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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용

last modified: 2015-04-12 17:51:26 Contributors

저 엄청난 덩치를 보라. CC 사바시아 닮았다.

SK 와이번스 No.45
채병용(蔡秉龍)
생년월일 1982년 4월 25일
출신지 전북 군산
출신학교 군산초-군산중-신일고[1]
포지션 허용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2차지명 4라운드(전체 34번)
소속팀 SK 와이번스(2001~ )

제 3대 허용투수
승학 채병용 (나지완 역대 최초 KS 7차전 끝내기홈런) 김희걸

제 10대 허용투수
김사율 채병용 (서건창 역대 최초 시즌 200안타, 강정호 유격수 최초 40홈런, 유한준 개인통산 최초 20홈런) 제 11대 허용투수
뭐가 이렇게 많아!? 고만해, 미친놈들아!

Contents

1. 소개
2. 선수 커리어
2.1. 2007년 ~ 2008년
2.2. 2009년
2.3. 군복무
2.4. 2012년
2.5. 2013년
2.6. 2014년
2.7. 2015년
3. 국가대표팀와의 악연
4. 기타

1. 소개

비룡군단의 2대 에이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우완 정통파 허용투수. 팀의 암흑기부터 이승호와 함께 마운드를 지탱한 마당쇠.

평균적으로는 140km 안팎의 직구를 뿌리는데, 강속구 투수들이 득세하고 있는 요즘 추세에 비교하면 느린 편이다. 하지만 '돌직구'로 불리는 뛰어난 구위로 이를 상쇄하고 있다. 타자를 상대할 때는 우타자가 나오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좌타자가 나오면 몸쪽으로 떨어지는 종으로 변하는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기 때문에 좌타라도 방심하다가는 루킹삼진을 당하기 쉽상.

저평가되고있는 우완투수 중 한 명이다. 그의 통산 성적도 저평가되는데에 한몫하고 있다.[2] 뛰어난 구위와 배짱있는 투구로 타자들이 가장 꺼리는 투수지만 이런 능력으로 인해 선발과 불펜진을 왔다갔다 해 오롯히 선발로만 뛴 시즌이 거의 없다. 결국 팀을 위해 헌신하는 투수로 가치가 높음에도 성적으로 기록되는 게 적어서 손해를 보는 타입.

사실 채병용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야신의 멘트이다. 채병용이는 선수단 내에서 하트가 가장 강한 투수예요.

2. 선수 커리어

신일고 졸업년도인 2001년 신인지명에서 2차 4라운드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고, 데뷔 시즌인 2002년부터 즉시전력으로 투입, 2000~01년의 혹사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한 이승호 대신 강병철에 의해 상황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등판했음에도 51경기 출장에 141이닝을 던지며 7승 9패 11세이브 2홀드에 2완봉승, 평균자책 3.19, 탈삼진 126개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신인왕에도 도전해 볼만한 성적이었지만 팀 성적이 부진한 탓이었는지 신인왕은 구원 타이틀을 차지한 조용준이 가져갔다. 김진우는 플옵 퐈이야 때문에 말아먹었고

결국 혹사 후유증으로 2004년 한 해를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하느라 통째로 쉬었고, 이후에는 선발로 보직이 고정되어 어느 정도 꾸준함을 보여줬지만 지금까지도 2002년만큼의 구속과 내구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부상 복귀 후 지금까지 선발로 뛰면서 소화한 경기당 평균이닝은 5~6이닝 남짓이며 완투는 2014년 9월 11일 넥센전 완투승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뛰어난 구위에 비해 몸이 버티질 못하는 셈.

2.1. 2007년 ~ 2008년

2007년,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2차전 선발로 등판했을 때 안경현이 몸쪽 공에 손가락을 맞아 뼈가 부러져 시즌 아웃이 되었고, 3차전에서는 벤치클리어닝 상황과 관계없이 상대팀 중심선수인 김동주에게 헤드락을 걸었다.[3] 문제의 그 장면은 영상 31초부터. 보면 알겠지만 김동주를 맞춘 후 와이낫? 하고 있다. 베짱은 지젼 쩔어주신다(...).

headlock.gif
[GIF image (Unknown)]

하필이면 같은 해 시즌 중 SK의 11연승을 저지한 김재걸에게 뒷목에 맞는 공을 던지는 불상사까지 생겨서 더욱더 논란이 커진 감도.#

08년도에는 다승왕을 차지한 김광현SK 와이번스의 원투펀치를 이루며 2.70 11승 2패를 기록하여 승률상을 기록하였다. 문학에서 열린 최종전 종료 후 경기장에서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사귄 여자친구에게 공개 프로포즈로 청혼했다.

