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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

last modified: 2020-01-21 20:23:37 Contributors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감독
지네딘 지단
(Zinedine Zidane)
전체 이름 Zinédine Yazid Zidane,
(지네딘 야지드 지단)[1]
애칭 Zizou(지주)
생년월일 1972년 6월 23일
신체 조건 185cm, 80kg
국적 프랑스(France)
출생지 마르세유(Marseille)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왼쪽 윙어(Outside-left)[2]
클럽 경력
(1989~2006)
AS 칸(1989~1992)
FC 지롱댕 드 보르도(1992~1996)
유벤투스 FC(1996~2001)
레알 마드리드 CF(2001~2006)
국가대표
(1994 - 2006)
108경기 31골
전체 국가 대표 경력
(1988~2006)
프랑스 U-17(1988~1989)
프랑스 U-18(1989~1990)
프랑스 U-21(1990~1994)
프랑스(1994~2006)
등 번호 21(유벤투스 FC)
5(레알 마드리드 CF)
10(프랑스 축구 국가 대표 팀)
지도자 경력
(2013~)
레알 마드리드 CF(2013~2014)[3]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2014~)

1997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위
호베르투 카를로스
3위(공동)
데니스 베르캄프
지네딘 지단
1998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호나우두
3위
다보르 슈케르
2000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루이스 피구
3위
히바우두
2002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위
올리버 칸
3위
지네딘 지단
2003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티에리 앙리
3위
호나우두
2006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2위
지네딘 지단
3위
호나우지뉴
1997 Ballond'or
수상
호나우두
2위
레드라그 미야토비치
3위
지네딘 지단
1998 Ballond'or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다보르 슈케르
3위
호나우두
2000 Ballond'or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지네딘 지단
3위
안드리 셰브첸코
2002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006 FIFA 월드컵
골든 볼
지네딘 지단
실버 볼
파비오 칸나바로
브론즈 볼
안드레아 피를로

2001 UEFA BEST 11
FW
다비드 트레제게
FW
티에리 앙리
MF
리 곤살레스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데이비드 베컴
DF
비셴테 리사라수
DF
파트리크 안데르손
DF
사미 히피아
DF
스민 콘트라
GK
티아고 카니사레스
2002 UEFA BEST 11
FW
호나우두
FW
티에리 앙리
MF
이미언 더프
MF
지네딘 지단
MF
미하엘 발락
MF
클라렌스 세도르프
DF
호베르투 카를로스
DF
리스티안 키부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카를레스 푸욜
GK
슈튀 레츠베르
2003 UEFA BEST 11
FW
뤼트 판 니스텔로이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지네딘 지단
MF
데이비드 베컴
MF
루이스 피구
DF
호베르투 카를로스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파울루 페헤이라
GK
지안루이지 부폰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2006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티에리 앙리
FW
사무엘 에투
MF
카카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릴리앙 튀랑
GK
지안루이지 부폰

Contents

1. 소개
2. 축구 인생
2.1. 축구 천재의 등장
2.2. 클럽의 지단
2.2.1. 지롱댕 드 보르도 시절
2.2.2. 유벤투스 시절
2.2.3. 레알 마드리드의 지단
2.3. 레 블뢰의 지단
2.3.1. 데뷔
2.3.2.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3.3. 유로 2000
2.3.4. 2002년 한일 월드컵
2.3.5. 유로 2004
2.3.6. 2006년 독일 월드컵
2.3.6.1. 지단 박치기 사건
2.3.7. 지단 이후 프랑스 대표팀
2.4. 은퇴 이후의 행보
3. 평가
4. 지네딘 지단에 대한 말.말.말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7. 대중매체의 지단

1. 소개

Maestro(마에스트로)[4]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5]

호나우두와 함께 1990년대 중반 부터 2000년대 중반의 축구계를 양분한, 한 'Decade'를 상징하는 선수.[6][7]

아트사커의 지휘자[8]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축구선수.[9]

프랑스 축구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전설적인 축구선수로 미셸 플라티니와 더불어 프랑스, 나아가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중 한 명[10]으로 빼놓지 않고 거론되며, 현재는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Mais un jour, j'ai vu un homme qui n'avait pas de pieds et j'ai réalisé au combien j'étais riche
어른이 된 뒤 발이 없는 사람을 보고 내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알게 되었다.
- 지네딘 지단.

우리가 축구선수로서 해야 할 일은 경기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 축구를 하는 것이다.
- 지네딘 지단, 에드가 다비즈[11]

I worked hard to improve that, but everything was in my head. Playing by instinct has always been my quality. I saw things shortly before others did. Faster than the defender understood them anyway.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본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모든 플레이가 내 머리 속에 있었다. 그 본능대로 움직인 게 언제나 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른 선수들보다 한발 먼저 상황을 파악했다. 상대 수비보다 앞서서 경기를 이해한 셈이다.
- 지네딘 지단

1972년 6월 23일 마르세유 태생. 아버지알제리계 이민자로 알제리 전쟁 당시 아르키(Harki)라고 불리던 친 프랑스 알제리 민병대원 출신으로 용케 프랑스로 이민 온 항만 노동자였다. 참고로 알제리의 축구선수 자멜 지단이 지단의 숙부라는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자멜 지단 항목에 서술되었듯이 둘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일부 한국인들은 지단을 알제리 출신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마르세유 태생이다. 주로, 일부 프랑스 국대 까들 및 지단 까들이 지단을 알제리 태생에 프랑스 귀화니 어쩌니 하면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프랑스 태생의 프랑스 국적의 사람이 맞다. 물론 그의 핏줄에 알제리의 피가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지단의 부모는 1968년에 알제리의 카빌리야 지역 아게몬 마을에서 파리로 이주했다가 마르세유로 옮겼다.

또한 그의 유명한 기술인 마르세유 룰렛은 고향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고향의 명문 클럽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활약한 적은 없었다.

2. 축구 인생

2.1. 축구 천재의 등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막 20살이 되었을 때인 1992년이었다. 리그앙의 AS 칸 소속으로 그 당시엔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그러나, 이후 윙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해 내는 쪽으로 전향했다. 당시에는 개인기가 뛰어나고, 머리숱이 많고 피지컬이 좋은 선수라는 평을 들었다.

