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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종

last modified: 2019-07-23 13:29:48 Contributors

대한민국배우. 역대 시청률 top 10 가운데 세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국민배우. KBS 연기대상의 유이한 트리플 크라운[1]. 물론 요즘엔 많이 늙었다. 물론 2015년 기준의 한국나이로는 올해 54살 동안이지만...
대한민국 남편들의 공공의 적.


시공을 넘나들며 한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걸어다니는 한국사.
높고 빼어난 재주를 가졌다 하여 '崔秀(최수)'에 종(宗)을 붙여 '최수종'이란 묘호를 받은 한국 역사의 숨은 군주. 그의 업적은 참으로 놀랄수 밖에 없다. 먼저 삼국을 통일하였으며 또한 발해를 세웠다. 그리고 해적들을 죄다 쓸어버려 해상왕(海上王)이라 불렸고, 후삼국 시대도 통일 했다. 하지만 그 뒤 시련을 겪어 뒤주에 갇혀 시련을 겪었으나, 강화도에서 왕궁으로 복귀하였다.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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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이름 최수종(崔秀宗)
출생 1962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신체 174cm, 68kg, B형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데뷔 1987년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가족 (妃)배우자 하희라, 1남 1녀, 누나 지원[2]
소속 SnH이엔티
팬카페트위터

KBS 연기대상
유동근
(1993)
최수종
(1998)
채시라
(1999)
김영철
(2000)
최수종
(2001)
유동근
(2002)
하지원
(2006)
최수종
(2007)
김혜자
(2008)

Contents

1. 데뷔 전 스토리
2. 1990년대: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훈남 배우
3. 2000년대: 사극의 본좌
4. 기타
5. 출연작 왕 컬렉션
6. 시청률의 킹
7. 영화에서의 최수종
8. 논란거리
8.1. 사채광고 출연 논란
8.2. 학력 위조 논란
8.3. 병역관련 논란

1. 데뷔 전 스토리

최수종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고급 공무원으로, 어린시절은 꽤 유복했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번창하자 온 가족이 이민을 갔으나 당시 고교생이던 최수종과 누나는 학업때문에 한국에 남았다. 이후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등 평탄하게 살았으나 아버지 사업이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최수종은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생업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여고생의 과외 알바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여고생의 아버지가 KBS 예능국 국장이였다. 최수종의 외모를 눈여겨본 예능국 국장은 최수종에게 배우를 제의했고 그 데뷔작이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다.[3]

2. 1990년대: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훈남 배우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해서 드라마 초반에 나올 때만 해도 최재성이 주역이고 최수종은 조연A 정도였는데, 드라마가 가면 갈수록 자리를 잡아가다가 - 최재성이 개인 사정으로 드라마에서 빠진 덕도 있지만 - 후반에 가선 커플을 연기한 이미연과 함께 아예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잡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당대의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거기다 KBS 일일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주연을 맡아 지원파트너로 대히트를 이끌면서 소녀들의 우상 소리 들으면서도 그냥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 연기력까지 보인다.

이후 주 무대를 MBC 쪽으로 전환, 배종옥, 응경과 같이 연기한 '행복어사전', 또 한 번 배종옥과 함께 하면서 음정희까지 곁들인 '도시인'에 출연해 발랄한 청년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최진실과 공연한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질투에서 이런 이미지의 정점을 찍게 된다.

이렇게 발랄하고 현대적인 청년 역으로 인기를 끌던 와중에 갑자기 노선을 전환해 아들과 딸에 출연, 부담스럽고 편파적인 어머니의 애정과 그 와중에 희생당하는 누나 사이에서 고민하며 6-70년대를 살아가는 우유부단한 젊은이를 연기했다. 이 드라마로 김희애는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최수종 역시 자신이 청춘스타 이미지로만 먹고 사는 연기자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드라마《아들과 딸》에서 김희애와 함께 한 최수종.

