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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last modified: 2016-12-14 21:53:34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1.1. 개요
1.2. 선수 생활
1.2.1. 2002~2005 시즌 : 수비 못하는 만년 유망주
1.2.2. 경찰청 복무
1.2.3. 2008 시즌 : 복귀와 신인왕 수상
1.2.4. 2009 시즌
1.2.5. 2010 시즌
1.2.6. 2011 시즌 : 삼성 좌타대두라인에 이름을 올리다
1.2.7. 2012 시즌
1.2.8. 2013 시즌
1.2.9. 2014 시즌
1.2.10. 2015 시즌
1.2.11. 2016 시즌
1.2.12. 2017 시즌: KIA 타이거즈에서
1.3. 평가
1.4. 트리비아
1.5. 연도별 성적
2. 한국의 정치인

1.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이런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난 반드시 돌아온다..
날 배신했던 것에 대한 복수를 품고 반드시 돌아온다..
지금 있던 곳이 아닌 에서 이곳을 부수기 위해 칼을 갈 것이다.
반드시...반드시...반드시...언젠가는...복수한다...
- 방출 직후 싸이월드에 올린 글[1]


KIA 타이거즈
최형우(崔炯宇)
생년월일 1983년 12월 16일[2]
체격 179cm, 86kg
출신지 전라북도 전주시
학력 진북초-전주동중-전주고
포지션 포수(2002~2005, 2013.8.23)
외야수(우익수(2006~2008), 좌익수(2009~ ))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삼성 라이온즈 2차 6라운드 48순위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2~2005)[3]
경찰청(2005~2007)
삼성 라이온즈(2008~2016)
KIA 타이거즈(2017~)
응원가 등장시: 장기하와 얼굴들《풍문으로 들었소》[4][5]
타격시: 김원준《쇼》[6][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3번(2002~2005)
성열(2001) 최형우(2002~2005) 철민(2006~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4번(2008~2016)
오상민(2002~2007) 최형우(2008~2016) 현역

2008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임태훈 (두산 베어스) 최형우(삼성 라이온즈) 이용찬(두산 베어스)
중간에 거슬리는 선수가 2 있지만 신경쓰면 지는거다.

1.1. 개요

자신을 방출한 삼성에게 복수하기 위해 삼성으로 돌아갔던 삼성의 4번 타자.
대기만성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자 2010년대 한국프로야구 최강의 좌타 거포.
한국프로야구 최초 우투좌타 홈런왕
소속팀이 삼성이기에 까이는 타자
그리고 박병호에 밀리는 콩라인[8][9]
복수 한다면서 왜 삼성으로 온 거지...? 조동찬이 있으니깐..

KIA 타이거즈 소속 외야수. 삼성 시절, 예전 등번호는 43번이었지만 3와 4를 바꿔서 현재 등번호는 34번이 되었다.[10]

1.2. 선수 생활

1.2.1. 2002~2005 시즌 : 수비 못하는 만년 유망주


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당시는 포수였는데, 당시에는 공격형 포수로서 김응용 감독이 아끼던 선수였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동안 1군에서 대타와 대수비로 6경기에 출장해 7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1군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했다.

2군에서도 매년 2할 중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남부리그 타율 2위(0.322)에 오르기도 했지만, 수비가 나아지지 않아[11] 결국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당했다.

1.2.2. 경찰청 복무

방출 후 상무 입대를 타진했으나 이마저도 탈락하면서 선수 생활에 큰 위기가 닥쳤지만, 때마침 경찰청의 창단 소식에 곧바로 지원하여 합격, 입대와 함께 경찰청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 창단 동기 멤버로는 김태완최진행 등이 있다. 타격 자질을 살리고 수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당시 김용철 감독의 권유에 따라 외야수로 전향했다.

