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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last modified: 2015-04-13 05:12:14 Contributors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신현준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그와 같은 골잡이를 프랑스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는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았습니다." - 장 피에르 파팽, 즐라탄에 대해 언급하며.



Dare to Zlatan[1]
파리 생제르맹 FC No. 10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ć)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신체조건 195cm, 95kg
국적 스웨덴(Sweden)
출신지 말뫼
포지션 포워드(Forward)
프로입단 1999년, 말뫼 FF
소속팀 말뫼 FF(스웨덴, 1999~2001)
AFC 아약스(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2001~2004)
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 2004~200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탈리아 세리에 A, 2006~2009)
FC 바르셀로나(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2009~2010)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010~2012)
파리 생제르맹 FC (프랑스 리그앙, 2012~)
국가대표 102경기 53골[2]

2013 FIFPro World XI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FW
리오넬 메시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사비 에르난데스
MF
프랑크 리베리
DF
필립 람
DF
세르히오 라모스
DF
치아구 시우바
DF
다니에우 아우베스
GK
마누엘 노이어


Contents

1. 소개
2. 경력
2.1. 세리에 입성 이전 / 말뫼 FF~AFC 아약스
2.2. 유벤투스
2.3. 인테르
2.4. FC 바르셀로나
2.5. AC 밀란
2.6. 파리 생제르맹
3.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5. 게임
6. 기타
6.1. 겜덕후??
7. 어록
8. 기록
8.1. 득점 기록
8.2. 개인 수상
8.3. 대회 실적


1. 소개

챔스를 제외한우승 청부사웃음 전도사

실력과 자신감, 소신을 모두 겸비한 스웨덴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스웨덴 최고의 골잡이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길을 걷는 축구계의 이단아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


아는 스웨덴 축구 선수 세 명 대봐. 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리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유고슬라비아[3] 부모에게서 난 스웨덴의 축구 선수로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센터 포워드(스트라이커). 국내에서는 풋볼 매니저, 닝 일레븐, 피파 온라인 3등의 게임에서 사기적인 위력으로 호즐메란 단어가 나올 정도로 피온을 하는 유저들에게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AC 밀란시절까지만 해도 즐라탄은 한국에서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던 선수이기도 했다. 당장 예전 문서를 보면 고작 한 시즌만 뛰었던 바르셀로나 시절이 중점적으로 서술될 정도[4][5].

국내에서만 박한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즐라탄을 높게 처줄 건 높게 쳐주지만 메날두와 함께 묶을 스트라이커라는 언급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즐라탄 커리어 내내 이어진 챔스에서의 불운 역시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챔스에서의 부진을 챔피언스 리그라서 부진한 게 아니라 그냥 체력 문제 때문에 챔스 조별 예선을 통과해서 본선에서 뛰는 시기쯤 되면 리그도 챔스도 허덕이다 챔스를 탈락하고 나면 다시 체력을 붙여서 활약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꾸준한 활약을 보이고 해외 팬들에게도 인상깊은 활약을 펼치며 리그앙을 씹어 먹는 노력 끝에, 2013년 베스트 일레븐의 공격수 부문에 메시, 호날두와 함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기존에 메시, 호날두와 함께 올랐던 선수들이 팔카오, 루니 등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즐라탄에 대한 평가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애초에 지나온 클럽팀마다 리그 우승을 해왔기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는 여타 다른 유명선수들에게 딸린다고 할 수 없다. 바셀에서의 시기를 제외하면 모두 주축이 본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비교가 메친놈 호친놈들이니까 문제다.

별명으로는 이브라카다브라. 한국에선 즐동궈(...), 오발탄, 세랴탄, 세랴 킹, 유목 농민[6], 리그왕[7], 신현준, 즐라탄 종아리 즐라탄탄 등이 있다.

소속 팀을 떠난 이후 가차없이 전 소속 팀 및 감독을 까대지만 유일하게 즐라탄의 마수를 피해간 구단은 AC 밀란뿐이다.[8]

2011년 새로운 자서전 <I AM ZLATAN>을 발간했는데, 펩 과르디올라와의 에피소드가 자세하게 적혀 있어 화제가 되는 중. 과르디올라의 폐쇄적인 사고방식과 비단 과르디올라뿐만이 아닌 모든 해프닝과 구설수에 대처하는 즐라탄의 정신 승리 및 자기 합리화 등을 알 수 있기에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책은 해외 축구선수의 자서전으로는 드물게도 2014년 9월 한국어판이 출판되었다. 한국어판 제목은 <나는 즐라탄이다>. [9]

2. 경력

2.1. 세리에 입성 이전 / 말뫼 FF~AFC 아약스


1999년 스웨덴말뫼 FF[10]에서 데뷔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던 말뫼를 1부 리그로 끌어올리는 활약을 통해 명문 클럽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발재간이 뛰어난데다 경기장 밖에서 할말 다 하는 그의 태도는 엄청난 스타성을 지녔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원더보이의 활약에 열광했고 단순히 이빨만 센게 아니라 경기력까지 좋았기에 많은 클럽들이 즐라탄의 영입을 타진한다.희대의 쇼타콘이 매의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아약스가 엄청난 금액을 배팅함으로 아약스에 입단하게 된다.

사실 즐라탄은 아스날의 9번 유니폼까지 받으며 거의 입단이 성사되는 분위기였다. 계약서에 사인만 남긴 상태에서 아르센 벵거를 처음 대면했는데, 아직 즐라탄의 플레이를 직접 보지 못한 벵거는 시간을 끌며 테스트를 하기를 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스날에 입단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즐라탄은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기에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축구화를 신고 테스트를 받겠다."라며 응수했다. 그러나 즐라탄과 함께 아스날에 방문한 말뫼 FF의 하세 보리 단장이 즐라탄을 만류했고, 즐라탄은 아스날이 나와 사인하고자 하는 생각이 별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입단을 그만 뒀다고 한다. 즐라탄은 사소한 문제로 틀어진 이적이어서 당시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결정은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잘한 결정이라고 회상했다. 사실 당시 아스날과 사인했으면 즐라탄의 커리어에 흠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 유망주가 기회를 많이 부여받는 최근의 아스날과는 달리, 당시 아스날은 01-02시즌 더블, 03-04시즌 무패우승을 기록하던 막강한 팀이었다. 공격진은 이미 즐라탄이 훈련장에서 보고 가슴이 설렜다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가 주전이었고 여기에 서브 자원으로 프랑스 국가대표 실뱅 윌토르, 나이지리아 역대 최고의 레전드 공격수 은완코 카누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당시엔 엄청난 유망주로 평가받던 잉글랜드의 프랜시스 제퍼스가 다섯번째 옵션으로 있었던 상황이기에 이 막강한 선수층을 뚫고 즐라탄이 기회를 받았을 확률은 매우 낮다.

즐라탄은 아약스를 선택해서 빅리그보다 한단계 낮은 레벨에서 이른나이에 주전 기회를 잡고 차근차근 경험과 실력을 닦을 수 있었고, 유벤투스, 인테르를 거치며 익힌 이탈리아에서의 훈련방식[11]은 즐라탄의 기량을 만개할 수 있도록 했기에 즐라탄 본인에겐 아스날의 입단을 거절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기사

스웨덴리그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아약스로 이적한 즐라탄은 마르코 판 바스턴의 번호인 9번 셔츠를 받으며 엄청난 기대를 불러모은다.그리고 영혼의 파트너 맥스웰과 만난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부담으로 작용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첫 시즌에는 리그에서 6골을 넣는데 그친다. 이후 로날드 쿠만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반 바스텐이 아약스 유소년 코치로 돌아오면서 즐라탄과 교분을 쌓으며 플레이에 많은 조언을 해준다. 쿠만의 신뢰 아래에서 즐라탄은 적응에 성공하며 21골을 득점했다. 다시 빅클럽의 관심이 쏟아지고 카펠로의 로마가 관심을 가졌는데, 카펠로와 세리에에 정통한 반 바스텐은 아직은 더 실력을 쌓아야 할 때라고 만류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도 연속으로 두 자리수 득점에 성공한다.

그러나 즐라탄은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약스의 선수관리 방식역시 불만이었던 상태였다. 아약스의 네덜란드 선수들은 아약스를 거쳐가는 구단쯤으로 여겼고, 외국선수들은 챔스 우승도 했던 명문팀에 들어와서 좋아하는 분위기라 팀 분위기가 이상했다고 한다. 이 문제에는 연봉관련 불만도 일조 했는데, 아약스 이적 당시 에이전트가 없던 즐라탄은 하세 보리 말뫼FF 단장의 말만 듣고 "좋은 조건이겠거니"하고 쿨하게 사인했다. 하지만 아약스 이적 이후 확인해보니 주전 선수 중에 주급이 가장 낮았다. 이 일로 즐라탄은 아버지처럼 따랐던 하세 보리를 극딜하고 지금까지 까고있는 중. 자서전에서도 한 챕터를 할당해서 디스했다. 또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나는데 2004년 여름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A매치에서 즐라탄은 아약스의 주장이었던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밟아 부상을 입히게 되고 즐라탄의 '나르시즘적인 태도'를 고깝게 여기던 네덜란드 언론에 의해 집중포화를 맞는다. 이에 쌓이고 쌓인 불만이 폭발한 즐라탄은 팀을 떠날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2.2. 유벤투스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한 유벤투스 시절[12]

지금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위상이 많이 내려간 상태이지만 세리에 A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였고 그 위상은 2000년대 중반 칼치오폴리가 터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즐라탄이 유벤투스로 이적할 당시 세리에 A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당시 유벤투스는 파트리크 비에이라, 파비오 칸나바로, 에메르손등의 기라성같은 스타들을 영입하고 감독으로 '우승청부사' 파비오 카펠로를 데려오며 세리에 A의 정복과 빅이어를 들어올리기 위한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미 유벤투스는 판타지스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다비드 트레제게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데리고 있었기에 언론에서는 서드정도로 여겼지만, 파비오 카펠로의 지도 아래 즐라탄은 포텐이 폭발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13][14] 말뫼 FF시절 부터 감독 그리고 코치들과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던 즐라탄이지만, 그 역시 Il seregente di ferro(잔혹한 교관) 파비오 카펠로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노회한 카펠로 역시 즐라탄의 성격을 컨트롤 할 줄 알았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며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아약스에서 뛰던 당시만 하더라도 즐라탄은 깡마른 체격이었지만, 유벤투스에서 체계적인 식단관리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20kg가까이 벌크업 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피지컬 괴물로 거듭난다. 또한 카펠로는 즐라탄을 골잡이로 만들기 위해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만 움직이게 훈련시켰고, 점차 자신의 피지컬을 쓸 줄 알게 되면서 결정력이 일취월장한다. 즐라탄은 당시를 회상하기를

"유벤투스에서는 연습경기에서도 날 죽일듯이 달려드는 릴리앙 튀랑파비오 칸나바로를 벗겨내야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을 벗겨내더라도 뒤에는 지안루이지 부폰이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전력으로 연습에 임했다."

라고 회상했다. 이러니 당연히 실력이 늘 수 밖에 없었다. 즐라탄은 첫 시즌 리그에서만 16골을 넣으며 그해 최고의 외국인 선수 상을 수상한다. 다음 시즌에는 파스타를 너무 처묵처묵한 나머지 체중조절에 실패하면서 움직임이 둔해진데다 노련한 세리에 A의 수비수들이 더욱 물고 늘어져 리그와 챔스를 통틀어 10골을 넣는것에 그친다. 그러나 우승경쟁을 하던 후반기에는 폼이 올라와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으며 2년 연속 스쿠데토를 획득하지만 칼치오 폴리 때문에 흑역사가 되었다. 즐라탄을 신뢰하던 루치아노 모지는 영구 제명되고 유벤투스는 세리에 B로 강등된다.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디디에 데샹은 즐라탄을 잡으려 했지만 즐라탄은 시합 출전을 보이콧 한 끝에 시위를 벌였고 결국 인테르로 이적한다.

