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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last modified: 2015-04-14 02:03:1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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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앙에서 세계의 중앙으로

하늘이 명하는 것이 나의 본래 모습이요,
나의 본래모습을 따르는 것이 나의 길이요,
나의 길을 닦는 것이 나의 배움이다.
내 몸을 닦고 닦아 하늘의 명을
매일 매일 새롭게 하노라.
내 몸의 기운이 하늘과 땅에 가득차니
나는 천지간에 우뚝 선 대장부로다.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천리를 실현하며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며
인간세의 무궁한 아름다움을 이어가리.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앙인,
의에 죽고 참에 살자.
- 중앙대훈(中央大訓), 김용옥[1], "의혈유서" 中

개교년도 1918년[2]
상징 동물 청룡[3]
교목 느릅나무
교색 파란색(CAU Blue)
교훈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설립자 승당 임영신 박사[4]
中央大學校, Chung-Ang University, 영문 약자는 CAU. Central University

Contents

1. 개요
2. 캠퍼스
3. 개설학과
4. 대학원
5. 동아리
6. 총학생회
7. 축제
8. 출신 인물
9. 웹사이트
9.1. 중앙대 포탈
9.2. 중앙인
9.3. 중앙대 갤러리
10. 스폰서 두산 그룹
11. 이것저것
11.1. 사회 관련
11.2. 입시 관련
11.3. 이외 사건사고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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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대한민국의 사립대학교. 일제강점기 유치원을 기반으로 한 초급학교에서 시작하여 4년제 대학교로 성장한 이력을 갖고있다.

1918년 4월 모태인 중앙유치원이 설립되었으며, 이후 교사 양성 기관으로 사범과가 설치되었다가 1922년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며 학교는 개인 가정 집으로 옮겨갈만큼 수모를 겪었다가 1933년 임영신 선생에 의해 인수되어 발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변변한 건물도 없이 학교 운영이 계속 어려움을 빚자 임 선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뜻을 같이 하던 애니 파이퍼 여사 등의 도움으로 파이퍼 재단을 세워[5] 흑석동 부지에 영신관을 지었고, 중앙대는 이때부터 흑석동에 기틀을 잡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 민족 말살 통치가 거세지자 폐교되었던 중앙보육학교는 해방 후 9월 다시 문을 열었고, 1948년 5월 드디어 '중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6.25 전쟁 도중에도 부산에서 강의를 계속하였던 중앙대학은 1953년 대학교로 승격되었고, 1959년에는 4개 대학 19개 학과 규모로 성장한다.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1956년에는 파이퍼홀이, 1959년에는 중앙도서관이 준공되었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중앙대 학생들은 대거 시위에 참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6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6] 중앙대의 FM의혈중앙4.19혁명 당시 시위에서 희생된 6명의 학생들을 기리는 의혈탑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혈탑은 중앙도서관 정문 근처에 있으며, 자세한 내력은 도올 김용옥이 쓴 '의혈유서'라는 글에 기록되어 있다. 의혈탑에 쓰여있는 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남으로부터 싸워 올라가
마침내 사월학생혁명 그 대열에
기를 높이 올렸다.
그러함에 있어 우리들은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
조국의 자유와 독립
민주와 번영
생존의 평등 평화를 위하여
모든 지성 모든 생명 모든 사랑을
다하여 아낌이 없었다.
그리하여 여섯명의 벗을 잃었으니
아! 슬프도다 4월이여! 광영이여!
벗의 이름으로 끝이 없어라
의혈탑 비문, 조병화[7]

이후에도 중앙대는 1971년 대학병원을 세우고 서라벌예술대학을 합병하는 등 계속 성장해나가면서 1980년 안성에 제 2 캠퍼스 건립이 시작되었다. 수십년간 새로운 대학과 학과들이 생겨났으며 각종 건물들이 세워졌고, 2008년에는 두산그룹을 법인으로 영입하였다.

2. 캠퍼스

중앙대학교/서울캠퍼스중앙대학교/안성캠퍼스 항목 참조. 안성캠퍼스 문서의 신캠퍼스 문단도 참조하면 좋다.

3. 개설학과

중앙대학교/학과 항목 참조.

7. 축제

2009년부터 축제명을 루카우스(LUCAUS)로 바꾸었다. 이는 학생들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Let's Unite, CAUs 를 의미한다.

다른 대학교들과는 달리 그동안 축제를 2학기(10월 정도)에 했었으나, 2011년부터는 5월 말로 앞당겨졌다. 이와 관련해 학우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명 초대가수로는 2005년 싸이/임정희, 2009년 소녀시대, 2010년 보아, 2011년 2NE1, 2012년 f(x) 등이 있다.

8. 출신 인물

9. 웹사이트

9.1. 중앙대 포탈

포탈 기존 종합정보시스템, E-CLASS 등으로 분산되어 있던 학사 홈페이지들을 통합하여 2011년 개설한 포탈 사이트.