경찰청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면서 1년차에는 팀 내 타율 1위(0.344)에 홈런 공동 1위(11홈런) 등을 기록했다. 경찰청 2년차인 2007년에는 2군 북부리그에서 타율 1위(0.391), 최다 안타 1위(128안타), 최다 2루타 1위(41개), 홈런 1위(22홈런), 타점 1위(76타점), 득점 1위(72득점), 장타율 1위(0.731) 등 타격 부문 7관왕을 달성하며 그야말로 2군 북부리그를 평정했다. 이 활약상을 인정받아 그는 외야수로 전향한 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 재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1.2.3. 2008 시즌 : 복귀와 신인왕 수상

이렇게 2군 북부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경찰청에서 복무를 마칠 즈음, 경찰청 경기를 보러 간 덩치 큰 왼손잡이를 대단히 좋아하는 김응용 사장이 "쟤 아직 우리 소속이지?"하고 같이 간 삼성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고 깜짝 놀란 프런트 직원이 부랴부랴 계약에 나섰다(…). 최형우도 예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같이 뛰던 친구들 때문에(대표적으로 조동찬, 안지만 등) 자신을 방출했던 팀에 다시 입단했다.[12] 방출된 팀에 다시 입단한 드문 케이스.[13]

전체적으로 노쇠한 삼성 타선의 젊은 피 중 하나로 활약하면서 최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쓰이 히데키를 닮아서 나온 별명이다.[14]

시즌 초반에는 대타로 시작했지만, 원래 우익수를 볼 예정이었던 제이콥 크루즈가 아킬레스건 때문에 1루수로 출장하면서 우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한때 백업 포수난으로 다시 포수로 기용될 계획도 있었지만 채상병이 합류하면서 외야수로 고정되었다.

팀 중심 타선에 자리잡아 홈런(19홈런)과 타점(71타점) 부문에서 팀 내 1위를 차지하면서, 중고 신인이지만 규정상[15] 신인왕 자격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어 2008년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게다가 다른 후보인 KIA 타이거즈김선빈LG 트윈스정찬헌이 예상 외로 부진했기 때문에 2008년 신인왕 후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최고령 신인왕이 됐다.[16]

1.2.4. 2009 시즌

팀의 4번 타자로 자리잡아 타율·출루율·장타율 모두 성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부족한 수비능력과 삼성의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려있던 2009년 가을 동안 4번타자의 이름에 걸맞지않은 모습을 보여준 점(2009년 9월 타율 0.172 4홈런 12타점) 때문에 최잉여라는 별명이 굳어졌다. 헌데 그와중에도 4홈런. 힘은 진퉁

1.2.5. 2010 시즌


2010년 4월 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가면 라이더 세레머니를 했다. 그것도 가면 라이더 V3의 세레머니여서 한국 야구 선수 중 최초로 특촬물 덕후가 나왔나 싶었지만, 오치아이 코치 때문에 한거라고 한다.[17]

2010년 6월 1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김광현의 구위에 눌려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기 직전 9회 2사 이후에 신명철이 볼넷을 골라낸 후 3구째를 노려쳐 안타를 쳐냄으로써 굴욕적인 상황을 피할수 있었다. 디씨 야구 갤러리에선 SK갤을 제외한 7개 구단이 하나가 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으며 도마 최형우, 구국의 열사 최형우등 큰 호응열광을 받고 있다. 그럼 얘도 며칠 후에 박속닌처럼 발리슛 때리는 겨?

9월 17일 KIA와의 경기에서 김상현의 타구를 쫓다가 벌러덩…. 두 팀이 4블론을 주고 받으며 병신매치를 벌였는 데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덕분에 패전투수가 된 김효남은 최형우를 썰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쳐다 보았고 그는 알을 품는 최디슨이란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이 날 경기 한 장 요약

그리고 그날 밤,베이스볼 투나잇 야의 변두리 야구의 주제는 야 웃음이 나오냐였다.타이밍이 적절한건지 나쁜 건지…

최형우는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2타수 6안타 1홈런 3볼넷 4타점 5득점, 타율 .273, 장타율 .545, 출루율 .36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최형우는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3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타점, 타율 .231, 장타율 .385, 출루율 .31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형우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5타수 9안타 1홈런 5볼넷 1희생플라이 5타점 5득점, 타율 .257, 장타율 .486, 출루율 .341을 기록했다.

1.2.6. 2011 시즌 : 삼성 좌타대두라인에 이름을 올리다

해당 항목으로.

1.2.7. 2012 시즌

해당 항목으로.

1.2.8. 2013 시즌

해당 항목 참고.

