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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last modified: 2018-09-28 11:49:12 Contributors

한국의 전통적 지리구분
경기 호서 호남 영남 관동(영동/영서) 해서 관서 관북

이 항목은 호서, 호서권이나 충청권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대전광역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권에 대해서는 항목 참고.

忠淸道 / Chungcheong Province

Contents

1. 개요
2. 특징

1. 개요

조선 시대의 지리 구분. 행정구역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북도, 충청남도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호서(湖西)라고도 부른다. 호(湖)란 충북 제천시의림지를 말한다.잠깐, 의림지보다 동쪽에 있는 단양군은 뭐지? 거기는 호동 다만 호서라는 명칭은 영남이나 호남. 영동 등 타 지역에 비하면 현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도명은 충주시청주시에서 따왔다. 참고로 두 고을은 현재 모두 충청북도 관할. 예로부터 평야가 넓고 강이 흘러서 토지가 비옥해서 부자가 많았으며, 전국에서 양반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에서는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고, 강경읍(현재의 논산시)의 번영은 유명했다. 평택시연산군 때 최초로 경기도에 편입되었으며, 원래는 충청우도(충청남도) 관할이었다.[1]

충청도는 전라도, 경상도와 함께 3대 삼남지방에 속해있지만, 언어문화적으로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와 함께 중부권에 속해있다.

2. 특징

충남/충북은 다른 도들(경상도, 전라도 등)과 다르게 남도/북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다. 아무리 봐도 동서로 나눠놓은 것이지 남북으로 나눠놓은 게 아니다. 충청서도/충청동도 실제로 현재 충청 남·북도의 경계는 조선시대 충청 우·좌도의 경계와 거의 일치한다. # 1896년의 남ㆍ북도 구분은 남쪽의 강경(논산)과 북쪽의 충주에 따른 구분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지리서 택리지에서는 이 지역의 인심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기술했는데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 따른다.(專趨勢利) 이 지방에 근거를 두고 중앙관계에 다시 진출하려는 대망(大望)을 항상 품고 살아온 사대부들은 그것이 좌절되면 그 대신 재력을 얻는 방향을 택한다. 그래서 험담가들이 호서인을 음흉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칭찬하거나 원만한 기록은 잊혀지고 자극적인 기록이 부각되는 것으로, 애초에 택리지에는 경상도평안도 빼고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인심을 기술하지 않았다.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며,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고, 함경도는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사납고 모질며, 강원도는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직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데에 쉽게 움직이며, 경기도는 재물이 보잘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재만 좇는다"고 했다.[2] 지역드립의 원조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와 강원도 일부까지 합쳐서 '양광도'(楊廣道)라 불렸으며, 조선왕조 내내 수시로 도의 이름이 바뀌었다.# 기사 # 위키백과 정리 가장 유명한 건은 명종문정왕후를 비방하는 재역 벽서사건(을사사화의 후속 건)으로[3], 이 때 충주는 현으로 강등되어 유신현이라 불리고 충청도는 잠시 홍주(현재의 홍성)의 이름을 따서 18년간 "청홍도"가 되었다. 이 외에도 잦은 강등과 복권이 있어서 충남 공주와 홍주까지 더해서 충공도충격과 공포[4], 청공도(1년, 공청도는 3회 28년), 공충도(4회 27년), 충홍도(3회, 5년 이하), 홍충도(1회, 1년), 공홍도(3회 30년)... 4주의 6가지 조합이 다 나왔으며, 선후까지 합하면 안 나온 조합은 12개 조합 중 청충도일부러 거꾸로 할리 없잖아와 홍공도 뿐이다. 대략 조선 역사에서 110년간은 충청도가 충청도가 아니었던 셈이며, 명종(청홍도), 광해군(공홍도), 인조(공청도), 순조(공충도, 공청도) 대에는 충청도를 쓰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다. 또 충청도가 온전히 그 이름을 보전했던 대는 인종, 선조(!), 경종, 헌종 정도다. 충청도가 유독 반역(가끔 강상이나 음풍)의 고장(...)이었다는 이야기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조정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의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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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선시대의 좌ㆍ우도 개념은 북쪽을 위쪽으로 하여 그려지는 지도상에서 보았을 때가 아니라, 임금이 계신 서울(한성부)에서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이 때문에 서울 이남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동쪽이 좌도가 되고 서쪽이 우도가 된다.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는 반대가 되는 것. 대신 서울 이북인 황해도, 평안도는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 마찬가지로 동쪽이 우도, 서쪽이 좌도가 된다. 참고로 함경도는 현재와 같이 좌우가 아닌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 [2] 택리지의 이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호남 항목에도 인용되었다.
  • [3] 물론 조작 사건이라는 견해가 많다.
  • [4] 나름대로 충격과 공포라고 할 만 하다. 한번은 연산군김처선을 죽일 때 나왔고(중종반정으로 1년), 또 한번은 효종 말, 현종 초에 청주와 홍주가 3년 터울로 차례로 역모를 일으켜서 나왔으니까. 물론 2번 밖에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