2.2. 2009년

2회 WBC에서 대차게 말아먹고 패닉상태에 빠진 김광현을 대신해 2009년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었지만 3이닝 5실점으로 부진[4], 4월 중순부터는 삐걱거리는 불펜진에 긴급투입되었다.

그러던 4월 23일 문학 롯데전에 구원등판해 던진 직구가 타석에 서 있던 조성환의 안면부를 강타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실신한 조성환을 앞에 두고도 별다른 사과 없이 투구연습을 계속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면서 야구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후 박재홍이 김일엽의 공에 과민반응 하면서 이후 롯데와 SK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5]

결국 6월에 일본에서 검진한 결과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 등 모두 세 군데에 복합적으로 부상을 당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술이 불가피하며 재활에만 1년이 걸린다는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팀을 위해 수술을 미루고 9월 중순에 복귀해 불펜에서 활약했다.

2009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도 위급할 때마다 선발과 중간계투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는 투혼(김성근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SK에서 가장 배짱이 좋은 투수라 함)을 보였지만 끝내 마지막 7차전에서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2008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5차전 1사 만루에서 김쿠바김현수병살로 잡으면서 마무리를 지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2009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15이닝 11피안타 3실점, 12삼진 3볼넷, 평균자책 1.80이었지만 마지막 공 하나에 울어야 했다. 위에 언급된 두 빈볼사건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안티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플레이오프때부터의 망가진 몸을 이끌고 보여준 투혼으로 인해 안티들이 줄었다. 뿐만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까지 투혼을 발휘해서 4차전 선발, 6, 7차전 마무리로 나왔다. 마지막 끝내기를 맞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눈시울을 적시던 채병용을 본 SK팬들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은 채병용의 신일고 후배이다. 08한국시리즈에서 채병용에게 병살타를 친 김현수 역시 신일고 출신. 2년연속 신일고 출신들이 다 끝을 보았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나지완을 깔 때 도매금으로 묶여 같이 까이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이유인 즉 저렇게 못하는 놈한테 왜 끝내기 홈런을 맞아서 영웅으로 만들어 줬냐면서...더군다나 그 홈런은 혹사당한 팔이 한계를 못 이기고 바깥쪽 직구로 난 사인대로 못 던지고 몸쪽으로 던진 공을 나지완이 받아 친 홈런이었다. 나지완도 선구안보다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공을 뿌리기 전 몸쪽 공만 무조건 노리겠다고 못박고 친 홈런이라 한다. 홈런 맞은 것도 억울한테 이렇게 까이다니...

2.3. 군복무

2009시즌이 끝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입대 전, 연봉 문제로 구단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이미 위험한 상태임에도 팀의 우승을 위해 수술도 안 하고 마지막으로 공을 뿌렸으니 팔꿈치의 상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연봉협상에서 2천만원 삭감당했다. 그래서 "죽어라 던진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후 기사를 보면 마음을 고쳐먹은 듯. 채병용은 부상으로 훈련소 입소가 연기된 상황에서 일단 계약을 마쳐야 SK 입장에서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할 채병용에게 군 보류수당(연봉의 40%)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계약도 안한 사람에게 돈을 줄수는 없으니까) 계약을 한 것이라 한다.

2010년 3월 21일 득녀하였다. 4월 초에 입대. 2012년에 소집해제되어 복귀하였다.

2.4. 2012년

복귀한 후로는 계속 2군에 있었지만 7월 18일 LG 트윈스전에 복귀하여 1이닝 동안 2피안타(1홈런) 1실점이라는 그리 좋지 않은 투구기록을 남긴 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성준 투수코치의 말에 따르면 아직 컨디션이 다 올라오지 않은 상태라고 하는데 부상인 줄도 모르고 제춘모를 땡겨쓴 것과 함께 2012년 이만수 감독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다. 채병용만 그저 안습.

그리고 24일, 송도구장에서 열린 LG 2군과의 경기에서 8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팬들은 채병용의 부활에 기뻐하면서도 이만수 감독에게 혹사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큰 듯.[6]

그리고 8월 11일 선발로 등판한 숙적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윤석민에게 동점 적시타, 김재호에게 역전 3루타, 정진호에게 희생 플라이를 내주면서 7이닝 5실점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8월 18일 KIA 타이거즈 경기에서 0:2로 이기던 6회초 나지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맞고 말았다. 2009년 한국시리즈의 끝내기 홈런의 악몽도 있었고, 이전에도 우익수 라인 쪽 변태 2루타와 좌익수 쪽 안타를 맞았던 터라 불안불안했다. 새로운 천적관계의 탄생인가 하지만 6.2이닝 1실점으로 시즌 첫승을 거뒀다.

