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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last modified: 2015-04-11 10:25:10 Contributors

Contents

1. 육조시대 진나라 2대 황제
1.1. 개요
1.2. 황제에 오르다
1.3. 가족 관계
1.3.1. 무협소설한백무림서에 등장하는 인물
1.3.2. 진천의 무공
1.3.3. 한백무림서 작품에서의 행보
1.3.3.1. 무당마검
1.3.3.2. 화산질풍검
1.3.3.3. 천잠비룡포

1. 육조시대 진나라 2대 황제

남진의 역대 황제
초대 고조 무황제 진패선 2대 세조 문황제 진천 3대 폐제 임해왕 진백종

묘호 세조(世祖)
시호 문황제(文皇帝)
연호 천가(天嘉, 560년 ~ 566년 2월)
천강(天康, 566년 2월 ~ 566년 12월)
진(陳)
천(蒨)
자화(子華)
생몰기간 522년 ~ 566년
재위기간 559년 ~ 566년

진천(陳蒨 522년 ~ 566년, 재위 559~566)

재위 기간 동안 천가(天嘉), 천강(天康)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문황제(文皇帝).

1.1. 개요

보통 3년(522년) 시흥왕 진도담진도담(陳道譚)[1]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모친은 알려져 있지 않다. 는 자화((子華))이며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영민했으며 담력과 식견이 있었다. 용모와 풍채가 좋고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법을 바르게 지켰으므로 숙부 진패선이 그를 아꼈다. 후경이 난이 터지자 진천은 일족들을 보호하며 임천으로 피난갔다. 진패선이 후경을 토벌하러 떠나자 후경은 진천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진천은 몸에 비수를 품고 후경을 찔러 죽이기 위해 스스로 자수했으나, 바로 감금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진패선이 석두성을 포위하자 후경은 몇 번이나 진천을 죽이려고 했으나, 부하들의 만류로 죽이지 않았고 결국 진천은 진패선이 석두성에 입성하고 나서야 석방되었다.

승성 3년(554년), 진패선은 광릉을 점령할 때 진천을 선봉으로 삼아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뒀다. 이듬해 10월, 왕승변의 사위였던 정주자사 두감 등이 정병 5천 명을 이끌고 장성으로 쳐들어오자 진천은 이에 맞서 수백 명의 군사를 모집했다. 그러나 장비가 부족했고 모두가 대경실색해서 사기가 낮았다. 하지만 진천은 우스개소리를 하며 태연자약했고 모두가 안정을 찾았으며 진천이 직접 선두에 서서 40일 동안이나 지켰고 결국 두감 등은 후퇴했다. 이 공로로 진천은 선의장군, 회계태수가 되었으며 영정 원년(557년) 11월, 임천왕에 책봉되었고 시중, 안동장군이 되어 남환을 수비했다.

1.2. 황제에 오르다

영정 3년(559년) 6월, 진패선이 사망하자 진천은 건강으로 소환되어 황제 옹립을 의논했다. 장태후는 선제의 여섯 아들이 모두 요절하거나 서위의 포로로 장안에 있으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소.[2]라며 결정을 못 내렸다. 이에 남예주자사 후안도가 지금 천하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어느 겨를에 먼 곳을 생각하겠소? 임천왕은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니 모두가 받들어 모셔야 할 분이오. 이 일에 응하지 않는 자는 베어 버릴 것이오.라며 칼을 뽑아 전 위로 올라가 태후를 협박하여 옥새를 바치고 명령을 내리게 했다. 그래서 진천이 건강 태극전전에서 즉위했다.

