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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중

last modified: 2015-03-28 01:32:1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이력
2.1. 선수 커리어
2.2. 지도자 커리어
2.3. 해설자 커리어
2.3.1. 편파해설 논란
3. 연도별 성적

1. 개요

이름 진필중(陳弼重)
생년월일 1972년 10월 13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역삼초-휘문중-휘문고-중앙대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5년 OB 베어스 2차 2라운드 지명
소속팀 OB 베어스/두산 베어스(1995~2002)
KIA 타이거즈(2003)
LG 트윈스(2004~2007)
우리 히어로즈(2008)

1999~2000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임창용(삼성 라이온즈) 진필중(두산 베어스) 신윤호(LG 트윈스)

한국프로야구의 전 투수코치. 현 SPOTV 해설위원.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에서 활약했던 투수.

별명으로는 집필중진필패가 있다. 홍현우 - 진필중 - 마해영 - 박명환 - 이택근으로 이어지는 LG 트윈스 먹튀 산맥의 한 축.

LG 시절의 먹튀+삽질로 이미지가 크게 떨어졌지만, 전성기 때는 오승환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특급 마무리 투수였다. 김경원, 구대성, 선동열의 아성에 도전했던 몇 안 되는 선수.

2. 이력

2.1. 선수 커리어

중앙대학교 시절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였다. 4년 간 거둔 승리가 고작 2승. 하지만 1995년 지명에서 예상을 깨고 OB 베어스가 2차 2순위로 지명하여 계약금 6천만 원을 주고 그를 입단시켰다. 사실 여기에는 비화가 있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진필중을 관찰한 후에 '2라운드에 뽑을 테니 실력을 숨기고 있으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필중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OB 베어스가 기습적으로 2라운드에서 지명하였다.

OB 베어스에 입단한 후 선발, 마무리 가리지 않고 뛰며 김인식 체제에서 만능 키로 활약했다. 특히 마무리 자리에서 묵직한 구위로 그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신인 시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1995년 한국시리즈로, 3차전의 6이닝 1실점과 2승 3패로 뒤진 6차전 선발로 나와 완투승을 거두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촉망받는 선발 유망주가 될 수 있던 진필중은 원래 OB 베어스의 마무리였던 김경원이 부상과 혹사 등으로 1997년을 끝으로 내리막을 타자 1998년 이후로는 사실상 중무리 투수로 뛰게 되었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선발로만 계속 뛰었으면 혹은 1이닝 마무리로 철저히 관리받던 시절에 뛰었다면 좀 더 나은 업적을 낳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선수다. 마무리로 뛴다는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여 완투까지 하니.... 철저히 분업화된 지금으로 보면 아무리 옛날이라도 상식 밖이다.

임창용, 구대성이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들과 대등하거나 그들보다 나은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2000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의 마무리 투수 위재영과 치열한 경쟁 끝에 42세이브[1]를 올려 종전 기록을 갱신,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각광받았고 국가대표팀 마무리로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에 힘입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2002년 초 포스팅을 신청했으나 "저 선수는 3가지 구질을 던진다. 직구와 느린 직구, 더 느린 직구이다"라고 스카우터들에게 50달러 등 반 장난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실제 2002년 초에 신청했을 때는 무응찰이라는 굴욕적인 결과가 나왔고, 2002년 시즌 후 다시 신청했을 때는 포스팅 금액으로 2만 5천 달러(당시 KRW 3,000만 원)라는 굴욕적인 금액을 제시받았다. 이는 현격했던 한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의 수준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진필중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153km/h까지 던진다던 진필중의 강속구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평균자책도 3점대를 훌쩍 넘어갔다. 많은 세이브 갯수에 가려져 있었지만 구속이 감소하며 자주 맞아나가던 불안불안한 마무리 투수였다.

결국 2002년 말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그는 손혁, 김창희에 현금 8억 원을 얹어 당시 적극적으로 유명 선수들을 영입하던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 이후 진필중에게는 끝없는 내리막길의 시작이었고 김창희는 새로운 인생이 꽃피는 계기가 되었다.[2]

KIA로 가서는 전성기의 구위를 찾지 못하고 4승 4패 19세이브로 이름값(+연봉)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낸데다가, '서울 연고 팀에서 뛰어야 한다'고 태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먹튀로 까이게 된다. 가장 임팩트가 컸던 경기는 2003년 5월 27일, 1위 싸움 중이던 현대에 10:7로 앞선 9회말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딱 하나밖에 못 잡고 5실점하며 10:12로 진 경기.[3] KIA 타이거즈는 이 경기에서 당시 '최다 점수차 역전패 허용' 기록을 세우고 말았으며[4] 이 기록을 내주면서 미끄러진 바람에 결국 반게임 차로 1위를 놓치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날 상대팀 선발이었던 정민태는 패전을 면하면서 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진필패"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이 시기에 생겼다.

2003 시즌 후 투수진 보강을 필요로 하던 LG 트윈스이순철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아 FA 대박을 터뜨리며 이적한다. 처음에 이순철 감독은 이상훈과 같이 더블 스토퍼로 기용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팀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이상훈을 양현석, 승준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하고 진필중 단독으로 마무리를 맡게 된다. 그러나 2004 시즌 초반 똥줄 세이브를 몇 개 하다 탈탈 털리고 마무리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본인의 요구에 따라 2005년에 선발로 전환했지만 선발로도 그다지 신통치 않았으며 결국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드러누웠다. 그 후에도 전혀 뛸 의욕을 보이지 않으며 구단과의 연봉 싸움만 일삼아서 LG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결국 2006년 이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7년 시즌이 끝나고 여러 선수들과 같이 방출당했다.

