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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군

last modified: 2014-12-07 14:58:3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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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進軍
2.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인물 陳羣


1. 進軍

적과 맞서 싸울 목적으로 군대가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
어떤 일을 여러 사람이 활기차게 행하러 가는 모양새를 빗대는 말로도 쓰인다.

2.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인물 陳羣

?-238

후한 말, 삼국시대 의 정치가로, 자는 장문(長文). 난형난제 고사성어의 유래에 나오는 그 진장문 맞다.

예주 영천 (허창) 출신이며, 대대로 청류파로 이름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고사성어 양상군자의 유래가 된 대학자 진식이다. 동향인 순욱의 사위가 되었고, 아들로 후에 촉한의 북벌을 막아낸 진태를 두었다.

조조 아래에서 내정에 활약한 것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처음에는 예주자사로 있던 유비에게 앞서 출사했었다. 별가 자리에서 일했는데, 194년에 서주목 도겸이 죽어 서주가 혼란해지자 유비가 서주를 아우르려 할 때 '서주는 사방으로 트인 땅이라 남으로는 원술, 서쪽에는 여포의 침입을 받을 수 있으니 위험합니다' 라고 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정말로 여포가 쳐들어와 유비가 달아나자 아버지와 함께 야인으로 물러나 피난살이를 했으며, 문재로 천거되어 현령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98년에 조조가 여포를 멸하자 조조의 밑에 들어가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214년에 어사중승의 자리에 올랐다. 인물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 상서령에까지 오른 진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를 천거했으며, 문서의 기밀, 법의 정비, 재판, 징병 등 내정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활약해 순욱과 종요와 더불어 조조 체제의 내정 정비에 큰 역할을 맡았다. 그는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대단히 엄정하여 범법 행위는 즉각 탄핵했는데, 심지어는 조조의 최측근 모사인 곽가의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을 지적하여 이를 처벌하려 들 정도였다.

조조가 죽고 조비를 세울 때에도 전심으로 협력해 조비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상서령의 자리에 진군대장군의 자리까지 올라, 손권과 싸울 때는 수군을 지휘하는 직책에 있었다. 조비가 탁고하는 자리에서 조진 그리고 사마의 등과 함께 뒷일을 부탁받았으며, 조예의 대에도 중신으로 대우받아 사공의 자리까지 올랐다. 238년 병사했는데, 235년으로 보는 설도 있다.

몇몇 촉빠들은 진군이 계속 유비 진영에 있었다면 법치를 정치의 근간으로 보았던 제갈량이랑 죽도 잘 맞고 나라의 인재도 보강되었을 거라며 조조 쪽으로 간 걸 한탄하기도 한다.[1]

진군은 원칙주의자였는지 행실이 단정치 못한 곽가를 항상 조조 앞에서 지적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조조는 곽가는 곽가대로, 진군은 진군대로 높이 평가했고, 조조는 두 재사 모두의 능력을 부릴 수 있었다.

진군이 중국 제도사에 남긴 중요한 업적으로 221년 위 성립과 함께 제정한 구품관인법이 있는데 구품중정제라고도 한다. 제 아무리 삼국지가 '교과서의 몇 줄 분량을 열 권 분량으로 늘린 것'이라지만 이건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중요하다. 게임 삼국지에서 관직을 구품관에서 일품관 이런 식으로 구별한 것은 바로 이 구품관인법을 반영한 것을 들 수 있는데, 그간 호족의 추천이나 채용관의 의사가 개입되기 쉬웠던 인재 등용 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비한 것으로 각 지방에 중정관을 설치해(중정) 사관 희망자의 재능과 덕행을 심사하여 9등급으로 나눠(구품) 내신서를 작성하고 매긴 등급보다 몇 단계 낮춰 초임시키는 형식을 골자로 삼고 있다.