9월 2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 이종욱[7], 김재호, 최주환에게 연속안타를 내주고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프록터:만수에게 전해! 너의 승리와 세이브는 내꺼라고! 결국 이재영과 교체된 이후 채병용이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멘붕한 모습이 MBC 스포츠플러스를 통해 전국으로 나갔다.

9월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무사사구 1실점 호투를 펼치며 시즌 2승을 거뒀다.

9월 27일 문학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으로 3승을 거뒀다.

10월 2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장성호에게 통산 1,000타점 기록을 헌납하였다. 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엄정욱김태균에게 끝내기를 내주며 패전투수행.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1~4차전에 등판하지 못했다가 10월 22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0으로 지던 2회말 2사 1, 3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4이닝 75투구수 1피안타 3볼넷 5탈삼진 무실점 호투했고, 팀이 스코어 3:6으로 역전승하여 이날의 승리투수 및 데일리 MVP가 되었다.

채병용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4⅓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8.31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채병용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8⅓이닝 6피안타 1피홈런 5볼넷 10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4.32, 1승을 기록했다.

2.5. 2013년

공익근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첫 시즌에는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팀의 선발의 한 축을 맡을것으로 생각하는 등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중간 계투에서도 헤매는 모습을 보이며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2군에서 던졌다.

2.6. 2014년

홈런왕!!!그리고 허용투수 4관왕이자 진 최종보스(...)[8]

시즌을 앞두고 너클볼을 연마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워낙 구사하기 어려운 구종이다보니 팬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황.

1차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연습경기때 괜찮은 퍼포먼스를 찍어주며 이만수 감독으로 부터 캠프 MVP로 선정되었다.

3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범경기 1차전 팀의 두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와 1/3이닝 1피안타 1볼넷 1K 무실점 홀드를 기록하였다. 오오 육수갑 오오

3월 30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자력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채 2안타를 맞고 0.1이닝 만에 내려갔다.

4월 3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 5이닝 5실점 5삼진을 기록하면서 1승을 얻었다.

4월 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선발로 등판해서 5.2이닝 3실점 5삼진을 기록하면서 2승을 기록했다.

이후 다음날 말소되었다. 4일 휴식기가 끼어있기 때문. 말소는 이창욱과 함께 되었으며 1군에는 임경완이명기가 콜업되었다. 팬들은 하필 올라오는 사람이 왜 임작가냐며 한탄하는 중.

전반기를 마무리했던 시점의 성적은 6승 9패 88.2이닝 59삼진 29볼넷 18피홈런 평균자책점 6.09의 부진한 성적이었으나, 어찌어찌 올스타전에서 김광현을 이어 등판했지만 피홈런 1위의 위엄(...)답게 올스타전에서도 홈런을 내주고야 말았다.

8월 20일 문학 두산 베어스전에 선발로 등판, 2⅔이닝 2실점 4피안타 5볼넷 3실점의 부진한 피칭을 했다. 3회를 마무리 짓지 못한 시점에도 불구하고 83개나 되는 투구수를 기록한데서 보여지듯 전반적으로 매우 부진했다. 이마저도 2회 1사 만루 상황에서 정수빈의 타구를 박정권이 어렵게 잡아내 3루 주자를 홈에서 아웃시켰기 때문에 이정도로 끝난것, 실제로 3회에 만루찬스를 만들어 주고, 밀어내기까지 허용하는 등, 훨씬 큰 실점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3회에 팔꿈치 이상을 느낀듯 한 징후를 보여줘서, 혹시 부상에 의한 부진이 아닌가 걱정이 된느 상황, 팀은 다행이도 이명기최정, 김강민의 활약으로 3:6으로 역전승.

8월 29일 LG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맞았다, 그것도 2개나. 8월 29일 기준으로 21경기에서 24 피홈런을 자랑하는 리그 홈런왕(...)이 되어버렸다. 이어지는 9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도 1피홈런 적립.

9월 11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9이닝 4피안타 1탈삼진 2사사구 2실점으로 12년만의 완투을 거뒀다.