파일럿으로 다시 한 번 발랄한 현대 청년 스타일로 히트 드라마를 만든 후 몇 가지 드라마에 주연을 맡다가 주무대를 다시 KBS로 전환하여, 일일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바람은 불어도'에서 재치 있는 막내아들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그의 주가가 가장 상승했던 시점은 역대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 기록[4][5]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 '첫사랑'(1996~1997)의 주연으로 나왔을 때. 이승연, 박상원, 배용준, 최지우 등과 함께 한 이 드라마에서 최수종은 첫사랑인 이승연과 끝내 맺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훈남 이미지를 극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최수종 본인은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일년 뒤에는 유동근, 채시라, 염정아 등과 함께 한 시대극 '야망의 전설'에서 혼신의 연기로 생애 첫 연기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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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데뷔 때부터 90년대까지 최수종은 명랑한 청년 스타일과 가족과 시대 환경 속에서 고민하는 남자 스타일을 오가며 히트작을 양산한 연기자였다. 거기다 각종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 드라마에서 써먹은 명랑 청년 스타일의 캐릭터에 걸맞는 오도방정과 입담으로 주말 KBS, MBC 쇼 프로그램의 MC와 시청률을 보장하는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당대의 예능에 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도 입담으로 시청률을 올리다 보니 아예 최수종이란 이름 걸고 토크쇼도 진행했고, 이 토크쇼 역시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오늘날로 치면 유재석에서 좀 덜 독하고 좀 더 부담 없이 웃긴 스타일. 요즘 사극에서 무게 잡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전혀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지만. 특히 일밤에서 이경규와 같이 호흡을 맞추는 최수종의 모습은 최수종이 코메디언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3. 2000년대: 사극의 본좌

30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최수종은 이 묵직한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두 번째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그 역할이 KBS가 기획하던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기실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은 "최수종이 사극을 한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수종이 왕건? 안 어울리겠는데?" 정도였다.[6]

사실 최수종이 사극 연기를 한 게 태조 왕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데뷔 초기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사도세자[7]철종역을 한 적도 있고, 정보석, 염정아와 함께한 드라마인 '야망'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 선비 역을 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저 두 드라마는 인기를 못 끌고 묻혀 버렸고, 그래서 최수종의 사극 연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컸다.

그러나 최수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온유함 속에 강함이 숨겨져 있는 왕건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중후한 이미지의 사극 배우로 다시 거듭나게 되었다.[8]

거기다 최수종은 왕건이란 이미지에 시청자가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도 즐기던 쇼 프로 게스트 출연을 왕건 방영기간 동안 일체 하지 않을 정도로 공을 쏟았고, 그런 노력은 노력만큼 보답을 받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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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의 김영철과 최수종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는 거의 완전한 사극 전문 배우로 전환,《양인 이제마》, 《해신》, 《대조영》 등 KBS의 대표 사극에서 모두 주연을 꿰찼기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 드라마를 본 90년대 이상 세대는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 특히 왕이나 장군 전문인 줄 안다. 대략 최수종 무한 환생설. 뭐 활동상을 보면 딱히 틀렸다고 할 순 없는데 질투, 바람은 불어도, 첫사랑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음...

《웹툰 나비효과》60화 제왕의 상

그리고 연기력의 측면 외에도 사극에서 최수종의 투입 빈도가 높아지는 이유 중에는 막강한 동안[10]도 한 몫을 한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분 사극의 주인공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는 시기가 중년시기라서 기존 사극들은 주연 배우의 나이가 젊어봐야 30대인 상태였고, 이로 인해 청년기를 다룰 경우 젊은 배우를 따로 캐스팅해 청년기를 다룬 후 중년시기로 점프해 시작하거나 해당배우가 분칠하고 젊은 척을 해야 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예: 삼국기)을 감수해야 되는데...최수종은 조금만 분칠하고 보정하면 30대 초중반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11] 이로 인해 주인공의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한 배우로 표현할 수 있어서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2010년에는 전우에서 비교적 현대적인 배역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사실 전우도 시대극이지만 이 정도면 다시 연기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너무 사극에만 나와서 지겹다, 똑같은 연기만 한다 등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연기나 정극에서의 진지한 연기도 충분히 소화할 만한 역량이 있는 검증된 배우이기 때문에 다시 역할을 전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본인은 악역을 맡고 싶어하기도 한다고.[12])

