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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찬

last modified: 2016-12-14 21:52:38 Contributors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삼성 라이온즈 시절.


박석민에게 샴페인 공격을 당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차우찬우동균과 닮았음을 알 수 있다.

LG 트윈스
차우찬(車雨燦)
생년월일 1987년 5월 31일
신체 185cm, 80kg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6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7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6~현재)
LG 트윈스(2017~)
등장곡 PSY - 77학개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5번
곽용섭(2003~2005) 차우찬(2006~2007) 곽용섭(200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3번
김상준(2007) 차우찬(2008~ ) 현역

Contents

1. 소개
2. 별명
3. 선수생활
3.1. 2006년~2009년
3.2. 2010 시즌
3.3. 2011 시즌
3.3.1. 2011년 한국시리즈
3.4. 2012 시즌
3.4.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5. 2013 시즌
3.6. 2014 시즌
3.6.1. 인천 아시안 게임
3.7. 2015 시즌
3.8. 2016 시즌
3.9. 2017 시즌
4. 투수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야구 외

1. 소개

LG 트윈스의 좌완 투수.

삼성 라이온즈 시절에는 류중일의 노예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2006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본래 삼성은 1라운드에서 차우찬이 아닌 경희대학교의 좌완 정규[1]를 지명하려 했었다. 하지만 지명 당일 선동열 감독 본인이 직접 스카우트 팀에 차우찬을 뽑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결국 1라운드에 차우찬을 지명하게 되었다.[2] 3학년 시절 급작스럽게 체격이 자라면서 밸런스는 아직 맞지 않지만, 잠재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는 판단하에 삼성은 차우찬을 2차 1순위에서 지명하게 되었다.

큰 체격과 거친 폼에서 나오는 150을 넘나드는 강속구가 장점으로 꼽히고, 2013년 5월 기준 그가 보여준 가장 좋은 시즌인 2010년에는 이런 장점이 대폭발하여 장원삼과 함께 삼성의 좌완 원투펀치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2011 시즌 이후로 구속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3] 기어코 2012년에는 크게 부진하여 차르 봄바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2. 별명

  • 차우차우
  • 개씹차: 줄여서 씹차. 차우찬의 별명중 가장 유명했던 별명. 현재도 심심하면 불리는 별명이다. 가끔 차우찬이 흔들리면 '지금 던지는건 차바시아가 아니라 개씹차다'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야갤과 삼갤은 한 이닝에도 개씹차와 차바시아가 뒤바뀐다. 잠깐 이거 누군가가 떠오르는데[4]
  • : 차우찬이 최악이다의 줄임말. 2010년 후반기 이후 봉인.
  • 겨울우찬: 2009시즌 전까지의 별명. 스토브 리그에서는 활약한다는 기사가 자주 나옴에도 막상 시즌 들어가면 감감무소식이었기에 이런 별명이 나왔다. 역시 2010년 후반기 이후 봉인.
  • 차바시아
  • 차르 봄바#: 기원은 혜르노빌과 같다. 2012시즌에 붙은 별명. 여담으로 삼성에는 최형우라늄, 채르노빌, 배영수소폭탄, 권핵, 백린탄 등 유달리 핵과 관련된 별명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5]
  • 류우찬: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13 WBC 국가대표로 발탁되자 붙은 별명. 네덜란드전의 화려한 불지르기와 이 때 차우찬의 실점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1라운드 탈락의 주요 원인이 된 것 때문에 야갤에서는 본명보다 자주 불리는 이름이 됐다.
  • 기부우찬: 5천만 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해서. 참고 그런데 기부한 단체의 대표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 차르빗슈: 널리 알려진 별명은 아니고, 소수 삼성팬이나 삼갤러들이 잘할때 불러주는 별명. 그마저도 차쇼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묻혔다.
  • 차쇼: 2013 시즌 CC 사바시아가 폭망하면서 대체된 별명. 개씹차와 함께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다. 못 하면 개씹차, 잘 하면 차쇼.
  • 차암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 12.2이닝 202구 연투를 펼치고 난 뒤 차동원, 차종석이라고 부르다가 누군가가 최동원의 별명인 참치에서 착안해 부른 게 빵 터져서 별명으로 자리잡았다.