2.3. 인테르


인테르 에이스 시절
만약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지 않았다면...이라고 생각되던 시기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의 적극적인 투자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인테르는 17년간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팀이었다. 사실 즐라탄이 유벤투스를 떠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을 때 적극적으로 영입에 관심을 보인 구단은 AC 밀란이었다. 문어대가리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단장은 매의 눈빛으로 달려들었고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구단주인부패정치인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구단주가 직접 나서서 저녁약속까지 잡을 정도였다. 그러나 즐라탄은 리그 우승을 오랜시간 못한 인테르에 가서 타이틀을 손에 넣고 싶은 더독마인드가 마음에 들어 인테르를 선택했다. 근데 사실은 호나우두가 뛰던 팀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근데 8번을 달아서 코스프레 실패 인테르로 이적한 이후 즐라탄은 본격적으로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한다. 유벤투스 시절까지는 완성되지 않은 선수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인테르 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한다. 인테르는 언제나 뒷심 부족으로 리그 우승을 놓치는 팀이었는데, 즐라탄과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합류한 2006-2007시즌에는 마침내 그 뒷심부족을 극복하고 스쿠데토를 획득한다. 다음시즌에도 인테르는 스쿠데토를 획득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리버풀에게 털리면서 광탈하면서 로베르토 만치니[15]가 사퇴하고 새로이 주제 무리뉴가 부임한다.

인테르로 부임한 무리뉴는 즐라탄의 사소한 일까지 챙기는 세심함을 보이는 반면, 훈련장과 경기장에서는 즐라탄이 아무리 멋진 플레이를 보여도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어장관리 밀당의 고수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무교수님의 은밀한 유혹 이러한 무리뉴의 스타일은 즐라탄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즐라탄의 기강은 완벽히 잡혀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며 세리에 A를 씹어먹는 포스를 보여준다. 2008-2009시즌 내내 날아다닌 즐라탄은 리그에서 25골을 기록, 드디어 카포칸노니에레[16]타이틀을 차지하고, 즐라탄 이적 이후 인테르는 리그에서 3연패[17]를 달성한다. 당시 즐라탄의 포스가 어땠냐면 그때 세리에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크랙이라면 AC 밀란의 카카안드레아 피를로 정도가 있겠는데 챔스나 국제대회가 아닌 리그만 놓고 본다면 전성기의 카카나 피를로 조차도 즐라탄이 이끄는 인테르의 리그 독주를 깨부수지 못했다. 이 시절 인테르는 즐라탄과 마이콘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18] 굇수급 포스를 보여준 리그와는 달리,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6강에서 맨유에게 탈탈 털리며 또 광탈을 하고 만다. 빅이어에 목마른 즐라탄은 그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FC 바르셀로나를 보고 "그래 이 팀이야"라고 마음을 굳혀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에게 정식으로 이적요청을 하고 사무엘 에투와 현금을 포함한 역대급 스왑딜을 통해 인테르를 떠나게 된다.

당연히 인테르의 울트라스들은 시즌 막판 지속적으로 떠날 것이라는 속내를 비친 즐라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라커룸까지 찾아와 즐라탄을 만류하는 팬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즐라탄의 마음은 이미 바르셀로나로 굳혀졌고 야유하는 팬들에게 세레모니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까지 하기도 했다. 막판에 영 좋지 않게 헤어진데다 훗날 즐라탄이 AC 밀란의 유니폼까지 입게되었으니 인테르의 울트라스와 즐라탄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결국 즐라탄은 떠나게 되었고, 바르셀로나로 가는 즐라탄에게 주제 무리뉴"즐라탄, 챔스 우승하러 바르샤로 가는거냐? 근데 어쩌지?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는 인테르가 우승할거다."라고 작별인사를 했다.그리고 인테르는 정말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였다

2.4. FC 바르셀로나


즐라탄의 바르셀로나 시절을 요약한듯한 짤방. 펩 과르디올라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즐라탄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즌
그의 커리어에 길이 남을 흑역사

2009년 사무엘 에투 +4,000만 유로로 맞교환되어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에투는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한 골 결정력을 가진데 반해 즐라탄은 헤더 능력+창조적 패스+연계 능력을 갖춘 선수로 둘의 대비가 뚜렷한 데다 양쪽 모두 이적 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팀의 스타일도 그에 맞춰졌기 때문에 이 둘의 비교는 월척이 샘솟는 싱싱한 떡밥이었다.[19]

시작 초반에는 화려한 득점, 어시스트 행진을 이어가고 엘 클라시코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트레이드 불안감을 종식시키...나 했더니 2010년 들어 수많은 기회를 까먹으며 버로우, 스페인 언론은 물론이고 한국 내에서도 즐동국이라고 불리면서 대차게 까였다.그 때 까댔던 놈들 이거 읽으면 동궈 형한테 사과해라 2010년 3월 말경부터 서서히 되살아나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2골을 뽑아 내면서 과연 되살아나나...했더니 즐라탄이 빠지자마자 메시가 4골을 작렬하여 즐라탄 빠지는게 더 낫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안습.

초반에는 즐라탄이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주며 바르사 팬들이 만족해 했고 인테르도 에투 + 4,000만 유로로 팀 스쿼드를 강화시켰기 때문에 양쪽 다 그럭저럭 만족했지만 2009년 이후 즐라탄은 그 좋은 골 결정력은 어디다 말아먹었는지 좋은 기회를 매번 놓치면서 까였고 에투도 사비 패스 빨로 먹고 사는 반쪽짜리 선수일 뿐이지라며 미친 듯이 까였다. 어쨌건 즐라탄은 2010년 3월 말부터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으나...다시 점점 부진한 활약을 보이다 2010년 인테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는 막장 경기력으로 인테르의 스파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굴욕을 당한다. [20] 에투도 첼시 FC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결승골을 뽑아 내면서 좀 숨통이 트이는 눈치. 다시 만난 4강에서는 둘의 관계가 역전되어, 결승 진출에 기여(1득점)한 에투와는 달리 국내 팬들에게 오발탄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된 듯. # 소설 오발탄

전체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팀 플레이에 맞지 않는 선수라는 평이 많아졌다. 화려한 패스와 순간적인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하는 바르사의 팀 플레이 특성상 다른 선수들은 열나게 뛰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즐라탄 혼자 가만히 서 있거나 경기장을 산책하는 모습에 울화통이 터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 인테르 시절 2선까지 내려와서 적극적으로 공격전개하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결국 혼자서 수비진 사이에 고립되고 메시가 혼자서 돌파해보려다가 협력 수비에 막히는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그나마 세트피스에서 제공권이라도 장악해주면 좋은데, 머리 대신 발을 들이미니...스탯이야 꾸준히 쌓아주고 있지만 바르셀로나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영입이었다.

즐라탄 본인도 답답했을 게, 인테르 시절이야 본인의 강력한 피지컬과 뛰어난 기술로 2선까지 내려와 중앙에서 공을 키핑하며 마이콘 등이 올라올 시간과 공간을 벌어냈는데 바르셀로나는 한 선수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을 소유하는 성격의 팀이 아닌 데다 라 리가의 심판은 즐라탄의 피지컬에 대한 이의를 휘슬로 너무 자주 제기했다. 또 모처럼 원터치나 투터치로 패스를 내지를 때는 티키타카와는 좀 동떨어졌다고 할까, 너무 창의적이었다고 할까, 그런 패스를 내줬다. 결국 오프 더 볼 움직임이 둔탁한데, 제공권 담보도 불성실하고, 피지컬로 승부보기에는 라 리가에선 휘슬을 불고, 공 소유를 오래 해서 팀의 템포를 죽이고, 빠른 패스는 티키타카 시스템에선 너무 창의적이었다.

결국 바르셀로나가 발렌시아 C.F.에서 다비드 비야를 영입하는 대형 이적이 발생했다. 물론 즐라탄이 팀에 적응하고 비야가 새로운 위치를 받아들인다면 비야-즐라탄-메시라는, 예전의 R-E-M에 못지 않은 엄청난 공격진이 완성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즐라탄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교환카드로도 고려된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결국 그 꿈은...

그리고 8월 28일 AC 밀란으로 임대가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선임대 후이적 형태로 AC 밀란으로의 완전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적료는 2400만 유로로, 이전 바르샤가 즐라탄을 사올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솔직히 즐라탄 정도의 선수의 이적료로는 맨시티의 현질로 물가가 오른 요즘 좀 싼 편에 속한다.

즐라탄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원수지간인 걸로 유명한데, 떠나기 전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감독이 나의 꿈을 망쳤다"라며 대놓고 디스하고 떠났다.[21]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바르셀에서 즐라탄을 버린 진짜 이유가 메시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이쿠, 이런...바르샤 흠좀무다. 하긴 누군들 고작(?)[22] 즐라탄 때문에 저 우주 괴수를 포기하겠느냐만 결과적으로 즐라탄은 지못미 되었다.

자서전 'I AM ZLATAN'에서 직접 밝힌 내용에 따르면 불화의 경과는 메시의 컨디션 회복에 따라 중앙에서 사이드로 밀림 자꾸 왜 이렇게 쓰는거지 그게 아니라 , 메시가 중앙에서 뛰고 싶다고 표출한후에 과르디올라가 두선수 포지션을 바꾼거다. 메시의 컨디션 회복에 따라 라니...본인이 직접 메시 라 생각하고 쓴거냐? -> 감독에게 자신은 사이드가 안 맞는다며 포지션 변경 요청 -> 과르디올라가 그 때부터 본인을 개무시[23] -> 챔스리그 탈락 후 락커룸에서 즐라탄 폭발"이 불알도 없는 놈아!!" -> 완전히 갈라섬 정도 였다고 한다. 불화를 직접 대화혹은 주먹협박 등으로 푸는 스타일인 즐라탄에 비해 언짢은 일에 대해선 기피하는 스타일인 과르디올라 감독의 성격차도 불화에 한 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즐라탄과 바르샤의 결별 이유는 역할 차이가 크다고 한다. 다비드 비야는 10/11 스쿼드에서도 왼쪽에서 뛰고 있으니 즐라탄과 비야의 경쟁 문제는 사실 크지 않은 셈. 더 큰 문제는 메시가 중앙에서 자유롭게 뛰는 것이 즐라탄이 중앙에서 뛰는 것보다 바르샤의 축구에 더 잘 맞았던 것.

