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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SK 와이번스 No.79
최창호(崔敞皓)
생년월일 1966년 11월 8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옥산초-대구중-경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6년 청보 핀토스 연습생 입단
소속팀 청보/태평양/현대 유니콘스(1986~1998)
LG 트윈스(1998~2002)

1996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주형광(롯데 자이언츠) 최창호(현대 유니콘스) 국환(LG 트윈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태평양 삼총사
5. 기타

1. 개요

한국프로야구의 전 투수.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 LG 트윈스에서 뛰었다. 통산성적은 77승 94패 15세이브 1,540.2이닝 1,048삼진 평균자책점 3.54. 이와 같은 훌륭한 통산 자책점으로 오버패에 77승밖에 못한 이유는 그의 전성기가 무지막지한 포풍 물타선을 자랑하던 태평양 돌핀스 시절이였기 때문이다.

최고 150km/h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예리한 커브를 가진 좌완 선발 투수였다. 커브, 스플리터, 슬라이더, 체인지업도 있으며, 선수 생활 말년에는 커터를 던지기도 하였다. 키는 174cm으로 야구 선수로썬 상당히 작았다.(GG) 특히 투수로썬 불리한 그 작은 키, 그리고 기본적으로 속구가 우완보다 4km정도 느린 좌완 투수로 최고 150km/h에 달하는 공을 던지기 위하여 개발된 최창호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 폼은 '발석차 같다' 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최창호의 투구 폼은 상당히 독특하여 보통의 투수는 와인드업 자세에서 발을 올렸다가 앞으로 내딛으며 투구를 하지만 최창호는 발을 올렸다가 앞이 아닌 디딤발쪽으로 내리며 잠시 주춤한 후, 갑자기 앞으로 내딛으며 투구를 한다. 그렇다고 키킹한 발을 땅에 닿지는 않게 하며, 한발을 든 상태에서 무릎을 최대한 굽히는거다! 야구팬들 중 그 특이한 투구폼을 실제로 따라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수준급의 근력이 없으면 거기서 주저앉게 된다(...) 고정된 포수 미트에 하루 500개의 공을 던지는 훈련과, 10시간을 산행하고 얼음물에 입수해서 몸을 식히던 오대산 극기훈련 등의 극한의 체력 트레이닝과 엄청난 하체 근력 운동으로 이런 투구폼이 가능했다.
투구폼

2. 선수 시절

대구 출신의 선수로, 야구 명문인 경북고를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불가능했고, 역대 최고의 내야수들인 최고의 명품 유격수 류중일과 '비운의 천재' 강기웅을 잡느라 외야수 이정훈을 버릴 만큼 자원이 넘쳤던 연고지팀 삼성 라이온즈에는 껴들어갈만한 틈조차 없었다. 몇몇 실업 팀 입단을 타진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던 최창호는 최약체 청보 핀토스에 연습생으로 들어간다. 이 때 대구를 떠나 인천이라는 먼 타향으로 가는 아들을 온 가족이 따라나섰고, 아버지는 인천 도원야구장 앞에 '홈런 슈퍼'라는 구멍가게를 열었다. 그리고 가게 옥상에서 벌을 기르고 꿀을 모아 최창호를 돌보았다.

1986년 청보 핀토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후에 가능성을 인정받아 1987년 청보 핀토스의 2차 3순위로 정식 지명되었다. 참고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종종 연습생으로 입단한 선수들을 신인 지명에서 다시 지명하는 일이 있었다. 김상진조웅천도 그러한 케이스.

연습생 입단 2년차인 1987년 청보 핀토스에서 데뷔했지만, 2년동안 23.1에 8점대라는 평균자책을 거두며 그다지 두각을 발휘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3년차인 1989년 그해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눈에 들었고, 김성근 감독 특유의 엄청난 지옥 훈련을 거쳐 그는 굇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좌완이란 이점과, 그의 작은 키로 인한 낮은 릴리즈 포인트와, 거기서 나오는 150km/h의 속구라는 넌센스한 조합으로, 상대 타자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삼진을 먹이며 농락했다. 1989년 최종 성적은 223.1이닝 10승 14패 평균자책점 2.22. 그해 선동열과 같은 팀의 박정현에 이어 평균자책점 3위. 탈삼진은 선동열에 이어 7개차로 191개로 2위를 차지하여 '닥터 K'의 위명을 얻게 된다. 그해 리그 3위인 평균자책점 2.22에 14패나 먹은 것은 당시 태평양 돌핀스망하다 못해 얼어 죽은 역대 최악급의 물방망이 때문이다. 그 후 1991년에는 233이닝을 던져 15승을 찍는 등 별 일이 없다면 10승과 2점대 후반 정도의 성적을 올려주는 투수로 태평양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1997년부터 슬슬 부상에 시달리면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팔꿈치 부상도 있지만, 앞에서 말한 그 특이한 투구폼 때문에 생긴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다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투구 폼이다 보니... 최창호는 훗날 인터뷰에서 자기 투구폼을 무턱대고 따라하지 마라고 말했다.