본래 목적은 객관적으로 개인차에 따른 인재를 선발하려는 것이었지만 갈수록 변질되어 세력 있는 자가 높은 등급, 그렇지 못한 자가 낮은 등급으로 고정되고 높은 등급에 임용될 목적으로 돈을 푸는 등 매관매직의 폐단을 재차 초래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남북조 시대에 가장 융성했으며, 중정을 통한 관리 선발 제도는 |수가 전국을 통일한 뒤 과거 제도로 대체되었으나 관품제도는 남아서 청나라 말기까지 실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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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 10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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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9품이라 9권, 김밥배달 시키신분?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에서는 위나라의 장소라 해도 좋을 만큼 정치력이 두드러지는 인물로 등장.[2] 삼국지 4삼국지 5 시절에는 지력이 높아 군사로 활약하던 때도 있었다. 이후 정치는 그대로 놔두고 지력은 점점 칼질되어 근래 작에선 지력은 70대에 그친다. 삼국지 5 이후로는 유비에게 잠시 출사했던 것을 근거로 군웅할거 시나리오(194년 무렵 시나리오) 때 유비의 부하로 설정되어 있다. 이 시나리오가 아니면 보통 허창에서 재야장수로 있거나 이미 조조의 부하가 되어 있다. 군웅할거 즈음 시나리오에서 유비의 부하로는 기껏해야 유비 3형제와간옹뿐이라서 진군은 정말 소중한 인재가 된다.

삼국지 5에서는 장소와 더불어 정치 최고치(98)를 기록했다. 아마 구품관인법을 반영한 듯. 지력도 93이나 되며 3시나리오인 조조의 대두(194년) 시나리오에선 유비의 부하로 있기 때문에 소패, 하비 2개의 땅을 가지고 있는 유비는 이 시나리오에서 엄청 할 만하다. 단 초기 충성도가 86에 유비랑 궁합이 안 맞기 때문에 재수없으면 첫 턴이 오기도 전에 타세력에 뺏기는 수가 있다. 보통 금 600정도를 쓰면 무난하게 충성도를 100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하비가 거점인 유비완 다르게 진군은 소패 소속으로 있으니 참모로 임명하고 바로 하비로 불러오는건 필수. 안 그러면 유비군의 참모는 초기 설정대로 관우가 된다...

삼국지 7에서는 이상하게 장양의 부하가 되는 일이 잦으며, 장양이 죽은 후 장양의 후계자 1순위라 진군군이라는 괴랄한 세력이 자주 만들어진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1/무력 7/지력 72/정치력 95. 능력치도 능력치지만 다른 A급 내정용 문관과는 달리 그 흔한 모략계 병법 하나 없어 도저히 전장에서는 못 써먹는다. 매도는 혼란보다 한 수 아래고 병법 숙련도도 0이다. 내정용으로나 굴리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8/무력 14/지력 78/정치력 97/매력 77에 특기는 6개지만 농업, 상업,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내정계의 스페셜리스트. 나머지 특기는 보수, 명사, 항변. 후방에 태수로 놓는다면 물자,병력을 쉽게 불려놓는지라 든든하다.

삼국지 11에서는 정치력은 높으나 무특기인 것까지 장소와 흡사하다. 곽가를 탄핵한 건 반영되지 않아서 곽가와 혐오무장 관계는 아니다.

삼국지 12에서는 그의 가장 큰 업적인 구품관인법김밥을 황제에게 상주하는 모습이 일러스트로 나왔다. 그러나 정치가 장소보다 낮은 96이다. 다만 지력이 75인데 정치가 96이라 적당히 잘 굴릴 수가 있고 전법이 파괴력약화라서 수성의 달인이다.

반삼국지에서도 짤막하게 등장한다. 촉군이 낙양을 함락한 이후, 위의 중신들이 대거 잡히게 되는데, 이때 진군도 끼여 있다. 그리고 자결을 명받게 되어 자결한다. 이게 등장 끝.

꽤 네임드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전투기에서는 그동안 출연이 없다가 죽기 직전에 딱 1회 출연했다. 사실 석양전투(3)에서 이름은 나왔으나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다. 패러디는 UP(애니메이션)의 칼 프레드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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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특히 그의 아들 진태가 후에 강유의 북벌 때마다 활약한 걸 생각하자면...근데 애초에 진태는 순욱 쪽 피도 이어받았잖아
  • [2] 실제로 사망한 해도 장소가 236년으로 흡사하다. 물론 까닭은 장소가 장수했기 때문이다. 출사한 시기로 따지면 진군은 170년을 전후한 출생자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