초창기에는 바르샤 전술의 포커스가 전방의 즐라탄에게 집중됐고 메시도 잘 맞춰주었다. 그러나 메시가 컨디션을 되찾고 미친듯이 골을 퍼붓기 시작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당연하게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사 전술의 모든 포커스를 메시에게 돌렸고 메시의 활동폭이 영역을 가리지 않게 되자, 자연스레 중원의 패스는 모두 메시에게 이어졌다. 메시 본인은 이전에 비해 훨씬 넓어진 활동폭으로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바르셀로나 역시 메시를 앞세워 최강 자리를 고수했다. 그러나 이런 메시의 성장은 즐라탄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었고 이것에 대해 즐라탄은“나도 메시처럼 대해 달라. 나 역시 메시와 같은 크랙이다"라며 프리 롤을 요구했지만, 팀은 중앙에 즐라탄이 아닌 메시를 세움으로써 끝판왕이 되어갔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무시했다. 귀여운 것 피식 넌 절루 가서 메시 셔틀용 공간 창출이나 하고 있어 기사에도 나와있듯이, 즐라탄은 바르샤에서 메시가 받는 에이스 대접을 어디서나 받아왔던 선수다. 하는 말을 들어보면 본인은 메시와의 경쟁에서 밀렸다라고 생각해 당황스러워 했던 것 같다.[24] 바르샤의 다른 선수들의 사정을 보자면, 메시에게 패스를 집중시켜 주지만 그 메시의 어시로 골을 넣기도 하고, 메시와 공존하고 있기에 아무 문제 없지만 즐라탄은 그것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클럽 입장에선 밀집 수비 등에서 상대를 뚫고 빠져나가는 경이로운 재능의 메시가 꼭 필요했고 팀 스타일에 더 잘 맞았다. 무엇보다 활동폭이 넓어진 메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골을 쓸어담으며 바르셀로나의 승리를 이끄는 일등공신이었으니 당연히 메시 중심으로 가는 것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새로 영입된 비야가 '메시와의 공존'을 중시하며 잘 적응해나가는 것만 봐도 즐라탄은 메시와 공존에 실패했기에 바르샤와 결별했던 것이다.[25]

여하튼 이런 소외에 대한 불만은 감독과의 불화로 이어졌고 결국 즐라탄은 바르샤와 안 좋게 헤어지게 되었다. 질투인지 원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메시에 대한 감정 역시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잉글랜드와의 친선전에서 4골을 넣으며 승리한 이후, '이제 잉글랜드도 나를 메시처럼 대우해 줄 것이다'라는 멘트를 날린 것을 보면…. 그러나 이것은 근거없는 낭설인게, 바르샤에서 즐라탄이 한창 펩과 사이가 틀어지던 즈음에도 두 사람은 특별히 불화설이 없었고 오히려 메시가 즐라탄을 위해 자신이 얻어낸 pk찬스를 양보해주기도 하는등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26] 게다가 즐라탄이 메시나 바르셀로나 선수진에 대해 언급한 발언들은 좋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세계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항상 다른 선수가 아닌 리오넬 메시를 세계 최고라고 지목해왔고 인터뷰마다 칭찬했다. 심지어 자서전에서조차도 펩에 대해선 개객끼라고 잘근잘근 씹으며 온갖 욕을 다 해댔지만 바르사 선수들에 대해서는, '감독에게 지나치게 순종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정도로만 이야기할 뿐 그외의 비판은 한 적 없었다. 어찌보면 본인이 밀려나게 된 원인인 메시에 대해서도 자신과는 축구 외에도 여러가지 면에서 정반대의 선수이고 어릴 때부터 바르사에서 자라와서 이 문화에 잘 적응되어있는 것 같다 정도로 묘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선수이자 세계 최고'라고 칭찬까지 했다. 거기다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즐라탄은 무려 6년 연속으로 메시에게 표를 던졌다. 심지어 메시보다 이니에스타가 더 주목받아야 된다고 지적했을 때에도 정작 즐라탄이 1등으로 뽑았던 사람은 메시였다. 츤데레? 이쯤되면 오히려 매우 친하다고 봐야할 지경. 최근 챔스전에서 만났을때 화기애애하게 친목을 도모하며 감정따윈 없음을 인증했다.

2.5. AC 밀란


플레일 스타일의 변화로 테크닉과 피지컬의 조화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장착하다[27]
세리에 왕의 귀환
유일하게 그의 독설을 피해간 시절

2003-2004시즌 이후 스쿠데토를 따내지 못한 밀란은 리그 우승이 절실했다.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 무대로 돌아온 즐라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하며 세리에 A의 왕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기대에 부응했다. 밀란의 공격진에는 알렉산드르 파투호비뉴가 있으나, 사실 즐라탄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은 아니기에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다시피 하면서 공격을 먹여살리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즐라탄은 밀란 이적 이후 부터 본격적으로 타고난 압도적인 피지컬을 사용하는 선수로 변모한다. 아약스 시절과 유벤투스 초창기가 큰 체구에도 불구하고 개인기에 의존하는 선수였다면, AC 밀란 시절부터는 피지컬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무게감있는 공격수로 변모한다. 그럼에도 활동량은 여전해 이때 즐라탄은 진짜 미칠듯이 열심히 뛰었는데, 센터 서클까지 내려와서 뛰는 경기도 많았다. 그래서 경기 후에 지쳐서 구토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또한 점점 다크서클이 내려오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못미 그리고 모두가 기대하던 밀라노 더비에서 인테르의 울트라스들은 열렬한 환영(?)으로 맞이해줬지만, 즐라탄은 인테르에 정이 남았는지 인테르는 까지 않고 바르셀로나와 과르디올라를 깠다. 밀라노 더비에서 활약 끝에 인테르를 이긴 후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간디라도 되는줄 안다라고 깠다.[28] 그리고 AC 밀란은 시즌 마지막까지 혼전에 혼전을 거듭한 끝에 극적으로 2010-2011 세리에 A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즐라탄이 뛰는 이탈리아 클럽은 무조건 리그를 우승한다는 전설을 만들었다.[29] 그러나 챔스에서는 16강에서 상대적으로 수비가 약하다고 평가받는 토트넘 핫스퍼를 만나 이번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통합스코어 0:1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축빠들의 반응은 과연 즐라탄은 세리에 왕. 세리에만 벗어나면 용택이작아지는 즐라탄이라고...오죽하면 "즐라탄이 토너먼트에서 골을 넣게 만든 바르샤가 더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중.

11/12 시즌, 알렉산드르 파투가 부상, 안토니오 카사노가 부상, 호비뉴가 보통 공격수가 되고 감독이 인자기를 쓰지 않으며, 미드필더진도 지독한 부상의 바람이 불어 젊은이 몇 빼고 늙은이들로 풀경기를 돌리는 상황에 이르자 혼자서 공격작업을 전부 하는 초월적 능력을 보이고 있다만, 역시 그 탓인지 리그 1위는 유베가 달리고 있다. 과연 세랴킹에게도 리그 우승에 실패하는 시즌이 찾아올 것인가. 그러던 중 뭘 잘못 먹었는지 챔피언스 리그 1차전 산시로에서 열린 세리에 A 킬러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그야말로 메신의 2009/10 시즌에서의 누캄프에서의 아스날 상대로의 활약을 보여주듯 아스날 수비진을 관광때리며 벵거에게 멘붕을 선사했다. 코시엘니는 미친듯이 털리다 부상으로 교체되었고 아스날 수비의 최대 잉여라고 말해지는 주루가 들어오자마자 더 털렸다. 즐라탄은 모든 골에 관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전 유럽에 알렸다. 그리고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고 결국 한 골까지 챙겼다. 골을 넣고 포효하던 그 모습은 그야말로 왕! 사실상 앙리의 고별전을 망쳐버린 주범. 아따 많이 해묵었다 아이가! 이제 돌아가랑께 박주영 팬들은 벵거가 박주영을 안 쓰는데 대한 것에 신이 즐라탄의 몸에 빙의해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드립치기도 했다.

사실 챔스에서 못하는 것도 있지만, 운도 지독히 없는데...


epic fail.

08/09 시즌 인테르에 있을 때는 바르셀로나가 우승했으며 09/10 시즌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자 인테르가 우승, 다시 10/11 시즌 바르셀로나에서 밀란으로 이적하자 바르셀로나가 다시 빅이어를 들었다(...). 뭐, 대신 세 시즌 연속 리그 우승은 먹었지만. 그래서 얻은 별명이 옥새라나. 이건 약과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국가대표에서 역시 이 정도 수준으로 운이 억세게나 없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불운 모음

리그 이적 국가대표 조 추첨 및 상대 결과
2002년
월드 컵 본선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에게 힘 다 빼고 16강에 가서 세네갈에게 쳐발림
2006년
월드 컵 본선
잉글랜드
스웨덴
파라과이
트리니다드 토바코
조별 리그는 쉬웠으나 하필 16강 상대가 독일, 결국 탈락
2010년
월드 컵 지역 예선
포르투갈
스웨덴
덴마크
헝가리
알바니아
몰타
조 3위로 지역 예선 탈락
2014년
월드 컵 지역 예선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페로 제도
카자흐스탄
조 2위로 플레이 오프에 진출했으나 상대가 포르투갈
그리고 홈 어웨이 모두 덜미를 잡히며 탈락.
유로 2004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불가리아
불가리아 이외의 3팀이 1승2무로 완전동률,
골득실 딸리는 이탈리아가 탈락했는데 스웨덴은
이탈리아에게 힘 다빼고 8강에서 네덜란드와 승부차기끝 탈락.
그런데 이 승부차기에서 이브라히모비치 실축.
유로 2008 스페인
스웨덴
러시아
그리스
그리스 하나만 잡고 나머지에게 쳐발리고 탈락
유로 2012 잉글랜드
프랑스
스웨덴
우크라이나[30]
한번도 져본적이 없는 잉글랜드와
홈 팀 우크라이나에게 쳐발리며 조별 리그 탈락
2010년 인테르 → 바르셀로나 인테르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11년 바르셀로나 → AC 밀란 바르셀로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건 뭐 조 추첨을 할 때마다 무조건적으로 걸리는 죽음의 조. 너무 후덜덜한 불운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끝장나게 재수없는 사나이.

2011-2012시즌 32경기에서 28골을 넣으며 생애 두 번째 카포칸노니에레에 오른다. 그렇게 밀란에서 커리어를 마감하나 싶었는데. 한국 시각 2012년 7월 13일, 치아구 시우바와 함께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이 발표되었다. 둘의 이적료 총합은 6200만 유로. 26년 만의 리그앙 우승을 노리는 PSG에게는 천군만마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그렇게 발표했을 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에이전트가 발표했다. 오히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며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는 훼이크고 결국 유니폼 들고 사진찍음으로써 이적을 확정지었다. 밀란의 팬들은 멘탈이 파괴되었으며, 그건 밀란의 부진이 시작되는 신호가 되었다. 베시민 ㅅㅂㄴㅇ~ 하지만 그다지 이적할 생각은 없어서 주급 협상때 천문학적인 급료를 요구했고, 파리는 그걸 또 수락하였다.[31]

2.6. 파리 생제르맹


파리 생제르맹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스트라이커[32]
카를로스 비앙키의 PSG 한 시즌 최다골을 갱신한 사나이

2012년 11월 6일 디나모 자그레브전에서 한경기 4어시스트를 달성하고, 11월 14일 잉글랜드와의 국대 경기에서 후반90분 환상적인 25미터 오버헤드킥으로 쐐기골을 장식하며 한경기 4골을 기록했다. 사자왕 등극!!