3. 선수생활

3.1. 2006년~2009년

2006년 4월 9일 롯데전을 통해 1군에 데뷔하였다. 패스트 볼 구위 하나만큼은 롯데 장원준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 선발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선동열 특유의 불펜야구 때문에 불펜으로 썩다가 2009년 팀의 선발진이 무너지기 일보 진적인 상황이 닥쳐서야 안지만과 함께 선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안지만과 비슷하게 불펜에선 철벽이나 선발에선 조금 흔들리는 감을 보여줬는데, 팀에 좌완이 없다 보니 선동열 감독은 일단 차우찬을 선발로 낙점하기로 한 듯…했으나 조금 급하니까 바로 불펜으로 돌렸다.

2009년 6월 2일 히어로즈를 상대로 데뷔 4년만에 첫 선발승을 거뒀다.

이후 한동안 삼성의 선발 한 축을 담당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선발로 나오기만 하면 털리더니 곧 불펜으로 강등당했다. 게다가 불펜으로 가서도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못 집어넣으며 수많은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 특히 윤성환이 차우찬 때문에 승수를 많이 날렸다. 이로 인해 촥, 차션 등의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전까지 삼성의 잉여 불펜 3인을 지칭하던 조원수박차로 업그레이드되었다(…).[6] 박민규도 첫 승을 차우찬 때문에 날리고 만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부진. 데뷔 후 지금까지 쭉 불펜에서만 던진 선수를 팀 전력이 무너져갈 때가 되어서야 땜빵 선발로 집어넣고 이후에도 급할 때마다 보직을 이동시킨 선동열 감독의 책임이 더 크다.

누구나 바로 류현진처럼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고교선수 한 명을 믿을 만한 선발투수로 키우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 된 김광현조차 데뷔 시즌 초반에는 기대에 비해 부진하다 말미에서야 각성을 했다. 차우찬의 실패는 구위 좋은 젊은 투수를 장기적으로 키우는 대신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불펜에 쑤셔박은 선동열식 야구의 부작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통념이 있었으나, 사실 선동열 감독 아래에서 젊은 투수 중 차우찬만큼 선발 기회를 많이 받은 투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선발로 쓰기도, 불펜으로 쓰기도 갑갑했던 것은 사실.

선동열이 바뀌지 않는 이상 팀 메이트 백정현, 이우선은 물론 신인지명으로 입단한 젊은 투수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7]

3.2. 2010 시즌

그러나 2010년에는 혁명이 일어났다.

6월 27일 목동 넥센전에서 355일만에 선발승을 거뒀고 7월 6일에는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7월 18일 대구 LG전에서는 생애 첫 선발 완봉승을 기록했다. 승리 후 인터뷰에서 울먹거리기도. 6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KBO 투수 전체 1위! 이 완봉은 2005년 배영수의 완봉승 이후 삼성 투수로서는 무려 5년만의 완봉승이다!!

SK와의 페넌트레이스 최종전(겸 양준혁의 은퇴경기)에 선발 등판해 7⅓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상대 선발투수 김광현이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는 바람에[8] 패전투수가 되어 승률왕에서 멀어지나 했는데, 9월 26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등판, 9이닝 1실점 11K의 절정투구를 펼치면서 10승을 기록, 역전 승률왕에 등극했다. ERA 역시 2.14로 류현진에 이어 이 부문 2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규정이닝에 6⅔이닝 모자라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10 시즌 각성을 단순한 운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그 많던 피홈런이 이 해는 5개로 줄어들었고, 탈삼진 페이스는 꾸준히 가져가면서 볼넷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평균자책점은 2점대에다 WHIP은 1점대 초반.

차우찬 본인은 밸런스를 드디어 익힌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팬들은 제대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했는데,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했다. 선동열의 꾸준한 육성책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이 대다수여서 차우찬과 선동열을 묶어 까던 안티들을 뻘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LG 상대로는 3승(2완투승) 무패 32⅓이닝 4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0.28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를 상대로는 9경기에 출장해 30⅓이닝 동안 3승 1패, 평균자책점 1.19로 정규시즌 1, 2위인 SK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며 차우찬의 대 SK전 호투는 이전부터 주목받았다.

포텐 폭발로 인해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지만,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4회초 무사 1루에서 김동주에게 투런홈런을 맞았고, 스코어 2:2인 5회초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만루를 채운 상태에서 강판되어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정인욱이 완벽하게 분식회계를 해서 차우찬은 이날 4이닝 78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5볼넷 4탈삼진 5실점 5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8회말에 4점을 뽑아 스코어 5:6으로 재역전승하여 차우찬은 패전을 면했다.

10월 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7번째 투수인 정인욱이 11회말에 난타당하자 차우찬이 등판을 자청하며 몸을 풀었으나, 선동열 감독은 오늘만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를 등판시키지 않았다. 결국 이날 팀은 연장 11회초에 2점을 뽑고도 11회말에 3점을 내줘 스코어 8:9로 재재재역전패당했다.