한동안 피홈런을 적립하지 않다가 10월 1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서건창의 역대최초 시즌 200안타, 강정호의 유격수 최초 40홈런이라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며 제 10대 허용투수로 등극하였다.(...)[9] 완투승의 대가를 이렇게 치루다니 이날 맞은 홈런 2개를 포함해서 1시즌 27 피홈런으로 시즌을 마감.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HR/9이 1.87로 명실상부한 홈런왕으로 등극했다. (...)

2.7. 2015년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게 된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에서 5선발 경쟁을 펼쳤으나 김용희 감독이 백인식을 5선발로 낙점하며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3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5회 1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흔들리던 윤희상을 구원 등판했는데 박석민의 본헤드성 주루 플레이가 나오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하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초반인 4월에는 고효준과 함께 큰점수차에 롱릴리프로 등판하고 있다.

3. 국가대표팀와의 악연

커리어 내내 준수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과는 지독하게도 인연이 없는 걸로도 유명하다.

데뷔년도인 2002년에 신인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하며 부산 아시안 게임 발탁을 노렸으나 조용준, 김진우에게 밀려 발탁되지 않았고,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때도 역시 윤석민, 우규민, 장원삼 등에게 밀려 탈락하였으며 2008년 시즌에는 당시 2점대 방어율에 선발, 중간계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지어임 모씨에게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임태훈은 나중에 윤석민으로 교체가 되었으나 더 이상의 교체는 없었고 채병용의 국대 도전기는 이것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4. 기타

어릴적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유년기 시절부터 안습한 에피소드가 많다. 오죽했으면 훈련장까지의 장거리를 급하게 가야하는데 택시를 타본 적이 없어서 택시타고 가야겠다라는 생각도 못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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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언젠가 문학 야구장에서 경기를 하던 중, MBC ESPN의 매의 눈(...)에 덕아웃에서 채병용이 여성용 가발을 머리에 쓰고 있는 장면이 걸렸다.OME 그리고 그 후, 채병용의 별명은 문학녀가 되었다. 지못미. 왠지 개콘의 그분을 닮았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프로게이머 박성준이 채병용과 형제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많이 닮았다.

나지완일베의 아버지[10]라고 불리기에, 채병용은 본의 아니게 일베의 어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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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서고에 다니다가 2학년때 전학. 오승환의 인터뷰에 따르면 오승환과 한서고 시절 동기였다.
  • [2] 2012년 시즌 후를 기준으로 58승 46패 17세이브 9홀드에 평균자책점은 3.47.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조금 부족해 보이는 성적이다.
  • [3] 김동주에게 사구 이후 맞서는데다 헤드락까지 걸 정도면 어느정도 전투력에 자신 있고 배짱이 있기에 가능한 일...웬만한 선수들은 김동주에게 맞설 생각조차 못한다.
  • [4] 이 날, 유인촌 장관이 시구할 때 마운드 뒤쪽에서 몸을 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폭죽이 터진 것. 그래서 1회부터 밸런스가 영 좋지 않았고 시구자는 대차게 까였다.
  • [5] 그래도 경기 끝나고 조성환을 병문안하여 사과했다. 그런데 하필 조성환이 대인배적인 발언(내가 못피해서 그렇다. 정말 미안하다.)을 하는 바람에 묻혔다;;)
  • [6] 이는 비단 채병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윤길현에게도 포함되는 문제라는 주장은 근거없다. 윤길현은 상무에 입대했다 2011년에 제대하여 2012년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만큼 전력감으로 기대되는 상황이었기 때문.라고 하는데 실은 윤길현도 입대하자마자 수술과 재활로 상무에서 활약은 없었으며 상태가 심각해서 퇴원과 동시에 전역했다고한다. 따지고보면 채병용보다 더 심각했다.
  • [7] 박재상은 이 때 좌측 펜스 근처에서 공을 놓치는 뇌수비를 시전하며 1루타를 2루타로 만들어 5회초에 호수비로 얻은 까방권을 날려먹었다.
  • [8] 최초 코시 7차전 끝내기 홈런을 맞은 이래로 역대최초 200안타, 유격수 최초 40홈런, 개인 커리어 첫 단일시즌 20홈런 등 대기록의 희생양이 된 적이 많아서 붙은 불명예(?)스런 별명이다.
  • [9] 아이러니하게도 채병용은 이날 경기 전까지 넥센 선수들에게 홈런을 단 한개도 맞지않고 있었다.
  • [10] 왜 그런지는 나지완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