2.2. 클럽의 지단

2.2.1. 지롱댕 드 보르도 시절



이적한 후, 인터토토 컵에서 우승을 시켰다. 96년 UEFA컵에서 AC밀란을 상대로 한 2차전 3대0으로 카펠로의 밀란을 떡실신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결승에서의 패배로 콩을 수집했지만, 밀란전의 활약으로 빅클럽들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다.

2.2.2. 유벤투스 시절



1996년에 리그 앙의 베스트 선수가 되면서 이탈리아의 최고 명문 클럽인 유벤투스로 이적을 하게 된다. 이 시절 유벤투스는 '지단-데샹-다비즈'라는 사기 캐릭터급 중원으로 세리에 A와 챔스를 폭격하며 두 번의 스쿠데토를 차지하였고, 1996-1997 시즌과 1997-1998 시즌 2번 연속으로 유벤투스를 챔스 결승에 올리는 활약을 펼쳤다.[12] 이 시기에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00의 우승을 이끌며 프랑스 축구의 영웅이자 세계 축구의 본좌로 자리잡는다.

2.2.3. 레알 마드리드의 지단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00 우승 이후, 갑자기 불어닥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에 의해 어마어마한 이적료로 지구 방위대의 일원이 되었는데,[13] 그 시기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마놀로 산치스의 은퇴 시점과 맞물리면서 그의 유산인 5번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게 직접 전달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하는 등 아주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Wow, fantastic! fa~ntastic!"[14]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결승전에서의 그의 발리 슛 결승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매체에서 역대 챔피언스 리그 최고의 골로 선정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 선정은 덤. 레버쿠젠 소속이었던 콩락 발락은 이 슛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15] 레버쿠젠에게는 3개 대회 준우승의 아픔을 낳게 한 골이었지만, 그 역시도 이 골이 최고의 골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지단의 슛이 화룡점정이긴 했지만, 만들어가는 과정도 정말 그림 같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시절 지단의 등 번호는 5번이다. 다른 팀에서 5번은 주로 수비 라인의 리더를 의미하는 번호로 배치되지만, 마드리드에서 5번은 지단의 후계자라는 의미이다.[16][17]

2001년 이적 당시, 역대 최고의 이적료인 7350만 유로에 이적하였고, 이 기록은 수 년간 깨지지 않고 있다가, 2009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9000만 유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깨졌다. 그리고 지단은, 호날두의 몸값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깠다.

2006년 월드컵 이전에 마드리드 선수로서 치른 클럽 공식 은퇴 경기에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온 관중들이 모두 지단의 등 번호인 5번이 적힌 유니폼 모양의 종이 섹션을 들고 나와 지단을 비롯한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노란 옷의 농부가 등장하는데...

2.3. 레 블뢰의 지단


지단이 있는 레 블뢰FIFA 월드컵 우승후보 1순위이고, 지단이 없는 레 블뢰는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준이다.

2.3.1. 데뷔



국가대표 A매치 첫 데뷔는 1994년 8월 17일 체코와 맞붙은 A매치에서였는데, 0-2로 끌려가던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된 지 얼마 안 되어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데뷔 골을 기록했고, 이후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를 꽂아 넣어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었다. 지단은 이 때의 감격에 대해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컸다."고 회고했다. 이후 다비드 트레제게, 티에리 앙리, 클로드 마켈렐레, 니콜라스 아넬카, 유리 조르카예프 등의 황금세대와 같이 맹활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지네딘 지단이 선발되지 못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약체 이스라엘에게마저 2-3으로 충격패하고, 또한 불가리아전에서 다비드 지놀라의 어이없는 백패스로 인하여 역전 골을 얻어맞고 연달아 패배하였다. 부진한 성적으로 결국 1990년에 이어서 또 다시 본선진출에 실패하며 지역예선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18] 참고로 1990년, 1994년에 프랑스의 스쿼드는 지네딘 지단이 맹활약했던 1998년의 황금세대와 비교해도 그에 못지 않게 화려했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했던 1990년, 1994년 세대를 통틀어서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라고 불린다.

2.3.2.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전부터 지단은 이미 스타급 플레이어였고, 대회 전부터 호나우두, 데니스 베르캄프와 함께 가장 유력한 MVP 후보 중 하나로 꼽혔었다. 물론 배당은 호나우두가 가장 높았지만, 지네딘 지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마냥 깜짝 등장한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지단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진 것은 아무래도 2경기 출장정지 탓이 크다.

이 대회에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티에리 앙리와 유리 조르카에프(혹은 뒤가리)를 전방에 세워 상대 진영을 헤집었다. 이 때 지단이 전진하면서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디디에 데샹이 전진해야 했는데, 그 뒤에 펼쳐진 공간은 마르셀 드사이와 로랑 블랑,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미친듯한 운동량을 보여준 릴리앙 튀랑이 성공적으로 메웠다. 이 때의 레 블뢰는 지단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 급이었다.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만 해도 훌륭한 플레이로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 지단이었지만, 사우디와의 조별 2차전에서 상대 선수를 밟아 버리는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19] 이로 인해 지단은 2경기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으며, 결국 16강전까지 경기에 불참하였다.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 복귀를 하였으나, 이 경기 자체가 0:0으로 무승부로 비긴 상태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던 경기였기에 딱히 돋보이지는 않았고,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튀랑의 인생 골 2개[20], 가 더욱 강렬하였다.

결국 레 블뢰는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였지만, 지단이 1994년 미국 월드컵의 로베르토 바조처럼 신들린 활약으로 조국을 결승으로 이끌었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아쉬운 활약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승전까지의 지단의 활약을 평가하자면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닌 정도의 준수한 활약이었다. 물론 지단은 지단이었지만 그에게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당시에만 해도 대회 MVP를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 투표를 했기 때문에 대회 MVP는 예상대로 호나우두였고, 2위는 대회 골든 슈 수상자인 다보르 슈케르가, 3위는 튀랑이 차지하였다.[21] 그리고 결승전 직전 도박사들의 예측은 브라질의 우승이 6:4 정도로 우세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호나우두 발작 사건으로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월드컵 결승전이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단은 코너킥 두 번을 모두 헤더로 골대 안으로 꽂아 넣으며, 레 블뢰의 승리를 이끌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호나우두는, 경기 내내 제대로 화면에 잡힌 장면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호나우두는 고개를 숙였고, 지단은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세계는 마에스트로의 충격적인 등장에 열광했다. 그렇게 지네딘 지단은 조국에서 열린 첫 월드컵에서, 레 블뢰 역사상 첫 번째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 당연히 발롱 드 오로는 덤이었다.