차우찬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6⅔이닝 10피안타 1피홈런 7볼넷 7탈삼진 10실점 10자책점 평균자책점 13.50으로 완전히 망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0년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86투구수 6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3탈삼진을 기록하며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최정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2피홈런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다.
이날 팀이 스코어 1:4로 패하여 차우찬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차우찬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7⅔이닝 8피안타 2피홈런 2볼넷 1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3.52,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차우찬은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5경기 등판하여 14⅓이닝 18피안타 3피홈런 9볼넷 1몸에 맞는 공 12탈삼진 13실점 13자책점 평균자책점 8.16, 1패를 기록했다.

3.3. 2011 시즌

2011 시즌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으로부터 1선발로 낙점받았다. 2011년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2011 시즌 초반에 활약하다 중반에 이르른 지금 아무래도 풀타임 선발이 처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자기가 팀의 에이스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6월 16일부터 부진하였다.

9월 27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지만 피안타율 0.273로 작년의 0.232에 비해 증가한데다, 피홈런도 22개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17개나 증가했다. 게다가 경기내용도 갈 수록 안 좋아져 삼팬 사이에서는 포스트시즌에서 롱릴리프로 기용하거나 아예 쓰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반전의 스토리를 쓰게 되는데….

3.3.1. 2011년 한국시리즈

2011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 류중일 감독의 선발 1+1 전략에 따라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5회초에 선발 투수덕 매티스의 다음 투수로 등판해 3이닝 36투구수 5탈삼진 퍼펙트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신명철의 2타점으로 팀이 0:2로 승리하여 차우찬이 승리투수가 되었다. 한 달 여간 쉰 휴식이 효과가 있었던지 투구수의 2/3가 넘는 공이 속구였으며, 대부분의 공이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였다. 그리하여 1차전 MVP로 선정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이기던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7이닝 104투구수 5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위기에서 상대 타자들을 삼진과 범타로 돌려세우며 무려 7삼진을 기록, 결국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팀이 이날 강봉규의 홈런으로 스코어 0:1로 승리하여 차우찬은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었고, 삼성은 4승 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였다.

차우찬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10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2탈삼진 무실점 2승을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사실 이 정도면 한국시리즈 MVP도 충분히 노릴만한 호성적이었으나 끝판왕의 위엄(4경기 3세이브)에 밀려서 아쉽게 MVP는 되지 못했다.

2011년 시즌을 보내면서 1선발로는 다소 아쉬운 활약을 보이긴 했어도 한국시리즈에서는 본인의 활약과 더불어 팀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2011 시즌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2010년 포스트시즌의 부진도 단숨에 만회하는데 성공했고, 2012년의 활약도 기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3.4. 2012 시즌

Nuclear launch detected

방사능에 피폭되기라도 한 건지 볼넷이나 피홈런을 지나치게 많이 내주며 심하게 부진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져 류중일의 양아들 소리를 들었다. 이 해 6승 7패에 그쳤다.

해당 항목 참조.

3.4.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봉중근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고, 정우람이 예비엔트리 탈락으로 군입대를 하면서[9]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뜬금없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미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전례가 있기에 감독은 물론이고 구단마저 반대했으나 양상치양상문한용덕 코치의 추천으로 강영식, 박정진, 강윤구, 박성훈, 이명우 등의 경쟁자[10]를 제치고 결국 차우찬은 대표팀에 승선했다.[11]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에 공개된 한국의 핵무기.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1차전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7회초, 손승락이 2루타와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2루 위기에 몰리자, 차우찬은 좌타자 로저 베르나디나를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다. 하지만 올라오자마자 핵실험베르나디나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허용하며 2루주자를 불러들였고, 곧바로 정대현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호주전과 대만전에는 등판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면서 결국 네덜란드전 1피안타가 차우찬의 유일한 WBC 투구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미 2012 시즌 성적도 안 좋았고 부상선수의 대체요원으로 뽑았지만, 차우찬 역시 허리 부상을 안고 있었던 것만큼 애초 선발자체가 무리수였다.