LG 시절 때에 화끈한 방화질과 함께 진필중만이 아닌 다른 선수들마저 같이 불놀이를 하는 덕분에 타팀팬들은 이들을 묶어서 엘지의 방화신기라고 조롱했다. 멤버로는,

등이 있다. 물론 이후에 멤버들의 방출과 은퇴, 그리고 결정적으로 더 화끈하게 불질러 주는 유명 작가가 등장하고 난 이후로는 묻힌 별명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 5월 우리 히어로즈신고선수로 입단하였으나 퓨처스리그에서도 탈탈탈 털리다가[5] 한 달만에 신고선수 계약이 해지되어 다시 방출당했다.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완전히 끝.

2.2. 지도자 커리어

이후에도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교통사고를 당하고 2009년 1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한때 마추픽추로 유명했던 2009년 한민학교의 투수코치로 코치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투수코치 진필중"의 첫 작품으로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 140km/h 중반대의 구속을 던지는 파워 피쳐로 변신하여 삼성 라이온즈2010년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우완투수 김현우를 꼽을 수 있다. 코치로 만들어낸 첫 선수의 잠재력을 봤을 때, 코치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해 봐도 될 듯했다.

2011년 11월 자로 경찰 야구단의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재미있게도 경찰 야구단의 전임 투수코치는 OB 시절의 선배인 김경원이었다. 김경원 코치가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옮기면서 진필중이 경찰 야구단의 투수코치로 들어가게 되었다.

2.3. 해설자 커리어

2013시즌을 끝으로 코치직을 물러난 이후 2014시즌에는 XTM에서 해설을 맡았고 베이스볼 워너B에도 출연했다. 2015년부터 XTM이 중계를 중단한 이후 SPOTV의 중계 방송에 해설로 참여하고 있다.

2.3.1. 편파해설 논란

마해영,하일성과 더불어 2014시즌 최악의 해설가
하지만 해설 수준은 그야말로 최악. 쉽게말해 마해영의 LG 편파 버젼(…)이다. 거기에 본인의 커리어를 칭찬하느라 해설시간을 허비해서 그 수준은 심각한 상황. 결국 분노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마해영만 자르지 말고 진필중도 자르라고 워너B 게시판을 초토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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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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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현장
SPOTV 유튜브 채널에 XTM 해설이 나오면 마찬가지 반응인데, 모두들 분노했지만 그 중 한 사람은 20억 먹은 먹튀인데 저같아도 편파해설 하지요.라고 비꼬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먹튀하고도 까기만 하는 다른 사람 보다는 양심적이다 이럴 거였으면 선수 시절에 잘 좀 하시지 그러셨어요

똑같이 편파해설을 한 마해영 전 해설위원은 완전히 퇴출되었으나, 이 분은 아직까지도 해설위원을 하고 있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5OB 베어스 36 109⅓ 6 2 2 0 3.21 112 40 50
1996 32 191 13 10 4 0 3.11 186 47 69
1997 26 130⅔ 7 12 0 0 3.72 152 43 72
1998 61
(5위)
158⅓ 8 6 19
(5위)
0 2.33
(4위)
135 47 100
1999두산 베어스 73
(3위)
114 16
(4위)
6 36
(2위)
0 2.37 84 41 114
2000 59
(5위)
73 5 5 42
(1위)
0 2.34 64 25 61
2001 51 89⅓ 9 6 23
(1위)
0 3.22 87 41 88
2002 54 62⅓ 4 5 31
(1위)
0 3.47 60 19 58
연도소속팀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KIA 타이거즈 46 64⅓ 4 4 19
(5위)
0 3.08 64 24 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4 LG 트윈스 34 32⅔ 0 4 15 0 5.23 49 13 23
2005 13 51 3 7 0 0 5.82 58 28 27
2006 25 43⅓ 0 3 0 2 3.95 54 15 18
2007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우리 히어로즈 1군 기록 없음
통산(12시즌) 510 1119⅓ 75 70 191
(5위)
2 3.20 1105 383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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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덧붙여 1999년에 한 시즌 최다 세이브포인트 기록인 52세이브포인트 기록을 세웠다. 세이브포인트 기준을 적용한다면 2006년의 오승환보다도 더 앞에 있다.(오승환은 4승+47세이브로 51세이브포인트)
  • [2] 참고로 이 시절 단장이 정재공 이었는데, 그가 영입한 유명선수만 봐도, 이강철(트레이드),박재홍(트레이드),진필중(트레이드),최향남(FA),조규제(FA),마해영(FA),심재학(트레이드)인데 이 선수들중 이강철을 빼면 하나같이 폭망했다 이 선수들을 데려오겠다고 유망주인 정성훈을 날리고, 수비하난 최고였던 김창희, 중심타자로서 가치가 있는 신동주, 쓸만한 불펜인 박지철을 날렸고, 이 선수들에게 FA,고액연봉,트레이드머니로 쓴 돈만해도 상당하다. 여러모로 돈이 아까웠다.
  • [3] 이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선수는 바로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던 후배인 심정수였다.
  • [4] 기존 기록은 8점차였지만 10:1에서 역전패를 당해 9점차 역전 경기를 써버렸다. 하지만 2013년 508 대첩이 등장하면서 이 기록이 깨졌다.
  • [5] 2군 6경기 6⅔이닝 평균자책점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