아크로바틱을 넘어서 예술의 경지를 찍은 이 골을 보며 대중들은 벌써부터 푸스카스상을 점치고 있으며 즐라탄 인생골이라는 드립들도 나오고 있는 중. 그리고 현지 기준 2014년 1월 13일에 마티치네이마르를 제치고 수상자로 확정됐다. 그런데 원래 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기괴한 골을 많이 넣었던 선수다. 190이 넘는 피지컬과는 다르게 엄청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특유의 장점. 혹자들은 호날두의 사이즈 업 버전이라고 하기도 한다.(물론 디테일하게 스타일이나 성향을 보면 다르지만 어쨌든 좋은 피지컬과 훌륭한 유연성으로 현역들 중 가장 다양하게 신체부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파리 이적 후 특유의 전 소속 클럽 디스를 시전할 것이라 많은 해축팬들은 예상했지만, 예상 외로 밀란의 앞날이 잘되라고 말하는 등, 해축팬들을 데꿀멍시켰다. 밀란 시절이 이 선수에게도 각별했던 듯. 그럴만도 한 것이 실질적으로 커리어 사상 최대의 '실패'라고 할만한 바르샤를 뒤로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즐라탄에게 다시금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증명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된 계기가 AC 밀란에서의 활약이었기 때문이다. 파리 이적 후 프랑스 리그를 씹어드시고 계시는데 계속 해서 밀란 리턴 이적설이 뜨고 있다. 참고로 이적한 지 3개월도 안된 시점. 물론 찌라시일 뿐이며 일단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하는 베시민이 구단주인 밀란이 즐라탄의 이적료와 주급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이렇게 파리로 이적함으로 또다시 막스웰과 동료로 만나게 되었다. 서로 영혼으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실제로도 원정 호텔 한 방 쓰는 사이라고 한다. 심지어 최근에도 즐라탄 본인이 같이 뛰어본 선수들로 세계 베스트 11을 짰을 때에 뜬금없이 레프트 풀백 자리에는 막스웰이 있었다.당연히 본인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 있고

파리 생제르맹 FC발렌시아 C.F.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경기 막판에 퇴장당하였다. 그런데 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PSG 소속으로 유럽에 복귀한 데이비드 베컴에게 쏠려서.. 그야말로 들러리 신세가 되었다. 2:1의 아슬아슬한 리드인데다가 원정에서는 본인이 퇴장당함으로써 8강 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되었다.

그러나 항소가 받아들여져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심이긴 했지만1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팀의 2:2 무승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3-1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32강 3차전 RSC 안더레흐트 원정 경기에서 힐 킥 골, 중거리 슛[33] 골 등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ㅎㄷㄷ

스웨덴의 브라질 월드컵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각성하여...

13/14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수많은 골을 득점하여 일시적이나마 호날두와 공동 득점 1위를 먹었으며 리그앙에서는 리그 득점왕을 달성. 리그 득점왕 대항마로 평가받던 에딘손 카바니는 즐라탄에게 밀려 자신의 본 포지션이 아닌 레프트 윙포워드 신세이고 라다멜 팔카오는 전반기에는 삽질을 거듭하고 한 술 더떠 겨울에는 태업성 플레이를 보이다 결국 부상으로 시즌 아웃당하면서 팔카오가 즐라탄의 거품을 벗겨줄거라던 팔카오 팬들을 데꿀멍시켰다.

그리고 2013년 연말 피파 시상식에서 푸스카스 상과 올해의 베스트 11에 선정 되며 커리어 최초의 국제단체 수상을 하였다. 그동안 리그 내에서나 스웨덴 자체 수상에서야 리그 올해의 선수, 리그 베스트 일레븐, 스웨덴 올해의 선수 같은 타이틀은 밥 먹듯이 수상해봤던 즐라탄이지만 국제 유럽 무대 수상과는 꽤나 오랫동안 거리가 있었는데 선수 생활 중반기를 넘어 후반기에 들어선 시점에서 드디어 유럽 무대에서의 수상을 획득한 셈. 그 동안 국제 무대에서의 수상과는 지독하게 인연이 없던 즐라탄이었기에 이번 시즌을 계기로 드디어 즐라탄의 국제 무대에서의 운세가 트이나 하고 즐라탄 개인 팬들은 기대 중이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2차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PSG는 1차전에서는 3:1로 첼시를 완파해놓고서는 정작 2차전에서 첼시에 2:0 패배를 당하며 3:3 동률이나 원정골 우선 법칙으로 인해 4강 진출에 또 실패하는 비운을 맛본다. PSG에서 즐라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대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34]

14/15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유벤투스 이적설이 흘러나오기는 했으나 애시당초 안 좋게 헤어진 사이일 뿐더러 PSG가 돈이 궁한 구단도 아니고..오히려 지나치다면 지나칠 정도로 돈이 많지 즐라탄 본인도 가볍게 루머를 일축해버렸다. 여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본인이 공공연히 인터뷰하는 걸 종합해보면 대략 파리 생제르망이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 클럽이 될 듯.[35]

12/13 시즌에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한 뒤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AC 밀란이나 혹은 바르샤 그 이전의 즐라탄과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진 편이다.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대단히 간결해졌고 자신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인 킥력과 킥 정확성을 바탕으로한 상당히 효율적인 플레이를 구사하고 있다. 또한 신체 능력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는 여전하면서도 공격에 관여할 플레이메이킹은 전적으로 PSG의 2선진과 3선 미들진에게 맡기고 자신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 상황.

말 그대로 현재의 즐라탄은 득점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있는 상황이다. 이전처럼 프리롤로써 공격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 것. 그러나 그 대신 과거 쉬운 골을 자주 놓친다고 할만한 경우가 거의 없어졌으며 그 킥력과 신체 능력은 여전해서 여전히 아크로바틱한 골도 잘 넣는다.

사실 즐라탄의 이러한 스타일 변화는 신체 능력 변화에서 기인한다. 즐라탄은 본래 그 거구의 체격에도 불구하고 온 더 볼 상황에서의 첫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민첩성이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는데 PSG에서의 12/13 시즌까지는 괜찮았으나 13/14 시즌부터 첫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민첩성이 대단히 둔해졌다.

또한 즐라탄의 드리블 패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리그앙 각 팀의 수비수들은 온 더 볼 동작 전환 상황에서 민첩성이 감퇴된 즐라탄에게서 볼을 좀 더 쉽게 탈취하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결국 즐라탄은 자신의 드리블 시도 횟수를 줄이고 강력한 킥력과 여전히 사기적인 신체 조건, 킥 정확성을 바탕으로 플레이를 최대한 간결하게 시도했고 이러한 스타일 전환이 성공하여 원톱 자리를 노리는 카바니를 윙포워드로 제껴버린 채로 여전히 자신이 굳건히 PSG의 주전 원톱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 편,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고 싶어해 뛰어난 트래핑 실력을 과시할 요량으로 헤딩으로 볼을 처리할 상황에도 발부터 올리던 이전의 습성이 PSG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냥 이제는 헤딩으로 볼을 처리할 상황이면 헤딩으로 볼을 처리하는 편. 나이를 먹으며 신체적 민첩성이 죽었으나 그에 비례해 다음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대단히 높아져 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크게 문제시 되는 경우가 없으며 12/13 - 13/14의 즐라탄은 사실상 그의 커리어 최대 하이라고 할 정도의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14/15 시즌 현재, 전 시즌에 비해 약간 폼이 죽었다는 느낌. 물론 여전히 클래스가 살아있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고 폼이 죽은 것은 시즌 시작하자마자 당한 부상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 현재는 부상 복귀 후, 폼을 끌어올리는 중인데 이후의 경기들을 지켜봐야할 듯.

3. 국가대표


스웨덴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잡이[36][37]
군나르 노르달,닐스 리드홀름,군나르 그렌, 헨릭 라르손 과 같이 스웨덴 역사에 길이남을 전대미문의 축구선수
현 스웨덴 국대의 자랑이자 중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스웨덴은 2010년 월드 컵 당시에는 포르투갈, 덴마크 등에 밀려 아깝게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사실 2002년 월드 컵 이후 스웨덴의 대진운은 계속 최악이였다. 2002년에는 잉글랜드와 겨우 비기고 아르헨티나에게 있는대로 시달린 끝에 간신히 비겨서 16강에 진출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에게 힘을 다 뺀 스웨덴은 처녀 출전국이자 아프리카의 듣보잡인 세네갈에게 일격을 얻어맞았고, 2006년에는 잉글랜드와 또 같은 조가 되어 고생하더니 16강에서는 그 독일에게 걸려 또 탈락했다. 거기에 2010년 지역 예선에서는 포르투갈, 덴마크와 같은 조가 되어 간발의 차이로 조 3위가 되어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더니 2014년 월드 컵에서는 포르투갈보다도 더 센 독일이 걸린 데다가 아일랜드, 오스트리아까지 걸려서 최악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다. 그러고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플레이 오프에 진출했건만 상대가 포르투갈이다. 안습.

2014년 월드 컵 역시 독일,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등과 더불어 두 대회 연속 지역 예선 죽음의 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2014년 대회때는 2010년 대회 때와는 달리 꽤나 분전했으나 문제는 세계 축구 전체에서 상위 5위권 안에 든다는 독일도 스웨덴의 상대인지라 본선 직행은 이루지 못하고 플레이 오프로 떨어졌다. 다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맹활약으로 그 독일을 상대로 4-4 무 재배를 쳐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플레이 오프로 떨어졌는데 상대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 지역 예선에서 두 대회 연속으로 만난 악연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입장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죽여야 산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기자회견에서 포르투갈을 이길 자신 있다. 이것은 단지 호날두와의 개인적인 대결이 아니다. 그리고 내 모든걸 쏟아부어 반드시 이기겠다는 필사의 각오와 다짐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과는...호날두의 선제골로 꺼져가는 본선의 불씨를 살리려 스스로 2골이나 넣는 기염을 토했지만, 그 직후 호날두가 내리 2골을 더 넣으며 해트트릭을 기록해버리는 바람에...

이 플레이오프는 상당한 명승부로 치뤄졌는데 특히 2차전은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에서 나와야 했던 경기라는게 총평. 1차전이야 서로 눈치만 보느라고 상당히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경기였지만 2차전은 두 영웅들의 크레이지 모드가 작렬한 경기. 결국 승자가 모든 걸 다가지고 갔다. 즐라탄과 호날두의 일기토 같은 경기라고 평하는 의견도 있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승패를 갈랐던 건 누구의 졸병들이 더 강한가였다.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호날두가 역전에 성공한 것은 포르투갈 중원의 세명(무티뉴,메이렐레스,볼로소)이 미드필드를 장악한 것이 컸다. 특히 2:1로 뒤지던 상황에서 나온 무티뉴의 두번의 킬패스가 결정적이었다.(첫번째 어시스트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유로 2016이 그의 국가대표 마지막 커리어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서 엿을 먹어버렸으니 즐라탄은 결국 비운의 선수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즐라탄 본인도 국가대표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안돼, 라탄이형 가지마...ㅜㅜ

