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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last modified: 2019-12-17 19:14:51 Contributors

千秋太后

고려 태조 왕건의 손녀로, 왕건의 일곱째 아들인 왕욱(王旭)[1]의 딸. 고려 제5대 경종의 3비이자 제6대 성종의 여동생 중 한 명이고, 제7대 목종의 생모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태조의 제6비인 정덕왕후 유씨(柳氏)의 소생인 선의왕후 유씨.

성씨는 할머니인 왕건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皇甫氏)에서 따와서 황보씨다. 초기 고려 왕실은 근친혼을 하기는 했으나, 일단 명목상은 같은 성씨라는 결합을 피하려고 왕족 여성은 왕씨가 아닌 다른 성씨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명칭은 헌애왕후(獻哀王后)지만, 천추전(千秋殿)에 거처했다고 하여 붙은 천추태후라는 별칭이 가장 유명하다. 목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올린 응천계성정덕왕태후(應天啓聖靜德王太后)라는 명칭도 있다.

Contents

1. 초기
2. 권력을 쥐다
3. 몰락과 최후
4. 평가
5.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1. 초기

경종의 아들인 목종을 낳았다. 그러나 경종이 너무 일찍 죽어서 아들의 나이가 어린 탓에 경종의 사촌동생이자 자신의 오빠인 성종이 대신 왕이 되었다.

성종 시대에 김치양이라는 자와 정을 통하였는데, 이 사실이 들통나자 선왕의 비가 허락도 없이 외간의 남자와 불륜을 하였다하여 분란이 생겨서 유폐당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둘을 두고 중국 진나라의 노애조희같은 자들이라 한 역사가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성종 역시 병사하여 아들 목종이 즉위하게 되었는데, 목종이 이미 18살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종의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를 대며 천추전에서 거처하며 섭정 노릇을 하였다. 이미 선왕의 여동생이며, 왕의 어머니라는 강력한 뒷배경이 있었기에 섭정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그 위세가 왕권을 넘볼 정도로 커졌다. 이때부터 천추태후라는 별명을 얻었다.

2. 권력을 쥐다

천추태후는 권력을 쥐게되자 쫓겨났던 김치양을 불러와 다시 불륜을 저질렀다. 물론 이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불륜이라 할 수 없다. 김치양은 어쨌든 승려라고 하고 다녔다니까 정실부인은 없었던 듯하고, 둘이 애인이 된 건 천추태후의 남편 경종이 죽은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왕실의 높은 어른이라는 여자가 외간남자와 붙어다니는 것이 당시 윤리적으로 좋게 비쳤을 리가 없다. 게다가 김치양이 승려라면 본인은 '파계'다. 실제로 성종은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기자 김치양을 귀양보냈다. 당시 이 둘의 관계가 문제가 된 건 정식 부부가 아니라는 건데, 천추태후가 경종의 부인이자 성종의 여동생이며 목종의 어머니라는 높은 신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했다. 사실 헌애왕후가 안 쫓겨난게 신기하다.

결국 김치양과의 간통 끝에 김치양의 아이를 낳았고, 목종에게 후사가 없자 그 아이를 고려의 다음 왕으로 세우려 했다. 천추태후는 그 과정에서 강력한 왕위 계승 후보였던 현종(당시는 대량원군)을 경계하게 되었다.

현종은 죽은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정왕후의 아들로 천추태후의 조카였으나, 또한 태조 왕건의 직계 후손이었기에 후사가 없는 목종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천추태후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 혈육인 현종을 죽이려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번번히 실패하자 결국은 현종을 왕이 되지 못하도록 억지로 승려로 만들어서 삼각산 신혈사에 나가 있게 했다. 이것으로도 마음을 놓지 못하여 틈만 나면 현종을 죽이려고 들었다.[2]

한편 천추태후의 사랑을 받은 김치양은 그 권세가 대단해져 제멋대로 횡포를 부렸으며, 재물을 받고 뇌물을 팔아먹는 등 갖은 비리를 저질러 엄청난 돈을 벌었다. 김치양은 이 돈으로 큰 저택과 호화로운 후원을 지었고, 천추태후를 이곳으로 불러와 함께 놀아났다고 한다. 또한 천추태후는 충신과 의로운 사람들을 꺼렸으므로 죄없는 신하들을 많이 모함하였으나 어머니에게 약했던 목종은 이를 막지 못했다.[3]

천추태후와 김치양으로 인하여 번번히 뜻이 좌절된 목종은 점차 정사에 관심을 잃고 무기력해지더니 유행간, 유청중 등의 미남자들과 동성연애를 즐기기도 하였고, 향략에 빠져들어 몸을 망쳐 병에 드는 등 안습한 꼴로 전락하고 만다.