3.5. 2013 시즌

시즌 초반까지는 여전히 2012시즌의 모습을 보여주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나 5월 중순 이후부터 구속이 오르고 공에 힘이 붙으며 6월까지 롱릴리프로써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7월 말부터는 모 외국인 관광객, 사기꾼 투수 때문에 선발로 전환하여 괜찮게 활약, 2011시즌 이후 2년만에 10승 달성에 성공하였다. 일부 팬들은 기부 때문에 복을 받은 거라며 다른 방화범들에게도 기부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정말로 미친 투구를 보여주었다. 84년의 최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06년의 배영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역투를 펼쳐 삼성의 통합 3연패와 V7의 큰 주역이 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3.6.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3.6.1. 인천 아시안 게임

24일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4이닝을 소화한 선발 양현종에 이어 5회에 등판해 2이닝 1피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 중간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워낙 박빙이어서 등판하지 않았다.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결국 1경기만 등판하고 병역특례를 받게 됐다.

3.7. 2015 시즌

해당 항목 참조.

3.8. 2016 시즌

시즌 후 FA를 신청, 처음에는 해외 진출도 타진했으나 그 사이에 "만약 해외진출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LG 트윈스와 계약하는 것으로 삼성 측에 양해를 얻었다"는 기사가 떴고, 결국 12월 14일에 총액 4년 95년에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됐다. 류중일 감독이 퇴진하고 김한수 체제로 변모한 것이 무색하게 삼성은 최형우에 이어 더 큰 전력 손실을 입게 됐고, 반면 LG는 삼성으로 간 우규민의 공백을 메꿀 수 있게 됐다.

3.9. 2017 시즌


4. 투수 스타일

좌완으로써는 드문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갖추었고 체력이 좋아 연투와 긴 이닝 소화가 가능하여 선발은 물론 롱릴리프, 계투 등 활용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다. 다만 강속구 투수가 대개 그러하듯 제구력에서 약점을 보인다. 변화구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을 던진다.좌완 윤고자

수준급의 슬라이더와 평범한 수준의 커브를 던진다. 분명 속구와 슬라이더의 구위는 수준급이지만 커브의 경우에는 오프스피드 피치의 의미가 강한 듯. 결국 아리랑볼이란 이야기 하지만 2013시즌부터는 커브도 꽤 쓸만한 수준으로 올라와 커브로 타자의 허를 찌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들어 피칭스타일보다 더 주목받는게 어마어마한 체력. 2014년 6월 기준 혹사지수 1위인데 계투로써 무난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특히 2013년 한국시리즈 2,3차전에 계투로 등판, 4차전에 배영수의 강판이후 선발이나 다름없는 6과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것도 모자라, 이틀쉬고 6,7차전에 연이어 등판하였다. 2014년 6월13일 두산전 계투 등판 이후 그다음날 장원삼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등판하고 3이닝동안 던지는걸 보면... 한때 류중일 감독도 볼질만 아니라면 완투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도 한 적이 있다근데 좌완 강속구 이닝이터에 제구까지 잡힌 투수가 흔할 리가...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의 기질을 보이는데, 경기 중 초반에는 제구 불안을 보이더라도 만약 어찌저찌 무난하게 넘긴다면 점점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시즌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시즌 초반보다 후반에 더 잘 던진다. 2010년과 2013년이 대표적인 케이스. 게다가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능력도 있기 때문에 선발이 더 적합한 투수이나, 시즌 초의 부진 + 팀에 좌완 불펜의 부재로 인해 보통 시즌을 불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슬로우 스타터 기질을 활용하기 위해 오랜 이닝을 던지거나 혹사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등판하거나 한다.

2010 시즌 들어 자신의 공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전체적인 경기 운영 능력이나 제구력도 비등하게 발전했다. 또한 자신감이 붙으며 과감하게 정면승부를 하는 일도 많아졌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속구-슬라이더-커브의 3-피치를 벗어나기 위해 체인지업을 장착했다. 2011 시즌 들어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증가한 것은 아직 익숙치 않은 체인지업의 무리한 사용으로 보였다. 코치님이 웬만하면 던지지 말랄 때 던지지 말았어야지....
본인도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 호투 후의 인터뷰에서“시즌 초부터 체인지업을 던지다가 직구 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체인지업은 구사하지 않는다”라고 언급.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6삼성 라이온즈 9 7 0 0 0 0 3.86 10 5 9
2007 23 28 0 0 0 0 6.11 27 7 17
2008 25 36⅔ 0 0 1 2 4.17 35 24 28
2009 42 109⅓ 6 9 0 1 6.09 129 82 97
2010 37 126⅓ 10 2 0 2 2.14 106 56 112
2011 24 148⅔ 10 6 0 0 3.69 156 65 114
2012 26 83⅔ 6 7 0 2 6.02 83 49 52
2013 43 121⅓ 10 7 0 3 3.26 100 73 111
2014 69
(3위)
82 3 4 0 21
(4위)
5.60 86 44 79
통산 298 743 45 35 1 31 4.30 732 405 619