1.2.9. 2014 시즌

시즌 전, 좌익수 수비강화를 위해 엄청난 훈련을 했다. 그래서 이번시즌 쏠쏠한 호수비를 자주 보여주는 편.

4월 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박석민의 동점 솔로홈런 이후 백투백으로 역전 솔로홈런을 쳤다.

4월 24일 LG 트윈스전에서 10회말 무사 1,3루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쳤다.

5월 23일 ~ 25일 넥센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먼저 23일 경기에서는 박석민과 함께 백투백 홈런을 치며 넥센으로부터 달아나는 타점을 올렸으며[18] 24일 경기에선 팀이 헨리 소사의 투구에 눌려 4:3으로 지고 있었으나 7회말, 박한이가 진루한 상황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외야석 상단에 꽂히는 대형 역전 투런홈런을 날렸다. 이는 시즌 10호 홈런이자 이날 팀의 결승홈런이 되었다. 그리고 25일 경기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려 B성 라이온즈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 홈런은 11호여서 릭 밴덴헐크의 11삼진, 류중일 감독의 11연숭, 1이닝 11득점등과 엮여 11드립이 흥하는 중.

6월 20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18호 홈런을 쳤는데 이 홈런으로 2014시즌 최초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하였다. 이 시점에서 홈런 1위 박병호는 27개의 홈런 중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의 홈런이 없다. 게다가 7년 연속 전 구단 상대 홈런이라는 기록도 달성하였다.

7월 13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정상호의 타구를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혀 정형식과 교체됐다. 당일날 검진에서는 이상 소견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통증이 계속돼 결국 15일과 16일 LG 트윈스와의 2연전도 결장했다. 16일 재검진 결과 미세 골절 진단을 받았다. 특히나 삼성은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LG와의 2연전에서 모두 지면서 2위 넥센과 3경기 반차로 쫓긴 상황이어서 최형우의 이탈이 더욱 아쉬워졌다.

휴식기가 되면 나아질거란 예상도 있었지만 결국 7월 21일자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티배팅을 해봤는데 3개만 하고 그만뒀다고 하며 평상시 타격의 20%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당분간 결장이 예상된다. 아 이 망할 야구장

그라고 8월 9일 넥센전, 드디어 돌아온다! 4번타자 빼고 경기 했는데도 전혀 순위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삼성에 4번타자가 돌아온다면...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9일 경기에서 멀티히트, 11일 경기에선 본인이 호구잡은 모 옆구리 투수에게- 동점 투런홈런을 쏘아올리며 4번타자의 귀환을 알렸다.

그리고 복귀 이후 한 달간의 타율이 무려 0.588. 그리고 8월 26일, 0.367의 타율로 타격 1위에 올랐다![19] OPS, RC/27은 박병호를 넘어 리그 2위. 근데 박병호를 제꼈더니 평화왕에게 밀린다. 영원히 고통받는 최형우

10월 13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30호 홈런을 쳐냈다. 커리어 통산 2번째 30홈런. 그리고 작년의 그 범린이는 또 욕먹고 있다

11월 10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역전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 MVP가 되었다. 다음 날인 11월 11일 6차전에서도 채태인의 2타점 선제 적시타에 이어서 2:0에서 4:0으로 도망가는 우중간 2타점 2루타를 때리는 활약을 펼쳤다. 이 2루타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2루타(15개)라는 신기록까지 세웠다. 흠좀무. 이후에도 삼성 타선은 불을 뿜어서 나바로의 쐐기 쓰리런을 포함하여 11:1로 대승하여 통산 8번째 우승과 통합 4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그간 한국시리즈를 포함하여 포스트시즌에 꼭 한 번 이상은 홈런을 때린 최형우였지만, 2014 한국시리즈에서는 홈런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꾸준하게 안타를 때려내어 클린업이 죽쑤는 가운데서도 분투했고, 결국 5, 6차전의 대활약으로 주장답게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성적에서 특히 놀라운것은 삼진률이 12.6%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이게 어느 정도의 기록이냐면, 30홈런을 넘긴 타자들을 살펴보면 박병호가 24.7%, 강정호가 21.4%, 테임즈는 19.3%, 이승엽은 14%, 나성범은 23.7%다. 유일하게 야마이코 나바로만이 11.8%로 최형우보다 낮다. 20홈런을 범위로 잡아도 최형우보다 낮은 삼진률을 기록한 타자는 이택근, 유한준 뿐이다. 또한 시즌 장타율 0.647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는데, 이에 힘입어 심정수를 넘어 통산 장타율 0.535로 역대 2위에 등극했다. 1위와는 차이가 꽤 나긴 하지만 이건 그 분이 괴물인거고 이젠 그가 이만수,장효조-양준혁-이승엽의 계보를 잇는 삼성의 대표 타자란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이제는 어엿한 좌타대두라인