2014년 9월 5일 에스토니아와의 A매치에서 2골을 득점하면서 대표팀 통산 50골을 기록, 스웨덴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반열에 올라섰다. 이 기록은 무려 70년 만에 경신된 것으로 그동안 헨릭 라르손과 같은 기라성같은 선배들도 이루지 못한 대업이다. 이것으로 즐라탄은 스웨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로 자리매김하며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즐라탄은 기록 경신 이후 유니폼 아래 입고 있던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신 덕분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셔츠를 보이며(위 짤방) 자신의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014년 9월 8일 유로 2016 예선 오스트리아와의 원정경기에 출장하였다. 이로써 100경기에 출장을 달성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195cm라는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스트라이커로 골키핑, 공중볼, 몸싸움에도 강하지만, 드리블연계 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 아약스 시절 카메라맨조차도 속이는 카메라맨 능욕[38] 화려한 드리블에 이은 골은 유명하다. 물론 드리블이야 같은 팀에 메시, 이니에스타가 있기 때문에 이적 이후에는 좀 빛이 바래는 감도 있지만 골 결정력도 일품이다. 하지만 드리블이 지나치게 길기도 하고, 폭발적인 스피드는 없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아크로바틱한 골을 넣는 것으로 유명한데, 저 동쪽 어느 나라의 무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냥 뻥친 게 아닌(...) 실제 태권도 검은띠 유단자라 한다.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시작한 그는 17살에 태권도 검은띠를 땄고 유소년 시절 거칠 것 없는 성격으로 인해 구단과 불화가 있었을 때에는 진심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태권도 선수가 될 생각까지 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태권도 대표팀으로부터 명예 검은띠를 받기도 했다. 아래 사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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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 버튼을 누르려 했나 헐 들킴 천잰데? 덕분에(?) 인테르 시절에도 마르코 마테라치와의 시비로 맞짱을 떴지만 오히려 싸움꾼인 마테라치를 팼다고. AC 밀란 시절에는 엄청난 떡대를 가진 미국의 수비수 오구치 오니우와 시비가 붙어서 싸운적도 있었다.# [39]흠좀무.
195cm의 거한이 자신의 머리 위 볼을 향해 거침없이 다리를 뻗어올리는 유연함과 날렵한 동작을 보고있자면 즐라탄이 축구에 태권도를 접목시켰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태권도가 그의 유니크한 스타일에 영향을 준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문제인 게, 헤더 찬스에서 머리 대신 발을 갖다 댄다. 넣으면 멋있기는 한데 안 들어가면...오죽하면 즐라탄은 좀 더 쉽게 골을 넣을 필요가 있다라든가 쉬운 골은 못 넣는데 어려운 골은 천재적으로 넣는다 등의 평가를 받을까. 골을 못 넣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요즘 그 버릇 때문에 의도치 않은 반칙을 범한 적도 있다. 동영상 즐라탄의 소속팀인 파리 생제르멩과 AS생테리엔과 경기에서 후방에서 넘어오는 공을 보고 처리하려고 발을 들었는데 상대 골키퍼에게 맞아서 레드카드를 받고 팀은 리그 첫 패배를 당했으며 레드카드를 받은 즐라탄은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유벤투스, 인테르 시절 세리에 A에서 뛰면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 시절에도 자주 까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기 때문. 인테르가 번번히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욕을 먹었다. 덕분에 세리에 A전용, 큰 경기엔 약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모 축구잡지에 의하면 이는 ㅂㅅ팀들이 가득한 리그에서 그냥 경기를 이기는 방법이 '즐라탄에게 시키면 그놈이 다 알아서 한다'라는 방법이라서 즐라탄이 틀어막힐 수도 있는 챔스 같은 상황에서는 대안없이 그대로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와서는 엘 클라시코 1골, 챔피언스 리그 8강 1경기에서 2골 등을 얻어내면서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는 약간 떼어낸 눈치.

이렇게 빌어먹을 바르셀로나 시절과 챔스에서의 부진으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 하는 느낌이 들지만, 아약스 2003-04 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유벤투스에서의 2년(칼치오폴리로 취소되긴 했지만), 인테르에서의 3년, 임대로 갔던 AC 밀란에서의 2010-11 시즌까지 모두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심지어 실패한 시즌으로 앞에서 써내려간 바르셀로나에서도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아 근데 챔스는 왜 못 드냐고요ㅠㅜ

2011-2012시즌 이전까지의 즐라탄의 최대 문제점은 자신의 피지컬을 제대로 이용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발재간등 아크로바틱한 플레이를 즐겼으나 이는 기복이 심할 수 밖에 없었고, 시즌중반을 넘어가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며 항상 지적되던 챔피언스리그와는 별개로 리그 경기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인테르시절은 말할것도 없고, 리그 MVP급 전반기를 보낸바르셀로나 시절, '즐라탄의, 즐라탄에 의한, 즐라탄을 위한 공격전개'소리를 듣던 밀란에서의 첫시즌 모두 후반기에 접어들자 급격히 경기력이 하락했고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인테르, 바르셀로나, 밀란식으로 경기력 낙폭이 심해졌다.

그리고 역동성등이 더 죽으면서 과거와 같은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190을 넘는 축복받은 신체능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2011-2012시즌부터는 후반기에도 좋은 플레이가 가능해 진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역동성, 순발력 등 운동능력은 확실히 감소했으나 그만큼 자신의 신체능력을 이용한 플레이를 하며 플레이의 질 자체는 오히려 진화한 나이먹으니 더 잘하는 특이한 케이스.

5. 게임

FM 유저들에겐 지랄탄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FM 2006 시절 사기적인 능력 덕에 붙은 별명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단 포지션이 ST가 아닌 CF인데 즉 프리 롤도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고, 잘 쓰는 발이 오른발이라는 것은 즉 오른발만 잘 쓰기 때문에 왼발에 가야 할 능력치가 기술 쪽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사실은 능력치가 기술로 가는 것보다 양발이 되는 것이 훨씬 좋다. 한발잡이들이 눈에 보이는 능력치는 양발잡이보다 높지만 게임 플레이에선 윙을 제외하곤 양발이 훨씬 좋다). 거기다가 기술적 능력을 보게 되면 키가 195cm나 되는 놈이 플레이는 메시처럼 한다. 또한 쓸 데 없이 장거리 스로인이 16이나 되어 총알 스로인 선플만 찍으면 로리 델랍의 스로인을 직접 구사할 수 있고(단 FM 2006 때는 총알 스로인 선플이 존재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생긴 건 FM 2010 때부터다. 즉 어빌 낭비일 뿐) 골 결정력과 헤딩이 둘 다 최정상급이라 올려주든 깔아주든 다 받아 처먹는다. 정신적 능력 부분으로 가보면 공격 위치 선정이 20이라 인자기도 울고 갈 정도이고 나머지 능력도 수비 위치 선정만 빼면 도대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토 나오는 수준이기 때문에 지랄탄이라는 별명이 붙을 수밖에 없다. 피지컬 부분을 보면 인간의 피지컬이 아니다. 말하자면 호날두와 메시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한 놈이다. 즉 플레이하는 감독 마음대로 메시처럼 쓸 건지 호날두처럼 쓸 건지 선택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FM 최고의 개캐. 그렇기에 당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던 아드리아누와 함께 '아들탄' 투 톱으로 불리며 많은 FM 유저들의 공격수를 담당했다.[40] 이것이 즐라탄의 인테르 이적으로 현실화 되었으나 아드리아누의 기량 하락으로 게임 만큼은 빛을 발하지 못 했다.

최전성기였던 2010년도에 발매된 위닝일레븐 2011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를 능가하는 최고의 사기캐로 군림하였다.[41] 메시는 스피드, 드리블에 특화되어 있어 피지컬이 매우 안습하고[42], 호날두는 즐라탄보다 나은 점이 스피드뿐이였다.[43][44] 속도가 80중후반, 피지컬은 피칠갑이 되어있어서 상대 수비수가 오히려 튕겨나가고, 슛정확도,슛파워도 높은지라 중거리슛도 찼다 하면 들어갈 정도. 실제로 2010년 여름 이적시장이 일부 반영된 FC 바르셀로나는, 다비드 비야, 즐라탄, 메시라는 희대의 사기 3톱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즐라탄은 AC 밀란으로 넘어갔다. PES 2013에서도 여전히 위력적인 모습을 과시, 파리생제르망이 PES에서 손꼽히는 강팀인 주된 이유로 군림하고 있다.

위닝과 비슷하게 즐라탄이 많이 관심을 받는 게임이 바로 피파 온라인. 전작들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으나 피파 온라인 3에서는 몸싸움 능력의 중요도가 올라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취급받는다. 몸싸움과 슈팅 능력 뿐 아니라 드리블 기술과 속도/가속도도 출중하여 수비수 서너명 달고서도 골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 능력치가 고루 좋기에 원 탑 스트라이커로 써도 좋고 2선에서 수비수를 흐뜨러트리는 역할로 써도 좋다. 게다가 2013년 11월에 이루어진 패치에서는 속도와 골 결정력 등이 버프를 받아서 유저들을 또 한번 충격에 빠뜨리더니, 2014년 8월 말 2011시즌 업데이트로 출시된 11즐라탄이 상당한 사기캐라 유저들은 그저 충공깽.[45]

6. 기타

  •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공존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스타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선수를 영입하면, 어중간한 강팀이라도(대표적으로 현재의 AC 밀란, 12/13 PSG, 06/07 인테르[46]) 꾸역꾸역 승리를 할 수 있게 어떻게든 골을 우겨넣지만, 애매하게도 쉬운 골은 또 못 넣는 경우가 많다. 06/07 시즌의 즐라탄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말도 안될 정도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별 이상한 자세로 골을 넣는가 하면, 그냥 사뿐히 차면 들어갈 골을 놓쳐서 까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원래 특급 공격수는 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존재다. 12/13 시즌의 맨유는 초반에 맛이 간 수비진 때문에 대량 실점을 하고 추가적으로 시즌 내내 맛이 간 윙어들0에도 불구하고 반 페르시의 미친 득점력으로 승점을 잘 벌어 놨기에 여유 있게 우승이 가능했고 라 리가의 팔카오의 존재는 무리뉴가 온 이후로 더욱 불붙은 양강 구도를 뜬금없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위협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도였다.(참고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전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와 승점이 무려 44점이나 차이 났던 팀이었다. 말 그대로 승점 자판기 수준..)

  • 이적료로 인해 과소 평가되는 경향도 있긴 한데, 인터 밀란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을 때, 4000만 유로+사무엘 에투 시장 가치 총합 6900만 파운드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은 2009년 여름 이적시장 2위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즐라탄 같은 만능형 공격수와는 맞지 않았고,[47] 감독과의 불화설에 겹쳐 방출한다.

    FC 바르셀로나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할 때의 2400만 유로는 바르셀로나가 즐라탄 처분을 빨리 하고 싶은 상황과, 갈리아니의 사기적인 협상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PSG로 이적할 때 든 2600만 유로의 금액은 31살의 스트라이커에게 투자하기에는 상대적으로 과한 금액이다.[48]

  • 단점 또한 분명한 선수다. 팀에 도움이 되고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줄 수 있는 특급 선수임에는 확실하나,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나 팀의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말려버린 상황에 있어서 이런 경우, 해당 경기를 대차게 말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는 즐라탄이 공격 템포, 포스트 플레이, 플레이 메이킹 등 공격 전개와 마무리를 전부 수행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 리오넬 메시와 역할이 비슷하긴 하나, 메시가 드리블, 골 결정력에 특화되어 있다면, 즐라탄은 수비진 붕괴, 포스트 플레이, 피지컬 플레이에 더 특화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증거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과 치아구 시우바가 이적해버린 AC 밀란은 그야말로 몰락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증명하며 열심히 박살나는 중이다. 즐라탄 하나 빠져서 공격진은 그야말로 막장이 되었다. 반면, PSG는 첫 시즌부터 즐라탄의 대활약을 바탕으로 리그를 씹어먹어버렸고 13/14 시즌부터는 스타일 변화에 성공한 즐라탄을 바탕으로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건 리그에서건 훌륭히 순항하고있다.

  • 즐라탄의 어린 시절을 말할 것 같으면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자서전 'I AM ZLATAN'에 따르면 스웨덴의 외국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빈민촌에서 꽤나 불우하게 자랐다고 한다. 뭐 빈민가에서 자란 축구선수가 한 두명이겠냐만은, 가난하게 자랐어도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부모님 및 가족이 항상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네이마르와 달리 즐라탄은 좋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지금의 공격적이고 제멋대로인한마디로 지랄맞은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서전에 언급된 내용만 봐도 부모님은 국적을 얻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다가 즐라탄이 두 살 때 이혼했으며 그 이후에도 가정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이복 형제, 자매들이 사고 치고 다니고 본인도 도둑질을 일삼는 등 여러모로 복잡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받은 기억이 있어서 현재도 무시당하거나 별 이유없이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매우 혐오한다고 한다. 이 때 받은 안좋은 추억때문에 인간관계가 썩 좋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어찌보면 참 딱한 사람이다.