수강신청, 성적정보, 장학정보, 교내메일, 재택강의 등 모든 학사 행정을 포탈을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크롬, 사파리, 파이어폭스 등에서도 정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웹 표준을 준수하여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개설 초기에는 느린 서버속도와 버그 등으로 불만이 다수 제기되었으나 학교측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점차 개선되고 있다.

공식 스마트폰 앱인 smart CAU를 통해 모바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신입생의 경우, 모바일 앱을 이용하면 학생증 발급 전까지 도서관 출입을 할 수 있는 QR코드를 쓸 수 있다.

9.2. 중앙인

한동안 커뮤니티라고는 중앙대 자유게시판밖에 없었지만, 2008년 두산재단에서 중앙대학교를 인수하자마자 공식 커뮤니티인 중앙인을 개설했다. 디씨인사이드중앙대 갤러리와 함께 학내 커뮤니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0. 스폰서 두산 그룹

이전 재단이었던 김희수 재단이 학교에 아예 투자를 하지 않았던 탓[8][9]에 동창회 및 학교측에서 지속적으로 교체를 요구해오다가[10]2008년 5월에 STX, 롯데, 두산 중 가장 학교 육성에 대한 열의가 크다고 판단된 두산 그룹으로 재단이 교체되었다. 이후 엄청난[11] 규모의 투자가 아뤄졌으며 교내 분위기가 매우 희망적으로 바뀌었고, 일선 교사나 수험생들로부터 서열 급간 내에서의 선호도도 올라갔다. 그러나 일방적인 구조조정 통보 등 독단적 의사결정에 대한 반발도 상당하고, 두산그룹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찰을 진행했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나오는 등의 트러블도 있다. 하지만 분명 두산재단은 중앙대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고, 중대생들은 두산재단을 이전재단보다 좋아하고 자랑스러하는 편이다. 반면 콤플랙스로도 작용하는데, 이유는 부동의 재계 1위 삼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신문에 따르면 , 두산 재단 영입 이후 입시에서 전체적인 경쟁률이 상승했으며, 전년도에 비해 5~10점 가량 점수가 상승했다고 한다. 2009년 수시모집에서는 6만 3천명이 넘는 수험생이 지원했다. 2010년 수시모집에서는 그보다 44.7% 증가한 9만 1천여명의 수험생이 지원했다.

교내외 행정, 홍보, 장학금 등 여러 부분에서 재단의 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2008년 5월 이후 580억원 규모의 전입금을 확충하였고, 시설투자비만 무려 1260억원이다. 게다가 2012를 기점으로 신기숙사, 신경영경제관 등 각종 신축공사가 시작될 예정인데, 현재 이를 위해 조성된 기금이 2000억대에 육박(기숙사 600억 내외, 경영경제관 1200억 내외)한다! 지금까지의 누적금액으로 산정할시 인프라 투자에만 3000억원대 투자가 진행되는 셈! 그리하여, 학교 전체가 공사판이 되어 인프라의 발전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모든 공사는 두산건설에서 담당하고 있다. 혹자는 두산건설에서 시공마진을 챙긴다는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두산건설의 경우 거의 시공원가에 가까운 수준에서 건설비를 책정하여 시가보다 저렴하게 시공해주고 있다.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들은바를 이야기하면 경영경제관의 경우 시중 건설회사가 이윤을 책정하여 시공하면 적어도 1500억에서 2000억 정도 시공가가 나온다고 한다. 중앙대는 두산의 참여로 큰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재단이 교체됨으로써 대학 서열을 뒤엎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하지만 삼성이 버티고 있는데? 삼성이 모든 대학을 다 가지고 있는건 아닌데? 성균관대 빼고 다른 대학이랑 뒤엎나보지

중앙대학교 학생증은 두산그룹 직원 대우를 받기에 KFC버거킹 할인이 적용된다. 두산이 버거킹을 매각해버리는 바람에 혜택이 끝날 줄 알았으나 아직도 적용된다. KFC도 여러 차례 매각을 시도했고 지금도 매각 절차를 밟고 있어서 KFC쪽 혜택도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두산이 외식사업 쪽에서 철수하는 분위기인지라…. 이외에 두산 베어스의 홈구장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홈경기에 한해 중앙대 학생증을 제시하면 레드석 이하 좌석을 재학생 본인에 한해 현장에서 천원 할인받을 수 있다. 다른 팀 유니폼 입고 당당히 두산 할인을!