그러나 이렇게 장기간 사극을 하는 바람에 직업병이 생겼는데 은연중에 말투가 자기도 모르게 사극화된다는 점이다. 하희라안습. 이런건 최수종 뿐만 아니라 최재성도 마찬가지. 사극 위주의 배우들은 아예 말투부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결과 이게 습관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차기작인 프레지던트는 현대극이며, 절대선이 아니라 악한 모습도 보여준다고 한다. 참고로 사극에서 왕을 하던 배우라서 그런지, 현대극에서도 대통령 역할이다. 광개토대왕 후속작 대왕의 꿈에 캐스팅되어 또 왕이 되려는 듯. 본격 왕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인듯.


현재의 입지는 KBS를 대표하는 드라마 배우. 많은 드라마 배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연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12년 12월 대왕의 꿈을 촬영하던 도중 낙마사고를 당해서 쇄골과 손에 골절상을 입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극은 별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김춘추를 다룬 많은 역사서적을 탐독하면서 배역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한다. 심지어 마지막 대사 리딩 연습 때에는 배역에 대한 몰입과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을 정도라고. 여담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수시로 사비를 털어가면서 연기자들에게 밥차를 불러 대접하는 등 출연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어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사극에서 보여준 왕의 모습들이 워낙 인상이 강해서, 2013년 8월 10일 SNL 코리아 호스트로 나왔을 때 '사극왕 최수종'이라 하여 본인이 맡았던 배역들이 이제마 빼고 전부 다 나오기까지 했다(...). 여기서의 내용을 보면 최수종은 왕이나 장군 역할 계속해야 될 운명인듯... 네 이놈 수종! 네놈이 감히 왕의 자질을 저버리려 하는 것이냐! 물 대신 사약이나 마셔라! 쌍커풀 메이커 에서 궁예분장을한 김민교가 "수종 네 이놈의 차기작은 퇴계 이황 이니라." 하고 드립을 날리면서 1000원권 지폐와 최수종의 눈이 합성된 장면이 나오는데 싱크로율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가 퇴계 이황 드라마가 나온다면 캐스팅 될지 모른다...;;

2014년 TV조선 불꽃 속으로에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을 모델로 한 박태형으로 분해 일제시대와 6.25의 혼란을 이겨내고 제철소를 건설하는 기업가역을 맡았다. 수많은 업적에 대한민국 경제부흥이 더해졌다.

4. 기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몸이 건장하며 힘이 엄청나게 세다고 한다. 한일 씨의 말에 의하면 연예계에서 임성훈(MC)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주먹으로는 적수가 없을 거라고까지 했지만... 이거야 그냥 하는 소리니 큰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너무 깊게 파고들면 줄리엔 강, 마동석, 강호동, 김영호, 김종국 등등등 실제 연예게 최강자들이 존재하니깐...

다만 운동신경이 좋다는 건 사실이다. 청소년 시절 축구선수를 해봤던지라 연예계에서 축구 잘하는 사람 하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래서 2002년 월드컵기념해서 최수종의 골든볼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한국 연예인팀의 일원으로 일본 연예인들과 친선 축구경기를 가진 적도 있다. 축구가 아니더라도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평소에 단련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운동신경이 탁월하다는 점도 그가 사극에서 장군역으로 자주 캐스팅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담이지만 평소에는 화를 거의 안 내는 성격이라고 하는데 축구할때만 되면 승부욕이 강해져서 화를 자주 낸다고 한다(본인도 인정했다.). 얼마나 심한가 하면 아들과 함께 축구하는 중에도 시합이 잘 풀리지 않자 소리를 지를 정도이고, 친한 선배 연기자인 이덕화의 증언에 의하면 시합하다 지거나 다치거나 하면 짜증을 낸다고 한다.