  • 매일 토요일 밤 연예가중계 생방송을 진행하는 즐라탄.jpg

  • 이 남자,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호돈신 덕후이다. 자신의 방에 호나우두의 벽지를 붙여놓고 잡지를 읽으며 사진을 찍는 등등의 모습을 보아 잘 알 수 있는 사실. 그 이유에서인지 즐라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크리스티아누'라고 부른다. 즐라탄에게 RONALDO는 오직 호나우두 한 명이기에. 호나우두가 밀란에서 뛸 시절, 돈신님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는데, 거기에 눈맞은 돈신님은 머쓱하고 뻘쭘해서 다른 곳을 쳐다보더라(...). 즐라탄은 훗날 우상인 호나우두와 한 피치에서 경기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당시에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고 회고했다. 호돈신을 바라보는 매의 눈빛 눈 마주치면 때릴 거 같은데여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서 혹자는 인테르에서 바르샤 간게 호돈신의 커리어를 따라가기 위해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있는데, 진짜 같아서가 문제다.그러다 바르샤에서 레알 가것다;; 중간 과정을 빼먹긴 했지만 후술된 이적으로 인해 이 것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 그런데 2013년 여름 이적시장 현재, 에딘손 카바니의 PSG 이적과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레알 이적으로 인해 진짜 레알 갈 기세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 2010년 친선 경기차 한국에 온 바르셀로나 선수진 중 유일하게 바르셀로나 측 관계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팬들에게도 시종 웃는 얼굴로 친절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바르셀로나 구단과 선수진 중 유일하게 까이지 않았다. 즐라탄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기에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아서 유소년 선수시절 절대로 팬을 무시하지 않고 모든 팬들을 응대해야겠다고 다짐한 이래 팬들에게 성심성의를 다하는 선수이다. 그런데 의외로 팬레터는 절대로 읽어보지 않는 선수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오는 편지가 너무 많다보니 어떤 편지는 읽고 어떤 편지는 안 읽으면 형평성에 어긋나서"라고 한다.

  • 즐라탄은 전 소속팀이나 감독 디스하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유벤투스, 인테르, 바르샤 모두 그의 디스를 피해가지는 못했고 때문에 그 팬들에게 까이는 경향이 있다. 혹자는 즐라탄은 죽기 직전에는 스웨덴을 디스할 것이라고까지 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과르디올라에 대한 디스. 자신의 자서전인 'I'm Zlatan Ibrahimovic'에서 몇 챕터씩 할당(…)해서 과르디올라를 까고 2013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까는 등 과르디올라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디스한다. 사람들은 에고가 강한 즐라탄 본인의 성격과 팀을 학교처럼 일사불란하게 운영하는 과르디올라와는 상성이 극악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49]

  • 2012 FIFA 발롱 도르에 투표하면서 메시는 발롱 도르를 너무 많이 탔으니 다른 사람도 좀 타게 해 달라고 열폭하여 역시 메시에 대한 질투심이 있는게 아닌가...했으나 이후 본인이 자신은 메시에 대해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오히려 메시가 한해 최다골 신기록을 깬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 "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고 발롱 도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상을 받았지만, 또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라고 그의 수상을 지지해주는 투로 인터뷰를 했으며 "메시는 마치 플스의 캐릭터와 같다. 메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축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쿨한 모습을 보였다. 발롱 도르 시상식 후에는 타겟을 바꿔서 "호날두는 항상 메시의 수상을 바로 앞에서 본다.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보다 잘한 선수가 최소한 10명은 됐는데 2위라도 한 걸 다행으로 알아라"라며 그를 조롱하는 인터뷰를 하고 "메시는 발롱을 하나 더 탈 수도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긴 하지만 키가 작잖아ㅋ"라고 저 둘을 동시에 까서 사람들이 뜬금포라고 황당해 했으나 이것조차도 평상시 디스 잘 하는 그의 성격을 이용하여 언론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듯. 어딜 가나 기레기가 문제야 본인은 메시나 호날두에 대해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 그런데 성깔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주제 무리뉴와는 굉장히 사이가 좋다.극과 극은 통한다 즐라탄 본인이 "난 조제를 위해서라면 그게 사람을 해하는 것이던 무슨 짓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사실 즐라탄과 무리뉴가 같이 있던 시기는 08-09시즌 인터 밀란에서 딱 1시즌뿐으로 오랜시간을 같이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그 시기만큼은 즐라탄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훗날 즐라탄은 자신의 강한 성격과 자존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존중했으며 동시에 끊임없는 자극과 동기부여로 멈추지 않는 전진을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무리뉴 감독이라며 한없는 존경심을 표했고 무리뉴도 인테르를 떠나 바르샤로 향했을 때나 지금이나 즐라탄은 세계 최고의 선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난기 기질도 닮았는지 13-14 시즌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이 무리뉴의 첼시에 패배했을 때도 인터뷰 도중 난입해서 장난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운을 빈다고 할 정도.

  • 축구 선수 중 드물게 국내에서 이름으로 통하는 사나이. 대개의 축구 선수들은 웨인 루니의 루니, 리오넬 메시의 메시, 하비에르 사네티의 사네티, 아르연 로번의 로번(로벤) 등 성으로 불리지만 즐라탄은 즐라탄으로 통한다. 이유야 알다시피 성이 이브라히모비치로 길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아약스 초창기 이 성이 싫어 유니폼에 Zlatan이란 이름으로 붙이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약스 생활 후반기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Ibrahimovic로 마킹을 바꿨다.[50] 즐라탄이라는 이름은 보스니아어로 '황금'이라는 의미이다.

  • 라파엘 반 더 바르트와의 불화로도 유명한데, 이것은 그들이 아약스에서 같이 뛰던 시절 국가대표 친선경기로 만났을 때 반 더 바르트가 즐라탄이 자신을 고의로 부상을 입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51]

  • 국내에서는 대구의 누군가가 '이브라히모비치'로 개명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개명을 허가할 만한 이유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국적에 대한 혼란을 줄 수 있고 누가 들어도 외국인이라고 착각할 만한 이름이기 때문에 개명을 허가할 수 없다"고...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4596&yy=2011

  • 2010년 헤라르드 피케 선수와 이상야릇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찍혀 한동안 게이에 시달렸다.홍콩행 게이바 차림하고 나올때부터 알아봤다#



  • 소문난 자동차 매니아이다. 과르디올라가 바르사 훈련에 스포츠카 타고 오지 말라 했을때 괜히 싫어했던게 아니다. 꽤 후덜덜한 카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속 325km로 경찰차 달고 도로질주 해봤다고 하는걸 보면 본인도 어지간히 그 스릴을 즐기는 듯. 참고로 전세계에 399대 밖에 없는 페라리덕들의 로망엔초 페라리를 갖고 있다.ㅎㄷㄷ하다 그런데 이 엔초 페라리를 공짜로 얻었다는게 더욱 흠좀무. 그 이유는 유벤투스이적 당시 이적 조건으로 엔초 페라리 제공을 걸었기 때문이다. 유벤투스의 대주주인 아녤리 가문이 페라리를 보유한 FIAT 그룹의 소유주였기에 가능한 협상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쳐도 유벤투스 측에서는 엔초 페라리의 재고가 당시 단 세 대만 남은 상태였기에 난색을 표했다. 그 이유로 유벤투스는 구형 엔초로 퉁칠려고 했는데 즐라탄과 에이전트 미노 라이올라는 협상 불가를 고수했고 차후엔 직접 유벤투스 회장단과 협상을 시도해 평생 중고로 팔지 않는 조건으로 페라리를 획득하게된다. 그만큼 유벤투스가 즐라탄을 원했다는 일화이기도 하다.

  • 자신이 탑클래스임을 3인칭화로서 표현하는것으로 유명하다.당연히 귀엽게 보이려고 하는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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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라탄은 즐라탄이 차야한다고 생각한다." (프리킥을 차려는 마리오 괴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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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인 루니: 우리 모두 클론들을 파괴하고 싶어요. 하지만 클론들은 무적이에요!
    프랑크 리베리 :(툭)
    즐라탄 : "즐라탄도 동의한다."

  • 2014년 2월 24일 데일리미러와의 인터뷰에서 “EPL에 뛰었다면, EPL 수비수을 파괴해버렸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는 자존심 센 영국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되었다. 그런데 본인은 트위터로 이러한 발언을 한적이 없다고 한다. 역시 기레기가 문제... 그런데...정작 현지 축구팬들의 투표에서 63%가 긍정의 표를 던저(?) 그의 클래스를 인정했다;; 대다수의 축구선수가 이런소리를 하면 허세소리를 듣겠지만, 즐라탄이 하면 믿음이 간다는 반응들...

  • 한 기자가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하자 "그래서 니가 나보다 축구를 잘해?"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기자가 "아니"라는 대답을 하자 "근데 왜 그따위 질문을 하는거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영상 28초부터

  • 헌데 이렇게 거침없는 언변,상대방에 대한 디스,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격한 행동 때문에 사생활이나 바깥생활에 대해서 구설수에 오를 법한데...이 사람 신기하게도 바깥에서는 매우 조용하고 착한편이다(!) 몇몇 다른 선수들처럼 전혀 방탕하거나 문란한 적도 없이 언제나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지금 현재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었을 뿐, 타 감독, 스태프, 선수들은 모두 그를 높이 평가했다. 일례로 자신을 버리다시피한 부모들이 즐라탄이 유명해진 후에 찾아오자 내쫓거나 차갑게 대하긴 커녕 그냥 아무말없이 웃으면서 안아줬다.

  • 최근에 지적 장애인 축구단에게 거금을 기부한 것이 알려졌다!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지적장애인 축구단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출전비용을 대기 위해서 유명선수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과 각종 스포츠 물품을 판매하려고 즐라탄에게 전화를 하여 혹시 유니폼을 줄수 있냐고 물으니까 "그러지 말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내가 모든 비용을 다 대겠다"며 한화로 약 5300만원에 달하는 돈을 기부하였다. 그러면서 축구는 남녀노소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평등한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게 보면 도대체 왜 안티가 생기는 지 알수가 없다 그놈의 챔스랑 다혈질이 문제인 건가...

  • 최근에는 낚시에 빠진 듯 하다...

6.1. 겜덕후??

엑스박스를 상당히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PS2PS3도 즐겼다고. 가장 좋아하는 건 콜 오브 듀티. 그의 자서전에도 엑스박스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데,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벽 5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이래서는 안될 것 같아서 밤 10시 이후로는 게임을 안한다고 한다. 팀 동료들에게 엑스박스 원을 돌리기도 하였다. 언론에서 뭐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저 게임을 같이 하고 싶었던 걸 아닐까(...) 에이전트인 라이올라와 같이 게임을 할 때도 많다.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만난 게이머가 '한정판 시계가 구하고 싶은데 대기자가 넘 많아'라고 하니 '나 구할 수 있는데, 다음달 스톡홀롬 호텔로 와 구라 아님' 이라고 한 뒤 구해줬다고 한다. 그 게이머와는 친구가 되었다고.


외국에서도 그의 게임 사랑은 잘 알려져서 그가 뛰고 있는 프랑스에서 엑스박스 원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다. 그와중에 입은 태권도복 저게 태권도복?