560년 서위는 진나라를 치기 위해 진패선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형왕 진창(陳昌)[3]을 시켜 공격하게 했다. 진창은 왕림에게 막혀 안륙(安陸)까지만 쳐들어왔으나, 왕림이 사라지니 진창은 그대로 계속 진격할 수 있게 되었고 양자강을 따라 동진하면서 진천에게 무례한 편지를 보내 황위를 요구했다. 진천은 후안도를 불러 진창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왕으로 내려갈까라고 물어보았다. 이에 후안도는 그러지 말라고 하며 일단 몸소 나가 진창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한달 후, 진창이 진나라 영토에 들어오자 후안도는 반갑게 맞이하며 둘은 양자강을 따라 배를 타고 오고 있었다. 갑자기 후안도는 진창을 죽여버리고 양자강에 던졌고 건강에 도착해 진창이 발을 헛디뎌 익사했다고 보고했다. 진천은 후안도가 진창을 죽였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기쁘게 여기고 후안도를 청원공에 봉했다. 대신 죽은 사촌동생이 불쌍했는지 자신의 7남 형양왕 진백신(陳伯信)을 양자로 삼아줬다.

진천은 백성의 고통을 알았으며 즉위 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다. 또 사리분별에 능했고 신하들의 간악한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천강 원년(566년) 4월, 재위 8년 만에 45세의 나이로 건강 유각전에서 사망하고 6월에 영녕릉에 안장되었다. 진천은 태자 진백종이 개인적으로 너무 유약해서 황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염려되어 황위를 동생 진욱에게 넘겨주려 했다. 진욱은 거절했고 관료인 공환(孔奐)도 반대했다. 결국 진천은 진욱을 후계자로 삼지는 않았지만 진욱과 공환, 도중거(到仲舉), 원추(袁樞), 유사지(劉師知) 등에게 진백종을 보좌하게 했다.

여담이지만 한자고란 미청년과 동성애 관계 였다고 한다. 후대의 청나라 시절 화신건륭제와의 관계와 비슷한데 한자고 역시 황제의 총애를 입어 권력을 휘두르다 진백종이 즉위한 뒤 참살된다.

1.3. 가족 관계


1.3.1. 무협소설한백무림서에 등장하는 인물

제천회
회주 진천명경청풍단운룡팽천위백무한
귀도월현유광명승뢰파천의 대검

제천회주이자 한백무림서 마지막 편 제천회편의 주인공으로 예정된 인물. 한백무림서의 흑막 무적진가의 현 가주이고 사패의 일인인 진무혼의 아들이자 제자.

작가가 공인한 한백무림서 최고의 엄친아. 반선(半仙)의 영역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존재, 신마요선(神魔妖仙)이 한 몸에 깃든 자, 만물에 공평하다는 천도(天道)가 천년 세월에 한 단 한번의 실수라 표현된다. 일단 못하는 게 없다. 무공은 사패 수준이고 병법 의술 등등 온갖 분야를 섭렵한 희대의 먼치킨. 다만 주술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천지간의 기운이 인간에게 허락한 힘이 정점에 이른 한백무림서의 시대에서도 최고 정점.

사패와 마찬가지로 직접 나서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는 자신은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팔황과 싸울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제천회로 스카우트하는 중.[4] 궁극적으로 천하 열명의 강자들이 제천회의 십익이 되어 본격적으로 팔황과 대적하게 된다. 물론 팔황에서도 진천을 알고 있으며 충분히 경계하고 있다.

실제 나이는 50대지만 겉보기에는 20대 후반 정도. 굉장한 미남에 특이하게 한쪽 귀에만 귀걸이를 하고 있다.[5] 그리고 무엇보다 영락제의 사위(…)다. 금의위의 비공식적 수장이었고, 이후 동창과 서창, 동인회 등 북경의 4대 황실 조직에 관여하는 모양. 주로 황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조홍원태등 황실 인력을 부려 간접적으로 강호에 개입하고 있다.

아래위를 따지지 않는 성격(...)인 모양인지 배분이 반배분~한배분 높은 허공에게도 반말을 하고 영락제도 영락이라고 부른다. 장인 이름을 막 부른다

무당마검이나 화산질풍검에서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 주인공을 구해주기 때문에 미리 찜한 인물들 주변을 배회하면서 위기 순간에 구해주고 그 은혜를 미끼로 제천회에 집어넣는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존재한다(...)[6]

도철이 만든 제천검(制天劍)을 소유하고 있다.