1.2.10. 2015 시즌


1.2.11. 2016 시즌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 KIA 타이거즈와 4년 100억에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

1.2.12. 2017 시즌: KIA 타이거즈에서


1.3. 평가

탈춤.jpg
[JPG image (Unknown)]

살풀이를 추는 최형우얼쑤!

경찰청 제대 후 클린업 트리오를 벗어나 본적이 없는 강타자. 20홈런을 보장하는 파워에 3할을 넘길 수 있는 교타력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타점 먹는 능력이 뛰어나고 선구안도 괜찮다. 발은 빠르다고는 볼 수 없으나 주루센스가 괜찮아서 주루사가 적고, 이따금씩 도루도 기록한다. 게다가 꾸준함[20]금강불괴 급의 내구성도 자랑하는 만능형 선수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과 능력에 비해 대외적으로는 꽤 저평가되는 선수 중 하나다.[21] 그 이유로는 이만수, 이승엽, 양준혁으로 대표되는 전통의 타격 강팀 삼성의 4번 타자로서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과[22] 선동열 감독의 스몰볼 이미지와 겹쳐진 탓이 크다. 특히 선동열 감독이 베테랑들을 은퇴시켜가면서 최형우를 무리하게 4번 타자로 밀다보니 최형우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 선동열과 패키지 취급당해 올드팬들의 비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평가를 받을래야 받기 힘든건 당연지사.

여기에 극악의 수비 능력도 한 몫을 했다. 간단한 플라이도 흔들거리며 잡고, 환상적인 펜스플레이로 상대 2루타를 3루타로, 안타를 2루타로 만들어주는 낙구판단 능력과 수비 센스를 보여준 적이 부지기수.[23] 정현욱이 정색하며 "야, 웃음이 나오냐?"라고 말한 대상이 바로 최형우다. 큰 점수차로 이기긴 했지만 최형우의 낙구지점 판단미스로 안해도 될 실점을 해서 정색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최형우의 극악 수비에는 이유가 있다. 원래 포수 출신임에도 송구 능력에 문제를 많이 보이는데, 과거 2루 송구가 2루수나 유격수의 키를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아 스스로가 2루 송구에 자신감을 잃었던 것. 이 때문에 좋은 타격자질을 가졌음에도 1군에 기용되지 못했었고, 또한 외야수로 전향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외야수로 전향한 지금에도 송구 능력이 대체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것도 강하게 던지기보다는 정확하게 던지는데 중점을 주기 때문인듯 하다. 원래 발이 느려서 외야수로서 공을 따라가기도 힘들고, 외야 수비 경험이 적어서 타구 판단도 나쁘다. 수비 연습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2008년부터 삼성에는 이렇다할 강타자가 없었고 2군에서 타격 7관왕을 달성했던 최형우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도 당연히 자신있는 타격이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더욱 타격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었고, 타격에서는 그래도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노력이 적었던 수비에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는 없었는 것. 그리고 원래 포수는 다른 야수들과 마주보고 앉는 형태로 수비를 하기 때문에 다른 보직으로 옮겨가면 시점의 변화로 수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최형우와 똑같이 외야수로 전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지명타자로 정착한 홍성흔이 대표적.