3. 몰락과 최후

그러나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해진 목종이라도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횡포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더구나 천추태후가 왕가의 직계 자손인 현종마저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변방의 장수 강조에게 명하여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자신이 죽거든 현종이 그 뒤를 잇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강조는 목종이 죽은 줄로 착각하고 개경 앞까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다가 뒤늦게 목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하여 반역자로 몰릴 위기에 처한 강조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결국 강조의 정변이 일어났고, 개경을 습격한 강조에 의하여 목종은 폐위당하였다.

그 와중에 김치양과 그의 아들은 함부로 권세를 휘둘러 나라를 어지럽혔다 하여 그대로 목숨을 잃었고, 천추태후와 목종은 황주로 유배를 갔다.

목종은 유배 도중에 후환을 두려워했던 강조의 의해 암살을 당했고, 결국 천추태후 홀로 황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황주의 궁에서 20년 동안 갇혀있으며 향년 6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4. 평가

천추태후는 이후로 왕을 무시하고 남자와 간통을 하는 등 갖은 악행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고 최후에는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사악한 악녀로 평가되었다.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천추태후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천추태후에 대한 견해는 <고려사>에 정치적 활동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더거나, 강조의 정변 때 숙청된 김치양(=천추태후와 정치적 단일체) 일파가 40여 명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들어 천추태후의 국정 장악력이 높지 않았다고 보는 측과 태후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사서에서 기록이 누락되었을 가능성과 섭정이라는 위치에 실권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 일부 남아 있는 기록의 모호성을 들어 실질적인 지배자로 보는 측이 있다.

천추태후와 관련한 문제를 고려의 호족 문제와 연결해서 보는 시각도 있다. 고려의 개국세력이었던 서경계와 이후 신라에서 편입된 경주 간의 대립은 당시까지의 대표적인 대립각이었고 이후 천추태후가 중심이 되어 서경세력이 정국을 주도하여도 계속하여 경주계열의 호족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다만 이 의견은 조심해서 봐야 하는게 당시 정계에서 서경계와 경주계 호족의 대립이 있었다는 것이 전혀 증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추태후가 서경계를 이끌었다는 것도 근거가 부족하다. 그냥 이러한 설도 있다는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 편찬자의 의도가 들어갔건 아니건간에 사실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파의 행동은 어떠한 정치적 지향성이 있었다고 할 만큼 뚜렷한 행보를 보인 것이 아니었다. 그냥 권력을 잡고 휘두른다는 단순한 행위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천추태후에게 실권이 있었느냐, 혹은 호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나 등의 문제를 떠나서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간통을 일삼거나 혈족을 해하려 하는 등 악한 짓을 많이 하였고, 그로 인하여 정사를 그릇되게 농단하였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을 만한 점이 더 많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5.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드라마 천추태후에서의 모습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천사태후. 어린 시절(1~8화)의 천추태후의 모습은 츤데레에 가까워서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지만 성인 시절은...목종의 업적을 거의 다 가져온 데다 김치양과 애인 사이가 된 후에도 매우 떳떳했다. 그런데 아들이 신경쓰인 건지 목종이 정 싫어한다면 김치양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현종의 머리를 깎아서 절로 보냈는데 미워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조카니까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만.(...)

또한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자는 각종 유혹도 번번히 거절했다. 김치양의 반란 때에 김치양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긴 했지만 극 중 모습에서 보면 결국 끝까지 사랑한 것 같다. 어쨌든 마냥 천사처럼 착하다. 중반에 약간 악해지자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악역으로 만들지 말라고 반발했다는 설도 있는데, 알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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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종으로 추존
  • [2]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신혈소군'이라고 불렀는데, 태후는 누차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하루는 궁녀를 시켜 술과 떡을 보내면서 그 속에 모두 독약을 넣었다. 하지만 절의 어떤 중이 갑자기 소군을 땅굴 속에 숨겨두고 거짓으로 "소군이 산으로 놀러나갔으니 간 곳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말했다. 궁녀가 돌아간 뒤에 그 음식을 뜰에 버렸더니 까마귀와 참새들이 그것을 먹자 즉시 죽었다.
  • [3] 물론 김치양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시도는 했으나 번번히 천추태후의 훼방으로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