1.3.2. 진천의 무공

19세에 사패에 버금가는 무력을 손에 넣었고[7], 과거에 성혈교무적진가의 가신인 삼안마군의 처자식을 납치하자 단신으로 성혈교에 쳐들어가서 사황과 사도 여섯을 죽여버린 적이 있다. 다만 이때부터 이미 완성된 경지였기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것은 아니다. 삼안마군의 부인은 구해내지 못했지만 아들은 구해냈는데 이 아이가 바로 명경이며 무당파에 맡겼다.

무적진가의 무공인 투인을 사용한다.[8] 한백명경의 십단금을 '진가의 투인에 비견될 몇 안되는 무공'이라고 평가하는데, 즉 투인이 정점이라는 뜻이다. 협제신기천룡무제신기, 무상대능력은?[9] 투인이 일격필살인지 연환기인지 증폭기인지를 물어본 독자에게 작가전부 다라고 대답했다(...)

진천을 만난 명경청풍에게는 '허공진인보다도 강할 것 같다.', '인간의 경계를 벗어났다.', '옥허진인과도 격이 다르고 천하를 넘보는 이가 아니라 이미 천하의 정점에 올라 모든 것을 통달한 자.' 등등의 평가를 받았다. 작중에서 무공을 펼치는 모습은 한 번밖에 묘사되지 않았는데, 내공을 싣지도 않고 본신 무공이 아닌 혼원봉을 펼치는데도 명경은 완벽한 무공이며 사부보다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단전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오장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나뭇가지를 부러뜨르고 다듬어서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무형기(허공섭물)를 사용한다.

사패는 진천과 무공의 경지는 비슷하지만 난세를 헤쳐온 경험으로 인해 7:3이나 8:2 정도로 사패에게 우세하다고 한다. (완성된 수준의) 십익보다는 강하지만 청풍명경의 합공에는 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한다. [10] 진천을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십익은 단운룡이지만 잘해봐야 2할의 승률이라고. 팔황의 수장들 중에는 진천과 1:1로 싸울 수 있는 이들도 있고[11] 제천대성위타천도 진천을 상대해볼만하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해볼만한' 것이고 승률은 높지 않다.

사패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1.3.3. 한백무림서 작품에서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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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각 작품에서의 주인공을 제천회로 포섭할 때 등장하며 팔황을 직간접적으로 견제하는 활동들이 작중에 나타난다.

1.3.3.1. 무당마검
무당파를 호북을 아우르는 무림 문파로 만들기 위해 진무각 제자들을 종군시키는 대신 황실에서 무당을 직접적으로 지원토록 만든다. 명경 일행이 북경에 머무를 당시 앞에 나타나 혼원봉과 연경심법을 전수했으며 이는 조홍북풍단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후 성혈교와 무당파가 전면전을 벌일 때 승뢰와 싸운 뒤 성혈교의 사도들에게 부상을 당한 허공진인을 구해 치료해주었고, 귀도와의 결투 후 쓰러진 명경을 구해주어 치료해주었고, 구명지은에 대한 대가로 제천회에 대한 언급을 한다.

1.3.3.2. 화산질풍검
만통자에게 화산파에 싹수있는 젊은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풍을 찾아간다. 숭무련 무상 서자강갈염을 죽이고 검을 뺏었다, 커서 숭무련에 방해가 될 인재다라며 청풍을 죽이려는 타이밍에 등장. 서자강은 진천을 상대로는 후퇴해도 수치가 아니다[12]라며 물러난다. '무당소림외에도 구파에 인재가 있었군'이라며 놀라는 걸 보아 청풍의 존재는 예상 외의 득템 고수였던 듯.[13] 이 구명지은을 빌미로 청풍을 제천회에 포섭하는 모양이다.