2.3.3. 유로 2000



지네딘 지단 이외에도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가 기량을 만개한 상태였던 때라, 안 그래도 사기 캐릭터급으로 강했던 레 블뢰의 능력이 정점을 찍었다. 8강 스페인전에서 불꽃 프리킥으로 선취 득점을 하며 프랑스를 4강으로 이끌었고, 4강에서 루이스 피구가 이끄는 포르투갈과의 혈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PK 골든 골을 성공시킨다. PK가 선언되었을 때 루이스 피구의 반응도 걸작인 것이, 처음에는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하다가 결국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지단이 PK를 시도하기도 전에 유니폼 상의를 미리 벗어젖히고 스스로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물론, 지단이 실축을 한다면 경기는 다시 속개되는 상황이었으나 피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는 지단의 강력한 킥력과 PK를 절대로 실축하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한 피구의 강한 확신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4강전에서 피구가 보여준 경기력은 훌륭했지만 지단이 보여준 경기력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엄청났다.[22] 결승전에서는 전체적으로 무난한 반면에 프란체스코 토티가 엄청난 활약을 하였지만 결국 승리자는 프랑스였다. 지단은 대회 MVP를 차지했다.

2.3.4.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직전에 열린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김남일과의 충돌로 무리한 출전으로 허벅지 부상을 당해 모 병원의 광고모델 일을 하면서 한일 월드컵을 못 뛰게 되자, 프랑스는 세네갈 쇼크를 맞고 광탈했다. 마지막 덴마크와의 경기에서는 부상당한 지단을 불러내서 뛰게 하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2-0으로 패배하여 결국 짐을 싸게 된다.

2.3.5. 유로 2004


전설의 잉글랜드 3분 관광

세네갈 쇼크 이후에 지단의 커리어도 슬슬 정점에서 내려간 듯 싶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꽤나 오래전 부터 하였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프랑스는 강팀이었고, 역시나 강력한 우승후보로 뽑혔다. 지단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한 경기 중 하나인 잉글랜드 전도 바로 이 경기. 하지만 지단의 영향력은 조별예선 까지 빛났고, 8강에서, 4명의 수비형 볼란치를 쓰던 그리스에게 일격을 맞고, 결국 초라하게 은퇴하게 된다. 한 시대를 발 아래 둔 마에스트로의 국가 대표 은퇴는 이렇게 씁쓸하게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2.3.6. 2006년 독일 월드컵

그의 국가 대표 마지막 대회이자 현역으로 참가한 마지막 대회였던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모습[23]

항목이 내려갈수록 머리숱이 줄어든다그의 공식적인 은퇴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였는데, 유럽예선에서 빌빌대던 고국을 위해 국가 대표 복귀를 선언하고 나서 레 블뢰가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합류하는데 일조한다. 그 이후,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24] 이에 본인도 열받았는지 16강부터 그야말로 각성하기 시작전설의 시작, 당시 최고의 상승세를 그리던 스페인을 말 그대로 개발살을 내버렸다. 라울 곤살레스는 지단의 월드컵 은퇴 경기를 치르게 해 주겠다고 하더니 결국 자기가 그 꼴이 되었다.(...) 그리고 지단은 "나의 은퇴 무대는 월드컵 결승전이다."라는 초절정 간지나는 선언을 하였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스페인과의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지단이 대놓고 스페인을 비꼬면서, "이번이 내 마지막 경기가 될 거라고 했던 스페인에게, 이 경기가 마지막이 되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오오 지단 오오

사실 스페인전은 지단도 뛰어났지만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더 빛난 경기였다면, 진정으로 그가 빛난 경기는 브라질과의 8강전이었다. 아니, 이 경기는 빛난다는 말로도 부족한 겅기였다. 당시의 브라질은 판타스틱 4 또는 환상의 4먹튀4중주[25]라고 불렸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를 보유하고 있었고, 모든 전문가들이 그리고 펠레까지 브라질을 우승 후보 1순위로 뽑았으며, 역대 최고의 브라질 국가 대표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단은 도저히 은퇴를 앞둔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26] 판타스틱 4를 비롯한 브라질 국가 대표를 완전히 떡실신시켜 버렸다. 점수는 1대 0이었지만, 역대 최고라고까지 불렸던 브라질이 경기력으로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결승골은 지단의 어시스트에 의한 티에리 앙리의 골. 여담으로 그렇게 국대에서 안맞는 조합이라는 소리를 들은 둘은 결국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했던 은퇴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합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단 역시 직접 득점할 뻔한 아쉬운 장면을 몇 번 만들었다.

전 세계의 보도 매체들이 지단의 전성기 시절의 볼 터치가 살아났다며 그야말로 대서특필.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며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4강에서는 28년만에 16강에 진출한 뒤 4강까지 올라온 포르투갈과 만났는데, 한때 최고의 라이벌로 불렸던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 결과는 지단의 PK 결승골에 의한 프랑스의 승리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만나게 되는데...

2.3.6.1. 지단 박치기 사건
지단은 전반전에 파넨카 킥으로 PK 선제골을 넣고 결정적인 헤더가 부폰의 선방에 막히는 등 큰 활약을 하였으나 경기는 이탈리아의 센터 백 마르코 마테라치의 동점 헤더로 연장전으로 가게 된다. 결국 연장전이 진행되고, 얼마 안 지나 갑자기 뜬금없이 지단이 마테라치에게 머리로 박치기를 시전했고, 그 즉시 심판은 레드 카드를 꺼내 지단에게 퇴장을 명령한다. 이른바 지단 박치기, 지단타의 탄생이었고,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되었다.[27] 그리고 8년 후 브라질 월드컵에서 어느 멘탈갑이 박치기를 시전하자 재조명된다.

