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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당

last modified: 2016-10-21 15:07:24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역대 선거결과
3.1. 총통 선거
3.1.1. 국민대표대회 간선제 시기
3.1.2. 국민 직선제 시기
3.2. 입법의원 선거
4.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국민당


Chinese_Nationalist_Party.JPG
[JPG image (Unknown)]
중국 국민당 中國國民黨
Kuomintang of China(KMT) 혹은 Chinese Nationalist Party
중국어 번체 : 中國國民黨 (주음 : ㄓㄨㄥ ㄍㄨㄛˊ ㄍㄨㄛˊ ㄇㄧㄣˊ ㄉㄤˇ, 웨이드-자일스 표기 : Chung1-kuo² Kuo²-min²-tang³)
중국어 간체 : 中国国民党 (병음 : Zhōngguó guómíndǎng)


1. 개요

중화민국(대만)의 정당. 2014년 현재 여당이다. 굳이 한국에 비유하자면 새누리당에 이르는 보수정당의 기믹을 맡고 있으며[1] 대륙 출신 재벌들과 많이 얽혀있다. 대륙 출신(외성인)이 많아서 중국과의 점진적인 통일에 호의적인 것도 특징[2](역으로 대만 출신(본성인)이 많은 민진당은 통일에 반대하고 각자 제갈길 가자는 독립 스탠스에 서있다. 대륙출신의 중국인들이 점차 줄어가면서 점차 독립주장은 세력을 얻어가는 편).

막대한 규모의 영사업을 가지고 있다. 중국 국민당/당영사업을 참조.

2. 역사

장제스와 그의 아들 장징궈(장경국/蔣經國)까지 해먹다가 1988년 장징궈가 급서하자, 대만 출신의 리덩후이(이등휘/李登輝)가 2000년까지 총통을 했다.[3] 이 양반은 스스로 언론통제 폐지와 입법의원 총선거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대만 출신들을 대거 기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친일본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어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기도 하고 망언도 자주 뱉었다.[4] 국민당이지만 대만 출신이기 때문에 "타이완은 중국과 별개의 국가"라면서 중국과의 대립각을 많이 세웠고, 그래서 1993년 국민당 내의 외성인출신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당으로 분당되는 사태를 겪었지만 어쨋거나 지속적으로 의회 과반수를 확보하면서 이를 넘겼다. 중국이 96년 선거에서는 무력시위까지 하면서 당선을 막으려고 했지만 되려 대만 독립파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당선에 도움이 되었다.

이전부터 대륙 출신들에게 비판을 많이 샀지만, 끝내 2000년 선거에서는 독립주의자란 이유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천수이볜(진수편/陳水扁)을 실질적으로 지원하여 당에서 쫓겨났고, 이후 대만단결연맹을 만들어 합류하였다. 거기에다가 국민당에서 탈당한 쑹추위가 천수이볜과 선두자리를 다투면서 렌잔 후보는 3위에 머물렀고 그렇게 총통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국민당은 정권을 민진당에게 넘겨준다. 이후에 2001년 총선에서도 국민당은 개헌저지선 확보에 실패하며 참패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천수이볜 정부가 난맥상을 보이고 대립각을 세웠던 렌잔과 쑹추위가 서로 화해를 하며 단일화를 결의하여 2004년 총통선거에서 우세를 보일듯했으나 전날 일어난 석연찮은 천수이볜 암살미수 사건으로 정권 탈환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듬해 총선에서 개헌저지선을 확보했고 뒤를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기여코 압승을 거두며 천수이볜을 궁지에 몰아놓았다. 그리고 2008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고 그 뒤를 이은 총통선거에서도 마잉주 후보가 당선되어 기어이 정권탈환에 성공한다. 주요 이유는 천수이볜의 부패 의혹 때문으로, 2009년에 기어이 천수이볜을 구치소에 보내버린다.[5] 이후 중국 대륙(중화인민공화국)에 경제 협력에 한해 우호적인 성향[6]을 보이고 있었는데, 09년 12월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이전보다 부진하면서 다시 흔들리는 형국.[7]