그래도 수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펜스 플레이는 이제 수준급. 낙구지점을 잘못 파악하는 일도 드물고, 송구도 정확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힘이 있기 때문에 무상 진루를 허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어쨌든 수비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인지 지명타자로 출전했을 때 성적이 조금 더 좋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그 전의 모습때문인지 아직도 수비를 못하는줄 아는 사람이 다수

타격만으로 보자면 크보에서 가장 저평가받는 선수라고도 할 수 있다. 하필 팀이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의 삼성이니...스탯관리의 신이라든지, 득점권 타율이 낮다든지[24], 홈런은 주자없을때만 친다든지 하는 식으로 삼팬들에게 허구한날 까인다. 최잉여에서 잉여킹으로 별명이 진화하기도.[25]

더불어 속칭 한 해 반짝의 예로 이상하리만치 많이 언급된다.[26] 실제로는 밑의 연도별 성적 스텟을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본격적인 1군 활약을 시작한 2008년부터 조금씩 성적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통산 22번째 3년 연속 20홈런이라는 기록에서 보듯이 오히려 꾸준함의 대명사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커리어 로우로 평가받는 2012 시즌도 OPS가 0.773으로 웬만한 팀의 5~6번 타자로는 충분한 성적이다. 20병살타는 넘어가자 2011년의 최형우가 역대급 성적을 올리며 대활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플루크 시즌으로 평하기엔 어폐가 있다. 2013년 다시 수준급 성적을 올리면서 한해반짝이라는 오명은 거의 벗어던진 상태. 그리고 최형우를 사오면 안되냐는 다른팀팬들의 구매요청도 쏟아지고 있다. 때마침 돈이 없는 구단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니 FA때 팔려갈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가 대 활약한 2011시즌 이후 목동의 탈쥐효과의 표본 새로운 4번 타자가 대각성해버려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으면서 저평가에 기여한 것도 있다. 2011년도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면서 겨우 주목을 받나 했더니 12년도 성적이 폭락하면서 관심에서 멀어졌고[27], 그 틈에 박병호가 홈런 타이틀을 독식하여 최형우는 자연스럽게 다시 잊혀졌다(…). 최형우에 비해 한 수 앞선다고 평가받는 수비와 주루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오오... 하늘은 어찌하여 이 최형우를 낳고, 또 박병호를 낳았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형우가 2013년을 기점으로 리그 최고의 좌타거포 외야수로 등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성적도 성적이거니와, 2013년 4강 팀들 중 두산을 제외하면 붙박이 4번 타자가 있었고, 그 두산은 포스트시즌에서 4번 타자를 찾고 4위에서 우승까지 노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수 년간 4번 타자를 도맡은 최형우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들어 진갑용이 나이 문제로 주전에서 빠지면서 포수 자원이 부족해지자 포수 훈련을 받고 백업 포수로 간간히 출장하고 있다. 포구는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다. 2013년 이후의 삼성 포수 출장 순서는 이지영 - 이흥련 - 최형우 - 박석민 순서. 경기가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되어 이지영과 이흥련이 모두 빠져야 최형우가 마스크를 쓰는 정도라 박석민의 포수 출장은 2014시즌까지 없지만, 누구마냥 급히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한 번씩 훈련을 받으며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 중후반부에 대타를 쓰는 데 상대적으로 걸림돌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KIA 타이거즈 소속 투수 윤석민에게 상당히 강했다. 통산 상대 타율이 4할에 육박하고 윤석민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적도 있다.

윤석민이 해외로 진출하자 새롭게 호구잡은 투수는 넥센 히어로즈한현희. 2014년 8월 11일 기준 통산 상대전적이 5타수 4안타 3홈런. 같은 날짜 기준 한현희의 시즌 블론세이브가 2개인데 둘 다 최형우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것이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5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28] 하지만 포스트 시즌 타율이 다소 낮다는 점 때문에 꾸준한 홈런에도 불구하고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다. 다만 이 평가는 2012년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2014년에는 홈런을 치지 못했지만 대신에 안타를 많이 때려내어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했고, 5차전의 끝내기 역전 2루타와 6차전의 추가 2타점 적시 2루타로 역시 해결사 본능은 어디 가지 않았음을 잘 보여줬다. 게다가 5,6차전의 연속 2루타로 PS 최다 2루타(15개) 기록을 세웠다. 흠좀무(종전 기록은 전준호, 홍성흔의 14개)

1.4. 트리비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깜X이라고 비속어로 말하다가 그 발언의 논란에 로이스터 팬과 롯데 자이언츠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비호감으로 전락할 뻔 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님께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라고 금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서 크게 문제시 되진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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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사이클링 아웃의 주인공이다

2010년 10월 경 트위터를 시작한 모양.