Zidane_Headbutt.jpg
[JPG image (Unknown)]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동점 골의 주인공인 마르코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모욕을 했고 지단은 그대로 박치기로 응수를 한 것. 정확히 문제가 되는 내용인 즉슨, 마테라치가 지단의 옷을 자꾸 잡아당기자 지단이 "그렇게 내 유니폼이 가지고 싶으면 경기 끝나고 주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테라치가 "유니폼보단 니 창녀 누이가 낫겠다(I would prefer your whore of a sister)."라는 모욕적인 말을 했고, 순간 빡쳐서 박치기를 했다고 한다. 박치기밖에 안 한 게 신기하다

지구상 최고의 선수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은퇴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연장전이 끝나고, 다비드 트레제게의 승부차기 실축지단을 위한 프렌드 실드으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지막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단의 공식적인 은퇴 경기는 월드컵 결승전이었고, 그 경기에서도 골을 넣고, 또 퇴장까지 당하며 가린샤 클럽에 가입한 것을 보면 그야말로 전설적인 선수의 전설적인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조국의 2번째 월드컵 우승은 아쉽게 놓쳤지만, 월드컵 MVP(골든 볼)는 지단이 차지했다.

이 덕에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 전세계의 언론이 "지단, 왜 그랬나?"라는 식의 보도를 하게 되었고,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은 그대로 묻히게 되었다(...). 이탈리아 안습 오죽하면, 신문의 1면이 이탈리아가 우승 트로피를 드는 사진이 아니라, 지단이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시전하는 사진이었을까??

지단은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게 된 이유를 언론을 통해 해명하였고, 마테라치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결국 자신이 지단의 누이를 모욕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렇게 마테라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죽도록 까였다.

이 박치기 장면은 프랑스 파리에 동상으로 건립되었고, 마테라치는 이 동상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지단보다 마테라치가 나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해외에서는 지단이 순간적으로 흥분하는 성향이 원래부터 있었으며 이를 이탈리아가 영리하게 이용하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0년 유벤투스 FCUEFA 챔피언스 리그 1차 조별리그에서 충격적으로 탈락한 당시 함부르크 SV와의 경기에서 박치기로 퇴장당한 전례가 재조명되었다.

어쨌든, 지단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팀을 주장으로서 이끈 점, 무엇보다 영원한 우승후보 1순위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을 모조리 제압하며 월드컵 결승까지 진출시킨 활약을 인정받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받지 못한 대회 MVP를 수상하게 된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화려한 은퇴라고 할 수 있겠다.

2.3.7. 지단 이후 프랑스 대표팀

지단이 은퇴한 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지단 없는 프랑스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도메네크 감독의 막장 지도력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면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홈 팀 남아공에게 돌림빵(...)당한 건 둘째 치고 4년 걸린 레몽 도메네크 선수빨 증명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도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다행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꿀 조에 편성된 덕인지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조별 리그 탈락은 면했다.

다른 국가들 못지 않은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단의 존재 유무에 따라서 경기력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지단의 존재감이 프랑스에서 얼마나 큰 무게감을 지녔었는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2012년 대회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유로컵의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 미셸 플라티니가 뛰었던 경기에서만 승리가 있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

프랑스의 영원한 아이콘이다 보니 지단의 은퇴 이후, 프랑스에서도 '제 2의 지네딘 지단' 열풍이 불어, 수많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스트 지네딘 지단이라 불리는 선수는 바이에른 뮌헨프랑크 리베리, 맨체스터 시티사미르 나스리, 뉴캐슬 유나이티드아템 벤 아르파, 올랭피크 리옹요앙 구르퀴프 등 여럿 있었지만, 위의 저 명단에 있는 선수들은 아무도 전성기 시절의 지네딘 지단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되지 않는다.

2.4. 은퇴 이후의 행보

은퇴 이후 호르헤 발다노의 후임으로 지네딘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의 사무총장이 된다. 결과적으로 지단이 주제 무리뉴보다 9살이나 연하인데도 무리뉴의 상급자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지단이 프랑스 국가 대표 팀과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통하는 데다 무리뉴와의 개인적 친분도 있어 지단에게 그런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단은 선수에서 은퇴하자마자 감독을 건너뛰고 높으신 분들로 직행한 것이 되었다.

2014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석 코치를 맡게 되었다. 아들인 엔조 지단과 테오 지단 모두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소속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엔조 지단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이중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스페인 국적까지 갖고 있고, 둘째 아들은 스페인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마저 없다. 중요한 건 둘 다 최근까지 프랑스어를 못했다고.

그리고 2013/2014 시즌 안 선생님 카를로 안첼로티와 함께 라 데시마를 일궈냈다. 인자함의 대명사인 안첼로티와 마에스트로라 불렸던 그의 조합이 꽤나 시너지가 나오는 듯하다. 2014년 6월 25일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은퇴가 06년인데 선배들인 로랑 블랑, 디디에 데샹 등이 벌써 국대 감독까지 역임한 데다 실적까지 냈고, 또래인 마켈렐레나 후배인 윌리 사뇰이 은퇴는 지단보다 늦었음에도 벌써 1군 팀 감독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더디다고 할 수 있다.

기대를 모으며 시작했던 카스티야 CF감독직이지만 10월 7일 현재 7경기 2승 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지도자 라이센스를 시즌 중반에 취득하였는데 초반 4경기를 라이센스 없이 수행했다는 것이 밝혀져 감독 협회로부터 고발을 당했으며 고발이 받아들여질 경우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활동이 정지될 위기에 쳐해져 지단의 지도자 커리어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현재 그는 징계가 풀려 카스티야 감독직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 카스티야를 1위로 올려놓았다.

지단의 감독적 능력으로는 선수시절 카리스마가 뛰어났으며 현역시절 역대최고의 선수중 1명으로 꼽혔던 선수였던만큼 선수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고있어 선수단 장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특히 선수보는 눈이 탁월하여 레알마드리드 영입정책에 개입할 정도이기에 지도자로서 행보가 기대된다. [28] 하지만 아직 감독직을 수행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전술적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아서 이후 1부 리그팀에 감독을 맡게되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3. 평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축구 역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88년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2006년 은퇴를 할 때까지 FIFA 월드컵, 유럽 선수권 대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인터컨티넨탈 컵, 프리메라 리가, 세리에 A 등 최고 수준의 축구 대회들에서 대부분 우승을 하였다. 그가 우승을 하지 못한 대회는 올림픽 축구 종목 하나뿐이다.

