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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last modified: 2016-07-03 23:51:4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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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8)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성서에서 기록된, 예수가 잡혀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저녁 식사를 벌인 사건을 묘사한 그림이다.

4복음서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대체적으로는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있음을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고[1] 포도주를 들어 기도한 후 이것이 자신의 피와 살이라 말하면서 나누어준다. 여기에서 성체성사 혹은 성만찬 의식이 나오게 된다.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잘 들어두어라.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 (마태오 복음서 26장 26-30절, 공동번역성서)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눠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 (마르코 복음서 14장 22-26절, 공동번역성서)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자, 이 잔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잘 들어라. 이제부터 하느님 나라가 올 때까지는 포도로 빚은 것을 나는 결코 마시지 않겠다." 하시고는, 또 을 들어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 (루카 복음서 22장 17-20절, 공동번역성서)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린토1서 11장 23-25절, 공동번역성서)


이 저녁식사를 두고서 유월절(과월절)을 기념하는 저녁식사였나 아니었나에 대한 논란이 좀 있다. 유월절 식사라면 예수십자가 고난이 유월절에 희생되는 어린 양처럼 속죄와 희생제사의 의미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희생제사의 의미가 흐트러진다는 문제가 생기는데... 대체적으로는 유월절 식사라는것이 일반적이지만 반론도 있기는 하다.식사의 메인 메뉴가 유월절을 상징하는 양고기가 아니라 생선 요리로 밝혀졌기 때문으로, 이에 대해서는 예수를 상징하는 생선을 사용한 것으로 최후의 만찬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는 의미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신약성경은 시작부터 예수는 곧 "어린양"으로 불려지고 있고, 구약에서도 미래의 메시아는 어린양이라고 예언되어있다. 때문에 만찬에 전통적인 양고기가 오히려 올라가 있으면 그것이 더 모순이다. 즉, 예수 스스로 어린양으로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 신약성경의 서간문 여러곳에 이미 설명 되어있다.

최후의 만찬은 성화의 소재로도 자주 쓰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다. 그 밖에도 최후의 만찬 그림은 많이 있지만 다 빈치의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우선적으로 다 빈치의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벽을 약간 뜯어낸뒤, 얇게 축축한 회반죽을 발라 마르기 전에 빠르게 그리는 프레스코화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매우 이례적이게도 다 빈치는 가능한한 매끄럽게 만든 벽에 칼슘액을 입히고 그 위에 유화를 그리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는 프레스코화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그리는 다빈치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또 하나 대단한 점은 다 빈치는 엄청나게 큰 벽[2] 에 그리는 동안 비례가 어긋날 것을 고려해 종이에 미리 스케치 한후, 선을 벽에 따서 칠하는 세심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일러스트를 그리는 데에도 쓰이는 방식이라는것을 고려하면 꽤 과감한 선택이라고 볼수 있다.
또한 다빈치는 창문밖과 식당 조명를 고려해 그림자를 매우 능동적으로 이용해서 인물 한 명 한 명을 생동감 있게[3] 묘사해 원본이 막 완성되었을때 보았다면 거의 실물 묘사에 가까웠을것이라고 하며, 원근법을 잘 살려 그림 상단에 성당 벽 무늬[4]를 이어 그려서 방이 훨씬 넓어보이도록 하면서도 아름다운 구도를 해치지 않았다. 이쯤되면 다 빈치의 먼치킨성이 돋보인다(...)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의 모델을 찾다가 한 착한 청년을 만나서 그를 모델로 예수를 그린 후, 세월이 지나서 다시 범죄자를 찾아서 그를 모델로 유다 가롯을 그렸는데 둘이 실은 동일인물이었다는 전설도 있다[5]. 다만 이는 역사적 사실은 아닌 듯하다. 또한 다 빈치에게 그림이 완성되려면 멀었나며 항상 득달했던 모 수도사가 유다의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역시 확인되지는 않은 이야기.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다 빈치의 라이벌이었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경우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던 도중 추기경이 '그림이 너무 불경하다'고 비판하자, 그 추기경의 얼굴을 지옥의 왕인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버린 것.

