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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last modified: 2014-11-16 23:09:38 Contributors

이 항목은 중량천으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살곶이다리)

中浪川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 서울특별시 북동부 일대를 거쳐 성동구의 금호, 성수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 하류부인 성동구 송정에서 서류하여 사근에 이르러 유력의 최대 지류인 청계천과 합류하고 한강 본류의 성수대교 직하류 우안측으로 한강 본류에 유입한다. 유역면적은 299.6㎢, 유역연장 34.8㎞, 유역평균폭 8.8.61m. 서울 시내의 하천 중에서 제일 긴 하천이다. 서울 중심부를 흐르는 청계천도 이 하천의 지류이며 강북구, 도봉구 일대를 흐르는 이천도 이 하천의 지류이다. 그 외 당현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가 있는데 대략 9개 정도 된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와 경기도 양주군의 자연경계였다.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書院川)이라 불렀고, 창동과 상계 일대에서는 한내(한자로는 漢川)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한강의 지류라는 의미라고 한다.

중랑천이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 중[1]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중랑천이라는 말도 일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쓰였다는 반론도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영산강을 일제 잔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2] 정작 중랑구청 홈페이지의 '중랑천의 유래#'에는 중량교를 일제가 '중랑교'라고 창작 표기했다고 적고 있지만 중천, 중천 모두 조선시대에 쓰인 이름이며 중랑천이라는 표기는 딱히 일제가 만든 표현[3]이 아니라 이 하천을 부르던 여러 가지 이름 중 하나였다. 어쨌든 현재의 표준 표기는 중랑천이 맞다. 조선왕조실록엔 정조시절 중랑천의 나루터로서 중랑포(中浪浦)라는 명칭도 나타난다[4].

예전에 중랑천은 대단히 더러운 물이었지만 생태보존, 정화사업 등이 이루어지면서 많이 정화되었다. 한강 본류 뚝섬에 유원지(강수욕장?)가 있고 중랑천에 큰 다리가 중량교, 중량철교 뿐이던 1970년대 초에도 현재의 중랑구청이 위치한 부근의 중랑천 물은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탁하고, 물고기가 없을 정도로 오염이 심하였다. 여름철엔 악취로 근처에 가기 어려웠다. 이유는 중량천변에 있던 판자촌의 생활 폐수, 무허가 가내 수공업 공장의 폐수가 아무 처리 없이 그대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 70년대 중반 이후 판자촌과 공장이 철거되고, 80년대 하수처리장이 생기면서 차차 회복하여 현재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하천이 지나는 주변에는 주거지역, 도로, 공장 등이 지나고 있어서 이 일대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숲 속의 동식물들과는 다른 편. 물고기는 붕어, 잉어 등이 서식하며 식물은 자생식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귀화식물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사실 조선시대부터 빨래터로 자주 쓰여서 하천 오염이 심각한 편이었다고. 그래도 다니다 보면 낚시하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정화 사업이 결실을 맺었는지 더러운 물에서 나는 깔따구 따위가 아닌 깨끗한 물에 사는 하루살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의 중랑천을 따라 동부간선도로가 지나가며 교통량은 제법 많은 편. 그리고 이 일대는 장마철이 되면 상습적으로 범람하는 지역으로 하천이 넘치면 동부간선도로가 중랑천에 잠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2013년 8월 현재 중랑교 하류의 첫번째 다리(용비교)와 두번째 다리(응봉교)가 전부 공사중이라 성동구에서 강남구로 가려는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빅엿을 행사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동호대교, 영동대교와 달리 성수대교는 자전거 프렌들리한 다리라는데 있다(하단에 자전거 엘리베이터까지 있다!) 즉 지금 상황을 정리하자면 한강을 어렵게 건너던지, 한강을 쉽게 건너는 대신 다음 중랑천을 어렵게 건너던지라는 선택지라는 것.... 용비교는 아예 자전거로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응봉교는 엄청난 높이의 계단을 자전거를 들고(!) 올라갔다 내려가는 일을 벌여야 한다. 응봉교는 심지어 4년째 이 상황. 명불허전 티스푼 공사 14년 현재는 한강 합류지점 바로 위에 나무 다리 하나가 놓여져 있어서 중랑천도 편하게 건널 수 있다. 하천 양쪽 모두 자전거도로가 닦여 있기 때문에 통행에 별 지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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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선시대에는 중량(中良), 충량(忠良)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특히 中良이라는 표기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변중량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이 있다.
  • [2]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회 이상배 연구원이 펴낸 '서울의 하천' 참조
  • [3] 良을 浪의 오기로 알고 고쳤더라는 설도 있다.
  • [4]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중이 훨씬 오래되어 이를 알면서도 중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실제로 각종 검색엔진에서도 중천이라고 검색해도 자동으로 중천으로 바꾸어 검색해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