코라손 클래식 매치 2011(The Corazon Classic Match 2011) 레알 마드리드 vs 바이에른 당시 모습

프랑스 일간지 <르 퀴프>의 경우,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미셸 플라티니 등이 아닌 바로 지네딘 지단'이란 평가를 내놓았는데, 그 대표적인 이유로는 완벽에 가까웠던 테크닉과 해결사적인 기질 이외에도 사상 초유의 그랜드 슬램 기록이 언급됐다. FIFA 월드컵 우승, FIFA 월드컵 MVP(골든 볼),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유럽 선수권 대회 MVP,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MVP,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차지한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선수이다.[29][30]

또한, 2004년에는 BBC에서 실시한 유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와 UEFA에서 실시한 지난 유럽 50년간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도 역시 프란츠 베켄바워요한 크루이프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으며[31], 2007년 프랑스 풋볼 지에서 실시한 지난 60년간 세계 베스트 11 투표에서도 3위를 압도적인 표차로 밀어내며 디에고 마라도나에 이은 역대 미드필더 2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다만, 이것은 은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버프를 받은 측면도 있었다.

4. 지네딘 지단에 대한 말.말.말


"지단은 상대 수비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명까지 돌파했다. 우아함 그 자체였다. 발이 공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 장 바루드, 지단을 발굴한 스카우트

"감히 대적할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같다.그의 시야, 기술, 패스워크, 전술실행력 등 모든 면에서 특급 기량을 자랑한 그는 더구나 부드러웠다." - 미하엘 발락 -

"그의 몸짓과 플레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정말 배우고 싶다." - 호나우지뉴

"모두가 지단을 마주치게 되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지단은 아직도 향상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그를 상대해야 하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 로이킨[32]

"지단은 마스터다." - 펠레

"지단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 그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의 동료 10명의 실력이 늘어난다. 축구가 간단해진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의 컨디션이 최상이라면 그가 속한 팀은 최고로 완벽해진다." - 디디에 데샹

"지단의 최대 장점은 볼의 소유시간을 높이며 경기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상대팀에게든 효과적이며 지단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입니다. 동료 코스타에겐 미안하지만 그와 베론,토티,스콜스등 모든 공격형 미드필더를 통틀어서 지단과 대적할 선수는 없습니다." - 루이스 피구

"최근 20년간 최고의 선수? 지단일 수밖에 없다. 그는 모든 걸 갖췄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아서 하는 선수다." - 마르셀로 리피

"지단을 얻을 수 있다면 선수 다섯 명도 포기하겠다" - 체사레 말디니[33]

"압박을 견디며 볼을 지키는 기술적인 측면에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에 있는 선수이다." - 요한 크루이프

"기술적으로 지단이 축구의 왕이라고 생각한다. 컨트롤과 패스 모두 따라올 선수가 없다." - 미셸 플라티니

"지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3년이나 함께 훈련한 것은 꿈만 같았다. 내게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 데이비드 베컴[34]

"지단을 보면 저런 선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모두 훌륭한 선수였다. 그런데 지단은 축구 자체를 농락하는 것 같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공간을 만들고, 넓은 시야로 패스를 뿌린다." - 케빈 키건[35]

"나는 경기중에 어디로 패스해야될지 모를때 지단에게 패스한다." - 비센테 리자라수

"지단은 1초 생각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특별하고 독보적인 선수다. 없엇던 공간도 만들어내는데, 이는 정말 최고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자신에게 패스가 어떻게 오든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창의력과 개인기 모두 굉장하다." - 에드가 다비즈

"지단은 공을 지배한다. 걸어다니기만 해도 굉장하다. 마치 양 발에 비단 신발을 신은 듯하다. 경기장에 찾아가서 볼 가치가 있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스트라이커로서 그의 패스를 받는 것만큼 기쁜일이 있을까?" - 티에리 앙리

"지단은 독보적이다. 공이 그와 함께 움직인다. 축구 선수가 아니라 댄서에 가깝다." - 프란츠 베켄바워

"그는 무용수처럼 우아했고 심지어는 신발의 밑창까지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매우 쉬웠다. 그는 내가 따라했다면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그런 움직임들을 만들어냈다." - 프랑코 바레시

"그는 상대하는 입장에서도 감상하게 만드는 선수 중 하나다. 왜냐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피치 위에서 틈을 찾아내려고 한다. 볼을 컨트롤하거나 혹은 패스를 하거나. 그는 그걸 정말 쉽게 해냈다. 그와 함께 하는 팀이라면, 창조성은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 이안 라이트

"마라도나는 불세출의 영웅이나 지단은 완벽한 축구의 화신이다." - 구티

"그저 바라만봐도 빛이나는 축구선수이다." - 폴 스콜스

"지단은 그의 시야, 테크닉 그리고 강력한 슛으로 마술을 부렸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다음 동작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했다." - 안드리 세브첸코

"지단은 축구계의 천재이자 상징 그 자체이며 열정과 확신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프랑스가 그를 사랑한 것이다." -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

"지단의 이적료로 7300만 유로가 들었는데 이는 싼 것이었다." -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

"레알의 통산 아홉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안긴 지단의 골은 천재적이고 예술적이었다. 그의 플레이를 종종 머리 속에서 재현해본다. 우아함 그 자체였던 레알의 영웅이다." - 플로렌티노 페레스

"사실 지단을 늘 존경했다. 옷장에 그의 유니폼도 한 벌 있다. 유벤투스와 페루자의 경기가 끝난 뒤 교환했던 것이다." - 마르코 마테라치 (마테라치님???)

"당신이 인생에서 무슨 일을 하든 즐긴다면 머리가 벗겨질 일이 없다." - 주제 무리뉴[36]

5. 플레이 스타일

거친 압박이 핵심 코드로 자리잡고 빠른 공수 전개, 수비형 미드필더의 대두,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 다양화가 이루어진 현대 축구에서 아르헨티나의 리켈메와 함께 사실상 마지막 플레이메이커였다.[37] 그러나 이후 또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메이커의 대두에 있어서의 시초로 여기는 시각도 있기는 있다.