그리고 최수종 본인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고 한다. 해신 촬영 당시 어떤 후배 연기자가 2시간이나 지각을 하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섭게 꾸짖었다고 한다.

야망의 전설을 찍을 당시 폐소공포증이 생겨버려서 오랜 기간 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와야 할 정도였다고.

아내인 하희라와 자식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관련기사


카리스마도 대단해서 드라마 전우 촬영당시 최수종을 때려야하는 신에서 그걸 맡은 후배배우들이 속으로 죽을맛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촬영장에서 목소리가 과장이 아니고 쩌렁쩌렁하게 울리신다. 정말 제왕의 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듯(촬영장 알바증언). 인심 또한 후한 편이라 대왕의 꿈 한화분 촬영뒤, 회식자리때문에 어쩔수없이 자리를 뜰때까지 자기에게 사인요청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고.(촬영 알바 증언. 촬영 pd들에게서 직접들었다)

악역을 아예 안 맡은 건 아닌데, 과거 90년대 중반 KBS 주말 예능에서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최수종의 파우스트>란 코너에서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델로 한 악마를 열연한 바 있다. 말그대로 절망에 빠진 인간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 교묘하게 계약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에 나락에 떨어트리는 그런 내용이였는데 당시 신인들도 많이 나왔다. 이 중에 압권은 자신이 계약시킨 한 인간(바로 홍경인!)이 나락에 떨어진 끝에 자신의 후배 악마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홍경인이 너무 잘해 최수종은 짤려버리는 코믹한 장면도 나온다.[14]

아내인 하희라와는 현재도 깨가 쏟아지는 잉꼬부부로 유명하며 어느정도냐면 기념일마다 언제나 다른 이벤트를 개최해줄 정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애처가의 모범.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남편들의 적이다.

KOF로 유명한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신키로가 그린 그림들은 얼굴이 죄다 최수종 얼굴이 된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90년대에는 코믹 댄스로 일세를 풍미(...)하기도 했다. 90년대 중후반에는 코믹 댄스 = 최수종으로 통할 정도.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막춤을 춰 대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인 하희라가 춤추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하도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나중에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희라가 이미지 망가진다고 춤 추지 말랬는데..."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춘다.

여담으로 30년이 다 되어가는 연기 인생 중에서도 SBS에는 한번도 출연한 적이 없다.

5. 출연작 왕 컬렉션

사극에서 맡은 배역들을 보면 대부분 아니면 장군이다 의사(이제마)와 소설가(이광수)도 하나씩은 있다. 쫄병(이현중)도 하나 있다...

작품명 연도/방송사 배역
랑이 꽃피는 나무1987/KBS현우
조선왕조 5백년 한중록1988/MBC사도세자
사랑은 구름을 비로 내리고1989/MBC오상민
1989/MBC진국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1990/MBC상훈
조선왕조 5백년 대원군1990/MBC철종
울뚝배기1990/KBS박만봉
가족1991/KBS영재
복어사전1991/MBC서재필
시인1991/MBC최치원
질투1992/MBC이영호
춘원 이광수1992/MBC이광수
아들과 딸1992/MBC이귀남
뜨거운 강1993/MBC중수
파일럿1993/MBC강민기
야망1994/MBC이인수
마지막 연인1994/MBC영규
람은 불어도1995/KBS황산해
프로젝트1996/KBS형우
첫사랑1996/KBS성찬혁
불꽃놀이1997/MBC성태, 조민호
그대 나를 부를 때1997/KBS강범수
야망의 전설1998/KBS이정태
아름다운 비밀1999/KBS유민
사람의 집1999/KBS서원탁
사랑하세요1999/KBS박상현
태조 왕건2000/KBS왕건
양인 이제마2002/KBS이제마
저 푸른 초원 위에2003/KBS차태웅
장미의 전쟁2004/MBC박수철
해신2004/KBS장보고
대조영2006/KBS대조영
전설의 고향 사진검의 저주2008/KBS윤인
전우2010/KBS이현중
프레지던트2010-2011/KBS장일준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아들을 위하여2011/KBS성호
대왕의 꿈2012/KBS태종 무열왕
불꽃 속으로2014/TV조선박태형