참고로 입단 동기이자 동갑내기 조동찬과 절친한 사이.

사실 사랑하는 사이다 놀라운건 이 사진을 본인이 직접 꾸며서 자기 싸이에 올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구도 형우왕자 동찬공주(...) 참조1 참조2

최근 무한형우교 교주로 등극했다. 본 상황은 6월 24일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느닷없이 난입한 관중이 좌익수 수비하러 나온 최형우 앞에서 벌인 일(...). 문제는 그때 깔린 배경음악이... 덕분에 이런 짤방도 나왔다.

원빈은 최형우을 닮았다(!!!)
2011년 최형우가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팬들 사이에서 원빈 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고(야구성형?!) 심지어 이런 기사까지 나왔다. 그 뒤로 삼성 라이온즈 우승 후 열린 팬사인회 후기에서 '원빈은 좋겠다 형우형닮아서'라는 것에 최형우가 매우 좋아했다는 후기가 나돌자 삼팬들은 플카를 만드는 등 이젠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밝히곤 한다. 그럼 이 사람은 어떻게 해

마구마구 유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아이디는 "달콤살벌한영계"(...)라고 한다.# 본인 카드는 대타나 후보 선수로밖에 안 쓴다고... 2011년 마구마구를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홈런왕 + 골글 획득 덤으로 본인의 엘리트카드까지 나왔다.

2012년 전반기에 점점 부진한 상황에서 애니팡 점수가 무려 45만점을 넘는 것이 발견되어 '부진의 이유는 애니팡'으로 몰려 신나게 까였다. 후반기 타격감을 슬슬 되찾을때도 삽질을 할 때면 어김없이 형우팡, 혐오팡으로 불리며 신나게 까였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라스트팡이 터지고.... 시즌 후 열린 팬 페스티벌에서 '예전에 했다'라면서 끊은 듯한 발언을 하였다. 후반기 타율이 치솟았다는 거 생각해보면 심상찮다 이거


최형우의 아내가 표현하길, 남편으로서의 최형우를 평가하자면 3할을 주고 싶으나 얼굴에서 타율을 까먹어 까먹어 2할 8푼짜리 남편이라고 한다. 안습.

2015시즌이 끝나고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팬들의 반응은 잘하는건 알지만 메이저리그는 무리 아니냐 정도였는데...

2015년 2월 5일 FA 120억 시대를 열고 싶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선수 개인 입장에서는 하지 못할 말도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가뜩이나 과열된 FA 시장에서 거품을 조장한다며 까이고 있다. 나이와 수비 포지션을 보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모 웹툰에서는 이렇게 깠다. 이 발언으로 인해 강민호의 75억에 이은 120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윤석민이 90억을 받자 재평가받기도 했다.

1.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2삼성 라이온즈 4 5 .400 2 2 0 0 0 0 0 .400 .800
2003 1군 기록 없음
2004 2 2 .000 0 0 0 0 0 0 0 .000 .000
2005 1군 기록 없음
2006군복무(경찰 야구단)
2007
2008삼성 라이온즈 126 384 .276 106 24 0 19
(5위)
71 68 3 .364 .487
2009 113 415 .284 118 24 0 23 83 70 1 .375 .508
2010 121 420 .279 117 29 1 24 97
(4위)
71 4 .389 .524
2011 133 480 .340
(2위)
163
(3위)
37 3 30
(1위)
118
(1위)
80
(4위)
4 .427
(3위)
.617
(1위)
2012 125 461 .271 125 27 1 14 77 51 2 .348 .425
2013 128 511 .305 156
(2위)
28 0 29
(2위)
98
(2위)
80
(4위)
2 .366 .530
(3위)
2014 113 430 .356
(5위)
153 33
(4위)
0 31
(5위)
100 92 4 .426 .649
(4위)
통산 865 3108 .302 940 204 5 170 644 512 20 .385 .535
(2위)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11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2013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2014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2. 한국의 정치인

정치인은 원칙적으로 작성제한 대상이나 동명이인이므로 기본적인 사항은 서술합니다.