플레이 스타일은 빼어난 피지컬과 개인기로 공을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순간적인 패스 능력과 골 결정력까지 갖고 있고, 특유의 마르세유 턴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플레이도 많이 펼쳤다. 굳이 개인기의 비결을 찾자면, 발의 모든 부분을 적시에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능력. 오른발 왼발은 물론이고 발등, 뒤꿈치, 복사뼈(!), 발목(?)까지 모든 부분을 활용한다. 피지컬이 뛰어나기 때문에 몸싸움에서 밀리는 법이 거의 없고, 그렇게 만든 작은 공간을 매우 잘 활용했다. 오히려 수비수를 자기 쪽으로 끌어온 다음 그 빈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즐겨 하기도. 골 결정력도 제법이고, 떡대가 좋아서 어쩌다 한 번씩은 제공권을 장악하며 헤더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프리킥도 국대에선 자신이 전부 맡아 찰 정도로 잘 찼지만,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데이비드 베컴, 루이스 피구,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있어서 돌아가면서 찼다.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답게 동시대의 다른 플레이메이커에 비해서 경기 템포 조율에 능란했다. 주도권을 잡아야 할 때는 천천히, 역습이 필요할 때는 빠르게 패스방향을 선정하는 데 달인. 게다가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자신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다른 팀원의 위치를 재조정시키는 것 역시 매우 탁월하다. 특히 선수들 개개인의 공간 이해도가 높을 뿐더러 자유로운 움직임을 중시하기까지 한[38]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단의 이 능력은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에서 지단의 움직임에 따른 각 선수들의 포지션 체인지, 윙백들의 오버래핑 등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축구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정도.


지네딘 지단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남다른 스타 본능과 투쟁심을 들 수 있다. 이 스타본능이란 말이 스타의식이 강하다거나 언론에의 노출을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라[39] 정말 중요한 순간, "이럴 때 한 방 해주는 것이 영웅이다."싶은 순간에 한 방 해주는 사람이 지네딘 지단인 경우가 정말 많았다. 유로 2004 잉글랜드전,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인저리 타임에 2골을 몰아 넣어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든지... 그것도 국민감정이 드럽게 안 좋은 편인 잉글랜드였으니....

또한, 그는 페널티 킥을 거의 실축하지는 않았지만, 페널티 킥을 실축하고 나서도 아무도 그 실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한 플레이를 펼쳤다. 전술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 낸 결승골뿐만 아니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 등 그의 커리어에 남은 중요한 시합들을 보면 그는 항상 그 경기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이것이 그와 동시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루이스 피구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의 개인적인 실력은 박빙이었지만, 국가대표 등에서 지네딘 지단은 루이스 피구와의 맞대결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고 그 결과, 그는 당대 넘버 원의 이미지를, 피구는 그보다 살짝 떨어지는 넘버 원의 라이벌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쩜오 다행히 호나우두는 다 졌지만, 쩜오는 안 되었다

단, 간혹 피지컬형 플레이어들에게 그런 경우가 있듯이 잔부상이 좀 있었고 이에 따른 컨디션 난조도 있었으며 기복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편이었다. 2006년 은퇴가 지금 생각하면 나이도 그렇고 아쉬워지지만,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상기해보자.

사실, 여기저기서 루이스 피구, 호나우두를 지단의 라이벌이라고 평가를 했었지만, 정작 본인이 유일하게 라이벌로 인정을 했던 선수는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이며, "내 라이벌은 오직 프란체스코 토티 밖에는 없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6. 여담

특유의 대머리 스타일로 유명한데, 집안의 유전인지 집안사람들 남자 전부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아버지나 형제들 사촌들이 다 모인 자리에선 정말 지단만 여러 명 앉아 있는 걸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네이트 웹툰의 익뚜는 이걸로 자주 지단을 놀려 먹는다. 더불어 웨인 루니도 비슷하게 놀려 먹는다. 그리고 거의 모든 남중, 남고에는 지단이라 불리는 선생님이 한 명씩 등장하게 되는데, 대개 그런 지단들은 축구계와 하등 연관이 없는 격투계의 거성 헤이하치와 그 명운을 함께하여 좌 지단 우 헤이하치 라인을 형성하곤 했다.

그래도, 머리가 까지기 전에는 상당히 미남 축에 드는 선수였다. 사실, 지금도 머리만 포토샵으로 씌우면 미중년인데, 그 놈의 대머리 때문에... 야구를 했어야 했는데 티에리 앙리는 무한도전 출연 당시 지단을 닮아보이려 올백 머리를 한 탈모 초기 박명수의 정수리가 아직 무성한 것을 보고 'Zizou(지단의 애칭)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박명수는 이 방송에서 앙리에게 지단 박치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5개 국어 정도를 한다고 직접 밝혔고, 실제로 성격도 좋은 편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파파라치에게 담배 피는 모습을 찍히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골초로 알려져 있다. 근데 흡연을 하면서도 월드 클래스급을 유지하는 걸 보면.... 물론, 그 외 많은 정상급 선수들 중에서도 흡연가가 많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축구 역사상 실력으로 1,2위를 다투는 레전드급의 선수였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경우에는 골초에다 심지어 마약까지 손댔었지만 결국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축구를 떠나서 농구마이클 조던도 시가 애호가로 유명. 결국 될 놈은 뭘 해도 된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당시의 일화로, 유벤투스와의 계약 만료 이후 여러 팀에서 제의가 왔지만, 스페인 사람인 부인을 걱정하여 마드리드에 왔다는 얘기가 있다. 결과는 대성공.

사실 가족들이 모두 축구를 잘하기로 소문났다. 지단의 아들 네 명 모두 레알 마드리드 유스 팀 소속이다. 그 중 한 명은 골키퍼로 뛰고 있다.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할 뻔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블랙번이 팀 셔우드라는 선수를 대신 영입하면서 취소됐다고. 블랙번 안습 훗날, 팀 셔우드는 토트넘 핫스퍼의 감독대행을 맡게 된다.