6. 시청률의 킹

첫사랑 (65.8%)
아들과 딸 (61.1%)
태조왕건 (60.2%)
질투 (56.1%)
바람은 불어도 (55.8%)
야망의 전설 (50.2%)
야망 (49.0%)
파일럿 (46.2%)
대조영 (33.3%)
해신 (31.7%)
저 푸른 초원 위에 (31.1%)
ㅎㄷㄷ



명실상부 현존하는 배우들 중 시청률의 킹. 영화라면 몰라도 드라마 커리어로 최수종을 뛰어넘는 필모를 자랑하는 배우는 존재하질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최수종과 시청률로 맞먹는 배우는 채시라, 故 최진실정도.[15]
참고로 여기 나열된 시청률은 전부 대박급 시청률이고 중박이상까지 나열한다면 더욱 많아진다. 그의 데뷔작인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정확한 시청률은 알 수 없지만 최수종에 언급에 의하면 그 당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작품이었다고 하고 '서울뚝배기'나 '행복어사전'도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대조영 이후의 작품들은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운 기록만 봐도 시청률에 있어선 역대급이다. 태양인 이제마도 28%정도이고 중박이상의 작품까지 생각하면 더욱 많아진다.
90년대 후반한정김희선이 짧은 기간에 8개의 드라마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것보다는 덜하지만, 김희선은 2000년대이후로는 죄다 망해버렸기 때문에 시청률에 있어서 최수종 만한 전설급인 배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7. 영화에서의 최수종

주무대가 TV인 최수종이지만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데뷔 초의 영화 몇 편은 흑역사 수준.

1990년 남기남 감독의 영화인 '슈퍼맨 일지매'에선 변신 히어로도 해 먹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선 얼굴 나오는 장면도 얼마 안되며 거의 복면쓴 스턴트맨이 연기를 다 한다.(...) 그러나 6백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건넨 이 영화 덕분에 최수종은 곰팡이 쓸던 단칸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당시 최수종은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로 등극했지만 집안의 빚을 갚고 이민 가 있는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돈을 벌어도 모으질 못 하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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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어로답게 뿔테안경 쓰고 있는 최수종

다행히 같은해 1990년, 당대의 청춘스타이던 하희라와 같이 출연한 영화 '잖아요 비밀이에요'가 쏠쏠한 인기를 끌면서[16] 여러 청춘영화에 연속해서 주연을 맡는다. 이미연, 홍학표와 함께 한 '비 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 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으면서 김민종 변진섭까지 나온 '너에게로 또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이 시기의 영화들이다.(이렇게 하희라하고 계속 영화를 찍으며 함께 하다 보니 결국 최수종과 하희라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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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인연을 이어준 영화. 맨 오른쪽 사람은 어째 흑역사화 되어 있지만.[17]

그러다 오연수와 함께 연기한, 치고 박는 신혼부부 이야기《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가 좀 히트를 했고, 그 덕인지 몇 년 후에 김혜선과 신혼부부로 치고 박는 이야기인《키스도 못하는 남자》를 찍었는데, 키스도 못하는 남자가 별 재미를 못 보기도 했고(…) 이후로는 정극 위주의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지 않고 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가진 최수종이지만, 시리즈로 기획된 드라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인 만큼 굳이 영화계로 진출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영화계에 오랜간만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철가방 우수氏'라는 훈훈한 작품에 노개런티로 컴백했다.

8. 논란거리

8.1. 사채광고 출연 논란

2006년 최수종은 타락과감한 외적 변화(?)를 시도한다. 바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 그러나 톱스타라는 사회적 위치와 기존의 모범적 이미지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 곧바로 시청자로부터 질타가 쏟아졌으며,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관련기사 이에 최수종은 반성한다는 사과문과 함께 해당 계약을 체결한 매니저를 해고함으로써 해당 사건을 마무리 지으나, 이후 터진 학력위조 사건과 겹쳐 한동안 방송 출연이 힘들게 됐었다.