7. 어록

실력도 뛰어나지만 실력못지않게 경기장 밖에서 남긴 말들도 걸작이다.

아래는 즐라탄이 그동안 남긴 말들이다. 실력없는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겠지만 실력을 갖춘 즐라탄이기에 인정받는 어록들. 게다가 3인칭화 화법을 실제로 자주쓰는지라 더욱 즐라탄이라는 이름이 돋보인다.역시 상남자 오오 즐라탄 오오 석천이형이 3인칭 화법을 쓰면 그렇게 징그럽다는 사람들이 즐라탄은 인정한다. 물론 몇몇 어록들은 즐라탄의 BAD ASS 이미지를 위해서 과장된 것들도 있고 즐라탄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날조한 것들도 있다. 어딜 가든 기레기들이 문제. 그런데 즐라탄이라서 사실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 "(하고 싶으면) 단단히 각오하고 즐라탄이 돼 봐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생일에 선물로 보낸 속옷에 적혀있었던 문구.[52]또한 즐라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 DARE TO ZLATAN

  • "나는 즐라탄이다."(I AM ZLATAN)

  • "즐라탄은 오디션따윈 보지 않는다."
    ㅡ 17세의 나이로 아스날 입단이 확실시되던 때 아르센 벵거 감독의 입단 트라이얼을 거부하며 17살의 패기 오오하지만 훗날 나온 자서전에 밝힌 바에 의하면 잘못된 말이고 실제론 입단 트라이얼 봐야하는거 아냐? 의심스러운데~ 라는 농담에 발끈하여 "당장 축구화를 가져와라."였다고 한다. 이것도 상당히 패기가 넘친다.

  •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즐라탄을 가졌기 때문이다."
    ㅡ 여자친구의 약혼 선물로 무엇을 주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 "내가 게이인지 궁금하면 오늘 저녁 내 집으로 와라. 당신 여동생도 데리고 와라."이놈이?!
    ㅡ 혹시 게이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 "보통 수준의 선수에게는 보통 수준의 클럽이 더 어울린다. 그에게는 레알보다 바르샤가 더 낫다."
    ㅡ 자신과 비교되는건 즐라탄에게 영광이라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인터뷰에 대한 화답. 기자가 발로텔리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에 대해 묻자 발로텔리와 바르샤를 동시에 디스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오오 즐라탄 오오

  • "그들은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몰았다."
    FC 바르셀로나에서의 부진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 "카레브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걸 나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ㅡ 욘 카레브가 자신의 실력에 대해 디스하자 곧바로 맞받아치며

  • "파리에서 집을 구하는 중이다. 마땅한 곳이 없다면, 그냥 호텔을 사버릴 것이다."
    파리 생제르망 이적 직후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 "나 없는 월드컵은 아무 의미 없다."

  • "사실 난 비행기를 질렀어. 그게 훨씬 더 빠르니까."
    페라리를 구입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 "호날두는 메시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걸 바로 앞에서 지켜본다.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ㅡ 사실 즐라탄이 한 말이 아니라 언론이 지어낸 말이다.

  • "만약 내일 맨유가 첼시를 이긴다면, 나는 축구를 은퇴하겠다."
    ㅡ 13-14시즌 맨유의 부진에 첼시와의 일전을 앞두고 곧바로 디스. 경기는 3대1로 첼시가 승리했다.그래도 토토는 하면 안 된다

  • "클롭, 난 언제 영입할꺼야" - "이 녀석아, 너 영입하려면 우리 선수단 다 팔아치워야 돼."
    "괜찮아, 자유계약이 있잖아!" - (옆의 인터뷰하던 직원에게)"이거 들었지?? ㅋㅋ"
    "나는 도르트문트를 자유계약으로 갈꺼야!!ㅋㅋ" "파리는 아직 이 대화를 몰라ㅋㅋ"
    ㅡ 푸스카스상을 받으러 온 2013 FIFA 발롱도르 시상식장에서, 인터뷰중 뒤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위르겐 클롭이 지나가자 인터뷰를 끊고 곧바로 말을 걸고 클롭 감독과 대화한 내용이탈리아어 자막있음

  • "나에게 반대발은 없다."
    ㅡ 2013-14 UEFA 챔피언스 리그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16강 1차전에서 반대발(왼발)로 멋진 골을 넣었다는 기자의 질문에 응답.

  • "이봐, 트위터. 즐라탄은 140자 이상이 필요하다. 즐라탄을 위해 규칙을 바꿔달라."
    ㅡ 2014년 3월 9일 즐라탄이 트위터에 올린 글 출처 오오 즐라탄 패기

* "카바니에게 패스를 안 한다는 말이 있다."

8. 기록

8.1. 득점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 컵대륙대회
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
1999 말뫼 FF 스웨덴 알스베스칸 6 1 0 0 0 0 - - -
2000 말뫼 FF 스웨덴 알스베스칸 26 12 0 0 0 0 - - -
2001 말뫼 FF 스웨덴 알스베스칸 8 3 0 0 0 0 - - -
2001/02 AFC 아약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24 6 4 3 1 1 6 2 0
2002/03 AFC 아약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25 13 1 3 3 0 13 5 1
2003/04 AFC 아약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22 13 7 1 0 0 8 2 0
2004/05 AFC 아약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3 1 1 - - - - - -
2004/05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5 16 0 0 0 0 10 0 3
2005/06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5 7 1 2 0 0 9 3 1
2006/07 인터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7 15 5 2 1 0 7 0 2
2007/08 인터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6 17 13 0 0 0 7 5 0
2008/09 인터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5 25 8 3 3 0 8 1 3
2009/10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9 16 9 2 1 0 10 4 2
2010/11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4 13 4 3 0 8 4 0
2011/12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2 28 9 3 1 0 8 5 5
2012/13 파리 셍제르망 프랑스 리그앙 34 30 8 3 2 1 9 3 7
2013/14 파리 셍제르망 프랑스 리그앙 28 25 11 4 5 1 7 10 0

8.2. 개인 수상

  • 골든 풋 (1): 2012
  • FIFA 푸슈카시상 (1): 2013
  • FIFPro 베스트 XI (1): 2013
  • UEFA 올해의 팀 (3): 2007, 2009, 2013
  • UEFA 유로 올스타 팀 (1): 2012
  • UEFA 유로 2012 맨 오브 더 매치: 스웨덴 vs 프랑스
  • UEFA 유로 2008 맨 오브 더 매치: 그리스 vs 스웨덴
  • UEFA 유로 2004 맨 오브 더 매치: 이탈리아 vs 스웨덴
  • UEFA 챔피언스리그 2012-13: 최다 어시스트
  • ESM 올해의 팀 (3): 2006–07, 2007–08, 2012–13
  • 리그 1 올해의 선수 (1): 2012–13
  • 리그 1 올해의 팀 (1): 2012–13
  • 리그 1 득점왕 (1): 2012–13
  • 세리에 A 득점왕 (2): 2008-09, 2012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5): 2005, 2008, 2009, 2011, 2012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3): 2008, 2009, 2011
  • 세리에 A 올해의 팀 (2): 2010–11, 2011–12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1 맨 오브 더 매치
  • 세리에 A 이달의 선수: 2012년 1월
  • 굴드볼렌 (8): 2005,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 예링프리세트 (1): 2007
  • 스웨덴 올해의 남자 운동선수 (2): 2007, 2010

8.3. 대회 실적


  • AFC 아약스 (2001/02 - 2004/05)
    • Eredivisie (2) : 2001/02, 2003/04
    • KNVB Cup: 2001/02
    • Johan Cruijff Shield: 2002

  • 유벤투스 (2004/05 - 2005/06)
  • 인터밀란 (2006/07 - 2008/09)
    • Serie A (3) : 2006/07, 2007/08, 2008/09
    • Supercoppa Italiana (2) : 2006, 2008

  • FC 바르셀로나 (2009/10)
    • La Liga (1) : 2009/10
    • Supercopa de España (2): 2009, 2010
    • UEFA Super Cup (1) : 2009
    • FIFA Club World Cup (1) : 2009

  • AC 밀란 (2010/11 - 2011/12)
    • Serie A (1) : 2010/11
    • Supercoppa Italiana (1) : 2011