호는 온산(溫山)이다. 1935년 8월 14일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제 8대, 9대, 10대, 13대, 14대, 15대 국회의원(신민당, 통일민주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지낸 김영삼계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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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으로 오글거리는 단순한 허세글 내지는 본인을 다잡기 위해 올린 글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최형우의 위상을 생각해 볼때, 그리고 박병호김상현의 사례를 생각해볼때 정말 저 글대로 상황이 바뀌었다면 삼성 입장에선 정말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KIA 타이거즈와는 입단 직전 단계까지 갔었고, KIA와 협상이 틀어진 이후에도 LG 트윈스SK 와이번스가 최형우를 데려가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최형우를 다시 데려온건 김응용 당시 사장의 공로다. 부연설명을 더하자면 당시 SK 스카우터들이 최형우를 주목했으나 김성근 감독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아서 영입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다. 이 사실은 김성근의 돌직구2에서 김성근 감독 본인이 언급한 내용으로 당시의 결정을 김성근 감독은 아직도 후회한다고 밝혔다.
  • [2] 실제로는 1984년 1월생이다.#
  • [3] 2005 시즌 후 방출되었다. 방출된 후 경찰청에 입대하여 창단 멤버로 뛰어난 활약을 해 삼성에서 다시 영입했다.(...) 방출된 팀에서 재영입한 보기 드문 경우다. 최형우는 스포츠 2.0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에 오게된 이유를 팀에 대한 애정이라고 밝혔다.
  • [4] 중아와 양키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 [5] 우~우우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최형우가 홈런을 날렸다는 그 말을
  • [6] Show! (Show!) 삼성의 최형우! Show! (Show!) 삼성의 최형우! 넌 주인공인 거야 언제까지나~ 영원히~ Show! 삼성의 최형우! Show! 삼성의 최형우! 넌 주인공인 거야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 [7] 여기서 쇼를 두번 외치는 부분을 나눠서 한다. 좌/우 혹은 앞/뒤로 나눠주는데 알아서 외치고 싶을 때 외치면 된다.
  • [8] 박병호 역시 대기만성형 선수인데다 포텐이 터진 시점도 비슷하다. 1군 활약은 최형우가 몇 년 더 빠르지만 리그 최고의 타자로 발돋움한 시기는 겨우 1년 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승엽의 전성기때는 우타 1위였던 심정수가 콩라인으로 밀렸었는데 10년의 시차를 두고 현대를 사실상 계승한 넥센과 삼성이 역시 똑같이 각각 리그 톱클래스 좌, 우타자를 팀에 두고 있는데 이번엔 넥센의 우타자가 독보적인 리그 탑이 되었고, 삼성의 좌타자가 콩등으로 밀려버렸다.
  • [9] 사실 따지고 보면 최형우는 콩라인은 아닌것이 2011년에 탈크보급 우타자였던 이대호를 콩등으로 밀어내고 홈런, 장타율, 타점 1위를 차지한 시점에서 이미 콩라인 조건이 완벽히 깨졌다. 리그 탑이었던 이승엽을 영원히 넘지 못한 양준혁, 심정수, 김동주를 생각해보자. 물론 MVP로 따지면 콩라인이라 칠수도 있겠지만..
  • [10] 혹자는 이를 두고 삼(3)성의 4번타자라서 34번이라고. 그럼 이분은 삼성의 6번타자? 그런데 2014년에 진짜 6번타자가 되었다?! 참고로 이승엽의 36번은 35번의 장종훈을 넘고 싶다는 의미의 등번호고, 장종훈의 35번은 35살까지 야구하고 싶다는 의미. 그러고보니 34, 35, 36 모두 홈런타자네