8.2. 학력 위조 논란

학력 위조 열풍이 거셌던 2007년 당시, 이와는 무관할 듯 보였던 배우 최수종마저 학력 위조 사실이 드러나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다니지도 않았던 학교임에도 학교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여 그 학교 출신 마냥 행세를 해왔었기에 논란은 더욱 불거졌었다. 관련링크1 이른 바 국민배우로 불리던 그였고, 대외적으로도 바른 생활 이미지만을 보여왔었기에 그 충격은 한층 더 깊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의도적인 위조가 아닌 전달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90년대부터 최수종 자신이 직접 여러 매체를 통해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언급했으며, 총 3권으로 발간된 본인의 자서전 모두에서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기재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배우 최수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관련 링크2 또한 이후 주장한 유학 생활에 대한 언급도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의혹이 일었었다. 관련 링크3

그러나 이후, 해당 대학에 합격은 했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하지 못했다는 해명으로 사건의 포커스가 해당 대학 재학이나 졸업이 아닌 해당 대학 합격 유무로 옮겨가더니, 결국 해당 대학 측에서 합격 사실을 확인해 준 후로는 해당 사건은 더 이상의 해명 없이 유야무야 묻혀 버렸다.[18]

나중에는 해당 대학 측에서 최수종에게 명예졸업장을 건네주어 동문으로 인정해주었다 카더라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이는 학력위조 사건이 터지기 한참 전의 일이며 되려 최수종 본인이 모종의 이유로 명예졸업장을 고사했었다. 관련 링크4

이와 같이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통에, 배우 최수종에 대한 도덕성은 막대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로 인해 2010년 KBS 전우로 복귀할 때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했다. 허나, 당시 최수종의 대처 방식 또한 그리 훌륭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앞선 대부 업체 광고 논란이나 학력 위조 사건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모두 매니저 탓으로 돌려 비난을 키운 면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 관련링크5, 관련링크6 이는 2010년 이효리 표절 사건의 대처방식과 유사점을 보이기도 한다.