  • 파리 셍제르망 (2012/13 - )
    • League 1 (2) : 2012/13, 2013/14
    • Trophée des champions (2) : 2013, 2014
    • Coupe de la Ligue (1) : 2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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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이키의 즐라탄 캠페인 "(하고 싶으면) 단단히 각오하고 즐라탄이 돼 봐라."라는 의미로 즐라탄의 거칠것 없는 성격을 잘 드러낸 캠페인으로 평가받는다
  • [2] 역대 최다 득점 기록
  • [3] 아버지는 무슬림 보스니아계이며 어머니는 크로아티아계이다. 종교는 어머니를 따르는지 카톨릭이라고 한다.
  • [4] 그것도 프리메라리가 MVP였던 전반기는 전부 잘라먹고 전술의 포커스가 다시 메시에게 감으로서 부진했던 후반기 위주로 서술되었다(...)
  • [5] 이는 즐라탄의 1차 전성기라 할수 있는 2006~09 시절 EPL이 떠오르면서 세리에의 인기하락이 한몫하고 거기에 더불어 즐라탄 본인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였던 이유가 크다
  • [6] 이곳 저곳 많이 옮겨 다녀서.
  • [7] 칭찬이 아니다. 리그에서만 잘한다고 리그왕이다(...). 그러나 밀란으로 이적해서 밀란마저 우승시킨 이후에는 반 정도는 칭찬과 경외가 담기게 되었다. 사실 이브라히모비치의 경력 중 대부분의 시즌은 리그 우승을 경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런 말이 생겼다. 근데 밀란이 위닝에서만 우승하는 클럽도 아닌데 왜 이런 취급인지... 그 전 3 시즌동안 밀란이 해메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표현인 듯 하다. 밀란에서 즐라탄은 정말 혼자서 공격을 이끌었다.
  • [8] 이게 충격적인 게 전성기를 보낸 인테르, 어린 시절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한 아약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던 유벤투스 전부 그의 디스를 피해갈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전술상의 이유로 버려진지라 말할 필요도 없다. 밀란에서 다시 한번 자존심을 세우고, 자신의 클래스를 여실히 증명한 게 매우 큰 이유인 듯하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의해 재정 문제를 이유로 PSG로 반강제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즐라탄도 갈 생각이 없었는지 무턱대고 연간 14M 유로라는 거금을 내질렀는데 PSG는 그걸 또 수락했다(...).) 밀란의 무운을 빌어주고 나중에 돌아갈 수 있으면 다시 밀라노로 가겠다는 등 즐라탄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
  • [9]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 125회에서 책의 감수를 맡은 한준희가 이야기하기론, "한 4~50명하고는 원수가 될꺼 같아요. 이 책을 읽어보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에 대한 욕입니다!"
  • [10] 1979년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거둔(우승은 노팅엄 포레스트) 팀으로 역대 스웨덴 구단에서 가장 화려한 챔피언스 리그 성적을 거둔 팀으로 UEFA 컵 우승 2회(1982,87년)을 거둔 IFK 외테보리와 더불어 스웨덴 리그 명문이었었다.
  • [11] 즐라탄은 자서전에서 자신에게 바르셀로나시절 경험한 스페인의 훈련방식은 자신에게 너무나 맞지 않았으며, 기량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12] 위 항목의 야악스 시절 사진과 비교하면 확실히 덩치가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유벤투스 입단 당시 75kg에 불과한 말라깽이였는데, 유벤투스의 체계적인 선수관리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98kg까지 벌크업 한다
  • [13] 사실 두번째 시즌인 2005-06시즌 즐라탄의 실제 활약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경쟁상대가 다름아닌 피에로다보니 유벤투스의 레전드를 후보로 밀어낸걸 용납하지 못한 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여기에 마침 이때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모 게임에서의 능력치가 너무 지나치게 좋다 보니 더 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격세지감.
  • [14] 새로 부임했던 파비오 카펠로가 델 피에로를 내친 것과도 연관된다. 카펠로가 독불장군인 건 축구계 상식수준. 뭐 그래도 알레가 부상과 슬럼프로 골골댔던 건 사실이다.골골 40
  • [15] 만치니는 리버풀에게 패배하고 사임을 발표했다. 후에 번복하는 듯한 인터뷰를 했지만 사임은 예정된 일이었다
  • [16] capocannoniere, 세리에 A 득점왕을 의미
  • [17] 칼치오폴리로 획득한 타이틀까지 포함하면 4연패
  • [18] 단 팀내 위상은 즐라탄이 더욱 높았다. 파트너인 리오 크루스, 에르난 크레스포, 우주 쓰레기 멘탈들이 즐라탄 만큼의 파괴력을 내지 못했으며, 즐라탄이 빠지면 공격루트가 마이콘의 오른쪽밖에 없을 정도로 단조로워졌다.
  • [19] 바르샤는 에투가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섬세한 라인조절 능력으로 상대방의 뒷공간을 파고들며 상대 라인을 교란시키면 날개들이 난동을 피우는 것이 단골 패턴이었고, 인테르는 스네이더가 오기 전에는 즐라탄의 골키핑과 마이콘이 오버래핑을 통해 공격을 풀어 나갔다.
  • [20] 그런데 약간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은 것이 바르셀로나는 즐라탄이 피지컬을 살려 비벼주는 역할을 바랬는데 이때의 인테르의 중앙 수비는 루시우와 사무엘이었다. 이 두명도 상당히 피지컬이 좋은 공격수일지라도 뚫기가 힘든데 쉽게 말하면 맨유의 퍼디난드-비디치 라인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인테르와의 챔스전에서는 사비도 패스를 했으나 막히는게 다반사였고 메시마저도 하비에르 사네티한테 막히고 사무엘과의 협동수비로 나올 때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서 즐라탄에게 비판을 몰아세우는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
  • [21] 바르샤 시절 감독과 사이가 굉장히 매우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도 하고(...) 즐라탄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자신을 대놓고 피했다고도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다. 1년 전 이맘 때 과르디올라 감독이 즐라탄 데려오고 좋아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다. 물론 이 부분은 즐라탄 본인만의 주장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펩은 둘 사이의 일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 [22] 메시에 비해서 고작이라는 표현을 쓴 거지 즐라탄이 못하는 축구 선수가 아니라는 거다. 이 점은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 사실 메시와 비교해서 "고작" 소리 안 들을 축구 선수가 어디 있나.물론 이 사람요사람같은 유니버셜 파워는 빼자
  • [23] 말그대로 무시. 몇 주 동안 눈도 안 마주치고 대화를 일부러 피하거나 같은 방에 있기도 싫어했으며 즐라탄의 허벅지 부상에도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 [24] 내한 당시 인터뷰에서도“항상 내가 넘버원이라고 생각한다”며 메시와의 비교에서 자신이 밀리지 않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 [25] 그러나 이전의 비야의 골 결정력을 보았을 때 지금의 모습은 그에 못 미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 이적하면서 외모까지 너프되었다.
  • [26] 다만 이게 오히려 자존심 강한 즐라탄의 이적 결심을 앞당겼다는 썰도 있다. 물론 메시는 좋은 뜻에서 한 일이겠으나..
  • [27] 이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는 파리 생제르맹 이적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 [28] 즐라탄은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 펩을 말할때 철학가라고 언급한다. 그 이유는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인다는 의미다(...)
  • [29] 칼치오폴리로 박탈당한 유벤투스의 우승까지 포함할 경우
  • [30] 홈 팀이다.
  • [31] PSG는 돈지랄의 이미지와는 달리 주급 체계가 상당히 건실한 편인데 PSG에서 유이하게 이러한 주급 체계를 깨면서 엄청난 고액 주급을 받는 딱 두 선수가 있다. 바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치아구 시우바.공교롭게도 둘 다 밀란에서 왔네? 일반적인 주전 선수가 한화로 주급 약 1억 안팎을 수령하는 PSG에서 즐라탄은 거의 4억이 넘는 주급을 수령하고 있고 시우바 역시 약 3억 가까이 수령하고있다. PSG에서의 그 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 PSG의 다른 선수들도 이에 대해 딱히 불만이 없는 것을 보면 이 둘의 실력이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 [32] 참고로 즐라탄이 밀고 있는 세레모니는 호나우두의 세레모니와 동일하다. 진성 호돈신 덕후 호나우두는 인테르 초창기까지 이 세레모니를 했으나, 나중에는 손가락 세레모니로 변경했다.
  • [33] 중거리 슛이 정말 예술이다. 영상
  • [34] 동시에 카바니가 PSG서 부진하다고 욕 먹는 결정적인 경기가 되기도 했고
  • [35] 본인 성격 상, 계속 축구를 하고 싶어서 실력이 저하되어 하부 리그나 별 이름없는 구단에서 뛰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기에 정상에 있을 때, 그 상태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 [36] 이는 스웨덴 축구역사에 관심이 적은 국내 정서도 한몫한다. 다만 골을 넣는 능력만큼은 국대 탑 스코어런 즐라탄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 [37] 현지에서는 그레-놀-리(Gre-no-ri)라 불리던 스웨덴 삼총사 그 유명한 AC 밀란과 네덜란드의 오렌지 삼총사의 명칭도 이 스웨덴 삼총사에서 따왔다. 구성 멤버는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이자 역대 세리에 A 득점 3위 군나르 노르달, 패스 마스터이자 명장였던 닐스 리드홀름, 역시 노르달과 마찬가지로 스웨덴의 전설적인 공격수인 군나르 그렌이다. 이 중 노르달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르달은 리드홀름, 그렌과 함께 50년대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즐라탄은 7년만에 밀란에게 스쿠데토를 안겨주었고 밀란이 클럽 커리어 마지막 팀이라며 공공연히 말해왔다.하지만 베새끼가 파리로 넘겨버렸다 국가대표 커리어로는 스웨덴의 최전성기를 이끈 노르달에게 밀리는 감이 있다.
  • [38] 슛!인 줄 알고 수비수는 몸을 날리고 카메라도 골문을 잡았지만 훼이크다 ㅄ들아! 이걸 몇 번씩 하면서 수비진을 농락하다 결국 집어넣었다. 축구에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관련 영상이나 움짤은 한번쯤 검색해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 [39] 수정 전에는 왜 인지 오니우가 일방적으로 맞은듯한 뉘앙스로 작성 되어있었으나 기사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방적인 폭행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즐라탄도 갈비뼈에 골절을 입었고 '서로 죽일뻔 했다.' 라고 표현했으며, 다른 기사에서는 시비가 붙어서 싸우기는 하는데 자기 생각에도 오니우가 꽤나 후덜덜한 상대였다고 인터뷰 한적도 있다. 물론 그 후덜덜하다는 상대한테 전혀 안 쫄고 같이 싸웠다는게 함정
  • [40] 실제로 이때는 정말 즐라탄 하나만 세워두면 전술이었다.
  • [41] 클래식 팀까지 포함시키면 최고의 사기캐릭터는 디에고 마라도나 뤼트 휠릿이다. 스피드는 호날두에 비해 느리지만 성능은 즐나탄+야투레+다니에우 아우베스를 믹스시켜 놓은데다 포지션은 골키퍼, 센터백제외하고 전부 파란불이 켜진다. 마라도나가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가장 쓰기쉬운 사기캐릭터이지만 유틸성은 시궁창이라 마라도나가 죽어버리면 클레식아르헨은 현역 아르헨보다 못한팀이 되버린다.
  • [42] 메시의 특성이기도 하다. 대신 마라도나 마냥 수비진을 이리저리 휘저을 수 있다. 호날두에 비해 상급자용 캐릭터
  • [43] 위닝 시리즈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피파 마냥 개인기량(특히 속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겨서 디디에 드록바같은 속도가 어정쩡한 피지컬 플레이어는 상급자용 캐릭터가 돼버렸다.
  • [44] 이 경우엔 루카 토니, 앤디 캐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해당된다.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경우엔 즐라탄 마냥 만능이지만, 즐라탄에 비해 능력치가 다소 어정쩡하다.
  • [45] 일반적인 유저들의 생각과 다르게 n카는 n-1~n시즌 성적과 n~n+1시즌 소속팀을 기반으로 만든다. 즉 11즐라탄은 AC 밀란이 우승한 10~11시즌의 성적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즐라탄 개인의 성적은 11~12 시즌(PSG 소속으로 되어있던 12즐라탄)보다 나빴는데 카드 성능은 11이 훨씬 좋다.
  • [46] 당시 유베, 밀란의 승점 삭감으로 어부지리로 우승한 감도 있고, 즐라탄 영입이 없었다면 스쿠테토 5연패 또한 불가능했다고 대다수의 언론 및 평론가가 평함.
  • [47] 즐라탄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프리 롤로 풀어주면서, 공격 전개와 득점 루트에 관련된 공격 분야의 모든 것을 즐라탄에게 맡겨줘야 하는데, 과르디올라가 애당초 그런 수준의 프리롤을 부여하지 않으며 또한 주요한 득점 루트의 선택지는 리오넬 메시였다. 그리고 그로인해 두 선수가 전술적으로 겹쳐서 벌어진 효과는 도리어 마이너스였다. 평소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즐라탄은 이 때 멘탈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은 듯. 그런데 바르셀로나 시절에 못했다고 까이는데, 전반기 라리가 MVP가 이브라히모비치였다. 후반기 메시의 복귀와 함께, 역할이 겹치면서 즐라탄을 버린것이다.
  • [48] 불과 6년전 29살의 안드리 셰브첸코의 이적료가 3000만 파운드였는데, 역대 EPL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였다. 페르난도 토레스토레기의 이적료가 미칠 정도로 과도한 것일 뿐.
  • [49]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에서는 선수들이 땅에 발을 붙이고 지내지/즐라탄: 그건 당연하잖아요?/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에는 훈련장에 차를 타고 오는 선수가 없다는 말이다!/즐라탄: '정말 쓰레기 같은 얘기였지' - I'm Zlatan Ibrahimovic' 中. 이 내용은 주간 서형욱에서 짧은 드라마 형식으로 방송한 적이 있다.
  • [50] 단 위닝일레븐 같은 게임에서는 Z.Ibrahimovic 혹은 Ibrahimovic로만 표시되기때문에 위닝 등에 익숙한 팬들사이에서는 이브라히모비치, 줄여서 이브라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성은 무슬림 이름인 이브라힘(Ibrahim)에서 따온 것이다.
  • [51] 즐라탄 본인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비난하며 고의적으로 태클을 한게 아님에도 반 더 바르트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당시 상황(http://www.youtube.com/watch?v=MZauTLXYOJA)을 보면 분명히 고의적으로 노리고 태클을 한게 맞다. 그래서 사건 이후 즐라탄과 원수가 된 라파엘 반 더 바르트는 급기야는 http://www.youtube.com/watch?v=en3-Y2kUgag&feature=player_embedded 이런 짓 까지 하였다.
  • [52] 호날두가 본인 이니셜을 딴 속옷브랜드(CR7)를 운영하는 걸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