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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등학교 야구부

last modified: 2015-04-13 02:26:2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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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주말리그 서울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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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10년
소속 리그 서울권
감독 서효인
연고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우승 기록[1] 2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 2회(1980, 2007)
청룡기1회(1972) 3회(1956, 65, 73) 3회(1980, 91, 95)
황금사자기1회(1965) 4회(1961, 62, 71, 75) -
봉황대기 - 3회(1972, 2002, 03) (1971, 2000)
협회장기 - - -

1965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성남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1972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Contents

1. 연혁
2. 출신선수


1. 연혁

1910년에 창단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야구부. 성적으로는 역사 빼고 자랑할 게 없다는 것은 안자랑.

일제 시대에는 휘문고 등과 함께 한국야구를 이끌었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은 것은 1960년대였다. 이미 1961년과 1962년 2년 연속 황금사자기 결승에 올라갔지만 모두 패하면서 아쉽게 첫 우승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1960년대의 중앙고 야구부는 꾸준한 스타들의 산실이었고, 이는 1965년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이원국과 대구에서 올라와 팀의 핵심 유격수로 성장한 이광환의 활약으로 당시 서울에서 열리던 유이한 대회인 청룡기와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결승에 올라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하며 전성 시대의 절정을 이뤘다. 비록 이원국이 1966년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더 많은 우승을 일궈 내지는 못했지만, 1960년대의 중앙고 야구는 그 뒤로도 강했다.

그리고 1971년 경북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던 윤몽룡의 등장과 함께 중앙고는 다시금 정상에 도전했다. 1971년 황금사자기 승자 결승전에서 남우식의 경북고를 격침하며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이어 열린 최종 결승 1차전에서 경북고에게 패한 후, 다시 열린 2차전에서도 패하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고, 막 창설된 봉황대기 4강전에서는 신생 대광고에게 발목을 잡히면서 4강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고3이 된 윤몽룡을 앞세운 중앙고는 기어이 1972년 청룡기에서 이선희황규봉이 버틴 경북고를 제압하고 통산 2번째 우승에 성공했다.관련글 혹시 윤몽룡의 이름이 낯설다면, 그것은 윤몽룡이 프로 출범 초창기인 1984년에 백혈병으로 31세에 타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몽룡의 시대 이후, 1980년 모교 출신의 이광환이 지휘봉을 잡아 절묘한 작전 야구로 두 차례 4강에 오르면서 다시 이름을 알렸다. 비록 4강에만 두 차례 간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력으로도 4강에 두 번 오른 것으로 인해 이광환 감독은 일약 젊은 지도자 재목으로 인정받아 프로 출범과 함께 OB 베어스에 스카우트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이후로 중앙고는 1990년대까지 긴 시간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0년대 송신영-홍성흔 배터리로 조금씩 성적을 내던 중앙고는 김재호를 축으로 한 탄탄한 야수층을 바탕으로 2002년과 2003년 2년 연속 봉황기 결승에 올랐지만 각각 북일고경남고에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2003년으로 이미 2002년이야 당시 4관왕을 차지한 북일고가 막강했기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김상록의 원맨쇼로 오른 경남고는 분명 전력 상 열세였기 떄문이었다. 반대로 중앙고는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에서 8강에 오르는 등 선수들의 전력도 충실한 편이었다. 그러나 비로 인해 결승에 하루 밀리면서 전 경기 완루를 했던 경남고의 김상록에게 하루의 휴식기간이 주어졌고, 결국 경남고에게 이변을 허락하고 말았다.[2]

이 때의 전성기를 마지막으로 중앙고 야구부는 그리 인상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2009년 중앙고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된 후, 야구부에 대한 지원이 줄면서 2009년 한 때 해체 직전까지 가는 등, 야구부 운영이 소극적으로 변해 항상 인상적인 성적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되었다. 뛸 기회를 찾기 위해 전학오는 선수도 있기는 하지만 기껏 데려 온 선수가 타 학교로 전학하는 경우도 종종 나왔다. 어렵게 스카웃한 최원태(2015년 넥센 1차지명)가 1년만에 서울고로 전학한 것이 단적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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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2] 왜 이변이냐면, 당시 경남고는 학부모와 코치진의 갈등으로 인해 2003년 대거 선수들이 전학을 가는 통에 전력의 공백이 생겼고, 봉황대기 전에 경남고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는 모두 지역 예선 탈락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부산에서 열리는 화랑대기에서도 1회전만 이기고 탈락했을 정도로 전력이 안 좋았다. 봉황대기의 영웅이 된 김상록은 심지어 원래 유격수였다가 투수가 없어서 급히 돌린 선수였다.
  • [3] 리그베다위키 등록 선수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