8.3. 병역관련 논란

군대는 면제로 되어 있다. 생계곤란으로 면제되었다고 하는데, 위의 학력 논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그렇게 받은 듯하다. 하지만 2004년 장혁, 송승헌, 한재석이 병역비리에 걸렸을 때 세트로 걸렸으나, 공소 시효도 지난 데다가 너무 나이가 많다고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하지만 생계곤란 사유 때문에 무열은 결국 논란만 일다가 자기 발로 군에 들어갔다
위의 2가지 논란에 비해서는 조용한 편이며, 여기에 대해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연예인의 병역 논란이 커지기 시작한 건 2002년누구 이후여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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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또 다른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는 비슷한 왕 전문 배우(?)인 유동근.
  • [2] 前 가수 조하문의 아내. 前 연기자(예명 최수지). 유인촌과 상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 [3] 토론토 주사랑 교회에서 최수종이 직접 간증한 내용.
  • [4] 최종회에서 시청률 65.8%를 찍었다.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 다만 이것은 한 회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고 드라마 전체의 평균 시청률이 최고인 작품은 사랑이 뭐길래.
  • [5] 깨질 수 없는 불멸의 기록이다. 당시에는 케이블 시대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컨텐츠가 없던 시절이라 가능한 기록이다. 지금은 드라마도 다운로드받는 시대이고, 굳이 TV가 아니더라도 여가를 보낼 수단이 다양하다. 그렇다고 해서 저 기록이 평가절하될수는 없다.
  • [6] 실제로 태조 왕건이 방송하기 전에 예고편에서 최수종이 왕건으로 나와서(수염을 붙이지 않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본 몇몇 시청자들이 웃기까지 했다.(...)
  • [7] 상대역인 혜경궁 홍씨역의 최명길씨와 호흡을 맞췄는데, 그 몇 달 전에 이미 KBS에서 한중록을 다룬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늘아 하늘아인데, 아역 배우들의 (랑 머리재은이 혜경궁 홍씨 아역) 호연으로 먼저 인기를 선점한데다 성인 배역들도 그 인기를 잘 이어갔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하희라였다(...) 한 마디로 결혼하기 미래의 아내에게 같은 소재의 작품으로 시청률에서 졌다(...)
  • [8] 초기에는 궁예 역할을 맡았던 김영철이나 종간 역을 담당했던 김갑수의 카리스마에 밀리는 감이 있었으나, 명백한 주연으로 등장하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폭풍간지였다.
  • [9] 그리고 태조 왕건 종영 후 가족오락관에 왕건팀이 나온 왕건오락관, 출발 드림팀에 왕건출연진이 나온 왕건드림팀과 같은 예능 출연을 하기도 했다.
  • [10] 최민수, 최민식과 동갑.
  • [11] 이것도 나이 50 넘기면서 많이 올라간거고 40대 중반이었던 대조영 때까지만해도 20대 초반까지 충분히 커버했다.
  • [12] 실제로 1997년 MBC 납량특집 드라마 '불꽃놀이'에서는 1인 2역 쌍둥이로 한쪽은 선역, 한쪽은 악역으로 열연하기도 했다.
  • [13]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사가 시전되기도 했다(...).
  • [14] 이때 당시는 IMF의 여파로 정리해고가 사회이슈로 떠오르던 시절이어서 적절하게 사회풍자도 겸하는 내용이었다. 악마자리에서 짤려서 사라지는 와중에 최수종의 "아니, 제가 이 나이에 지금와서 또 무슨 일을 하라고...!!!" 대사는 코믹하면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 [15] 참고로 최수종이 상대역으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배우도 채시라이다. 무려 6편의 작품에서 같이 출연했는데, 단막극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1990)를 시작으로 아들과 딸(1991), 파일럿(1993), 야망의 전설(1998), 해신(2004)는 성공했고, 사람의 집(1999)도 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최소 중박이상 대부분 대박일 정도로 두사람이 같이 나온 작품들은 망한 작품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사이도 좋고 연기자로서도 인정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런 채시라도 최수종과 비교할 경우 약간 떨어지는 수준이다. 최진실과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1988)을 시작으로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질투(1992), 장미의 전쟁(2004)까지 4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질투는 익히 알려진대로 대성공했지만, 한중록은 실패, 장미의 전쟁도 경쟁작이었던 채시라의 애정의 조건에 밀려 망했다.여기서 채시라에게 밀린 원한을 다음 작품인 해신까지 쫓아가 그녀와 대적해서 결국엔 복수에 성공했다. 최진실과도 상당히 친하다. 최진실이 오빠라고 부르면서 따를 정도이고 그녀가 이혼 이후 복귀하는 데 고초를 겪을 때 그녀를 추천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살하기 며칠전 거리에서 만나서 밥도 사줬다고 한다.
  • [16] 방학 무렵에 개봉해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얻었다.
  • [17] 명배우 이경영으로 1990년대 영화 출연 이후 최근에 거의 출연을 안하고 있다가 부러진 화살, 른 소금, 최종병기 활, 궁, 제왕의 첩, 26년, 남영동19852011년 이래 갑자기 출연빈도가 늘었다. 그러나 세월은 이기지 못하셨다 그림과 달리 사실 하희라와 플래그가 서지 않는 담임 선생님 역(최수종은 교생역). 흑역사보다도 안습한걸지도 모르겠다 플래그는 동급생 역의 김민종이 선다.
  • [18] 이는 대학졸업보다는 대학입학을 훨씬 중요시하는 일반적인 (잘못된) 정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고졸과 서울대 중퇴는 엄밀히 말하면 똑같은 고졸이지만 사회에서 둘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는 안드로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