군산대회전에도 황실의 행사에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장현걸과 오호도 등의 인물들에게 단심궤를 줘 단심맹에 포섭된 풍대해를 견제하도록 한다. 다만 이러한 활동은 전부 조홍을 통해 진행했다. 군산에서 무인으로 환산하면 3-4천, 실제로는 1만이 넘는 인명피해가 나올거라는 조홍의 보고를 듣고 "그것밖에 안되나…."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1.3.3.3. 천잠비룡포
직접적인 등장은 없지만 단운룡강설영 파티를 분열시키는 흑막(?).[14] 원태를 보내 강설영에게 단운룡의 정체를 폭로하고, 단운룡에게 오원의 상황을 인식시켜 단운룡을 오원으로 보낸다. 다만 단운룡이 오원에서 해낸 일만큼은 완전히 예상 외였던 모양이다. 이 일을 계기로 단운룡은 진천을 인식하고 불쾌하게 생각하게 된다.[15] 그리고, 천잠비룡포 4권에서 소연신의 말에 의하길, 아버지이자 스승인 진무혼과는 다르게 아주 고약하다고 하며, 그 자체로 시건방지기까지 하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삼안마군처럼 마도에 몸담은 이 혹은 악인은 아니지만 꺼림칙한 놈이라고까지 하며, 하늘의 법도를 생각해서 소연신은 제자인 단운룡에게 진천은 없어져도 상관이 없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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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진패선의 형으로 대부분의 관례와 달리 진천은 아버지를 따로 황제로 추존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창업자인 삼촌이 아니었으면 황제에 오를 수도 없었고 아들이 사실상 없던 삼촌의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 [2] 진패선의 다섯 아들은 모두 요절하고 막내 아들 진창은 서위가 강릉을 함락할 때 포로로 붙들려 장안에 있었다.
  • [3] 진패선의 막내아들이자 자는 경업(敬業)이다.
  • [4] 실제로는 좀 복잡한 이유가 있다는 듯. 어쨌거나 명경의 구출 사건이 계기가 되어 표면에서 힘을 감춘 모양이다.
  • [5] 둔저(무협소설 불패신마의 작가. 현재는 고인이 되셨다.▶◀)의 추측으로는 일종의 봉인이 아닌가 의견이 있었고 작가도 일부 긍정했다.
  • [6] 명경의 경우는 몇가지 안배를 해놓았었다. 하지만 청풍의 존재는 완전히 예상 외였던 모양이다.
  • [7] 별 것 아닌 것처럼 쓰여 있지만, 천하의 기재들인 사패들도 10대에 반선지경에 다가갈 정도는 아니었다. 사패 이전의 천하제일고수이자 '세상을 통달하는 재능'으로는 진천과 비슷하다고 작가에 의해 공언된 장삼풍도 이랬을지는 의문. 인간을 벗어난 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8] 투인의 한자는 불명.
  • [9] 진천이 언급한 몇 안되는 무공에 사패가 사용했던 무공은 당연히 들어갔을것이다.
  • [10] 청풍과 명경이 전략을 잘 짜고 나오면 십익 톱3 안에 충분히 들 수 있다. 문제는 둘의 조합이 그다지 상성이 좋지 않다고. 오히려 백무한과 청풍의 조합이라면 진천이라도 죽일 수 있을 거라 한다. 다시 말해 진천의 무력은 조합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완성된 십익 두명 이상의 합공에는 우위를 점할 수 없는 듯.
  • [11] 신마맹주, 비검맹주, 숭무련주로 추정.
  • [12] 질답란의 답변에 의하면 이때 숭무련의 전력과 진천이 붙었다면 정말로 숭무련이 전멸했을 거라고. 그러나 숭무련 사람이 고작 그런 이유로 할 말이 절대 아니다(...) 의 목숨을 생각해서 후퇴했다는 묘사가 있으니 서자강의 부정(父情)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진천을 사람취급을 안하는거거나
  • [13] 구파의 인물은 저 두 곳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천화진인이 장문인이 되고 지나치게 패도를 걷는 바람에 화산파의 인재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 [14] 말 그대로 흑막이다. 한백이 지적하기로, 오원을 비롯한 운남의 정세는 황실에서도 무림에서도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어째선지 황실도 안 끼어들고 무림도 관심이 없었다고. 천하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진천 뿐이며 아마 진천은 어떤 큰 계획을 세워뒀던 것이 아니냐는 게 한백의 추측. 하지만 정작 진천도 단운룡의 행동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듯.
  • [15] 이런 일이 없었더라도 단운룡의 성격상 진천 같은 인물을 좋아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단운룡은 청풍은 좋아하지만 제천회를 싫어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