  • [11] 특히 송구 부분이 문제였다. 포수로 어깨는 강한 편이었는데, 본인 말로는 연습 때는 잘하다가도 실전 경기에서는 야수 키를 넘기는 송구를 종종 했다고. 경찰청 입단 테스트 때 최형우의 송구를 본 정현발 코치는 학창 시절이나 프로에서 송구 때문에 된통 혼난 적이 있는지 그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 [12] 경찰청 당시 김용철 감독은 최형우가 제대 후 갈 팀이 없을까봐 최형우의 연고 팀인 KIA에 최형우를 영입하라고 언질을 넣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했던 서정환 감독이 사임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 [13] 이때 삼성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것에 대한 최형우의 답변은 "날 버린 팀을 후회하게 해 주려고" 흠좀무.그런데 삼성이 땅을 치고 후회하려면 딴 팀에서 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14] 마쓰이처럼 우투좌타라는 점도 같다. 재밌는 건 점점 스탯도 마쓰이 히데키를 닮아간다! 2009년도 즈음 해서 나온 이야기가 점점 더 확실한 현실이 되가는 실정.
  • [15] KBO 규정상, 신인왕은 그 해에 데뷔한 선수뿐만 아니라, 처음 계약 후 5년 이내, 30이닝(투수)/60타석(타자) 이내 출장한 선수도 수상할 수 있다. 이 때, 국방부/행안부 퀘스트 플레잉 타임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 케이스로 수상한 선수 중에 가장 유명한 선수가 이동수이다.
  • [16] 이 기록은 2011년 배영섭이 경신한다.
  • [17] 삼성은 대개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하는데, 이때 쉬는 날에 최형우나 박석민 등은 빠칭코를 많이 한다고. 이때 이들이 한 빠칭코 기계가 가면라이더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었고, 이를 본 오치아이 코치가 재미삼아 최형우와 박석민에게 가면 라이더 피규어를 선물했다. 그 이후에 저런 세레머니를 하게 되었다.
  • [18] 박석민과 함께 역대 통산 백투백 홈런 최다 타이에 등극되기도 했다.
  • [19] 참고로 역대 타자들 중 홈런, 타점, 타율 1위를 모두 기록해본 선수는 이만수이대호 뿐이다. 이만수는 수위타자 1회, 홈런왕 3회, 타점왕 4회, 이 중에 트리플 크라운이 1회 있으며, 이대호는 수위타자 3회, 홈런왕 2회, 타점왕 2회, 이 중에 트리플 크라운이 2회 있다. 최형우가 만약 타격왕을 차지한다면 좌타자 최초이자 트리플 크라운 없이 셋 모두를 경험해 본 최초의 타자가 된다.
  • [20] 2008년 이래로 타율 .270 이하, 홈런 한 자릿수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 6년간 20홈런을 네 번이나 넘겼다.
  • [21] 비슷한 예로 박한이, 김한수.
  • [22] 게다가 하필 양준혁은 최형우가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뛸 때 아직 현역이었다.
  • [23] 아이러니한 것이, 사실 삼성으로 복귀한 2008년에는 우익수로 뛰면서 뛰어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무난한 수비를 보여줌으로서 삼성 외야의 한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줬었다. 하지만 2008 시즌 이후 심정수의 은퇴로 인해 공석이 되어 버린 좌익수 자리로 포지션 이동시킴으로서 수비 부담도 줄여주고, 그만큼 타석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게 해 주었으나 오히려 우익수 시절 수비보다 더 안 좋아진 모습을 보여준 보기 드문 케이스가 되어 버렸다.
  • [24]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최형우는 주전급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득점권 타율이 3할 밑으로 떨어져본적이 없는 타자다. 최형우를 싫어하는 삼성팬들이 자기 팀 선수를 욕하기 위해 만든 말. 최형우의 클러치 능력은 그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데 2008년 이후로 2011년까지 팀내 타점 1위를 놓치지 않았고, 득점권 타율은 언제나 3할 이상, 2009년 결승타 리그 6위, 2010년 결승타 리그 1위를 기록한 선수이다. 2011시즌 초,중기 그의 득타율은 2할 극초반으로 잉여가 맞았지만 시즌 후반기 버닝으로 득타율을 결국 0.350까지 끌어올렸다. 이정도면 본능 수준.
  • [25] 당시 이영욱채태인에게 붙여진 별명은 각각 잉영욱과 채잉여 였는데 최형우는 이런 잉여 별명을 가진 선수들의 우두머리 취급을 받았다(...)
  • [26] 이쪽으로는 김상현이라는 역사에 남을 플루크 시즌을 보낸 타자가 있는데도 엉뚱하게 최형우가 자주 언급된다.
  • [27] 심지어 이 해에는 삼팬들도 돌아온 이승엽이나 커리어 하이의 박석민에 더 주목했을 정도였다.
  • [28] 2008~2013. 팀이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2009년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