현재 보는 최후의 만찬 그림이 오리지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1977년 복원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후의 만찬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고, 이 그림은 22년에 걸쳐서 복원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원본에 없는 색을 덧칠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영국의 언론이나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원작이 아니라 화가들이 덧칠한 수준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예수의 얼굴로 예수의 얼굴에서 수염을 제거해버린 배경이 되었던 드로잉이 다빈치의 작품인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복원이 완료된 시점에서는 원본과 변경점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사실 역사적 면에서 본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야말로 안습한 그림이다. 우선 프레스코화라는 그림 특성상 습기에 약한데 이 그림이 그려진 건물은 무려 두 번이나 침수되었으며[6], 나폴레옹의 전쟁 당시에는 마구간으로 쓰였으며[7],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폭격을 맞았으며[8], 문을 새로 낸다고 그림 일부를 잘라냈으며[9], 이 와중에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몇 차례에 걸쳐 '복원이라 쓰고 설상가상이라 읽는다' 수준의 짓을 지행한 것은 덤이다. 결국 1977년 이탈리아 정부는 약 2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세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불러 무려 22년간에 걸친 복원 대장정을 시작한다. 당시의 최신 기술이란 기술은 모조리 동원되었는데, 예를 하나 들자면 원래 그림을 찾기 위해 후대에 덧대어진 물감을 제거하기 위해 그 칠해진 부분을 '1밀리미터'씩 벗겨가며 원래 다빈치가 그린 부분을 찾았다고 한다. 결국 1999년 (논란이 있긴 해도) 표면상으로는 복원되었으며,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하루당 관람객 수에 제한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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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에 의해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댄 브라운예수 옆에 앉은 사람이 실은 예수의 아내인 마리아 막달레나이고 베드로가 그녀를 위협하는 것이며 예수와 그녀 사이의 V자형 틈이 바로 성배를 가리키는 암호라는 떡밥을 풀기도 했다. 물론 이는 그럴 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거짓말이다. 예수 옆의 여자 같은 인물은 실은 사도 요한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아니, 사도 요한은 정말로 전통적으로 저렇게 그려졌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일리 없잖아

사실 이 그림이 실제로 예수가 했던 만찬을 그린 것은 당연히 아닌데, 왜냐하면 로마식의 만찬은 탁자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비스듬하게 평상에 누워서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머리들이 좌우로 기묘하게 꺾여있는 것도, 누워있는 묘사를 앉아있는 묘사로 바꾼 영향이다.

최후의 만찬에 쓰인 잔이 성배라는 전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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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요한 복음서에서는 아예 내가 '빵을 찍어서 주는 사람'이라고 예수가 지목하고 그걸 유다 가롯에게 주는데도 제자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대체 뭘 보고 있던 거냐
  • [2] 위에 그저 소장이라고 되어있어 착각할수도 있지만 이 그림은 성당 식당 벽 한면 전체를 사용해 그려진 그림이라 크기로 알려진 피카소의 게르니카보다도 크다! 폭이 10m 조금 못 미치는 정도
  • [3] 12사도의 상징성을 잘 묘사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표징이 없어도 누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 수 있다.
  • [4] 위 그림의 왼쪽을 자세히 보면 벽이 약간 나와있는데, 똑같이 이어 그린것이 보인다.
  • [5] 만화 사랑의 학교에도 나오는 천사와 악마 버젼의 변형인데, 이건 유명한 일화라는 말만 있을 뿐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그냥 설로 이해하는 것이 속편할 듯.
  • [6] 이 때는 '비듬 떨어지듯' 물감 조각들이 흩날렸다고 한다
  • [7] 나폴레옹은 이 그림의 진가를 알고 병사들을 말렸으나 헛수고였다. 이것도 모자랐다고 여겼던지 병사들은 심심할 때마다 벽돌로 12사도들의 머리를 겨냥해 던지는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적그리스도 소릴 들은 건가...
  • [8] 이 건물의 다른 세 벽은 모조리 무너졌는데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이 그림이 그려진 벽은 거의 온전히 남았다고 한다
  • [9] 실제로 그림을 보면 예수의 하반신 쪽은 문이 새로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예수의 발가락의 모습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