11. 이것저것

11.1. 사회 관련


  • 의혈이라는 학교 슬로건답게 과거 운동권의 주축이었던 학교 중 하나. 서울대나 고려대와 같은 화려한 활약은 없지만 중앙대가 한강을 건너면 역사가 바뀐다라고 자평할 정도로 굵직굵직한 현대사에 참가해왔음을 자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4.19 혁명6.3항쟁. 본교 출신인 이재오 특임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연도 6.3항쟁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학생들은 요즘 대학생들처럼 사회 참여에 관심이 없다. 일례로 박범훈 총장이 2007년 특정 후보 대선 캠프에 참여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때 무려 70학번 선배들을 주축으로 20여명의 많은 선배가 모여 교내에서 박범훈 총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전날 학교 커뮤니티의 폭발적인 지지반응과는 달리 대선배들이 주최한 집회에 딸랑 30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 모여 초미니집회를 벌이게 된 흑역사가 있다.

    참고로 이 때는 중앙대의 공식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학교 홈페이지 상에서의 자유게시판 정도가 커뮤니티라 부를만한 유일한 창구였는데, 당시 재학생들의 반응은 결코 폭발적이지 않았다. 애당초 해당 게시판은 실명제였던데다가 이용자 수 역시 상당히 적었던 수준.

  • 참여정부 시절에 이뤄진 로스쿨 인가 당시 로스쿨 인원 발표 하루 전날 모 신문 측에서 평가자료를 입수하여 인원을 미리 발표했는데, 여기서 80명 정원을 배정받은 것이 확인되자 반짝 축제 분위기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공식발표날은 중앙대가 30명이 줄은 50명으로 나왔다. 흑역사이자 설레발 이었던 셈.

    인가를 받지 못한 대학들의 항의때문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원이 감축된 것이 아니라 몇몇 대학만이 감축당했으며, 또한 그 감축 때문에 후보 대학들에 대한 평가는 이미 완료된 시점이었고 그 평가대로 인원이 배정된 것인데도 로스쿨별 인원 수의 순위가 바뀌었다.

    어쨌거나 이 사건 때문에 지금도 많은 동문들이 이를 박박 갈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교수님들과 로스쿨쪽은 시큰둥한듯.

  • 2009년 정권에 대한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서울대에 이어 2번째로 참여했다.

  • 2011년 5월 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학교에 내왕하여 중앙대 학생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1.2. 입시 관련

  •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 중 하나였다.

  • '6개 사립대학 공동 입시 설명회'에 참가하는 대학 중 하나이다. 나머지 5개교는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한양대. 예전엔 7개 사립대학이 공동으로 여는 설명회였으나 연세대학교는 2009년 탈퇴해서 참가하지 않고 있다.

  • 2011년 3월 오르비스 옵티무스서성한 게시판이 '서성한중'으로 바뀐 것을 두고 대학본부 측에서 "이제 중앙대가 상위권 대학 타이틀을 얻은거 아니겠느냐"는 성명을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심지어는 오르비 게시판명이 바뀐 것에 대해 이사장과 총장도 홍보처의 노고를 특별히 격려했다고 설명했다.이를 지켜본 한겨레 측에서는 이 사실을 인용하여 "아이들의 대학서열 놀이에 대학 본부까지 가담하는 것인가"라고 강하게 지적하였다. 심지어 중앙대 학우들 사이에서도 이런 해프닝으로 설레발을 칠 이유가 없다는 성찰이 오갔으며, 오르비스 옵티무스의 서성한중 게시판은 각 대학의 훌리건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혼란을 빚게 되었다.

  • 중앙대의 입결이 두산 재단의 인수 이후 상승세라고 학교 입학처나 홍보처등에서 밝히고 있다. 입결이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나, 중앙대의 모집정원 대비 정시 비율은 극히 적기로 악명 높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줄어든다. 같은 중경외시 라인에 위치한 학교들과 비교해도 적다.

    대학알리미에 나온 정시선발비율을 봤을 때 중앙대학교의 정시 선발율은 36%인데, 경희대학교는 47.78%, 서울시립대는 60.74%, 한국외대는 40.95%이다. 또한 2014학년도 기준 중앙대학교의 경영학과 정시 인원은 가/나/다 군 기준 37/37/30 명이며, 성균관대의 경우 가/나군 기준 35/56명, 경희대는 가/나/다군 기준 39/34/15명이다. 서울시립대의 경우 나/다군 기준 50/30명이다.

    경영학과 기준으로 볼시 중앙대는 가/나/다군 으로 같이 분할했던 경희대보다 104명대 88명으로 16명이 더 많으며[12], 군별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히 정시 비율이 적다는 것만으로 폄하될 사항은 아니라고 중대 훌리건들은 주장하지만 사실 중앙대 경영대는 정원이 많기로 유명하다. 뽑는 비율로 따지면 확실히 정시 모집 인원이 적은 게 맞다. 또한 추가합격 입학성적 표본을 감추기 위해 14년 정시부터 예비번호를 1번까지만 주는 병크를 벌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외대, 경희대보다 입학성적이 근소하게 높기는 하지만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우위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 서연고중성.JPG
    [JPG image (Unknown)]


    2010년 입시 당시 중대신문의 중대 입학처장 인터뷰 기사가 주목을 받았다. 기사만 읽으면 일반적인 대학교 입학처장의 홍보 인터뷰로 보이지만, 서연고, 중!’으로 건배!라는 제목이 수험생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훌리건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었다.