2002년 프랑스 대선 당시 백인우월주의자 장 마리 르펜이 선거에서 선전하여, 2차투표에 돌입하게 되자, 인터뷰에서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더 이상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라고 분노 어린 발언으로 르펜을 비난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지단은 프랑스 백인이 아니라 아랍계 백인이니 국가 대표 선수 자격이 없다'라며 그를 비난했던 인종차별주의자가 르펜. 르펜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결국 이 선거에서 결국 낙선을 했는데, 당시 지단이나 비백인 프랑스 축구 선수들 말고도 백인계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감독 및 축구협회 간부들도 르펜을 대놓고 씹었다.

유독 아디다스 제품을 고집하는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어린 날의 추억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아디다스 축구화를 가지고 싶었는데, 당시 아버지 수입으로는 축구화를 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는데, 생일날에 아버지가 그리도 갖고 싶어하던 아디다스 운동화를 사 오셨다! 다들 놀라워하자, 아버지가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사 왔다면서 영수증까지 보여주었다고. 이런 추억으로 아버지가 선물해 준 그 운동화를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운동화를 버릴 수 없다고 인터뷰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아디다스 제품을 고집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디다스에선 거의 평생동안 무상으로 스포츠 용품을 제공한다고 했다. 물론, 지단이 아디다스의 광고모델로도 활약하면서 수익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참고로 중국어로 계란지단으로 발음된다... 지네딘 계란 선수의 마르세유 룰렛! 그래도 루이스 피구보단 훨씬 나은 게, 피구(屁股, pìgu)는 중국어로 엉덩이란 뜻이다. 지못미 ~~계란의 패스를 받아서, 엉덩이 선수 골! 걱정할 필요 없는 게, 축구 선수 지단은 중국어로 "齐达内"(대륙)/"席丹"(타이완)으로 표기하고, Figo 선수는 "菲戈"(대륙, 타이완 둘 다)로 표기한다.

유독 지단은 브라질에게 정말 강했다.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두 번이나 만나서 두 번 모두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 두 경기 모두 MOM에 선정된 유일한 선수다. 호나우두랑 팀에선 동지인데 대표팀에선 원수

2002년 한일 월드컵부산에서 경기를 했는데, 이때 프랑스 대표 팀이 부산 북구 화명동의 체육 공원에서 연습을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공원에는 "지네딘 지단이 연습하고 간 공원"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무슨 사적지냐?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때, 2% 부족할때 음료수가 맛있었는지 내내 그것만 마셨다고 한다.


부산교통공사와 건강관리 협회가 만든 정기검진 권장광고에 나온 적이 있다. 실은 지단이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에서 조별 리그를 치를 때, 한 병원에서 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직원들이 지단인 걸 알고, 병원 직원들의 요청에 같이 찍게 된 것이다.

이름 때문인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중학생들이 기술·가정 교과서에 나온 '지단'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그 축구선수 지단이 아니냐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7. 대중매체의 지단

지단: 21세기의 초상이라는 지단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2005년 4월 23일 레알 마드리드와 비야레알의 경기를 17개의 카메라로 지단의 움직임만 찍은 영화다. 이 영화의 촬영 감독은 영화 세븐의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쥐이다.

김성모의 만화 걸푸에서는 아내와 자식이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축구를 권법으로 승화시켜서 살인 축구를 개발, 복수에 성공했으나 감옥에 갇혔고 그대로 세상이 멸망해서 세기말의 권법가가 되었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등장했다(...). 분노로 이성을 잃으면 탈모에서 발모로 진행되는 듯 축구 권법 지단