이어서 벌어진 2010년 1월의 입법의원(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3:0으로 전패, 민진당이 30석을 차지하면서 개헌안과 총통 파면안 제출에 필요한 총의석(113석)의 1/4(29석)을 넘어섰다. 이어진 2월 말의 보궐에서도 4석 가운데 3석을 내주었다. 이를 돌파하고자 했는지, 아니면 무릅쓰고 했는지 마잉주 정권은 같은 해 7월 중국과의 ECFA(경제협력기본협정)까지 체결시키면서 대외적으로는 "Chiwan시대"를 열었다고 홍보했으나 국내 반응은 냉담…. 의회에선 난투극이 벌어졌고, 수만명의 시위가 빗발쳤다(리덩후이도 함께 참여했다). 11월로 예정된 5대 시장선거에서도 참패할 전망이었으나 의외로 선거 결과는 국민당의 승리. 선거 막판에 국민당 중앙위원이 총에 맞아 다치는 사고로 국민당 표가 집결하면서 다섯 곳 중에 세 곳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겉으로만 보면 국민당의 승리이기는 하지만 전체 득표에서는 민진당이 49.9%(377만2000여표)를 차지해 국민당의 44.5%(337만9000여표)를 5.4%포인트 앞섰다. 이건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여

이러한 위기감 속에 실시된 2012년 총통선거와 입법위원선거에서 국민당은 선거 레이스 내내 근소한 차이의 우세를 보여왔으나, 언제든지 역전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표출되었다. 하지만 독립노선을 지향하는 민진당의 집권을 원치 않았던 중국의 지지와 대만해협에서의 대립관계를 원치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로 인해 예상보다 손 쉽게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마잉주 지지율이 20~30%대에 머무는 등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난맥상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계속해서 낮은수준에 머무르고 거기에다가 홍콩 민주화 시위가 좌절되면서 자칫했다가 중국에게 흡수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도 겹쳐 결국 지방선거에세 대패하고 말았다. 타이베이 시장을 친 민진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에게 내줬고, 거기에다가 당초 국민당 후보가 승리할걸로 보였던 타오위안 시장도 민진당이 가져간데다가 역시 국민당이 여유있게 승리할걸로 보였던 신베이 시장도 접전끝에 겨우 승리할정도였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옹진군에 해당하는 진먼을 아예 무소속에게 내주었으며 펑후도 민진당이 가져갔다. 전체적인 판세를 본다면 국민당은 6개 시장 선거가운데 딱 한곳만 건졌고, 현장과 현급시장은 그나마 사정이 났다고는 하지만 5곳만 건졌다.
12월 3일 마잉주 총통이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국민당 주석직을 사퇴했다.

2015년 1월 18일에 주리룬 신베이 시장이 당 주석에 당선됐다.

3. 역대 선거결과

3.1. 총통 선거

3.1.1. 국민대표대회 간선제 시기

1948년 총통 선거 장제스 90.03% 당선[8]
1954년 총통 선거 장제스 96.91% 당선
1960년 총통 선거 장제스 93.97% 당선
1966년 총통 선거 장제스 98.60% 당선
1972년 총통 선거 장제스 99.39% 당선
1978년 총통 선거 장징궈 98.34% 당선
1984년 총통 선거 장징궈 95.11% 당선
1990년 총통 선거 리덩후이 85.24% 당선

3.1.2. 국민 직선제 시기

1996년 총통 선거 리덩후이 54.0% 당선[9]
2000년 총통 선거 롄잔 23.1% 낙선[10]
2004년 총통 선거 롄잔 49.89% 낙선
2008년 총통 선거 마잉주 58.45% 당선
2012년 총통 선거 마잉주 51.60% 당선

3.2. 입법의원 선거

1969년 입법원 선거 15/15
1972년 입법원 선거 41/51
1975년 입법원 선거 42/52
1980년 입법원 선거 79/97
1983년 입법원 선거 83/98
1986년 입법원 선거 59/73[11]
1989년 입법원 선거 72/101 60.1%
1992년 입법의원 선거 102/161 53.02%[12]
1995년 입법의원 선거 85/164 46.1%
1998년 입법의원 선거 123/225 46.43%
2001년 입법의원 선거 68/225 31.3%
2004년 입법의원 선거 79/225 32.83%
2008년 입법의원 선거 81/113 53.5%
2012년 입법의원 선거 64/113 44.55%