6. 야구 외

이름의 '우'자가 비 우(雨)자다. 그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기사에 의하면 안지만과 쌍벽을 이를 정도로 코골이가 심하다고 한다. # 이것만으로도 안지만의 룸메이트인 투석인은 잠을 설친다는데 여기다 이까지 갈아대는 환경에서 심지어 차우찬보다 더 늦게 잠든다는 윤성환의 멘탈이 대단하다. 해탈한 듯

심성이 굉장히 고운 편이다. 너무 모질지 못해서 탈이라는 소리를 팬들로 부터 들을 정도. 부진에도 차우찬을 감싸는 팬들은 사고도 안 치고 성실하며 야구밖에 모르는 너무나 착한 선수라서 까기가 뭐하다고들 한다. 2013년 부진을 하는 와중에서도 독거노인지원센터에 5,000만 원을 기부하여 삼성팬들을 놀라게 했다.#. 선행에 대해 복을 받은 것인지 우연인지 기부 이후부터 점점 폼이 오르며 2013시즌을 규정이닝이 모자르긴 하지만 평균자책점 5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으며 포스트시즌에는 거의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통합 3연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기부한 단체 대표가 천하의 개쌍놈인게 밝혀지면서 기부가 빛이 바랬다

최훈의 만화 클로저 이상용에서 한정규의 모델인 듯한 느낌이 있다. 좌완 파이어볼러지만 심성이 독하지 못하고, 제구가 잘 안되는 거친 폼.

프로야구매니저에선 이상하게 홀대받는 선수 중 하나. 윤성환의 임펙트가 커서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차우찬 역시 윤성환 급의 코레기다.[12] 그나마 윤성환은 12년도에서 버프라도 받았지만 차우찬은 그런거 없다. 최근 한 유저가 고속슬라이더 구질을 요구해서 추가 된 모양이지만 고인탈출에는 실패한듯. 그러나 2차 구종패치 후 진리구질 중 하나인 서클체인지업을 받긴 했는데 문제는 6구질인데다 그나마도 10년은 빼먹고 안줬다(…). 13년도 카드는 체력이 낮은게 흠이긴 하지만 4점대 다승왕이나 60억 좌완보단 훨씬 쓸만한 스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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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지명했으나, 2012년에 방출당했다.
  • [2] 당시 군산상고 감독이었던 해태 출신 김성한선동열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 [3] 체중조절, 변화구 습득 등에서 온 부작용이라고 한다.
  • [4] 여담으로 2013년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조금이라도 못 하는 투수는 씹차라는 접미사를 붙인다. 예를 들면 술씹차, 옆씹차 등이다. 물론 이분야 최강의 접미사는 이다. "윤성환|윤션!이우션! 그런데 2013시즌에는 차우찬이 제법 살아난 덕에 리대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5] 물론 백린탄은 핵과는 무관계하지만 어쨌든 의미는 통하니까.
  • [6] 후반에는 정현욱도 맛이 가는 등, 누구라 할 것 없이 별로이기는 했다.
  • [7] 선동열 감독은 2009년 신인지명에 앞서 고졸을 뽑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했고 실제 고졸은 2명만 뽑고 나머지를 대졸 투수로 뽑았다. 누가 봐도 혹사로 무너져가는 현 투수진 대신 젊고 고졸보다 튼튼한 대졸 투수들 데리고 불펜야구를 하겠다는 포석이었다.
  • [8] 7⅔이닝 8K 무실점. 직구 최고구속은 151Km/h, 슬라이더도 140km/h 가까이 나왔다.
  • [9] 정우람은 봉중근이 엔트리에서 빠진 후 엔트리에 발탁된다면 군입대를 미룰 수도 있다고 했지만 쿨~하게 씹혔다. 참고로 이 해 SK의 마무리를 맡은 정우람의 2012 시즌성적은 평균자책점 2.20 53경기 소화.
  • [10] 이들 외에 2012시즌 차우찬보다 좋은 활약을 펼친 좌완투수는 8명 가까이 됐다. 심지어 후보군에도 없었던 유창식이 차우찬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 [11] 반대로, 다른 기사에선 류중일 감독의 의중도 차우찬을 강하게 원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정말로 강하게 반대했다면 아무리 강한 추천이 있었다고 해도 뽑히진 못했을 것이다. 결정권은 결국 감독 몫이다.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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