    결국 수능 갤러리4년제 대학 갤러리,훌리건천국 등 대학 훌리건들의 전쟁터에서 중앙대학교를 조롱할 때 쓰는 멘트로 쓰이고 있다.[13] 간혹 중대 훌리건들 중 저러한 멘트를 사용하는 경우도 보이나 중대 훌리건들이 아니란 것이 중론. 사실 중대 훌리건들은 서연고 중성은 잘 안하고 서성한중을 주로 한다

    서연고중성이 되고 싶다면 중성화수술받아야 한다 카더라

  • 2015학년도 수시모집에서 무려 80,000 여명이 지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양대가 논술전형 수능최저등급을 아예 없앤 탓인지 수험생들이 중앙대로 몰린듯하다. 심지어 화학신소재공학부는 논술전형 마감경쟁률이 155대1 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 해 중앙대학교는 원서 접수비로만 48억(!)을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 논술에 대해서는 중앙대학교/논술 항목을 참조. 다만 이 항목은 업데이트가 상당히 미진하다. 항목에 언급되어있는 논술 백서, 논술 가이드북을 직접 참고하길 권장한다.

11.3. 이외 사건사고

  • 2010년 5월 6일 법학관 13층에서 대학원생 모(28세)씨가 투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살의도였으나 다행히 3층 차광막 위로 떨어졌고, 차광막 재질이 알루미늄처럼 약한 금속이었던 지라 충격이 상쇄되면서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당시 시간대는 낮시간대인 데다가 떨어진 위치가 학생들이 담배피러 나오는 테라스위치였던지라 법학관 내에서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목격했으며 바로 119에 신고, 중앙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후 총장단 등이 방문하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게 공식적인 발표였으나 이후 사태는 불명
  • 2013년 10월 2일 법학관 14층 옥상에서 중국인 유학생 모(28세)씨가 투신하였고, 119 구조대에 의해 즉각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하였다.
  • 2014년 5월 29일 기숙사(309관) 건설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약 30분만에 진화되었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 2015년 3월 27일 박범훈 전 총장의 비리와 관련하여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캠퍼스 통합 특혜와 간호대학 인수 비리 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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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3년부터 약 1년동안 교육학부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 [2] 2018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 [3] 상징 동물이 성균관대학교와 겹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식 홈페이지에서 성균관대의 상징은 교목이기도 한 은행나무(은행잎)이고 상징 동물은 나와있지 않다.
  • [4] 여성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초대 상공부장관.
  • [5] 103관 파이퍼홀의 이름의 유래이다.
  • [6] 당시 혜화동 대학로에 있었던 서울대학교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 [7] 시인, 당시 중앙대 국문과 교수. 그런데 조병화 시인이 제안한 탑의 이름은 사월이었다.
  • [8] 당시 김희수 재단을 부르는 말이 '천원 재단'이었다. 정말로 1년 전입금이 1000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 [9] 그런데 김희수재단 초기에는 그럭저럭 투자를 많이 했다. 애당초 임철순재단이 700억 정도 되는 부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김희수재단이 들어오면서 일단 부채부터 모두 탕감했다. 당시 700억이면 지금 화폐가치로 3000억 정도 된다. (재단전입금이 가장 많은 사립대학이였던 연세대,한양대의 당시 1년 재단전입금은 100~200억 사이였다는 걸을 감안하자.) 또한 일단 급한대로 부채 탕감부터 했지만 이후 시설투자에 적극 자본투입을 약속했다. 문제는 김희수 재단이 재일교포로 일본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소유한 부동산의 급격한 가격상승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 및 투자약속을 한 것인데 이후 다 아시다시피 일본 부동산 폭락 때문에 투자할 여력은 커녕 일본내 사업 꾸리기도 힘들었었다.
  • [10] 90년대 말경(정확히 아는 분 수정바람) 재단퇴진 관련 대규모 집회가 열렸으나 퇴진에는 실패하였다. 2004년 총학생회장의 중앙문화 인터뷰를 보면 이 일 이후로 학내 학생운동이 구심점을 잃었다는 회한이 실려있다.
  • [11] 특히 김희수 재단 시절에 비해서. 전입금이 꼴찌 수준에서 놀던 학교에 갑자기 5위 이내 규모의 투자가 매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 [12] 경희대는 15년 정시부터 다군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 [13] 다만 단순 중앙대 조롱이 아니라 해당 발언을 한 박모 교수에 대한 조롱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