1998년 현대 유니콘스는 정규리그 1위를 질주하면서도 확실하게 우승을 노리기 위해, 2루를 맡아줄 젊은 내야수를 보강하고자 했다. 결국 투수진 보강을 노리던 LG 트윈스와 내야수를 찾던 현대 유니콘스의 합의로 박종호와 최창호 1:1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박종호는 이후 박진만과의 환상적인 키스톤을 이루면서 현대 왕조의 주역이 되었고, 이후 삼성으로 FA이적하였다.)

그런데 1998년 한국시리즈는 바로 현대 유니콘스LG 트윈스였고, 그는 결국 염원해오던 인천야구의 첫 우승, 현대의 첫 우승을 반대편 덕아웃에서 쓸쓸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당시 현대에서 '큰형님'(투수 주장)노릇해왔던 정명원은 우승한 후 우승소감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같이 동고동락해왔던 창호, 정현(박정현. 당시 재기불능 판정을 받고 트레이드에 껴서 쌍방울에 있었다.)이가 이 자리에 없는 게...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면서 울었다. 이는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이 서로간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이 '태평양 투수 3총사'는 과거 태평양-현대 팬들에게 상당히 큰 그리움과 추억이여서, 아무도 그를 까는 사람은 없었다.

최창호는 훗날 2006년의 인터뷰에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저쪽 팀에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게 된 걸까 싶었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진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나더라"라고 당시 현대구단에 섭섭했음을 회고하기도...

그 후 LG에서 첫 승리 투수가 된 것이 1999년 친정 팀 현대 유니콘스전이였다.

점점 실력이 뒤처지자 2002년 시즌 후 자진 은퇴를 하는데 스승인 김성근이 말렸으나 본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은퇴 수습을 밟는다.

선수 시절 우승 경력은 없고 준우승 경력은 1994년(태평양), 1996년(현대), 1998년(LG), 2002년(LG)으로 콩라인 가입되었다. 지못미

3. 지도자 시절

은퇴 이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의 코치를 겸하며, 2010년 중반까지도 나이 풀린 선수출신(40세 제한)으로 사회인 야구에서 130에 가까운 직구와 120에 가까운 스플리터로 양민학살을 하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초이볼'이라는 야구 관련 사업을 하면서 간간이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등 야구계 업종에서 활동했다고 한다.사업은 그리 잘 되지만은 못했는 듯. 그래도 화구를 많이 던질 수 없는 아마추어 투수들을 위한 손목 강화용 운동기구를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일 넥센 히어로즈가 최창호를 2군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머나먼 강진에서 투수코치 생활을 하던 정명원이 말동무나 할려고 친구 최창호를 불렀다는 소리가 있다. 그런데 2011 시즌이 끝나고 정명원두산 베어스로 혼자 떠나면서 졸지에 최창호 혼자 2군 투수진의 육성을 떠맏게 되었다. 2012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팜이 말 그대로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대단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2013 시즌까지도 마찬가지, 2군에서 성장해서 1군에 올라오는 투수가 전무한 현실이다.

2013 시즌이 종료하고 SK 와이번스의 3군 투수코치로 옮겼다. SK, 신규 코치 영입 포함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4. 태평양 삼총사

박정현, 정명원과 같이 '태평양 삼총사'라고 불리웠으며 그 셋의 친분도 굉장히 강했다 한다. 참고로 정명원과는 동갑, 박정현은 그들보다 3살이 어리다. 더불어 정명원은 190cm의 거한이였고, 박정현도 190cm의 깡마른 장신이여서, 머리 하나가 차이 나는 174cm인 최창호가 그 둘과 같이 다니면 리얼 '키다리와 땅딸보'를 보는 듯 하였다 한다.(...), 그 세 명은 1989년과 1991년에 같이 동반활약하며, 태평양 투수 삼총사의 명성을 드높였다.

5. 기타

  • 문제의 태평양 데이 때 SK 와이번스의 시구자로도 나섰다. 1년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족보문제에 대해 “원조를 굳이 꼽자면, 아니 팀 모태를 보면 히어로즈로 볼 수 있죠. 하지만 워낙 복잡 미묘한 문제라서 단언할 수는 없어요. 단, 분명한 것은 현재의 상황입니다. SK가 지금 인천 야구를 대표하잖아요. 히어로즈를 인정하되, SK를 믿고 사랑하는 것도 팬들의 몫이 아닌가 싶어요.” 라는 말을 하였다. 이 부분은 삼청태현 항목 참조.

  • 여담이지만, 김은식 작가는 SK의 원조 에이스였던 이승호를 보면 최창호가 떠오른다고 SNS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김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적자면 신인 때부터 강속구와 커브로 리그를 뒤흔든 선한 눈매를 지닌 단신의 좌완 투수라는에서 최창호가 떠오른다고. 그러나 닮았지만 조금 더 가파른 이승호의 내리막길이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그래도 이승호는 20억이라는 목돈도 만지고, 우승반지도 2개나 있잖아.

  • 동생인 최승호도 경북고를 나와 태평양에 입단한 야구선수였으나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은퇴. 현재는 평범한 회사원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