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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

last modified: 2013-10-01 22:42:11 Contributors

무신정권의 집권자
최씨 정권
최항 최의 김준

최의
崔竩 (? ~ 1258)

Contents

1. 개요
2. 정권 계승
3. 처참한 말로
4. 사후
5. 잘못된 부하 관리
6. 관련매체에서의 모습

1. 개요

고려의 무신. 무신정권의 집권자. 그리고 60년 최씨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아버지인 진평공 최항이 승려로 있을 때 송서의 여종과 정을 통하여 낳은 아들로 용모가 아름다우며 두 손에 은은하게 금색이 있었고, 성품이 침묵하여 부끄러움이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인 최항이 경림에게 예기로 시와 필법, 권위 임익에게 정사, 정세신에게 예를 가르치게 하였다.

2. 정권 계승

1255년에는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면서 붉은 색의 가죽 띠를 하사받았으며, 1257년 4월에 아버지인 최항이 사망하자 야별초, 신의군, 서방삼번, 도방 삼십육번 등에게 옹위받아 차장군이 되었다가 교정별감이 되면서 최씨 정권의 4대 집권자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아버지가 죽은 날에 아버지의 폐첩과 간통을 하였으며, 성품이 침묵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대매? 아버지인 최항이 기생의 소출이면서 자신의 어머니 또한 천하였기 때문에 원한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출에 대해 험담한다고 참소하면서 이들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집권 초기에 민심을 얻기 위해 창고의 곡식을 내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면서 여러 영부에 각각 30곡을 주었으며, 고종이 추밀원부사 판이병부 어사대사에 임명했으나 이를 사양하면서 받지 않았다. 연안택과 정평궁을 왕부에 돌려주고, 집의 쌀 2,570석을 내장택에 베, 비단, 철, 꿀을 대부시에 바쳤다.

또한 농사의 형편이 좋지 않아 흉년이 들자 사름이 된 모를 내어 권무대정, 근장좌우위, 신호위, 교위 이하 및 마을 사람들을 구제하였으며, 고종이 추밀원 부사에 임명하였지만 이를 받지 않고 사양하자 우부승선에 임명하였다. 민칭이란 사람이 몽골에게서 도망오면서 금패를 바치면서 몽골의 대신들이 의논하여 이후에는 동쪽으로 정벌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를 듣고 기뻐하여 민칭을 산원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데다가 집권 초기의 선정도 오래가지 못하였으며, 집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5월에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8차 침입을 하는 상황에서 전횡을 부렸다. 1257년 10월에 몽골군은 선철군 후입조의 설득에 따라 철수하게 되었다.

1258년 1월에 장군 변식, 낭장 반홍민, 산원 정한규 등을 강화수획사(江華收獲使)로 삼아 약탈을 자행하게 하자 백성들이 이를 수근거렸다. 최항의 측근이었던 대장군 송길유가 경상도수로방호별감으로 있을 때 백성들을 섬으로 옮기면서 집을 불태우면서 토지, 재물 등을 빼앗자 안찰사 송언상이 그를 탄핵을 받았는데 이에 김준이 송길유를 구하려고 했지만 외삼촌인 거성원발의 말에 따라 송길유를 유배보내면서 자신과 유경, 유능을 꾸짖자 김준을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2월에 노비에게 벼슬을 주는 특례를 만든 아버지 최항이 노비에게 벼슬을 준 것과 같이 자신도 노비인 이공주, 최양백, 김준 등을 별장으로 삼았으며, 섭장수를 교위, 김충을 대정으로 삼았다. 이후에는 이공주를 낭장(郎將)의 벼슬로 높였다.[1]

3. 처참한 말로

현명한 선비를 잘 대우하지 않고 유능, 선인열, 최양백만을 신임하면서 그들의 참소를 듣고 살육을 함부로 하였으며, 3월에 기근이 들었을 때 곡식을 대여하지 않아 인심을 크게 잃었다. 또한 송길유를 귀양보낸 일로 유경, 유능, 김인준, 김충 등 최항의 측근이던 자들이 불만을 품게 되었다.

결국 이들은 4월 8일에 공격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중랑장 이주가 이를 듣고 견룡행수 최문본, 산원 유태, 교위 박선, 대정 유보 등에게서 비밀리 글로써 통하거나 김대재가 장인인 최양백에게 이 계획을 누설해서 최양백이 거짓으로 응하는 척 했다가 이를 최양백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유능을 불러 함께 상의하여 계책을 논의하여 편지를 통해 야별초 지유 한종궤에게 새벽에 이일휴 등을 불러서 군사를 정돈하고, 김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지만 김대재의 처가 누설된 사실을 김준에게 얘기해서 알아챈다. 이 때문에 군사를 정돈하기 전에 이들 공격을 받아 유경, 김준 등 최씨 정권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이 이끄는 신의군과 야별초의 공격을 받아 붙잡혀서 살해된다.

최씨 정권은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되는데 뛰어난 무인이었던 장인 성원발[2]이 그를 구출했으나 너무 뚱뚱해서 담을 넘지 못하고 다락방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다락방에서 숨어들었다가 끌려나와 죽었으니 지나친 살은 "정말" 건강에 해롭다(...).

4. 사후

진양부에서 그를 참수한 김준은 그의 머리를 들고 고종에게 갔는데 고종은 그의 머리를 보고 통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 최우, 아버지 최항의 무덤이 부관참시된 걸로 봐서 그는 최소한 무덤에 묻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5. 잘못된 부하 관리

최항의 집권 과정에서 안 그래도 분열, 약화 되었던 최씨정권이 최의가 집권하자 더 심하게 분열하였는데 자신을 옹립한 유능, 선인열, 최양백의 권한이 엄청 커졌다. 특히 이들 중에서 최양백을 총애하면서 최항의 측근이었던 자들을 의도적으로 정치에 소외시켰다.

자신을 천거한 송길유를 부정부패 혐의로 유배보내자 김준은 이를 구명하는데 실패하면서 위험에 몰리게 되었다. 이 일이 쐐기가 되어 유경, 김준, 김충 뿐만 아니라 측근이었던 유능과도 서로 미워하여 만나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자신의 세력 기반을 스스로 깎아먹었다.

이 때문에 최의에게 반대하는 문신, 무장들이 모여서 최의를 살해하여 최씨 정권을 종식시키는 결과를 가졌지만 이후에 나타난 무신정권은 소수의 공신들이 참여하여 성립된 정권이기 때문에 그 지지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비록 최씨정권 붕괴 이후에 10여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지만 무신정권 자체가 최씨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의의 죽음으로 인한 최씨정권의 최후는 무신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관련매체에서의 모습

드라마 무신(드라마)에서는 배우 이도영으로 쩌리 엑스트라에 가깝게 나왔는데, 도방 격파에 성공한 김준에게 붙잡혀서 무릎을 끓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절규하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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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저중 이공주는 해방되지도 않은 노비 신분에서 관직을 제수받은 것이었다. 고려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고 한다.
  • [2] 이 사람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노비 출신으로 추측되는데 말 그대로 무쌍난무를 연출했다. 좁은 문을 가로막고 수십명의 삼별초 무사들을 죽였으나 끝내 이마에 칼을 맞고 부상당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중상을 입은 상태로 담을 뛰어넘어 도망쳤으며 결국 해안가 갯벌까지 도망친 끝에 거기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다 조카 잘못둔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