 시리즈 스코어는 4-0 스트레이트였다.
  • [6] 알려진 후계 구도대로는 장남 신동주가 일본 롯데를 맡고 차남 신동빈이 한국 롯데를 맡도록 되어 있다. 근데 기업규모는 한국롯데가 일본롯데의 10배가 넘는다.
  • [7] 신동빈이 롯데 자이언츠도 챙긴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업적으로 제리 로이스터를 데려온 것이 전해지고 있다.
  • [8] 유독 야구만 심하다. 타 종목의 경우엔 지역명 + 기업명 표기를 한다.
  • [9] 일본에서 쓰이는 신자체로는 楽天이라고 쓴다.
  • [10] 쓸 일은 거의 없겠으나, 이것을 굳이 일본 신자체로 옮긴다면 羅徳이 된다(德에서 心 위에 있는 가로획 하나를 생략). 대체로 중국의 간화자(간체자)가 일본 신자체보다 간략한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 德(徳) 자도 그 예이다.
  • [11] 현재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롯데 자이언츠 문서를 羅德巨人/罗德巨人으로 적고 있다.
  • [12] 참고로 이때 마이니치 신문의 창단을 요미우리 신문니치 신문이 거세게 반발했고 그결과 일본야구연맹이 해체하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주니치 드래곤즈를 중심으로 창단 반대파가 뭉쳐 만든 리그가 센트럴리그, 창단을 지지하는 구단들이 모여서 만든게 퍼시픽리그이다.
  • [13] 정확하게는 마이니치가 구단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오늘날의 넥센 히어로즈처럼 구단을 운영했는데, 1969년~70년 사이에 네이밍 스폰서를 맡은 롯데가 70년 파리그 우승 뒤에 "이거이거 대박인데?"하면서 아예 구단을 사 들인 것.
  • [14] 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 타이요 웨일즈(1960)와 요미우리 자이언츠(1970)에게 지고 말았다.
  • [15] 사실 이건 자신들이 자초한 것이, 롯데가 다이에이한테서 구단을 인수할 당시 다이에이가 "야구장도 같이 사 가시죠?"라고 했는데 롯데가 "노"를 외쳤고, 이 후 다이에이가 부도가 나면서 구장이 제3자에게 매각되면서 철거 크리티컬을 맞은 것.
  • [16] 1978년부터 1991년까지 제1홈구장으로 사용
  • [17] 물론 팀 성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시 롯데는 비인기 리그였던 퍼시픽 리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비인기 구단이었고, 아래에 서술하듯 카와사키 구장은 한산한 야구장의 대명사였다.
  • [18] 깨끗하다기보다는 워낙 인기가 없어서 아무도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오히려 부진한 성적과 얌전한 선수들보다는 퇴장을 일삼는 감독이나, 한산한 구장에서 마작을 친다던가 나가시소멘을 먹는다던가(...)는 등 기행을 일삼던 관중들 때문에 여러모로 특이한 의미로서나 주목을 받는 팀이었다.
  • [19] 이후 80~90년대 롯데-주니치를 거치며 활약한 팀의 OB 아이코 타케시도 은퇴 뒤 여러차례 안드로스텐다이온 등의 약물을 복용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쪽은 노쇠화 뒤 주니치에서부터 약물복용을 시작했다고 증언했지만.
  • [20] 악동 하야카와는 2010년 시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으나 별달리 활약은 못 하다가 2011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현재는 친정팀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스카우트로 활동중.
  • [21] 보면 알겠지만 이익 본 건 없다. 희귀한 인정 3루타만 줬을 뿐(...)
  • [22] 앞에 언급한 배트 던지는 하야카와다. 사실 저런 포수 메치기는 MLB에선 흔한 풍경이으므로 일본 기준으로 험하긴 해도 완전히 이상한 건 아니다.
  • [23] 같은 리그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도 자주 이용한다. 특히나 이 둘이 대결하면 외야석에서 장관을 볼 수 있다.
  • [24] 다만 마린즈 팬들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명색이 일본제일 축구현인데 이 팀이 빠졌겠나 등 타 구단의 응원에서도 종종 이러한 축구 서포터에 가까운 응원 문화가 존재하기도 한다.
  • [25] Marines Victory Productions(약칭 MVP), 치바 롯데 마린즈 외야 응원단 등. 축구와 유사한 롯데 특유의 응원 스타일을 주도했지만, 위에서 서술한 매너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터부시되는 견제 응원을 하다가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말 꼴리건에게 전염되었을수도
  • [26] 우연의 일치이지만, 견제 응원이 문제시되던 시기에 김성근은 치바 롯데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SK 와이번스에서 보여준 그의 견제 응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 [27] 이들은 2012년에 창단한 일본 사회인야구팀 "도쿄 메츠"의 서포터이자 후원자로 활동을 재개한다.
  • [28] 이지본에서 활동했고 2005년까지 롯데 응원단 활동을 하다 구단 직원으로 일하던 진 토시오 씨가 응원단장으로 복귀해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상술한 U.N. 오웬이나 キラメキラリ는 그의 선곡이라고 한다.(...)
  • [29] 그러나 초노는 결국 입단 거부, 이듬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재지명되어 요미우리의 간판선수가 됐다.
  • [30] 프런트와 갈등이 심하긴 해도 팬들에게는 애증의 관계이기도 하다. 막장스런 '집시 롯데' 시대를 청산해 준 (마린즈 팬 측에서는) 명장이기도 하고 2차 취임기 때 포스트시즌 진출 단골팀(특히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만들어 준 감독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팬들이 이 조치에 반발하였다.
  • [31] 간단히 설명하자면, 바비 발렌타인과 보삭스 선수들 간의 불화설이 시즌 내내 나왔다.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셈. 자세한 내용은 보스턴 레드삭스 2012 시즌을 참조바람.
  • [32] 이게 2004년이었다.
  • [33] 2005년 일본시리즈항목 참조. 이 짤방 유통기한이 꼴랑 1년밖에 안되었다는 훌륭한 증거.(??)
  • [34] 승리투수 : 와타나베 슌스케 / 패전투수 : 배영수 / 시리즈 MVP : 베니 야그바야니
  • [35] 이때부터, 2011년 AS에서 소뱅이 삼성에게 결승에서 3:5로 패하기 전까지, 일본팀이 AS에서 4연속 우승을 하게 된다.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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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G image (Unknown)]
  • [37] 정확히 말하면 70년대 퍼시픽 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존재했었기 때문에 처음은 아니다. 이전 플레이오프 제도까지 포함하면 1973년의 난카이 호크스가 최초.
  • [38]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있던 기록으로 OB 베어스가 1995년 우승 뒤 다음 해 바로 최하위로 떨어졌다.
  • [39] 알다시피 롯데 자이언츠의 캡로고는 LG 트윈스가 생기자 '자이언츠'의 G로 바꿨다.
  • [40] 일본프로야구에서 통산타율 랭킹의 기준은 4000 타수이다. 한국의 경우는 3000타수가 기준이다. 이는 경기수가 적었던 80년대 초창기 선수(특히 장효조, 통산타수 3050)에 대한 배려의 성격이 짙다. 타수 기준을 그보다 더 높이면 장효조의 통산 타율(.331)이 그냥 참고기록으로 밀려나버리기 때문에 올드 야구팬들의 반발을 고려해서 기준을 낮춘 감이 있다. 참고로 이치로는 타석은 4000을 넘었지만 타수가 3619라 통산타율 랭킹에는 들어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