지네딘 지단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가 존재한다. 가사가 죄다 축구선수에, 지단을 찬양하는 묘한 리듬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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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랍식 이름으로는 زين الدين زيدان(자인 앗-딘 지단)
  • [2] 레알 마드리드에서 왼쪽 윙어로 많이 배치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중앙을 넘나드는 사실상의 프리 롤이었다.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그러하며, 우연의 일치인지 공격적인 브라질리언 레프트 백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도 흡사하다.
  • [3] 수석 코치 겸 스포팅 디렉터.
  • [4] 지휘자. 골 넣는 공격수보단 미드필더로서 축구판을 조율했던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다.
  • [5] 각종 설문조사에도 역대 최고 미드필더를 꼽는다면 다섯 손가락 내에는 꼭 든다. 주로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다음으로 지단이 꼽히고 심지어 크루이프를 제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설문조사가 꼭 진실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므로, 곧이곧대로 지단은 역대 최고 미드필더 베스트 5 안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여기기보다는 90년대와 0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지단의 스타성이나 대중성을 상징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 [6] 둘이서 사이좋게 월드컵 우승 1번(호나우두의 94년 월드컵 우승 커리어는 제외), 준우승 1번, 월드컵 골든볼 1번 (둘 다 준우승할 때 받은 골든볼이었다!), 발롱도르 -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통틀어 9번의 포디움, 피파 올해의 선수상 수상 3번을 경험했다. 이 둘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한 시대의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다기 보다는 그냥 둘이서 당대의 축구판을 양분했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 [7] 하지만 호나우두의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지단의 프랑스만 만나면 작아졌다. 반대로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는 가히 브라질 잡는 기계. 여담으로 라울의 스페인과 피구의 포르투갈도 메이저 대회에서 지단의 프랑스만 만나면 작아졌다.
  • [8] 요한 크루이프와 미헬스 감독이 토탈사커로 축구계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아리고 사키감독이 압박축구를 고안하며 축구 전술의 기반을 다졌다면 지단은 남미의 개인기 위주의 축구와 유럽의 힘과 조직력 위주의 축구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축구스타일을 창조해내면서 98월드컵과 00유로에서 프랑스를 이끌고 우승을 달성하였다.
  • [9] 월드컵&챔스&유로 우승, 발롱도르&피파 올해의 선수상, 챔스&유로 MVP, 골든볼.
  • [10] 마라도나, 크루이프, 플라티니와 함께 역대 플레이메이커 1위 자리를 놓고 다툰다.
  • [11] 이태리 시절 시즌 중에 종종 일반인들과 축구를 한 이유를 묻자.
  • [12] 그러나 1996-1997 시즌에는 마티아스 잠머가 이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돌풍에 휘말려 준우승에 그쳤고 1997-1998 시즌 역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문다. 돌이켜보면 지네딘 지단도 은근히 준우승이 많았다.
  • [13] 이 과정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지단에게 '냅킨'으로 영입 제의를 한 비화가 상당히 유명하다. 2000년 FIFA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장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냅킨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생각이 있는가'라는 말을 써서 지단에게 전달했고 지단이 'Yes'를 적어 화답하면서 영입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날 수상대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지단이었다.
  • [14] 골이 터진 순간에 나온 해설자의 멘트.
  • [15] 지단이 슛을 작렬하는 순간 바로 뒤에 있었다...골에 드라마틱함을 더하기 위한 연출.
  • [16] 펠레가 등 번호 10번을 '에이스의 상징'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듯이 5번을 '수비 라인의 리더'로서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바로 프란츠 베켄바워다. 그는 선수 시절 4, 5, 6번 등을 달고 뛰었지만 전성기의 등 번호는 5번이다. 대표적인 5번 선수로는 푸욜이나 훔멜스, 과거의 칸나바로 등이 있다.
  • [17] 각국마다 다르기는 한데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 5번을 미드필드의 청소부 역할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본다. 김남일? 매우 중요한 포지션으로 10번은 관중을 부르지만 5번은 승리를 부른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지단 이전의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5번 선수는 같은 프랑스의 전설인 '나폴레옹' 이몽 코파. 아마 지단도 10번이나 7번을 달지 못할 바에는 5번을 달기로 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 [18] 결국 프랑스를 꺾은 불가리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여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뤄냈다.
  • [19] 의외로 사람들이 지단이 성깔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 [20] 항목에 설명이 있지만 간단히 써보면, 튀랑의 국대 커리어가 142경기 2골인데 그 2골을 이 경기에서 넣었다. 그것도 동점골과 역전골
  • [21] 당시 대회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튀랑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튀랑의 경우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 동점 골과 역전 골을 뽑아 인생 경기를 펼친 것이 크게 작용했다.
  • [22] 특히 후반에 보여준 그의 볼컨트롤은 예술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 [23] 2005/06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가 대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 참여했다.
  • [24] 당시 같은 조였던 한국 기레기 언론에선 지단을 늙은 수탉이라고 대놓고 조롱할 정도였다. 해외 평가도 별반 다르지않아서 본인도 조별예선 당시 부진한 경기력에 빡쳤는지 경기장 물건을 발로 차서 찌그러뜨렸다는 기사가 뜰 정도였다.
  • [25] 사실 브라질에게 환상의 4중주니머니 언론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이는 네임밸류만 지나치게 믿고 엮은 조합일 뿐, 저 4명을 쓰기 위해 무리하게 진영을 짠 결과 효율성 면에선 답이 없다는 우려가 결국 증명되었다. 프랑스 보고 늙은 수탉이라고 비아냥대다 결승 오르니 찬양하는 언론 수준
  • [26] 카카의 눈앞에서 공놀이를 하며 그를 데꿀멍시키고 카푸를 발재간으로 농락하였으며 카푸와 질베르투 실바의 연속태클을 가볍게 돌파한 뒤 킬패스를 찔러넣고 질베르투 실바를 상대로 마르세유 룰렛을 하는 등... 이게 정녕 은퇴직전의 선수플레이가 맞는가?
  • [27] 한 축구 팬은 그를 위해 지단 박치기 플래시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 [28] 그가 개입하여 성공한 영입 사례로는 카림 벤제마,라파엘 바란,이스코,가레스 베일등이 있으며 이 4명의 선수 모두 레알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반대로 영입 실패 사례로는 프랑크 리베리가 있다. 리베리는 오랫동안 레알의 구애를 받았고 본인도 레알행을 원했으나 뮌헨에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협상이 수 차례 결렬되었다.
  • [29] FIFA 올해의 선수상의 경우, 3회 수상으로 호나우두와 함께 공동 최다 수상.
  • [30] 다만 디 스테파노, 크루이프, 베켄바워, 플라티니 같은 선수들이 뛰던 시절에는 FIFA 올해의 선수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 [31]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는데 당시 지단이 현역이였다는 점에서 버프를 받았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10위 이내에 현역선수는 지단과 말디니뿐이였기 때문에 현역버프를 받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하는 주장도 있고 이 당시 투표가 지단이 2006년도 은퇴직전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 이전에 시행된 투표인걸 감안한다면 폄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32] 이는 2002-2003 시즌 8강 1차전에서 지단을 상대한 후의 발언인데 그 자존심 강한 로이킨이 이렇게 발언할 정도로 당시 지단의 플레이는 엄청났다.
  • [33] 98월드컵 8강전 프랑스와 맞대결을 앞두고 한 발언인데 당시 맞대결에서 체사레 말디니는 지단을 막기 위해 당대 최고의 레지스타였던 알베르티니를 벤치에 앉혀두고 후반에 기용하였다. 체사레 말디니의 판단 덕에 지단은 이탈리아 수비의 집중마크를 받아 큰 활약을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단이 마크를 받는 동안 조르카예프가 자유로워져서 조르카예프가 이탈리아를 상대로 좋은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 [34] 여담이지만 베컴은 엄청난 지단빠이다. 현재로 보면 호날두와 베일관계랑 비슷해다고나 할까?
  • [35] 케빈 키건이 크루이프와 마라도나랑 비슷한 시기에 활약하던 리버풀의 전설임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흠좀무한 이야기이다.
  • [36] 지네딘 지단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펩 과르디올라를 두고 한 농담이다.
  • [37] 물론 아르헨티나의 파스토레가 이런 스타일의 축구 선수이긴 하지만... 이들 이후로 맥이 끊겼다가 새로운 역할과 함께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전통적 플레이 메이커는 사실상 여기서 끝. 리켈메와는 달리 지단은 좀 변칙적 스타일의 플레이 메이커이긴 했다.
  • [38] 애초에 지단 본인부터가 프리 롤이었다. 스트라이커로 데뷔해서 공격형 미드필더, 윙포워드같은 위치도 자유롭게 소화한다. 그렇다고 수비력이 부족한 편인가? 라고 물으면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을 할 수도 있다.
  • [39] 정반대로, 지단은 다소 소심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지단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애거시의 팬이었다. 지단 정도의 선수면 그냥 사인을 해 달라고 하면 바로 해주겠지만, 그는 애거시 곁에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수줍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