4.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국민당

중화인민공화국에도 중국 국민당이 남아 있다. 정식 명칭은 '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 약칭 민혁.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정부의 패색이 짙어지자 1948년 국민당의 좌파 인사들이 설립했다. 초대 주석은 쑹칭링. 물론 중화인민공화국대만의 중국 국민당도 인정하고 있지만 헌법상 "대만의 지방자치 정당"으로 인식되어 있다. 안습

이후 중국 공산당의 우당인 민주파 8당 중 하나가 되어 존속 중이다. 북한에 존재하는 조선로동당의 우당인 조선사회민주당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보면 알기 쉽다. 엄밀히 말하면 중화민국의 중국 국민당과는 다르지만 모체를 쑨원의 중국 국민당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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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두 당 모두 세계 보수우파 정당의 단체인 '국제민주연합(國際民主聯合, International Democrat Union)'의 멤버다.(영국 보수당, 미국 공화당, 독일 기민당도 이 단체의 회원이다.) 이 단체는 중화민국이 정식 국명으로 활동하는 몇 안되는 단체 중 하나이다.
  • [2] 그러나 통일의 주체는 중화민국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절대고수하고 있다. 즉 말이 호의적이라는거지 실질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통일 정책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
  • [3] 장징궈는 비록 중국 대륙인 저장 출신인 자신이 통치를 하지만 언젠가는 대만 출신들이 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만 출신인 리덩후이를 후계자로 생각했던 듯. 그리고 죽기 몇 달 전 '내가 대만에서 40년을 살았으니 나도 이제 대만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발언도 했다 한다.
  • [4] 리덩후이의 경우엔 실제로 일제 때 창씨개명까지 했다. 실제로 대만 출신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섬나라로 규정하기에 친일적인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일본이 조선과 달리 대만에는 호의적인 식민통치를 했던 과거도 영향을 미쳤다. 대만 항목 참조.
  • [5] 이런 비슷한 모습 때문에 대만정치에서 한국은 자주 비교되는 모델이다. 한국의 07년 대선 직후에 있었던 08년 총통선거에서 양당 후보 모두 "누가 누가 이명박을 닮았나"(...)를 시전한다거나, 대만 언론이 천수이볜의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해줄 사람은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뿐(...)이라고 언급한다거나...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당의 이합집산이 자주 일어나는데 비해 대만에서는 양당체제가 자리를 잡고 있고, 대만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대야소가 일반적인 등 차이점도 많다.
  • [6] 단 정통 중국이 어디냐 하는 문제에서는 중화민국=정통 중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로 대만을 복속시켜 통일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실제 마잉주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 정권은 이와 관련해 2014년 홍콩 시위에 분명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 [7] 17개 선거구 가운데 국민:민진이 14:3이었던 것이 12:4가 되었다. (한 석은 무소속) 민진당의 득표율이 45.32%로 국민당(47.88%)이 우세지만 2005년의 선거(민진당 38.2%)에 비하면 대단한 약진이라서 패배로 받아들여진다고. 재밋는 것이 지지율 하락 원인이 부패와 경기 침체, 그리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제한 완화라고 한다.
  • [8] 사실 독재시절이라 당시 총통선거는 지금 북한에서 선거를 하는 것처럼 그냥 의례용이었다고 보면 된다. 100% 찬성은 안 나왔으니 그나마 다행
  • [9] 이 시기부터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전환되었다.
  • [10] 당시 무소속으로 나왔던 쑹추위에게 팀킬당했다. 쑹추위에게 간 표를 합하면 59.93%.
  • [11] 이 선거에서부터 야당의 정치참여가 허용된다. 다만 이전에도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수는 있었다.
  • [12] 이 선거에서부터 보궐선거에서 총선거로 변경했다. 1991년까지는 1948년에 대륙에서 뽑힌 입법의원(중 대만으로 피난한 사람)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그들이 세상을 떠남에 따라 모자라게 된 인원을 충원하는 식이었다.